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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鄕愁[향수]하고, 딸의 이름 澄祥[징상]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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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맨 위층 한편 구석으로 네 평 남짓한 장방형짜리 한 방을 조붓이 자리잡고 들어앉은 잡지 춘추사(春秋社)의 마침 신년호 교정에 골몰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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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적으로 갱지(更紙)에 긁히는 펜 소리 사이사이, 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만 유난히 바스락거릴 뿐, 식구라야 사원 셋에 사동 하나 해서 단출하기도 하거니와, 잠착하여 아무도 깜박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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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한복판에 가 섰는 빌딩이라, 저 아래 바깥 거리를 사납게 우짖으며 끊이지 않고 달리는 무쇠의 포효와 확성기의 아우성과 사이렌과 기타 도시의 온갖 시끄런 소음이, 그러나 이 방안에선 그리하여 잠깐 딴 세상의 음향인 듯 마치 스크린의 녹음처럼 바투 가까이서 아득하니 귀에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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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이 푸근히 더워, 사동은 구석 걸상에서 입을 벌리고 편안찮이 졸고 앉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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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상좌의 대영(大永)은 다른 두 사원과 한가지로 수북이 쌓인 아까지에 머리를 처박고 골치를 찡그리면서 한동안 교정을 하고 있다가, 이윽고 두통과 연달아 담배 생각에 정신이 번져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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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쪽으로 방 드나드는 한편 머리에 놓인 응접 소용의 원탁 앞 소파에서는 스미꼬(澄子)가 이내 고즈너기 아까 올 때 끼고 온 성좌(星座)의 이야기 를 펴들고 앉아 잠심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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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뚜룸한 베레 아래로 굵다랗게 웨이브져 내려온 머리와 더불어, 윤이 치르르 새까만 모피 외투의 넓은 깃에, 정통은 거진 다 덮이고서 조금만 벌어진 귀 뒤의 하얀 목덜미, 거기에 무심코 대영은 주의가 끌려 조용히 시선이 가서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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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같으면 훤히 잘 틘 이마라고나 할는지, 가 닿는 눈의 촉감이 보드랍게 용해되는 희고 연한 목덜미의 살결, 그것은 적실히 여자가 지닌 하나의 여자다운 매력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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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은 그리고 지금에야 그걸로 해서 비로소 이 스미꼬에게 대하여 한 여자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여성적인 매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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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펜을 쥔 채 양손을 받쳐 턱을 괴고 곰곰이 여자를, 고운 목덜미 한 곳만 앉아서 바라다보고 있던 대영은, 얼마만인지야 두어 번 가볍게 고개를 끄덱끄덱, 내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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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왼팔을 뻗쳐 건성 담배곽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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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에게도 또한, 여자다운 매력이 있기는 있었더니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그러나 그것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극히 당연한 노릇임을 마침내 깨달은, 즉 이중의 강화된 긍정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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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또는 마침내라고 해도, 하기야 오늘로 두 번째요, 따라서 인제 겨우 두 번쯤 만나는 여자이거니 한다면 그역 별로 괴이쩍을 것은 없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실상 한편으로는, 은연중 궐녀를 두고 수월치 않은 관심을 가지던 터이면서, 그러고서도 벌써 두 번이나 만나도록 여태 여자를 갖다가 순전히 한 여자로서는 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한 것은 막상 저편이 같은 한 인물은 한 인물이로되 이편의 관심하는 바 촛점이 오로지 애먼 데에 가서만 무심코 잦아져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러므로 가사 두 번이건 세 번이건 그 만난 차롓수가 상관될 것은 없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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