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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전 초(農父傳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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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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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전 초(農父傳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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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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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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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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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벌도 없고 무식한 소작인 집에 국장 영감이 났으니 그가 용이 된 세음이다. 옛날부터‘숭어부’라 하여 자식이 아비보다 뛰어났다면 아비도 기뻐했다니까 그의 아버지는 지하에서 기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믿지를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이십 년이나 된지라 지하에서 기뻐하는지 어쩌는지 낯빛은 볼길도 없거니와 만일 지금 살아 있다 치고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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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비보다 나아야 집안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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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은 이렇게 했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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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치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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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서는 이렇게 그 사람을 조롱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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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의 아버지 윤 서방이 자식이 자기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싫어한대서는 아니다. 그는 자기의 직업만이 가장 성스러운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장이니 국장이니 하는 것은 그의 눈으로 본다면 날건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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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커녕 미꾸리로도 안 보아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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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의 아버지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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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아버지 사이에 티각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열세 살 나던 해부터다 아니 좀 더 엄격히 . 따진다면 돌날부터라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가 다산계였던지 그들은 십이 남매였다. 딸이 열에 아들이 둘이었다. 그는 여덟번째로 둘째아들이다. 첫아들은 낳아서 좋아했지만 한줄에 딸을 여섯이나 연달았던지라 요새 말따나 그의 아버지는 질렸던 모양이다. 다시 딸을 낳으면 그대로 엎어놓는다고 서둘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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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나는 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겨우 압사를 면했던 것이다. 그 돌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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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서 농군이지 제 땅이라고는 기둥 한 개 꽂을 땅도 없는 소작인 집에 아들을 낳아 좋기는 하다지만 흰무리라도 한 조각 쪄줄래야 쌀 한 됫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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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무리는커녕 당장 죽에 넣을 쌀 한줌이 없는 그날의 정상이었으니 돌이고 무어고가 있을 턱이 없다. 마침 또 그는 오월 초닷새날 낳아서 단오절이라 좋기는 하다지만 농군한테는 지옥달이다. 작년 쌀은 볍씨까지 찧어먹는 형편이다. 보리 풋바심을 찧어먹자면 아직은 달포는 있어야 할 보릿고개 중에도 한고비였다. 그러니 돌차리는 감불생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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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는 갖은 짓을 해서 돌을 차렸었다. 그 돌상에서 그는 낫이니 호미니 하는 농사 연모가 아니라 붓을 집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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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우리 무갑이가 선비가 될려는가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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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머니도 할머니도 기뻐하셨고 붓을 잡음으로써 그대로 선비가 되기나 한 것처럼 모였던 동리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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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저 무순네 가운이 탁 티나보구려! 어쩌면 그 많은 중에서 하필 붓만 반짝 들고 나올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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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들 치하를 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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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을 보고 가장 기뻐해야 할 그의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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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이 또 사람 속 무던히 썩이려는 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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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이 그랬었다. 가지로 꼬이어도 통 상일은 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글 공양 줄 마련도 없이 글방에를 보냈지만 뒤를 댈 도리도 없거니와 식구는 열 식구라야 검부럭 한 오리 걷어주는 사람 없는 홀앗이가 남의 땅 아홉 마지기를 떠메고 있으니 벌어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글도 제대로 못 배우고 농삿일은커녕 상일도 몸에 배지 않아서 얼치기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끝끝내 아비의 속을 썩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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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 자리를 보구 다리를 뻗으랬다구, 그래 제가 뭘 믿구서 글은 해보겠다는 거야? 농사두 제대루 배우자면 십 년 공이 든다는 겐데 그날그날 끼니가 간데없는 농군 자식이 글을 하겠대? 배꼽이 웃을 노릇이지. 글을 잘하자면 진갑날이라야 문리가 티인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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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줍잖게 글을 배울 테면 아예 초저녁부터 그만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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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평생 두구 배워야는 겐데 섣불리 배우다 말면 중도 속한두 못 되지. 보구들은 낌센 있지? 일이 몸에 배질 않았으니 엄두도 안 나지? 그렇다구 굶어죽을 수 있던가? 글루두 못 먹구살구 일루두 못 먹구살구… 그러니 자연시리 입으루 벌어먹을 밖에는 없지. 입이란 벌어다주는 것이나 먹게 마련된 거지 밥 벌어들이란 입은 아니거든! 사람은 손발루 벌어먹으란 게지 입으루 벌어먹으란 건 아니니 입으루 벌어먹는 덴 거짓말밖에 없거든! 거짓말두 한두 번이지. 그게 안 되면 인전 노름꾼이 되구, 노름은 늘 따기만 하던가! 