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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정신의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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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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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정신의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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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개책이나 발전책이 나올 때마다 늘상 붓끝에 오르는 문구들이 있다. 문예잡지를 가져야 한다느니, 문학상 제도를 설치해야 한다느니 하는 등류의 말도 그런 것 중의 일종이요, 지성이라든가 정신 내지는 에스프리라든가 자각이라든가 반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하는 등속의 말도 또한 그런 것 중의 한가지다. 어느 것이고 모두 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모두 일리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들이나, 그러나 필요한 것이라고 한대도 그것이 곧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디에서 돈이 한뭉치 뚝 떨어지든가, 갸륵한 독지가가 생겨나야만 비로소 이야기가 구체화될 수 있는 말 같은 건, 실인즉 백 천번 되풀이하여도 아무 곳에도 못 쓸 수작이 되고 말 것이나 한편 너무나 고차적이고 일반성을 띤 추상적인 제의는 그대로 흘러 버리기가 아주 쉽다. 또 그밖에 우리의 실력이나 실권을 갖고는 조룐히 될 상 부르지도 않을 담론을 벌여 놓자 보았자 수습할 수 없는 탈선이 고작일 게다. 가능한 것으로 부터 시작하자는 것은 아니되 현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 다시금 명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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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문학의 현상을 두루두루 살펴보면 모두가 고립 상태다. 공통된 문학정신이 없다. 문학에 대한 원리나, 형상화의 방향 같은 것의 공통된 기치란 것이 없다. 하기는 리얼리즘이란 게 오래 전부터 있어서 이 밑에 쓸어 모였다고 볼 수도 없지는 않으나, 리얼리즘에 대한 이해도 각각 달라서 이름만 같을 따름이지 서로 섞일 수 없는 빙탄간(氷炭間)도 없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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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기는 최근 이 문학정신이란 걸 탐색해보려고 애쓴 분도 한둘이 아니어서, 필자도 고발정신 같은 걸 제창하고 지금껏 내깐으론 이것저것 작품상으로 실천해 보느라고는 하지만, 나 자신으로도 별 신통한 게 없는 것 같고, 여러 방면의 문우들에게선 비판만 받았으니, 물론 공통된 방향이 될 수도 없다. 최근에도 한식 씨 같은 분이 문학사상뿐 아니라 인류문화사상에 나오는 인물들을 모두 이끌어 가며 자꾸만 우리 작가에게 정신을 권하고 있는데, 보아하니 최근의 우리 잡지에 나는 소설 같은 것도 별로 읽지 못하고서 공연한 소리만 떠벌리는 것 같아서, 어딘가 말씀이 좀 시서늘하였다.「여인명령」처럼 쓰라느니, 「오케스트라의 소녀」에서 배우라고 야단이시니 참 딱한 말씀이었다. 그러니 평론이란 게 권위가 서고 비평이란 게 비판 정신이 서야 할 텐데, 그것조차 기연미연하고 보니 참말 너나 할 것 없이 딱한 일이다. 필자가 한 게 얼울렀나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즈음 장편소설 논의 같은 건 나 자신 상당히 희망을 붙이고 이야기 되는 걸 따라가고 있고, 또 지성 논의 같은 것도 세심히 쫓아가고 있는데, 이젠 그만 했으면 과실을 거두려 어떤 각도나 애스펙트를 거쳐서 문학의 실제 제작과 연결을 꾀하도록 노력해 볼 시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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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에 휴머니즘이 백철 씨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퍽 오랜 시일에 이르렀는데, 물론 그것이 아무러한 정신적 양식도 남기지 못하였다면, 그건 비방의 말이 되겠지만, 작품으로서 별반 그 논의의 영향을 받았고 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아마 논자들의 일치된 생각인 것 같다. 