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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傳說[전설]의 擴布上[확포상]으로 보는 人類文化[인류문화]의 原始世界性[원시세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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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一家[일가]라, 四海[사해]가 比隣[비린]이라 함은 기차ㆍ기선에 대해 서도 하던 말이요, 비행기ㆍ비행선에 대해서도 하던 말이지마는, 아마도 요사이 好尙[호상]의 총아가 된 라디오에 대해서보다 더 적절할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동경의 연설이고 상해의 창가이고, 조금 있다가는 파리의 管絃[관현]이고, 紐育[뉴육](뉴요크)의 희곡이고를 안락의자에 걸터앉은 채 졸음 섞어서 들을 수 있다 함은 옆방이라도 벽이 좀 두터우면 소리를 들을 수 없음에 비하여 어떻게 더 近密[근밀]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인가? 이만만 하여도 各自[각자]의 일상생활이 이미 的確[적확]히 세계적임을 앙탈할 수없이 되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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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아니하여 세계 각국의 新出[신출] 사건이 거리거리의 게시대상에 활동사진 모양으로 자동적 표시가 되어 전보ㆍ통신이니, 신문 보도니 하는 것이 필경 아무 소용 없어질 날 되기를 기다릴 것까지 없이 우리의 動靜語默[동정어묵] 은 온통 세계라는 구도 중의 一線[일선]을 긋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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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류 생활의 세계적 색채는 그래 근대에 들어와서부터의 일일까? 과학의 利器[이기]를 통해서의 일일까? 汽力[기력]ㆍ電力[전력]으로 왔다 갔다하게 된 뒤에 처음 생긴 일일까? 아니다. 인류의 생활은 본디부터 세계적 이었다. 인류의 생활의 成形物[성형물]인 문화란 것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이미 通世界[통세계]ㆍ通人類的[통인류적]의 것이었다. 작게는 부락과 크게는 國邦間[국방간]의 境域[경역]이란 것이 어떻게 높은 담을 쌓았을지라도 이 때문에 막히는 일도 없고, 감정의 충돌과 이해의 相左[상좌]가 爾我[이아] 의 사이에 어떻게 큰 개천을 팠을지라도 이 때문에 끊기는 일도 없고, 역사와 종족이야 같거니 아니 같거니, 언어와 습속이야 통하거니 통치 못하 거니, 자연적ㆍ인위적 모든 장애와 隔壁[격벽]을 자유 자재히 초월 하여서 甲地[갑지] 로서 乙地[을지]와 先代[선대]로서 後代[후대]에 유전되고 浸漸[침점] 되고 擴布[확포]되고 弘通[홍통]되는 것은 인류의 문화이었다. 문화의 공통상에는 정치의 강약도 없었으며, 문명의 고하도 없었으며, 아무 제한과 금단이 그 사이에 행하지 아니하였다. 여기 한 문화적 사실이 있어서 그것이 인류 생활의 필수적 자료가 되기만 하면, 누가 시실이 있어서 그것이 인류 생활의 필수적 자료가 되기만 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고, 누가 助勢[조세] 하지도 않고 누가 주의하지도 않아도 혼자 곧잘 세계의 구석구석과 인류의 샅샅이 굴러 가고 들어가 박히기를 어려워 아니하였다. 소리도 기척도 아무것도 없이 문화의 유포는 세계적이라는 본령을 똑똑히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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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의 관계가 언제부터 생겼느니, 동서의 교통이 언제부터 비롯 하였느니, 학자는 곧잘 이런 것을 문제라 하여 종종의 머리 아픈 고증을 시험한다. 그러나 사실은 인류의 교통은 본디부터 세계적이었는데, 그 명확한 證迹[증적] 은 문화적 공통의 諸種[제종] 사실의 위에 똑똑히 징험할 것이다. 이것을 신앙 사실의 위에도 볼 수 있으며, 이것을 생활 방법의 위에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 것에서보다 가장 단적하고 가장 선명하게 證迹[증적]을 머물러 가진 것이 전설의 위에서이다. 다른 것은 그러하면 그렇고 안 그러하면 안 그렇다고도 할 만하여 얼마쯤 어리삥삥한 폐단도 없지 아니하지마는, 전설의 어느 종류상에 나타나는 인류 생활의 世界大的證迹[세계대적증적] 은 어떻게도 또렷하고 맑은지, 아무러한 떼장이라도 아니라고 흠절을 잡을 짬이 있지 아니하다. 어느 한 민족의 가진 전설 古談[고담]의 중에는 무론 독창도 있고 自作[자작]도 있지마는, 그 속에 어느 한 지방에서 나서 여러 곳으로 전파된 것이 그 고장에까지도 들어 있음을 앙탈하지 못할 것이 퍽 많이 있다. 당초의 작자는 하나이지마는 그것을 받아서 享用[향용]하는 자는전 세계 전 인류임을 증명하고 또 이러한 현상은 舟車[주거]와 같은 변변한 교통기관이 생기지 아니한 옛날로부터 그러하였음을 증명해 주는 가장 유력한 一物[일물]은 곧 전설이며 古談[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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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교통은 결코 타는 것과 실릴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서도 날개 있는 것처럼 높은 데라도 뛰어 넘었으며, 지느러미 있는 것처럼 깊은 데라도 헤엄해 건너갔다. 히말라야나 葱嶺[총령]이나 天山[천산] 이나, 하늘을 찌르는 高峯[고봉]도 그는 수월스럽게 넘어다니며, 맹수 ㆍ毒龍[독룡] ㆍ八一難[팔일난] 의 연쇄인 만리 험로도 그는 우스꽝스럽게 지나 다녔으며, 콜룸부스가 西印度[서인도]를 찾아내기 전에, 마젤란이 喜望峯[희망봉]을 길트기 전에, 캡틴쿠크의 太平洋[태평양] 群島[군도]를 들어가 보기전에, 아니 鷄犬之聲[계견지성]이 相聞[상문]하되 至老死不相往來[지로사불상왕래] 하던 아득아득한 옛날에 이미 구라파와 태평양 군도와 이 사이에 문 화의 비행기는 곧장 通涉[통섭]하였으며, 아시아와 南亞美利加[남아미리가](남아메리카)와의 사이에 전설의 無線電[무선전]은 번뜻 왕래가 되었었다. 북빙양 가까이 雪穴[설혈]에 사는 에스키모의 곰잡이 하는 이야기가 南亞弗利加[남아불리가](남아프리카) 叢林中[총림중] 부시먼의 잔나비 사냥 하는 이야기와 공통한 結構[결구]를 가졌을지라도, 전설의 세계성과 문화의 人類律[인류율]을 짐작하는 이는 조금도 괴이하게 여길 까닭이 없다. 기러기 왕래하는 길에는 범위가 있고, 日光[일광]의 照入[조입]하는 구석에도 국한이 있어도 인류의 心與心[심여심]을 한 끈에 잡아매어 다니는 전설 ㆍ古談[고담] 의 유통 弘布[홍포]만은 멀다고 아니 가는 데도 없고, 깊다고 아니 들어가는 데도 없었다. 전파로 하는 라디오를 二[이]○세기인 이 자랑할는지 모르되, 전설의 라디오는 안테나고 아무것이고 신세지지 아니하고 원시 시대에 이미 자유 활발한 世界大的[세계대적] 전달을 밟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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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한 세계의 일은 이제 묻지 말기로 하자. 편한 문화 전반의 일도 아직 제쳐 두기로 하자. 잠시 조선의 전설상에 나아가서 그 세계적 교섭의 一端[일단]을 들추어 보기로만 하자. 우선 금년이 卯年[묘년]이라 하여 새로운 흥미를 끌게 된 兎鼈相欺談[토별상기담]만을 가지고 말하여 보자. 조선의 대표적 국민 동화란 것을 뽑는다 하면 一[일]○을 취하고 五[오]를 취하는 경우에 이것이 빠지지 아니할 것은 무론이거니와, 셋 둘을 취할지라도 제쳐놓지 못할 것이 이 兎鼈談[토별담]일 것이요, 다만 하나를 취한다 할 경우에라도 <흥부놀부>와 한가지 너 아니면 내로라 할 것은 오직 이 兎鼈談[토별담] 이 있을 뿐이다. 조선인으로 누가 그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조를 시절에 銀絲[은사]의 숲 깊은 이 빠진 늙은 입으로 나오는 이 이야기를 듣지 아니하였으며, 어느 慈母[자모]의 입으로서 이 이야기가 마음의 울림인 사랑의 선물로 그 愛兒[애아]의 귀에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랴? <鼈主簿傳[별주부전]으로의 傳奇[전기]는 유수한 一[일] 民衆文學[민중문학]을 형성하며, <토끼타령>으로의 歌曲[가곡]은 가장 유력한 一[일] 民族詩[민족시] 로 사막 같은 조선인의 心野[심야]를 綠潤[녹윤]에 은혜받게 하며, 일변 처세의 訓諭[훈유]로 씌어서는 많은 사람의 윤리보감이 되기도 하여 조선인의 정신생활상에 가장 除斥[제척]하기 어려운 한 요소를 지었다. 우리 생활의 동산에 이 兎鼈談[토별담]이 어떻게 香艶超當[향염초당]한 名花[명화] 일 것을 생각해 보고는 이 一[일]편 동화의 가치와 세력을 새삼스럽게 경탄치 아니치 못할 것이다. 이 兎鼈談[토별담]은 조선에 있어서 동화 로서 동화만이 아니라 이미 비유로써 표현할 一[일] 민중 철학의 詩篇[시편]이라고도 할 것이다. 아이는 오히려 몰라도 어른은 반드시 알고, 그리하여 깊은 감흥을 가지는 정신의 큰 양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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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누구가 생각하든지 兎鼈談[토별담]은 조선 고유의 一[일] 전설이라 할 것이다. 알렌이고 게일이고, 서양 사람의 조선 전설집의 중에는 무론 유력한 一[일]편으로 이것이 참여하였으며, 가까운 일본인의 편찬 물의중에도 巖谷小波[암곡소파]의 <世界御伽噺[세계어가신]> 一[일]만 권의 중에 조선을 대표하는 유일한 전설로 이것이 선발되고, 松村氏[송촌씨] <世界童話大系[세계동화대계]> 의 朝鮮部[조선부]와 中村氏[중촌씨]의 <朝鮮童話集[조선동화집]> 등에다 이것 採收[채수]하기를 잊어버리지 아니하였다. 우리가 이미 조선의 것으로 확신하매, 남이 아니랄 까닭이 무론 없는 것이다. 그 동해라 하는 것이 강원도ㆍ경상도 저편의 바다로 생각되고, 그 龍王[용왕] 이라 하는 것을 신라 시절에 혹 水路夫人[수로부인]도 빼앗아 들여가고 혹 處容郞[처용랑]도 내어보냈다는 동해 그이의 眷屬[권속]으로 생각 할는지 모른다. 조선의 바다에서 자라가 많이 나는 것처럼, 조선의 산에서는 토끼도 많이 나는 것이며, 그 이야기의 구성 物素[물소]에 있어서도 미상불 깔 축 없는 조선다운 것 아니랄 수 없다. 그나 그뿐인가, 이 兎鼈談[토별담] 은 조선에 있어서 가장 일찌기 文籍[문적]에까지 오르게 된 古談[고담] 의하나이며, 또 신화나 영웅 전설에 부속되지 않고 독립 遊離[유리]하여 다니는 動物[동물] 主人[주인]의 동화로 문헌적 생명을 가진 것의 거의 유일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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兎鼈談[토별담]은 이만 저만한 文籍[문적]에 가서 적힌 것 아니다. <삼국사기>에서도 그 중심 사실이라 할 삼국 쟁패 戰記[전기]의 이채 있는 一[일] 揷話[삽화]로 오르게 되었다. 신라의 국민적 意氣[의기]의 最高潮[최고조] 를 대표하는 金春秋[김춘추]ㆍ金庾信[김유신]의 兩[양] 柱石[주석] 이몸을 희생으로 하여 통일의 대업을 경륜하여 허허실실의 秘策[비책]을 다할 때에, 金枝玉葉[금지옥엽]의 春秋[춘추] 스스로가 군사 탐정으로 최강적인 고구려의 朝廷[조정]에 들어선 일이 있었다. 挺身敢入[정신감입]하는 이의 용기도 갸륵하거니와, 그렇다고 몰라보거나 놓쳐보낼 고구려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생트집을 잡아가지고 春秋[춘추]를 돌려보내지 아니할 양으로, 고구려의 왕이 「아무 땅과 아무 땅은 본디 우리 영토이니, 그대가 찾아 놓지아니하면,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고지식한 春秋[춘추]는 「 국가의 토지를 臣子[신자]가 어찌 專擔[전담]하리까」하였더니, 王[왕]이 노하여 囚禁[수금] 하고 죽이려 하였다. 春秋[춘추]가 왕의 寵臣[총신]에게 뇌물을 주고 탈출할 계교를 물으매, 그가 이런 옛날 이야기를 못 들었느냐 하고, 일러 들린 것이 兎鼈[토별]의 古談[고담]이었다. 春秋[춘추]가 이 말을 알아 듣고 선뜻 왕에게 「하라시는 대로 하오리다」하고 풀려 돌아가서 시치미를 떼었다는 一段[일단]이다. 原文[원문]이 매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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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亦嘗聞龜兎之說乎[자역상문구토지설호], 昔東海龍女病心[석동해용녀병심], 醫言得兎肝合藥則可療也[의언득토간합약즉가료야], 然海中無兎[연해중무토], 不奈之何[불내지하], 有一龜白龍王言[유일구백용왕언], 吾能得之[오능득지], 遂登陸見兎言[수등륙견토언], 海中有一島[해중유일도], 淸泉白石[청천백석], 茂林佳菓[무림가과], 寒署不能到[한서불능도], 鷹隼不能侵[응준불능침], 爾若得至[이약득지], 可以安居無患[가이안거무환], 因負兎背上[인부토배상], 遊行二三里許[유행이삼리허], 龜顧謂兎曰[구고위토왈], 今龍女被病[금용녀피병], 須兎肝爲藥[수토간위약], 故不憚勞[고불탄로], 負爾來耳[부이래이], 兎曰噫[토왈희], 吾神明之後[오신명지후], 能出五臟[능출오장], 洗而納之[세이납지], 日者少覺心煩[일자소각심번], 遂出肝心洗之[수출간심세지], 暫置巖石之底[잠치암석지저], 聞爾甘言徑來[문이감언경래], 肝尙在彼[간상재피], 何不廻歸取肝[하불회귀취간], 則汝得所求[즉여득소구], 吾雖無肝尙活[오수무간상활], 豈不兩相宜哉[기불량상의재], 龜信之而還[구신지이환], 纔上岸[재상안], 兎脫入草中[토탈입초중], 謂龜曰[위구왈], 遇哉汝也[우재여야], 豈有無肝而生者乎[기유무간이생자호], 龜憫默而退[구민묵이퇴]. (三國史記[삼국사기] 卷第四一[권제사일] 金庾信列傳[김유신열전] 上[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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兎鼈談[토별담] 이 오랜 예전부터 있었음은 <삼국사기>의 글로 알거니와, 이것이 매우 조선인의 설화적 흥미를 끎이 깊은 듯하여 즐겨 옮기고 널리 행한 결과는, 동화로부터 민화의 성질을 띠기까지 轉變[전변]하고, 민화 로부터 國民詩[국민시]의 형식을 취하게까지 진보하였다. <토끼畵像[화상]>이란 노래가 어떻게 흔히 부르고 또 듣기 좋아하는 것의 하나임을 생각 하면, 그 보급된 정도를 짐작할 것이다. 물에 있는 鼈主簿[별주부]가 忠義一念[충의일념]으로 兎生員[토생원]을 잡아들이겠다고는 하였으되, 워낙 道不同[도부동] 하여 生面不知[생면부지]이매, 아는 이에게 이렇게 생긴 것이 토끼니라고 하여 그 모양을 그려 가지고 나오는 一段[일단]이 <토끼 畵像[화상]> 의 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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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화상 그린다, 토끼 화상 그린다. 畵工[화공]을 불러라. 畵工[화공]을 불러라. 정정 유리 청황硯[연], 금수주파 거북 硯適[연적], 烏賊魚[오적어] 불러 墨[묵] 갈려, 兩頭花筆[양두화필] 덤벅 풀어, 白菱雪花簡紙上[백릉설화간지상]에, 요리조리 그린다. 嚴冬雪寒大寒風[엄동설한대한풍]에, 防風[방풍] 하는 털 그려, 杜鵑鸚鵡[두견앵무] 지저귈 제, 소리 듣는 귀 그려, 鎭國名山萬丈峯[진국명산만장봉]에 景槪[경개]보는 눈 그려, 萬疊靑山[만첩청산] 雲霧中[운무중]에 내 잘 맡는 코 그려, 蘭草芝草[란초지초] 갖은 香草[향초], 꽃 따먹는 입 그려, 저 건너 絶壁上[절벽상]에 팔팔 뛰는 발 그려, 앞발은 짜름, 뒷 발은 기름, 두 귀는 발쪽, 두 눈은 도리도리, 허리 잘름, 꽁지 몽톡, 左[좌]편 靑山[청산] 右[우]편 綠水[녹수], 그리어내니 저 토끼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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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고 시방이고 어른이고 아이고, 歌曲[가곡]으로 俚諺[이언]으로 얼 없고 欠[흠]없이 계속적 생명과 보편적 가치와 본연적 色態[색태]를 이렇게 보유한 자를 얼른 생각하고야 누가 조선의 고유한 것 아님을 의심하며, 누가 이것이 외국 기원의 이야기라 한다 믿을 것이랴. 그러나 시험하여 아래적은 印度[인도]의 古談[고담]을 읽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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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佛告諸比丘言[이시불고제비구언], 我念往昔於大海中[아염왕석어대해중], 有一大虬[유일대규], 其虬有婦[기규유부], 身正懷姙[신정회임], 忽然思欲獼猴心食[홀연사욕미후심식], 以是因緣[이시인연], 其身贏瘦[기신영수], 痿黃宛轉[위황완전], 顫慄不安[전율불안], 時彼牸虬[시피자규], 見婦身體[견부신체], 如是贏瘦[여시영수], 無有顔色[무유안색], 見已問言[견이문언], 賢善仁者[현선인자], 汝何所患[여하소환], 欲思何食[욕사하식], 我不聞汝[아불문여], 從我索食[종아색식], 何故如是[하고여시], 時其牸虬[시기자규], 默然不報[묵연불보], 其夫復問[기부복문], 汝今何故[여금하고], 不向我道[불향아도], 婦報夫言[부보부언], 汝若能與[여약능여], 我隨心願[아수심원], 我當說之[아당설지], 若不能者[약불능자], 我何暇說[아하가설], 夫復答言[부복답언], 汝但說看[여단설간], 若可得理[약가득리], 我當方便[아당방편], 會覓令得[회멱영득], 婦即語言[부즉어언], 我今意思[아금의사], 獼猴心食[미후심식], 汝能得不[여능득불], 夫即報言[부즉보언], 汝所須者[여소수자], 此事甚難[차사심난], 所以者何[소이자하], 我居大海[아거대해], 猴在山樹[후재산수], 何由可得[하유가득], 婦言奈何[부언내하], 若不得是物[약부득시물], 此胎必墮[차태필타], 我身不久[아신불구], 恐取命終[공취명종], 是時其夫[시시기부], 復語婦言[복어부언], 賢善仁者[현선인자], 汝具容忍[여구용인], 我今求居[아금구거], 若成此事[약성차사], 深不可言[심불가언], 則我與汝[즉아여여], 並皆慶快[병개경쾌], 爾時彼虬[이시피규], 即從海出[즉종해출], 至於岸上[지어안상], 去岸不遠[거안불원], 有一大樹[유일대수], 名優曇婆羅[명우담파라], 時彼樹上[시피수상], 有一大獼猴[유일대미후], 在於樹頭[재어수두], 取果子食[취과자식], 是時皮虬[시시피규], 旣見獼猴在樹上坐[기견미후재수상좌], 食於樹子[식어수자], 見已漸漸到於樹下[견이점점도어수하], 到已即便共相慰喩[도이즉변공상위유], 以美語言[이미어언], 問訊獼猴[문신미후], 善哉善哉[선재선재], 婆私師吒[파사사타], 在此樹上[재차수상], 作於何事[작어하사], 不甚辛勤[불심신근], 受苦惱耶[수고뇌야], 求食易得[구식이득], 無疲倦否[무피권부], 獼猴報言[미후보언], 如是仁者[여시인자], 我今不大受於苦惱[아금부대수어고뇌], 虬復重更語獼猴言[규복중갱어미후언], 汝在此處[여재차처], 何所食噉[하소식담], 獼猴報言[미후보언], 我在優曇婆羅樹上[아재우담바라수상], 食噉其子[식담기자], 是時虬復語獼猴言[시시규복어미후언], 我今見汝[아금견여], 甚大歡喜[심대환희], 遍滿身體[편만신체], 不能自勝[불능자승], 我欲將汝作於善友[아욕장여작어선우], 共相愛敬[공상애경], 汝取我語[여취아어], 何須住此[하수주차], 又復此樹[우복차수], 子少無多[자소무다], 云何乃能此處願樂[운하내능차처원락], 汝何不來隨遂於我[여하불래수수어아], 我當將汝渡海彼岸[아당장여도해피안], 別有大林[별유대림], 種種諸樹[종종제수], 華果豊饒[화과풍요], 獼猴問言[미후문언], 我云何得至彼處[아운하득지피처], 海水深廣甚難越度[해수심광심난월도], 云何堪度[운하감도], 是時彼虬[시시피규], 報獼猴言[보미후언], 我背負汝[아배부여], 將度彼岸[장도피안], 汝今但當從樹下來[여금단당종수하래], 騎我背上[기아배상], 爾時獼猴[이시미후], 心無定故[심무정고], 狹劣愚癡[협열우치], 心生歡喜[심생환희], 從樹而下[종수이하], 上虬背上[상규배상], 欲隨虬去[욕수규거], 其虬內心[기규내심], 生如是念[생여시념], 善哉善哉[선재선재], 我願已成[아원이성], 即俗相將至自居處[즉속상장지자거처], 及獼猴俱沒於水[급미후구몰어수], 猴問虬言[후문규언], 善友何故[선우하고], 忽沒於水[홀몰어수], 虬即報言[규즉보언], 我婦懷姙[아부회임], 彼如是思欲汝心食[피여시사욕여심식], 以是因緣[이시인연], 我將汝來[아장여래], 爾時獼猴作如是念[이시미후작여시념], 鳴呼我今甚不吉利[명호아금심불길리], 自取磨滅[자취마멸], 作何方便[작하방편], 而得免此急速厄難[이득면차급속액난], 不失身命[불실신명], 復如是念[복여시념], 我須誑虬[아수광규], 作是念已而語虬言[작시념이이어규언], 仁者善友 [인자선우], 我心留在優曇婆羅樹上奇著[아심유재우담바라수상기저], 不持將行[부지장행], 仁於當時[인어당시], 云何不依實語我[운하불의실어아], 知今須汝心[지금수여심], 我於當時[아어당시], 即將相隨[즉장상수], 善友還廻方我取心[선우환회방아취심], 得已還來[득이환래], 爾時彼虬[이시피규], 聞獼猴語已[문미후어이], 二俱還出獼猴見虬欲出水岸[이구환출미후견규욕출수안], 是時獼猴努力奮迅[시시미후노력분신], 捿疾跳擲[서질도척], 出大筋力[출대근력], 從虬背上跳下[종규배상도하], 上彼優曇大樹之上[상피우담대수지상], 其虬在下[기규재하], 少時停待[소시정대], 見猴淹持不下[견후엄지불하], 而語之言[이어지언], 親密善友汝速下來[친밀선우여속하래], 共汝相隨[공여상수], 至於我家[지어아가], 獼猴默然不肯下樹[미후묵연불긍하수], 虬見獼猴經久不下而說偈[규견미후경구불하이설게], 爾時獼猴作是思惟[이시미후작시사유], 此虬無智即說偈[차규무지즉설게], 爾時佛告諸比丘言[이시불고제비구언], 當知彼時大獼猴者[당지피시대미후자], 我身是也[아신시야], 彼虬者魔波旬是[피규자마파순시] 彼時猶尙誑惑於我而不能得[피시유상광혹어아이불능득], 今復欲將世間五欲之事而來誘我[금복욕장세간오욕지사이래유아], 豈能動此之坐處[기능동차지좌처]. (佛本行經[불본행경] 法苑珠林[법원주림], 卷五十四[권오십사] 詐僞篇[사위편] 詐畜部[사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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虬(규)는 이무기쯤 되는 것이니까, 龍王[용왕]이나 답지 아니한 것이요, 獼猴(미 후)와 兎[토]는 風馬牛[풍마우]인 듯하지마는, 山野[산야]에 사는 짐승 이기로는 마찬가지이다. 