나종엔 협잡꾼이 되구 협잡두 시세가 안 나면 도적질을 할 밖에! 배 안에서부터 도적놈이 따루 있는 게 아니거든. 일 하기 싫은 놈이 도적놈 되는 게지. 첨에야 바눌 도적이지. 허지만 바눌 도적이 저도 모를 새에 쇠 도적놈이 되구 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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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글공부는 생각도 말란다. 오르지 못할 나무면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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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공부를 훈이가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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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버지와 반목이 된 것은 열세 살 때다. 그 해 훈은 동리 사립학교를 졸업했었다. 학교라야 당판 맹자를 끼고 다니는 개량 서당이었다. 일어는 ‘국어’라 하지 않고 일어 그대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꼬마 홍 선생이란 분이 일어를 알켜주었었다. 그 덕에 훈도‘빠가’,‘고라’도 배웠고‘곤니찌와’가 무슨 소리인지 분간하게쯤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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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결국 잘못이었다. 구구법과‘곤니찌와’를 안 것이 화였다. 훈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것이었다. 서울 중학교에 갈 궁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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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니, 뭐? 무갑아, 너 서울을 가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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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밥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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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서울루 공불 가겠노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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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을 바짝 추켜들 듯이 이렇게 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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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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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앞에서 잠자코 있다는 것은 어른 말을 수긍한다는 표시다. 사실 훈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울로 갈 작정이었다. 그도 오르지 못할 나무인 줄은 알고 있었다. 졸업기념으로 매인당 오십전씩 가져오라는 것도 못 가져간 그였다. 성의는 있었다. 그의 부친은 백방으로 주선을 하다가 못 되어서 삼십전만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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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전은 내 나종에 꼭 갖다 올린다구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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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편이었다. 말을 했으면 또 반드시 실행을 하는 윤 서방이다. 달포나 되어서 떨어진 이십전을 들고 학교에를 찾아갔더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훈이도 벌써 집에 없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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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버린 자식이니까 다시는 내 앞에 보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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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 푼도 없이 서울 공부를 가겠다고 나대는 그한테 그의 부친은 깔죽이 은전 두 닢을 내어던져주면서 액막이 하는 제웅 떼던지듯 마당에 내어동댕이를 쳤던 것이다. 그런 윤 서방이면서도 학교에 남은 돈은 잊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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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에서는 그것을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월사금은커녕 책이고 연필이고 그저 주던 시대라 4년 동안 거저 알킨 학교에 기념품으로 종을 한 개 사 걸자던 돈이었다. 그 종도 사다 걸었으니 그만두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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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 안 받으신다면 이 돈은 학교 마당에다 버리구 가겠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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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을 하고는 이십전짜리 깔죽이 은전 한 푼을 선생 책상 앞에다 던지듯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뒤 홍 선생은 입학 때만 되면 이 이야기를 하여 근동에서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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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 윤 서방은 이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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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그가 아버지와 물맞침을 한 것이 열입곱 되던 해 여름 방학이다. 훈은 이십전짜리 은전 두 푼과 어머니가 달걀 팔아 모은 돈이라 하며 밀가루가 뽀얗게 묻은 동전 스무 닢을 넣고서 삼백여 리 길을 떠났던 것이다. 농군의 자식이니 서울에 친척이 있을 리 없다. 사흘을 걸려서 왕십리로 들어왔었다. 그래도 주머니에 삼십전이 남아있었다. 보행 객줏집에서 숙박료와 밥 두 끼에 십전 하던 시대라지만 삼십전으로 공부를 하겠다던 훈이었으니 방학이 있었을 리 없다. 방학 동안에도 그는 천일약방에서 만든 은단과 고약 영신환 같은 것을 팔아야만 했었다. 훈은 서울로 온 뒤로 편지도 별로 안했었다. 편지 쓸 시간도 없을 정도의 고달픈 생활이었다. 새벽 일어나서 냄비에 밥을 끓여야 했고 구 용산서 창덕궁까지의 이십리 길을 걸어야 했고 학교가 파하면 저녁을 지어먹고 약을 팔러 여관집으로 돌아다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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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훈한테는 십분이 새로웠다. 십분이면 편지 못 쓸 수 없었으련만 쓰려들면 쓸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고 나면 또 한 줄도 내려가지를 않았다. 쓰는 데보다도 편지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데 더 시간이 걸렸다. 그래 또 집어던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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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이한테 집에서 편지가 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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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내려오니 거짓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이 짓물렀었다. 아들이 고생한다는 말을 서울 다녀온 사람한테 들었던 것이다. 편지를 한 것도 어머니였다. 순사의 부인이 보통학교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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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편지를 한 데는 보고 싶다는 이유뿐이 아니었다. 장가를 들이겠다는 속셈이었다. 천생 민며느리 가음이라도 침 찍어두어야 할 형편이라 아직은 장가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정 과부가 딸을 주겠다는 것이다. 나이는 두 살이 위였다. 그런다면 정 과부네 땅도 몇 마지기 얻어부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훈은 이런 계획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서 단독으로 추진된 것임을 내려와서야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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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바보라니까! 이 치더린 것아, 그래 사둔집 땅을 얻어부치어! 그따위 칩칩한 맘은 버려! 얼어죽어두 양반은 곁불은 안 쪼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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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었다.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훈은 덧없이 눈물이 핑 돌았었다. 