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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神典[단군신전]에 들어 있는 歷史素[역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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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國[환국]의 現實的[현실적] 位置[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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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都邑[단군도읍]의 歷史[역사] 地理學的[지리학적] 觀察[관찰]
1. 桓國[환국]의 現實的[현실적] 位置[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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劈頭[벽두] 第一[제일]의 問題[문제]는 朝鮮民族[조선민족]의 淵源[연원]에 관한 것입니다. 神典[신전]을 據[거]하건대, 壇君[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一人群[일인군]은 본디 桓國[환국]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니, 이 桓國[환국]을 홑으로 神話的[신화적]으로만 해석하면, 人間[인간]에 대한 天國[천국]의 表示[표시]라 하고 말겠지마는, 朝鮮民族[조선민족]으로 하여금 이러한 神話[신화]를 가지게 함에는 진실로 그 背後[배후]에 歷史的[역사적] 動機[동기]가 있음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읍니다. 天上[천상]과 人間[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든지, 이 一段[일단]의 骨子[골자]는 朝鮮人[조선인]은 移住[이주]한 者[자]라 하는 것 ─ 줄잡아도 壇系[단계]의 人群[인군]은 본디 他方[타방]으로부터 東方[동방]에 移住[이주]해 온 者[자]라 하는 事實[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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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類[인류] 起原[기원]이 一元[일원]이었고 多元[다원]이었고는 여하간에, 본디 극히 狹小[협소]한 區宇[구우]에서 생겨난 少數[소수]의 人群[인군]이, 生活上[생활상]의 필요한 興味的(흥미적)의 欲求[욕구]로써 차차 四方[사방]으로 散布[산포]한 것이 事實[사실]이매, 어느 民族[민족]이 본디 移住者[이주자] 아닌 이가 있으리오마는 이를테면 그 國士[국사]에 있는 歷史[역사]의 主人[주인]인 與否[여부]와 같은 무슨 標準[표준]으로써 原住[원주]ㆍ移住[이주]의 區別[구별]을 세울 수 있으니, 要[요]하건대 時間[시간]의 先後[선후]와 文化[문화]의 優劣[우열]에 依[의]하는 相對的[상대적]의 구별입니다. 그런데 朝鮮[조선] 國土[국토]에 있는 朝鮮人[조선인]으로 말하면, 原住民[원주민] 問題[문제]는 여하간에 어느 年代[연대]에 다른 地域[지역]으로서 옮아온 者[자]요, 또 그 本源地[본원지]는 比較的[비교적] 遠隔[원격]한 곳까지 溯究[소구]할 수 있음을 種種[종종]의 證迹[증적]이 暗示[암시]하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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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보다도 두드러진 證迹[증적]은 그 여러 支派[지파]의 肇國談[조국담] 중에 한결같이 亡人素[망인소]라 할 모티브를 가진 것입니다. 夫餘[부여]는 槖離國[탁리국]은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東夫餘[동부여]는 北夫餘[북부여]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高句麗[고구려]도 北夫餘[북부여]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百濟[백제]는 高句麗[고구려]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馬韓[마한]은 朝鮮[조선]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新羅[신라]는 馬韓[마한]과 辰[진]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라면, 일변 朝鮮[조선]은 殷[은]의 亡人[망인]이 세운 바요, 壇君[단군]도 末年[말년]에는 亡人[망인]으로 莊唐京[장당경]에 一國[일국]을 다시 세웠다 함이 다 그 例證[예증]입니다. 그런데 古記[고기]에 나오는 亡人[망인]이란 것은 다름아닌 移住者[이주자]란 의미입니다. 古代[고대] 說話[설화]의 通例[통례]로 國土[국토]도 人格視[인격시]하고 集團[집단]도 個人化[개인화]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마는, 이른바 어느 亡人[망인]이라 함은 그것이 朱蒙[주몽]이나 溫祚[온조] 같은 個人[개인]일 것이 아니라 실상 個人[개인]으로써 표현된 民族的[민족적] 一集團[일집단]일 것은 말할 것까지 없을 일입니다. 그런데 이 亡人[망인] 傳說[전설]의 꼭지를 짓는 것이 壇君神典[단군신전]에 나오는 桓雄[환웅]일 것이니, 여기는 亡人[망인]이란 句語[구어]가 나오지 아니하였을지라도, 桓國[환국]으로부터 神市[신시]로의 下降[하강]은 또한 移住者[이주자]로의 一亡人[일망인]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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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民族[조선민족]의 移住者[이주자] 체는 言語[언어]의 위에도 드러났다 하겠읍니다. 그 一例[일례]는 國邦[국방]을 「나라」라 함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바에는 「나라」의 語原[어원]은「나르」(運移[운이])에 있으니, 飛翔[비상]을 「날」이라 하고, 渡津[도진]을 「나루」라 함과 한가지로, 「나라」의 古義[고의] 중에는 移動[이동]이란 觀念[관념]이 主要[주요]한 내용을 構成[구성]해 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그래서 이 말은 덩어리 덩어리 옮아 다니는 상태를 이루는 것으로, 國家生活[국가생활]의 특색이 集團的[집단적] 移動[이동]에 있을 때에 성립되었을 것이요, 그것이 牧畜經濟[목축경제]에 甚深[심심]한 관계를 가졌을 것은 무론입니다. 支那[지나]의 古史[고사]에 西北方[서북방] 遊牧民[유목민]의 集團[집단]을 「行國[행국]」이라 한 것이 이 뜻에 合[합]하는 命名[명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朝鮮語[조선어]의 「나라」는 朝鮮人[조선인]이 그 原住地[원주지]로부터 「나라」의 形態[형태]로 이쪽으로 發展[발전]하던 事實[사실]의 表象[표상]이라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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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移動[이동]해 나오던 그 本源地[본원지]는 어디일까? 太伯山[태백산]을 此方[차방]이라하면, 彼方[피방]인 桓國의 客觀的[객관적] 位置[위치]는 那邊[나변]에 當[당]할까? 이것은 첫째 朝鮮[조선] 古史[고사]에 나오는 모든 亡人傳說[망인전설]을 會通[회통]하여, 거기 共通方向[공통방향]이 있고 없음을 살피고, 그리하여 그것이 있다 하면 그 결과를 존중할 것입니다. 上文[상문]에 列擧[열거]한 것만 가지고 볼지라도, 거기는 분명히 一定[일정]한 方向上[방향상] 範疇[범주]가 있음을 얼른 看取[간취]할 것이니, 그것은 하나도 遺漏[유루]될 것 없이 北[북]으로서 南[남]으로와, 南[남]으로서 東[동]으로의 指嚮[지향]입니다. 그런데 古代[고대]의 事實[사실]에 있어서 西[서]와 北[북]이 서로 통함을 아울러 생각하면, 그 本源地[본원지]를 暗示[암시]하는 上[상]에 西[서]와 北[북]이 가지는 地位[지위]를 넉넉히 짐작할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桓國[환국]의 客觀的[객관적] 置位[치위]를 求[구]한다 하면, 당연히 北[북] 又[우] 西方[서방]에 擬[의]할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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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또한 言語[언어]의 위에 一證迹[일증적]을 볼 수 있읍니다. 어느 國語[국어]에 있는 方向[방향]의 名稱[명칭]이 그 民族[민족] 移動[이동]의 방향을 표시함은, 일찍부터 學者[학자]의 注意[주의]를 끄는 點[점]이어니와, 이제 이것을 朝鮮語[조선어]에 徵[징]하건대 첫째, 南[남]을 「앏」이라 하여 前[전]과 한가지이며, 北[북]을 「뒤」라 하여 後[후]와 한가지임은 그가 본디 北[북]으로부터 南方[남방]을 향하여 進行[진행]한 者[자]임을 나타내며, 또 風向[풍향]의 名稱[명칭]에 떨어진 方位[방위]의 古語[고어]를 살피건대, 東風[동풍]을 「새파람」이라 하고, 南風[남풍]을 「맛파람」이라 하고, 西風[서풍]을 「한의」라고 하고, 北風[북풍]을 「뒤울」이라 하니, 朝鮮人[조선인]이 東方[동방]을 新世界[신세계]로 알고, 南方[남방]을 맞은편 맞이해주는 곳으로 안, 또한 그 出發[출발]이 西[서] 又[우] 北[북]에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중에도 西方[서방]의 「한의」의 이름이 있음을 특히 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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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것을 文化的[문화적] 類緣關係[유연관계]에 있는 隣住民族[인주민족]의 古史[고사] 說話上[설화상]에 보건대, 蒙古[몽고]의 國祖[국조]는 騰吉思[등길사]라는 물건을 넣어서, 幹難河[간난하] 源頭[원두]의 不兒罕山前[불아한산전]에 住着[주착]한 者[자]라 하고, 日本[일본]의 國祖[국조]는 日向[일향]으로부터 吉備[길비]를 거쳐 大和[대화]의 畝火山下[무화산화]에 와서 住着[주착]한 者[자]라 하여, 본디 西方[서방]으로부터 現在[현재]의 國土[국토]로 옮아 왔다 하는 點[점]에서 一致[일치]하며, 그리고 蒙古[몽고]와 日本[일본]의 民族[민족]의 本源[본원]이 天[천]으로부터 왔다 하는 點[점]에서도 一致[일치]를 보입니다. 