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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한림전(方翰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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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미상.
《방한림전》(方翰林傳) 또는 《낙성전》(落星傳)은 조선시대 때의 작자·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명나라를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 방관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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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림전(方翰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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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 북경 유화촌에 일위 서생(一位書生)이 있으니 성명은 방관주요 자(字)는 문백이니 이 곧 권문(權門) 도명 인위군 업절 태학사(太學士) 충렬공(忠烈公) 효유 방씨 후예(後裔)라. 그 부친은 선초에 충렬은덕이 청정하고 모친 보씨는 숙녀현완지녀라. 부부 참치(參差) 없은 재화로 상유하여 여러 십년(十年)에 생산(生産)이 묘연(杳然)하야 농장(弄璋)의 경사(慶事) 없더니, 노년(老年)에 비로소 일몽(一夢)을 얻고 옥으로 새기고 꽃같은 여아(女兒)를 생(生)하니 이 곧 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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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여아나 산천정기(山川精氣)를 모두 모아 난 듯 광채찬란하야 산실내(産室內) 이향(異香)이 만실(滿室)하고, 신체찬란하여 일월정기를 품수발원하여 풍용윤택(豊容潤澤)하며 안광(眼光)이 추수(秋水) 같고 갓나흐며 기이한 곳이 많더라. 부모 비록 남자 아님이 가연하나 이렇듯 그리함을 희출만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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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후 방공 내외 농장의 재미 다시 절원하니, 여아 수삼세에 재식이 쇄락(灑落)하고 기상이 준수하여 규리독녀(閨裏獨女)의 거동과 신양이 날로 늠름하여, 백연(白蓮)같은 안색과 추천같은 기운이며, 진주(眞珠) 같은 안광이며, 바야흐로 말을 이루매 글자를 가르치니, 하나를 들어 열을 통하고 열을 들으면 천을 깨치니, 부모 애중하여 아들 없음을 한치 아니하고, 홍금채의(紅錦彩衣)로 입히되 문백 소저 천성이 소탈하고 검소하여 취삼(翠衫)으로 채 긴 옷을 입고자 하는지라 방공 내외 여아의 뜻을 맞추어 소원대로 남복을 지어 입히고 아직 어린 고로 여공(女工)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시서를 가르치니 방소저 나이 어리나, 서공(書工)이 날로 장진(長進)하여 시서백가어를 무불통지하여, 이두(李杜)를 모시하니 용안문체(文體) 더욱 쇄락하여 추월(秋月)이 무광(無光)하고 춘화(春花)가 부끄러운지라. 추천같은 기상과 만월같은 이마의 교교한 자태 진선진미(盡善盡美)하여 일월정기를 모두었으니 이름이 원근에 진동하고 공렬(功烈)이 천추에 유방(流芳)할 줄을 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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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수선(紡績修繕)을 권한 즉 스스로 폐하니, 부모 또한 여아의 재모(才貌)가 범인(凡人)이 아니라 또한 슬퍼여김을 구태여 권하지 않고, 여복(女服)을 나오지 아니하고, 친척으로 하여금 아들이라 하더니, 불행하여 문백 소저 팔세되매 방공 부부는 일시(一時)에 쌍망(雙亡)하니 불의에 호천지통(昊天之痛)을 만나 애훼(哀喙)함이 예(例)에 넘고 집상(執喪) 함이 규수의 어김이 없어, 친척과 노복으로 더불어 부모장례를 지내고, 스스로 가사를 다스려 삼상(三喪)을 극진히 받들어 조석(朝夕) 읍혈지통(泣血之痛)을 만인 감동하더라. 독서를 부지런히 하고 더욱 의사 여도(女道)에 다다라는 냉락(冷落)하여 일양 남자로 처사하고, 비복을 위령(威令)하여 자가 본적(本籍)을 친척도 알지 못하더니, 유모(乳母) 주유랑이 소저를 모셔 말씀하더니 유모 고(告) 왈, 이제 소저의 방년이 구세(九歲)라. 규리(閨裏)의 여자 십세에 불출문외라 하오니 원컨대 공자는 돌아 생각하시고 우스운 거조(擧措)를 그만 그치사 나중을 어지럽게 말으소사 선노야(先老爺) 부인 영혼을 평안히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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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발연변색(勃然變色) 왈, 내 이미 선친과 모령(母令)을 받자와 남아로 행한 지 삼년이 거의요, 한 번도 개복(改服)한 바 없나니 어찌 졸연(卒然)이 나의 집심(執心)을 그치며 선부모(先父母)의 뜻을 저바리리요. 내 마땅히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의 후사(後嗣)를 빛내리니 어미는 괴로운 언론(言論)을 다시 말라. 나의 본사를 타인에게 말을 맒을 바라노라. 청파(聽罷)에 유모 그 나이 어린 고로 힘이 없어 저런가 하여 다시 이르지 않고 또 강렬엄위(强烈嚴威)하여 비복(婢僕) 등도 불출구외(不出口外)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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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후 소저 독서(讀書)를 잠심(潛心)하고, 혹 병서(兵書)도 보고 무예도 익혀, 이두(李杜)의 문장과 손오(孫吳)의 모략(謀略)이 흉중에 감추니, 유광(流光)이 갈수록 신속하여 부모의 삼상(三喪)을 얼핏 지남에, 소저 더욱 부모의 자취 깊음을 슬퍼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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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三春)을 당하니 만화난만(萬花爛漫)하고 경치 아름다움을 보고 심사(心思) 울울(鬱鬱)하여 스스로 심사를 위로코자 가사(家事)를 유모와 비복 등에게 맡기고 일필 청려(靑驢)를 끌고 동자(童子) 수인(數人)으로 원근산천과 지방대해를 두루 돌아 곳곳이 풍경(風景)이 절승하여, 꽃을 보면 흉중에 문장이 일어나니, 시흥이 도도하여 암상(巖上)에 쓰고 제명(題名)하며, 일세(日勢) 저문 즉 암자에 유숙하고, 이렇듯 두류(逗留)하기를 오륙삭(五六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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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삼춘이 다 진하고 금풍(金風)이 소슬(蕭瑟) 계추(季秋) 염간(念間)이라. 단풍은 수곡에 붉었고 유지만첩하여 낙엽은 분분하며 하늘 기운이 경염(競艶)한지라. 소저 고향을 생각하나 경개를 인연(因緣)하여 부중(府中)을 잊었더니, 초동(初冬) 염간(念間)이라. 백설(白雪)이 편편(片片)하며 상로만첩(霜露萬疊)한 곳에 홍매화 만발하여 향취 은은하고 삭풍이 나의 을음작이니 집 떠난 지 일년(一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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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려를 두루여 부중에 이르니 새로이 서러워 부모 영연(靈筵)에 곡배(哭拜)할 새 각곡지통(刻骨之痛)을 마지 않더라. 시서(詩書)로 세월을 보내더니, 광음(光陰)이 임염(荏苒)하여 명년춘(明年春)을 당하니, 방공자의 나이 십이세(十二歲)라. 