분수 적은 눈물이었지만 훈은 그런 것을 인식지도 못했었다. 그날 밤 훈은 아버지가 쓰는 사랑방에 불리어 갔었다. 아버지가 장가 이야기 대신 딴조건을 제시했었다. 장가야 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대신 농사를 짓자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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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골 다녀서 눈이 높아진 네 귀엔 아비의 말쯤 귀에 들어가지두 않겟지만서 두 사람은 농살 지어야느니라. 너 월급쟁이 신셀 봤지? 월급쟁이란 허공에 뜬 거야. 허공에 ─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살거든! 뿌리 없는 나무 제 아무리 물을 주어봐라. 물 주다 하루만 건너도 시들어버리지. 월급쟁인 편할 것 같지! 매암이처럼 주는 월급이나 받아먹으니까 부러워들 하지. 허지만, 그것이 한 번 떨어져봐라! 끈 떨어진 뒤 웅박야. 농산 안 그렇거든! 너 아비 혼자 허덕대는 것 오늘두 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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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목적은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중학 3년이었다. 1년만 더 고생을 해서 기왕 내친 걸음에 일본으로라도 갈 생각이었다. 열세 살의 허무맹랑한 패기가 희한할 만큼 순조로웠던 데서 그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 한 것이 그럭저럭 어떻게 되었었고 또 어떻게 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 어떻게가 여의치 않을 때면 그는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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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그는 새벽 아무도 모르게 집을 떠났었다. 그것이 십 년간의 부자간 작별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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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가 일본서 나올 때 그의 부친은 이미 환갑이 가까웠었다. 그도 나이 삼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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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만에 부자는 만났다. 눈물겨운 상봉이었다. 열세 살에 집을 나간 훈은 이미 삼십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환갑 노인이다. 피를 나눈 아버지와 아들이었겄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얼굴 못 본 채 소식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다. 더욱이 최근 3,4년은 엽서 한 장 없이 살아온지라 그 생사조차도 기연가미연가하던 터다. 붙들고 울어도 시원치 않은 경우다. 울며 뒹굴었대도 누구 하나 웃을 사람이 없을 부자였다. 그러나 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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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부친은 마침 외양의 거름을 내고 있었다. 훈이가 삽짝 안에 들어설 때 그의 부친은 쇠스랑에 찍힌 소거름을 번쩍 들어 소쿠리에 내려놓으려던 무렵이었었다. 응당 거름이고 쇠스랑이고 내어던졌어야 할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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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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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거름을 싣고 지게를 한쪽으로 비켜놓고서야 아들 쪽으로 향했었다. 흙에서 나서 흙만 파고 살아온 아버지 눈에는 양복을 쪽 빼뜨린 아들이 좋이 못마땅했던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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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이었다. 훈은 해가 뜨자 아버지한테 끌리어 나갔었다. 동리를 나갔었으니 그 보갚음으로 인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훈은 눈꼽만 떼고 옷을 입고 나섰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인데다가 그의 부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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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뭐냐. 너 그래, 그 옷을 입구 나갈 작정이냐? 왼 동리 사람들이 흙투성이가 된 옷만 입구 사는 동리에 들어와서 그 옷을 입구 인사를 가겠단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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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탁 막히는 모양이었다. 기가 막히는 것은 그의 부친뿐이 아니다. 훈 자신도 기가 막히었다. 부친이 당장 갈아입으라고 내어던진 옷은 아버지의 헌옷이었던 것이다. 말이 옷이지 옷이 아니다. 걸레가 다 된 광목 겹바지 저고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흰빛이다. 그러나 제 색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란 돈짝만한 데도 없다. 쇠똥이 아니면 거름물이다. 겹옷이건만 안팎이 땀에 쩔었다. 살이 비어지게 싹 다린 옷만 입던 훈이었다. 코밑이 아리한 풀냄새가 사라만 져도 생리적인 불쾌를 느끼던 도회 신사는 옷에서 풍기는 쩔은 냄새에 현기증까지를 느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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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 아빈 육십 평생을 두구 입은 옷을 잠시두 못 입겠단 말이냐? 못 입겠으면 그만두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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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윤 서방은 지게 목발에 팔을 꼬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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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올시다. 입습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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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은 터진 물을 막듯 옷을 들고 방으로 뛰어갔었다. 정말 머리가 핑 돈다. 훈은 아버지 뒤를 따라서 어렸을 적 세배 돌 듯 이십여 집을 돌았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아버지 앞에서 말하는 노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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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저 외국 바람까지 쏘였으니 아버질 뫼셔야지. 자식 좋다는 것이 뭔가. 자네들은 훨훨 쏘다니며 존 구경두 많이 하구 존 음식두 진탕 먹었으니 인저 들어앉아서 아버지 일 좀 덜어드려야잖나? 보게나, 육십 노인이 새벽부터 밤까지 저 지경이니 아버진 무슨 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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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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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인지 그 자신 모르고 하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하겠노라는 말도 아니요 못하겠다는 말도 아니다. 듣는 이가 요량해 들었으면 그뿐일 대답이었다. 그 자신도 그랬다. 이리 해석해도 그만이었고 저리 해석한대도 시비할 조건이 안 되었다. 사실 이도저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훈은 몹시 지쳐 돌아왔다. 사이때가 훨씬 겨웠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십여 군데서 듣는다는 것은 그대로 중노동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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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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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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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같은 대답만 되풀이하고 돌아다녔었다. 돌아오니 느른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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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다. 훈은 누이의 혼담으로 아버지와 대담하고 있었다. 군서기로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의 누이를 달라고 왔다는 것이다. 마침 사이에 든 사람은 그의 어릴 적 친구였고 집안도 그만했다. 어머니도 몸이 달아 서두르고 있었다. 누이도 만족인 눈치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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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머닌 멋을 모르고 신바람이 나서 저런다만 ─ 난 긴찮다. 사람은 꼼꼼하다더라. 잔존한 것이 이면도 밝구. 허지만 너 어머닌 천치야. 숭맥이라니까. 한 가지밖에는 모르거든.”
 