이밖에 다른 話素[화소]와 話骨[화골]로 말하면 兎鼈談[토별담]으로 더불어 거의 한판에 박은 듯하여, 아무라도 우연이니라고 하기에 머뭇거려지지 않을 수 없을 만하다. 잔나비와 토끼의 相左[상좌]로 말하면 실상 설화 傳道上[전도상]의 재미있는 한 例套[예투]로 잔나비의 흔한 곳에서는 잔나비로 나오는 것처럼 토끼가 흔하면 토끼로 바뀌어 나오게 되었을 따름이니, 여러말 할 것 없이 조선에 토끼는 흔하되 잔나비는 씨도 없음을 생각하면, 조선 所傳[소전]에 토끼라 하는 것이 다른 곳의 傳承[전승]과 틀린다 하여도 그것이 틀리는 대로 실상 꽉한 틀림될 것 없음을 짐작할 것이다. 그러면 <삼국사기>의 龜兎說[구토설]이란 것과 本行經[본행경]의 虬猴談[규후담]이 同型[동형]의 설화라 하는 것보다 도리어 동일한 설화라 하여도 妄言[망언] 아님을 살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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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문제가 있다. 둘을 이미 동일한 설화라 치고, 그것이 본래 偶合[우합]일 것 같으면 번거로운 말할 것이 없으려니와, 그 동일한 것이 尋常[심상]히 그런 것 아니라 하면 ─ 얼른 말하여 우리와 인도와의 사이에 무슨 필연한 關涉[관섭]이 있는 일이라 하면, 거기는 흥미의 깊은 여러 가지 想察[상찰]이 시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도의 것이 우리에게로 건너왔다고 할 것인가, 그 반대로 우리의 原話[원화]가 인도로 이입되었다 할것인가도 그 하나요, 於此於彼間[어차어피간]에 언제쯤 어떠한 경로를 말미암아 그리 되었다 할까 함도 그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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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本源地[본원지]가 조선일까, 인도일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자. 첫째 설화 중의 天然物素上[천연물소상]으로 살피건대, 해륙을 연결한 무대가 그 一特點[일특점] 이로되, 한옆에는 바다를 끼고 한쪽으로는 육지를 連[연]한 地勢[지세]는 똑같이 반도국인 조선ㆍ인도 간에는 아무 擬定[의정]의 조건이 되잘 것 없으며, 그 활동 俳優[배우]로 살피건대, 猴兎[후토]의 相左[상좌]는 위에 말한 것처럼 잔나비 흔한 인도의 所傳[소전]에는 잔나비로 나오고, 토끼의 흔한 조선에서는 토끼로 나오며, 둘이 다 適宜[적의]한 俳優[배우]를 등장시킨 만큼 거기서도 짬을 볼 수 없으며, 그 밖에 모티프는 符節[부절]을 합한 듯이 똑 같으매, 아무 단서를 붙잡을 길 없다. 어쩔 수 없으매 설화의 當體[당체]를 떠나서 一般的[일반적] 영향으로써 그 源委[원위]의 대개를 짐작하여 볼 밖에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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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잔사설을 그만두자, 우선 설화국 及[급] 설화국민으로의 조선과 인도가 거의 비교되지 아니할 만큼 능률의 현격한 점을 想到[상도]하여 조선 기타에 비하여 아주 우수한 실적을 드러낸 인도에 아무래도 짐작이 돌아감을 괴이쩍다 못할 것 같다. 더욱 모든 설화의 중에서도 특히 동물설화와 또그 중에도 동물 寓話[우화]로 말하면, 인도가 거의 세계 전체의 최대 원천이요, 최고 宗主[종주]라 하는 것으로 보아서 龜兎寓話[구토우화]도 遡究[소구] 해보면 인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욱 기세를 얻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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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문화의 上[상]으로 주종국 관계라고 할 것까지는 없을지라도, 아무래도 문화 移動線上[이동선상]에 있어서 대체로 조선은 그 유역이며 능동적 ㆍ 적극적인 인도에 대하여 조선이 대개 수동적ㆍ소극적이었던 大勢[대세]를 가지고서 볼지라도 설화의 與受關係[여수관계]에 있어서 대체 인도는 공급자요, 조선은 그 수요자가 아니었던가를 생각케 함이 있다. 특히 兎鼈談[토별담]과 같은 동물 우화로 말하면, 전체의 모티프가 인도적으로 생긴 만큼 무작정일 망정 인도 기원을 認[인]하는 것이 도리어 便宜[편의]할까 하는 생각도 있다. 조선도 무론 원시 철학으로와 원시 과학으로와 원시 經典[경전]으로의 많은 설화의 창작자ㆍ전승자ㆍ숭상자이지마는, 桓雄神話[환웅신화] 같은 人獸相與[인수상여]의 약간 神婚說話[신혼설화]를 제하고는 동물 出場[출장] 話型[화형]은 거의 드물고, 純動物活動話型[순동물활동화형]은 거의 없고 간혹 있는 것은 거의 佛典[불전]으로서 脫化[탈화]하여 온 것들이고, 또 話中[화중]에 동물이 出來[출래]하여도 그것은 반드시 解夫婁說話[해부루 설화] ㆍ解慕漱說話[해모수 설화] ㆍ赫居世說話[혁거세 설화] 등의 馬[마] 와, 昔脫解說話[석탈해 설화]의 鵲[작]처럼 一附隨者一補助役[일부수자일보조역]으로 출래하는, 매우 상식적인 것임이 통례이지, 인도의 古談[고담]처럼 또그 餘流[여류]를 汲[급]한 諸國[제국]의 우화처럼 동물 피차의 승강이 하는 話型[화형]은 거의 없음을 요량에 넣을 필요가 있다. 이 점으로 보아서도 純動物說話[순동물 설화]인 龜兎談[구토담]은 대개 인도 원산으로 봄이 과한 망발은 아닐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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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龜兎談[구토담]이 본래 인도의 것으로 조선에 이입된 것이 사실이라 하면, 언제 무슨 편에 동으로 원정해 온 것일까? 雪山[설산]의 바람이 백두산으로 吹送[취송]한 것일까? 恒河[항하]의 밀물이 澣海[한해]로 漂傳[표전] 한 것일까? 누구든지 얼른 생각할 일은 조선과 인도와의 드러난 문물 교통인 불교 유입에 부수되어 兎鼈談[토별담]도 擴布[확포]되었으리라 함임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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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론 온당한 상식적 견해이지마는, 설화 流移[유이]의 通則上[통칙상]으로 보면 반드시 국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文籍[문적]을 인하는 것 아니요, 반드시 환하게 알려서 되는 것과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것만도 아니니, 불교 전래 같은 두드러진 일이 있기 전에라도 민속의 유통 ㆍ 설화의 전파가 행할 수 있고, 또 아득한 옛날에 이미 행하였을 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불교와 한가지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거니와 반드시 그 이전에 들어오지 못하였을 것도 없음을 생각할 것이, 조선에 행하는 민화의 중에는 그 기원이 분명 伊蘭[이란] 지방에 있는 것도 있고, 희랍 내지 북구에 있는 것도 있으되, 이들은 다 펼쳐 놓고 들어올 기회를 가졌던 것 아니며, 또 인도의 동물 설화는 조선 급 일반 동방뿐 아니라, 서으로 紅海[홍해] 좌우와 지중해 列國[열국]에도 전포하여 歐洲[구주] 우화의 원천이 인도에 있음을 考定[고정]하게까지 되었으되, 이것이 반드시 불교와 및 그 경전을 인하여 전포된 것 아니다. 이로써 보아서 설사 불교가 들어오지 아니하였었더라도 인도의 민속 급 설화가 단독으로 조선에 들어올 수도 있음이 무론인 동시에, 불교가 유입되기 전에라도 兎鼈談[토별담] 같은 동물 우화가 조선인의 구설에 와서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재가 미더운 것이라 하고 또 그때에 이미 話素[화소]가 地宜[지의]에 인하는 變改[변개]를 지내어 ─ 虬[규]는 東海龍王[동해용왕]으로, 獼猴[미후]는 兎[토]로 개역되도록 필요를 느끼고, 또 사실로 남았더라 하면 그동안이 자못 오래되였음을 생각할 밖에 없고, 또 고구려인이 신라인을 대하여 또 심상한 語次[어차]에 으례히 알 것으로 認[인]하고 이것으로 引喩[인유] 하도록 보편 通常[통상]하였다 함은 더욱 이만큼까지 될 만한 오랜 세월을 허락 할 밖에 없을 것이니, 일변으로 불교가 들어온 지 얼마만에 경전이 구비히 들어오고 또 오랜 뒤에라야 그것이 咀嚼[저작]되고 전설되었을 實勢[실세]를 합하여 생각하면 兎鼈談[토별담]의 유래가 차라리 불교 이전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前[전]부터 왔었거나, 불교에 묻어서 왔거나, 兎鼈談[토별담]의 인도 기원일 수 있음에는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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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한다. 세상에 떠돌기 잘하고 멀리 가기 잘하고 골고루 들어가 끼이기 잘하기로는 설화에서 지날 것이 없으리라고. 거칠 것 없는 듯한 바람도 氣流圈內[기류권내] 만큼 활개를 칠 뿐이요, 식물의 종자 같은 것도 虫媒[충매] 면 그 虫類[충류]의 適生圈[적생권] 만큼, 風媒[풍매]면 그 風力[풍력]의 底止點[저지점]까지에 한하는 것이지마는, 설화만은 무릇 인류의 生聚地[생취지]면 어디든지 널리 퍼지고 깊이 들어가서 제한과 구애란 것 이 도무지 없는 듯하다. 열대의 것이라도 寒帶[한대]에, 遠西[원서]의 것이라도 극동에, 원시인의 것이라도 문명 사회에, 아동의 것이라도 長者[장자]에게 거의 「물벗김」적으로 그 보급력을 발휘하여 낸다. 舟車[주차]도 통한적 없고 玉帛[옥백]으로 사귄 적도 없고 譯語[역어]도 생기지 아니하고 감정도 고롭지 못한 지방에 언뜻 들어서 보면 오직 한가지 설화만은 벌써부터 공통 相入[상입]하였음을 발견하고 뜻밖으로 경악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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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地[갑지]와 乙地[을지]의 사이, 그것도 遠隔[원격]한 兩地[양지] 又[우] 각 민족의 사이에 동일한 설화가 왕왕히 발견됨에는 몇 가지 이유를 말할수 있다. 이를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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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種族[종족] 系統[계통]의 連絡[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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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偶合[우합] 등을 들 수 있다. 이 몇 가지 관계를 조사해 보면, 類話[유화] 발생의 경로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遠隔[원격]하고 懸殊[현수]한 민족의 간에 발견되는 설화의 일치는 무론 ④ 아니면 ③의 원인으로서 온 것이 분명하거니와, 그 중에도 설화의 내용이 복잡하고 物素[물소]가 衆多[중다]한 것은 思念[사념]의 유사에 인한 우연한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스러운 만큼 이런 것은 대개 ③의 이유로써 설명할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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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화(신화ㆍ전설ㆍ동화)가 그 遊離性[유리성]으로써 발생한 原地[원지]에 고착해 있지 아니하고 遠近[원근] 諸地[제지]로 전전 유포하는 것을 認[인]하고 그 유포의 원인을 민족간의 무역 ㆍ 표류 ㆍ 전쟁 ㆍ 약탈 ㆍ 혼인 ㆍ 노예 등으로 보고, 此等[차등]의 현상은 유사 이전 진작부터 행하여 설화 전파의 매개자로 항구한 세력을 발휘하였다고 말하는 학설을 설화의 전파설(Transmission Theory)이라 하여, 十九[십구]세기 영국의 인류학적 신화학가 앤드류 량이 앞장 나서서 이를 唱導[창도]한 이래로 비교 설화상 가장 유력한 一學派[일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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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는 바 白鳥處女說話[백조처녀설화](Swan - maiden Stories)와 신데렐라 說話[설화](Cinderella Stories) 등이 세계 도처에 발견되는 현상은 전수히 이 전파 작용의 소치로 설명되는 터이다. 이런 종류의 설화를 특히 世界大[세계대]의 說話[설화](World - wide Stories)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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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설화(특히 童話[동화] Fairy tale, Märchen)라 하면 특정한 시대나 方所[방소]나 인물의 제약이 없어서 진실로 흥미의 同情[동정]만 가졌으면 그만 이기 때문에 멀리 퍼지기도 하고 오래 전하기도 하여 그 세력과 생명이 아울러 강인성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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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누구든지 하는 것이로되 특히 辯客[변객]이 있고 詩[시]는 누구든지 지을 수 있는 것이로되 특히 시의 천재가 있는 것처럼, 설화는 어떠한 민족이든지 다 그 작가일 수 있고, 실상 그 작자이로되 인도 급 인도인만큼 설화 창작상의 능률과 성적을 나타낸 이는 없다. 인도인은 진실로 천재적 신화 국민이요, 인도는 실로 무진장적 설화국이니, 설화의 기원을 설명 하는이중 막스 듈러ㆍ조지 콕스 등은 일체의 설화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사방으로 전파한 것이라는 학설을 力主[역주]하여 一時[일시]는 학계를 風靡[풍미] 하는 槪[개]가 있기까지 함이 진실로 徒爾[도이]함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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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이르러 아리아 종족 이의의 종족에도 특이한 설화가 많고, 그 중에는 四[사], 五[오]천 년 이전의 기록을 가진 것이 발견되는 등, 이 一元的[일원적] 발생설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사실이 나옴으로 하여 인도 연원설이 마침내 지지하지를 못하고 말았을 법하여도, 줄잡아도 歐洲[구주] 동화의 三[삼] 분의 一[일]은 인도로서 유래한 것임과 세계 동화의 주요 부분이 인도 로부터 擴布[확포]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요, 더욱 그 중에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교훈적 우화로 말하면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인도의 것을 承襲[승습] 한 것이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을 모방한 것임을 의심할 수 없다 한다. 그런데 인도로 하여금 이리 설화적 宗主國[종주국]이게 함도 또한 우연한 일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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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의 사상 급 생활은 미상불 설화 창작상으로 특수한 은혜를 받았다 할 만하였다. 사상의 上[상]으로 말하건대, 生氣說[생기설]과 變形[변형]의 신앙은 언제든지 인도에 있어서 가장 활력을 가진 것이었으니, 동물은 물론 이요 식물ㆍ광물까지도 사람하고 마찬가지의 心法[심법] 특히 도덕적 의식 같은 것을 가졌다 하는 인도인의 인생관ㆍ생물관은 저절로 非人的[비인적] 생물을 주인으로 하여 처세의 비방과 入道[입도]의 妙諦[묘체] 등 교훈을 포함 시킨 도덕적 우화를 진작부터 발생케도 하고 오래 두고 발달케도 하였다. 外物[외물]도 사람 같은 心識[심식]을 가졌다 하는 生氣說[생기설](Animism)로 말하면 어떠한 민족이든지 원시 시대에는 똑 같이 가지는 사상 이지마는 다른 민족에서는 사상이 발달하는 대로 사람과 다른 생물 간의 이 한계를 밝히게 됨이 통례거늘 인도에서는 사상이 진보되는 대로 더욱 이 한계를 적게 한 경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七[칠], 八[팔]세기경에 성립된 奧義書哲學[오의서철학] 이래로는 輪廻說[윤회설] ㆍ業緣說[업연설] 이란 것이 점차로 발달하여 그 후의 모든 학파와 내지 불교에까지 다 이것을 信認[신인] 하고 마침내 일반의 민간 신앙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 輪廻說[윤회설] 이란 것은 요하건대, 人畜[인축]을 통하여 그 個我眞靈[개아진령] 이 생전의 행위를 따라서 서로 돌아다니면서 果報[과보]를 받는다 하는 생각이니, 이것을 평면적으로 보면, 현재의 諸[제] 動物[동물](내지 식물)이 다 사람과 等類[등류]한 것의 還生[환생]된 자요, 본래는 사람과 동일한 心法[심법]을 가졌다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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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상은 다른 민족에도 약간 있지 않은 것 아니지마는, 특히 인도사상의 일대 특색을 짓는 것이요, 이 도덕적 의식과 인과응보율의 人畜[인축] 공통이란 생각은 동물 만들기에 매우 適好[적호]한 기연을 지을 밖에 없었다. 겸하여 그네의 생활은 大平野[대평야] 혹 大森林[대삼림]의 중에서 경이 할 것 많은 자연의 위력에 圍繞[위요]되어 감탄과 사색을 일삼게 되고, 그 결과로 論辯[논변]을 좋아하게 되고, 그 여파로 비유를 잘하게 되니, 그 경 이의 비유가 많이 설화로 표현됨은 또한 자연한 數[수]이었다. 