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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치기(稚氣)를 웃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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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1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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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치기(稚氣)를 웃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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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극의 잡문을 반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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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작가의 동향이란 등등의 제목 밑에 전호 5회에 긍(亘)하여 발표된 박승극의 ‘잡문’을 나는 피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하여 최근에 와서야 겨우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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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문’은 시덥지 않은 몇 토막을 제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이 ‘김남천은 여하히 유치한가’를 설명하는 논술에 소비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귀중한 시간과 지면을 허비하면서 비상히 중요한 이 증명에 착수한 것은 그보다도 훌륭한 결과를 얻고자하는 정치가적 야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잡문의 종말에 가까운 일절(一節)에서 과언(誇言)함과 마찬가지로 임화와 김남천의 창작논쟁을 원활하게(!) 해결한 것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특별히 임화가 잘했네 김남천이가 잘했네를 분석해 말할 수 없다. 둘이 다 안과 밖의 구별은 있으나 결국은 한가지의 잘못을 범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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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원활 무결하게(!) 해결하여 놓고 그는 그 위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이만치 말하면 경험이 많고 이해성이 풍부한 임화는 물론이오 아직 어린 김남천(오! 노쇠한 박승극이여!)도 해득한 바 많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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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을 바꾸고 품(品)을 바꾸면서 증명하고 충고한 노련하고 늙어빠진 선배의 말에 나어리고 경험이 없는 김남천이가 해득한 바 많치 못함은 섭섭하담 보다도 ‘경솔하기’짝이 없는 일이지만 다시 한번 위대한 선배의 던지는 침을 다시금 그의 얼굴 위에 돌려보내는 경망지행(輕妄之行)을 범하고자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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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론 박승극과의 이 논쟁에서 우리들의 창작논쟁이 기분(幾分)이라도 전진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박승극의 장난질은 결코 한 개의 문학평론이 아니며 그가 그의 잡문 속에서 제출하는 문제는 어느 것 하나가 합리성을 띤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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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한 문제의 제출에 합리적이 아니면 안될 것인가를 아는 것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총명 혹은 통찰의 크고 필요한 증명이 된다고 칸트는 그의 순수 비판에서 말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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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의 잡문은 위선(爲先) 문제의 제출에서 파탄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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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임화와 김남천은 무슨 문제를 중심 두고 논쟁하였는가? 이 논쟁의 중심을 모르고 그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경험 많고 능한 외교가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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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김남천의 임화적 창작평에 항의하는 글 속에는 세 가지의 중심적 문제의 제의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창작평과 작가의 실천의 결부에 관하여서이고, 둘째로 그것은 「서화」평을 중심 두고 농민을 통하여 묘사되는 어떤 시대의 객관적 파악에 대한 예술적 방법에 관하여서이고 셋째로 그것은 작품 「물」에 대한 자기비판을 내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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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문제에 대하여 하등의 논술 내지는 해결 없이 ‘논쟁의 해결’이란 과연 어떠한 것이며 그것을 재논박하는 나의 이 글이 또한 창작논쟁의 전진에는 특별한 기여가 없을 것도 예단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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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박승극 등류(等類)의 문학적 아동들이 장난질하는 아동적 잡문에 대한 비판문은 논쟁의 정당한 정로(正路)의 탐구를 위한 독충의 구축과 잡초의 제거 이상의 효과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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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승극도 창작평과 작가의 실천의 결부에 관한 나의 제의에 전혀 언급치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노쇠한 박승극은 나의 창작평과 작가의 실천의 결부에 관한 긴 논술을 임화의 「물」에 대한 평의 반박으로만 해득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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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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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서도 수차 말한 바와 같이 「물」에 대한 임화적 평의 정당함을 백 번도 천 번도 시인하는 바이다. 오직 임화적 창작평이 작가의 실천에 관하여 언급함이 없다는 것과 물과 같은 작품을 쓴 김남천적 오류의 원인의 해명은 김남천의 실천과 결부시켜서 평론하는 데 의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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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 외에도 안함광 등류(等類)의 비평가가 문제의 제출을 잘못 생각하는 모양으로 최근 『중앙일보』에 쓴 평론 중에서 유사한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으나 나로서는 이들이 중앙 동무들에 대한 헛된 아첨만을 일삼지 말고 문제의 핵심을 통찰하여 제의되는 중심적 문제에 대하여 논술하는 양심적 태도가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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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의 「물」과 그 평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동무들로서 과연 누가 나의 ‘창작평과 작가의 실천과의 결부’에 관한 제의를 정당히 취급하였는가? 그들은 누구나 문제의 중심에 들어오기를 회피한다. 그리고 임화적 창작평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찬의를 표한다. 