이렇게 蒙古[몽고]나 日本[일본]의 祖先[조선]이 天[천]으로서 人間[인간]에 下降[하강]하여 나라를 만들되, 西[서]으로서 東[동]으로 向[향]하였다 함은 실상 공통한 事情[사정]에 因[인]한 同一[동일]한 古史[고사]를 말하는 것이니, 事實[사실]에 있어서는 같은 系統[계통]인 이 여러 民衆[민중]의 移動[이동] 大幹線[대간선]이 西[서]으로서 東[동]을 가리켰음에 말미암음이며, 이네들의 古史[고사] 神話[신화]는 대개 이렇게 생긴 根本的[근본적] 一古史[일고사] 說話[설화]에, 地理的[지리적] 特殊[특수] 分子[분자]만을 더하여 各別[각별]히 便承[편승]하는 것에 不外[불외]합니다. 길다란 이 線上[선상]의 한 토막되는 朝鮮人[조선인]의 移動方向[이동방향]이, 또한 이 大勢[대세]에 順[순]하여 西[서]으로 東[동]으로, 東[동]에서 地頭[지두]를 만나 南[남]으로 겪였을 것은, 이 理由[이유]로써도 容易[용이]히 추측할 수 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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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朝鮮[조선]의 母國[모국]을 桓國[환국]이라 하여, 그 客觀的[객관적] 實土[실토]를 찾는다 하면, 대체 어디를 指目[지목]함이 可[가]할까 朝鮮民族[조선민족]의 搖籃地[요람지]는 어디로써 擬[의]할까? 半島[반도]로써 말하면 滿洲[만주]ㆍ蒙古[몽고]의 大陸[대륙] 方面[방면]이라 하겠지마는, 大陸[대륙]에서는 다시 어디를 생각할까? 이제 이것을 細論[세론]할 겨를이 없지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서 蒙古[몽고]의 大沙漠[대사막]을 가로 질러서 天山[천산]을 끼고 「파미르」를 넘고, 裏海[이해](카스피해)를 돌아서, 黑海[흑해] 亞拉比亞海[아랍비아해]의 사이에 그 地點[지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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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래에 와짝 盛[성]해진 小亞細亞[소아세아]ㆍ中央亞細亞[중앙아세아] 내지 蒙古[몽고] 沙漠[사막]의 考古學的[고고학적] 發掘事業[발굴사업]이, 이에 대하여 차차 큰 光明[광명]을 가져오게 될 줄을 믿으며, 이때까지의 業績[업적]의 中[중]에도 「라파엘 팜페리」氏[씨] 一行[일행]이 「카스피」海[해] 東方[동방] 「투르케스탄」의 「아시하바드」附近[부근]인 「아나우」에서 발굴한 紀元前[기원전] 八[팔]천년 以來[이래]로 推定[추정]되는 遺蹟[유적]과, 佛國[불국]「되 모간」氏[씨]가 波斯灣頭[파사만두]에서 千里[천리]쯤 올라가서 있는 「수사」에서 발굴한 紀元前[기원전] 一[일]만 八[팔]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 遺蹟[유적] 등은 가장 注意[주의]에 値[치]하는 것이며, 또 아직 대단치 아니하지마는, 近數年間[근수년간] 米國[미국]ㆍ露國[노국] 등의 蒙古[몽고] 沙漠[사막]의 探究[탐구]는, 西方[서방]과 東方[동방]과의 種族的[종족적]ㆍ文化的[문화적] 連絡[연락]의 逕路[경로]를 밝히는 위에 많은 期待[기대]를 받을 일입니다. 아직은 朝鮮民族[조선민족]의 母國[모국]은 西方[서방] 黑海[흑해] 附近[부근]의 어느 地域[지역]이요, 桓[환]이란 이름은 薰粥[훈육] 凶奴의 薰[훈]ㆍ凶[흉]과 시방 말의 「한울」의 「한」하고 近親[근친] 關係[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일찍 天國[천국]으로 생각되는 西方[서방] 亞細亞[아세아]의 어느 地點[지점]인 民族的[민족적] 大故鄕[대고향]에 주었던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만족할 밖에 없읍니다(拙著[졸저] 兒時朝鮮[아시조선] 第三章[제삼장]ㆍ四章[사장]ㆍ十六章[십육장] 등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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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記[고기]를 據[거]하건대, 天帝子[천제자] 桓雄[환웅]의 下降地[하강지]는 太伯山[태백산]이요, 桓雄[환웅] 子[자] 壇君王儉[단군왕검]의 建國地[건국지]는 白岳[백악]이요, 또 壇君[단군]은 終焉[종언]에 白岳[백악]의 神[신]으로 遷化[천화]하였다 하여, 壇君[단군] 一代[일대]의 活動地[활동지]에는 白[백]이란 이름이 附隨[부수]하여 있음을 봅니다. 일변 朝鮮[조선]의 山經[산경]을 보건대, 全域[전역]의 華盖[화개]인 白頭[백두](長白[장백]ㆍ太白[태백])로 부터 太白[태백]ㆍ小白[소백]ㆍ白雲[백운]ㆍ白馬[백마] 등 白[백] 及[급] 其類音[기류음]의 名號[명호]를 띤 山[산]이 所在[소재]에 相望[상망]하고, 또 그러한 山[산]은 寧邊[영변]의 妙香山[묘향산] (古名[고명] 太伯[태백])이 古朝鮮域[고조선역]인 關西[관서]에서, 咸興[함흥]의 白雲山[백운산]이 沃沮域[옥저역]인 關北[관북]에서, 文化[문화]의 九月山[구월산](一名[일명] 白岳[백악])이 樂浪[낙랑]ㆍ帶方域[대방역]인 海西[해서]에서, 漢陽[한양]의 白岳[백악]이 百濟域[백제역]인 京畿[경기]에서, 奉花[봉화]의 太伯山[태백산]이 新羅域[신라역]인 嶺南[영남]에서, 똑같이 대개 一定[일정]한 地域內[지역내]에 있어서의 가장 高大[고대] 嚴威[엄위]한 山岳[산악]이요, 또 高大[고대] 嚴威[엄위]한 標幟的[표치적] 山岳[산악]으로, 시방 白字[백자] 드는 山名[산명]을 가지지 아니한 者[자]는 그 主峰[주봉]에라도 白[백]ㆍ白雲[백운]이나 그 轉化音[전화음]인 毘盧[비로]ㆍ風流[풍류] 등의 名號[명호]가 붙어 있으니, 三角山[삼각산]의 白雲臺[백운대]와 妙香山[묘향산]ㆍ金剛山[금강산]ㆍ五臺山[오대산] 등의 毘盧峰[비로봉] 같음이 그 例證[예증]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의 語原[어원]은 「」과 그 具稱[구칭]인 「」이니, 古語[고어]로 神[신]의 義[의]요, 白山[백산] 곧 神山[신산]은 古代[고대] 信仰[신앙] 중에서 神[신]으로 崇拜[숭배]하던 山[산], 神[신] 關係[관계] 一切[일체] 事物[사물]의 依附[의부]하는 山[산], 接神[접신]ㆍ事神[사신]의 靈場[영장]이던 山[산], 神宮[신궁]ㆍ神都[신도]이던 山[산], 이런 者[자]들입니다(拙著[졸저] 兒時朝鮮[아시조선] 第五章[제오장]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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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志[위지]>의 傳[전]하는 바를 依[의]하건대, 馬韓[마한]에는 國[국]마다 別[별]로 一邑[일읍]을 두어 神事[신사]를 맡아보게 하였다 하나, 이는 필시 益山[익산]의 彌勒山[미륵산], 光州[광주]의 無等山[무등산], 靈巖[영암]의 月出山[월출산], 光陽[광양]의 白雲山[백운산] 모양으로 各其[각기] 一方[일방]의 信仰的[신앙적] 中心[중심]이던 靈山[영산]들이며, 이것은 馬韓[마한]에만 限[한]한 것이 아니라, 필시 같은 文化系統[문화계통]의 모든 지역에 공통되던 事實[사실]일 것이요, 오늘까지 白系[백계]의 名號[명호]를 가지는 山[산]은 다 그때 神域[신역]의 標幟[표치]이던 靈山[영산]일 것이며, 또 시방 中部[중부]의 德勿山[덕물산], 南部[남부]의 智異山[지리산]이 오히려 무당 내리는 聖地[성지]인 것처럼, 이러한 山[산]들은 山[산]마다 그때에 있던 宗敎的[종교적] 權力[권력]의 중심이었을 것이요, 물론 祭政一致期[제정일치기]인 당시에 있어서는, 그 域內[역내]에 있는 生活[생활] 及[급] 文化[문화]가 모두 여기를 樞軸[추축]으로 하여 旋轉[선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즉 桓雄[환웅] 神市[신시]의 所在地[소재지]도 白[백]이요, 壇君[단군] 國都[국도]의 所奠處[소전처]도 白[백]이요, 乃至[내지] 壇君[단군]의 神化[신화]해 계신 곳도 白[백]이라 함이 결코 徒爾[도이]한 것 아니라, 가장 정확하고 또 명백하게 朝鮮[조선] 國初[국초]에 있는 文化相[문화상]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그리하여 白[백]이란 一語[일어]의 意[의]ㆍ義[의] 兩方[양방]으로 種種[종종] 轉化[전화]한 形迹[형적]을 尋譯[심역]하여 나갈진대, 이를테면 天王[천왕]이니 國師[국사]니, 彌勒[미륵]이니 老姑[노고]니 하는 따위가 무비 古信仰[고신앙]의 한 코 한 눈임을 깨달을 것처럼, 粟散碁布[속산기포]해 있는 朝鮮[조선] 域內[역내]의 亂山重暲[난산중장]이 그대로 온통 宗敎現象[종교현상] 中心[중심]인 原始文化[원시문화]의 一大曼荼羅[일대만도라]ㆍ一大因陀羅網[일대인타라망]으로 묶고도, 새로운 面目[면목]이 훤하게 우리 眼前[안전]에 나타날 것이요, 따라서 壇君[단군] 古記[고기]에 보이는 名句[명구]가 하나라도 尋常[심상]히 看過[간과]치 못할 것을 省察[성찰]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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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白山[백산]=「밝」山[산]ㆍ「밝안」山[산]의 古義[고의] 證明[증명]은 朝鮮[조선] 域內[역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朝鮮[조선]으로 더불어 文化的[문화적] 親族[친족] 關係[관계]에 있는 모든 지역에는, 혹은 古史上[고사상]에 혹은 시방 地名上[지명상]에 한결같이 많은 證迹[증적]을 머물러 있읍니다. 日本[일본]에는 國祖[국조]의 天降地[천강지]라는 久布流山[구포류산(高千穗山[고천수산]의 古名[고명])을 始[시]로 하여, 天地[천지] 刱開[창개]의 初[초]에 八角[팔각] 光輝[광휘]의 靈神[영신]이 天降[천강]하였다는 比古山[비고산](彦山[언산])과, 그 神代史[신대사]의 舞臺[무대] 半面[반면]을 지어 出雲神社[출운신사]의 所在地[소재지]인 不老山[불로산](御崎山[어기산]의 一名[일명])과, 天津彦根神[천진언근신]의 天降地[천강지]라는 彦根[언근](ヒコネ)山[산]과, 그 神祖[신조] 伊弉諸神[이장제신]의 神國[신국] 國都[국도]이더라는 白山[백산] 등처럼, 日本[일본] 域內[역내]에 있는 허다한 名山[명산], 특히 天神[천신] 關係[관계]의 靈山[영산]에는 朝鮮語[조선어] 「밝」의 日本[일본] 訛形[와형]인 ハル · ハコ · ハコネ · ヒルコ · ヒコ · ヒル · ヒェナ · フル · ヘル · ホコ등 古義[고의]를 傳[전]하는 한 號[호]가 시방도 儼然[엄연]합니다. 