풍용한 기질과 꽃다운 용안(容顔)이 백옥(白玉)을 새긴 듯, 단순호치(丹脣皓齒)와 양목이 개제 기이(奇異)하여 인간(人間) 연인 중 사람같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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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위(嚴威) 강렬(强烈)하여 조금도 여자의 연연자약(娟娟自若)한 태도 없어 묵묵단좌(黙黙端坐)한 즉 동천한월(冬天寒月)이 벽천(碧天)에 걸렸난 듯, 담소를 이룬 즉 유한(有閑)하고 유순(柔順)함이 삼동(三冬) 눈이 녹는 듯하고 풍채 양유같고 채봉양익이 표표(飄飄)하니 진실로 적강선인(謫降仙人)인 줄 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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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하여 문필(文筆)이 날로 장진(長進)하여 패택오십수와 종완의 필학을 압도하고 자명이 자자하여 일향(一鄕)에 모르는 이 없어 시인(時人)이 흠탄칭복(欽歎稱福)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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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설(且說) 적덕 천자(天子) 설과(設科)하사 인재(人材)를 뽑을새, 궁향촌중(窮鄕村中)과 방방곡곡(坊坊曲曲)의 서생(書生)이 행장(行裝)을 차려 경사(京師)로 향할새, 방공자 이 소식을 듣고 심중(心中)에 상량(商量)하대 내 비록 여자나 그 처신(處身)을 남자로 하였으니, 시속(時俗) 여자의 가부(家夫) 섬기는 도리를 뉘하리요 하고 드디어 가인(家人)을 명하여 행장을 준비하고 유랑을 불러 가중대소사를 맡기고, 창두(蒼頭)와 소동(小童)을 데리고 발행(發行)하여 남전에 이르러 주인하고, 장중제구(裝中諸具)를 정돈하여 궐하(闕下)에 나아가 글제를 불새 시각에 급함이 이백(李白)에 신속하더라. 모두 두자미(杜子美) 한퇴지(韓退之)라 손을 놀리지 못할 것이로대 방공자 조금도 의려(疑慮)치 안하여 당건백포를 붙이고 배회(徘徊)하여 시를 지을 의사 없더니, 시각(時刻)이 당하여 날흐여 깁을 펴 보고 숙수 섬지(纖指)로 산호필(珊瑚筆)을 두루니 필하(筆下)에 운영(雲影)이 일고 용봉(龍鳳)이 넘놀고 구룡(九龍)이 서렸으니, 묵광(墨光)이 성고비무하여 사의(詞意) 격절 고상하니, 회두(回頭) 사이에 휘필(揮筆)하여 동행(同行)한 선비를 주어 바치라 하고, 두루 걷어 제유(諸儒)의 작시(作詩)를 구경할새 모든 선비 소년도 있고 혹(或) 귀 밑에 백발(白髮)을 드리우는 이도 있고, 중년(中年) 유생(儒生)도 있을새 추용둔탁(醜容鈍濁)하고 기질이 완추하고 개체한 청사의 무리로 유건을 끄덕이며 쓰는 이도 있고 한 손을 집고 읊조리는 자도 있고 혹 먼저 지었노라 양양승승(揚揚勝勝)하는 자도 있으며, 혹 기색(氣色)이 창황(惝況)하여 오직 붓끝을 입에 물고 양순치하(兩脣齒下)에 흑색(黑色)이 덮혔으니, 공자 일당을 실소(失笑)하고 일변(一邊) 탄(歎) 왈, 아국(我國)에 가(可)히 인재희소(人材稀少)하여 지광(地廣)을 여차하니 차석(嗟惜)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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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만세 황야(萬世皇爺) 구룡어탑(九龍御榻)에 좌(坐)하시고 백관(百官)으로 더불어 모든 글을 보실새, 여러 장을 보시나 하나도 천심(天心)에 영합(迎合)치 않으사 천안(天眼)에 근심하시더니, 최후 한 장 시전(詩箋)이 있으니, 먼저 묵화비무하고 오채영롱(五彩玲瓏)하여 서기(瑞氣)가 어리거늘 다시 보시니, 어찌 진속(塵俗)에 묻은 시재리요. 필획(筆劃)이 정공(精工)하고 구룡쌍봉(九龍雙鳳)이 서렸으며, 주옥(珠玉)을 허친 듯 사의(詞意) 심원공달(深遠公達)하고 묵묵청고(黙黙淸高)하여, 시재는 운천(雲天)에 있고 사의(詞意) 강산(江山)에 머물었으니, 용안(龍顔)이 대열(大悅)하사 제신(諸臣)을 보이시고 가라사대, 짐(朕)이 날이 기우도록 천여축(千餘軸) 시전(詩箋)을 봄에 마침내 재조(才操)를 보지 못하더니 이 글이 쇄락향염(灑落香艶)하여 소동파(蘇東坡) 이적선(李謫仙)이라도 미치지 못하리니 어찌 기특치 않으리오. 마땅히 이 글을 갑과제일(甲科第一)을 삼으리라. 제신(諸臣)이 일시(一時)에 득인(得人)하심을 하례(賀禮)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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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관이 그 문을 세 번 치고 장원(壯元)을 호명(呼名) 왈, 화주인(人)인 방관주 연(年)이 십이세요 기부(其父)는 유학(幼學)이라 하니 모두 실색(失色) 하더라. 방소저 날흐여 백포(白布)를 붙치고 편편(便便)히 걸어 옥계(玉階)에 다다라 국궁(鞠躬)할 새, 만조제신(滿朝諸臣)이 한 번 봄에, 태양이 부상(扶桑)에 돋았는 듯, 가만이 보니 이목(耳目)이 강산에 영기(英氣) 어리었고, 그 윤택(潤澤)함은 추수(秋水)의 부용(芙蓉)이요 옥계(玉階)의 화왕(花王)이라. 윤택화려함은 신류(新柳) 춘풍(春風)에 휘돋는 듯, 기상(氣像)이 담연(淡然)하여 정직(正直)하고 수려침중(秀麗沈重)하니 이루 응정치 못할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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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이 대희애중(大喜愛重)하사 가까이 부르사 어화청삼(御花靑衫)을 주시고 사주(賜酒)하시니, 장원이 이미 반취(半醉)함에 성안이 몽롱(朦朧)하고, 옥(玉) 같은 귀밑에 주기(酒氣) 어리어 붉은 기운이 백옥(白玉)을 침노하니 옥분연화(玉盆蓮花) 피어는 듯, 어화(御花)를 숙이고 천계(天階)에 사배숙사(四拜肅謝)하여 천은(天恩)을 사례(謝禮)할 새, 풍채(風采) 헌출하고 법도유여(法度有餘)하여 태을진군(太乙眞君)이 옥경(玉京)에 조회(朝會)함 같으니 만조(滿朝) 눈을 옮기고 칭찬(稱讚) 아니할 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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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쌍개(靑銅雙盖)와 금안백마(金鞍白馬)를 주시고 한림학사를 내리시니, 방장원이 오사(五絲) 금포(錦袍)에 화동쌍개(花童雙价)를 거느려 궐문(闕門)에 나오니, 마상(馬上)의 아름다운 풍채(風采) 조요찬란(照耀燦爛)하니 관광자(觀光者) 구름같이 모여 전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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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이 전답노복(田畓奴僕)을 사급(賜給)하시고 전교(傳敎)하사 장원각(壯元閣)을 지어 주실새 팔도지부 자사들이 물역(物役)울 모아 전교로 장원각을 지으니 어찌 범연(泛然)하리요. 일순(一旬)이 못하여 백여간(百餘間) 와가(瓦家)를 필역(畢役)하니 옥난주탑(玉欄朱榻)과 긴 담과 붉은 첨하(簷下) 은은하여 반공(半空)에 솟았으니, 장원(壯元)이 외람(猥濫)함을 이기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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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因)하여 직사(職事)를 다스림에 청렴강직(淸廉剛直)하고 한시(漢時) 급암과 당시(唐時) 위징보다 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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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림이 등용(登用)함에 이같은 영화(英華)를 부모께 보이지 못함을 슬퍼하여 봉안(鳳眼)에 주루 쌍쌍하더라. 이에 수삭(數朔) 말미를 얻어 고향에 내려와 소분(掃墳)하고, 가묘(家廟)를 모셔 주유랑만 데리고, 기여(其餘)는 고향을 지키라 하고 한림(翰林)이 입경(入京)하여, 너른 당(堂)에 봉안(奉安)하고 유모(乳母)를 더욱 후대(厚待)하니, 유랑이 소저 이렇듯 함을 민망(憫惘)하나, 감히 다시 고(告)치 못하니 큰 근심을 삼았으나 이같은 영화를 당하여 두구(杜口)기를 마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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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공경(滿朝公卿)이 방한림의 옥모풍광(玉貌風光)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함을 흠모(欽慕)하여 구혼(求婚)할 이 구름 모이 듯하되, 한림의 마음에 민망(憫惘)코 우이 여겨 허락 아니하더니, 차설(且說) 병부상서 겸 태학사 서평후 영의정(瀛議政)의 자(字 )는 균지니, 사람이 공근인후(恭謹仁厚)하고 홍명정대(弘明正大)하여 추엉(忠誠)이 관대(寬大)하여 천자(天子)의 도움이 중도로 하고, 사중의 일위(一位) 부인을 두었으니 또한 숙녀열부(淑女烈婦)라. 재화영투와 참치(參差)함이 없으니 화락(和樂)한 지 여러 해에 슬하에 자녀 선선하여 칠자오녀(七子五女)를 두었으니, 개개 사과옥수요 순가팔용이라. 남아(男兒)인즉 ‘발봉인 부봉익’할 체격(體格)이요, 여아(女兒) 즉 요조숙녀(窈窕淑女)며 군자호구(君子好逑)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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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애지중지하고 연지석지하여 택서(擇壻) 심상(尋常)치 않더니, 위로 칠자 사녀는 성혼하고 필녀 혜빙소저라 하니 방년(芳年)이 십 삼세라. 