79
“제 생각에두 괜찮은 상싶습니다만 ─”
 
80
훈은 이렇게 나서보다가 찔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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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학굘 다녔다지? 헛 다녔구나! 사람이 글을 밴다는 건 의견이 티이자구 배는 겐데 ─ 허, 너 헛공부 했어. 바른대루 말해보렴. 너 대학굘 다녔지? 보고들은 것두 많지? 음식두 가진 음식 다 먹어봤겠구? 그래, 그렇게 먹구 입구 살다가 집에 와서 있으니 어떻던? 그래, 네 동생이 해주는 음식이 입에 맞아? 안 맞지? 쓸데없는 소리니라. 그 사람이 네 동생을 한번 길에서 보군 마음이 동한 모양이더라만, 지금뿐야. 네 당장 맘에 든다구 얼씨구 내주어봐라. 일년두 못 가서 와서는 죽네 사네 할 게니. 당장 너만 해두 이 시골 구석에서 밭이나 매던 처년 안 얻겠지? 공불 못했어두 좋다? 시체 풍속을 몰라두 좋다? 그때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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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루 이 영감님은 어떻게 다루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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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은 밤 늦도록 이런 생각이었다. 훈은 자기 부친이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가 했다. 그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농군으로 가장하고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던 것이다. 훈은 어렸을 적 생각도 해보는 것이었다. 그가 아직 철도 안 났을 때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두고 해보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한식이 지나서 걷음새를 하기까지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삼동에도 먼동이 트면 벌써 자리를 튀어난다. 망태를 둘러메고 쇠똥이나 개똥을 주우러 가는 것이다. 새벽소바리꾼들이 자나가기 때문이다. 행길을 한 바퀴 돌아서는 비를 들고 나간다. 그의 집 앞이 바로 싸전이었다. 장날이면 싸전이 서지만 무시날은 터가 넓으니까 나무꾼들이 수십 명씩 모여드는 것이다. 대개 짐나무였다. 나뭇짐끼리 스치기도 하려니와 매일 한두 사람쯤은 나뭇짐을 깨빡을 친다. 상짐이면 십오전, 애기짐은 십전이었다. 나무를 사는 사람은 대개가 면서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 장사집이다. 비싸니 싸니 시비도 나고 가자거니 안 가겠다거니 승강이 끝에는 으레껏 나뭇짐이 나가동그라진다. 이래저래 흩어진 나무를 쓸어모으면 쇠죽내기는 되는 수가 많았다. 홀앗이에 농사 지으랴 땔나무를 대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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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훈이가 열 살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훈은 댕댕이 그물로 미꾸리를 잡아가지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손바닥만한 붕어가 그물에 들었었다. 그는 용의 목을 탄 사람처럼 신바람이 났었다. 아직 해도 있었고 좀더 잡았으면 붕어가 또 잡혔을지도 몰랐으련만 훈은 잡은 붕어를 자랑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던 것이다. 그때였다. 훈은 수푸리재 뙈기밭에서 깨를 베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어린 생각에도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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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부지가 도둑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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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은 가슴이 다 뛰었다. 아버지가 베고 있는 깨밭은 분명 그의 밭이 아니었다. 훈네 밭은 뒤뜰에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똘똘이네 밭이 틀림이 없었다. 그 밭에는 매해 똘똘네가 골참외를 심기 때문에 훈이도 잘 아는 터다. 훈은 어린 속에도 못 볼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오던 길을 논둑으로 내려섰다.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기를 더 잡았다. 붕어는 못 잡았지만 실뱀장어가 논두렁에 들었었다.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인제는 자기도 어른이 된 것처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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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온 훈은 이번에는 정말 놀랐었다 마당 앞에 깨 한짐이 놓여져 있지 않은가? 무서운 일이었다. 훈은 슬프기도 했다. 그는 남의 깨를 훔치러 다니는 아버지를 가진 것이 슬펐다. 부끄럽다. 동무 앞에 무슨 낯으로 나가랴 싶다. 붕어도 뱀장어도 자랑할 기력이 없어져서 우물 둥천에다 내어던지고 상에 달라붙어 버렸었다. 순 조밥이다. 북간도에서 나오던 것이다. 훈은 되도록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흘깃흘깃 아버지를 훔쳐보면서 밥을 먹고 있으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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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갑아, 너 저녁 먹구 똘똘이 형 좀 아부지가 오란다구 그래라. 이눔, 한번 혼구멍을 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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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유? 뭘 잘못했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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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의 어머니가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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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 이면 이만저만한 잘못이야. 그놈 못 쓰겠더라. 될상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구 싹수가 뇌랗거든. 젊은놈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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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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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런 일이 있다니까. 너 다 먹었건 냉큼 뛰어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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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이다. 그의 부친은 똘똘이 형 점득이를 사랑 봉당에 꿇어앉혀놓고서 생벼락을 내렸던 것이다. 점득이는 술기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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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래,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하늘이? 초가을엔 양반집 대부인두 나막신을 신구 나댄단다. 이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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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마디 뚝 떼어놓고는 막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점득이가 대답할 여유도 안준다. 대답은커녕 미처 숨도 못 쉬게 하는 것이었다. 점득이는 작년에 아버지를 잃었었다. 혼자서 어머니와 세 동생을 먹여살려야 한다. 그런 책임이 있는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곡식이 익어 튀도록 걷지를 않는 것은 남의 물건을 훔친 죄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98
“네 생각엔 내 곡식 내가 안 걷었기로니 딴남이 무슨 참견이냐 이렇게 생각이 들 거라? 그렇지, 이눔? 남의 집 제사에 쓸데없이 대추 놔라 밤 놔라한다구 까우롱하지? 아니는 뭐가 아니냐, 네 눈초리 보면 다 안다. 그게 또 못된 생각이거든! 느 아버지하군 생전에 자별히 지난 내다. 너두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농사란 저만 위해 짓는게 아니거든. 세상을 위해 짓는 거야. 남을 위해 짓는 게구. 저만 위해 짓는다면 저 먹을 것만 지으면 그만이게! 농사란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하늘 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짓는 게거든!”
 
