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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거(山居)의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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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7.20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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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山居)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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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향첨하면(獨向檐下眠)더니 각래반상월(覺來半牀月)”이라 시냇물소리 베개 삼아 동창 아래 누웠노라니 수줍은 아가씨처럼 갸웃 ― 구름 사이를 휘돌아 넌지시 들여다보는 어여쁜 달빛……. “화간일호주 독작무상친 거배요명월 무관성삼인(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盃邀明月 無關成三人)” 이라듯이 한 잔 있었으면 하는 호젓한 느낌도 없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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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자연은 자연의 것이다. 아름다운 달빛에 자연의 경운(景韻)이 있으니 자연 그대가 그 임자일지라 조금치라도 인공적 가미가 있다 하며는 그것은 도무지 몰풍치(沒風致)요 죄악일 것이다. 값없이 거저 쓰는 강상(江上)의 청풍과 산간의 명월을 그 누가 있어 더러운 짓을 할 것이랴. 그저 그대로 두고 쓰며 보며 들을 것이니라. 철근 ‘콘크리―트’ 다층 건물에서 육취(肉臭)에 취하고 기름때에 쌓여 보는 달을 멋이 있다고 이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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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世相)은 시시각각으로 속야(俗野)하게만 변화가 되어 밝은 달의 광휘도 잔 칼질을 해서 내어버릴 모양이다. 시방쯤은 도문(都門)의 청춘들이 총 동원을 하여 열광적 재즈에 엉덩춤을 추고 비지땀을 흘리겠지마는 저 달을 보고 품은 감흥은 과연 어떠한 것일는지. ‘네온싸인’ 이 눈이 부신 거리에서 ‘글래스 컵’을 덜컥거리는 멋은 더러 있을는지 몰라도 청소보월(淸宵步月)에 만고를 읊조리는 그윽한 풍치는 아마 애달피도 찾아 볼 길이 없으리라.
 
5
물질 문명의 정교한 기술을 배워보려고 서둘기만 하다가 다망 초조 생활 불안의 시커먼 연막이 그만 동양인 천부의 고아한 풍운(風韻)까지도 뒤덮어 놓았으며 명상하고 정관해서 스스로 격앙하던 훈련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자기 생활의 행복의 기초를 어느 곳에 두며 안심의 경지를 어디메쯤 가서 찾을 것인가 하는 인간 필생의 큰 문제도 사고해 볼만한 기백조차 아주 잃어버리고 말았다.
 
6
불행한 도시 도취자들이여. 이 산거(山居)로 오라. 옹달샘 맑은 물에 머리를 씻고 일진불염(一塵不染) 만법개공(萬法皆空)의 청정심을 가져 거울같이 맑은 고령(高嶺)의 저 달을 바라보라. 제 아무리 정이 무디고 영혼에 곰이 된 사람이라도 무엇인지 모르게 인생의 하염없는 고적의 상(相)을 저절로 아니 느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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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聖者)의 진용(眞容)같이 뚜렷한 천심(天心)의 명월을 바라보면 가리어졌던 모든 현실 모든 비밀까지도 쓸쓸한 감정 느긋한 참회로 저절로 아련히 이루어지리라. 달은 무언의 성자이다. 그 청증(淸澄)하면서도 원만하고 엄숙하면서 자비스러운 성자(聖姿)는 범부(凡夫)인 우리의 마음에까지도 무엇인지 모르게 커다란 암시를 드리우나니 일체를 포함하고 일체을 조파(照破)하매 일체를 조시(調示)하는 존엄하고도 신비스럽고 비장한 기운이 거기에 저절로 느끼어 지리라.
 
8
달은 보는 이의 마음이 따라 애수도 있고 환희도 있어 그야말로 “편월영분천간수(片月影分千磵水)”로 다를는지도 모르지마는 아무튼 우리 역시 사색과 감상과 영혼의 세계에서 정숙히 저 달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저 달의 거룩한 신운(神韻)이야말로 얼마나 청고(淸高)하고 장엄한 것이냐.
 
9
“상전명월광 의시지상상 거두망명월 저두사고향(牀前明月光 疑是地上霜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10
상전(牀前)의 명월이 무엇을 말하나, 인생 본연의 고향 소식을 과연 어찌 내리었는지, 뒷짐 짚고 거닐던 걸음 주춤 멈추어 우두커니 팔장 끼고 고개를 숙인다.
 
 
11
(『每日新報[매일신보]』 1938년 7월 20일)
【원문】산거(山居)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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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용(洪思容)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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