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근세 조선 민중의 정신 생활 가운데 가장 간절한 동경과 깊은 흥미와 또 많은 기대를 몰이해 가진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避亂[피란] 곳이 어디냐, 異人[이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읍니다. 혹은 드러나게, 혹은 숨어서, 혹은 좋아하는 듯하게, 혹은 싫어하는 듯하게, 혹은 신앙적으로, 혹은 흥미적으로, 그 심하고 심하지 아니한 정도는 있을 법하되, 피난처를 알려 하고, 이인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아니한 이는 거의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 어떤 이는 實心[실심]으로 이런 것을 반대하고, 또 이런 방면에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아니하는 듯한 사람도 가만히 사상의 내용과 아울러 그 표면으로 나타나는 證迹[증적]을 살펴보건대, 은연히 자기도 모르게 이 두드러진 시대 심리의 독기에 물들어 있음을 앙탈할 수 없는 이가 적지 아니합니다.
3
이 사상의 구체적 표현은 이른바 〈鄭鑑錄[정감록]〉이라는 예언적 경전입니다. 〈鄭鑑錄[정감록]〉이라는 것은 얼른 말하면 조선 민중의 어떠한 사회적 客觀情態[객관정태]를 배경으로 하여 일종의 신앙적 암시를 주는 예언으로서, 그것의 소극적 표현은 避難的[피난적] 탐색이요, 적극적 표현은 이인 출현입니다. 이인이 나오면 이상의 세계는 그와 함께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심리(空想[공상])가 일전하여 미신이 되며, 再轉[재전]하여 광신이 되고, 轉轉又轉[전전우전]하여 불측한 해독을 사회 인심에 미치게 된 것은 시방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거의 날마다 신문지면을 통하여 우리의 신경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이른바 白白敎[백백교]의 흉폭한 죄상도 곧 이 미신 광신이 그려 내는 가장 무서운 일 파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방면의 일은 시방 문제의 밖이거니와, 도대체 조선 민중은 어떻게 이인이란 것을 알고 붙잡고 또 놀려 왔는가 하는 일측면을 民話[민화]의 위에 더듬어 봄도 한 흥미 있는 화제일까 합니다.
4
이인이라 함은 다를 異[이]자, 사람 人[인]자니까, 본래는 심상한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한문의 말입니다. 또 한문에는 이 말이 실제에 많이 쓰이기도 하여서 혹은 자격이 출중한 사람, 큰 사업에 성공한 사람 등을 이인이라고 일렀읍니다. 이렇게 쓰는 이인이란 말은 곧 위인이나 영웅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인을 神異[신이]한 사람, 곧 신선이나 異術[이술]을 가진 사람의 뜻으로 쓴 실례도 진작부터 있었으니, 이를테면 江淹[강엄]의 賦[부]에 「納隱淪之列眞[납은륜지렬진], 挺異人乎精魄[정이인호정백]」이라 한 것 같음을 神異[신이]한 사람의 뜻으로 쓴 것입니다.
5
宋代[송대]의 유명한 학자 吳淑[오숙]이란 이가 찬술한 책에 〈江淮異人錄[강회이인록]〉 二[이]권이 있는데, 그 내용은 道流[도류]·俠客[협객]·術士[술사] 의 類[류] 二五[이오]인의 사실을 적은 것입니다. 이러한 이인은 말하자면 神異[신이]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쓴 것으로, 우리 조선에서 이인이라고 일컫는 것과 대강 비슷함을 봅니다.
6
반도의 문헌에 이인이라는 글귀가 나타나기는, 崔致遠[최치원]의 찬이라고 전하는 〈新羅殊異傳[신라수이전]〉에 든 竹筒美人[죽통미인] 전설로써 시초를 잡습니다.
7
신라 통일의 元勲[원훈]인 金庾信[김유신]이 西州[서주]로부터 京城[경성]으로 돌아올새, 「異客[이객]」이 있어 앞에서 가는데 두상에 비상한 기운이 도는지라 그저 사람이 아님을 알고, 그가 어느 나무 밑에 가서 쉬거늘 庾信[유신]이 따라 쉬며 거짓 잠자는 체를 하였다. 그 이가 길에 행인이 끊기기를 기다려서 품속에서 죽통 하나를 꺼내서 뿌리매, 예쁜 색시들이 죽통으로서 나와서 한데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도로 죽통으로 들어가고, 이내 죽통을 품속에 넣고 갔다.
8
庾信[유신]이 좇아가서 이야기를 하여 보매 말이 다 점잖거늘, 作伴[작반]하여 京城[경성]으로 들어가서 南山下[남산하]의 松下[송하]로 가서 잔치를 베푸니, 二[이]미녀도 나와서 참석하였다. 그 이의 말이, 나는 서해에 있는데 장가를 동해로 들었더니, 이번에 아내를 데리고 친정으로 문안을 가노라 하더니, 이윽고 풍우가 大作[대작]하고 천지가 깜깜하더니, 홀연 간 곳이 없어졌다.