이런 비평가들은 비평가의 이름에 해당치 못할 뿐 아니라 오직 문학적 아동의 명칭에만 해당하는 잡문객-雜文客)들의 일군(一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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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백만의 문학적 아동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든다고 하여도 김남천의 「물」의 오류는 그의 실천생활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필 김남천뿐이랴! ‘한의 연구’가 카프 작가의 중요한 임무라고 떠들고는 그의 이마 위의 땀이 식기도 전에 석왕사(釋王寺)의 자연을 화려한 붓끝으로 작문하기에 소일거리를 삼고 다시금 이번에는 추야장(秋夜長) 긴긴 밤에 할 일이 없어 김남천이 여하히 유치한가를 증명하는 사업에 노쇠하고 능련(能練)한 정치가적 수완(그는 일찍이 정치가였다)를 소모하는 박승극의 실천생활도 또한 그의 잡방(雜方)과 떼일 수 없는 관련 밑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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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이가 만일 분망한 일 속에서 살고 또한 문화적 공작 속에서 진실한 ‘서(鼠)의 애’아닌 애정을 봉정하고자 한다며는 어찌하여 그러한 정신병자의 절규를 두 번 세 번씩 되풀이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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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의 작가의 실천생활의 반영이며 작품에 대한 진실한 비평은 그러므로 작가의 실천생활과 결부시켜서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쓰고 있는 글의 내용과 그 자신의 실천생활을 조합(照合)하여 생각할 때에 누구나 수긍치 않으면 안 될 숨겨진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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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속의 박승극은 또한 문제거리가 되어있는「서화」에 대하여도 일언(一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곳에서 어떻게 문제를 취급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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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그는 나어린 김남천의 「서화」평에 망외의 아량을 보이시면서 기실 예술적 방법의 문제를 검열제도에 대한 기술상 문제로 환원하고 말았다. 이것은 진실로 놀랄만한 노련한 곡예(曲藝)이었다. 박승극보다는 정치적 수완이 미급한 안함광이가 솔직하게 「서화」에 관하여 이야기를 거부한 것과 비하면 실로 우리들과 같은 나어린 병졸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을 만치 교활한 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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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쇠한 박승극이여! 「서화」에 관하여 일언(一言)하는 것이 선배의 임무라고 생각하였거든 구태여 유치한 김남천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임을 돌리지 말고 「서화」의 예술적 방법에 관하여 새로운 개전(開展)된 논진(論陳)을 펴볼 용기를 왜 갖지 못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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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는 우리가 그것을 진실한 예술가적 태도를 가지고 임할 때에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수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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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있어서의 농업문제와 농민문학의 임무에 관한 문제, 한 개의 역사적 시대를 객관적으로 개괄하는 예술적 방법에 관한 문제, 성 문제, 더욱 나아가서는 간통에 관한 계급적 태도라든가 도박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라든가 혹은 농민의 복잡성의 묘사를 비생산적 유희적 수단을 통하여 시행하는 방법의 가부 여하 등등 취급할 수 있는 하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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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자칭 선배가 취급한 것은 어떤 부류의 것이었던가? 그는 실로 검열에 대한 기술문제 운운으로 간명하게 예술적 방법의 모든 문제를 대치하여 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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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도가 과연 얼마나 양심적이며 또한 ‘경솔치’않은 행동인지는 나 자신 증명의 노(勞)를 한가한 박승극 자신에게 양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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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물」에 대한 나의 자기비판에 대하여 박승극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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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자기비판의 전부는 결코 진실한 자기비판이 아니고 허위와 모순에 차있고 또한 ‘경솔하기 짝이 없는’소부르주아적 망동(妄動)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것은 김남천이가 여하히 유치한가의 중요한 증명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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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의 자기비판에 대하여 여사한 부정적 내지는 압박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이유로는 수다한 면밀한 조사와 비상한 정치가적 추상(推想)에 의한 증명이 쌀알과 같이 나열되어 있으나 위선(爲先) 나로서 중요하다고 보여지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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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창작평을 작가의 실천과 분리하여서는 불가능하다는 ‘창작방법’(박승극은 이것을 창작방법이라고 명명하였다)을 본다든지, 제이, 「물」을 비프롤레타리아작품이며 가장 위험한 경향과 합류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하고 임화의 비평을 시인한 것을 본다든지, 제삼, 김팔봉 유진오의 ‘연장을 수그리라’류의 자신이 비판하면서 도한 자기도 그러한 경향과 합류되어 있다고 자백한 것을 본다든지 - 이런 것 전부가 전혀 김남천의 ‘아동적 심리’의 노현(露顯)에 불과하다고 박승극은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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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남천 자신은 다른 논문에서는 문화공작의 소극적인 태도를 공격하면서 일방으로는 「물」과 같은 소극적인 작품을 내어놓는 등 상호 모순되는 일이 손으로 가히 꼽을 수 없을 만치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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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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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론 나 자신이 소부르주아 출신이고 동시에 나의 세계관이 불확고하다는 것을 누구의 앞에서라도 감추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같이 말과 행동과 작품에 상호 모순되는 곳이 없지 않음을 조금도 숨기고자 하는 자는 아니다. 아직 ‘나이 어리고’‘경험이 없는’김남천은 자기의 고민을 숨기고 자기의 모순을 숨기는 박승극적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기에 나는 임화에게 항의하는 글 속에서 「물」의 오류를 동지 유인의 논문과 관련시키지 말고 모순과 고민에 차 있는 나의 실천과 관련시켜서 논평하기를 희망한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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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고민을 자백한다. 