琉球[유구]의 祖廟[조묘] 所在地[소재지]가 首里[수리]에서 辨嶽[변악]이라 하고, 瑕夷[하이]의 祖神[조신] 崇祀地[숭사지]가 出羽[출우]에 保呂羽山[보려우산]·羽黑[우흑](Pakuro)山[산]으로 남아 있으며, 滿洲[만주]의 祖先[조선]은 布庫哩山[포고리산]에서 發祥[발상]하였다 하고, 蒙古[몽고]의 元祖[원조]는 不兒罕山[불아한산]에 垂跡[수적]하였다 함이 다 이 類[류]의 形迹[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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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種學上[인종학상] 新西比利亞族[신서비리아족]이라 하고, 혹 「우랄알타이」族[족]이라 하는 모든 種族[종족]의 信仰[신앙] 中[중]에는, 반드시 天[천]과 祖[조]를 配合[배합]한 神山[신산]이 있어서 이것을 「」山[산]이라 하고, 또 그 類語[유어]로 「한」山[산](大山[대산])·「텽걸」山[산]·「」山[산](天山[천산])이라고도 부르니, 이 種族[종족]은 오래도록 牧畜[목축]을 業[업]하여, 國土[국토]의 遷移[천이]와 種族[종족]의 盛衰[성쇠]가 심하였기 때문에, 神山[신산]과 神話[신화]가 반드시 짝지어 傳[전]하지는 아니하되, 시방 白山[백산]·天山[천산] 기타 類語[유어]의 古名[고명]을 지어 오는 者[자]는 대개 古來[고래]의 宗敎的[종교적] 내지 歷史的[역사적] 靈場[영장]·聖地[성지]로 봄이 可[가]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關係[관계]와 形迹[형적]은 東方[동방]의 倭島[왜도]로부터 韓半島[한반도]와 蒙古[몽고] 沙漠[사막]을 통하여, 멀리 東歐[동구]의 「발칸」半島[반도]에까지 珠貫綴[주관철]한 듯이 連絡[연락]되어 있음을 보니, 우리는 이 事實[사실]과 다른 證迹[증적]을 아울러서 支那[지나]·印度[인도] 등 亞細亞[아세아]의 南系[남계] 文化[문화]에 대하여 別[별]로 北系[북계]의 一文化[일문화]가 있음을 認定[인정]하고, 이 문화의 최대 특색인 「」思想[사상]과 및 그 最高[최고] 譯語[역어]인「不咸[불함]」의 字[자]를 取[취]하여, 이것을 不咸文化[불함문화] 系統[계통]이라고 부르기 비롯하였읍니다. 그런데 이 文化系統[문화계통]에 있어서 가장 오랜 一土一民[일토일민]의 역사를 가진 者[자]가 조선이요, 東方[동방]에 있어서 이 文化[문화] 分布[분포]의 중심된 者[자]가 壇君[단군]의 太伯山[태백산]이니, 이러므로 東方[동방] 歷史[역사]의 一大事實[일대사실]인 不咸文化[불함문화]의 연구는 본디 壇君記[단군기]를 因[인]하여 闡發[천발]된 것처럼, 將來[장래]도 그 標準[표준]과 核心[핵심]될 者[자]가 朝鮮[조선]의 壇君[단군]과 및 그 「古記[고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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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壇君記[단군기]는 全東方[전동방] 古代[고대]의 母史[모사]라 할 것입니다(拙稿[졸고] 朝鮮[조선] 及[급] 朝鮮民族[조선민족] 所載[소재] 不咸文化論[불함문화론]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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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記[고기]에 朝鮮[조선]의 國家的[국가적] 胞胎期[포태기]를 神市[신시]라 하였다 하고, 그 元首[원수]를 天王[천왕]이라 하였다 하였읍니다. 그런데, 天王[천왕]인 桓雄[환웅]은 天帝[천제]의 子[자]로 風伯[풍백]·雲師[운사]·雨師[우사]를 거느리고 穀[곡]과 命[명]과 病[병]과 形[형]과 善惡[선악] 등 人世[인세] 萬般[만반]의 現象[현상]을 理化[이화]하는 職司[직사]라 하니, 이이가 Magico-religious 時代[시대]에 있는 祭司[제사] ─ 司靈者[사령자] ─ 巫君[무군]에 不外[불외]하는 것은 언뜻 보아도 알 일입니다. 天帝[천제]의 子[자]요, 天[천]으로서 從來[종래]한 者[자]요, 天[천]을 事[사]하는 者[자]요, 天意[천의]을 人間[인간]에 代宣[대선]하고 人命[인명]을 天神[천신]께 代祝[대축]하는 者[자]요, 天[천]의 주신 權能[권능]으로써 人間[인간]을 治理[치리]하는 者[자]요, 天裔一族[천예일족]의 帥長[수장]이니, 그이를 天王[천왕]으로 불렀음이 당연합니다. 拜天者[배천자](Heaven worshipper)인 이 民族[민족]의 敎政一致的[교정일치적] 君長[군장]의 이름으로, 天王[천왕]은 진실로 너무 適當[적당]하다고 할만큼 꼭 合理[합리]되는 稱謂[칭위]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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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天王[천왕]이란 稱謂[칭위]가 이 文化圈內[문화권내]에 있어서, 本具的[본구적] 共通的[공통적]의 것인 與否[여부]는 壇君記[단군기]의 歷史性[역사성]을 檢定[검정]하는 上[상]에 필요한 一左券[일좌권]이라 할 수 있읍니다. 이것을 實地[실지]에 驗[험]하건대, <漢書[한서]>의 凶奴傳[흉노전]에 그 君長[군장]을 撑犁孤屠[탱리고도]라 하니, 撑犁孤屠[탱리고도]는 天子[천자]의 義[의]요, 單于[선우]는 그 廣大[광대]함을 이름이라 하였으며, 大月氏[대월씨]의 古碑[고비]에 그 君長[군장]을 提婆弗怛羅[제파불달라]라고 적었으니, 이는 梵語[범어]로 天子[천자]의 義[의]며, 蒙古[몽고]의 古記[고기]에도 Tegrinkologum(天子[천자])의 稱[칭]이 있고,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의 北方[북방] 民族[민족]의 나라인 大夏[대하]·燕[연] 등에서도 王號[왕호]를 많이 天王[천왕]으로써 일컬었으며, 遼[요]의 太祖[태조]도 天皇帝[천황제]로써 일컬었으니, 君主[군주]를 天子[천자]라 하는 觀念[관념]이 北方[북방] 民族[민족]의 사이에서 어떻게 由來[유래]가 멀고 分布[분포]가 넓음을 짐작할 것입니다(白鳥氏[백조씨], 蒙古民族[몽고민족]の起原[기원], 史學雜誌[사학잡지] 十八[십팔]의 二[이] 參照[참조]). 金末[금말]에 宣撫使[선무사] 蒲鮮萬奴[포선만노]가 叛[반]하여 遼東[요동]에 웅거하고 東夏國[동하국]을 세우매, 王號[왕호]는 역시 天王[천왕]이라고 일컬었읍니다(高麗史[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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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日本[일본]에 徵[징]하건대, 天孫[천손] 邇邇杵神[이이저신]이 처음 降世[강세]할새 國神[국신] 猨田[원전] 畏古[외고]가 迎謂[영위]하되 「天神御子[천신어자]」(ァマシカミノコ)云云[운운]이라 하고, 神武皇[신무황]이 東征[동정]할새 國神[국신] 珍彦[진언]이 迎謂[영위]하되 「天神子[천신자」(ァマシカミノコ)云云[운운]이라 한 以下[이하]로, 天神子[천신자] 及[급] 其[기] 類語[유어]인 天子[천자]·天孫[천손] 내지 天皇[천황]이 그 歷代[역대] 帝號[제호]의 通稱[통칭]이 되었으니, 시방도 日本[일본]에서 一人[일인]을 天皇[천황]으로 일컬음은 唐[당] 高宗代[고종대]에 皇帝[황제]를 天皇[천황]이라 일컬었음(唐書[당서] 三[삼])을 본뜬 것이나, 支那[지나] 元古[원고]의 神人[신인]이 天皇[천황]을 일컬었음(徐整[서정] 三五[삼오] 歷記[역기])에 本[본]한 것이 아니라, 실상 그 固有[고유]한 起原[기원]으로서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琉球[유구]에 徵[징]하건대, <中山世譜[중산세보]>에는 그 國初[국초]의 首君[수군]이 天帝子[천제자]로라 일컬었음을 적었고, <混效驗集[혼효험집]>에는 主上[주상]을 天加邢志[천가형지](天裔[천예])라 일컬음을 올렸으며, 이것을 瑕夷[하이]에 徵[징]하건대, 天神[천신]의 子[자]로 人文[인문]의 開創者[개창자]인 Oki-Kurumi는 바로 天帝子[천제자]를 意味[의미]하지는 아니하되 그 「首人[수인]」이라는 語義[어의]의 中[중]에 天子[천자]의 意[의]가 포함한 줄로 볼 것일지도 모릅니다. 蒙古[몽고]에서는 皇帝[황제]를 汗[한]이라 하되, 別[별]로 天子[천자]를 의미하는 「텅거리 연 쿠버군」의 稱[칭]이 있으며(蒙語類解[몽어유해]), 波斯[파사]의 古言[고언]에는 神子[신자] 即즉] 天子[천자]를 의미하는 發克富兒[발극부아](巴固不兒[파고불아])란 말이 있어, 많이는 支那[지나]의 皇帝[황제]를부름에 使用[사용]되었읍니다.(「마르코 폴로」의 紀行[기행] 第六五章[제육오장], 那珂氏[나가씨] 成吉思汗實錄續編[성길사한실록속편] 十五頁[십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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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 古代[고대]의 元首[원수]에 대한 稱謂[칭위]를 보건대,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는 일찍부터 王[왕]을 일컬어 高句麗[고구려]에는 尊號[존호]로 聖王[성왕]·明王[명왕]·神王[신왕] 등까지 있으되 그 源[원]은 古鄒加[고추가]에 있는 듯하고, 百濟[백제]는 於羅瑕[어라하]·犍吉支[건길지]라 일컫고, 新羅[신라]는 居西干[거서간]·麻立干[마립간]·尼師今[이사금]·寐錦[매금]·安錦[안금]·次次雄[차차웅](慈充[자충])이라 일컫고, 그전의 馬韓[마한]에서는 臣智[신지]·邑借[읍차]라 하고, 邑借[읍차]에는 臣雲遣支報[신운견지보] 安邪踧支[안사축지] 濆臣籬兒不例[분신리아불례] 拘邪秦支廉[구사진지렴]이란 優呼[우호]를 더하기도 하고, 辰韓[진한]에서는 臣智[신지]·儉側[검측]·樊祗[번지]·干岐[간기]·旱岐[한기]·殺奚[살해]·邑借[읍차]라 하고, 濊[예]와 沃沮[옥저]에서는 三老[삼로]라 일컬었다하여, 史籍[사적]을 통하여 보는 帝王[제왕]의 名號[명호]는 天子[천자]로써 일컬은 證迹[증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번 神話[신화]를 통하여 당시의 靈威的[영위적] 君長[군장]이 스스로 稱謂[칭위]하던 形迹[형적]을 찾아보건대, 夫餘[부여]의 解慕漱[해모수]와 高句麗[고구려]의 高朱蒙[고주몽]은 다 天帝子[천제자]를 일컬었고(論衡[논형] 東明王篇[동명왕편]·三國遺事[삼국유사] 所引[소인] 古記[고기]·三國史記[삼국사기]·好太王碑[호태왕비]), 新羅[신라]의 閼智居西干[알지거서간](赫居世王[혁거세왕])은 天子[천자]라 일컬었고(三國遺事[삼국유사] 新羅[신라] 始祖[시조]), 駕洛國記[가락국기]의 首露王[수로왕]이 바로 天帝子[천제자]를 일컬은 句語[구어]는 보이지 아니하되, 뻔뜻하면 皇天[황천]의 命[명]으로써 降世[강세]하여 君后[군후]가 되었음을 내세움은 필시 다른 說話[설화]에서와 같이, 天帝子[천제자]를 稱謂[칭위]한 事實[사실]이 變轉[변전]된 것으로 볼지니, 이것들은 足[족]히 朝鮮[조선] 古代[고대]의 帝號[제호]에 天帝子[천제자]로라 함이 있었음을 짐작할 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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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종교적 이유로서 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新西比利亞族[신서비리아족]의 모든 支派[지파]는 그 規範的[규범적] 稱謂[칭위]의 위에 天[천]이란 字[자] 쓰기를 즐겨하여, 國號[국호]·王號[왕호]·年號[연호] 등에 아무쪼록 天字[천자]를 넣으려 함이 事實[사실]이었읍니다. 