용화재질(容華才質)이 제형중(弟兄中) 출세추출(出世趨出)하여 용모(容貌)를 의논(議論)한 즉 중추만월(仲秋滿月)이 하수(河水)에 빗겼난 듯 백연(白蓮) 같은 귀밑과 교교(皎皎)한 양협(兩頰)은 희미(稀微)한 도화(桃花) 같고 묘묘(杳杳)한 양순(兩脣)은 단사(丹砂)를 찍은 듯 낭성 같은 눈지와 표표한 양익이 비봉(飛鳳)이 운산(雲山)을 향하는 듯 섬섬(纖纖) 세요(細腰)는 촉깁을 묶은 듯 기질이 추월(秋月) 같고 성정(性情)이 동방한월(東方寒月) 같아 기심(其心)이 철석빙옥(鐵石氷玉) 같고 표표양양(飄飄揚揚)하여 홍진(紅塵) 띠끌에 염여낙낙하여 문득 세상(世上) 부부의 영욕(榮辱)을 초월같이 배척(排斥)하여 언언에 왈, 여자는 조인이라. 백사(百事)에 이미 임의(任意)치 못하여 그 사람의 절제(節制)를 받나니, 남아(男兒) 못될진대 인륜(人倫)을 그침이 옳으니라 하며 모든 제형(弟兄)들의 구차(苟且)함을 웃어, 제형들이 활발(活潑)타 조롱하니 부모 다 그 심정(心情)을 고히 여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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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림을 영공이 크게 사랑하여 구혼함을 지극히 하니, 한림이 괴로움이 극(極)하나 또한 헤아림에, 이미 남자로 행세하여 종신(終身)코자 함에 처자(妻子)를 두지 아니면 만인(萬人)이 의혹(疑惑)하리니, 차라리 아름다운 숙녀를 얻어 평생지기(平生知己) 있음이 마땅하나 차마 사람을 속여 인륜(人倫)을 휘저음이 어렵고, 또한 불초우인(不肖愚人)을 만나면 자가 본사(本事)를 누설(漏泄)할까 천사만사(千思萬思)하나 계교없어 다만 손사(遜辭) 왈, 학생이 아직 나이 어린 고로 취처(娶妻)함이 바쁘지 않삽고 평생소원(平生所願)이 무렴이라도 진중(鎭重)하고 부덕(婦德)의 여자를 구하고 비록 서자(西子)의 색(色)이라도 심지경요(心志輕擾)한 자는 원치 않삽나니, 당돌(唐突)하오나 대인(大人)의 규수(閨秀) 선악(善惡)이 어떠하온지 모르오니 감히 허(許)치 못하리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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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후 차언(此言)을 듣고 심중(心中)에 주의있어 은연(隱然) 소(笑) 왈, 요조숙녀(窈窕淑女)는 군자호구(君子好逑)요 관관저구(關關雎鳩)는 재하지주(在河之洲)라 하니, 노부(老父)의 자식(子息) 기림이 가소연(可所然)이나 당금(當今)에 그대 군자지풍(君子之風)이 있고, 나의 여아(女兒) 숙녀지풍(淑女之風)이 있으니 이러므로 발설(發說)하였나니 의심(疑心)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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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이 영공의 뜻을 짐작하고 부답(不答)하여 명일(明日)을 청하는지라 대답하고 돌아간 후, 명일 한림이 수레를 밀어 서평후 부중(府中)에 이르니, 후 대희(大喜)하여 맞아 칭사(稱辭) 왈, 작일(昨日) 당돌(唐突)히 족하를 청하였더니 빗나 임하시니 희행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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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이 손사 왈, 어찌 희사치 아니리까. 서평후 호수미친을 들어 두어 순배(巡杯) 지남에 광수(廣袖)로 수염을 어루만져 흔흔히 웃어 왈, 작일에 형후를 강국하라 함은 타사(他事) 아니라 그대 아녀의 선악(善惡)을 알지 못함에 의심하여 허(許)치 못하노라 한즉 특별히 한 번 보여 의심을 드고이니 모로미 의심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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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파(說罷)에 전어(傳語)하여 소저를 명하니 소저 이윽고 나와 부명(父命)을 응(應)할새, 어떤 소년명사(少年名士) 좌에 있음을 보고 경황(驚惶)하여 면모(面貌)를 숙이고 단좌(端坐)함에, 진실로 요조숙녀라. 일만(一萬) 태도와 행지처신(行止處身)이 단장이 없으니 한림이 한번 봄에 황연이 기쁜 의사가 나타나 옥면화기(玉面和氣) 우희염작한지라. 심호에 경탄(驚歎) 매모하여 칭찬(稱讚)하여 저렇듯한 성모재녀 만고(萬古)를 기우려도 다시 얻지 못할 것이로대, 숙녀(淑女) 자기에게 돌아와 신륜이 끊어지고 일생이 매몰(埋沒)함을 상양(商量)컨대, 잔인(殘忍)코 가석(可惜)하나 다시 말 막을 새 없어 염신 단좌(端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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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가로되 그대 여아를 보니 어찌 결단(決斷)코자 하느뇨 한림이 흠신(欠伸) 대(對) 왈, 소저는 진실로 요조숙녀라 소생(小生)이 복이 손상(損傷)할까 두려할지언정 어찌 감히 사양하리이까. 영공이 대희(大喜)하여 만구칭사(滿口稱謝)하고 한림과 여아를 봄에 짐짓 배필(配匹)이라. 한림은 부용(芙蓉)같고 여아는 홍련(紅蓮) 같고, 한림은 청수(淸水) 같고 여아는 풍완하여, 일월(日月) 한 쌍이 한가지 밝아심 같으니, 영공이 대열(大悅)하여 여아를 들어보내고 한림을 데리고 종일 즐기고 흩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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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於是)에 방한림이 부중에 돌아가, 영가(瀛家) 혼사(婚事)를 주유랑을 보고 이르니 유모 실색(失色) 왈, 가(可)치 않다. 우리 낭군(郎君)의 혼사는 옥같은 군자에 있으니 어찌 규수(閨秀)에 있으리오. 이렇듯 고이한 거조(擧措)를 하시고 나중을 어찌려 하시니까? 한림이 미소(微笑) 왈, 이는 내 헤아림이 있으니 모로미 어미난 말만 출구(出口)치 말고 길례(吉禮)나 준비하라. 이목(耳目)이 허다(許多)하니 유모의 구설(口舌)로써 나의 철옥(鐵玉) 같은 마음과 일생을 휘젓지 말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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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에서 택일하니 양인(兩人) 길일일첩(吉日日帖) 순순이 가렸는지라 서평후 더욱 기꺼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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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설(且說) 영소저 혜빙이 부명(父命)으로 한림을 보니 총명신기(聰明身氣)는 본디 범인(凡人)이 아니라, 본디 소리를 들어 선악을 분변(分辨)하니 어찌 그 얼굴을 대하여 이르리오. 방한림이 비록 준수(俊秀)하나 오히려 영씨 일상거조(日常擧措)에는 능히 용납(容納)하며 비최지 못하리요. 추파(秋波)를 빗기고 과히 깨달아 상양하기를 오래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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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내당(內堂)에 들어가 고요이 헤아려 가로대, 자고(自古)로 남자 호탕(豪宕) 고은 색(色)도 있다 하나 여자에게 내도(來到) 한 이 어찌 이런 남자 있으리오? 이는 연연(戀戀)하고 쇄락(灑落)하여 이슬 마른 꽃송이 같아서 무궁이 후익하고 백태가작(百態可作)하니, 반드시 원 여식 부질없는 남복(男服)을 하여 부모 조세(早世)하니, 권하여 여도(女道)를 가르칠 이 없어 이에 끝이 누리기 어려워 이르렀으니 진실로 가소연(可笑然)이나, 내 보건대 방씨 용안(容顔)이 쇄락하고 기지(氣志)는 엄하여 일세(一世) 기남자(奇男子)라. 이런 영웅이 여자를 만나 일생 지기(知己)되어 부부의 의(義)와 형제의 정을 맺어 일생을 마침이 나의 원이라. 내 본대 남자의 총실(聰室)이 되어 그 절제(節制)를 받으며 눈썹을 그려 아당(阿黨)함을 괴로이 여겨 금실(琴瑟)우지의 종고지락(鐘鼓之樂)을 내 원치 않더니 우연히 이런 일이 있으니 어찌 우연타 하리요. 반드시 천(天)도 유의(留意)하심이라. 수선(修繕)과 빗순가음아는 구구한대 이에서 낫지 아니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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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철옥결 같은 빙심(氷心)이 이렇듯 주의(主義)를 정하며 세사(世事) 더욱 부운(浮雲) 같고 십분(十分) 주의도 있으니 기괴미사(奇怪美辭)로다. 석(昔)에 난산의 결의와 유종의 지음(知音)이 일렀으나 당금차사(當今此事)에는 두 사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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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이 백구에 틈지남 같아서 길일(吉日)이 임(臨)하니 양가(兩家)에서 혼구(婚具)를 성배(盛排)하여 채예를 보시고 친영(親迎)할새 방한림이 옥모영풍으로 길복(吉服)을 입고 위의를 거느려 혼가(婚家)로 행할새 향기로운 바람은 일신을 하례(賀禮)하거늘 금안백마(金鞍白馬)에 옹위(擁衛)하여 나아가니 관지재타상하여 천상안이라 하더라.
 