99
저녁도 못 먹은 점득이의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농군인 윤 서방의 꾸지람은 그칠 줄을 몰랐었다. ─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였지만, 지금도 그 때의 자기 아버지의 증오에 타던 눈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100
그 일이 있은 후로 윤 서방은 점득이의‘의붓아비’가 되고 말았었다. 물론 점득이를 놀리느라고 동무들은 다 그 아버지가 보이면 놀려댔다.
 
101
“점득아, 저기 가신다.”
 
102
“누가?”
 
103
“느 의붓아버지 말여!”
 
104
“망할 자식은!”
 
105
점득이뿐이 아니다. 여인네들도 그랬었다. 모여들 있는데 혹 윤 서방이 지나가면 점득 어머니를 놀렸다.
 
106
“저기 가시는군.”
 
107
“누가?”
 
108
“아, 점득 아부지 말여!”
 
109
점득 어머니는 그런 놀림을 받을 나이기도 했었다. 그때 아직 서른여덟이 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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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1
훈도 아버지와 함께 농사나 지어볼까 하는 생각을 먹어보지 않은 바도 아니다. 말은 대학을 나왔다지만 취직 자리 하나 만만하지 않았다. 이미 그러리라 싶어 일본서부터 부탁을 할 만한 자리에 간곡한 편지를 띄워두었던 것이나 막상 나와보니 여의치가 않았다. 훈은 헛되이 서울서 달포나 친구들의 신세를 지다가 집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서울을 떠날 때는 일본서 책을 정리해 가지고 나온 돈도 다 떨어지고 없었다.
 
112
“어쨌든 집엘 한번 다녀오게나. 월말까지야 무슨 탁방이 나겠지.”
 
113
친구도 더 도와줄 수가 없어진 눈치다. 사실 친구에게 성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일 못지않게 몸이 달아하나 동경에서 찍힌 부정선인이란 넉자가 방해가 되니 도리가 없다. 할 수 없이 민간 신문사를 뚫어보란 것이나 그 친구는 신문사에는 통 길이 닿지를 않던 것이다. 헛되이 돈만 썼다. 술값도 좋이 들었었다.
 
114
“먹두 못하는 제사에 공연히 절만 하구 돌아다닌 셈 아닌가? 그 자식들 자신이 없으면 술은 왜 처먹는 거야.”
 
115
그 월말이 두 번이나 지났다. 그래도 엽서 한 장이 없는 것이다.
 
116
고향에서의 두 달 동안은 훈에게 있어서 그대로 인생의 지옥이었다. 마침 농삿일이 시작될 무렵의 두 달이었다. 훈은 닥치는 대로 끌려다니었다. 무엇 하나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 심부름꾼 노릇밖에 안 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아무것이나 시키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아무것이나 해야 했다. 훈은 동경서의 생활이 연상되었다. 동경 처음 가서 얻은 직업이 토역장이의 왜말로는‘데모도’란 것이다. 회를 개어보았나 벽을 발라보았나. 회와 모래를 섞는 데도 삽질에 격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니 아무것이나 해야 했고 또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담배 심부름이며 휴지 심부름까지 했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의 신세란 언제나 마찬가지다.
 
117
“얘야, 너 그렇게 흙을 덮어놓으면 씨앗이 고리장 지내는 줄 알잖겠느냐.”
 
118
무밭에 씨를 뿌리고 흙 하나 덮을 줄 모르는 훈이를 그의 부친은 이렇게 윽박았다.
 
119
“이거 내버려두구 저 통 가지고 가서 물이나 들어오너라.”
 
120
말이 물긷기지 지게가 등에 붙지가 않는다. 긷는 물보다 엎지른 물이 더 많다. 또 퇴짜였다.
 
121
“얘, 너 물 놔두구 상철이네 가서 소 몰구 오다가 집에 들러서 거름 질마 얹어가지구 오너라. 네 넷째누이네 바깥 뒤깐 모솔기에 돼지 거름 쳐낸 게 있을 게니 나오다가 그걸 긁어얹구 ─”
 
122
생전 쇠고삐도 다루어보지 못한 사람의 손이다. 소만 해도 훈이보다는 영리한지라 도시 말을 안 듣는다. 누에처럼 머리만 홰홰 내어둘러대니 질색이었다. 거름 길마를 얹어보았을 리가 없다. 소 옆에 가보지도 못한 훈이다. 다루기는커녕 험상궂은 눈깔과 뿔끝만 눈에 뜨이어 지기를 못 펴노니 길마는 감불생심이다. 길마를 들고 가까이 할라치면 이놈이 무슨 생각인지 쓰윽 돌아서서 눈을 부라린다. 뿔끝을 피하기에만도 그는 진땀을 쭉 흘리고 있었다. 그때 그의 부친이 달려왔었다. 자기 생각만 했을 게다. 외양에 맨 소에 거름 길마를 번쩍 들어 얹어 서너 삼태밖에 안 되는 거름이니 쇠스랑으로 몇 번 찍어 실었으면 두세 행보를 했어도 했을 시간인데 가암가암 소식이니까 달려온 것이다. 와서 보니 그 꼴이다.
 
123
“얘, 너 그것 놔두구 지게에 저 재나 끄러담아 지구 나가거라.”
 
124
하루에도 십여 가지 일을 한 셈이나 기실 한 가지도 한 일이 없는 폭이다. 훈은 그 때까지도 농사란 한가한 생업이니라 생각해오고 있었다. 해토가 되면 시적시적 밭도 갈고 씨도 뿌리고 해두었다가 가을이면 또 시적시적 걷어 쌓아놓고서 삼동은 들어앉아 유유히 먹고 지낸다. ─ 물론 어려서부터 농사에서 자란 터라 농삿일이 누워 떡먹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직조니 철공이니 초를 다투는 기계를 본 관념으로 농삿일처럼 수월한 것은 없느니라 했던 것이다.
 