桓國[환국]·韓國[한국]과 桓雄[환웅]·旱岐[한기](安錦[안금])가 이미 그것이며, 王建[왕건]이 高麗[고려]를 세우매 元[원]을 天授[천수]라 建[건]하고, 妙淸[묘청]이 大爲[대위]를 경륜하매 元[원]을 天開[천개]라 建[건]하고, 阿保機[아보기]가 遼[요]를 세우매 元[원]을 神册天賛[신책천찬](太宗[태종]은 天顯[천현)이라 建[건]하고, 耶斯不[야사불]이 大遼收國[대요수국]을 세우매 元[원]을 天成[천성]이라 建[건]하고, 阿骨打[아골타]가 金[금]을 세우매 元[원]을 收國天輔[수국천보](太宗[태종]은 天會[천회]·天眷[천권])이라 하고, 蒲鮮萬奴[포선만노]가 東夏[동하]를 세우매 元[원]을 天泰[천태]라 建[건]한 등이 또한 그것이며, 日本[일본]에서 皇位[황위]를 天津日繼[천진일계]라 일컫고, 기타 上世[상세]의 天孫系[천손계]에 속하는 事物[사물]에는 한결같이 ァマッ·ァメノ及[급] 其[기] 類語[유어]를 冠着[관착]함도 무론 그것입니다. 또 古代[고대]에는 天[천]과 神[신]을 同義語[동의어]로 通用[통용]하고, 國語[국어]에서 「」「후」등이 天[천] 或[혹] 神[신]으로 互譯[호역]되었으니(兒時朝鮮[아시조선] 第四章[제사장] 參照[참조]), 이제 神字[신자] 붙는 例[예]를 들기로 하면 더욱 많은 證左[증좌]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民族[민족]이 모든 高級的[고급적] 事物[사물]과, 특히 國[국] 及[급] 王[왕] 關係事項[관계사항]에 대하여 즐겨서 天[천]을 標榜[표방]함은, 결코 尋常[심상]한 權威[권위] 表示[표시]에서 나온 것만 아니라, 실로 民族的[민족적]·信仰的[신앙적] 乃至[내지] 歷史的[역사적]의 깊은 由來[유래]를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桓雄天王[환웅천왕]의 號[호]는 이렇게 久遠[구원]하고 普遍[보편]한 事實的[사실적] 根據[근거]를 가진 것입니다.(壇君論[단군론] 十九[십구] 本全集[본전집] 卷二[권이], 九八頁[구팔엽] 天王條[천왕조]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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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단군]의 父[부]인 桓雄[환웅]은 位號[위호]를 天王[천왕]이라 하였다고 하고, 壇君[단군]의 子[자]인 夫婁[부루](乃至[내지] 朱蒙[주몽])는 種姓[종성]을 天帝子[천제자]라고 내세웠다 하니(三國遺事[삼국유사] 所引[소인] 「古記[고기]」及[급] 「壇君記[단군기]」), 神話[신화]에 있는 父子[부자]란 것이 흔히 時代[시대]의 前後[전후]를 人倫化[인륜화]해 부르는 例[예]로 볼진대, 前壇君時代[전단군시대] 나 壇君[단군] 以後[이후]의 時代[시대]를 통하여, 古震邦[고진방]의 君王[군왕]은 天子[천자]로써 位[위]를 일컬었다는 事實[사실]로 이것을 보암직합니다. 그러면 그 中間[중간]의 時代[시대]로 볼 壇君王儉[단군왕검]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壇君王儉[단군왕검]이 震域[진역]에 있는 國家生活[국가생활]의 開刱者[개창자]라는 이의 位號[위호]인만큼, 아무데보다도 原始震人[원시진인]의 君主意識[군주의식]·國家觀念[국가관념]이 이 語義[어의]의 中[중]에 가장 잘 含蓄[함축]도 되고 表現[표현]도 되었을 것입니다(古記[고기]에 분명히 「孕生子號曰壇君[잉생자호왈단군]」이라 하였으니, 壇君王儉[단군왕검]이 個人[개인]의 尋常[심상]한 名字[명자]가 아니라, 그 地位[지위]의 稱謂[칭위]임을 人名[인명]처럼 말하는 이도 있으나 우리는 그렇게 볼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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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삼국유사]>에 古朝鮮[고조선]은 王儉朝鮮[왕검조선]이라 하고, 王儉[왕검]의 위에 壇君[단군]을 加[가]한 優呼[우호] 혹 具稱[구칭]이 보이고, <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이것이 仙人王儉[선인왕검]으로 보였으니, 이 例[예]를 合[합]하여 壇君[단군]과 王儉[왕검]과 내지 仙人間[선인간]의 語義的[어의적] 관계를 짐작할 것이 있으되, 이제 이것을 詳論[상론]코자 아니하며, 다만 壇君[단군]과 王儉[왕검]이 반드시 붙어다닐 것 아니요, 각각 獨立性[독립성]을 가진 一語[일어]임과 壇君[단군]과 王儉[왕검]과 仙人[선인]이 서로 通用[통용]할 수 있는 類語[유어]임을 알아주십사고만 하겠읍니다. 그런데 어떻게 壇君[단군]의 古義[고의]를 찾을까? 그것이 漢文[한문]으로 말하면, 帝[제]니 王[왕]이니 하는 단순 보편한 王號[왕호]가 아니라, 비겨댈 곳 없는 특수한 語形[어형]이요, 그리고 그것이 분명한 外國的[외국적] 典據[전거]가 없을진대, 마땅히 國故[국고]의 語[어]로써 譯解[역해]함이 可[가]할 것이며, 혹 壇君[단군]이라 쓰고, 혹 檀君[단군]이라 쓰고, 또 달리 쓰기도 하되, 어느 것이 반드시 어느 것의 訛語[와어]라 할 것 아닌 바에는, 이렇게 字形[자형]이 混淆[혼효]됨은 본디 그것이 義[의]에서 온 것 아니라, 音[음]을 取[취]함일 따름인 것을 알아서, 부질없이 雜異[잡이]하여진 字義[자의]를 어루만질 것 아니라, 마땅히 바로 그 音表[음표]의 밑에 있는 古語[고어] 本義[본의]를 헤쳐 볼 것이며, 人文[인문]의 始祖[시조]라 하고, 國家[국가]의 元首[원수]라 하고, 法橋[법교]의 祖師[조사]라 하니, 여기 공통되는 古義[고의]를 찾을 것이며, 原始文化[원시문화]의 表現者[표현자]이매, 모름지기 民俗的[민속적] 必然[필연]과 神話的[신화적] 通例[통례]에 照準[조준]하여, 前時代[전시대] 心理的[심리적]으로 그 性質[성질]과 및 性質[성질]의 表現[표현]인 名義[명의]를 求[구]할 것이며, 위선 壇君[단군]이라고도 하고, 王儉[왕검]이라고도 하고, 仙人[선인] 혹 神人[신인]이라고도 하니, 이렇게 通用[통용]하는 根據[근거], 곧 이 分岐[분기]가 생길 만한 原素[원소]를 밝혀야 할 것이며, 朝鮮[조선]의 文化[문화]가 獨立[독립] 孤往[고왕]한 것 아니라, 본디 광대한 범위를 가지는 一大[일대] 文化系統[문화계통]의 ─ 우리의 이름한 不咸文化[불함문화] 系統[계통]의 一連鎖[일연쇄]인즉, 그것이 隣住[인주] 民族[민족]의 空間[공간] 及[급] 時間的[시간적] 共通[공통] 事實[사실]에 合[합]하고 모순되지 아니함을 要[요]할 것이며, 震域[진역]에는 進步[진보]한 記錄術[기록술]이 없었으되, 이것을 가진 漢民族[한민족]하고는 長久[장구] 又[우] 密邇[밀이]한 交涉[교섭]을 가졌으니, 할수 있으면 그 徵憑[징빙]과 證迹[증적]이 支那[지나] 文籍[문적]의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며, 人類[인류]의 文化的[문화적] 事實[사실]이란 것은 한번 생겨난 것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법 없고, 그 變形[변형]과 殘滓[잔재]는 자못 强靭[강인]한 생명을 오래오래 保傳[보전]해 가는 것인즉, 아무쪼록 그것이 現在[현재] 民俗[민속]의 中[중]에 文化的[문화적] 遺物[유물]·遺蹟[유적]으로 實存[실존]하는 것임을 要[요]할 것입니다. 이 여러 標準[표준]에 合[합]하는 해석은 비록 千百載[천백재] 前[전]에 묻힌 것을 千百載[천백재] 後[후]에 파내는 것이라, 其然未然[기연미연]을 얼른 質言[질언] 못한다 할지라도, 不中[부중]이나 不遠[불원]쯤을 허락할 것이 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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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알아내어, 우리의 믿는 바 壇君王儉[단군왕검]이란 것은 結果[결과]로부터 말하면, 「당굴 ― 알감」혹 그 비슷한 古語[고어]의 對字[대자]로 天神[천신]인 主上[주상]의 義[의]를 가진 것이었읍니다. 그런데 天神[천신]인 主上[주상] ─ 神君[신군]이란 무엇이냐 하건대, 古式[고식]으로 말하면 天子[천자]요, 알기 쉽게 말하면 巫君[무군]이요, 시방 民俗學的[민속학적]으로 말하면 呪術的[주술적] 主權者[주권자] ─ 原始[원시] 社會[사회]에 있는 司靈的[사령적] 君主[군주] ─ 敎政一致[교정일치]의 社會[사회] 統裁者[통재자]이었읍니다. 漢文的[한문적]으로 말하면 君[군]으로 師[사]를 겸한 者[자]요, 朝鮮[조선] 古記[고기]의 말마따나 神人[신인]이요, 聖王[성왕]·明王[명왕]·神王[신왕]이신 이입니다. 古代[고대]의 문화가 종교 중심이요, 당시의 종교가 呪力[주력] 本位[본위]요, 이 呪力[주력]이 倫理[윤리]·道德[도덕]·法律[법률]·政治[정치] 등 一切[일체] 文化現象[문화현상]의 起原[기원]이요, 저 君主[군주]의 發生[발생]이 呪術的[주술적] 優者[우자]에 있음은, 최근 民俗諸學[민속제학]으로써 분명히 증명된 바니(프레이저氏[씨] 君主[군주]의 魔術的[마술적] 起原[기원] 參照[참조]), 震域[진역]의 原始[원시] 文化[문화]도 무론 이 範疇[범주]에 벗어났을 리 없을 것이요, 壇君王儉[단군왕검]의 性質[성질]·形態[형태]도 당연히 이렇게 考察[고찰]될 것입니다. 壇君王儉[단군왕검]이란 것은, 나누어서 壇君[단군]으로나 王儉[왕검]으로나, 合[합]해서 壇君王儉[단군왕검]으로나, 古波斯[고파사]의 Magi, 北方[북방] 亞細亞[아세아]의 Shaman, 北米[북미 ] 印甸[인전](아메리카 인디언)의 Medicine man과 동일한 내용을 가지는 古震語[고진어]일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語源的[어원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壇君[단군]은 古代[고대]에 天[천]을 表[표]하는 말로서 轉滋[전자]하여 天神[천신]·神人[신인]·天[천] 關係[관계] 人[인] 事[사] 物[물]의 聖號[성호]가 된 「당굴」이란 말을 取音[취음]한 것이니, 당시에 있어서 神人[신인]되는 巫[무]와, 巫[무]로 君長[군장]되는 聖王[성왕]이 이것으로써 稱號[칭호]를 삼은 것이며, 王儉[왕검]이란 것은 古代[고대]에 尊長[존장]과 神靈[신령]을 의미하는 「알」과 마찬가지 의미에 人格的[인격적] 表示性[표시성]을 가진 「감」이란 兩語[양어]가 結合[결합]된 것이니, 尊勝[존승] 聖靈[성령]한 大人[대인]의 義[의]를 가진 말입니다. 