35
영부에 이르러 천지께 배알(拜謁)하고 신부(新婦) 상교하기를 기다릴새, 서평후 문방(文房)을 내어 최장시 짓기를 재촉하니, 이윽고 실소(失笑)하고 산호필(珊瑚筆)에 먹을 묻혀 채전(彩箋)을 펴고 주옥을 헤쳐 쓰기를 마침에 받들어 전(傳)하여 왈, “소저의 견조문하와 악장(岳丈)의 고안(高顔)을 욕되게 하나이다.” 서평후 받아보니 시사(詩辭)의 고이함이 화풍화우(化風化雨)하는지라. 기쁜 웃음을 참지 못하니 중빈(衆賓)의 치하(致賀) 분분(紛紛)하니 공이 좌수우응(左酬右應)하여 흔흔낙낙(欣欣樂樂)하더라. 공의 칠자(七子)와 사서(四婿) 다 아름다우나 방생(方生)으로 비컨대 기와와 공옥(工玉) 같더라.
 
36
이윽고 신부 화홍장을 다스리고 채교(彩轎)에 오르니 칠보발을 지움에 한림이 순금(純金) 쇄약(鎖鑰)을 들어 봉교하거늘, 위의를 휘동(揮動)하여 부중에 이르러 교배(交拜)를 마치고 화촉(華燭)하에 나아가, 자하상을 나누고 칠보선(七寶扇 )을 반개(半開)함에, 신랑이 눈을 들어 신부를 보니 염염(艶艶)한 광채(光彩) 사벽(四壁)에 조요(照耀)하고 풍완한 기질이 새로운지라. 석양(夕陽)에 동방(洞房)에 나아가 한림은 수려(秀麗)함이 우희 묵묵한 근심에 잠겼고, 영소저는 그 여자임을 암희(暗喜)하여 하더라.
 
