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僧[승] 無學[무학]이 雪峰山[설봉산]의 토굴 중에 居[거]하는데, 太祖[태조]께서 微時[미시]에 찾아가 물으시기를, 꿈에 헌 집 속에 들어가서 서까래 셋을 짊어지고 나왔으니 그것이 무슨 징조일까 한대, 無學[무학]이 賀禮[하례]하여 가로되, 몸에다 서까래 셋을 짊어진 것은 곧 임금 王[왕]자 올시다 하였다. 또 물으시되, 꿈에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진 것은 어떻다 할고 하신대, 곧 대답하기를 「花飛[화비]하니 終有實[종유실]이요, 鏡落[경락]하니 豈無聲[기무성]이리까」 하거늘, 太祖[태조] 大喜[대희]하여 곧 그 땅에 절을 이룩하고 이내 釋王[석왕]이라고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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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시방 安邊[안변] 釋王寺[석왕사]의 緣起[연기] 전설이 있으니, 곧 無學[무학]이 李太祖[이태조]의 王字夢[왕자몽]을 해석한 까닭에 인하여 절 이름을 釋王[석왕]이라고 하였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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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釋王[석왕]이라 함은 불경에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을 釋雄[석웅]이니 覺王[각왕]이니 하는 유례로, 석가의 정신 세계에 계심이 轉輪聖王[전륜성왕]의 지위에 비할 것이라는 뜻을 쓴 것이 의심 없으며, 사실로 말하여도 雪峰山[설봉산] 釋王寺[석왕사]는 無學[무학] 이전부터 있는 것이매, 釋王寺[석왕사]의 시초와 및 그 명의가 無學[무학]이 太祖[태조]의 王夢[왕몽]을 해석함에서 나왔다 하는 말은 실상 孟浪無據[맹랑무거]한 한 야인의 말일 뿐 입니다. 또 이렇게 존귀한 지위에 있는 이나, 또 후일 귀히 될 이가 술객의 곳에 가서 破字占[파자점]을 치는데 무슨 자를 써 내놓아도 君王[군왕]으로 풀었다 하는 투의 이야기는 옛날부터 두루 유행하여 내려오던 이야기 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權子[권자]〉란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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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송]나라 말년에 謝石[사석]이라는 破子[파자] 명인이 있었는데, 한 번 高宗皇帝[고종황제]가 微行[미행]으로 다니다가 만나매, 問字[문자]를 써주고 풀라 하니 石[석]이 한참 생각하다가 가로되, 좌로 보아도 君[군] 같고 우로 보아도 君[군] 같으니 아마 범인은 아니시지요 하고 암만해도 판단치 못하겠다 하면서, 다시 한자를 쓰시라 하여 高宗[고종]이 지팡이로 땅바닥에 一[일]자를 드윽 그으니, 石[석]이 가로되 土上[토상]에 一[일]을 더하면 王[왕]이라, 예, 우리 君王[군왕]이심이 분명합니다 하고 드디어 拜伏[배복]하거늘, 高宗[고종]이 돌아와서 石[석]을 불러 벼슬을 시키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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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類[류] 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또 거울이 떨어지고 꽃이 지는 꿈을 푼 것으로 말하면 〈慵齋叢話[용재총화]〉(卷六[권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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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유생 三[삼]인이 과거를 보러 가려 하는데, 一[일]인은 꿈에 거울이 땅에 떨어지고, 一[일]인은 꿈에 艾夫(애부)를 門上[문상]에 걸고, 一[일]인은 꿈에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짐을 보고 함께 解夢匠[해몽장]이에게로 갔더니, 주인이 없고 그 아들만 있거늘, 三[삼]인이 꿈 이야기를 하고 풀어 보라 하니, 아들은 점하기를 三[삼]자가 다 상서롭지 못한 일인즉 아마 낭패시리다 하였다. 고대 아비가 돌아와서 말을 듣더니, 그 아들을 꾸짖고 詩[시]를 지어주어 가로되, 「艾夫人所望[애부인소망]이요, 鏡落豈無砧[경락기무침]가 花落應有實[화락응유실]이니, 三子共成名[삼자공성명]하리라」하되, 三[삼]인이 이번에 다 登弟[등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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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과 똑같은 사설입니다. 이 이야기가 본래 민간에 널리 떠돌아다니는 例套[례투]의 이야기임은 근래 〈春香傳[춘향전]〉의 옥중 해몽이 역시 이것을 재료로 함에서 徵驗[징험]할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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