이러 구러 인도는 세계 설화의 최대 원산지를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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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우화 문학은 일종의 철학ㆍ일종의 윤리로서, 진작부터 발달 하였었는데, 이 동일한 원천이 뒤에는 신앙에 인하는 二大派[이대파]로 나뉘게 되니, 그 一[일]은 바라문교의 우화 문학이요, 또 一[일]은 불교의 우화 문학이다. 前者[전자]는 대개 바라문이 국왕ㆍ대신 기타 일반 민중을 교화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 五章喩[오장유](Panchatandra) ㆍ修身訓[수신훈](Hitopatesa) 은 대표적 典籍[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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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는 불교도의 사이에 佛陀觀[불타관]이 발달하여 以爲[이위]하되 석가모니는 본디부터 초인적 성자이어서 다만 此世[차세]에서 淨飯王[정반왕] 의 太子[태자] 로 수행한 것만으로 大道[대도]를 體達[체달]한 것 아니라, 몇 千百代[천백대] 를 두고 갖은 수행을 다 쌓아서 그 최종의 결과로 佛陀[불타] 가 되셨다 하여 그 前生[전생] 此生[차생]의 修行期[수행기]를 菩薩[보살] 이라 하고, 그가 보살이라는 求道者[구도자]로 德慧[덕혜] 닦던 사적을 재래 又[우] 新作[신작]의 우화에 넣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本生譚[본생담](Jataka)이라고 일컬은 것이니, 기원 전 三[삼]세기경의 팔하트 급 산티의 塔身[탑신] 의 조각으로부터 巴利語[파리어] 小乘經典[소승경전]과 梵語[범어] 大乘經典[대승경전]에 산견한 약 六[육]백여 종(혹 一[일] 천 종 가량) 의 譬喩談[비유담] 이 그것이다(佛典[불전]을 내용에 의하여 十二[십이]부로 나눌 때에 佛[불] 자신의 過去世[과거세] 인연을 말씀하였다는 <闍多伽[도다가]> ─ 譯[역], 本生[본생] ─ 部[부]가 그것이요, 또 그 하나인 불제자의 과거세 인연을 말한 <伊帝目多[이제목다]> ─ Idivitaka, 譯[역], 本事[본사] ─ 部[부]와 한가지 다 교훈적 설화의 經典化[경전화]된 것인데, 漢譯[한역] 佛典[불전]의 중에는 九一話[구일화]를 수록한 <六度集經[육도집경]>을 始[시]로 하여 Jata - mala의 譯本[역본]인 <菩薩本生鬘論[보살본생만론]>, Mahavastu 別本[별본]의 번역인 <佛本行集經[불본행집경]> 기타<佛本行經[불본행경]> 이하 大小[대소] 수십 종이 있어 <大正新修大藏經[대정신수대장경]>에는 本緣部[본연부]라 하여 이 종류를 收括[수괄]하였다). 佛典[불전]의 중에는 本生譚[본생담]의 외에도 또 譬喩文學[비유문학]이 있어 허다한 인도 민화를 수용하니, 이것들은 물론 불교의 弘通[홍통]에 伴 [반] 하여 널리 각지에 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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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불]의 本生譚[본생담]에는 보살이 국왕도 되고 仙人[선인]도 되고 商旅[상의] 도 되고 出家[출가]도 되어 나오지마는, 또 一邊[일변]으로는 수리에 잡혀가는 잔나비 새끼를 대신하여 몸을 버려 희생을 삼으려 한 師子[사자] 로도 나오고, 늪이 말라서 죽게 된 남생이를 데리고 물이 있는 데로 찾아가는 기러기로도 나오고, 殺身成仁[살신성인]하는 비둘기로도 나오고, 至孝化世及[지효화세급] 하는 코끼리로도 나오는 등 長時多生[장시다생]의 동안에는 갖은 금수의 모양으로 다 나옴을 본다. 이는 대개 本生譚[본생담]은 신화화한 佛陀傳[불타전]의 일부분으로 당시의 민간 설화를 이용한 설교 재료 이었던 까닭이니, 闍多伽文學[도다가문학]이 佛[불]의 史傳[사전]으로는 신통하지 아니하되, 인도의 古說話[고설화]를 연구하는 上[상]에 도리어 요긴한 재료를 이룸은 이 까닭이다. 저 王公士庶[왕공사서]의 聖學要書[성학요서] 로 치는 <五章喩[오장유]> <修身訓[수신훈]> 같은 것은 전체가 동물 檄話[격화] 의 연쇄로 성립된 것으로 거의 이상화한 동물원에서 실천 윤리의 演習[연습]을 구경시키는 觀[관]이 있으니, 이렇게 귀중한 교훈을 동물에의 탁하여 說示[설시]함에서 인도인의 특수한 사상을 짐작할 것이 있고, 겸 하여 동물 설화의 창작상에 있는 인도인의 지위를 살피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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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闍多伽[도다가]>는 세계에 존재한 최고의 동화집이요, 최고한 Folk lore의 수집인 점으로 큰 의의와 가치를 가졌음과 그 발생이 줄잡아도 기원전 三[삼], 四[사]세기에까지 溯上[소상]됨은 학자의 믿는 바와 같다. 또 유명한 인도학자 벤페이 씨와 같이 학자의 중에는 현존한 歐亞[구아] 양 대륙의 민간설화는 사실상 인도에서 發源[발원]한 것이라 하여, 이를테면 大詩人[대시인] 헤시오도스의 詩篇[시편] 중에 나오는 희랍의 전설적 영웅 제 손이 리펠러스 왕에게 갖은 難事[난사]를 당하되 낱낱이 그것을 감당 하였다는 古談[고담] 같은 것도 <闍多伽[도다가]> 중에 있는 類話[유화]로 推[추] 하여 그 본원이 인도에서 나왔을 것을 斷[단]하는 이도 있지마는, 널리 세계를 살펴보면, 랑 씨의 <風習[풍습]과 神話[신화](Custom and Myth)>만 펴 보더라도 이런 종류의 古談[고담]이 구라파의 문화 민족 간에만 있는 것 아니라, 사모아 인ㆍ주루 인ㆍ알곤퀸 인 등 自然[자연] 民族[민족]의 古談[고담]에도 전승되어 있음을 알겠고, 이 밖에도 이러한 실례가 많이 있으매, 歐亞古談[구아고담]을 온통 인도 기원으로 말하려 함은 무론 武斷[무단]에 가깝되, 조선ㆍ중국ㆍ일본 등의 口碑[구비] 又[우] 문헌과 그림의 동화 집에 수록 된 민간 설화의 溯原的[소원적] 연구를 시험해 본 이는 양 세계 민간 설화의 대부분이 인도의 전래물인 것은 누구든지 앙탈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闍多伽[도다가]>는 古印度[고인도]의 풍습·신앙·토속 등의 반영으로만 끔찍할 뿐 아니라, 세계 설화학상의 귀중한 典籍[전적]으로도 절대한 것이다. 이 <闍多伽[도다가]>는 六[육]세기의 중엽에 바 라비 語[어] 로 그 일부가 번역되어 波斯[파사]를 거쳐서 西歐[서구]로 들어갔으니, 八[팔] 세기에 다메섹의 聖[성] 죤이 Patlaam and Jossapha란 칭호의 下[하] 에이 것을 희랍어에 번역한 이래로 羅甸語[나전어] 기타 七[칠]개국의 西語[서어] 로 譯出[역출]되어서 널리 歐地[구지]에 擴布[확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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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三[삼]세기에 出[출]한 佛說[불설] <本生經[본생경]> 이하로 廣略[광략] 諸本[제본]이 譯出[역출]되어 조선ㆍ일본으로 전하고, 西藏[서장]으로 들어간 자는 몽고ㆍ만주로부터 멀리 芬蘭[분란]에까지 播傳[파전]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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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우화의 원조라는 말을 듣는 인도의 우화는 <闍多伽[도다가]>의 外[외]에 별로 一湖海[일호해]를 이룬 것이 있으니, 이것은 西紀[서기] 前[전] 二三[이삼]년에 안드라 王朝[왕조]가 흥기함에 미쳐서 불교가 中印度[중인도] 의 지반을 잃어 남북으로 분리했고, 대신 바라문교가 중흥하매 동물 우화의 文籍[문적]이 다시 該敎徒[해교도]의 掌裏[장리]로 돌아와서, 일변 <闍多伽[도다가]> 이외의 話材[화재]까지 집성하고, 일변 종교 관계를 떠나서 취미와 수양을 兩兼[양겸]한 일종의 윤리 문학을 형성하게 된 說話史上[설화사상] 曠前[광전]의 장관인 것이다. 이 세계적 우화의 梵語[범어] 원본은 현존한 것이 兩種[양종]이니, <판차탄트라>와 <히데바데샤>가 그것이다. <판차탄트라>란 것은 五[오] 권으로 생긴 책이란 뜻이니, 그 내용은 南國[남국] 마히라로비야의 王者[왕자] 이마라삭티에게 그 우매 나태한 三子[삼자] 의 敎化[교화]를 부탁받은 비쉬뉴 살만이란 梵仙[범선]이 그 三癡兒[삼치아] 를 교도하기 위하여 이 책을 만들어 가지고 六[육]개월 동안에 그네들을 賢智[현지]하게 만들었다 하는 것으로, 「朋友分裂[붕우분열] 」「朋友獲得[붕우획득] 」「烏梟相戰[오효상전] 」「獲得物喪失[획득물 상실] 」「不審廬的行爲[불심려적 행위] 」 의 五篇[오편]에 나누어서 처세의 요지를 短話[단화] 의 중에 寓[우]하여 연쇄적으로 開說[개설]하였음에서 그 책명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一古談[일고담]이 외곽이 되고 그 중에 허다한 小話[소화] 가 삽입되어 있는 형식은 <千一夜古談[천일야고담]> <베다메로네> <캔터버리傳奇[전기]>등에도 襲用[습용]된 것이니, 그 중의 어느 것은 분명히 이 五卷書[오권서]에서 본을 뜬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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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卷書[오권서]로써 經[경]을 하고 다시 吠陀[폐타](베다)와 마하바라다의 詩篇[시편]에 存[존]한 잠언ㆍ俚諺[이언]의 다수를 緯[위]로 하여 교묘하게 結構[결구] 한 것이 <히데바데샤> 四篇[사편]이니, 히다=修身[수신]이란 語[어] 와 우바데샤=敎訓書[교훈서]란 語[어]의 합성된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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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書[차서]의 大旨[대지]는 대개 修齊治平[수제치평]의 要義[요의]를 智德[지덕] 의 世才[세재]에 돌리고 지혜 분별의 힘을 함양하여 처세의 能者[능자] 가 되게 함에 있으므로, 譯[역]하여 嘉訓[가훈]ㆍ分別[분별]의 燈火[등화], 世智[세지]의 明鏡[명경]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미상불 인도에서는 고래로 이 책이 상하 없이 처세의 要訣[요결]로 傳習[전습]되어 귀 천 ㆍ 빈부 없이 이 책의 章句[장구]를 대개 암송하기에 이르니, 인도에 발을 들여놓는이가 田夫[전부] 野人[야인]의 舌端[설단]에서도 雄博沈妙[웅박심묘]한 인생관의 警句[경구]를 듣고 놀람은 다 이 책의 功效[공효]라고 하는 것이다. 五[오]권서와 및 그 분신은 修身訓[수신훈]의 작성 연대에 관하여는 아직 明據[명거] 가 없으므로 諸說[제설]이 不一[불일]하여, 혹자는 기원 후 一[일] 세기 경이라 하고, 데오도어 벤페이 씨는 기원 전 二[이]백년 이상이 될리 없다 하고, 또 이 제이 토마스 씨 같은 이는 기원 전 二[이]백 년 이상이 될 리 없다 하고, 또 이 제이 토마스 씨 같은 이는 기원 전 四[사] 세기까지 인상하려 하였다. 此書[차서]들은 본래 개인의 저작일 것 아니라, 蒐纂[수찬] 된 古談集[고담집]이매, 그 一書[일서]로 편성된 것은 언제든지 그 이야기의 기원은 그보다 퍽 오랜 예전에 있을 것이 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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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闍多伽[도다가]> 이하로 일반 인도 우화의 세계에 기여한 공적은 실로 不可量[불가량] 할 큰 것이 있다. 벤페이 씨의 「널리 세계에 擴布[확포] 되고 겸하여 문명의 진보를 조장시킨 文籍[문적]은 기독교 聖書[성서]의 밖에 다만 하나, 인도 우화서가 있을 뿐이다」 한 말은 결코 溢美[일미]가 아니다. 가령 설화와 교육적 효과와를 생각하는 이가 아무나 먼저 그것을 들추려 할만큼 <이솝 우화>가 세계에 유명한 것이지마는, 그 연원을 캐어 보면 이 것도 실상 인도 우화의 承襲[승습] ㆍ變形[변형] ㆍ模倣[모방] ㆍ補綴[보철]에서나 온 것이라 한다. 기원전 四[사]세기 초 亞歷山大王[아력산대왕]의 인도 원정은 동서 문화 교섭상 여러 가지로 중대한 영향을 낸 大 事件[사건] 이거니와, 인도 우화의 서양 전파에도 큰 기연을 지어서 이 이래로 불교 우화가 점차로 희랍으로 이입되더니, 기원전 一[일]세기경에 희랍의 바브리 우스란 사람이 이것을 희랍어로 譯述[역술]하고 그 후에 羅甸詩人[나전시인] 페드루 스가 羅甸語[나전어]로 重譯[중역]하였는데, 기원 十三[십삼]세기에 이르러 비잔틴의 學僧[학승] 막시무스 플라누데스(Maximus Planudes)가 이러한 불교 우화에 당시 歐洲[구주]에 행하던 諸種[제종] 類話[유화]를 彙集[휘집] 하여 <이솝의 古談[고담]>이란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이솝이란 사람이 플라톤 이전에 이름있던 善辯家[선변가]임은 대개 사실인 듯하지마는, 그 의만든 책이 있어 온 것 아니며, 오늘날 <이솝 寓話[우화]>란 것은 실상 퍽 뒤져서 인도 우화를 중심으로 하여 플라누데스의 손에 편성된 것으로,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중에 인도계의 것이 꽤 많이 들어 있고, 또 이러한 우화의 생겨나게된 동기가 인도 우화에서 나왔음은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동화 작가의 一大[일대] 明星[명성]인 안델센이 손에서 인도 우화를 놓지 아니하였다 함도 유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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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도 우화의 一別譯[일벽역]인 聖[성] 죤의 <발람과 요사팟>이란 것 만해도 석가의 보살행을 재료로 하여 修心[수심]에 정진하는 도정을 서술한 一[일] 小說[소설]이니, 요사팟(Yosaphat)은 보살의 訛譯[와역]으로 인도 의태 자라 한 것이요, 「발람」(Barlaam)은 그를 化導[화도]한 聖人[성인]인데, 이 책이 十二[십이]세기 이후로 歐洲[구주] 諸國語[제국어]에 번역 유행 되어, 거기 쓰인 그 헌신적 修行[수행]은 중세의 人心[인심]에 큰 감화를 미치고 마침내 그 두 주인공이 十六[십륙]세기 이후에는 가톨릭 교의 성인으로 尊祀[존사]를 받게까지 되었다. 인도 우화의 歐洲[구주]의 정신계에 미친 영향에는 이렇게 深奇[심기]한 방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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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文籍[문적]을 통해서 보는 것만 해도 인도 우화의 세계적 영향은 早夙[조숙] 도 하고 보편도 하지마는, 설화의 유통은 결코 文籍[문적]을 기다려 되는 것 아니므로, 실제의 교섭은 그보다 퍽 오랜 옛날에 있었을 것 이 무론이다. 더욱 인도와 구라파는 본디 혈통ㆍ언어ㆍ居地[거지]ㆍ문화를 한가지 하던 아리아라는 동일한 종족으로 四[사], 五[오]천 년쯤 전에 一[일] 은 동남 一[일]은 서북으로 손을 나누어 各生[각생]하게 된 者[자]니 마치 근본 적의 언어에서 양자가 유사를 보이는 것처럼 오랜 기원을 가진 자는 설화에도 공통할 것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민속적 暌離[규리] 가 아직 심하지 않고 언어와 감정이 아주 분화를 이루기 전에는 설화의 왕래도 一層[일층]의 편의를 가졌으리라고 볼 수도 있으며, 또 동방과 서방의 교통은 무역과 전쟁의 관계로 아득한 옛날로부터 열린 것이 사실인즉, 天産人造[천산인조]의 다른 物貨[물화]와 한가지 정신적 토산인 설화도 진작부터 교통되었을 것이 必矣[필의]이다. 그런즉, 인도와 歐洲[구주] 와의 설화적 교통은 도리어 그 연대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진작부터 있었다하는 편이 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인도와 歐洲[구주]와의 사이에 있어서만 그런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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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우화의 전파는 반드시 불교를 따라 다닌 것 아니다. 西[서]으로 말 하면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 內陸[내륙]의 토인에게까지 들어가고, 북으로 말하면 핀란드를 거쳐 라플랜드에까지 미쳤지마는, 우선 이런 곳들은 불교의 유행지가 아니다. 인도에서 산출된 것으로 무엇이 가장 세계적 性能[성능] 과 문화적 使命[사명]을 더 드러내었느냐 하면, 아마도 불교보다도 우화를 들 밖에 없을 것이다. 四諦[사체]가 무엇인지 十二[십이] 因緣[인연] 이 무엇 인지를 분변하지 못하는 低級人[저급인]이라도, 토끼가 범의 뺨을 치고, 사슴이 사자의 수염을 뽑는 이야기는 얼른 알아듣기도 하고 재미있게 옮기 기도 하였으며, 涅槃[열반]이라면 손사래를 치고 佛陀[불타]라면 고개를 홰홰 내두르는 異敎國[이교국]에서도 그 고담 寓話[우화]만에 대하 여는 도리어 泰山不讓土壤[태산불양토양]의 大度量[대도량]을 보임이 常例[상례] 이었다. 따로이 전하는 이도 없고, 따로이 받아들이는 이도 없이 이렇게 하여 인도의 우화는 아득한 옛날에 이미 세계의 구석구석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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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우화의 동방 원정은 진실로 <本生經[본생경]>類[류], <譬喩因緣經[비유인연경]> 類[류] 의 漢譯[한역]으로써 그 正系[정계]와 本流[본류]를 짓는다. 그러나 인도 우화의 재미있고 有助[유조]함은 다만 불교를 말미암아 그런 것 아니요, 여러 지방 인민의 이야기 좋아하는 性癖[성벽]은 또한 불교의 유발을 기다려 생긴 것 아니다. 機緣[기연]의 익기를 기다리는 불교야 언제 어떻게 行次[행차]하시든지, 擺脫[파탈]하고 마구 다니는 우리 설화까지 지체할 맛이 무엇이냐 하는 듯이 훨훨히 수월스러이 해뜨는 동방으로 활개치고 내달아 온 것이 인도의 설화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서양 하고 통상 조약을 하기 이전에 서양인과 및 그 기물은 벌써부터 들어오고 끝 끝내 조약도 아무것도 아니한 民邦[민방]들이지마는, 和蘭人[화란인]처럼, 희랍인처럼, 土耳其[토이기] 연초처럼, 瑞西[서서] 시계처럼, 진작부터 조선이 그 교통 범위되었음과 같다. 조선의 외국 교통 史籍[사적]을 보면, 이른바 荒唐船[황당선] 이란 것이 가끔 남해와 남해의 연변에 漂到[표도]한 일이 있 음을 적고, 그 중에는 紅毛碧眼[홍모벽안]의 대서양 神商[신상]과 한가지 黑面頹脣[흑면퇴순] 의 亞弗利加[아불리가] 노예도 끼여 온 일이 있으며, 헨드릭 하멜의 일행과 같이 수십 인이 一[일]○여 년씩 국내에 체류한 일도 있으며, <晝永編[주영편]>에 적힌 라틴계 수개 국어처럼 그 언어 습속이 모르는 중 떨어져 있는 것도 있어 보통으로는 모르지마는, 조선과 서양과의 연락은 결코 丙寅洋擾[병인양요]에 시작된 것도 아니요, 천주학 수입에 시작 된 것도 아니요, 自鳴鍾購來[자명종구래]에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高麗史[고려사]> 를 보면 宋[송]의 商客[상객]을 따라서 아라비아 저쪽 퍽 遠方[원방] 의 사람들이 方物[방물]을 來獻[내헌]하였다고 적고, 또 신라 시절의 해외 무역가들은 南支那[남지나]에 가서 波斯[파사](페르시아) ㆍ天方[천방](아라비아) 등 遠西[원서]의 인물을 자유로 또 빈번히 접촉하여 그네의 浮誇[부과]에서 나왔는지, 黃金國[황금국]「실라」의 이름은 천년 전의 아라비아 文籍[문적]에 艶說[염설]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런 사실로 볼지라도 특히 유행성 전파력의 강대를 극하는 설화의 교통이 어떻게 早夙[조숙] 하고 활발하였음 이 대강 짐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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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교의 弘通[홍통]만으로 볼지라도 표면의 東傳[동전] 연대는 後漢[후한] 明帝[명제] 永平[영평] 八[팔]년의 西往求法[서왕구법], 同[동] 一[일] ○ 년의 竺僧東來[축승동래]로써 통설을 삼지마는 그 전에 霍光[곽광]이 이미 浮屠[부도] 金人[금인]을 塞外[새외]에서 얻고, 張騫[장건]이 또한 浮屠[부도] 敎說[교설]을 서역에서 듣고, 또 민간 전설이지마는 西僧[서승] 室利房[실리방] 이 이미 秦代[진대]에 東來[동래]하였다 하고, 공자도 서방 성인의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하니, 此等[차등]이 다 사실은 아니라 할지라도 秦漢間[진한간] 서역의 교통이 料外[요외]로 빈번할 시절에 佛法[불법] 이 明帝代[명제대]에야 流入[유입]하였으리라고 볼 수 없음은 무론이요, 그 민간적 流傳[유전]은 훨씬 그 전에 있었을 것을 넉넉히 상상할 것이다. 