37
양신인(兩新人)이 이윽히 상대(相對)하여 묵묵 양구(良久)에 한림이 기수칭사(起手稱謝) 왈, 학생이 경박(輕薄)한 필부(匹夫)여늘 악장(岳丈)의 지우(知遇)하심을 입사와 소저께 모첨하니 그윽히 다행함은 서로 지기(知己)될까 바라나이다.
 
38
영소저 수용정금(收容整襟) 왈, 누첩(陋妾)이 규방풍견(閨房風見)에 고루(固陋)하여 불용누질(不容陋質)로 성명(性命)을 의지하와 외람이 부부의 도를 이뤘으나 어찌 지기를 감당(堪當)하릿고 마는 스스로 돌아보사 여자의 식견(識見)을 어둡게 말으소서. 첩(妾)이 군자의 심사(心思)를 누설(漏泄)치 않으리니 너무 속이지 말으소서. 한림이 의아자괴(疑訝自愧)하여 홀연(忽然) 단사(丹砂)에 백옥(白玉)이 현란(絢爛)하여 흔흔소(欣欣笑) 왈, 부인의 말씀이 뜻이 있나니 주객이 맞난지 시객이 못하여 속인다 책(責)하니 그 끝이 어디 미쳤나뇨. 자세히 해석하라.
 
