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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잡곡(山中雜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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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硏(김득연)
산중잡곡은 총 49수로, 김득연이 지수정가를 짓고 난 다음 남은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시조 형식에 담아 읊은 작품이다. 주요 내용은 세속을 떠난 물외한인으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 시가와 문장에 대한 생각, 인생의 덧없음과 몸이 늙었음을 탄식한 것 등이 있다.
1
산중잡곡 (山中雜曲)
 
 
2
- 01 -
 
3
와룡산 내린 아래 반무당을 새로 여니
4
티 없는 거울에 산그림자 잠겼구나.
5
이 몸이 연못 만듦은 그걸 보려 함이러라.
 
 
6
- 02 -
 
7
연못에 물 흐르니 노는 고기 많이 있구나.
8
솔그늘에 바람 맑으니 금슬이 여기 있다.
9
앉아서 보고 들으니 돌아갈 줄 모르누나.
 
 
10
- 03 -
 
11
솔 아래 길을 내고 연못 위에 대 쌓으니
12
달 바람과 노을은 좌우에서 오는구나.
13
이 사이에 한가히 앉아 늙는 줄을 모르리라.
 
 
14
- 04 -
 
15
늙어도 막대 짚고 병들어도 눕지 않아
16
솔 아래 두루 걸어 연못 위에 앉아 쉬니
17
묻노라, 이 어떤 할아비인가 나도 몰라 하노라.
 
 
18
- 05 -
 
19
집 뒤에 고사리 뜯고 문 앞에 샘물 길어
20
기장밥 익게 짓고 산나물을 물로 삶아
21
조석에 음식 맛 좋음도 내 분수인가 하노라.
 
 
22
- 06 -
 
23
배가 고프거든 바구니의 밥을 먹고
24
목이 마르거든 표주박의 물 마시니
25
이리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또 있구나.
26
남들의 뜬구름 같은 부귀 부러울 줄 있으랴.
 
 
27
- 07 -
 
28
산중에는 흰 구름이 있음이요,
29
산 밖에는 푸른 물이 있음이라.
30
구름 찾아 나물 캐고 물가 따라 고기 낚아
31
이 몸이 한가히 다니니 모든 일이 무심하구나.
 
 
32
- 08 -
 
33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난다.
34
비단 편 듯 가을 산에 밝은 달이 더욱 좋다.
35
하물며 흰 구름 푸른 솔을 일러 무엇 하리오.
 
 
36
- 09 -
 
37
우리들 살아감은 몇 가닥 백발이요,
38
우리네 마음은 한 조각 청산이라.
39
설월 풍화에 네 계절의 흥 담겼으니
40
이 외에 즐거운 일이 또 없을까 하노라.
 
 
41
- 10 -
 
42
늙어서 할 일 없어 산중으로 돌아오니
43
솔 국화와 원숭이 학이 모두 나를 반기누나.
44
아희야, 술 가득 부어라 근심 잊고 즐기리라.
 
 
45
- 11 -
 
46
용산에 봄비 개니 고사리가 살쪄 있다.
47
석침에 솔바람부니 잠이 절로 깨어난다.
48
아희야, 국물을 달여라, 벗을 못 기다리노라.
 
 
49
- 12 -
 
50
벗이 온다 하기에 소나무 길 손수 쓰니
51
무심한 백운은 쓸수록 다시 생겨난다.
52
백운아, 동문을 닫지 마라. 올 길 모를가 하노라.
 
 
53
- 13 -
 
54
머리 허연 늙은 할아비 솔 아래 누웠더니
55
희롱하는 솔방울은 앉은 앞에 떨어진다.
56
적막해 말할 이 없으니 웃고 주워 보노라.
 
 
57
- 14 -
 
58
무릉도원 있다 해도 옛날 듣고 못 봤더니
59
붉은 노을 가득하니 여기 짐짓 거기로다.
60
이 몸이 또 어떠한가, 무릉인인가 하노라.
 
 
61
- 15 -
 
62
상산 늙은 할아비가 채지가를 부르더니
63
천년 뒤 지곡에서 나도 늙어 부르노라.
64
옛 사람 즐기던 맛을 이내 마음이 알리로다.
 