또 佛典[불전] 의 초기 번역이 四二章經[사이장경]이 있거니, 遺敎經[유교경] 이있거니, 東來[동래]한 西僧[서승]들의 佛法[불법] 演說[연설]에는 풍부하고 또 香艶[향염]스러운 天竺[천축]의 설화가 수북이 引喩[인유]되었음이 必矣[필의] 일 것이요, 또 앞서서 인도 문화의 감화를 받은 關外[관외] 塞外[새외] 의 민간에 이입 유행되었던 인도 설화도 응당 민간적 교통을 이룸이 오래 였을 것이니, 인도 설화의 移種[이종]이 本生文學[본생문학] 漢譯[한역] 이전에 있음만은 거의 의심할 것 없는 일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다시 一步 [일보] 를 내켜 생각하면, 불교 유통 이전에까지 溯上[소상]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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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그 形迹[형적]을 편의상 토끼 說話群[설화군]에서 더듬어 보자. 月面[월면] 의 음영을 동물로 보아서 玉兎[옥토]가 그 속에 居[거]한다 하고(楚辭[초사], 論衡[논형], 易乾鑿度[역건착도], 春秋孔演圖[춘추공연도], 春秋運斗樞五經通義[춘추운두추오경통의] 等[등] 參照[참조]) 그것이 藥[약] 방아를 찧는다 함은 (傳休奕歌辭[전휴혁가사]에 兎擣藥月間安足道[토도약월간안족도], 神鳥戱雲間安足道[신조희운간안족도]와 歐陽永叔詩[구양영숙시] 의 白兎搗藥嫦娥宮[백토도약항아궁] 이라 한 것처럼) 支那[지나]에 있어서 오래 기도 하고 널리 퍼지기도 한 민간 설화로 種種[종종]의 파생 설화까지를 만들어 가진 바거니와, 月中[월중]에 토끼가 산다 함은 支那[지나] 自發[자발]이라는 것보담 실상 인도 기원으로 봄이 可[가]한 것이다. 本生文學[본생 문학] 의 중에 이러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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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브라마닷다 왕이 베나레스를 治理[치리]할 때에 보살이 토끼로 태어나서 숲속에 사는데 잔나비와 늑대와 水獺(수달)을 벗으로 상종하였다. 이네 짐승이 매일 저의 먹을 것들을 찾으러 나갔다가는 저녁때면 한 곳에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었다. 토끼는 매우 明哲[명철]하여서 세 동무에게 修身[수신]을 얌전히 할 일과 精進日[정진일]을 잘 지킬 일과 布施[포시] 를 많이 할 일을 가르쳤었다. 하루는 토끼가 하늘을 쳐다보다가 동무들을 향하여 「明日[명일]은 精進日[정진일]이다. 피차에 내일은 몸을 깨끗이 가지고 걸인이 오거든 가진 것이면 다 내어주기로 하자」고 하니, 세 동무가 다 흔연히 그러하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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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매 水獺[수달]이 먼저 먹을 것을 얻으려고 恒河[항하]의 가로 나갔더니, 어부가 붉은 고기 일곱 마리를 나뭇가지에 아가미를 꿰어서 강변의 모래밭에 파묻어 놓고 더 많이 고기를 잡을 양으로 江中[강중]으로 들어갔다. 이때 水獺[수달]이 생선 냄새를 맡아 모래 속에서 고기 일곱 마리를 파내어 가지고 소리를 크게 하여 「이 생선에 임자 있거든 나서오」를 세 번 외쳐도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으므로 저의 사는 숲속으로 가지고 돌아와 서는 「나는 오늘 과연 마음을 바로 먹었다」생각하면서 자빠져 놀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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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도 역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가 밭장이 守直幕[수직막] 속에 생선 구운 것 두 꼬치와 도마뱀 한 마리와 우유 한 병 놓인 것을 보고 「이것 임자 있거든 나서오」를 세 번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으매, 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나는 오늘 과연 마음을 바로 먹었다」하고 자빠져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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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도 또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가 檬果[몽과] 열음을 많이 따 가지고 제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오늘 과연 마음을 바로 먹었다」고 생각 하면서 자빠져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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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끼만은 숲속에 드러누워서 「만일 오늘 걸인이 오게 되면 풀밖에는 적선해 줄 것이 없구나. 옳지, 다른 것이 없으니 만일 걸인이 오거든 내 살이나 베어 주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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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천국에 계신 帝釋[제석]님이 네 짐승의 心事[심사]를 시험해 보려 하사, 婆羅門僧[바라문승]의 몸으로 화해 가지고 먼저 水獺[수달]의 집으로 찾아가서 「무슨 먹을 것을 좀 적선해 주시오」한즉 水獺[수달]의 말이 「恒河[항하]에서 가져 온 생선 일곱 마리가 있으니 그것을 자시오 」 하 거늘, 「그러면 내일 와서 받겠읍니다」하고 나오셨다. 이번에는 늑대의 집으로 가셔서 「먹을 것을 좀 적선하시오」한 즉, 늑대가「밭장이 幕[막]에서 가져온 생선 두 꼬치와 도마뱀 한 마리와 우유 한 병이 있으니 그것을 자시오 」 하 거늘, 「예, 내일 와서 먹겠읍니다」하고 다시 잔나비의 집으로 찾아가셨다. 그래서 「먹을 것을 좀 적선하시오」하매 잔나비가 「숲에서 따 온 檬果[몽과] 열음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자시오」하거늘, 「예, 내일 와서 먹겠 읍니다 」 하고 맨 나중에 토끼의 집으로 가셨다. 그래서 「무엇 먹을 것을 좀 적선하시오」 한즉, 토끼는 「예, 먼저 나무를 많이 가져다가 쌓고거기 불을 지르시오, 그러면 내가 불 속으로 뛰어들 것이니, 내 살이 잘 익기를 기다려서 그것을 자시오. 내 집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으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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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釋[제석]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신통력으로 곧 불을 지폈더니 토끼가 즉시 집으로서 나와서 혹시 털 속에 다른 벌레가 들었다가 공연히 타 죽으면 차 악하다 하여 세 번 몸을 떤 뒤에 훨훨 붙는 불 속으로 몸을 솟구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상하다. 털 하나도 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서리 오는 곳에 나섰는 것처럼 차기까지 하므로 토끼가 야릇이 생각하여 「道士[도사] 님이것이 도무지 어이한 일입니까?」고 물으매 帝釋[제석]님이 음성을 고치시고 「응, 나는 도사가 아니다. 실상 天上[천상]의 帝釋[제석]이다. 너의 心事[심사] 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왔던 것이다. 네 심사의 어질음에는 과연 탄복 하였다. 그렇기로 너의 양자를 영원히 月面[월면]에 박아 두기로 하겠다 」 하시고 신통력으로 커단 山[산]을 뭉그지르고 그 속에서 흘러 나오는 물로 月面[월면]에 화상을 그려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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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語[범어]에 兎[토]를 「시가」라 함은 月[월]을 「샤신」이라 하는 사상에 교섭이 있다 하며, 月[월]을 「샤신」(Cacin)이라 함은 兎影[토영]이 박혔다 하는 뜻에서 나왔다 하거니와, 여하간 월면의 음영을 兎形[토형]으로 봄은 언어적 동기에서 생긴 인도 특유의 것이요, 그 기원은 멀리 梵語[범어] 제작 시대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연상으로 생긴 것이 月中兎[월중토] 의 古談[고담]일 것이요, 이 고담이 석가의 一莊嚴[일장엄]에 쓰인 것이 帝釋[제석] 云云[운운]의 <闍多伽[도다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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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支那[지나]는 본디부터 상상과 비유에 인하는 종류의 문학 발달지 가 아니요, 또 그 고담 중에는 洛龜[낙구] 河馬[하마]와 黃龍[황룡] 白鳳[백봉] 등 聖人[성인]에 대한 符應說話[부응설화]와 莊列[장열]에 나오는 井蛙[정와] 轍魚[철어] 등 약간 우화 純動物說話[순동물설화]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또 星歷[성력]과 동물 표상이 행하지 아니한 것 아니나, 대개 서방과의 문화적 교섭이 생긴 漢代[한대] 이후에 속하고, 또 日中[일중]에 踆烏(준오) 있다 함은 <淮南子[회남자]>에, 月中[월중]에 顧兎[고토] 있다 함은 <楚辭[초사]>에 보이되, 또한 설화적 표상의 짝지은 것은 없으며 또 月[월] 의 동물적 표상도 支那[지나]에 있어서는 兎[토]보다도 蟾蜍(섬여) 가 도리어 고유와 古傳[고전]인 듯함이 <河圖[하도]>에 「蟾蠩去月天下大亂[섬저거월천하대란] 」, <春秋運斗樞[춘추운두추]>에 「紀乖政則蟾蜍月精四頭感翔[기괴정즉섬여월정사두감상]」, <淮南子[회남자]>의 「月照天下蝕乎詹諸[월조천하식호첨저] 」 등 文[문]에서 짐작할 것과 같으며, 또 지나의 고담에도 天象[천상] 설화가 없는 것 아니로되, 月中[월중] 음영의 민속적 설명에는 <淮南子[회남자]>의 「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예청불사지약어서왕모], 姮娥竊之[항아절지], 奔月宮[분월궁], 姮娥羿妻也[항아예처야], 服藥得仙[복약득선], 奔入月中爲月精[분입월중위월정]」이라 한 것이 그 古話型[고화형] 이요, 張衡[장형]의 <靈憲[영헌]>에는 「姮娥奔月[항아분월], 是爲蟾蜍[시위섬여] 」라 하였으니, 姮娥[항아]의 동물 轉身[전신]이 蟾蜍[섬여] 인듯도 하며, 또 <靈憲[영헌]>에 「暑[서], 太陽之精[태양지정], 積而成烏[적이성오], 象烏[상오], 月者陰精之宗[월자음정지종], 積而成獸[적이성수], 象蟾兎[상섬토] 」라 한 것처럼 漢魏[한위] 以降[이강]으로는 月[월]의 표상을 蟾兎[섬토]로 兩用[양용]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一物[일물]에 二象[이상] 이 있다 함도 우스운 즉, 그 복합한 내력이 있어야 하겠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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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똑똑한 고증을 할 수도 없고, 또 여기 煩絮[번서]한 辨柝[변석]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상의 數點[수점]으로써 고찰하건대, 지나에 있는 月[월] 의 표상은 본래 인물로서 동물로 轉身[전신]하매 蟾蜍[섬여] 이었더니, 서방의 교통이 생기면서 月中兎[월중토]의 民話[민화]가 유입하여 혹 蟾[섬] 혹 兎[토]로 各說[각설]도 되고 土話[토화]에 雜鞣[잡유]하여 蟾兎[섬토] 로 聯說[연설]하게도 된 것인데, 月中[월중] 兎古談[토고담]의 본향은 무론 인도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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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러 계통이 병행한 결과는 출처 다른 전설이 주인공을 互換[호환] 하기에 이르러 白兎擣藥[백토도약]이란 파생 설화의 兎[토]가 姮娥[항아] 로도 바뀌고 蟾蜍[섬여]도 되니, 傳休奕擬天問[전휴혁의천문]의 「月中何有[월중하유], 玉兎擣藥[옥토도약]」과 李白[이백] 詩[시]의 「白兎擣藥成[백토도약성], 問言誰與餐[문언수여찬]」과 杜甫[두보] 詩[시]의 「入河蟾不波[입하섬불파], 擣藥兎長生[도약토장생]」 등이 李商隱[이상은] 詩[시]에는 「姮娥擣藥無時已[항아도약무시이], 玉女投壺未肯休[옥녀투호미긍휴] 」 로 보이고 趙彦端[조언단] 중 <秋詞[추사]>에는 「醉呼蟾兎搗霜爲駐顔玉[취호섬토도상위주안옥] 」이라고 나오는 것 같음이 그이다. 말하자면 六朝[육조] 이후의 지나 문학에서는 姮娥[항아]와 蟾[섬]과 兎[토] 三者[삼자]가 月[월]을 통하여 一物三面[일물삼면]의 觀[관]을 呈[정]한 것이요, 또 古詩[고시] 의 「三五明月滿[삼오명월만], 四五蟾兎缺[사오섬토결]」과 歐陽修[구양수] 詩[시]의 「蝦蟆白兎走天上[하마백토주천상], 空留桂影猶杉杉[공류계영유삼삼] 」 이란 것들 처럼 煩疊[번첩]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텁텁 한 용례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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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동물은 대개 신화로부터 胚胎[배태]되어 나온 것이요, 신화의 동물은 원시인의 자연과학의 일부를 짓는 것이니, 대개 신화는 자연 현상에 관한 미개인의 설명인 것이다. 그네들이 삼라만상에 대하여 경이의 정을 일으킬 때에 의아의 念[염]이 뒤를 따르고 인하여 관찰과 考究[고구]가 종종의 해설로 나타나게 되니 이러한 究理的[구리적] 태도의 산물이 신화란 것이다. 신화가 시방 사람에게는 爐邊燈下茶半香初[노변등하다반향초]의 幻怪心[환괴심] 취미성을 자극하는 一閒物[일한물]을 做了[주료]하였지마는, 유치한 고대인에게는 精究篤察[정구독찰] 深覺妙解[심각묘해]한 학적 진실이던 것이다. 후에 人智[인지]가 진보하매 신화에 나타났던 人事的[인사적] 현상은 역사와 결합하여 그 진실미를 더하려 하고 그 想像[상상]을 발뵌 傳奇[전기] 는 詩[시]하고도 결합하고 또 자연 현상을 해석하려 한 사색은 과학 내지 철학하고도 결합하여 이 여러 자손이 繁衍[번연]하는 대로 모체인 신화는 童稚[동치]의 玩弄物[완롱물]을 지었지마는, 본래는 인류의 知的[지적] 성적의 최고조를 보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日中[일중]의 金烏[금오] 와 月裏[월리] 의 玉兎[옥토]도 전설과 신화 중심의 시대에 있어서는 시방의 천문학 ㆍ 동물학의 일부에 해당하는 一物[일물]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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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쳐다보았다. 金色[금색]이 눈부신 태양에 비하여 銀玉[은옥]의 부드러운 맛을 가진 것이 달이었다. 무엇인지 우둑우둑한 그림자가 어른어른 하고 또 그것이 둥그렇다가는 이지러지고 이지러졌다가는 둥그러지기를 항상 되풀이 하였다. 그네는 이 형상을 그려 보기도 하고 그 이유를 밝혀 보려고도 하였다. 그네의 학적 탐색과 시적 정서가 합하여 각기 民性國情[민성국정]에 합하는 신화를 여러 민족의 사이에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月中[월중] 음영에 관한 설명 방식을 살피건대, 대개 인물로 보는 것과 동식물로 보는 것의 양 부류로 나눌 수 있으니 서양의 여러 나라와 아이누 ㆍ 에스키모 기타 등은 전자에 속하고, 인도 같은 데는 후자에 속하고 지나 같은 데는 앞서서는 前者[전자]다가 뒤에 가서는 양자를 겸하게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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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노인이 일요일에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벤 나무를 커다랗게 단을 지어 굵은 장대에 꿰어서 어깨에 메고 돌아오다가 교회당으로 가는 한 신사를 만났다. 신사가 「오늘은 지상의 어디서든지 일을 하지 않는 안식일인 줄을 그대는 모르느냐」고 책망한즉, 노인이 웃으면서 「그럽디까? 오늘은 지상의 일요일입디까? 나는 天上[천상]의 월요일로 알았구료. 아무 날이거니, 나에게는 매일반이오」하거늘, 신사가 정색하고 노인더러「그대는 지상의 안식일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모양이로군. 그러면 앞으로 영원히 천상 월요일을 인정하고 지내는 것도 좋겠지. 그래 이 세상의 마칠 때까지 月中[월중]에서 나무를 짊어지고 있어 보게」하고 저주하매, 그 말이 끝나자말자 그 노인이 나무를 짊어진 채 공중으로 湧騰[용등]하여 月中[월중]으로 들어가서 시방도 나무를 지고 서 있는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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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舊約[구약]> 民數紀略[민수기략]에서 나왔음은 벌써부터 주의 된 바니, 그 제 十五[십오] 장에, 이스라엘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에 안식일에 나무하는 사람을 보고, 보던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서 모세와 아론과 會衆[회중]들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지, 아직 示諭[시유]를 받은 일이 없으므로, 그를 禁錮[금고]하여 두었다. 이 때에 여호와 모세에게 이르 시기를, 그 사람은 죽임이 可[가]하니 全[전] 會衆[회중]이 영외에서 돌로 때리라 하시거늘 전 회중이 곧 그를 영외로 끌어내어서 돌로 때려 죽이기를 여 호 아가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이 하였다 (三二[삼이]~ 三六[삼육]) 한 것이다. 그러나 月[월]에 관한 것은 여기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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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나뭇짐을 진 채 月中[월중]으로 쫓겨 들어갔다 하는 말은 무론 훨씬 後年[후년]의 첨가로 생각할 것이겠는데, 독일어로 滿月[만월]을 바델(Wadel) 또 베델(Wedel)이라 하여 그 語義[어의]에 「나뭇단」이란 뜻이 있으니 그만큼 튜우튼 民族[민족]이 예로부터 月中[월중]에 나무 진 사람이 있 음을 믿은 줄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 생각 같아서는 독일의 이야기는 인도의 月中兎[월중토] 古談[고담]과 한가지로 그 한 부분이 언어적 동기로써 유발된 것임에 그칠 따름인 것일까 한다. 