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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공작(工作)에 관한 약간의 시감(時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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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 - 예술운동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러한 시평적인 형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 그러나 장구한 시일간 모든 운동과 떠나서 생활하였고 또한 지금도 그것에 직참(直參)하지 못한 나로서 문화공작에 관한 지도적인 노선에 대하여 운위하는 것은 전혀 오류이며 또한 그렇게 하여서 지시된 노선은 반드시 과오를 품은 것을 불면(不免)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 있어서도 조선의 예술운동에 직참치 않는 동경과 경성간에 계절조(季節鳥)와 같이 왕래하는 서생배(書生輩)들이 제시한 모든 방침에는 그것이 조선의 모든 주객 정세(主客情勢)의 비과학적 평가에 따라서 일본의 이론을 그대로 조선의 이론에 기계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결부하고 이식하는 한도를 훨씬 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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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만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시평적인 제의 이상에 나아가서, 문제를 분석하고 노선을 지시한다면 그것은 이론과 실천을 가장 비변증법적으로 파악한 한 개의 좋은 실례를 지음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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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문학시평의 내용은 결국 그것이 시평적으로 취급되며 따라서 부분적임을 면치 못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르만’의 삼림에서 돌연히 문명사회에 나온 미개인의 두뇌에는 헛되이 간과치 못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일 문(一文)이 문화공작의 차륜을 사실상으로 운전하고 있는 여러 동무들에 의하여 그 단 하나의 앞으로의 길을 찾음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것을 생각하며 이 시평의 붓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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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의 자신이 참월(僭越)된 것인지 아닌지는 ‘글의 한 구(句) 한 구의 문구가 아니라 그 말하고자 하는 본의’를 세심하게 연구하는 진정한 동무에게 의하여 단정(斷定)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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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된 지는 퍽 오래된 책인데 그 동안 모든 서적에 대하여 봉쇄된 몸으로 있던 나는 월전(月前)에야 비로소 창작방법에 관한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에 이러한 말이 있었다. “쥐는 몹시 자기의 자식(생쥐)을 사랑하고 있다. 사람이 손끝으로 생쥐를 잡아서 잠깐 그것을 받치고 있다가 다시 그 둥지에 돌려보내면 어미 쥐는 타인의 취기(臭氣)를 제거하기 위하여 열심과 애(愛)를 가지고 그 손대었던 곳을 핥기 시작하고 생쥐의 피부가 갈라지도록 핥고 그 다음 뼈가 보이도록 핥아 드디어 이 불행을 보고 모성애에 불타면서 그 새끼 쥐를 먹어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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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문학 동무들 중에 이러한 ‘서(鼠)의 애(愛)’를 가진 많은 친구들을 연상하였다. 잡지 『전선(全線)』주보『문학타임스』또는 『조선일보』등 기타 유상무상(有象無象)의 출판물을 통하여 이러한 ‘서(鼠)의 애(愛)’는 우리 나라의 문학 - 예술운동 그리고 조직 ‘카프’에 대하여 봉정되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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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조선의 문학운동을 사랑함에 누구보다도 격렬하고 카프를 진정한 길로 이끌고 가려는 열정에 가장 열렬하게 불타고 있다. 문학운동이 가고 있는 그릇된 길로부터 그것을 구출하기 위하여 쥐가 타인의 악취를 제거하려고 피부가 갈라지도록 새끼의 잔등을 핥는 것과 같이 문학운동의 잔등으로부터 ‘화오의 회색(灰色)’을 핥고 있다. ‘카프’가 빠지고 있는 모든 니토(泥土)로부터 그것을 씻어내기 위하여 그들은‘카프’가 모든 곤란 속에서 흘리는 땀을 씻는 대신에‘서(鼠)의 모성애’에 불타면서 뼈가 나오도록 그의 잔등을 핥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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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서의 애’는 드디어 자기의 새끼 쥐를 잡아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귀여운 문학적‘서(鼠)의 모성애’는 드디어 우리의 문학사업에 커다란 해(害)만을 퍼부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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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문학적‘서(鼠)의 애(愛)’의 소지자들은 우리들의 사업이 얼마나 곤란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운동과는 멀리 떠나서 오직‘서(鼠)의 모성애’를 봉정함에 그의 일상을 허비하고 있다. 사업을 전진으로 이끌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오직 그것을 잡아먹는 데 의하여 자기의 몸을 보양할 것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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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 귀중한 문학적 아동들이 만일 문학운동에 관하여 ‘서의 애’가 아니고 진정한 애(愛)와 열(熱)을 품었다면 어째서 이 곤란한 사업에 몸써 투신하여 일신을 문화부대의 일 병졸로서 참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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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책상 위에서의 호령으로는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사업은 조직을 굳게 탄력성 있게 발동시키는 데 의하여서만 그의 기초적 공작을 완성하고 드디어 앞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기초적 공작을 완성하는 것과 앞을 향하여 전진하는 이 과정은 물론 분리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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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는 물론 이들 악질의 문학아동들의 지시를 기대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의 과오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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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강렬한 자기비판 위에 일반적 방침이 세워져야 할 것이며 문제거리인 동반자작가 문제, 조직문제 등등에도 급속한 시일 내로 테제를 발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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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모든 문제를 급속한 시일 내로 해결함에는 이 악질의 문학 아동들이 지시하는 처방전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의 엄격한 비판과 배가(倍加)의 총공격에 의하여서임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악(惡)청년들의 입술에는 전면에‘서(鼠)의 혈’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실로 그들에 의하여 지시되는 처방전에는 다량의 독약이 씌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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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백철에 대한 공격은 카프에 대한 악선전(그렇다! 