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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소설(歷史小說) 문제(問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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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2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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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문제(歷史小說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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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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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글월은 자세히 뵈었습니다. 두 가지 명제 가운데「흑치상지(黑齒常之)」를 쓰기까지의 연구라든가 고심은 아직 그 소설 자체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니 아이도 낳기 전부터 산고를 말하는 것 같아서 쑥스럽고 거북한 점도 없지 않거니와, 더구나 지금 진통이 자못 격렬한 때라 미처 괴로움을 말할 경황조차 없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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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에 대하여’ 라는 명제도 겨우 과거에 소재와 무대를 잡은 소설 한 두 개쯤 쓰고 역사소설가인 척하는 것이 주제도 넓은 것 같고, 또 창졸간에 제법 아귀 맞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 나는 새책(塞責)으로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몇 마디 두서없이 적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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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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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年前)인가 금춘(今春)인가 시일(時日)도 소상치 않고 또는 모 지상(誌上)인지 모 지상(紙上)인지 기억이 몽롱합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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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도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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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문(奇問)을 얼른 본 듯합니다. 물론 그 당시엔 초점이 어데 있었는지 지금 당장 상고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이상스럽게도 그 때 지나보고 만 그 명제가 내 머리 한구석에 붙어 있어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소설’ 이란 두 자를 뚜렷이 붙여 놓고 ‘소설’ 이냐 반문하였으니 기이한 느낌을 자아 내었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한 구절의 뜻이 실상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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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 소설인가?”하는 말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견강부회를 하여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얼른 보기에 무의미한 그 한 구절이 실로 중대한 의의를 품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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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이라면 오직 사실에만 입각하는 것인 줄 아는 것이 보통의 개념인 듯합니다. 역사소설인 이상 될 수 있는 대로 사실에 충실하는 것이 옳을 게이야 다시 거론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다고 해서 소설로써 주제와 결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기(實記)나 실록(實錄)이 될는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소설이라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소설이란 두 자가 붙은 이상 철두철미 창작임을 요구합니다. 약간의 과장과 윤색을 베풀어 사실(史實)과 전(傳)에 조금 털난 몸을 가지고 “이게 역사 소설이니라” 라니 “역사소설도 소설인가?” 하는 기문(奇問)을 발하게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더구나 전편으로 아모런 맥락도 없이 기교 허탄한 사실을 늘어 놓는 것으로 역사소설의 능(能)을 삼는다면 역사소설의 운명이야말로 풍전등화와 같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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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딱한 일은 문예가가 아닌 소위 지식인들이 이 경향을 조장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물론 그들의 소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까닭 모를 반감으로 볼 수 있으나 우리는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을 내어 그들의 몽(蒙)을 계(啓)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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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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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역사소설’ 앞에 가루놓인 난관은 문인 자신들의 배격염기(排擊厭忌)하는 경향입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서일어나는 것이므로 그 영향은 보담 심각합니다. 그 원인을 들어보라 하시면 첫째는 아까 소설에 몰이해한 지식층과 비슷한 심리로 역사에 대한 암매(暗昧)에서 생기는 것이겠고, 둘째는 한동안 우리 문단을 풍미하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관점에서 역사소설이란 비현실적 도피적 영웅주의적이라 하여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인가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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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원인은 췌언(贅言)할 것도 없거니와 제이의 원인은 많은 이론(理論)의 여지가 남아 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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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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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적 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따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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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耽讀翫味)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작품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콧의 제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단종 애사」, 상허의「황진이」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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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 놓은 경우입니다. 셴키비치의「쿼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타이스」,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 춘원의「이차돈의 사」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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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一)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이(二)의 경우에야 말로 웅편(雄篇)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야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 아니라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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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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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요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창작가는 제이(二)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야 그 소재를 취하는 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상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요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모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믿습니다. 더구나 제이(二)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띠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둥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관혁을 잃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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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족하(編輯長足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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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적자는 것이 붓을 들고 보니 휘둥대둥 수다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내가 이 글에 사용한 ‘역사소설’ 이란 말은 ‘과거에 소재와 무대를 가진 소설’ 을 통칭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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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1939. 12.)
【원문】역사소설(歷史小說) 문제(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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