단테는 이 사람을 그<神曲[신곡]> 의 지옥편에 카인(Cain)이라고 부르고 셰익스피어는 이 사람에게 <伏中[복중]의 夜夢[야몽]>과 <템페스트>의 中[중]에 개를 데리고 있게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의 이 古談[고담]과 支那[지나]의 月桂[월계] 傳承[전승] 과 근사한 점이다. <酉陽雜爼[유양잡조]> (天理篇[천리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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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言[구언], 月中有桂[월중유계], 有蟾蜍[유섬여], 故異書言[고이서언], 月桂高五白丈[월계고오백장], 下有一人常斫之[하유일인상작지], 樹創隨合[수창수합], 人姓吳名剛[인성오명강], 西河人[서하인], 學仙有過[학선유과], 謫令伐樹[적령벌수], 釋氏書言[석씨서언], 須彌山南面[수미산 남면], 有閻浮樹[유염부수], 月過樹[월과수], 影入月中[영입월중], 或言月中蟾桂地影也[혹 언월중섬계지영야], 空處水影也[공처수영야], 此話差近[차화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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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吳剛說話[오강설화]가 그 모티프에서 독일의 전승에 상부함을 보니, ① 陰影[음영]을 人物[인물]로 봄 ② 修行[수행]의 破戒[파계]로 쫓겨 들어간 사람으로 봄 ③ 나무 찍는 일을 함 ④ 영원히 풀리지 못함 등이 심상한 偶合[우합] 같다기가 어려울 듯하다. <太平御覽[태평어람]> (四[사])에 引[인]한 虞喜[우희]의 <天安論[천안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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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傳月中仙人桂樹[속전월중선인계수], 今視初生見仙人之足[금시초생견선인지족], 漸已成形[점이성형], 桂樹後生焉[계수후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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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하고, <琅琊代醉編[낭야대취편]>(一[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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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績飛雲錄[유적비운록], 載杭川靈隱寺月中墜桂子事[재항천영은사월중추계자사], 似涉怪異[사섭괴이], 本草圖經云[본초도경운], 江東諸處[강동제처], 多於衢路間[다어구로간], 拾得桂子[습득계자], 破之辛香[파지신향], 古老相傳[고로상전], 是月中下也[시월중하야], 不知當地[부지당지], 何以獨有[하이독유], 寧非月路耶[영비월로야], 餘杭靈隱寺僧云[여항영은사승운], 種得一株[종득일주], 近代詩人[근대시인], 多所著述[다소저술], 漢武洞冥記云[한무동명기운], 有遠飛鷄[유원비계], 朝往夕還[조왕석환], 常含桂實[상함계실], 靈於南土[영어남토], 所以北方無之[소이북방무지], 兩方月路[양방월로], 固宣有也[고선유야], 月路之說尤怪異[월로지설우괴이], 白樂天詩[백낙천 시], 偃蹇月中桂[언건월중계], 結根依靑天[결근의청천], 天風繞月起[천풍요월기], 吹子下人間[취자하인간], 自註云[자주운], 杭州天竺等[항주 천축 등], 有月中桂子[유월중계자], 又詩云[우시운], 子墜本從天竺等[자추 본종 천축 등], 根盤今在闔閶城[근반금재합창성], 當時應逐南風落[당시 응축 남풍락], 落向人間取次生[낙향인간취차생], 皮日休詩云[피일휴시운], 玉顆珊珊下月輪[옥과산산하월륜], 殿前收拾露華新[전전수습노화신], 至今不會天下中[지금불회천하중], 應時嫦娥撤與人[응시항아철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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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것들처럼, 지나에서는 月中桂[월중계]가 그 香[향]과 子[자]를 風便[풍편]에 인간으로 보낸다 할 만큼 실재성을 가지게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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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달아 밝은 달아, 李太白[이태백]이 노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桂樹[계수] 나무 박혔으니, 銀[은]도끼로 찍어내고, 金[금]도끼로 다듬어 내어, 草家[초가] 三間[삼간] 집을 짓고, 兩親[양친] 父母[부모] 모셔다가, 千年萬年[천년만년] 살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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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最普遍[최보편]한 동요를 머리로 하여 短歌[단가]ㆍ雜歌[잡가] 기 타 민요에 桂宮[계궁] 姮娥[항아]가 어디든지 고개를 내어밂을 보게 되었음 은 이제 煌說[황설]할 것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의 說想[설상]과 같이 지나의 月桂說[월계설] 과 獨逸[독일]의 樵老談[초로담]과의 사이에 일맥의 血行[혈행] 이 통한다 하면, 튜우튼 인의 사상과 조선인의 脣舌[순설]이라는 재미있는 연상을 할 수 있음이 한 興[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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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상의 잘못한 벌로 쫓겨간 사람이라는 傳承[전승]은 遊行說話[유행설화] 로 각지로 돌아다니는 중에 각 민족의 사이에 여러 가지 형식을 만들어내었다. 和蘭[화란]에서는 신념 부족한 사람이 일요일 아침에 敎堂[교당] 다니는 신자의 왕래를 방해할 양으로 도로에 荊棘[형극]을 펴 놓은 벌로 월세계에 갇히게 되었다 하고, 丁抹[정말]의 실트島[도] 민화에는 크리스마스 전야에 甘藍[감람]으로 羊[양]을 꾀어서 훔쳐 간 벌로 감람을 가지고 月中[월중]으로 유폐하게 된 것이라 하고 프리지아島[도]의 민화에는 이 감람 죄인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한 번씩 回轉[회전]하는 운명을 가졌다고 하기도 하였다. 또 月中人[월중인]은 어디서는 石化[석화]한 사람으로 생각도 되고, 또 儁僥[준요]로 생각된 일도 있고, 그 반대로 巨人[거인]으로 생각 되 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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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月中人[월중인]을 죄인이라 하는 사상은 스캔디나비아 신화에서 배태 된 것이라 하는 이도 있다. 옛날에 月神[월신] 마니가 지상에 와서 남녀두 아이를 훔쳐 간 것이니, 남아는 유기이라 하고, 여아는 빌 이라 하는데 둘이 지상에서 비길이란 우물에서 세글이란 통에 물을 길어서 시물이란 장대로 꿰어서 메고 가다가 그네의 몸이 멘 통까지 어울려서 天上[천상]으로 끌려 올라갔으므로, 滿月[만월]의 때에는 시방도 오히려 지상에서 그 형상이 보인다 하였다. 瑞典[서전]의 민화를 거하건대, 시방도 月中[월중]의 斑點[반점]을 가리켜서 잭과 질이 水桶[수통]을 멘 것이라 하는 傳承[전승] 이있고, 그 동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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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and Jill went up the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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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fetch a pail of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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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fell down, and broke his 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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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Jill came tumbling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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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것이 있다. 또 아마존 유역의 사몬 種族[종족]의 설화에는 하룻밤에는 月[월] 이 별안간 내려와서 깜깜한 중에 다듬이질하고 있는 시나라는 女人[여인]을 훔쳐 간 것이니, 月面[월면]을 보면 시나가 밤낮 다듬이질하는 꼴이 보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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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中[월중]의 음영은 맨 먼저 원시인의 月[월]에 대한 학적 자극을 준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가 어째서 거기 있는가를 설명하려 한 것이 月中[월중] 物類[물류] 의 종종 설화이다. 埃及[애급]의 신화에 月面[월면]의 班點[반점] 은 月神[월신]인 이시스 女神[여신]의 胎內[태내]에 있는 호루스라고 본것 같음은 이 설화 발생의 동기를 살피기에 適好[적호]한 일례라 할 것이다. 이제 지나인의 여기 대한 古觀念[고관념]을 살피건대, 月字[월자]의 篆形[전형] 은 ()이니 그 전체가 半月[반월]을 象[상]한 것임은 說文[설문] 을기 다리지 아니하고도 알 일이거니와, 廓內[곽내]의 一點[일점]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가? 고대의 字書[자서]에 여기 대한 해설이 없으나, 첫째 우리는 이것이 우연한 것 아니라, 支那[지나]의 古人[고인]도 月中[월중]의 반점을 주의한 證迹[증적]으로 인한 것이라 하기에 주저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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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文字國[문자국]이요, 또 꽤 오랜 기록의 보유자이지마는 그 古史[고사] 와 古傳說[고전설]과 古文化[고문화]에 대한 그것은 비교적 零散[영산] 한 나라이다. 이는 기록의 大部[대부]가 상식적인 儒敎者流[유교자류] 의손에 정리된 결과라고도 생각되는 일이거니와, 그러므로 莊列子流[장열자류] 의 文字[문자] 중에 약간 형해를 머무는 것밖에는 古傳說[고전설]의 모습을 짐작할 거리가 없다. 그러나 月中[월중]의 반점을 직접 설명해 주는 설화는 불행히 아무 데도 적힌 것이 없으며, 억지로 짐작해 보자 하면 저 위에 인용한 姮娥說[항아설] 蟾蜍說[섬여설]이나 그것으로 볼 밖에 없다. 이 중에도 姮娥說[항아설]은 불사약 云云[운운]에서 仙道[선도]의 관계를 가져서 戰國[전국] 이전의 성립으로 認[인]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고, 또 일변 세계 공통의 一[일] 話型[화형]이므로, 지나 독특의 것으로만 認[인] 하기 어려운 점도 있은즉, 대개 蟾蜍說[섬여설]이 비교적 지나 자발의 설화나, 그렇지 아니하여도 그 最古[최고]의 話型[화형]이 아닐는지를 생각케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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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의 이 沒想[몰상]을 지지해 줄 듯한 一[일] 證憑[증빙]을 들수 있다. <史記[사기]> (一二八[일이팔])의 <龜策傳[귀책전]>에 공자의 말씀이라 하여 천지간에 全能至神[전능지신]한 것이 없는 여러 실례를 드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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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爲德而君於天下[일위덕이군어천하], 辱於三足之鳥[욕어삼족지조], 月爲刑而相左[월위형이상좌], 見食於蝦蟇[견식어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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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함이 그것이다. 여기 대한 무슨 詳說[상설]이 혹시 어느 책에 적혔는 지나는 알지 못하거니와, 이제 文意[문의]로써 추측하건대, 이는 日月食[일월식] 과 또 月盈虛[월영허]에 대한 지나인의 古學說[고학설]로 日[일]은 三足鳥[삼족조]에게 부대끼고 月[월]은 蝦蟇[하마]에게 집어먹힌다는 관념이 있었 음을 엿볼 만한 것일까 한다. 篆文[전문]의 日[일]()과 月[월]()의 心核[심핵] 이 一[일]은 鳥[조]요, 一[일]은 蝦蟇[하마]로, 日心[일심]의 橫劃[횡획] 이요 月心[월심]의 縱劃[종획]임도 그 표상을 달리하려는 뜻을 寓[우] 함 일지도 모를 것이다. 後代[후대]의 想像說[상상설]이지마는 <談薈[담회]>(十八[십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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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云[설문운], 月太陰之精[월태음지정], 象形[상형], 內象蟾桂之象[내상섬계지상], 故夕從月半見[고석종월반견], 而林罕以爲象其未有蟾桂之形也[이림한이위상기미유섬계지형야], 乾鑿度[건착도], 月三日成魄[월삼일성백], 八日成光[팔일성광], 蟾蜍體就[섬여체취], 穴鼻始明[혈비시명], 穴決也決鼻兎也[혈결야결비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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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한 것은 참고할 말이다(夕字[석자]는 日字[일자]의 心核[심핵] 없는 형이니, 곧 蟾體[섬체]가 다 생기지 못한 때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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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秦思想[선진사상]의 전승인 듯한 文字[문자]에는 대개 蟾蜍[섬여] 로써 月精[월정] 이라 하고, 또 蟾兎[섬토]를 幷擧[병거]할 적에도 반드시 蟾先兎後[섬선토후] 로 나옴이 상례이고, 兎[토]가 月中[월중] 생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게 됨이 대개 魔晋[마진] 이하의 事[사]에 속함 등도 다 지 나인의 月中[월중] 생물에 대한 古意[고의]를 짐작할 것일까 한다. 여기 관 하여서도 後代[후대]의 文字[문자]지마는 <酉陽雜爼[유양잡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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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封云[주봉운], 長慶中有人[장경중유인], 玩八月十五夜月[완팔월십오야월], 光屬於林中[광속어임중], 如匹布[여필포], 其人尋視之[기인심시지], 見一金背蝦蟇[견일금배하마], 疑是月中者[의시월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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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한 것 같음이 그 古意[고의]의 민간적 一流傳[일유전]으로 봄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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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聞古老說[우문고노설], 蝕月蝦蟆精[식월하마정], 徑圓千里入汝服[경원천리입여복], 如此癡駿阿誰生[여차치준아수생], 須臾癡蟇精[수유치마정], 兩吻自決圻[양문자결기], 初露半個璧璧漸吐滿輪魄[초로반개벽벽점토만륜백], 衆星盡原赦[중성진원사], 一蟇獨誅磔[일마독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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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云[운운]이라 한 것은 아마 支那[지나]에 있는 월식 전설의 一[일] 傳承[전승]으로 볼 것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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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手中[수중]에 있는 재료만으로써 우리의 생각하는 바에는 이유는 불명 하지 마는 古支那人[고지나인]의 月中[월중] 生物觀[생물관]은 蟾蜍[섬여] 가 그것이러니, 연대의 진행과 한가지 사방으로서 遊行的[유행적] 類話[유화] 가 流入[유입] 粘着[점착]도 하고 또 자체의 발달도 생겨서, 후년에 보는 것 같은 話型[화형]의 성립을 본 것이라 한다. 姮娥[항아] 云云[운운] 과 月桂[월계] 云云[운운]은 다 月中[월중] 생물 설화의 世界大的[세계대적] 一[일] 모티프요, 특히 항아는 月[월]을 陰[음]으로 보고 陰[음]을 여자에 配[배] 하는 支那的[지나적] 관념의 설화상 반영도 있는 것이며, 또 兎[토] 의 참가는 대개 서방 교통 빈번 후 인도로서의 수입으로서, 月光[월광] 의 皓潔[호결] 함에서 玉兎[옥토], 銀兎[은토]의 이름이 생기고(이의 對[대] 로 日[일] 은 金烏[금오]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퍽 詩的[시적]이요 富潤意[부윤의] 가 있음에서 그 유행이 速[속]하고 커서 蟾蜍[섬여]와 병행하다가 어떤 때에는 도리어 이를 압도하게까지 된 것이라 한다. 또 蟾蜍[섬여]와 姮娥[항아] 와 兎[토]는 본디 계통을 달리하는 各話[각화]지마는, 이럭저럭 月中[월중]에서 內外[내외] 雜居[잡거]가 되매, 지위와 職掌[직장]의 분별이 생겨서 蟾蜍[섬여]를 항아라 하기도 하고 항아 이외에 월계수 下[하]의 蟾蜍[섬여] 가 따로 있느니라 하기도 하고, 항아는 月宮[월궁]의 주인인데 玉兎[옥토] 는 그 仙藥[선약] 방아를 찧느니라 하기도 하게 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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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木陰虫葉下霜[초목음충엽하상], 朱欄迢遞壓湖光[주란초체압호광], 兎寒蟾冷桂花白[토한섬랭계화백], 此夜姮娥應斷膓[차야항아응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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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것 같음은 이 三物素[삼물소]를 따로따로 보아 준 일례이다. <楚辭[초사]> 天問[천문]의 「顧兎在復[고토재복]」이하로 兎[토]에는 雄性[웅성] 이 없고 천하의 兎[토]가 月中兎[월중토]를 쳐다보고 感孕[감잉] 하므로, 추석 날 월광의 명암을 보아서 兎[토]의 다과를 卜[복]한다 함(博物志[박물지], 埤雅[비아], 瑯揶代醉編[낭야대취편] 等[등])은 무론 다 月兎說[월토설] 생긴 이후의 발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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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阿含經[장아함경]> 기타 竺典[축전]에 나오는 閻浮樹[염부수]와 北歐[북구] 신화에 나오는 익트라실樹[수]와 아이누 古談[고담]에 게으름뱅이 하나가 아비에게 물 길어 오라는 명을 받고 물을 긷지 아니하고 장난만 한 고로, 신이 징계하시려 하여 月中[월중]으로 데려가시어, 날마다 밑 빠진 두레박으로 물을 긷게 하여 줄곤 울고 있다 함과, 멕시코인의 古談[고담]에 月中人[월중인] 은 옛날에 신에게 토끼 내어던짐을 당한 사람인데, 시방도 그 자국이 얼굴에 떨어져 있다 함 등은 支那[지나]의 月中[월중] 생물 전설의 세계성을 살핌에 내어놓지 못할 재료들이다. 