그것은 비판이 아니고 악선전이다!)과 항상 결부되어 있음을 본다. 물론 나는 백철의 오류를 이러한 문학적 아동들의 공격에서 옹호하려고는 추호도 생각치 않는다. 그러나 백철의 약간의 문화주의적 경향과 동반자작가 문제에 있어서의 멘세비키적 범오(犯誤)는 ‘서의 애’에 의하여는 해독될 수 없는 것이다. 조직을 떠나서 그 주위를 쌀 찧는 말 새끼 모양으로 뺑뺑 맴을 돌며 침과 돌 던지기를 영업으로 하는 이들 악질의 문학아동의 지시로는 정당히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카프의 힘있는 날쌘 비판만이 그리고 조직인의 비판만이 동지 백으로부터 그의 애매한 실연기(煙氣)를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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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정한 문학공작의 전진은 이들‘서의 애’로부터 우리의 길을 분리하며 이들에 대한 총공격을 심화하는 데서부터 동반(同伴)할 것이며 그러므로 대중의 면전에서 애교에 찬 ‘서의 애’의 본질을 폭로하는 일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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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한 좌익적인 잡지에 대하여 ‘카프’는 문학운동의 통일과 관련시켜 일정한 테제를 발표함이 요망되고 있다. 지금 그 소위 좌익적 잡지를 기억에 오르는 대로 추어보더라도 『대중』, 『비판』, 『전선』, 『신계단』, 『이러타』, 『집단』, 『문학건설』, 『영화부대』, 『연극운동』등등을 셀 수 있다. 『집단』이 하는 현재 질식상태에 있으며 그것은 대부분 카프의 조직적 통제 밑에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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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이러타』가 〈사조(社調)〉의 기관지인 외에 『신계단』과 『대중』이 약간의 카프원과의 협동에 의하여 출판되고 있고 『비판』은 나로 하여금 좌익잡지의 범주 속에 넣기에 비상한 주저를 느끼게 하며, 또 『전선』은 그 편집자의 다부분(多部分)이 동반자들인 관계뿐만 아니라 내용도 그것을 그 이상으로 평가하기에 곤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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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체(一體)로 이들 좌익잡지의 다(多)부분에 있어서 한가지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문화적 내지는 정치적 사업으로부터의 무관련과 조직사업과 출판활동과의 결합에 관한 무관심이다. 그것은 직접 편집상의 무방침으로 결과하고 있다. 잡지 『신계단』이 반종교란에 있어서 약간의 방침을 보인 것은 실로 그것이 〈천도교폭로비판회〉와 미약하나마 약간의 조직적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서 증명되는 일이며 이것 자신이 조직사업과 출판활동의 결합에 관하여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는 문화운동에 대하여 추호라도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무에게는 지극히 명백한 사실로 보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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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잡지라고 표방하면 그것이 문화적 잡지가 되는 것이 아니며 정치에 관한 약간의 시감을 싣는다 하여 그것이 정치적 잡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내지는 문화적인 조직사업과 결합된 것이라야 진정한 정치적 문화적 잡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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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러한 좌익적인 잡지가 조직과의 관련에 대하여 하등의 이해도 갖지 못하는 한 그것은 문화적 잡지도 또한 정치적 잡지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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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것이 조직사업에 대하여 명백히 해를 끼치는 원고를 무비판적으로 게재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것은 부르주아 저널리즘 이상의 반동성을 사실상으로 산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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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의하여 문화공작은 그룹화하고 그리고 인텔리 동반자문필가들의 개인주의적 에고이즘만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든 좌익잡지는 그의 각각의 영역에 있어서 문화운동의 통일을 위하여 조직과의 협동 내지는 통제 밑에 각자의 분야를 향하여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여야 할 것이며 이것을 위하여는 모든 영웅적인 개인주의와 완강한 종파심리는 최후의 일편(一片)까지 희생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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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통제하에 있는 모든 잡지는 그것이 출판활동과 조직활동의 결합에 관하여 정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상의 많은 소잡(疎雜)과 그리고 이 시기에 있어서 그가 정당히 절규하여야 할 수많은 문제에 대하여 그가 하여야 할 전부를 수행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출판활동의 기초를 진실한 대중의 속에 두지 못하였다는 중요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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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보다 우리가 중요시하고 있는 『신계단』과 『대중』에 대하여도 출판활동과 조직활동의 결합에 관하여 보다 높은 관심의 환기를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그의 편집부의 조직상 형태, 그리고 ‘카프’원과의 협동상 문제 등등에 있어서는 나는 만족을 가질 수가 전연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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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타』에 있어서는 