壇君[단군]과 王儉[왕검]이 따로따로 神聖者[신성자]의 뜻을 가지는 것이지마는, 이것을 合[합]하면 天神的[천신적] 大人[대인]이라는 最高級語[최고급어]를 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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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比較言語的[비교언어적]으로 보건대, 古代[고대]에 凶奴語[흉노어]가 天[천]을 撑犁[탱리]라 하여 王[왕]을 撑犁孤屠[탱리고도](天子[천자])라 함이 이미 그것이어니와(前出[전출] 漢書[한서] 凶奴傳[흉노전]), 後[후]의 蒙古語[몽고어]의 騰格里[등격리](텅거리)가 天[천]을 主義[주의]로 하고 巫[무]를 兼義[겸의]로 함은(元朝秘史[원조비사] 十二[십이] 成吉思汗[성길사한] 實錄[실록] 四二頁[사이엽]), 壇君[단군] 語義[어의]를 밝힘에 더욱 유력한 방증입니다. 시방 朝鮮語[조선어] 「무당」의 類語[유어]에 가장 普遍[보편]한 者[자]는 「당굴」이니, 이 「당굴」은 「단골」과 혼동되어, 무당의 稱謂[칭위]임을 살피지 못하는 이가 많되, 去來上[거래상] 用語[용어]의 「단골」과 무당의 別稱[별칭]인 「당굴」은 語形[어형] 及[급] 用例[용례] 무엇으로나 아주 딴 것입니다. 내가 오래 두고 考察[고찰]하던 壇君[단군] 問題[문제]를, 年前[연전] 在獄[재옥] 數年[수년]의 間[간]에 비로소 體系[체계]를 세우고 여러 가지로 따져본 結果[결과], 壇君[단군]의 原形[원형]이 반드시 「당굴」일 것을 理論上[이론상]으로 깨달았으나, 其然未然[기연미연]을 質定[질정]하지 못하여 몹시 갑갑해 하다가, 出獄[출옥]한 뒤에 우연한 기회에 兩湖[양호]의 間[간]에서 무당을 「당굴애」라고 稱謂[칭위]함을 알았을 때에, 그 기쁨과 시원은 진실로 한량이 없었으며, 차차 알고 보매, 이 말은 京城[경성]을 除[제]한 거의 朝鮮[조선] 全域[전역]에 普遍[보편]한 것이어늘, 다만 「단골」이란 말과 混冒[혼모]가 되어 그 眞面[진면]이 가리워 있을 뿐일새, 民俗的[민속적] 生命[생명]의 검질김을 이것으로써 못내 감탄하였읍니다. 대개 天[천]을 高物[고물] 又[우] 在上者[재상자]로 觀念[관념]하여, 사람의 머리로 더불어 言文[언문]의 範疇[번주]를 한가지함은 여러 民族[민족]에 例[예]를 보는 바요, 위선 漢文[한문]의 天字[천자]가 人[인]의 古字[고자]인 大字[대자]의 上[상]에 一點[일점]을 붙여서, 天[천]은 人[인]의 頭上物[두상물]이란 意[의]를 表[표]한 것이어니와, 시방 朝鮮語[조선어]에 頭[두]를 一[일]에 「대가리」라하니, 이것이 實[실]로 「당굴」의 類語[유어] 혹 轉形[전형]으로, 본디는 역시 人[인]의 頭[두]와 한가지 天[천]을 表[표]하는 말이요, 因[인]하여 「당굴」의 天[천]의 義[의]이었음을 생각게 하는 것입니다. 시방 朝鮮語[조선어]의 「대가리」와 「당굴」과 蒙古語[몽고어]의 「텅걸」등을 合[합]하여, 그 母形[모형]·奧義[오의]를 살피면 壇君[단군]의 古義[고의]가 무엇임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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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魏志[위지]>를 據[거]하건대, 馬韓[마한]에서는 「信鬼神[신귀신], 國邑各主一人[국읍각주일인], 主祭天神[주제천신]」이라 하였는데, 天君[천군]이 壇君[단군]의 異形[이형]으로 한가지 「당굴」의 對字[대자]임은 그 事實[사실]과 名號[명호]의 둘 다 비슷함으로써 얼른 推察[추찰]할 것이요, 이것은 곧 一[일]천 七[칠]백 년 전의 實地[실지] 視察[시찰]한 報告[보고]로, 당시의 壇君[단군]이 支那[지나]의 門籍[문적]에 오른 것이매 믿음성이 큰 것입니다. 古記[고기]의 壇君[단군]이란 이렇게 三韓時代[삼한시대] 又[우] 地方[지방]에서 敎政[교정]이 분리하여 天神[천신]만을 主祭[주제]하게 되기 以前[이전] 狀態[상태]의 神權的[신권적] 君長[군장] ─ Magico-religious 社會[사회]의 君長[군장]일 따름입니다. 좀 더 오랜 옛날이면 좀더 原始的[원시적]의 文化狀態[문화상태]·社會規範[사회규범]에 있었을 것은 무론이요, 壇君[단군]의 權能[권능]이 더 純一[순일] 絶對[절대]하였을 것도 무론입니다. 또 北方[북방] 民邦[민방]의 좀 뒤지는 記載[기재]로 말하면, <後周書[후주서]>에 高句麗人[고구려인]의 信仰[신앙]을 적되, 「有神廟二所[유신묘이소], 一曰夫餘神[일왈부여신], 刻木作婦人之像[각목작부인지상], 一曰登高神[일왈등고신], 云是其始祖夫餘神之子[운시기시조부여신지자], 並置官司[병치관사], 遣人守護[견인수호], 蓋河伯女與朱蒙云云[개하백녀여주몽운운]」이라 하였는데, 여기 <壇爾記[단이기]>의 「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군여서하하백지녀요친], 有產子[유산자], 名曰夫婁[명왈부루]」와, <高句麗本紀[고구려본기]>의 天帝子[천제자] 解慕漱[해모수]가 河伯女[하백녀] 柳花[유화]와 親[친]하여 朱蒙[주몽]을 生[생]하였다 함을 合[합]하여 神話學的[신화학적] 剖析[부석]을 더하여 보면, 壇君[단군] 及[급] 夫婁[부루]=朱蒙[주몽], 桓雄[환웅](夫餘神[부여신])=解慕漱[해모수 ]의 관계가 밝아져서 登高[등고]가 곧 壇君[단군]임을 알리니, 周人[주인]의 聽取[청취]한 高句麗[고구려] 國祖[국조] 登高[등고]는 대개 「텅걸」혹 「당굴」의 語尾[어미] 入聲[입성]이 微弱[미약]해진 것에 不外[불외]합니다. 이 一段[일단]은 震邦[진방]의 告神事[고신사](民族神[민족신] 乃至[내지] 宗廟[종묘]의 神主[신주])를 밝힘에 극히 중요한 關節[관절]로, 우리가 苦心[고심]하여 알아낸 바의 하나이니, 壇君[단군]이 어떻게 南北[남북]을 통하여 共通[공통] 永續[영속]하는 神道的[신도적] 生命[생명]을 保有[보유]하는지가 이로써 명백하여진 것이며, 일변 壇君[단군]의 語義[어의]를 字義[자의]에 求[구]할 것이 아니라, 그 音[음]에 찾을 一證據[일증거]도 되는 것입니다(다만 허다한 字音[자음]에 壇君[단군]이라, 天君[천군]이라, 登高[등고]라 하는 字[자]를 取[취]한 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바 音義[음의] 雙彰的[쌍창적] 譯字[역자]의 例[예]에 屬[속]함은 늘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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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王儉[왕검]은 어떠한가? 「알」에 尊長[존장]의 義[의]가 있음은 回語[회어]의 阿里[아리](大[대])와, 唐古特[당고특](탕구트)語[어]의 雅爾上[아이상]과, 蒙古語[몽고어]의 鄂蘭[악란](衆[중])과 鄂爾勒[악이륵](尊貴[존귀])과 額爾克[액이극](權[권])과, 滿洲語[만주어]의 阿勒錦[아륵금] (名譽[명예])과 烏魯[오로](是非之是[시비지시])와, 日本語[일본어]의 ァぅ(麁碩[추석])와 ァルヅ(主人[주인])와, 現[현] 朝鮮語[조선어]의 어른(尊長[존장]) 등으로써 알 것이며, 「알」에 또 神靈[신령]의 義[의]가 있음은 滿洲語[만주어]의 斡里[알리](幻術[환술])와, 日本語[일본어]의 アラタカ(靈驗[영험])와, 高句麗語[고구려어]의 奄利[엄리](鴨綠[압록]), 百濟語[백제어]의 阿里[아리](郁利[욱리]·尉禮[위례]), 新羅語[신라어]의 阿老[아로](閼娥利[알아리])와, 現[현] 朝鮮語[조선어]의 머리(怳惚[황홀]) 등으로써 알 것이며, 「감」에 長者[장자]·大人[대인]의 義[의]가 있음은 北方[북방] 民族[민족]의 普遍的[보편적] 王號[왕호]인 加[가]·汗[한]·可汗[가한] 등이 이미 그것이어니와, 특히 宗敎的[종교적] 靈長[영장]의 義[의]로는 西域[서역] 諸國語[제국어]에 巫[무]를 Kam·Came이라 함과, 「아이누」語[어]에 上[상]을 Kam이라 하고 神[신]으로부터 덮인 것이란 義[의]로 Kamui라 함과, 日本語[일본어]에 上[상]과 君[군]과 한가지 神[신]을 カム·カミ라 함 등으로써 알 것이며, 다시 「알」과 「감」이 合[합]하여 尊長者[존장자](내지 宗敎的[종교적] 大人[대인])의 稱謂[칭위]가 된 例[예]에는, 蒙古語[몽고어]의 翁觀汪古[옹관왕고](神祇[신기])와, 「아이누」語[어]의 Oki-kurumi(人文神[인문신]의 名[명])와, 新羅語[신라어]의 安錦[안금]과, 駕洛語[가락어]의 旱岐[한기](阿和叱智[아화질지])와, 百濟語[백제어]의 於羅瑕[어라하]와, 現[현] 朝鮮語[조선어]의 영검·엉금(시방은 形容詞[형용사]지마는 필시 古名詞[고명사]에서 나왔을 것) 등으로써 알 것이니, 이 모든 것을 통하여 그 根本義[근본의]를 더듬으면, 王儉[왕검]이 또한 神靈的[신령적] 君長[군장]의 稱謂[칭위]였음을 대개 짐작할 것입니다 (「얼」이 王字[왕자]로 譯對[역대]됨에는 「언니」「언는」「엄어」「엄니」등의 轉例[전례]를 參照[참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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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仙人[선인]은 무엇인가? 壇君[단군]의 宗敎的[종교적] 方面[방면]을 말하지 아니하니까, 거기까지 論及[논급]되지 아니하거니와, 얼른 말하면 朝鮮[조선]의 民族的[민족적] 信仰[신앙]은 마침내 壇君[단군] 中心[중심]의 一國民敎[일국민교]를 成立[성립]하여 太陽[태양]이자 天主[천주]요, 동시에 壇君[단군]의 天的[천적] 本原[본원]으로 觀念[관념]되는 「」을 對象[대상]으로, 그 敎名[교명]을 「」과 혹 그 略轉形[약전형]인 「불」로써 일컬으니, 新羅[신라] 이래로 泰封[태봉] 高麗[고려]에 걸쳐서 성대한 儀禮[의례]를 이룬 「八關[팔관]」이란 것과, <三國史記[삼국사기]>에 引用[인용]한 崔致遠[최치원]의 鸞郞碑中[난랑비중]에, 「國有玄妙之道[국유현묘지도] 曰風流[왈풍류]」라 한 「風流[풍류]」(音讀[음독]하여 「블」)가 다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八關[팔관]」道[도]를 一[일]에 「仙[선]」이라 하고, 支那[지나]의 仙[선]과 다름을 보이기 위하여 國仙[국선]이란 말도 생기고, 여기 附帶[부대]되어 仙郞[선랑]·仙風[선풍]·仙家[선가] 등 用語[용어]가 생기고, 高麗[고려] 時節[시절]로부터 「巫堂[무당]」의 一種[일종]에 「仙官[선관]」이란 것이 있어, 후세 開城[개성]에서는 閥閱[벌열] 있는 門戶[문호]에서 나오는 巫堂[무당]을 仙官[선관]이라고 부르는 風[풍]도 일어났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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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仙[선]이란 것이 무엇인지, 漢文[한문]으로 取意[취의]한 것 같지는 아니한데, 國語[국어] 무엇에 대한 譯字[역자]인지 꽤 오래 問題[문제]를 삼았더니, 애쓴 결과로 무당의 一類語[일유어]에 「이」와 그 略形[약형]인 「산이」란 것이 있음을 알고, 이것이 시방 南中[남중]에서는 開城[개성]과 반대로 무당 及[급] 그 類屬[유속]인 광대 중에서도 賤人[천인]의 出身[출신]인 者[자]에 限[한]하는 이름임을 알고, 俗[속]에 「선무당이 사람 죽인다」는 선무당의 「선」이 또한 未熱[미열]의 義[의]가 아니라, 卜筮道業[복서도업]의 一特殊[일특수] 巫人[무인]의 이름임을 알아서, 이것이 國仙[국선]·仙官[선관] 등 「仙[선]」의 母語[모어]임이 판명되었읍니다. 