125
그러나 두 달 동안 끌려다녀 보고서 그는 비로소 농사 생업보다도 더 바쁜 생업이 없느니라 했었다. 기계는 휴식이 있었다. 그러나 농삿일에는 휴식이 있을 수 없었다. 기계는 사람이 돌리는 것이었다. 전기 스위치만 돌리면 기계는 얼마든지 또 언제든지 인간이 그 필요만 느낀다면 정지시킬 수도 있고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양에는 스위치가 있을 수 없다. 기계는 인간의 자유의사에 순응하여 움직여준다. 그러나 태양은 ─ 자연은 인간의 의사를 무시하고 있다. 자연이 움직임에 따라서 인간이 움직이어야 했다. 그나마 일정한 법칙과 규율이 있는 행동이 아니다. 태양은 언제나 흐릴 수도 있었고 비를 뿌릴 수도 있었다. 인간이 비를 필요로 할 때 ─ 떡을 치고 소 돼지를 잡아 목욕재계를 하고서 옷깃을 갖추어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의 머리 위에 불비를 내리는 태양이었고 목에서 피가 나도록 비를 그쳐줍소사 빌고 절하고 할 때도 폭포 같은 빗줄기를 그대로 퍼부을 수도 있는 하늘이었다.
 
126
그뿐이 아니다. 기계 생업은 한 가지만 맡음으로써 족했었다. 기계를 돌리는 사람은 기계만 돌리면 쌀도 나오고 물도 나오고 비누도 옷감도 성냥도 술도 ─ 한 인간이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체가 쏟아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사는 아니었다.
 
127
한 사람의 농군이 자기가 생명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꼭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곡식도 쌀뿐이 아니다. 쌀도 찹쌀과 멥쌀, 조, 기장, 수수, 콩에 팥이며 파요 마늘이요 참깨, 들깨에 고추 등을 꼭 자기 손으로 심어야 했고 자기 손으로 가꾸어야 했고 자기 손으로 거두어야 했다.
 
128
사람은 먹기만 하면 사는 동물이 아니다. 입어야 했다. 목화도 심어야 하고 씨아를 틀어 씨도 빼야 했고 실을 뽑을 것을 뽑고 잴 것은 재야 했으며 뽑았으면 짜야 했고 짠 것은 말라야 했다. 이것도 그들 자신의 손만으로 해야 하는 것이 농군이었고 농부의 아내였다.
 
129
인간은 자기 한몸만이 생존할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한 농부는 아내와 처자가 생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일체를 또 심어야 했고 가꾸어야 했고 거두어야 했던 것이다. 훈은 질리고 말았었다. 훈이가 기가 질린 데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한 농부의 일(一)생애는 그가 본 두 달 동안으로 족했던 것이다.
 
130
그의 아버지는 일곱 살부터 꼴지게를 졌다는 것이다. 그 지게를 환갑이 되는 오늘날까지 아직도 벗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월 초하룻날과 자기 생일날 이외에는 쌀밥은 먹어보지 못한 오십 평생이었었다. 토시 한번 끼어 보지 못한 생애였고 미투리 한 켤레 신어보지 못한 일생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직도 소작인이었다. 처음 지게를 등에 지던 여덟 살에는, 그의 부친은 소작인의 아들이었고 오십 년 뒤인 오늘날은 그 자신이 소작인이 된 것이었다. 훈은 생각했다. 만일에 자기가 농촌에 파묻히면 지금은 오십 년의 자기 아버지 이름이었던‘소작인의 아들’을 답습할 것이요, 부친이 작고하면 자기 자신이 소작인이 되는 것뿐 그 이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변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훈은 마음을 작정하고 다시 고향을 버리었다.
 
131
20년 전 이야기다.
 
 

 
132
6
 
 
133
그의 부친이 작고한 것은 그가 서른아홉 살 때였다. 아홉수를 때웠다고들 그랬다. 전보를 받고 쫓아간 때는 벌써 생과 사와의 한계가 분명치 않았었다. 그래도 아들인 것만은 알아보는 모양이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겨우 불러 자기 앞에 앉히고 그의 손을 만지던 것이다. 손은 찼다. 그 찬 기운에서 훈은 죽음을 느끼던 것이다.
 
134
“네 댁도 왔냐?”
 
135
“네.”
 
136
“건 뭣하러.”
 
137
“저 여기 있습니다, 아버님.”
 
138
아내가 이렇게 말하며 손을 내어밀었다. 그는 며느리의 손을 잡아주지 않고 또 한마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139
“건 뭣하러.”
 
140
“훈아, 너 나 죽건, 우리 밭머리에 묻어다고. 거가 양지바르구 바람 안받구 좋니라. 풍수한테 돈 들인 사람들 뭐 별수 없더구나.”
 
141
밭이란 해마다 참외를 심는 하루갈이 말이다. 그 밭머리에 여남은 평쯤 된 흡사 분봉 같은 흙더미가 있었다. 옛날 절터라고도 전해져 있어 밭에서 그릇 조각이 나오기도 한 자리였다. 훈은 그의 아버지가 왜 그 자리를 택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말은 바람이 안 받고 양지발라서 하지만 자기 땅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밭이 그의 일대 ─ 아니 훈이가 아는 한 십 몇 대 전부터 착실히 소작을 해온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동리 사람들은 이 밭을‘개똥밭’이라 불렀었다. 윤 서방이 30년간 개똥을 주워모아서 샀다 해도 과언이 아닌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5년 전이었다. 훈이가 여러 해 만에 집에를 들렀었다. 마침 읍내까지 공무로 왔던 길에 들른 것이다. 그날이 마침 소작인 윤달성이가 평생 처음으로 땅을 산 날이었다.
 
142
“나 밭 하나 샀다!”
 
143
부친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하고 문서를 내어보이던 것이다. 오십을 훨씬 넘은 부친은 어린애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는 벌써 날이 어두웠었건만 부친은 기어이 아들을 끌고 가서 구경을 시키려 든다. 훈도 아버지의 심중이 이해되어 따라나섰었다. 그때는 벌써 어두워서 밭 한계도 아리숭했다.
 