수많은 결함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태껏 취하여 온 방향만은 정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사조(社調)〉의 표명문에서 나타난 범오(犯誤)와 그 조직의 섹트적 경향과 그리고 『휴게장』발간 등의 과오 등에 대하여 다투어야 할 것을 일시라도 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이 모든 잡지에 대하여 시평적인 제안 이상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그 나아가는 길과 또한 나아갈 바를 분석 지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서언에서도 말한 바 나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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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잡지의 편집상 방침에 대한 비판은 나에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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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지면상 관계로 그의 구체적인 비판은 다음에 맡기로 한다. 그러므로 이 좌익잡지에 대한 시감은 그의 서론과 같은 역할을 맡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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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신계단』『대중』기타 유상무상의 좌익을 표방하는 잡지에 대하여 신속한 비판을 약속하여 두고 이 항을 이것으로 끝맺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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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선상의 일 병졸 - 작가로서 최근에 느낀 몇 개의 작가 - 작품공작에 대한 시감을 여기에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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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의 문제를 전후하여 ‘산 인간’이란 어구가 시끄러울 만큼 쓰이기 시작한 모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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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동맹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드디어는 조선에까지, 그래서 이 문제는 내가 금방 세상사람이 되면서 곧 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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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를 중심 두고 조선서의 이야기를 하자! 그것이 물정에 어두운 나에게는 적도(適度)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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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인간’- 이것은 보다 불명확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과거에 그렸었고 또한 지금도 그리면서 있는 인간은 그것이 유형화하여 있고 또한 비상히 추상적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살지않은 인간’- 아니 정반대인 ‘죽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도저히 없다. 일종의 ‘산 인간’이었다. 오직 ‘구체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산 인간’이란 말 대신에 ‘구체적인 인간’이란 말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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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체적 인간’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에는 지금은 벌써 과거의 역사적 환영같이 되어버린 어떤 장면이 항상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은 1931년 여름, 어떤 비오는 날 저녁에 모여졌던 문학부 소설연구반의 연구회 석상의 회상이다. 똑똑히는 모르나 작가 이기영, 윤기정 외에 권환과 임화가 출석하여 있었다. 그때에 제출된 작품은 권환의 「목화와 콩」과 나의 「공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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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우회」를 연구회에 내어놓기까지 나는 「조정안」「공제생산조합」 (『군기』사에서 가져갔었는데 반카프사건통에 행방불명이 되었다.)「공장신문」「정보NO4」그리고 이것도 역시 지금은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정급직공(定級職工)」이란 희곡을 제출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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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문학부 작가의 조직적 생산 「고무」의 제1회분 상반(上半)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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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석(會席)에서 「공우회」에 대한 비평은 여러 가지 있었으나 나의 가슴에 깊이 인상을 준 것은 여기에 나의 이때껏의 작품이 고정화되고 내용과 소설 구성이 유형 속에 굳어져 있다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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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의 종말은 모두 성공과 승리로 차 있으며 그것은 저열한 미국영화의 해피엔드와 흡사하다고까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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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의 운동은 모두 실패에 가득 찼거늘 어째서 작가의 작품 속에는 이것의 반영이 없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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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 함께 나오는 인물도 모두 유형화하여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회합의 이야기를 길게 쓰고 있는 것은 이 회합의 성과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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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작품의 고정화와 구체적 인간의 묘사를 제시한 공적은 비 오는 1931년 여름 밤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1932년 이후 작품의 고정화라든가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에 관한 조선의 평론가의 글을 볼 때 또는 「공우회」에 대한 평을 볼 때에 그들이 문제를 외국 동지들의 논의의 이식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글 가운데에는 하나도 생생한 맛이 없는 듯이 느껴짐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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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품의 고정화로부터 구출하는 그들의 처방전을 한번이나 카프 자체의 조직과 결부시켜서 쓸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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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그들은 작가들에게 철학의 연구를 권하고 있지 않는가?