39
소저 화안(花顔)을 낮추어 정색부답(正色不答)이어늘, 한림이 그윽히 영씨 자기 알아봄을 스치고, 지인(知人)의 고명(高明)함을 경탄(驚歎)하나 너무 말씀을 불열(不悅)하여 다시 개구(開口)치 않고 차야(此夜)를 지냈다.
 
40
명일 신부 폐백(幣帛)을 맞추어 현사당(見祠堂)할 새, 한림과 어깨를 갈와 작(酌)을 헌할 새 한림이 석사(夕事)를 생각하고 슬픔이 교집하여 누수연화 양협(兩頰)에 젖으니, 소저 또한 감동하여 참연함루(慘然含淚)러라.
 
41
소저의 침소(寢所)를 정전(正殿) 해월각(海月閣)에 정하니 으뜸 큰 전(殿)이라. 주탑옥란(朱榻玉欄)과 사창분벽(紗窓粉壁)이 인세(人世) 같지 않더라.
 
42
차야(此夜)에 한림이 정침(正寢)에 이르니, 영소저는 규각(閨閣) 가운데 한갓 통개명활(通開明闊)한 여자라. 이미 저 여자인 줄 알고 이에 성안을 낮추고 피석(避席)하여 왈, 첩(妾)이 상공(相公)에 한번 고(告)할 말씀이 있으니 용서하소서. 한림이 저자가 알아봄을 이 같음을 보고 탄 왈, 무슨 말로써 복(僕)에게 보내고자 하나뇨? 한번 듣고자 하나이다. 소저 염님 답 왈, 소첩이 만일 한림을 아지 못한 즉 어찌 말이 당돌하기에 미치릿고. 이윽히 헤아림에 한림이 일월(日月)을 속이며 세상을 기만(欺瞞)하여 음양(陰陽)을 변착하심을 아나니, 한번 해석하신 즉 첩이 종신(終身)토록 저바리지 아니리이다. 한림이 이같이 맑은 결단(決斷)이 있음을 탄복(歎服)하여, 일변(一邊) 참연하고 척연(惕然) 양구(良久)에 옥안(玉顔)에 주루 종횡하여 능히 기운을 수습(收拾)치 못하여 양구(良久) 후 팔을 들어 사례(謝禮) 왈, 복(僕)은 근본(根本) 자(子)의 의심과 같은지라. 상천(上天)의 지중(至重)한 죄벌(罪罰)을 얻어 팔세(八歲)에 양친(兩親)을 쌍망(雙亡)하고 혈혈(孑孑)한 일신(一身)이 벽향궁촌(僻鄕窮村)에 일개 희소하니 사고무탁(四顧無托)한지라. 계교궁진(計巧窮盡)하여 스스로 이런 거조(擧措)를 내여 속절없이 세월을 천연(遷延)하여 이미 십세(十歲) 됨에 어린 기운이 더욱 그칠 줄을 몰라 이 지경에 이르렀더니, 금일(今日) 자(子)의 쾌히 앎을 당하여 감히 다시 속이지 못하나니 나는 이미 길을 그르쳤고 곡정지심이 있어 금실지락(琴瑟之樂)을 불관이 여기거니와 존공의 핍박(逼迫)하심을 면치 못하여 소저의 인륜(人倫)을 작희하오니, 참괴(慙愧)함이 낯 둘 곳이 없으나 다만 나의 본적(本籍)을 누설치 못하리니 자(子)의 침묵(沈黙)함을 바라노라.
 
43
영소저 흔연(欣然) 왈 첩이 이미 그대를 처음에 볼 때 과히 알아보았나니, 이제는 그대와 한 가지로 일생을 지내어도 족히 처자(妻子)의 도를 잃지 아니하려니와 다만 군(君)이 나이 많도록 수염(鬚髥)이 나지 않은 즉 어느 사람이 모르리오. 그 시절(時節)을 당하여 시러곰 어찌하리까.
 
44
한림이 추연(惆然) 희허 왈, 만사 되어감을 바라나니 족히 염려(念慮)치 아니하나 소저의 일생을 염하애위하여 가이 없거니와, 이미 나를 위하여 지기(知己)되어 일생을 한 가지로 마치고자 한 즉 형제의 의를 맺어 칭명(稱名)함이 어지럽게 마소이다. 영소저 불열(不悅) 왈, 불연(不然)하여이다. 여차(如此)한 즉 자연이 누설하여 부모 아르신즉 좋지 않으리니 다만 부부의 예를 치룬 다음이라 어찌 자저(趑趄)함이 있으리오. 한림이 기꺼이 허락하고, 이에 비상주표(臂上朱標)를 소저에게 뵈니 소저 냉소(冷笑) 왈, 일로써 방인(傍人)이 본 즉 어찌하려 하나요? 한림 왈 복(僕)이 스스로 깊이 감추었으니 뉘 능히 알 자 있으리오. 두 사람이 다 웃고 또한 다행함은 지기를 얻어 서로 매몰치 않음을 기꺼하더라.
 
