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옥분같은 둥근달이 창옆 오동나무 가지에 달렸읍니다. 슬피우는 가을바람!
5
우수수 우수수 낙엽 떨어지는 애처로운 소리에 창을 열고, 내다보니 밝은 달은 하늘과 땅(乾坤[건곤])에 차고, 낙엽만 뜰위에 휘날리는 구려.
6
이때가 바로 새벽 한시 입니다. 그리운 H씨!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온 밤을 새어 밝히는 귀뚜라미 소리는 아직도 요란하구려. 잠들려고 잠들려고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멀리 당신을 그리는 어리석은 이 마음! 아, 이 가을밤은 이렇게 길고 긴가요? 울고싶은 밤, 누구의 노래를 듣고싶은 밤입니다.
8
내 마음에 만약 날개가 있다면 한마리 고운 청조(靑鳥)가 되어 당신집 후원을 찾아 가겠나이다.
9
그러나 날개는 없고 슬픔만 있어, 오늘밤 밝은 달아래 울고 있답니다.
11
저 밝은달, 둥글둥글 밝은달은 당신의 웃음 입니까? 저 우수수 지는 낙엽은 당신의 낙엽 입니까? 창을 열고 바라보면 저쪽에는 몇 개의 별들로 반짝이는 구려.
15
아 반짝이는 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입니까? 아, 서늘한 바람, 그는 당신의 호흡 입니까? 아, 그리운 사랑의 사람아!
17
나는 당신을 잊으려해도 잊을수가 없고, 생각하지 않으려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이 마음에 화인(火印)을 친 영원의 소상(塑像)이시여! 당신의 손으로 부디 나의 마음에서 이 소상(塑像)을 지워 버리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내앞에서 이 사랑의 소상을 불러 주소서.
18
벌레는 왜 웁니까? 이 한밤을 새우는 귀뚜라미는 분명히 가을의 비극역자(悲劇役者) 입니다. 나와함께 이 가을을 슬퍼하는 비연자(悲戀者)이겠지요.
20
언제 뵈올까요? 추야장(秋夜長) ── 이 긴밤을 당신은 깊은 꿈에 잠기었읍니까? 저는 지금도 그때 주신 사진을 꺼내들고 애달픈 고적에 잠겼읍니다. 곧 해답하여 주소서.
21
─1939년, 서간집 「나의 花環[화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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