144
“봐라. 미끈하게 생겼잖았니? 제 구실 단단히 할 게니 두고 보렴. 인저부턴 밭농사두 얕 못본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논농사에만 너무 치우쳤더니라.”
 
145
이런 말도 했었다.
 
146
“밭농사엔 그저 퇴비라야지. 유안이다 뭐다 다 소용 없느니라. 양약과 마찬가지야. 약은 한약이래야지 겉칠만 해서 병이 낫느냐. 지금 비룐 지기를 뺏아먹느니라. 그야 그 비룐 쓰면 금세야 잘되지. 허지만 건 땅 지길 빼서 빨아먹는 거지… 이눔들이 우리 나라 땅 지길 싹 빼어먹자는 수작이니라. 그래야만 저의들 장사가 될 거 아니냐? 땅이란 푹 썩혀야느니라. 인조 비룐 아편과 마찬가지야. 첫핸 한 삼태기루 되지. 허지만 이듬해 가면 그 한 삼태기 가지구 안 된단 말야. 자꾸 늘거든. 그러다가 땅 지기가 거름에 져버리구 마느니라. 땅이 거름을 집어먹어야지 거름이 땅을 집어먹으면 뭐가 되지? 사람의 병두 그렇지. 육신이 약을 이기어야지 약이 몸뚱일 이겨노면 사람은 죽구 마는 거야.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러니라. 너 시체 학문만 닦아서 이런 말이 귀에 들어가지두 않겠지만서두 이치란 안 그러니라. 약만으루 큰 사람은 약 떨어지면 그만야. 안 그러냐?”
 
147
물론 그때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싶을 정도였었다. 그러나 나이 먹어갈수록에 훈은 이 무식한 농군의 말이 깊은 진리를 갖고 있었음을 발견하던 것이다. 그의 부친은 훈이가 간 지 열 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었다. 고인의 뜻을 받아서 훈은 부친을 개똥밭머리에 안장했었다. 그러고 닷새 되던 날 고향을 떠났었다. 그런지도 이미 20년이다. 이 20년 동안 그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던 아버지를 별로 생각해보는 일이 없이 살아왔었다. 그의 아내도 그랬다. 아내는 더했었다. 결혼 때도 아내는 못 보았었다. 시집 식구란 오직 남편의 얼굴을 알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1년이나 되어서야 단 이틀 시집에 간 일밖에 없다. 시아버지의 생신날이었다. 생신날도 시아버지는 새벽에 지게를 지고 나갔었다. 그때 어울이 송아지를 한 마리 얻어다놓고 좋아하던 때다. 그 꼴을 베어가지고 들어오던 것이다.
 
148
“얘들아, 죄되겠다.”
 
149
시아버지는 상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상이라야 열두 반상을 차린 것도 아니다. 며느리가 사들고 내려간 갈비국에 김뿐이다. 그리고 밥이었다.
 
150
“흰밥 먹을 사람은 하늘이 낸다는데 이렇게 하얀 밥을 먹어 되겠느냐. 뭘 좀 섞지 그랬어? 한달이면 느 어머니 생일인데 반반 섞었더라면 오죽 좋냐? 아 ─ 니 그건 또 뭐냐?”
 
151
그때 맏며느리가 국그릇을 들고 들어왔었다. 기름이 동동 뜨는 고깃국이다. 거기다 갈비 토막이 들었었다.
 
152
“아 ─ 니, 거 뭐지야?”
 
153
“서울 아이가 사가지구 왔다우.”
 
154
“갈빌?”
 
155
농군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호들갑이 아니라 정말 눈이 휘둥그래졌던 것이다. 서울 며느리도 놀랐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서울 며느리는 또 한번 놀라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이라야 집안 식구가 앉재도 두셋은 서야 할 방에다 당신의 친구들을 청하겠다는 것이다.
 
156
“국밥을 보냈습니다.”
 
157
하고 큰며느리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모두 여섯 노인들 집에 보냈었다. 그러나 영감이 꼽은 사람은 이십 명이 넘었다. 하는 수 없이 고깃국을 다시 솥에 쏟아붓고 물을 반 동이나 실하게 잡기로 했다. 밥도 새로 지었다. 그래서 마음에 걸린다는 노인들을 전부 청해 먹이고야 자기도 술을 들었던 것이었다.
 
158
“아버님, 지금은 농사두 그리 바쁘실 때가 아니구 하시니 저희들과 서울같이 가시지요. 며칠 구경이나 하구 나려오시면 ─”
 
159
서울 며느리가 이런 제언을 했었다.
 