 
65
- 16 -
 
66
상산동 내려와서 지곡 굽이 돌아드니
67
송월지대에 머리가 센 할아비 앉아 있네.
68
가끔씩 백운을 따라 지치를 캐러 가노라.
 
 
69
- 17 -
 
70
산밑 샘에 귀 씻으니 인간사를 어찌 듣고
71
강가 솔을 벗 삼으니 세한심사 내 아노라.
72
하물며 늦은 공업은 자연 속에 묻혔노라.
 
 
73
- 18 -
 
74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모두 어리석네.
75
살 줄만 알고 죽을 줄은 모르누나.
76
어디에 다 두고 두고서 먹을 줄을 모르는가.
 
 
77
- 19 -
 
78
산중에 병든 몸이 내 홀로 한가로워
79
살고 죽고 춥고 주림을 하늘에게 맡겨두고
80
평생에 값없는 것은 명월청풍뿐이로다.
 
 
81
- 20 -
 
82
내 빈천을 보내려니 이 빈천 뉘게 가며
83
남의 부귀 오라 한들 저 부귀 내게 오랴.
84
보내지도 청하지도 마라. 내 분수대로 살리라.
 
 
85
- 21 -
 
86
공명도 잊고 저마다 따를 이도 많고 많은데
87
부귀를 더욱 마다 하는 사람 많고 많다.
88
아마도 이 내 빈천이야 즐거움이 끝이 없노라.
 
 
89
- 22 -
 
90
본성이 무식하여 아무 일도 다 모르니
91
동서를 어찌 알며 남북인들 내 알더냐.
92
아마도 모르는 것이니 모르는 대로 하리라.
 
 
93
- 23 -
 
94
백년은 삼만육천 일이라.
95
이 앞에 얼마나 남았나 하니
96
이렇게 또 언제 다시 놀 수 있으리
97
우리는 오늘 내일 모래 매일매일 놀리라.
 
 
98
- 24 -
 
99
인간 모든 일을 상제께서 아시나이다.
100
백년 앞길이 너무 가까워 서러우니
101
원컨대 불로장생을 분간하여 내리소서.
 
 
102
- 25 -
 
103
상제께서 여기시되 네 말도 가엽지만
104
백발 오는 이치를 어찌 할 수 있으리오.
105
아직은 첫 백년이야 뜻대로 하리이다.
 
 
106
- 26 -
 
107
육십년 다 지내고 또 두 해를 지냈더니
108
오늘날 봄을 보니 또 한 해가 오는구나.
109
매일에 한 해 또 한 해 하면 천백 년에 이르리라.
 
 
110
- 27 -
 
111
옛날 놀던 벗님네들 손꼽아 세어 보니
112
수십 년 이래에 반이나마 없어졌네.
113
우리는 살아 있을 때 매일 이리 노니노라.
 
 
114
- 28 -
 
115
어릴 때는 자라려 했더니 자라나니 늙기 섧다.
116
늙을 줄 알았던들 자라지나 말을 것을
117
아마도 못 젊어질 인생 아니 놀고 어쩌리.
 
 
118
- 29 -
 
119
삼가 뜻하는 바 말씀이 있으시며
120
하려는 바 있으시면 모두 다 이룩하소서.
121
유령이 놀던 곳인 취향도 황폐하니,
122
세상에 다툴 이 없게 법을 따라 이루소서.
 
 
123
- 30 -
 
124
상제께서 여기시되, 장사가 사실이라도
125
도연명 이태백도 뭐라 못한 땅이거니
126
천하에 함께 지니고서 모두 모두 놀아보세.
 
 
127
- 31 -
 
128
세상에서 민망한 게 시 짓기 어려움이라.
129
설월풍화 만나면 대접하기 어렵구나.
130
허다한 좋은 글귀를 떠오르게 해 주소서.
 
 
131
- 32 -
 
132
상제 여기시되 옛 글을 견주어 보니
133
시경 삼백과 이백 두보와 제자백가의 글을
134
사람을 시켜 모두 나누어 주었거늘
135
저래도 부족하지 않으니 이제 어찌 넉넉히 하리.
 