그리하고 古代[고대]의 神山[신산]에 音[음]으로 仙[선]·禪[선]·聖[성]·雪[설]과, 義[의]로 鷺[로]·鳶[연]·松[송]·霜[상] 등 이름이 많은 이유와, 民間信仰[민간신앙]에 있는 「선앙」「설수당」의 유래를 알고, 다 이것이 語源的[어원적]으로는 日本[일본]의 サニハ(神慮審判者[신려심판자])·サルメ(一種[일종]의 女巫[여무])와 干連[간련]됨을 알았읍니다. 마치 八關[팔관]이 佛敎[불교]의 名目[명목]이지마는 震域[진역]의 八關[팔관]이 내용은 神事[신사]임과 한가지로 仙[선]이 道家[도가]의 稱號[칭호]이지마는, 國仙[국선]·仙官[선관]은 支那[지나]의 그것하고는 스스로 風馬牛[풍마우]인 것입니다. 이렇게 震域[진역] 神道上[신도상]의 仙[선]이 역시 巫者[무자]의 一名號[일명호]임을 알면, 仙人[선인]과 壇君[단군]과 王儉[왕검]이 서로 意味[의미]를 통하고, 稱謂[칭위]를 섞어 하는 所以[소이]가 저절로 환해질 것입니다(仙[선]에 관하여는 三國遺事[삼국유사]·高麗史[고려사]의 處處[처처]와, 丁氏[정씨] 雅言[아언] 覺非[각비] 卷三[권삼]과, 拙著[졸저] 尋春巡禮[심춘순례]·白頭山覲參記[백두산근참기] 八八頁[팔팔엽] 本全集[본전집] 卷六[권육] 五二頁[오이엽]·兒時朝鮮[아시조선] 一○四頁[일○사엽] 本全集[본전집] 卷二[권이] 一八三頁[일팔삼엽]·壇君論[단군론] 五一[오일]∼七六本全集[본전집] 卷二[권이] 一二六[일이육]∼一四八頁[일사팔엽]·不咸文化論[불함문화론] 四七頁[사칠엽] 本全集[본전집] 卷二[권이] 六九[육구]∼七○頁[칠○엽]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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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考覈고핵]한 바로써 보건대 壇君[단군]과 王儉[왕검]과 仙人[선인]이 거의 同一[동일]한 내용을 가지는 말로, 長者[장자] ── 巫的[무적]尊者[존자], 天子[천자] ── 神人的[신인적] 君長[군장]을 의미함이 대개 틀림이 없을 것인데, 그 가장 要點[요점]이요 奧義[오의]라 할 것은 壇君[단군] 一語[일어] 내지 壇君王儉[단군왕검] 一句[일구]에 含蓄[함축]하여 있는 「天王[천왕]」이란 點[점]이니, 이렇게 壇君王儉[단군왕검]도 알고보면 역시 桓雄[환웅]의 天王[천왕], 解慕漱[해모수]의 天王郞[천왕랑] 내지 高朱蒙[고주몽]의 天帝子[천제자], 赫居世[혁거세]의 天子[천자]들과 同義語[동의어]인 天王[천왕]의 義[의]일 따름입니다. 天王[천왕]·天王郞[천왕랑] 등의 原語[원어]가 변시 壇君王儉[단군왕검]일 따름임을 알 것입니다. 그리하여 桓雄[환웅] 이래로 三國時代[삼국시대]의 初期[초기] 漢文化[한문화] 類同[유동]의 비롯하기 前[전]까지 震邦[진방] 古代[고대]의 王號[왕호]에 天王[천왕]이란 一貫語[일관어]가 있음을 알며, 또 民俗學的[민속학적] 事實[사실]을 아울러서 震邦[진방]의 上古[상고]는 壇君[단군]에게 治理[치리]되었다는 歷史的[역사적] 意義[의의]의 一面[일면]을 알며, 또 他年[타년]에 敎政[교정]이 분리하매 「天君[천군]」을 「主祭天神[주제천신 ]」의 者[자]로만 되었지마는, 본디는 응당 祭祀[제사]를 因[인]하여 政治[정치]를 행하였을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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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古代[고대]의 王號[왕호]는 世界[세계]를 통하여 天子[천자] 내지 日子[일자]라는 例[예]가 많고, 특히 太陽[태양] 本位[본위]의 拜天者[배천자]인 新西非利亞族[신서비리아족]에는 하나도 例外[예외]를 볼 수 없도록, 天王[천왕]의 號[호]가 널리 行[행]하는 通則[통칙]에 照準[조준]하여, 壇君王儉[단군왕검]의 天王[천왕]을 의미함이 壇君[단군] 自身[자신]의 歷史性[역사성]을 保持[보지]하는 上[상]에, 아무것보다 有力[유력]한 左券[좌권]임을 깨달을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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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王儉[단군왕검]이란 名號[명호] 그것부터가, 이미 古代[고대]에 있는 歷史的[역사적] 事實[사실]의 反映[반영] 아닐 수 없을 것이란 말입니다.
4. 壇君[단군] 都邑[도읍]의 歷史[역사] 地理學的[지리학적] 觀察[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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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歷史[역사] 地理上[지리상]으로 壇君記[단군기]의 내용을 검토해 보겠읍니다. 대저 壇君記[단군기]는 그 내용상으로 前後[전후]의 兩部[양부]를 형성하여, 前壇君[전단군](Pre Tangun)部[부]는 순수한 神話體[신화체]요, 後壇君部[후단군부]는 疑似[의사]한 歷史體[역사체]를 지었읍니다. 그런데 歷史[역사] 地理[지리]를 살핌은 무론 歷史體[역사체]인 壇君部[단군부]의 記傳[기전]에서 할 것입니다. 壇君記[단군기]는 桓雄[환웅]과 熊女[웅녀]의 婚媾生子[혼구생자]에 이르러 클라이막스를 보이고, 거기서 별안간 急轉直下[급전직하]의 勢[세]로 壇君[단군]의 建國[건국] 事實[사실]을 적되, 다시는 說話的[설화적] 分子[분자]의 섞인 것도 없고, 또 어수선한 事實[사실]의 傳[전]하는 것도 없고, 建邦設都[건방설도]와 遷居[천거] 化身[화신]을 淡淡[담담]히 平敍[평서]하고, 인해 曆年[역년]을 보임으로써 붓을 거두어 버렸읍니다. 이렇게 兩部[양부]의 體制[체제]가 根本的[근본적]으로 相異[상이]할 뿐 아니라, 그 接合點[접합점]이 너무도 不實[부실]하여 事實[사실] 及[급] 文字上[문자상]의 連絡[연락]을 도무지 볼 수 없으니, 대개 壇君記[단군기]의 現態[현태]는 본디부터 性質[성질] 不同[부동]한 兩種[양종] 材料[재료]의 便宜的[편의적] 結合[결합]으로 成[성]한 것이요, 壇君神典[단군신전]은 壇君[단군]의 誕降[탄강]에 이르러 이미 結尾[결미]가 되고, 그 이후는 獨立[독립] 別行[별행]하던 史文[사문]을 잠시 添着[첨착]하였음에 不外[불외]함이 容易[용이]히 看取[간취]됩니다. 마치 <東明王篇[동명왕편]>에 解慕漱[해모수]의 神婚[신혼]과 高朱蒙[고주몽]의 建國[건국]이 說話上[설화상]에서 兩段[양단]을 짓는 것처럼, 日本[일본]의 古史[고사]가 神代[신대]와 人皇[인황]이란 兩部[양부]를 형성한 것처럼, 壇君記[단군기]에도 神典部[신전부] ── 當初[당초]부터 信仰的[신앙적]으로 感慕[감모]하던 부분과, 歷史部── 實質[실질]은 거의 前者[전자]와 같지마는, 歷史的[역사적] 事件[사건]으로 待遇[대우]하던 부분이 各別[각별]로나 通同[통동]으로나 當初[당초]에 存在[존재]하고, 歷史部[역사부]의 事實[사실]이 도리어 詳細[상세]한 것도 있으련마는, 北東[북동] 兩夫餘[양부여]를 始[시]로 하여 北方[북방] 民邦[민방]의 記錄[기록]이 도무지 新羅[신라]의 史官[사관]에게 收入[수입]되지 아니하여 그 事實[사실]이 전해지지 않고, 說話的[설화적] 興味[흥미]에 生命[생명]을 뿌리박은 建國談[건국담]의 一部[일부]만이 剝落[박락] 殘毁[잔훼]된 채 遊離[유리] 說話的[설화적]으로 간신히 傳[전]하는 것처럼, 壇君記[단군기]도 神典部[신전부]는 說話的[설화적]으로 民間[민간] 傳承[전승]의 生命[생명]을 維持[유지]하고, 歷史部[역사부] (그것도 필시는 高朱蒙建國談[고주몽건국담] 같이 多分[다분]히 說話的[설화적]이었겠지마는)는 獨立[독립] 別行[별행]하였던만큼 부지중 脫離[탈리]되고 부지중 消失[소실]도 된 모양입니다(高朱蒙[고주몽]·金首露[김수로] 等[등] 類型說話[유형설화]에서 그 殘影[잔영]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三國遺事[삼국유사]>의 收載[수재]한 古記[고기]의 末尾[말미]에 다행히 壇君時代[단군시대]의 地理的[지리적] 範圍[범위]에 관한 부분만은 附錄[부록]되고, 또 그것이 아주 孟浪[맹랑]한 것 아니라, 생각나고 짐작함이 있을 만한 것임에는 큰 든든을 느낄 것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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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記[고기]는 太伯山嶺[태백산령]으로부터 平野[평야]로 나오기까지의 逕路[경로]를 말하지 않고, 그대로 바로 壇君[단군]의 「都平壤始稱朝鮮[도평양시칭조선]」과, 百岳山[백악산] 阿斯達[아사달] 及[급] 藏唐京[장당경]으로 遷轉[천전]하다가 箕子[기자]에게 讓國[양국]하고 阿斯達[아사달]에 還隱[환은]하여 山神[산신]됨을 말하는데, 그중에 阿斯達[아사달]의 一名[일명]으로 弓忽山[궁홀산]·今彌達[금미달] 등이 있음을 들었읍니다. 말하자면 壇君[단군]을 말미암아 歷史[역사]의 舞臺[무대]로 끌려 나오게 된 地方[지방]은, 最大限度[최대한도]로 太伯山[태백산] 至[지] 阿斯達[아사달]의 間[간]이요, 그 중에서도 平壤[평양] 白岳[백악]의 間─ 大同江[대동강]을 끼고 絶讓海[절양해]를 가로 타고 九月山[구월산]에 다다르는 불과 幾百里[기백리]의 地[지]가 그 中心[중심] 舞臺[무대]인 觀[관]이 있읍니다. 朝鮮[조선]이라는 國號[국호]는 실로 이 一帶[일대] 地域[지역]에 주었던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壇君記[단군기]를 떠나서 原始朝鮮[원시조선]의 大勢[대세]를 살피건대, 半島[반도](아니 震域[진역])에 있어서 가장 일찌기 開明[개명]된 지방이 어디겠느냐 하면, 平壤[평양] 이하의 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이 그것일 밖에 없음은 前後[전후] 여러 가지의 事實[사실]로써 짐작할 바니, 土地[토지]의 가장 平衍[평연]하고 膏沃[고옥]한 곳이 거기요, 교통의 가장 樞要[추요]하고 편리한 곳이 거기요 ─ 農業[농업]이 일어나고, 聚落[취락]이 생기고, 移住民[이주민]이 많이 모여들고, 北[북]으로 長江[장강]과 東[동]으로 大山[대산]을 껴서, 外敵[외적] 防禦[방어] 기타에 편의가 크기로 이만한 興國地[흥국지]가 더 없을 만하였읍니다. 滅惡山脈[멸악산맥]으로부터 九月山[구월산]까지는 마치 黃載寧[황재령] 벌판의 一國土[일국토]를 桿偉[간위]하려는 城郭[성곽]도 같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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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춘추] 戰國[전국] 이래로 支那[지나]의 移住民[이주민]이 幅湊[폭주]해 들어와서, 處處[처처]에 「콜로니」를 세우기도 이 지방을 중심으로 하였거니와, 이 流民[유민]이 이리 倒着[도착]하였을 때에 이 지방에는 이미 解氏[해씨]를 王族[왕족]으로 하여, 文化[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一故王國[일고왕국]이 있음을 보았으니, 이 解氏[해씨]가 나중에 箕子[기자]하고 習合[습합]이 되어서 이른바 箕子朝鮮[기자조선]이란 것으로 漢代[한대]에 까지 존속한 것입니다. 