(신유인의 글을 보라!) 불행하게도 「공우회」를 쓴 뒤에 나는 다시 글쓸 경우에 있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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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다시 붓을 들게 되어 「나란구(蘿蘭溝)」를 쓰고 「남편, 그의 동지」를 쓰면서 이 비오는 날 밤의 일을 몇 홉인가 회상한 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작품의 고정화와 인물의 추상화 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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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를 그의 재증으로 돌리지 말라… 카프작가의 진정한 전진! 그것은 카프라는 그것의 진정한 발동(發動)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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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주의로부터 작품의 고정화와 유형화로부터 작가를 진정한 길에로 구출키 위하여 평론가는 수많은 계책을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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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동지들의 논의를 우리 나라에로 이식하기에 가장 신속한 예민성을 가지고 있는 계절조와 탁목조(啄木鳥)는 벌써 몇 번인가 창작방법에 대한 진정한 길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 같아서는 이들이 지시하는 그들의 제안 속에는 그것 자신이 구(救)할 수 없는 유형 속에 질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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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그들의 제안이 오십보 백보의 차이는 있을망정 일체로 지적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은 외국동지의 논의를 이식함에 가장 중요한 용심(用心)을 망각하고 있다는 그것이다. 나는 아직 외국에 있어서 논의된 창작방법에 관하여 많은 서적을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은 한에는 그들이 창작방법의 문제를 한번도 그 나라에 있어서의 근로대중의 당면한 과제와 분리하여 제기한 적이 없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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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인의 말 또한 조직의 테제, 이것이 소련작가들의 논의 가운데 얼마나 중요한 중심점이 되어 있는가를 보라! 그들의 창작방법 가운데 육(肉)이 되고 골(骨)이 되어 있는 건설사업에 대한 중심적인 과제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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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의 논객들은 오직 ‘다수자 획득’이라는 변함없는 어구만을 끌어다 기계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 다수자 획득의 방향은 세계 근로대중의 일체의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다. 중요한 것은 이 방향이 조선에서는 어떻게 구체화되어 있으며 어떻게 실천되어 있는가에 대한 이해이다. 이 이해없이 예술상에 있어 이 ‘다수자 획득’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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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국제적인 테제에 대한 관심의 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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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12월’‘1930. 9월 18일’그리고‘1930. 11월’하리코프에서 열린 제2차 작가동맹 국제회의의 일반 활동방침에 관한 결의와 기타 각종의 테제 등등 - 작가는 여기에 대하여 절대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아니라 그것의 예술상의 실천! 이것과 분리하여 제기되는 일체의 논의는 완전히 이에 대한 배반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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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작가 이북명, 작가 이기영, 작가 유진오에 대한 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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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백철 등의 작년 말 혹은 금년 초의 창작평을 통하여 작가 이북명을 알게 되었다. 그가 수년간 홍남 질소 비료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는 것이 간접으로 동무들에게 들은 작가 이북명에 대한 지식의 전부이고 또한 그의 쓴 글도 「여공」(『신계단』3월호)과 「출근정지」(『문학건설』창간호)와를 전부 통독하였지 그 외에는 「질소비료공장」, 「기초공장」을 단편으로 얻어본 것뿐이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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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질소비료공장」, 「기초공사장」, 「출근정지」, 「여공」- 이것이 시간상 발표의 순서인 모양인데 이렇게 보면 「여공」은 완전히 「질소비료공장」에서 한보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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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비료공장」은 조작조각 얻어 보았지만 생생한 노동자의 생활의 생활이 진박력(眞迫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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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은 이것이 없고 또한 작가 이북명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인 소설구성에 있어서의 소잡(素雜)이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물론 작자 이북명을 칭찬하기에 많은 준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하여서 그에 대한 비판의 엄격을 조금이라고 감소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북명에게는 무엇보다도 중한 결점은 정치적 수준이 모두 저하하다는 것을 나는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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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소림다희이(小林多喜二)의 작품은 당파성 확립에 압도를 받아 예술적으로 진실한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당파성의 확립은 현재의 작가 이북명에게 있어서는 그의 작품을 진실한 예술에로 발전시키기에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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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론 우리들의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노동자 출신의 그것과 지식계급 출신의 그것과의 두개의 딴 방향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격적이 아니다. 