 
136
- 33 -
 
137
또 다시 생각하니 내 가난은 불 가난이로다.
138
시 지으면 사람이 궁해지니 그렇도다.
139
아무리 부족해도 시야 거짓말로 하겠는가.
 
 
140
- 34 -
 
141
다만 한 간 초가인데 세간이 많고 많다.
142
나하고 책하고 벼루 붓은 무슨 일인가.
143
이 초옥 이 세간으로 아니 즐겨 어찌 하리.
 
 
144
- 35 -
 
145
매화는 동지에 피고 국화는 섣달에 핀다.
146
이 어떤 천지조화 그리 갖추어 생겼는고.
147
선옹 늙었는가 하여 매일 바라봄이로다.
 
 
148
- 36 -
 
149
내 벌써 늙었는가, 늙은 줄을 내 몰라라.
150
마음은 젊어 있서 벗들과 놀려 하니
151
어기야 젊은 벗들은 나와 놀자 하는구나.
 
 
152
- 37 -
 
153
내 모습을 내 못 보니 그토록 벌써 늙었느냐
154
엊그제 소년이어든 그리 쉽게 늙을 손가.
155
아무리 늙었다 하여도 나는 몰라 하노라.
 
 
156
- 38 -
 
157
젊은 벗님네야, 늙은이 웃지 말라
158
젊기는 잠시뿐이요, 늙기는 더 쉬우니
159
너희도 나같이 되면 또 웃는 이 있으리라.
 
 
160
- 39 -
 
161
칠십년을 다 지낸 후 팔년이 다 되니
162
한가한 이 몸이 수역중에 늙어간다.
163
오늘날 봄을 만나 격양가를 부르노라.
 
 
164
- 40 -
 
165
히히 히히 또 히히 히히
166
이래도 히히 히히 저래도 히히 히히
167
매일에 히히 히히하니 하는 일마다 히히로다.
 
 
168
- 41 -
 
 
169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170
이리함도 어리석고 저리함도 어리석다.
171
아마도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대로 하리라.
 
 
172
- 42 -
 
173
내가 졸렬하니 졸렬한 중 더 졸렬하다.
174
생애도 졸렬하고 학업도 졸렬해라. 두어라
175
두어라 본성이 졸렬하니 모두 다 졸렬하네.
 
 
176
- 43 -
 
177
애고 늙어 서러우니 늙지 말고 살았으면
178
세월이 빨리 지나 아무러케나 늙었도다.
179
비록에 늙을지라도 오래 살며 놀리라.
 
 
180
- 44 -
 
181
늙기 다 서러우니 오래 살기 어려우니
182
진실로 오래 살면 늙을수록 더 놀리라. 둬라
183
두어라 즐거워 시름 잊고 늙을 줄을 모르리라.
 
 
184
- 45 -
 
185
책 만권을 대하여 먼 옛 벗을 생각하니
186
세상 사이 가던 길이 가슴에 오는구나.
187
진실로 옛 벗과 옛 길 알면 아니 가고 어찌하리.
 
 
188
- 46 -
 
189
늙으면 죽기 쉽고 죽으면 벗 없으니
190
늙어도 살았을 제 벗과 놂이 그 옳으리.
191
우리는 그런 줄 알아 벗과 매일 놀리라.
 
 
192
- 47 -
 
193
내 뜻 아는 벗님네들 모두 오소.
194
모두 와서 함께 노니 그 아니 즐거우랴.
195
하물며 풍월이 무진장하니 그와 놀자 하노라.
 
 
196
- 48 -
 
197
어화, 벗님내야 모두모두 다 오시니
198
이 산정자도 늙었으니 오늘날 더 즐겁다.
199
비록에 숲 깊고 길 어두워도 자주자주 오시오.
 
 
200
- 49 -
 
201
늙은이 늙은이를 만나니 반갑고 즐겁구나.
202
반갑고 즐거우니 늙은 줄을 모르노라.
203
즐기리라 진실로 늙은 줄 모르니 매일 만나 즐기리라.
【원문】산중잡곡(山中雜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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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연(金得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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