解氏[해씨]의 朝鮮[조선]이 衛滿[위만]에게 僣竊[참절]되고, 衛滿[위만]의 後[후]에 漢[한]의 四郡[사군]이 생기고, 四郡[사군]이 樂浪[낙랑]하나로 졸아들고, 樂浪[낙랑]이 帶方[대방]이라는 곁가지를 내어가면서, 前後[전후] 四[사]백년이나 계속하는 支那人[지나인]의 僑民生活[교민생활]은 언제든지 역시 이 一帶[일대] 地方[지방]을 中軸[중축]으로 하여 面面[면면]이 張縮[장축]하였으며, 고구려는 北[북]으로서, 백제는 南[남]으로서 腹背[복배]로 壓搾[압착]하여 漢人[한인]의 僑群[교군]을 驅逐[구축]한 뒤에, 이른바 三國時代[삼국시대]란 新局面[신국면]으로써 앞서서는 麗[여]·濟[제]와, 뒤에서는 麗[여]·羅[라]가 龍拏虎搏[용나호박]의 爭覇戰[쟁패전]을 演出[연출]할새, 그 花形[화형] 倡優[창우]인 高句麗[고구려]의 近取退守的[근취퇴수적] 策源地[책원지]는 역시 이 一帶[일대] 地方[지방]에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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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고려]는 半島[반도]에 있는 北系[북계] 勢力[세력]을 업고 일어난 나라인만큼, 開城[개성]·平壤[평양]의 間[간]은 그 國本的[국본적] 意義[의의]에 조금도 軒輊[헌지]이 없고, 더욱 大同江[대동강] 左右[좌우]는 三京均平論[삼경균평론]에 있는 「極器百牙岡[극기백아강]」의 地[지]로 國家[국가]의 重視[중시]가 前後[전후]에 갈림이 없고(高麗史[고려사] 金謂蟬傳[김위선전]), 李朝[이조]에 이르러서도 九月山[구월산]을 中心[중심]으로 한 一帶[일대] 地方[지방]이 어떻게 重視[중시]되었는지는 三聖祠[삼성사] 崇奉[숭봉]이 曠前[광전]의 隆崇[융숭]을 보였음과, 무서운 心力[심력]을 허비하여 一大[일대] 山城[산성]을 築造[축조]하였음과, 開城[개성] 五冠[오관]·漢陽[한양]·三角[삼각]·公州[공주] 鷄龍[계룡]과 같이 「結作於江海交會之處[걸작어강해교회지처], 斯爲大力量[사위대역량], 如此者國中有四[여차자국중유사]」(擇里志[택리지] 山水[산수])의 一[일]로 「此當爲一番都會[차당위일번도회]」(上同[상동])의 民信[민신]이 있었음에서 알 것입니다. 만일 震域[진역]에서 歷史[역사]의 첫 張[장]과 한가지 출현하여 이날 이때까지라도 잠시도 그 중심을 ─ 특히 經濟的[경제적] 中心[중심]을 비켜나지 아니한 지방을 찾는다면, 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 특히 그 左岸[좌안]의 大平野[대평야]를 들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러한 所以[소이]는 무엇인가? 얼른 말하면 五[오]천 년 一貫[일관]의 朝鮮[조선]의 밥그릇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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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 海西[해서]의 山野[산야]를 더듬어 朝鮮[조선]의 遺墟[유허]와 樂浪[낙랑]의 廢址[폐지]를 살핀 後[후], 九月山[구월산]의 四王峯上[사왕봉상]에 높이 올라앉아서, 山[산]으로 海[해]로 野[야]로, 四方豁然[사방활연]한 眼界[안계]를 둘러 보고 唱然[창연]히 한탄하기를, 어허! 半萬年[반만년]이 저기 널렸고, 어허, 半萬年[반만년] 먹고도 줄지 않는 큰 밥그릇이 저기 놓였구나 한 일이 있읍니다. 半島[반도]에 人跡[인적]이 박히면서 榛蕪[진무]가 먼저 열리고, 阡陌[천맥]이 진작 통하여 超王朝[초왕조]·超民族的[초민족적]으로 半島的[반도적] 朝鮮[조선] 歷史[역사]의 產室[산실]되고, 幼稚園[유치원]되고, 因[인]하여 小中學校[소중학교] 된 곳은, 실로 朝鮮[조선] 全歷史[전역사]의 穀倉[곡창]이던 南五里[남오리] 내지 棘城[극성]의 大野[대야]니, 朝鮮[조선]이란 이름이 본디 이 지방에 생겨난 이름이요, 平壤[평양]이란 것도 오늘과 같지 않고, 실상 大同江[대동강] 左岸[좌안]에 있던 것입니다. 얼른 말하면, 半島[반도]의 古代[고대]는 이 食[식] 끈을 쥐고 버둥질·가댁질을 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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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黃海道[황해도]는 「岊嶺與九月[절령여구월], 東西對峙[동서대치], 爲一大水口[위일대수구], 而南五里江劃處一野之中[이남오리강획처일야지중], 自南北注浿江[자남북주패강], 江東則黃州鳳山瑞興平山[강동즉황주봉산서흥평산], 江西則安岳文化信川載寧也[강서즉안악문화신천재령야], 八邑大同俗[팔읍대동속], 而俱在綿岳首陽之北[이구재면악수양지북], 土上腴[토상유], 宜五穀[의오곡], 綿絮鉛鐵則山出而碁置矣[면서연철즉산출이기치의], 江東西岸[강동서안], 皆挾水築長堤[개협수축장제], 內皆水田[내개수전], 秔稻一望無際[갱도일망무제], 如中國之蘇湖矣[여중국지소호의], 且米之產於此者[차미지산어차자], 顆粒長大[과립장대], 體性粘潤[체성점윤], 異於他地[이어타지], 內厨用以爲御供者[내주용이위어공자], 只此地米也[지차지미야」(擇里志[택리지] 黃海道[황해도])요, 더욱 九月山[구월산]은 「西北負海[서북부해], 東南逆受平壤載寧二江[동남역수평양재령이강], 二水通潮汐[이수통조석], 魚鹽之利[어염지리], 全據黃海一道之勝[전거황해일도지승], 而南五里又有百里沃野[이남오리우유백리옥야], 水勢及地理之險阻[수세급지리지험조], 田地之饒沃[전지지요옥], 大勝於鷄龍[대승어계룡], 石山鋸齒之勢[석산거치지세], 亦不下於五冠三角[역불하어오관삼각]」(擇里志[택리지] 山水[산수])이니, 이 大野[대야]와 沃土[옥토]가 遼東[요동]으로서 흘러 내려오는 夫餘[부여]의 解氏[해씨] 一族[일족]을 머물러서, 朝鮮[조선]의 富潤[부윤]을 만들고, 黃海[황해] 건너의 漢民族[한민족]을 招來[초래]하여다가 樂浪[낙랑]의 文化[문화]를 만들어 내고, 公孫度[공손도]에게 遼東[요동] 豪光[호광]을 주고, 長壽王[장수왕]에게 高句麗[고구려] 霸業[패업]을 주고, 朝鮮史[조선사]의 맷돌이 언제든지 중쇠를 九月山[구월산] 기슭에 박고 있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읍니다. 高麗[고려] 崔氏[최씨]의 어깻바람과 安東[안동] 金氏[김씨]의 게트림도 다 「나무리」흙속으으로서 나온 것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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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經濟的[경제적] 好條件[호조건]과 生活相[생활상] 大便宜[대편의]는 古代人[고대인]일수록 더욱 要求[요구]하던 것이요, 아니 原始人[원시인]에게는 이렇게 풍부한 天惠[천혜]가 아니면, 그 國家[국가] 及[급] 文化[문화]의 創造力[창조력]이 발휘될 수 없던 것입니다. 古代[고대] 震域[진역] ─ 그 半島[반도]안에 있어서 國家[국가]의 胎毓地[태육지]가 있다 하면, 大同江[대동강] 左岸[좌안] 岊嶺[절령]·九月[구월]의 間[간]이아니고 다른 데가 있을 수 없읍니다. 壇君[단군] 이후의 歷史的[역사적] 頭領地[두령지]가 內外[내외] 國民[국민]을 통하여, 항상 九月山[구월산] 一帶[일대]의 地[지]임을 그대로 우리가 붙잡아서, 그 이전의 상태를 證明[증명]시키기에 주저할 필요가 없음은, 이 區宇[구우]가 原始國家[원시국가]의 生長地[생장지]로 恰好[흡호]한 資料[자료]인 것이 前[전]이라고 後[후]와 같지 않았을 리 없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무도 그 始初[시초]를 모르는 朝鮮[조선]이란 最古國[최고국]이 바로 거기 있지 아니하였었읍니까? 朝鮮[조선]이란 그 語義[어의]부터가 처음 開明[개명]된 곳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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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時朝鮮[아시조선] 二六頁[이육엽] 本全集[본전집] 卷二[권이], 一五七頁[일오칠엽] 參照[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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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壇君記[단군기]가 神話部[신화부]의 話意[화의]가 어디를 舞臺[무대]로 하고 어디를 發展[발전] 方面[방면]으로 하고, 얼마큼을 包括[포괄] 範圍[범위]로 하려 한 것이었거나,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제쳐두고 歷史部[역사부] ─ 半島的[반도적] 制約[제약]을 지키려는 듯한 後代[후대] 觀念的[관념적] 朝鮮[조선]의 그것에 있어서는 平壤[평양]으로부터 阿斯達[아사달]까지의 극히 좁은 地域[지역]을 그 一[일]천 五[오]백 년 逍遙徜徉[소요상양]의 범위로 허락하기에 그친 것이, 생각하면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장황히 辨論[변론]할 것 없이, 壇君記[단군기]의 이러한 부분이 엄밀히 原史[원사]의 素性[소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壇君記[단군기]가 그 背景[배경]된 事實[사실]과 한가지, 이 지방에서 생기고 돌아다니고 물러나오던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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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삼국유사]>의 著者[저자]는 神話部[신화부]의 舞臺[무대]인 太伯山[태백산]을 妙香山[묘향산]으로써 擬[의]하여, 神話[신화]까지에 半島的[반도적] 制約[제약]을 주는 동시에, 일변 神話部[신화부]와 歷史部[역사부]와의 연락을 좀 밀접하게 할 양으로 노력도 하였으나, 이것도 필경은 徒勞[도로]이었으며, 역사적인 壇君[단군]의 地理[지리]는 依然[의연]히 平壤[평양] 阿斯達[아사달]의 間[간]에 제한되지 아니치 못함이, 없앨 듯 없애지 못한 古記[고기]의 엄연한 眞面目[진면목]이며, 여기 이른바 平壤[평양]은 시방 平壤[평양]일 것 아니라, 衛滿[위만]의 王儉城[왕검성]과 漢魏[한위]의 樂浪郡治[낙랑군치]가 다 大同江[대동강]의 左岸[좌안]임에서 想察[상찰]되는 것처럼, 壇君代[단군대]의 平壤[평양]도 그 위치를 定[정]한다면 또한 江南[강남]의 一地點[일지점]이라 함이 可[가]하리니, 이렇게 보아서 우리는 平壤[평양] 阿斯達[아사달]의 間[간]이라 하는 것도, 얼른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狹小[협소]한 範圍[범위]에 그칠 것을 생각하는 者[자]로, 그 國都[국도]란 것은 九月山[구월산]의 이 峯[봉] 저 峯[봉], 혹 이쪽 기슭 저쪽 기슭에 오락가락하던 것이 아닐까 하기까지 하는 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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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壇君[단군]의 民俗學的[민속학적] 硏究[연구]는 祭司的[제사적] 「神人[신인]」的[적]인 上世[상세]의 君長[군장]이심을 말하고, 震域[진역]의 古信仰[고신앙]은 우리의 소위 山[산] 祖[조] 天[천] 三位一體的[삼위일체적] 觀念[관념]을 핵심으로 하여 성립하였었으니, 壇君[단군]의 天敎神政[천교신정]을 認[인]하자면 그 神域[신역]·靈畤영치]·盛居[성거]·仙閭[선려]를 山頂的[산정적]으로 먼저 設定[설정]함을 要[요]하리니, 이것을 大同江[대동강] 南[남]에서 찾는다 하면 九月山[구월산]밖에 다시 무엇이 있으며, 九月山[구월산] 내어놓고 다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렇게 보아서 우리는 壇君[단군]의 國土[국토]를 載寧江[재령강] 左右[좌우] 平野[평야]로 보는 동시에, 그 國都[국도] ─ 엄밀한 의미로는 「마지코 렐리져스」당시의 神宮[신궁] 所在地[소재지]는 당초부터 九月山[구월산]이요, 본디 九月山[구월산]을 떠날 수 없던 것이요, 또 事實[사실]도 九月山[구월산]으로 始終[시종]하였으리라 하고 싶습니다. 