두 방향이 갖는 약점이 없어지고 두 방향이 갖는 좋은 점만이 통일되고 합성될 때에 훌륭한 진실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그것은 현상뿐만 아니라 그의 밑에 흐르고 있는 본질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예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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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절실히 느낄수록 나는 1931년 상반기를 회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훌륭한 작가를 그의 재능에만 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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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의 능동적인 발동력 없이 이북명의 전진도 그리고 지식계급 출신 작가의 전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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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나는 이 - 작가의 생활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인격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곤란한 사적 생활 속에서 여전히 조금도 초조함 없이 작품을 내어놓고 있는 작가 이기영에 대하여 나는 항상 머리가 오르지 않음을 느낀다. 작가 송영은 항상 원고를 짓갈려 던진다는 비난을 받는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그의 생활의 불안정에서 기인됨이 많다! 그러나 이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이기영을 눈앞에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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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전의 일인데 역시 생활은 몹시 곤란한 때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그의 책상 서랍을 알지 못하는 새에 잡아끌었을 때에 그 속에는 6, 70매 되는 소설이 세 편이나 쓰여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집단』에 실릴 소설을 청하던 터이므로 그 소설을 뒤적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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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세 편의 소설은 다같이 「기적이 울 때」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뒤적거려 보니 세 편이 별로 큰 차이는 없는 것이었다. 구성이 바뀌어져 있었고 퇴고가 심하였다. 그는 같은 소설을 약간의 부분이 마음에 안든다고 세 번이나 고쳐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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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림이 없다면 이 「기적이 울 때」는 아직 아무 곳에도 발표된 것 같지 않다. 생각컨대 세 번을 고쳐 써도 작자의 마음에 맞지 않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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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 같다. 그러나 작가 이기영을 아는 나에게는 결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또 한가지 그에 있어서 감심(感心)되는 것은 그가 성공하던 못하던 정치적인 캄파에 작품을 가지고 참가하려는 훌륭한 정치적 관심이다. 노련한 동지라고 결코 열정까지 식는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조선에서 노련하여 맞은 쪽 반대편의 길로 방향을 돌리는 수많은 친구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여기에서도 작가 이기영의 계급적인 인격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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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그를 이렇게 칭찬만 하고 그의 작품상 결함에 대하여 침묵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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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기영의 작품에는 주제의 적극성이 퍽 미약하다. 그의 노련한 기에는 이 결함 속에서 고정하고 만다. 그의 아름다운 대화와 필치는 현상 위를 활주한다. 그리고 정치적 중심내용은 설명으로 결부된다. 이 결함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묘양자(描養子)」에 있어서도 최근의 「인신교주(人神敎主)」에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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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기영 자신도 물론 회상할 줄 믿는다. 소설반 연구회가 훌륭한 발동(發動)을 가지고 있을 때에 반종교(反宗敎)에 대한 주제내용으로 이기영에게 소설제작을 명령하였을 때 그 속에서 생산한 「최전도사」라는 작품을! 이 성공한 작품은 지금 『해방』이란 잡지가 종식되면서 그 부채에 공연한 겻불을 맞아 「고무」와 한가지로 어떤 인쇄소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벌써 만 2년 전의 것임에 불구하고 작가 이기영의 가장 최고점(點)을 지은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그때로부터 이기영은 한보도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연구회의 조직적인 협동과 비판을 회상하면서 작품 「최전도사」와 작가 이기영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다음과 같이 외친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허언(虛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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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를 그의 재능에만 돌리지 말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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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동반자작가 중에서 작가 유진오만을 여기에 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의 해명은 다음으로 스스로 될 것이므로 그에 대한 시감을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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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진오는 신년에 희극제작을 제안하였다. 