160
“서울 구경? 날보구 서울 구경을 시킬 생각을랑 말구 너희들이 시골 구경을 좀 해야겠다.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좀 알아야 해. 농사 이치를 알어야 한단 말야. 왜 내가 서울을 모르는 줄 아냐. 다 알아, 다 들었어. 왼통 돌 위에다 집을 짓구 길두 돌이구 풀 한 폭 없는 돌바닥에서 무슨 맛으로 산다지? 사람은 풀내와 흙내를 못 맡으면 ─ 땅 지기를 못 맡은 나무처럼 돼버리는 게니라. 나종엔 죽어버려! 그야 잘먹구 잘입구 엎드러지면 코 닿을 데두 뚜르르 타고 댕기구 그러니까 편치. 살이 찌구. 허지만 살 쪘다구 다 사람이냐? 그럼 양돼지는 더 잘 났게시리? 난 통 못마땅해. 너희들만 해두 그럴 게다. 내가 죽었대두 여기 자동차가 안 댕기면 감히 올 염량도 못 먹었을 게야. 그렇지? 무슨 놈의 인종들이 그렇게 타길 좋아한다던? 뭐 인전 죽어서두 자동찰 타구 화장장으루 간다면서? 그래, 죽어서까지 찰 타구 댕겨야 맛이야? 얘, 너 나 서울 구경시킬 생각 아예 말구 너희들이 나하구 한 1년만 있거라. 그래야 사람이 된다. 농사 이칠 모르면 사람이 답답해. 농살 지어봐야 남을 위할 줄두 알게 되구,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라구 그러는 것도 농살 못 지어봐노니 제 욕심만 잔뜩 차리거든! 사람이 깍쟁이가 될밖에, 이악해지거든! 인저 너희들은 아주 벗논 사람들이니까 아주 질랜 시골서 못 살리라. 허지만 한두 해 살아봐야느니라. 나중에 아이들을 낳건 나려 보내라. 어려서부터 이악한 꼴만 보구 크면 사람 구실 못하느니라. 사람의 새낀 서울루 보내구 마소 새낀 시골로 보내랬다지만 건 옛날 서울 말이지. 옛날엔 서울두 지금 같지 않았거든. 그래라, 아이들 낳거든 철날 때까지만이라두 나려보내라 ─ 사람은 밑 바탕이 있어야느니라. 밑거름이, 암만 돌을 깔구 분칠을 하구 해두 인조 비료 쓴 곡식과 같아지느니라. 사람은 시골서 키워야 해, 시골서. 그래야 무럭무럭 자라지. 저 보렴, 나뭇가지를… 파아랗지 않으냐, 생기가 돌지? 그래, 어떠냐, 몬지가 뽀 ─ 야케 묻은 서울 나무하구?”
 
161
그도 그의 아내도 대꾸를 못했었다. 할말이 없었다. 이론을 캐어보았자 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162
─ 그 아버지를 그후 20년 까마득히 잊고 산 훈 내외였다. 그 내외가 며칠내 불현듯이 아버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넷째놈이 못된 동무에 빠져서 손 거친 짓을 했던 것이다. 큰돈은 아니었다. 불과 천환에 불과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동무와 짜고서 몰래 갖다가 팔아서 곡마단 구경을 갔더라는 것이다. 훈은 생전 처음으로 넷째놈을 죽어라 하고 때렸었다. 오십 평생 어린것의 뺨따귀 한번 친 일이 없었던 훈이다. 그 훈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훈은 어렸을 적 자기가 맞은 대로 종아리를 쳤었다. 피가 맺히었다. 마침 대비가 있어 실한 놈으로 여남은 개를 끊어놨었다. 그 열 개가 다 부러져라고 때리었다. 물론 넷째놈은 잡는 소리를 했다. 떼벌에 쏘인 아이처럼 떼굴떼굴 굴렀었다. 순간 그의 눈에는 이 어린 것이 히틀러처럼 보여졌었다. 일본의‘동조’처럼 악의 화신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163
“죽어라! 죽어!”
 
164
정말 죽이고 싶었다.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무려 한 시간을 때리고 난 때 아이도 까무러치고 어른도 맥을 잃고 말았었다. ─ 그 끝에 풀쑥 그의 아내가 시골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165
“돌아가신 아버님 말씀대루 마침 방학이니 시골이나 보냅시다. 제 사촌들두 있구 참외 수박두 있을 게구, 내에 가서 목욕두 하구 고기두 잡구 ─ 그러면 좀 잊어버리지 않을까? 동무를 잘못 사괴었어요. 한달만 갖다 두면 그런 동무들도 떨어질 게구. 아직 나이 열두 살 된 것이 천성이야 나뻤겠수, 안 그래요?”
 
166
“응.”
 
167
“그렇게 해보십시다. 나두 한달쯤 시골 가 있다 오구 싶어요. 살아갈수록에 마음두 거칠어지구, 아버님 말씀대루 인간이 너무 이악만 해가는 것 같아요. 좀 구수한 흙내나는 사람이 됐으면 ─ 꼭 칼날 위에서 사는 것만 같아요. 촌길두 거닐어보구 발을 벗구 물에두 들어가 보구 ─ 나두 갈까?”
 
168
“응.”
 
169
훈은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20년간 잊고 산 아버지가 갑자기 그리워도 졌다. 훈도 생급스럽게 시골 냄새가 그리워지던 것이다.
 
170
“존 생각이우, 보냅시다. 당신두 가우, 나두 며칠만 갔다 오겠소. 아버님 산소에두 가뵙구 ─ 이번 가건 어떻게든지 묘답이나 한 뙈기 마련해주구 옵시다.”
 
171
“개똥논을 사지.”
 
172
아내는 이런 농담도 할 수 있었다. 좋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넷째놈도 시골 간다는 말에 맞은 것도 잊고 좋아 날뛰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튿날 관청에는 연락만 하고 고향길을 떠났던 것이다.
 
173
차도 마침 새 차였다. 엔진 보링을 한 지 닷새밖에 안 된다. 운전사도 모처럼 달리는 시골길에 흥이 난 모양이었다.
 
174
“참 좋습니다, 국장님.”
 
175
“좋네나.”
 
176
훈도 이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것이다.
 
177
차는 오십 마일 가까운 속도로 고향에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178
차보다도 고향에로 달리는 훈의 마음이 더 빨랐었다. 훈은 지금 가난한 농부의 일생애에 흐뭇하니 잠겨보는 것이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 자기의 생이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새삼스러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 아니라 옥토에서 질경이가 난 격이라 했다.
 
179
차도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스피드를 높이고 있다.
 
 
180
〈「현대공론」9호, 1954년 9월〉
【원문】농부전 초(農父傳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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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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