臺灣[대만]에서는 잔나비가 仙桃[선도] 를 따려 하는 것이라 하고, 에스키모들은 사나운 오라비의 손에서 도망해 나온 처녀가 거기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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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흡한 대로 이상에서 支那[지나] 고유의 月中[월중]의 생물은 蟾蜍[섬여] 며 兎[토]는 後出[후출]이요 외래의 것인데, 대개 인도 전래의 것 일것을 약간 고찰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月中兎[월중토] 闍多伽[도다가] 의 非宗敎的[비종교적]으로 遊行[유행]한 자취를 다른 방면으로서 볼 수 있 음을 우리는 다행으로 알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나는 <古事記[고사기]> <古風土記[고풍토기]> 등에 보인 일본 古談[고담] 중의 <因幡[인번]의 白兎[백토]> 이야기다. 이제 <因幡風土記[인번풍토기]>의 逸文[일문]을 據[거] 하여 적으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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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幡國[인번국] 高草郡[고초군]은 본디 竹林[죽림]인데 그 속에 一老兎[일노토] 가 살았다. 한 번은 홍수가 나서 죽림이 씻겨 나가며 토끼가 竹根[죽근] 하나를 붙들어 타고 떠내려가다가 隱岐島[은기도]에를 漂着[표착] 하였다. 물이 빠진 뒤에 故土[고토]로 回還[회환]하려 하나 도리가 없어 망단하고 있는 참에, 우연히 악어를 만나서 한 꾀를 내었다. 토끼가 악어더러 「 네 족속이 도무지 얼마나 되느냐?」하매 악어의 대답이「어떻게 많은지 바다에 꽉 찼느니라」고 자랑하거늘, 토끼 말이 「오냐, 우리 족속도 퍽으나 많아서 산야에 찼느니라. 먼저 너희 類[류]의 다소를 세어 보겠으니 牟呂島[모려도] 로서 竹串[죽곶]까지 악어를 모아 놓아라. 내 일일이 세어 보고 얼마나 많음을 알리라」하였다. 악어가 속고 동족을 모아서 잔등이를 벌려 놓으니, 토끼가 數[수]를 치면서 그 위로 뛰어가서 어언간 竹串[죽곶]으로 다다랐다. 토끼가 이제야 어떠랴 하고 악어더러 말하기를 「너의 수를 알자는 것 아니라, 실상 바다를 건너오려는 꾀이었느니라」하고, 그 어리석음을 놀렸다. 악어들이 열이 나서 토끼를 붙잡아서 털을 몽땅 뽑아 빨간 몸을 만들어 놓았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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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臺灣[대만] 生蕃[생번]의 傳承[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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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토끼가 穿山甲[천산갑]을 만나서 「어쩌면 가죽이 저렇게 좋으냐?」고 천산갑의 가죽을 칭찬하니, 천산갑이 「이것 말이냐? 이것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제 털에 불을 질러 보면 되는 것이다」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정말이냐? 누구든지?」「아무렴! 누구든지다. 너도 이런 옷이 소원이면 즉시 화려한 가죽의 임자 노릇을 할 수 있다. 한번 시험 해보려느냐?」하여 천산갑이 토끼를 꾀어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불을 놓았다. 활활 불이 붙어 오르매, 뜨거워 견디다 못하다가 토끼는 도망해 버렸으나 천산갑은 나오지 아니하였다. 한참만에 불이 꺼지매, 도망갔던 토끼가 불탄 자리로 와서「천산갑아!」하고 부른즉, 의외에 「오냐!」하고는 천산갑이 튀어 나왔다. 토끼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래, 그 무서운 불을 너는 어떻게 견디었느냐?」고 물은즉, 천산갑이 불 붙었을 때 땅을 파고 들어가서 피난했던 말은 숨기고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불이란 것은 위에서 타 나가는 것이므로, 가만히만 있으면 머리 위로 지나가 버리느니라 」 고 또 거짓말을 하였다. 토끼는 천산갑이 目前[목전]에서 猛火[맹화] 를 무사히 치른 것을 보고 저도 시험해 볼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마음 놓고 새밭에 들어가서 천산갑더러 불을 지르라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불의 타는 형세가 천산갑의 말과는 딴판이어서 토끼는 금시에 猛火[맹화]에 몸이 탔으나, 땅을 팔 수 없으므로 그대로 타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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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이야기는 설화학적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闍多迦[도다가]의 계통을 끌은 것임을 얼른 想察[상찰]케 하는 것이로되, 꼭 불교를 중매로 하여 들어 왔다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일본 古談[고담]의 그것으로 말하면 속이는 놈이 토끼인 것이 그와 반대요, 臺灣[대만] 古談[고담]으로 말하면 실패하는 놈이 토끼임이 그와 다를 법하되, 그 결과에 있어서는 토끼가 혼을 뜨게 됨에서 다 같이 闍多迦[도다가] 토끼의 燒身成仁[소신성인]하는 餘影[여영]을 볼 것이요, 또 전자에서는 한 번 속였다가 되속는 점으로와, 후자에서는 안 속았다가 되속는 점에서 ─ 二重[이중]의 속임인 점에서 그 모티프가 순수히 上文[상문]에 인용하였던 <佛本行經[불본행경]>의 그것하고 符節[부절]을 合[합]하는 듯함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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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말하기를 일본 대만의 이런 이야기와 인도의 <闍多伽[도다가]>間[간] 의 관계를 어떻게 꼭 짚어서 말하겠느냐고 할 것이다. 설사 주인공인 토끼는 다만 한가지로되, 物素[물소]에도 틀리는 것이 있고 話骨[화골]에도 다른 곳이 많은데, 무슨 점을 붙들어 가지고 계통 관계를 推想[추상] 하느냐는 의심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괴이치 아니하되, 이것은 동물 설화의 근본 골자를 분변하지 아니한 데서 나는 의심이다. 무슨 설화에든지 依立[의립] 된 根元[근원] 과 隨變[수변]하는 부분들이 있거니와, 동물 설화 특히 인도의 동물 우화에는 그 법칙이 엄정하고 그 형태가 단순함을 보니, 그러므로 오래 전부터 유전하는 동물 설화의 인도적인 여부를 판정함은 그다지 難事[난사]에 속하는 것 아니다. 또 이러한 표준으로 비판하여 과히 실수를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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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는 반드시 一個[일개] 혹 수개의 모티프(motif)를 핵심으로 하여 성립 하는 것이니, 모티프란 것은 설화의 성립 계기를 말함이다. 「흥부 놀부 」 와 「銀[은]나거라 뚝딱 金[금]나거라 뚝딱」이 흉내냄의 실패를 모티프 로하고, 「콩쥐팥쥐」가 前後室[전후실] 자식의 갈등으로 모티프를 삼음 같은것이다. 설화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부분은 이 모티프니, 어느 한 설화는 요하 건대 이것을 허리통으로 하여 거기 頭面[두면]과 肢節[지절]이 달린 것이요, 이것을 뼈다귀로 하여 거기 腠理(주리)와 皮肉[피육]이 붙은 것이요, 이 것을 몸뚱이로 하여 거기 의복과 장식이 얹힌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이야기의 의거된 根元[근원]이란 것은 곧 이 허리통ㆍ뼈다귀ㆍ몸뚱이의 부분을 이룸이요, 隨變[수변]하는 재료란 것은 곧 이 頭面[두면] ㆍ肢節[지절] ㆍ 腠理[주리] ㆍ皮肉[피육] ㆍ 의복 ㆍ 장식이 부분을 이룸이다. 일본 가서는 일 본 의복을 입고 서양 가서는 서양 장식을 하여, 때와 곳을 따라 外樣[외양] 은 변화 할지라도, 사람은 늘 조선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로, 설화에도 그 골자를 뽑고 正體[정체]를 들추어 보면 어느 정도까지 그 所從來[소종래]가 밝아지는 것이다. 인도의 동물 설화에는 인도 독특한 모티프가 있어서 먼 지방에 가서 다른 외형을 가졌을지라도 그 本相[본상]을 들추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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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동물 설화의 모티프는 첫째 尊者[존자] 强者[강자]인 一動物[일동물] 과 그 從屬者弱者[종속자약자]인 一動物[일동물]의 대립적 관계에서, 강하나 어리석은 전자가 약하나 꾀있는 후자에게 우롱을 당함이요, 또 하나는 그것이 智力[지력] 중심의 설화이면서 오히려 도덕적의 色味[색미]를 지니려 함이다. 이를테면 꾀로 속이기는 하지마는, 속인 놈이 또 속고 맒과 같 음은 인도 동물 우화의 一特色[일특색]이다. 前段[전단]만의 遊行[유행] 을지 은 者[자]는 세계에 있는 허다한 동물 설화의 根元[근원]이니, 독일의 그림 같은 것도 그 一餘流[일여류]에 不外[불외]한 것이요, 後段[후단]의 뜻까지를 받아간 것이 각국에 퍼진 동물 우화들이니, 이솝의 우화도 또한 그 一支派[일지파] 임에 불과한 것이다. 인도의 동물 설화는 분명히 歐洲[구주] 동물 설화의 근본이요, 그뿐 아니라 대개는 세계 동물 설화의 모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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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인도의 동물 설화에는 흔히 사자가 왕으로 나오고 豺[시]가 그 顧問[고문] 혹 從臣[종신]으로 나오는데, 강한 사자가 항상 약은 豺[시]에게 속아 넘어가는 형식이 있으니, 미상불 인도에서는 豺[시]가 사자의 從者[종자] 같은 觀[관]이 있어 그 뒤를 쫓아다니면서 殘臠(잔련)을 얻어먹 음을 土人[토인] 의 많이 目睹[목도]하는 바이라 한다. 사자가 체력으로는 豺[시] 하고 비교가 되지 아니하나 지력이 좀 부족하고, 豺[시]는 小弱[소약] 하여 사자의 적이 아니나 지력은 도리어 사자를 지나니, 이것이 설화상에 나타나서 種種[종종]의 文彩[문채]와 한가지 그 상기둥이 되게 된 것이다. 그런 데인도 설화의 주인공인 사자와 豺[시]는 구라파에 가서는 편의를 따라 다른 동물로 변하는데 豺[시]는 번번이 狐[호]로 변하고 사자는 간혹 熊[웅]으로 변하며 歐洲[구주]에는 사자가 없으되, 으례히 變易[변역]되지 아니함은 사자가 百獸[백수]의 왕으로 그 英名[영명]이 널리 들린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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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모티프가 外邦[외방]으로 유전하는 동안에는 또 다소의 변화를 지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强而愚者[강이우자]와 弱而智者[약이지자] 의 原形[원형]이 강약의 대조는 없어지고, 홑으로 賢愚[현우]의 角勝[각승]만으로 되는 것 같음이 그 하나이며, 본토에서 단순하던 것이 다른 것과 複合[복합] 하여 어수선한 내용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음이 또 그 하나이다. 남방 슬라브의 전하는 민화에 이러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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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한 마리가 죽은 체하고 路傍[노방]에 자빠졌더니, 농부가 마차를 끌고 가다가 보고서 웬 떡이냐 하고 집어 싣고 갔다. 여우가 농부의 모르는 틈을 타서 마차에 얹었던 乾酪[건락] 세 덩이를 훔쳐 가지고 살그머니 도망갔다. 두 덩이를 다 먹고 한 덩이를 마저 먹을 때에 승냥이가 와서, 어디서 그것을 얻었느냐고 물으매, 여우가 대답하기를, 강 속에서 건졌다고 하였다. 승냥이가 저도 좀 건졌으면 좋겠다 하므로, 여우가 데리고 어느 강변으로 갔다. 마침 望月[망월]의 그림자가 水中[수중]에 잠겨서 흡사한 乾酪[건락] 의 뜬 것이매, 여우가 가리키면서 저것이 乾酪[건락]이니 얼른 가서 건져내 오라 하니, 승냥이가 속고서 건지려다가 빠져 죽었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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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리석은 주인공이 꾀자기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반 모티프에 다시한 재료가 添着[첨착]된 것임은 獼猴捉水月[미후착수월]이란 印度[인도] 古談[고담]에 비추어 얼른 짐작되는 바이다. <摩詞僧祈律[마사승지율](七[칠])을 據[거]하여 적으면 이러하게 생긴 本生譚[본생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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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去世時[과거세시], 有城名彼羅奈[유성명피나내], 國名伽尸[국명가시], 於空閑處[어공한처], 有五百獼猴[유오백미후], 遊行林中[유행임중], 到一尼拘律樹[도일니구율수], 樹下有井[수하유정], 井中有月影現[정중유월영현], 時獼猴主見是月影[시미후주견시월영], 語諸伴言[어제반언], 月今日死[월금일사], 落在井中[낙재정중], 當共出之[당공출지], 莫令世間[막령세간], 長夜闇冥[장야암명], 共作議言[공작의언], 云何能出[운하능출], 時獼猴主言[시미후주언], 我知出法[아지출법], 我促樹枝[아촉수지], 汝捉我尾[여착아미], 展轉相連[전전상련], 乃可出之[내가출지], 時諸獼猴[시제미후], 即如主語[즉여주어], 展轉相捉[전전상착], 少未至水[소미지수], 連獼猴重樹弱枝折[연미후중수약지절], 一切獼猴墮井水中[일체미후타정수중],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 爾時獼猴王者[이시미후왕자], 今提婆達多是[금제파달다시], 爾時餘獼猴者[이시여미후자], 今六群比丘是[금육군비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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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母體[모체]에서 어느 부분은 없어지고 한 부분만이 남는 一例[일례] 는 일본의 古談[고담]에서도 볼 수 있다. 시방은 「かちかち山[산](카 치카 치야마) 」 란 古談[고담]을 瀧澤馬琴[농택마금]의 <燕石雜志[연석잡지]>를 據[거]하여 적으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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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늙은 농부가 김을 매는데 할미가 점심을 해서 가져갔더니, 너구리 놈이 그것을 훔쳐 먹었다. 농부가 괘씸하게 생각하여 그 너구리를 잡아다가 들보에 매달고 할멈더러 이르기를, 이 너구리를 잡아서 국을 끓여 먹을 터이니 잘 준비를 해 두라 하면서 다시 들로 나갔다. 할미가 보리방아를 찧으면서 노래를 부르매, 너구리가 애연한 목소리로 내 목숨을 살려 주면 대 신 방아를 찧어 드리겠다 하므로, 불쌍히 생각하여 새끼를 끌러 내려놓아 주었더니, 너구리가 금시에 달려들어서 할멈을 죽여서 그 고기로 국을 끓이고 또 둔신하여 할멈의 탈을 썼다. 농부가 들로서 돌아와서 그 국을 먹으려 하 매, 너구리가 本形[본형]을 나타내어, 계집 잡아먹는 망난아, 아궁이 앞의 뼈다 귀를 보아라 하고 놀리면서 밖으로 나가서 없어져버렸다. 농부가 기가 막혀서 국그릇을 내려놓고 엉엉 울었다. 또 근처 산중에 오래 묵은 토끼가 살더니, 농부의 哀哭[애곡]하는 소리를 듣고 와서 致慰[치위]를 하고, 내가 할머니 원수를 갚아 드릴 것이니 콩을 볶아 달라 하여, 볶은 콩을 상자에 넣어 가지고 산으로 갔다. 너구리가 그 냄새를 맡고 와서, 나도 볶은 콩 한웅 큼만 달라고 하거늘, 토끼는 기다리던 일이매, 나무를 한 짐 건넌 山[산]까지 져다 주면 콩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콩 먹을 욕심으로 나무를 지고 돌아서 가는 놈을 뒤로 따라가면서 몰래 부시를 치니, 너구리가 소리를 야릇하게 여겨 무엇이냐고 묻거늘, 응 이것은 「かちかち山[산] 」(딱 딱 山[산])이라는 것이다 하고, 불이 붙으매 너구리가 또 묻거늘 토끼는 「ぼうぼう山[산](보오 보오 야마) 」(덤불 山[산])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리하는 동안에 불이 활짝 퍼져서 너구리의 등을 데우니, 크게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간신히 나뭇짐을 벗어 내던지고 도망하였다. 토끼가 또 된장 고춧가루를 섞어서 고약을 만들어 가지고 삿갓을 푹 뒤집어쓰고 火傷[화상]한 데 붙이는 고약을 사라고 다녔다. 너구리가 등을 데어서 쩔쩔매는 판이매 마침 만났다하고 얻어서 등에 붙였다가 울고 불고 뛰고 날치다가 수십 일 만에 겨우 나았다. 토끼가 또 배를 지으매 너구리가 보고서, 그 배는 무엇하려느냐고 묻거늘, 고기를 잡으려 한다고 속이매, 너구리가 부러워서 저도 배를 만든다하나 재주가 없으므로 나는 흙으로 만들겠다 하여 흙배를 지어 타고 토끼와 한가지 바다 밖으로 나갔다. 너구리의 배가 점점 가라앉아서 물에 채는 것 을 보고 토끼가 삿대를 내밀어서 너구리를 때려 죽이고 농부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었다(현행 동화에는 토끼가 제 배는 木造[목조]로 하고 너구리 배는 흙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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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일본만으로 생각하면 전에 적은 <因幡[인번]의 토끼>로서 脫化[탈화] 한 것이니, 전자에서는 白兎[백토]가 악어를 속여서 화를 당하는데, 여기서는 너구리가 그 地位[지위]를 대신하고 토끼가 도리어 善者[선자] 가 되어서 농부에게 동정하여 복수를 하게 되었다. 동물 설화는 대개 智力[지력] 의 승리를 구가함이 通則[통칙]이라 할 만하니, 지력적ㆍ복수적 요소로 서로 일치하면서도, 전자에서는 兎[토]가 수난자라가 후자에서는 兎[토] 가 복수자임이 다르다면 다르며, 더욱 후자에서는 지력과 복수가 다 중복적 또 層段的[층단적]으로 생겼음이 전자보다 話意[화의]의 발달을 보였으니, 이와 같은 變通[변통]은 실상 설화 遊行上[유행상]의 通有[통유] 한일이다. 