45
차후 양인(兩人) 화락하여 한림이 조당(朝堂)에 갔다오면 내당(內堂)에서 종일(終日)하고 외당(外堂)에 손을 모으지 않으니 고요함을 더욱 칭찬하더라.
 
 
46
방한림 승품작위(昇品爵位) 제이회(第二回)
 
47
화설(話說) 방한림이 입조(入朝) 수년(數年)이라. 옥당(玉堂) 제일(第一) 명사(名士) 되어 기관에 숙직강엄하고 충절(忠節)이 관대하여 천자(天子) 돕사옴이 당시(唐時) 위징과 한시(漢時) 급암으로 병구하니, 나이 비록 심삼(十三) 소아(小兒)나, 만조(滿朝) 그 탄(嘆)함이 천자 버금이요 추앙(推仰)함이 스승같이 하니, 한림이 집례(執禮)함이 일월광명(日月光明)이요 벼슬이 날로 더하고 충절(忠節)은 시(時)로 밝은지라.
 
48
상(上)이 애지중지(愛之重之)하사 태자(太子) 위요 벼슬을 돋으사 이부시랑겸태학사(吏部侍郞兼太學士)를 하사하니, 한림이 사양(辭讓)하나 특(得)지 못하고 가지록 충절을 가다듬어 행실(行實)을 금옥군자(金玉君子)로 하여 청렴강직(淸廉剛直)하니 조야부앙(朝野俯仰)하고, 상(上)이 시랑(侍郞)을 보신즉 무릎을 쓰리치시고 말씀을 가다듬어 공경수려하시며 별호(別號)를 강직현명렬(剛直賢明烈)이라 하시니, 일로 좇아 물망(物望)과 청명(淸名)이 더욱 중(重)하더라.
 
49
상이 영소저를 기봉관화리로 명부의 복생을 주시니 영광(榮光)이 더욱 호성(浩盛)하고 영소저 풍채를 돋우니 시랑이 눈을 들어 소저를 보고 냉소 왈, 부인이 학생 같은 가부(家夫)를 만나실새 십삼청춘(十三靑春)에 나의 원비되어 봉관화리로 도우니 조달(早達)하심을 하례(賀禮)하나이다. 영소저 화관(花冠)을 기우리고 단순호치(丹脣皓齒) 현출(顯出)하여 왈, 이 다 현후(賢侯)의 은덕(恩德)이라. 승덕(勝德)이 산악(山嶽) 같거니와 여자 가부(家夫)의 은총(恩寵)입음이 사리에 옳을지라 어찌 도리어 아끼시나요? 시랑(侍郞)이 대소(大笑)하고 또한 남아(男兒) 아님을 슬퍼하더라.
 
50
서평후는 이런 쾌서(快婿)를 얻고 부부 양인의 애중(愛重)함이 수유불이(須臾不離)하니 크게 기뻐하고 가간사(家間事) 일을 어찌 알리오. 방시랑의 풍채와 물망을 흠복(欽服)하여 재취(再娶) 구하나 내역부절하니 시랑이 십분 괴로워 말 막고 왈, 소생(小生)이 고독일신(孤獨一身)이 변화에 뜻이 없으니 한 처자로 법을 지키고 종신(終身)하려 하나니 어찌 타염이 있으리잇고? 설파(說罷)에 기색이 상설(霜雪) 같으니 감히 재청(再請)치 못하더라.
 
51
차설(且說) 자고로 소인(小人)이 농권(弄權) 하는지라. 간신(奸臣)이 주(奏) 왈, 외방(外方) 인심(人心) 고이하고 형주 변향(邊鄕) 인심이 소요(騷擾)하여 난신적자(亂臣賊子) 되었사오니 마땅히 이부시랑(吏部侍郞) 방관주로 안대(按臺)를 삼아 인심을 진정하여이다. 상이 좇으사 방시랑을 형주 안찰사(按察使)를 배(陪)하시니 기한(期限)이 일년이라. 시랑이 할일없이 발행(發行)할새 어전(御前)에 하직(下直)하니 상이 사주(賜酒)하시고 떠남을 아끼시더라.
 
52
돌아와 부인으로 이별할 새 양인이 다 의희연연하여 시랑이 부인의 옥수(玉手)를 잡고 이르되, 그대를 만난 지 수삭(數朔)에 지기붕우(知己朋友) 되어 이별한즉 삼춘(三春) 같으니 금일 적연이희를 생각하니 심히 애연(哀然)한지라. 원컨대 현후는 기리 보중(保重)하여 제사를 정성으로 받듦을 바라노라. 부인이 답 왈, 첩이 이미 그대 처자되어 제사를 당부하심은 기다리지 아니하나이다.
 
53
연(然)이나 이별이 가장 괴로우니 관포(管鮑)의 지기(知己) 범연(泛然)치 않음을 금일이야 앎이로다. 시랑이 일어나며 연연(戀戀) 의희하여 이윽고 가연히 일어나며 웃고 가로대, 대장부 나라에 몸을 허함에 아녀자의 태를 하여 처자로 이별을 아끼리오. 길이 무양(無恙)하라.
 
54
설파(說罷)에 주유랑을 불러 보중(保重)하라 당부하니 주씨 눈물이 비 오듯 이별하니 시랑이 가로대, 어미 어찌려하나뇨? 필경은 내 먼저 죽으리니 그대는 어찌하리요? 유모 대경낙혼(大驚落魂) 왈, 낭군은 어느 참에 고이한 말을 하시는가? 설파에 가장 염려하여 시랑이 흔연(欣然)이 위로하고 술을 내와 오배(五杯)를 기우리고 떠날새, 부인을 재삼 돌아보고 잊지 못하는지라 가인이 다만 애중(愛重)하여 그런가 하더라.
 