桓雄[환웅]의 天降[천강]은 太伯山[태백산]인데, 太伯山[태백산]이 어디인 것은 본디부터 神話的[신화적] 解釋[해석]에 붙일 것이요, 또 壇君[단군] 事跡[사적]도 神話的[신화적]·宗敎的[종교적]으로부터 할 적에는 어떻게 될른지 모를 것이지마는, 이것을 歷史的[역사적] 특히 半島[반도]의 그것으로 보고 歷史[역사] 地理的[지리적]으로 定[정]하려 하면, 壇君[단군]에 관한 一切[일체] 聖地[성지]는 항상 九月山中[구월산중]에 있을 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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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記[고기]에 적은 白岳山[백악산] 阿斯達[아사달]이, 後人[후인]의 推定[추정]과 같이 (高麗史[고려사] 地理志[지리지] 以下[이하]로) 九月山[구월산]일 것은 대개 의심 없을 것이며, 九月山[구월산]이 白岳[백악]=「」 大山[대산]이매 더할 말이 없거니와, 그 一名[일명]이라고 列擧[열거]한 方忽[방홀](=곰달=神岳[신악])이라 함이 다 우연 아닐 것이며, 阿斯達[아사달]의 阿斯[아사]도 필시는 古神事[고신사]에 관계되는 一語[일어]일지니, 이제 적절한 對究[대구]를 할 수는 없으되 日本語[일본어]의 ァサ(우리 「아츰」의 同源語[동원어]), 唐古特[당고특](탕구트)語[어]의 鄂特[악특](光明[광명], 金史語海[금사어해] 三[삼])과 乃至梵語[내지범어]의 Ushai(曙光[서광]), 伊蘭語[이란어]의 asu(生氣[생기]·神靈[신령]),北歐[북구] 神話[신화] 중에 보이는 Asa-heim ov Aa-ugard(神界[신계])의 asa ov as(神[신]) 등을 參互[참호]하여, 그 古義[고의]를 더듬을 것일까 합니다(또 혹시 凶奴語[흉노어]의 「閼支[알지]」, 新羅語[신라어]의 「閼智[알지]」, 通古斯語[통고사어]의 asi, 現[현] 朝鮮語[조선어]에 「아씨」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女子[여자] ─ 妻[처] ─ 皇后[황후] 등을 의미하는 語[어]로 古代[고대] 宗敎觀念[종교관념]의 地名的[지명적] 一遺物[일유물]일른지도 모를 것입니다. 白頭山覲參記[백두산근참기] 二0二頁[이0이엽] 本全集[본전집] 卷六[권육] 九六頁[구육엽] 參照[참조]. 여하간 九月山[구월산]의 地名[지명] 語彙[어휘]의 表示[표시]하는 바가 매우 蒼古[창고]한 色[색]을 띤 古信仰[고신앙]의 餘瀝[여력]으로 보임은, 宗敎文化[종교문화]를 통해서의 壇君[단군]과 九月山[구월산]과의 관계를 밝히는 上[상]의 一旁證[일방증]되기가 足[족]한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地理[지리]를 통해서의 壇君記[단군기], 특히 그 歷史部[역사부]의 客觀的[객관적] 本性[본성]을 짚어 보는 上[상]의 一要契[일요계]를 지음이 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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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顧慮[고려]할 것은 壇君[단군]을 個人[개인]으로 본다 하면 朝鮮[조선]의 國祖[국조]이신 壇君[단군]이 半島[반도]의 안에만 局限[국한]되실 것이냐 아니냐 하는 問題[문제]가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디부터 壇君[단군]은 歷史的[역사적]의 것보다도 文化的[문화적]의 것으로 信認[신인]하므로, 따라서 보편적 의미의 壇君[단군]에 대하여는 地方的[지방적]·年代的[연대적]의 아무 制限[제한]을 더하고 싶지 아니하니, 壇君[단군]을 이렇게 봄이 失當[실당]이 아닐진대, 壇君[단군]의 名號[명호]로 稱謂[칭위]되는 古代[고대]의 神人的[신인적] 君長[군장]은 垂直[수직] 及[급] 水平[수평] 兩方[양방]으로 얼마든지 存在[존재]하였으리라고도 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壇君[단군] 中心[중심]의 文化[문화]를 가진 이가 朝鮮[조선] 歷史[역사]의 大勢[대세]를 順[순]하여, 遞降的[체강적]으로 半島[반도]로 南下[남하]한 것을 認[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大體[대체]는 白頭山[백두산]을 意味[의미]할 桓氏[환씨] 天降[천강]의 太伯山[태백산]이 後世[후세]에 와서 南[남]으로 妙香山[묘향산]에 擬[의]하게 되고, 또 壇君[단군]이란 稱謂[칭위]로는 아니지마는, 그 類語[유어]인 天王[천왕]·國師[국사] 등이 帶隨[대수]되는 太伯山[태백산]의 名號[명호]는 여기저기 있고, 또 九月山[구월산]에서 神[신]되셨다 하는 壇君[단군]의 陵[능]이 江東[강동]의 大朴山[대박산]에 있다고도 하고, 또 壇君[단군]의 國都[국도]는 아니지마는, 그 祭天壇[제천단] 及[급] 城堡[성보]가 江華[강화]의 摩尼山[마니산]에 있다고 함 등은 별수 없이 這間[저간]의 消息[소식]을 傳[전]함일 것입니다. 이 側面[측면]으로서 보자면, 壇君記[단군기]의 전하는 阿斯達的[아사달적] 朝鮮[조선] 創業談[창업담]은 그 歷史性[역사성]에 있어서 半島的[반도적] 壇君[단군]의 事蹟[사적]으로 보아도 可[가]한 것입니다. 宗敎的[종교적] 壇君[단군] ─ 信仰上[신앙상]의 壇君[단군]은 무론 別個[별개]의 문제요, 내가 여기 건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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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壇君記[단군기]의 提示[제시]하는 壇君朝鮮[단군조선]의 歷史[역사] 地理[지리]는 大勢[대세]로 보아서나 類例[유례]로 보아서나, 理論[이론]으로 보아서나 實際[실제]로나, 극히 타당하고 조금도 허망한 것을 볼 수 없으며, 그것도 後代的[후대적] 技巧[기교]를 지나서 그렇게 된 것 아니라, 소박하고 晦蔽[회폐]한 그 내용으로 그러함이 심히 탐탐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든지 制約的[제약적]·合理的[합리적]이요, 얼른 말하면 九月山[구월산] 하나를 뭇들고는 것이 미상불 傳說[전설]로나 史的[사적] 事實[사실]로나, 古義[고의] 眞相[진상]을 傳[전]하는 것일시 분명하여, 이 때문에 그 歷史的[역사적] 確度[확도]를 스스로 增上[증상]함이 크니, 저 後世[후세]의 史家[사가]들이 壇君朝鮮[단군조선]의 疆域[강역]을 妄意[망의]로 擴張[확장]하여 멀리 四界[사계]까지를 說[설]하려 함은 도리어 無謂[무위]가 甚[심]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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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歷史[역사] 地理的[지리적] 考察[고찰]에 나타나는 壇君記[단군기]는 그 後年[후년]에 있어서 간단하나마 거의 嚴正[엄정]한 歷史的[역사적] 敍述[서술]임이 窺察[규찰]되는데, 일변 그 文獻色[문헌색]이 어디까지든지 北方[북방] 成立[성립]의 것임을 나타내었으며, 또 古代[고대]의 傳承[전승]인 自性[자성]을 完全[완전]히 把持[파지]하였음을 봅니다. 이것이 만일 新羅[신라]나, 더욱 그 統一[통일] 以後[이후]나 또 或[혹] 一部[일부] 論者[논자]의 말처럼 高麗[고려] 時節[시절]의 成立[성립]일진대, 震域[진역]의 民族[민족] 及[급] 社會的[사회적] 統一[통일]의 觀念[관념] 或[혹] 事象[사상]이 반드시 投寫[투사]되고, 그 意匠[의장]과 舞臺[무대]가 훨씬 廣汎[광범]과 明瞭[명료]를 더하였겠거늘, 壇君記[단군기]는 이 點[점]에 있어서 扶餘[부여]와 高句麗[고구려], 高句麗[고구려]와 百濟[백제]의 兄弟型[형제형] 同源[동원] 傳說[전설]보다도 도리어 古朴[고박]하고 現實的[현실적]인 面目[면목]을 보유하고 있읍니다. 이 點[점]이 積極的[적극적]으로 壇君記[단군기]의 要部[요부]를 事實[사실]로 支持[지지]해 주고, 消極的[소극적]으로 壇君記[단군기]에 注集[주집]되는 怪矢[괴시]들을 反撥[반발]하는데 어떻게 필요함은 때를 따라서 省察[성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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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써 壇君記[단군기]의 歷史素[역사소]에 대한 검토를 대략 마치거니와, 이 立論[입론]의 體系[체계]를 아시는 便宜[편의]로 拙著[졸저] <兒時朝鮮[아시조선]>과, 壇君神典[단군신전]의 神話學的[신화학적] 撫觀[무관]을 위하여는 拙著[졸저] <白頭山覲參記[백두산근참기]>를 參照[참조]하시면 幸[행]일까 합니다. 또 壇君[단군] 否認論[부인론]에 대한 辨駁[변박]으로 <壇君論[단군론]>과 또 壇君記[단군기]의 逐句解[축구해]로 <壇君神典[단군신전]의 古義[고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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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단군신전(壇君神殿)에 들어 있는 역사소(歷史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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