소부르주아 출신 그리고 미완성적인 인테리겐차의 일(一)분자인 김남천 자신의 세계관의 불확고를 대중의 앞에 발표함에, 그리고 그것을 엄격한 자기비판에 의하여 청산하고자 노력함에 아무러한 수치도 또한 정치가적 불안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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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과연 자기비판이 아닐 것인가? 물론 과거의 파벌 영웅배들의 외교적 정치적 수단에 의한 자기비판에만 습관(習慣)된 박승극으로서는 이러한 솔직은 유치하고 어리고 경험이 없는 순진한 어린이들의 고백같이 보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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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술가의 조직과 운동 속에는 그러한 교활한 기술은 여태껏 침범하였던 전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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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판에 대한 횡포한 압박과 거부 - 이러한 것은 파벌정신에 충만한 과거의 그릇된 운동자들에게서만 항상 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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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누구를 향하여서도 ‘계급적인 일에 미련을 느끼고 정치운동은 할 용기가 없으니 문화운동이래도’하는 마음보를 가지고 정치운동에서 예술운동에로 방향을 돌린 친구들의 일상행동에 대하여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여서는 안될 것을 말하여 오는 것이다. 문화공작의 전진의 길은 자기비판의 압박과는 무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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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박승극의 문제의 제출은 그 방법으로나 또는 그의 내용에서 살펴볼 때에 그것은 하등 양심적인 문학평론이 아니고 오직 문학적 아동들이 장난질하는 아동적 문학 - 다시 말하여 한 개의 무계열한 잡문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자신이 예술운동에 대한 진정한 사랑 아닌 ‘서(鼠)의 애’의 가장 적절한 표본될 것이다. 다시 박승극이가 가장 기쁨을 느끼면서 종사한 김남천의 유치의 의 증명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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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실로 무수한 이유가 거시(擧示)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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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작이란 술어를 예술가들 중에서 처음 사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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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의 애’란 문구를 부적당하게 남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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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학적 아동이란 ‘기괴’한 문구를 사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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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화와 한가지로 난해한 문구를 사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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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밖에도 이미 상술한 부분에서 취급한 자기비판의 문제, 창작방법의 문제 등등 진열창의 보석과 같이 광채 있는 개조(個條)를 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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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것 모든 것은 결코 김남천의 유치한 증명이 되지 않고 박승극의 노쇠한 증명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리하여 그가 뱉은 침은 그대로 그의 콧잔등 위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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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공작’이라는 문구를 내가 먼저 사용한 것이 어째서 김남천의 유치의 증명이 될 것인가? 이것은 김남천의 유치의 증명이 안될 뿐 아니라 박승극이가 여하히 엘(L)적 정신 - 다시 말하면 파적(派的) 혈액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가를 자기증명한 데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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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은 이미 대중화된 ‘공작’이란 문구를 그것이 어떤 정치적 조직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그것을 기피할 만치 파벌정신에 사로잡혀 있지는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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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프 내에서도 반카프사건 당시의 카프 자신의 파적(派的) 정신에 대한 엄격한 자기비판과 청산의 가운이 농후한 지금 박승극의 여사한 노골적인 파벌정신에 대하여는 최후의 한 조각까지 다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데 의하여만 12월 결의에 대한 부분적인 반역이라도 우리들로부터 멀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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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의 ‘공작’문구 운운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금까지 카프 안에는 이러한 악한 파적(派的) 조류가 중요한 일파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문제는 대중적인 검토에 의하여 처리되어야 할 정치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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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서(鼠)의 애’‘문학적 아동’등등의 문구는 여러 가지로 반박할 필요도 없다. 오직 커다란 체경(體鏡) 앞에 박승극 자신이 기립하여 자기의 모양을 세세히 살펴보는 데 의하여 모든 것은 손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박승극에게 기괴하게 보여지던 이러한 문구는 스스로 훌륭한 해석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적 아동이란 결국 박승극과 같은 유배(類輩)를 명칭하는 문구이며 ‘서(鼠)의 애’란 또한 여사한 문학적 아동들이 봉정하는 허위의 애(愛)를 말하는 문구임에 틀림이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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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극이여! 김남천은 과연 어리다. 그러나 나는 박승극의 이 총명한 단정에 만족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김남천은 유치한 탓에 다시금 진전하고 발전할 것이며 그것은 노쇠하여 소명하는 과정에 있는 박승극의 운명과는 판이한 까닭이다.
【원문】문학적 치기(稚氣)를 웃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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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3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박승극
 
  # 서의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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