백철 씨는 작가들에게 호소하다 못해서, 스스로 삼 개월이나 걸려 휴머니즘을 작품으로 실천해 갖고 상경하였노라고 필자보고 말하였는데, 본시 나는 뭐든 제창하면 그대로 써보고야 마는 성벽(性癖)이므로 백철 씨의 태도에 어지간히 감동하였었는데, 그 일이 있은 지 이미 1년, 불행히 아직 그 소설의 읽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렇게 장구한 시일 동안 휴머니즘이 논의되면서도 그것이 작품 위에 아무러한 영향력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나 원인을 내깐으론 역시 그 논의가 우리 작가와 작품 속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허공에서 빙빙 추상적인 일반성의 권내(圈內)만을 돌아다니다 사라진 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논자 제씨에 대해선 좀 실례의 말이지만, 그만큼이나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정신적 암시 하나도 못 얻어들이는 작가도 작가려니와, 실상인즉 논자들 간엔 휴머니즘과 문학이 어떤 국면으로 교섭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있던 분도 별로 많지는 못했던 것 같다. 논자들의 작품 보는 눈을 보면은 뻔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까닭에 지성론, 전통론, 지식계급론 등이 성(盛)히 우리의 앞에 나타나서, 문예 방면에 국한(?)되었던 평론이나 비평을 널리 문화사상적 진폭을 갖게 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문학자는 그 놈이 엔간히 논의되었을 즈음엔 곧 우리 작가와 작품의 속으로 내려와서 그것을 문학작품 위에 영향을 주도록 교섭면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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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에라고 하여도 이미 7, 8년 전이지만, 우리 문예평론이 거지반 운동이론과 외국 문호 소개문으로 꽉 찼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운동을 전개해야 하느냐는 것을, 전자는 매일처럼 옥신각신 되풀이하였고, 후자에 종사하던 이들은 이 즈음 거개가 평필을 던지고 다른 천직을 찾아 전직들을 하였는데, 그 분들은 또 학생시대의 노트를 거지반 많이 괴롭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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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문단이 통일된 방침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7, 8년 전의 이런 풍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로되 역시 어떤 방향을 원리로나 기술로나 건립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진전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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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것을 실속 있게 쪼개서 말하자면 첫째로 원리적인 것의 방향을 확립할 것, 둘째로 기술적인 것의 방향을 통일할 것으로 가를 수가 있는데, 실상인즉 원리적인 것을 제시하거나, 또는 그 방향을 찾아내기가 지금은 대단히 곤란한 시대이다. 추상적으로 그 걸 말해보아도 좀처럼 작품이나 문학 이론으론 나타나기 힘들게 쯤 되었다. 작가들도 별반 귀담아 들으려고 아니한다. 외지에서 논의되는 놈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으면 조선이란 고장도 세계의 일환인지라, 원리적으로 해결이 설 수도 없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것으론 좀처럼 실력 있는 프린시플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역시 문학운동의 원리적인 것을 제2, 기술적인 방면에서 작품비평과의 상호침투 가운데서 찾아봄이 수월할 것처럼 생각해 보았다. 기술적인 방면이라면 어폐가 있겠지만 풀어서 말하자면 작가론, 작품명이나 분석 등을 가리킴이다. 작품이나 작가를 친절하되 엄격한 비평정신 밑에 분석하고 종합해 보고 하는 가운데서 방법이나 원리를 제시하고 탐색하는 것이 용이할 것처럼 생각한다는말이다. 우리 문단의 현상이나 분포도를 머리속에 정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비평가나 작가, 그 가운데서 참되고 참되지 못한 것을 분별할 만한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의 활동이, 앞으로 이 임무를 다해 나갈 것이다. 작품을 읽지 않는자, 조선 작품을 허수로이 보고 그런 조선 작가를 깔보아 돌아볼 줄 모르는 그런 평론가와 작가는 아마 앞으로 1년 안에 완전히 신용을 상실함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동시에 비평정신의 확립을 거쳐 새로운 통일된 방향을 찾는 탐색의 과정도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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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9년 1월호, ‘문예발전책’ 특집)
【원문】문학정신의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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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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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