10
이 〈殊異傳[수이전]〉이란 책은 시방 전하지 않고, 明宗朝[명종조] 때의 경상도 양반으로 退溪[퇴계] 선생의 문인이던 權文海[권문해]란 이의 찬술한 〈大東韻府郡玉[대동운부군옥]〉이란 책에 인용한 것으로 볼 뿐이매, 이것이 全文[전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으며, 특히 그 異客[이객]이란 이와 金庾信[김유신]의 사이에 주고받은 수작이 없으므로, 원문은 좀더 자세하였을 것을 생각하게 하는 터입니다. 金庾信[김유신]이란 양반은 당시에 있어서 나라의 安危[안위]를 두 어깨에 메고, 出將入相[출장입상], 櫛風沐雨[즐풍목우]하면서 갖은 고심을 다하던 어른이요, 일을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전설이 많은 터인즉, 이러한 이인을 만나서 그대로 술잔이나 먹고 작별하였다 함은, 전설 기교상으로 좀 구석이 빈다 할밖에 없읍니다. 〈三國史記[삼국사기]〉의 金庾信傳[김유신전]을 보건대,
11
庾信[유신]은 어려서부터 명예가 있더니, 十七[십칠]세에 고구려·백제·靺鞨[말갈]이 겨끔내기로 와서 국토를 침범함을 보고, 慷慨[강개]히 이 국난을 평정할 뜻을 품고, 혼자 中嶽[중악]의 석굴로 들어가서, 몸을 재계하고 하늘께 맹세하여 가로되, 적국이 무도하여 豺狼(시랑)의 짓을 하므로 나라가 편할 날이 없사오니, 제가 변변치 못하오나 힘을 다하여 걱정을 풀어 놓으려하오니, 上天[상천]이 굽어 살피사 저에게 능력을 주옵소서 하였다. 그리한지 나흘 만에 한 노인이 베옷을 입고 와서 말하여 가로되, 여기 맹수와 독충이 많거늘 이 무서운 곳에 귀한 소년이 혼자 와서 있음이 무슨 까닭인고, 대답하여 가로되, 어르신네는 어디로서 오시며 성함은 뉘시오니까, 노인이 가로되, 나는 따로 거주가 없이 인연이 닿는 대로 오락가락하며 이름은 難勝[난승]이라 하노라.
12
庾信[유신]이 듣고 常人[상인]이 아님을 알고, 다시 일어나 재배하고 여쭈어 가로되, 저는 신라인이온데 나라 원수를 보고 아픈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여기 오기는 행여 이상한 어른을 만나 보려 함이었사오니, 伏乞[복걸]하옵건대 어르신네께서 저의 정성을 불쌍히 여기사 좋은 方術[방술]을 가르쳐 주옵소서 한대, 노인이 입을 다물고 말이 없거늘, 庾信[유신]이 눈물을 흘리고 간청하기를 말지 아니한대, 노인이 일을 열어 가로되, 그대가 젊은 사람으로서 三國[삼국] 합병의 大志[대지]를 둔 것이 기특치 아니하랴 하고 이에 「비법」을 가르쳐 주어 가로되,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며, 만일 불의에 쓰면 도리어 그 殃禍[앙화]를 받으리라. 말이 맺자 작별하고 가는데, 二里[이리]쯤 하여서는 쫓아가도 보이지 않고 다만 山上[산상]에 광채가 있어 五[오]색이 찬란하였다.
13
하는 一[일]절이 있읍니다. 이 전설에 나오는 노인이 곧 이인의 類[류]임은 물론이거니와, 이 외에도 金庾信[김유신]의 대사업 준비 시기에는 이 비슷한 전설 여럿이 있읍니다. 근래 라디오의 고담으로 몇 번 들은 일이 있읍니다마는 〈三國遺事[삼국유사]〉(金庾信條[김유신조])에 나오는 신라의 護國三神[호국삼신]이 여자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庾信[유신]을 산중으로 끌고 들어가서 적국 스파이의 간계를 일러주어 위기일발의 제에 大禍[대화]를 면하였다 하는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14
대저 신라 국민의 통일 대업 수행이 크게 艱難辛苦[간난신고]를 극하던 것인만큼, 이것을 표상화한 허다한 전설이 성립하고 이러한 전설이 뒤에 金庾信[김유신] 개인의 소년 시대의 경력으로 附會[부회]하게 된 것이 위에 말씀한 이야기들인데, 다른 이야기에는 죄다 신인이나 이인을 만나서 국가 사업을 진행하는 上[상]의 필요한 조력을 받았다 함을 보면, 〈殊異傳[수이전]〉에 나온 竹筒美人[죽통미인] 전설의 이인도 필시 무엇이든지 신비한 선물을 庾信[유신]에게 주었을 줄로 생각함이 억지가 아닙니다. 또 이인이라고 명토를 박았거니 아니 박았거니, 이 異客[이객]·노인·여인이 죄다 이인이라고 할 유의 인물임을 따로 설파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15
이렇게 반도의 이인 전설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국면을 당한 신라 통일 운동 시기와 및 그 중심 인물에 관하여 처음으로 생긴 듯함을 우리가 주의할 것입니다.
16
〈三國遺事[삼국유사]〉의 백제에 관한 기사 중에는 都城 所夫里[도성 소부리] ── 시방 扶餘[부여] 부근에는 日山[일산]·吳山[오산]·浮山[부산]이라는 三神山[삼신산]이 있어, 국가의 융성한 시절에는 산마다 신인이 있어 날아서 서로 왕래하여 조석에 끊이지 아니하였다는 말이 있읍니다. 이 이른바 신인이란 것이 인간에 와서 무슨 교섭이 생기면 그가 이인이라고 할 종류가 될 것은 물론입니다. 다만 백제의 문헌이 도무지 전하지 아니하므로 그 분명한 것을 붙들 수 없음이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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