그러면 說相[설상]이 相符[상부]하는 이 「かちかち山[산] 」古談[고담] 과 南[남] 슬라브 古談[고담]과의 사이에 일맥의 관계가 은근히 통 해있 음을 짐작할 것이요, 따라서 둘이 다 공통한 근원을 가졌음에도 想到[상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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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설화의 요지로 말하면 아무 구속과 제한이 없고 다만 흥미를 위주하 매 아무 데 가서도 불편한 것이 없지마는, 설화의 物素[물소]로 말하면 原生地[원생지]에는 있는 것이 流入地[유입지]에는 없을 수도 있고, 원 생 지에서는 적절한 것이 유입지에서 좀 齟齬(저어)할 수도 있는 등 種種[종종] 의 因時[인시] 혹 因地的[인지적] 제약을 받을 것이니, 이러한 경우에는 고쳐도 무방하고, 고칠수록 편의한 부분은 얼마든지 變通[변통] 自在[자재]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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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인도에서는 사자이던 것이 슬라브에서 승냥이도 되고, 조선에서는 범도 되고, 일본 가서는 너구리도 되고, 또 여기서는 이 편이던 것이 저기 서는 저 편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原話[원화]에는 코끼리인데 枝話[지화]에는 곰이란다든지, 原話[원화]에는 승자인데 枝話[지화]에는 패 자란다든지, 이러한 枝葉[지엽]의 異同[이동]은 어느 一說話[일설화]의 子母[자모] 관계를 보는 데 그리 긴중한 점이 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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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한 이야기의 變轉[변전]은 다만 遊行[유행]하는 동안에 남에게 가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저의 本處[본처]에서도 種種[종종]의 인연으로 種種[종종] 의 異傳[이전]을 生[생]하게 되는 것이요, 그것이 比喩談[비유담] 인 경우에 變換[변환]이 우심함을 본다. 왜 그러냐 하면, 기억과 전승의 다른 까닭도 있겠지마는, 비유하려는 이의 특수한 필요를 인하여 고의의 變改[변개] 가 더해지는 일도 없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선 전에 인용한 猴鼈闍多伽[후별도다가]로만 말하여도 인도의 所傳[소전]이 실로 一[일], 二[이]에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주요한 것 몇을 들지라도 이러하다. <판차탄트라> 제四[사]권 獲得物[획득물] 상실편의 本話[본화]로 적힌<잔나비 염통> 이야기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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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가까운 어느 곳에 큰 나무가 한 株[주]가 있어 사철 과실이 열리는데, 그 나무에 락드암가란 잔나비 한 마리가 살았다. 하루는 가 랄 암 가라는 海豚[해돈] 이 바다로서 나와서 이 나무 밑 보드라운 細沙[세사] 밭에서 자빠져 노는 것을 보고, 「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셨구려. 과실이나 좀 대접하는 것이니 잡수어 주 시오. 바로 仙酒[선주] 같은 맛이 있소.」 하고 과실을 海豚[해돈]에게 주었다. 海豚[해돈]이 받아서 먹어 본즉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맛이 있으므로, 매우 고맙게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이로부터 둘의 사이가 좋아져서 항상 나무 그늘에 모 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세월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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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海豚[해돈]이 잔나비에게 받은 과실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저의 아내에게 먹였더니,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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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이런 맛난 과실을 어디서 얻으셨소?」하고 묻거늘 海豚[해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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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동안 좋은 친구를 사귀었소. 그는 락드암가라는 잔나비인데, 늘나에게 친절히 굴고 이 과실을 대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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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신선] 잡숫는 술과 같은 이런 맛난 과실만을 먹고 사는 놈은 그 염통도 분명 神仙[신선] 잡숫는 술과 같이 맛날 줄 아오. 나는 꼭 그 잔나비의 염통이 먹고 싶소. 그것을 먹으면 꼭 無病長壽[무병장수]하여 永生不死[영생불사] 할 줄로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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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잔나비는 형제같이 사귀어 지내는 친한 동무인데, 그 염통을 먹어 보겠다는 말이 무슨 말이오? 그런 생각은 두 번도 하지 마오.」 하였다. 海豚[해돈]의 처가 노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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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시방까지 내가 해 달라는 것에 아니 들어준 것이 없는데 이번 청만은 왜 듣지를 아니하시오? 음, 알았소. 당신이 필시 암잔나비하고 좋아지내는 것이오. 그래서 하루도 빼는 일 없이 해변으로 놀러 나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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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제 당신 마음을 알았소.」 하고 생 강짜를 하였다. 海豚[해돈]이 이 말을 듣고는 불이야 살이야 하는아내의 다리를 들어다가 저의 가슴에 껴안으면서 겁난 목소리로,
151
「나는 당신의 종이오. 용서해 주오. 나보담 더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이 세계에는 없소.」 하였다. 海豚[해돈]의 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152
「그 잔나비가 당신의 애인(?)이 아니면 어찌 내 말을 들어 주지 못하오?
153
어찌 내 청대로 죽여 주지 못하오? 나는 그 잔나비의 염통을 못 얻어 먹으면 絶食[절식]하여 自處[자처]해 버리겠소.」 하였다. 海豚[해돈]은 저의 아내가 기막히는 결심하는 것을 보고, 이 노릇을 어떻게 주체할지를 몰라「옛말에 부레풀과 계집과 쪽과 게와 주정꾼과 물고기와 바사기 놈은 무엇을 붙잡으면 결코 내어놓는 일이 없다 하더니, 과연 용한 말이다. 참말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담? 잔나비씨를 죽이기로 한 들 무슨 방법을 써야 한담?」하고 곰곰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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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머리를 앓다가 海豚[해돈]이 잔나비에게로 나왔다. 잔나비는 海豚[해돈] 이 다른 때보다 오는 것이 늦을 뿐 아니라, 무엇인지 걱정걱정 하는 꼴을 보고 이상하여서, 「海豚[해돈] 씨, 오늘은 어째 이리 늦으셨소? 또 다른 날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 하시니 어찌한 일이오?」 한즉 海豚[해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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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납씨, 실상은 室人[실인](?)에게서 큰 책을 들었오. 室人[실인]의 말이 어쩌면 그리 남의 신세를 모르오? 밤낮 친구 어른에게 가서 대접만 받고 당신은 한 번도 청해다가 회사하는 일이 없으니 그런 몰경계한 이는 내 곁에도 있지 마오 하고 어떻게 야단을 하는지 질끔하였소. 그래 오늘은 자실것은 없으나마, 당신을 청해다가 대접을 좀 할 양으로 늦게 오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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室人[실인]은 훌륭한 진주와 紅玉[홍옥]으로 사랑을 치장한다, 환영하는 花環[화환]으로 문을 꾸민다 하여 一時[일시]가 바쁘게 당신 오시기만 기다리는 참이오.」 하였다. 잔나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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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너무도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林間[임간]에 살고 당신의 宅 [댁] 은 水中[수중]에 있으니, 가려 한들 가는 수가 있소? 그러니 당신이 가서 室內[실내]를 모시고 오면 내가 室內[실내]께 치사를 하겠소.」 하거늘 海豚[해돈]이 그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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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水中[수중]이지마는 깨끗한 모래 등성이 위에 있소. 염려 하실것 없이 내 등에 가 올라타시오. 아무렇지 않게 가실 수가 있소.」 하였다. 잔나비가 대단히 기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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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진대 무엇을 머뭇거리겠소. 예, 당신 등에를 타지요.」 하고 解豚[해돈]의 등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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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豚[해돈]이 千尋[천심] 無底[무저]의 허허바다로 기운차게 자맥질해 나감을 보고 잔나비가 겁이 덜컥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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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豚氏[해돈씨], 천천히 갑시다. 내 몸이 물결에 쓸려갈 것 같소.」 하였다. 海豚[해돈]이 이 소리를 心中[심중]에 「잔나비가 인제는 萬頃蒼波中[만경창파중]에 들어왔으니 인제는 제아무리 날쌔도 내 등에서 도망할 수는 없을 터이지. 그러나 불쌍도 하니 내 계획이나 이야기해 들려 줄까 」 하고 등에 업힌 잔나비를 향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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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납씨, 나는 실상 당신을 죽일 양으로 곱다랗게 속여서 여기까지 데려왔소. 내 室人[실인]의 청을 어기지 못하여.」 하였다. 잔나비가 이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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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海豚氏[해돈씨], 내가 당신이나 당신 室內[실내]에게 무슨 죄를 졌길래 나를 죽일 생각을 하였단 말이오?」 하고 물으매 海豚[해돈]의 대답이, 「 예, 내 사정을 좀 들으시오. 당신이 준 과실을 室人[실인]에게 주었더니, 室人[실인]이 그것을 먹고 이렇게 신선의 술보다도 맛난 과실을 늘 먹고 사는 당신의 심장은 작히나 맛날까 하여 그것을 기어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내었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둘이 상의를 하고 당신을 꾀어낸 것이라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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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퍽 아니된 일이 있소. 그럴진대 왜 우리들이 아직 해변에 있을 때에 그런 이야기를 아니하였소? 나는 염통이 둘이 있어 언제든지 하나를 꺼내서 나무 空洞[공동] 속에 걸어 두오. 그야 남도 아니고 당신 室內[실내] 가 내 염통을 가지고자 할진대, 얼른 드리다뿐이겠소. 어허, 마침 꺼내 놓은 동안에 무심히 오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하나?」 하고 걱정하는 체 하였더니 海豚[해돈]이 듣고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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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당신을 도로 나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니, 그 염통을 나에게 내어주오. 우리 室人[실인]이 괴악하기는 하지마는 어찌갔든지 그것을 먹여서 絶食[절식]을 못하게 해야 할 터이니.」하고 홱 방향을 돌려서 해변을 바라고 헤엄을 쳤다.
167
海豚[해돈]이 해변에 닿기가 무섭게 잔나비는 있는 힘을 다하여 海豚[해돈] 의 등에서 나뭇가지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하고 心中[심중]으로 「어, 큰 厄會[액회]를 치렀다. 자칫하더면 목숨이 없어질 뻔하였다. 어림없이 남을 신용하다가는 큰코를 다치는 것이다. 오늘부터는 새 방침으로 처세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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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豚[해돈]은 멋도 모르고서, 「 잔납씨, 얼른 염통을 내어주오. 室人[실인]을 가져다 먹여서 絶食[절식]을 아니하게 해야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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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즉 잔나비가 깔깔 웃으면서, 「 무슨 어림없는 수작을 하느냐? 이 무도한 놈, 이 둘도 없을 어리석은 놈아, 염통을 둘씩 가지는 놈이 이 천지간에 어디 있다는 말이냐? 잔말 말고어서 가. 또 이 뒤부터는 이 근처에 얼씬도 말아라.」
171
海豚[해돈]이 이 말을 듣고 「응, 잘못 했구나. 心中[심중]에 먹었던 일을 잔나비에게 토파하다니, 내가 과연 바사기였구나.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한 번 잔나비의 신용을 얻어야 하겠다」하고 잔나비에게 말을 붙이 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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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납씨, 당신의 염통을 쓰겠다 한 것은 한때 농담이었소. 농으로 당신의 속을 떠본 것이오. 우리 室人[실인]이 당신의 염통을 먹어서 무엇을 하겠 단말 이오?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을 한 번 뵈어지라 하는 터이니, 어서 손님으로 가십시다.」 하였다. 잔나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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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어. 客談[객담] 말고 어서 가라니까. 그래, 옛말에 『배가 몹시 고프면 누구나 어떠한 惡事[악사]든지 한다. 곤란한 경우를 당하면 누구나 본심을 잃는다. 바라건대 배암에게 가서 무슨 일이 있든지 나는 다시 우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일러라』 하는 것을 모르느냐?」 고 하므로 海豚[해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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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슨 내평이오?」 하고 물어본즉 잔나비가, 옛날에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노리는 배암이 개구리를 우물로 도로 들어오라고 꾀일 때에 개구리가 점잖게 謝絶[사절] 하던 이야기를 하고,
175
「그러므로 나도 너의 집에 가기는 아주 싫다.」 고 대답하였다. 海豚[해돈]이 이 말을 듣고, 「 그런 말씀 말고 기어이 오셔야 하겠소. 당신을 모셔 가지 못하면 내가 恩義[은의] 를 모른다는 죄를 면해 보지 못할 것 아니오? 기어이 못 가겠다하면 나는 絶食[절식]을 해서 自處[자처]하겠소.」 하고 악을 썼더니, 잔나비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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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참 바사기 놈이다. 너 하자는 대로 하면 내가 제二[이]의 람바 갈나가 될 것 아니냐? 너는 『속 없고 귀 없는 바사기 놈은 제 목숨을 잃어도 마땅하다 』 는 옛말을 모르느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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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 무슨 내평이오?」 고 海豚[해돈]이 물은즉 잔나비가, 람바갈나라는 어리석은 당나귀가 승냥이에게 속아서 사자의 곁으로 가서 간신히 도망해 나왔다가 다시 승냥이에게 속고 도로 사자에게로 가서 필경 잡아먹힌 이야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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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海中[해중]으로 들어가기를 마다는 것이다. 제 二[이] 의람바 갈나가 되기 싫어서.」 하였다.
179
그래도 海豚[해돈]은 갖은 꾀를 다 내어서 잔나비를 꾀어내려 하는데, 그 리하는 족족 잔나비가 격언 하나씩을 옮기고 海豚[해돈]은 또 「그것은 무슨 내평이냐」고 물으면, 이의 대답으로 잔나비가 옛날 이야기를 하나씩 한다. 제四[사]권에 적힌 허다한 古談[고담]은 이러한 結構[결구]로써 나오는것이다. 이리한 뒤에 잔나비가 끝으로, 계집의 마음을 믿지 못할 例話[예화] 를 몇 가지 들려서, 海豚[해돈]의 아내의 惡[악]함을 은근히 풍자 하면, 海豚[해돈] 은 이것을 듣고 자기 아내의 不良[불량]함을 깨닫고 잔나비를 집으로 데려가기를 단념할 뿐 아니라, 이제로부터 어떻게 해야 옳을지 처신 할 方路[방로] 를 잔나비에게 물어보았다. 그리하매 잔나비는 교활한 승냥이의 古談[고담]을 하여 들려 주고
180
「집으로 가서 악한 자와 싸우라.」 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海豚[해돈]은 집으로 돌아가서 인정 없고 알은체 많은 아내를 죽이고 편안히 잘 살게 되었다.