물론 우리는 희극, 풍자극을 반드시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보면 그의 제안은 지극히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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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진오는 그것을 객관적 정세의 불리에다 다분히 그 이유를 두고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은 『문학타임스』창간호에 게재된 「원고료 3천원」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실패일 뿐 아니라 이것과 그의 제안과를 연상할 때에 그것은 보다 큰 정치적 의의를 갖게 된다. 이것에 대하여 언젠가 「문학 타임스!」라는 제목 밑에 『조선일보』학예란에 「문학적 아동」의 한 자(者)가 허구(虛構)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으나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유진오의 우익적 타락이다. 작가 유진오는 1929년 전후하여 한참 말썽거리이던 김팔봉의 우익적 편향에 대한 비판을 회상할는지는 모른다. 그때에 팔봉은 변증법적 사실주의의 제안을 객관정세의 불리와 ‘연장을 수그리라’는 것과 결부하여 제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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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의 제안을 ‘연장을 수그리라’는 의도 밑에 제안함은 명백한 우익적 편향이며 또한 그러한 생각 밑에 제작된 「위자료 3천원」은 작품의 비속화의 가장 전형적 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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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진오는 「여직공」「오월제전(前)」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그 길에서 새로운 비약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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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컨대 이 작품상의 비약은 그가 동반자적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여가는 한, 전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생활의 비약 없이 작품의 비약도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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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위 해외문학파(그들의 어학의 힘이 얼마나 한지 또 그 쥐꼬리만한 어학을 내두르며 해외문학을 소개한다는 등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잉문학적 아동과 시인 청년의 그룹의 본체가 무엇인지 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기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불려지는 가운데도 물론 우수한 동반자 작가가 다소 없지 않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때껏 그들의 창작을 구하여 보기에 퍽 힘들었다.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에 대하여 간단히 여기서 말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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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선』종간(終刊) 3월호에는 조용만의 「배신자의 편지」라는 소설이 있다. 나는 여기서 내가 이 작품을 읽을 때에 하등의 선입견 없이 읽었다는 것을 말하여두어야 하겠다. 사실 나는 이 작가의 작품에서 약간의 좋은 질이라도 발견할 것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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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계인지 나는 이 작자의 의도가 결코 계급적인 일에 대한 악선전을 위하여 쓴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반동성에 대하여 여기서 침묵할 수는 전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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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만은 배신자를 어떻게 그렸느냐?(물론 이 소설이 내용하고 있는 그것이 배신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과 그것은 곧 작자가 계급적인 일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결과이란 것 등은 여기서 문제삼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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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도 먼저 우리는 배신자를 어떻게 그리어야 할 것인가? (차간 4행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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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판페로프의 정당한 말과 같이 질투를 묘사함에 노동자가 읽고 갑자기 처가 집회에 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처가 경박한 생각을 내지 않을까 의심하여 그 집회처에 달려가도록 쓰는 것이 우리들의 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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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가지 제재를 취급하는 두 계급을 대표하는 작가의 각각 다른 태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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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용만의 글을 보면 배신자에게 동정을 일으키도록 그것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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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이 작품은 배신자에 대한 독자의 격념(激念)을 헛되이 마비시키는 아편과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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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과 조직과는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동반자작가의 비약은 그의 생활을 조직 속에서 훈련받고 그 곤란한 일 속에서 단련되는 데 의하여서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1933.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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