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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끼의 사후 1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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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6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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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의 사후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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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 1주기,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하고 달력을 쳐다보니 과연 오래지않아 6월 18일이 온다.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증오의 날’ 하고 도사(悼詞)를 쓰던 것이 참말로 어저께 같은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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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어떤 것을 계기로 마음에 새로운 결심을 안게 되고 그 때에는 굳게 먹었던 결심이 시일이 지나면 그대로 잊어버려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조차 가질 수 없게 되는 수가 많다. 어떤 기회로 이미 ‘망각의 하천’ 속에 흘러버리려는 그 ‘결심’이 무엇에 의하여 건들리우지나 않을까.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며 ‘결심’의 주위에 발이 갈사 손이 대일까 겁을 안으며 지내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무슨 몽치로 머리를 맞은 듯이 벌떡 놀래어 눈을 뜨면 ‘아 - 벌써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흘렀는가’ 하고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흔들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범속한 우리 청년들은 다시 부끄러움을 느끼며 양심을 가책하고 새로운 결심을 제것으로 하고 다시 이 결심은 그대로 흘러서 ‘망각의 하천’으로 들어가버림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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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가 죽었다는 보도를 받고 나의 붓이 먼저 그의 슬픔에 바치고자 한 말은 책상 위에 높이 쌓여 있는 기십권의 그의 문학에 대해서보다도 그리고 68년간의 고난에 찬 그의 생애에 대하여서보다도 무엇보다도 그의 가슴에 차 있는 ‘사랑’과 ‘미움’ - 이 두 개의 격렬한 감정에 대하여서이었다. 참말로 그의 거대한 문학적 공로에 대한 감사라든가 혹은 그의 전생애를 뚫고 있는 혁혁(爀爀)한 공적에 대하여 평론하는 가라앉은 심리상태는 ‘죽었다’는 비보를 받고 얼마를 지내인 뒤에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냉정한 ‘이성’이지 결코 비보와 동시에 가슴에 북받치는 앙양(昻揚)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 때에 우리는 혹은 완전히 생리적인 동물로만 환원되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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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애와 증’의 두 감정은 결코 우리들이 그것을 소지하는 것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만한 비속한 것은 아닐까한다. 왜냐하면 고리끼 자신 사랑과 미움은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최귀最貴한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고리끼 자신이 이 두 개의 감정에 가장 철저하였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증오의 감정에 베일을 씌우는 것이 도덕과 사교성이 된 것은 타협의 미덕이 시민계급에 의하여 귀여움을 받고 허위의 사랑을 아름답게 여기는 그릇된 윤리관이 유행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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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에 대한 증오가 그 사람이 속하여 있는 전계급에 혹은 집단에 대한 미움으로 높아질 때에 그것이 비로소 문학을 낳고 그리고 어떤 계급에 대한 미움으로 높아질 때에 그것이 비로소 문학을 낳고 그리고 어떤 계급에 대한 진실로 의협적(義俠的)인 익애(溺愛)가 위대한 예술을 낳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학은 타협에서는 생길 수 없으며 예술은 비판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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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고리끼가 죽었을 때 그가 그 연세가 되어서도 아직 버리지 아니한 이 애증에 대하여 먼저 육체적인 것을 느낀다. 노경(老境)에 들면 청년적 열정을 버리는 것이 고상한 절조로 되어 있고 타협과 협조는 임종을 장식하는 화환(花環)이 되는 것이 흔하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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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걸어온 60여년의 뼈에 사무치는 과거를 회상하여 자신을 입지전중(立志傳中)의 인(人)으로 만드는 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 속에서 일층 더 애와 증을 철저히 하여 아직 이 감정을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청년에게 눈을 열어주는 임종이 우리에겐 고귀한 것이다. 고난과 싸워온 것에서 강철같이 굳은 의지를 보이려고 하고 얼마나 가난하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속에서 인내력과 근면을 가르치려 하고 시민사회의 오욕을 말하면서 유혹에 부서진 자신을 변호하는 문학은 수신서와의 교우를 권하는 불쌍한 시민에게로 가는 선물이다. 자기가 얼마나 불칙스럽게 생활하여왔는가를 말하는 속에서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투철하게 가르치려는 교사 - 이 사람만이 진실로 높은 마음의 교사이다. 그리하여 소멸하려고 하면서 최후로 발악하는 것에 대하여 미움을 철저히 하고 자라나는 미래에 대하여 사랑을 두터이 하는 것에서 강렬한 육체적인 것을 찾고자 한다. 그러므로 고리끼의 문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그의 고귀한 감정을 실천하는 것이 젊은 청년들의 과제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흩어지는 결심이었고 다시 선양(宣揚)되어야 할 새로운 정열이었다. 잊어버려고 없어져도 다시금 매력을 가지고 내 가슴에 안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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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7년 6월호, 막심 고리끼 사후 1주년 특집 중)
【원문】고리끼의 사후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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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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