181
이것은 <鼈獼猴經[별미후경]>이라 하여 또한 佛[불] 本生譚[본생담]의 一[일] 로 일찍 漢譯[한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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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暴志比丘尼者[유폭지비구니자], 反懷惡信[반회악신], 謗佛獸僧[방불수승], 佛言[불언], 不但今世[부단금세], 過去無數劫時[과거무수겁시], 一獼猴王居在林橋[일미후왕거재임교], 食果飮水[식과음수], 時念一切蚑行喘息人物之類[시염일체기행천식인물지류], 皆欲令度使至無爲[개욕영도사지무위], 時有一鼈以爲知友[시유일별이위지우], 鼈數往來到獼猴所[별수왕래도미후소], 飮食言談說正義理[음식언담설정의리], 其婦見之[기부견지], 謂有婬蕩[위유음탕], 問夫爲何所至[문부위하소지], 答曰[답왈], 吾與獼猴共結親友[오여미후공결친우], 其聰明智慧[기총명지혜], 又曉義理[우요의리], 婦猶不信[부유불신], 因便佯病[인변양병], 困劣着地[곤열착지], 治不肯瘥[치불긍차], 謂夫言[위부언], 吾病甚重[오병심중], 得卿所親獼猴肝[득경소친미후간], 乃當活耳[내당활이], 夫答曰[부답왈], 吾寄身託命[오기신탁명], 云向以活卿耶[운향이활경야], 婦曰[부왈], 夫婦同共一體[부부동공일체], 不念相濟[불념상제], 反爲獼猴[반위미후], 夫敬重婦[부경중부], 往請獼猴共食[왕청미후공식], 獼猴答曰[미후답왈], 吾家陸地[오가육지], 卿在水中[경재수중], 安得相從[안득상종], 鼈曰[별왈], 吾當負卿[오당부경], 獼猴從之[미후종지], 負到中道[부도중도], 語獼猴言[어미후언], 婦病須卿肝[부병수경간], 獼猴曰何不早道[미후왈하불조도], 吾肝掛樹[오간괘수], 不齋將來[부재장래], 從遠取肝[종원취간], 乃相從耳[내상종이], 便還樹上[변환수상], 跳梁歡喜[도량환희], 鼈問曰[별문왈], 卿當應取肝來到我家去[경당응취간래도아가법], 反更跳梁何耶[반갱도량하야], 獼猴答曰[미후답왈], 天下至愚無過於汝[천하지우무과어여], 共爲親友寄身託命[공위친우기신탁명], 還欲見危[환욕견위], 鼈婦暴志是[별부폭지시], 鼈調達是[별조달시], 獼猴王我是[미후왕아시](經律異相[경률이상] 卷二三[권이삼])
183
이 밖에도 두어 가지 異譯[이역]이 있으나 번거로우니 모르는 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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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인도 本地[본지]에서부터 話意[화의]와 物素[물소]에 이렇듯 다소의 차이가 있거니와, 그것이 外處[외처]로 돌아다니는 中[중]에도 그때그 때의 형편을 따라서 또한 여러 가지의 변화를 이루었다. 아주 換骨脫胎[환골탈태] 하여 딴판의 것을 이룬 것은 이제 묻지 말고, 제 간살에 수장만 달리 한 것을 찾을지라도 조선의 鼈主簿[별주부]가 이미 그 하나거니와, 일본의 <海月[해월] 의 심부름>이 또 그 현저한 一波生[일파생]이다. 大意[대의]를 적으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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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王[용왕]의 마누라가 병들어 의사 文魚[문어]를 시켜 치료하나 백약이 무효하매, 文魚[문어]의 말이 「이제는 尋常[심상]한 약은 소용이 없고 잔나비의 生肝[생간]을 써야 하겠으니, 남방으로 잔나비 섬에 가서 그것을 한 마리 잡아 와야 하겠다」고 하였다. 龍王[용왕]의 諸臣[제신] 中[중] 제 일 지위 높은 도미를 불러서 「누가 능히 육지에 나가서 잔나비를 잡아 오겠느냐?」고 물은즉, 그 대답이 「海月[해월](는지렁이)은 발이 넷이라, 육지로 올라가서 자유로 다닐 듯합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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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月[해월]이 뽑혀서 이 소임을 보는데 「대체 잔나비란 어떻게 생겼느냐 」 하 매 도미가 「잔나비란 놈은 얼굴이 새빨갛고 궁둥이도 새빨간 놈 이나무 위에 올라 앉았느니라.」하므로, 이 말만 기억해 가지고 잔나비 섬을 찾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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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나무 위에 두 볼과 볼기짝이 빨간 놈이 동그랗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옳지, 저 놈이로군.」하고 그 밑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龍宮[용궁] 의 장엄함과 百果[백과]의 풍족함을 이야기하면서 한번 구경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였다.
188
잔나비가 과실 많다는 말에 욕심이 움직여 「가자하나 水中[수중]을 어떻게 하랴」하거늘 海月[해월]이 「걱정 말고 내 등에 업혀라.」하여 데리고 龍宮[용궁]으로 향하였다.
189
반쯤이나 왔음직하여 海月[해월]이 말말 끝에 「그대가 生肝[생간]이란 것을 가졌느냐?」하거늘, 잔나비가 야릇이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왜 묻느냐 」 하 매, 는지렁이가, 여기서야 이야기한들 어떠랴 하여 전후 수말을 다말 하였다. 잔나비가 들으매 기가 막히나 곱게 벗어나는 것이 재주라 하여 천연 히 「나 같은 것의 간이 용왕의 要用[요용]이 된다니 큰 영광 이지마는, 그럴진대 진작 그런 말을 하였더면 좋을 것을, 일이 퍽 잘못 되었다」고 하였다. 海月[해월]이 이상히 여겨 「섬에서 이 말을 하면 그대가 왔겠느냐?」하니 잔나비가 「그럴 까닭이 있나. 그런 줄을 몰라서 간을 소나무에 걸어 둔 채 그대로 왔으니 이를 어찌하나?」하였다. 그래서 海月[해월]이 잔나비에게 속아서 도로 데리고 나오매, 육지로 내리기가 무섭게 잔나비가 나무로 올라가서 「간 없이 사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누구를 속이려고 요 놈!」하고 내려올 생각을 아니하므로, 海月[해월]이 분하지마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용궁으로 돌아갔다. 용궁에서는 일각이 三秋[삼추]같이 기다리다가 이 사연을 듣고 용왕이 대로하여 「저 바사기 놈을 모두 덤벼서 능지가 되도록 족여라.」하매, 고기들이 온통 달려들어서 어떻게 두드려 주었든지 뼈가 다 가루가 되어, 그때부터 海月[해월]은 뼈없는 는지렁이가 되었다 함이다.
190
「는지렁이의 심부름」은 그 結構[결구]가 鼈主簿[별주부] 그대로 생겼 음으로써, 그것이 우리 곳을 거쳐 들어갔음을 얼른 짐작케 함이 있다. 그런 데이 古談[고담]과 <因幡[인번]의 토끼> <똑똑山[산]>과의 사이에 맥락이 서로 닿음을 부인치 못할진대, 그것이 日本化[일본화]하여 그 古史[고사] 중에 攙入[참입]되기까지에는 꽤 오랜 세월을 요하였을 것이요, 또 이것이 과연 반도 경유의 것일진대, 반도에 있어서의 그 消化[소화]와 變作[변작] 이또한 상당한 기간을 지냈을 것이 무론이니, 龜兎談[귀토담]의 오랜 傳來[전래] 임을 이에서도 짐작할 것이 있다.
191
조선편의 傳承[전승]도 또한 한 가지뿐은 아니다. <토끼 눈알> 같은 것도 또 그 변형의 하나이다.
192
물고기의 大王[대왕]이 海中[해중]으로 다니면서 벌레를 주워 먹다가 낚시가 걸리매 끈을 잡아 끊고 도망하기는 하였으나, 상처가 덧나서 견딜 수 없으므로 諸臣[제신]을 불러 의논한즉, 鼈主簿[별주부]가 나와서 토끼 눈알 로만든 고약이라야 나으시리라 하므로, 鼈主簿[별주부]로 差使[차사]를 정 하여 토끼를 잡아들이라 하였다. 鼈主簿[별주부]가 해변에 나와 본즉 마침 토끼가 한 마리 놀고 있으므로, 할 수 있는 대로 고개를 길게 빼어 사방을 둘러보는 체하였더니, 토끼가 알아보고 강동강동 뛰어 와서 「자라님 자라님, 무엇을 그리 보시오?」하거늘, 자라가 「육지의 경치를 구경하오.」하였다. 토끼가 「육지의 경치를 보려거든 저 산으로 올라가 보시지요. 내가 指路[지로] 해 드리리까?」하거늘, 자라가 고개를 흔들며「그만 보아도 좋소. 海中[해중] 의 경치에 비하면 육지의 경치는 아주 하잘것이 없소.」하고, 海中[해중] 의 景槪[경개]를 입에 침이 없이 일컬으매, 토끼가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자라가 제 등에만 올라타면 손쉽게 간다 하여, 토끼를 태워가지고 용궁으로 데리고 들여다가 좋은 의자에 앉혀 놓았다. 토끼가 앉아서 듣자니까, 바깥이 수런수런하면서 「토끼 눈알」을 어쩐다는 소리가 들리므로, 곁에 있는 고기더러 물은즉, 제 눈을 뽑아서 上監[상감]의 상처에 쓸 고약을 만드느니라고 하므로, 토끼가 깜짝 놀라서 벗어날 꾀를 생각하였다.
193
토끼가 천연히 「내 눈알이 약이 되신다니 영광이지마는, 오늘 눈알로는 약이 안 되시겠으니 어쩌리까?」 하니 모든 魚臣[어신]들이 왜 그러냐 하 거늘, 토끼가 시치미를 떼고 「나는 눈알 두 쌍을 가지고 쓰는데, 하나는 本色[본색] 의 눈알이요, 하나는 수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은 水中[수중]으로 들어오길래 다칠까보아서 本色[본색] 눈알은 모래 속에 감추고 수정 알을 넣고 왔읍니다그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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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왕과 諸臣[제신]이 다 낙심을 하였지마는, 하는 수 없으매 자라가 토끼를 도로 업고 本色[본색] 눈을 가지러 나오게 되었다. 자라가 해변으로 나오매, 토끼가 강동 뛰어내려서 「눈알을 두 쌍 가진 놈도 있더냐? 내 눈알이 소용되거든 모래 속을 자세 자세 찾아보아라.」하고 그만 장 짜를 주었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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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物素[물소]는 잔나비가 토끼도 되고 간이 눈알도 되는 것처럼 時處[시처]를 따라 다름이 있지마는, 속여서 남을 골리 려다 가되 속아 혼이 뜬다 하는 모티프로는 똑같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생각 하여도 한 근본 설화가 약간씩 변통되어 여기저기 傳說[전설]되는 것임을 앙탈 하기 어렵다. 잔나비 있는 인도에서 생긴 이야기지마는, 없는 조선에 와서는 좀 거북하매 흔한 토끼가 대신 나오게 되고, 일본에는 잔나비가 있으매 도로 제 本色[본색]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본디는 조선에서 변한 토끼대로 수입 되었던 형적을 <因幡[인번]의 토끼>와 및 그 一轉[일전]한 形[형]인 <딱한 山[산]>에서 살필 듯함을 주의할 것이니, 시방 일본에 행하는 <海月[해월] 의 심부름>이란 古談[고담]은 대개 조선으로서 건너간 原話[원화]에 佛典[불전]에 인한 訂正[정정]과 俗傳[속전]에 인한 添着[첨착]이 더한 新形[신형]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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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原話[원화]에 있는 龍王[용왕](과 및 그 몸받은 龜[귀])과 그 對手[대수] 인 猿[원]은 便是[변시] 다른 인도 우화에 있는 사자와 豺[시]에 당하는 것으로, 전자는 强而愚[강이우]한 主人[주인]이요, 後者[후자]는 弱而智[약이지] 한 勝利者[승리자]인 表象[표상]을 짓는 것이니, 이것이 서양으로 들어가서는 獅子[사자] 對[대] 狐[호]가 되고, 支那[지나]로 들어가서는 虎[호] 對[대] 狐[호]가 되고 (狐假虎威[호가호위]에서처럼), 조선으로 들어와 서는 虎[호] 對[대] 兎[토]로 변하였을 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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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조선에서는 虎[호]가 가장 巨猛[거맹]한 것인데 兎[토]가 가장 孱弱(잔약) 하고 잔꾀 있어 보임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의 동물 설화에서는 언제든지 토끼가 범을 속이는 승리자로 나오니, 이를테면 범의 꽁지를 개울물에 얼려서 뽑던 토끼와, 범에게서 豆腐[두부] 일곱 채를 다 빼앗아 먹던 토끼와, 범보다도 나이가 많다 하여 그 술을 빼앗아 먹던 토끼와, 범에게 볶은 바둑돌 먹이던 토끼와, 범을 갈대밭에 넣고 불지르던 토끼 같은 것이 다그 좋은 例症[예증]이다. 龜兎談[귀토담]에 나오는 토끼는 요하건대 智力的[지력적] 승리자로는 토끼를 가합하게 아는 民俗[민속]으로서 나온 것이요, 결코 함부로 아무것하고 바꾼 것 아님을 짐작할 것이다(虎[호]와 兎[토] 의 例話[예화] 는 朝鮮民俗資料[조선민속자료] 第二篇[제이편] 朝鮮童話集[조선동화집], 韓沖編[한충편] 朝鮮童話[조선동화] 우리 동무, 傳說[전설] 第三卷[제삼권] 第一號[제일호] 中村氏[중촌씨]의 報告[보고] 등을 참조하라).
199
조선의 虎兎角智[호토각지] 모티프 중에서 콩 볶아 주마고 범을 숲 속에 들어 앉히고 토끼가 그 숲에 불을 지르는 一段[일단]은 일본 「かちかち山[산] 」에 있는 狸兎[이토]의 相軋[상알]과 부합함을 보니, 대개 조선으로서 건너간 母話[모화]가 虎[호] 없는 일본이라, 편의상 狸[리]가 이것을 대신 함일 것이요, 또 나아가서는 일본의 <因幡[인번]의 兎[토]>와 내지 臺灣[대만] 의 <穿山甲[천산갑]에게 속은 兎[토]>하고 관련함을 보니, 대개 어느 한 근 원지에서 생긴 一母話[일모화]가 이그러지기도 하고 부스러지기도 하고 범벅 되 기도 하여 이렇게 저렇게 여기 저기 傳承[전승]됨일까 한다.
200
이 경우에 가장 이 고찰의 큰 버팀되어 주는 것이 토끼라는 共通物素[공통물소] 임은 누구나 보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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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설화 덩어리의 一分段[일분단] 이라 할 것을 조선으로부터 일본을 뛰고 대만을 지나서 남양의 뉴 우지 일 랜드에가 서 발견함이다. 뉴우지일랜드의 동물 설화는 사자와 兎[토]로써 대표 되는데, 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202
토끼가 사자하고 친하게 지내더니, 한 번은 사자에게 학대를 받고 원망하는 마음이 나서 원수를 갚으리라고 결심하였다. 하루는 비가 죽죽 오매 토끼가 사자에게 향하여 집을 짓고 비를 피하기를 제의하였더니, 사자가 그 리하자 하고 저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토끼 하는 대로 放任[방임]하여 두었다. 교활한 토끼가 사자의 모르는 결에 그 꼬리를 집어다가 假家[가가] 의 들보와 기둥에 친친 동여매어서 꼼짝 못하고 굶어 죽는 것을 보고 잘 코 사니하였다.
203
이 이야기는 우리 전승에 있는 토끼가 범의 꼬리를 얼려서 꼼짝 못하게 하고 원수를 갚는 것과 대개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을 듯하니, 꾀있는 승리자로 토끼가 뽑힘이 꽤 넓은 범위에 행함인 줄을 짐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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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 전승에 있는 토끼가 농군의 그물에 걸려서 죽은 시늉을 하여 살아나는 一段[일단]은(朝鮮童話集[조선동화집] 七[칠] 參照[참조]) 남 슬라브 전승에 있는 여우의 죽은 시늉하고 얼마만큼 관계가 있을 듯한 것이니, 대개 죽는 시늉이 동물의 智力的[지력적] 一例套[일예투]인 외에 두 설화의 근원이 본디 동일한 一證左[일증좌]도 됨을 재미있다 할 것이다.
206
이로부터 이 一說話[일설화]를 중심으로 하여 그 派生[파생] 관계와 변형 상태를 뒤져 봄은 재미있는 일이로되, 너무 지리하니 다른 기회로 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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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때까지 漫談[만담] 雜說[잡설]한 것을 낱낱이 조리를 찾고 계통을 세워 論辯[논변]함도 전문적이요 또 煩碎[번쇄]스러우니, 여기서는 抑遜[억손] 할 밖에 없다. 다만 시방까지 <토끼타령>을 통하여 게둥대둥한 잔소리의 論明[논명] 코자 한 요점을 따서 적으면 이러하다.
208
세계 동물 설화의 대본원은 인도에 있다(거기가 원산지가 아닐지는 몰라도 원산지 로서의 本系[본계]되는 전승은 인도에 있음이 분명하다).
209
인도의 동물 우화가 사방으로 퍼져서 인류의 설화계를 크게 질번질 번하게하였는데, 그 徑路[경로]는 반드시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210
인도의 동물 우화는 동방으로 진작부터 流來[유래] 移入[이입] 되었는데, 그 始原[시원]은 또한 불교 이전에 있었을 것을 몇 가지 證迹[증적]으로 살필 수 있다.
211
인도적 동물 우화는 조선에도 아득한 옛적부터 여러 기회로 유입되니, 그것은 또한 반드시 불교 매개와 支那[지나] 경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212
<三國史記[삼국사기]>의 龜兎談[귀토담]은 진작부터 조선에 유입하여 종교적 의미와 관계 없는 순연한 一民話[일민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 독특한 형식을 이루어서 일본 기타에 유포되었다.
213
요하건대 인류의 문화는 그 본질과 原始態[원시태]에 있어서 애초부터 세계적 ㆍ 전 인류적으로 생겨서, 천연과 인위의 何種[하종]을 물론하고 아무 것도 없었으니, 우선 조선의 문화와 조선인의 생활 내용으로만 보아도 동방의 隱士國[은사국] 이니, 深閨[심규]니 하여 문을 꼭 닫고 혼자 산 듯 하면서, 실상은 까마아득한 옛날의 옛날로부터 세계적 養分[양분]으로써 골고루 자기 생활의 내용을 滋潤[자윤]하여 왔는데, 이것은 모든 방면에서 다 適例[적례] 를 지적할 수 있거니와 설화도 그 중의 하나임을 이상에 약간 설명 한다 한 것이다.
214
가만히 살펴보면 미상불 우리 소유의 중에는 언어에고 습속에고 전승에 고 제 작 에고 애제와 진작부터 인도ㆍ波斯[파사]도 들어와 있고, 希臘[희랍] ㆍ羅馬[라마](로마) 도 들어와 있고, 埃及[애급] ㆍ巴比倫[파비륜](바빌로니아)도 들어와 있고, 北陸[북륙]ㆍ南洋[남양]도 들어와 있어서, 무엇으로나 세계의 기초 위에 조선이 괴어 있음을 알지니, 이 이런 줄을 모르고 나는 세계를 모릅네 하고, 조선이 따로 있다고만 하든지, 혹 새삼스레 세계를 뒤집어 쓰고 조선을 못쓸 것처럼 내어던지든지 함은, 둘이 다 鼈主簿[별주부] 처럼 「간 없는 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다행일 것이다.
215
마지막에까지 여러 가지 인용의 便[편]을 얻게 한 선배에게 경의를 표한다.
216
<一九二七年[일구이칠년] 二月[이월] 四日[사일] 東亞日報[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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