55
행하여 형주에 이르러 공사(公事)를 선치(善治)하고, 수월지내(數月之內)에 교화대치(敎化大治)하여 풍속(風俗)이 극히 순후(淳厚)하고 밤에 문을 닫지 않고 남의 것을 사양하니 극히 위덕(威德)이 이루더라. 이렇듯 선치한 지 오십삭에 천자 들으시고 크게 기쁘사 아름다이 여기사 불러 쓰려 하시더니, 방안대 타향객지(他鄕客地)에 머무른 지 오랜지라 규리홍안(閨裏紅顔)에 외로움을 삼상(參商)하니, 용안(容顔)이 암암(暗闇)하여 근신지희 날로 더하더라.
 
 
56
방안대 낙성양휵 제삼회
 
57
어시(於是)에 방안대 임사(任事)를 선치(善治)하고 아중(衙中)에 일이 없고, 절세 바야흐로 바뀌이니 동원(東苑)에 꽃이 쇠(衰)하고 상운에 행화 빛나며 오동(梧桐)의 가을 빛이 인성 경치 두꺼운지라. 추종(追從)을 다 떨치고 미복(微服)으로 청포(靑袍)를 떨치고, 사건으로 한 쌍(雙) 소동(小童)으로 남초(南草)와 금현(琴絃)을 들이고, 근처 승경(勝景)을 볼새 점점 걸어 산협암상(山峽巖床)에 들어가니 정(正)히 계추(季秋) 초순(初旬)이라.
 
58
산중경개(山中景槪) 절승(絶勝)하여 국화(菊花) 성개(盛開)하고 단풍(丹楓)이 홍금장(紅衾帳)을 친 듯한대, 향풍(香風)은 울울(鬱鬱)하고 봉안이 중중하여, 옥암 절벽(絶壁)에 폭포(瀑布) 잔원(潺湲)하여 추수(秋水)에 향양(向陽)이 한가(閑暇)하니, 이에 암상(巖床)에 나가 현금(玄琴)을 어루만져 줄을 고르며, 남초를 붙이며 자로 노래하여 음영(吟詠)하니 소리 웅건청월(雄建淸越)하여 낭낭청아(朗朗淸雅)하니, 이 진실로 쇄옥낭성이라. 필묵(筆墨)을 내어 암상에 시(詩) 하나를 쓰니 기시(其詩) 왈,
 
 
59
추풍(秋風)이 소소혜(蕭蕭兮)여! [가을바람이 소슬함이여!]
60
차아여심(此我如心)이라.  [이 나의 마음과 같도다.]
61
생유원임혜(生有願臨兮)여. [살아 있음에 바램을 이룸이여.]
62
사후성명유(死後性命留)라. [죽은 후에 성명이 머물리로다.]
 
 
63
안대는 쓰기를 다함에 그 아래 제명(題名)하되 한림학사(翰林學士) 예부시랑 태학사 현명선생 방관주는 쓰노라 하였더라. 절필 한첩코자 하더니 문득 급한 벽력(霹靂)이 진동(震動)하고 일색(日色)을 불분(不分)하는지라. 동자(童子) 놀라 낯을 싸고 엎드린대 신색(身色)이 자약하여 날빛이 나기를 기다리더니 홀연 벽력(霹靂) 일성(一聲)에 큰 별이 떨어지니, 밝은 기운이 조요하여 서기가 어리었더니 수유(須臾)에 날빛이 명랑(明朗)하거늘, 안대 고쳐 보니 별의 광채 없고 옥같은 아이 놓였는지라 대경(大驚)하여 보니, 그 아이 난 지 수삭(數朔)은 하여 보이되, 미목(眉目)이 비범(非凡)하고 양목이 명경(明鏡) 같고 옥같은 용모(容貌) 일월정채(日月精彩) 어렸는지라. 안대 대희(大喜) 왈, 하늘이 나를 주심이라 이에 자세히 보니 영기발월(英氣潑越)하고 가슴에 낙성(落星) 두 자(字) 분명하니 크게 고히 여겨 데리고 부중(府中)에 들어와 유모를 구하여 기르니, 이 아이 일일(日日) 무성하여 더욱 고이 여기며 이름을 낙성(落星)이라 하다. 낙성 얻은 지 수십일에 경사(京師) 소식을 들으니 대장군(大將軍) 양덕이 죽었다 하는지라, 안대 깨닫고 차아(此兒)의 천문(天文)을 보니 과연 양군의 주성(主星)이 떨어졌는지라 더욱 고이하여, 자기 주성 문곡성을 보니 광채 찬란하여 맑은 빛이 천중에 조요(照耀)하여, 열성(列星)의 광채를 아셨는지라. 스스로 벼슬이 더 오를 줄 알더라.
 
64
절세밖 군인이 명년(明年) 춘(春)을 당하니 안대 부인을 참상(參想)하여 능히 참지 못하고 군상탑하(君上榻下)에 조현(朝見)코자 심회(心懷) 간절(懇切)하더니 상(上)이 그 정직함을 아름다이 여기사 작위(爵位)를 돋우사 병부상서 추밀사로 부르시니 안대 향안(香案)을 배설(排設)하여 사병을 듣잡고 북향사배(北向四拜) 길을 떠날새 낙성을 데리고 경도(京都)에 당하여 입조하니 상(上)이 반기사 은근이 문(問) 왈, 경(卿)이 소년으로 짐(朕)을 도와 삼년지내(三年之內)에 충성이 관인(貫一)할 뿐 아니라 형주 소요(騷擾)한 인심을 평정(平定)하기를 반석(磐石) 같이 하고 돌아오니, 경의 공이 범상치 아니한지라. 어찌 국가(國家)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아니리요. 드디어 사주(賜酒)하시니 상서(尙書) 받자와 사은(謝恩)하고 부복(俯伏) 주(奏) 왈, 신(臣)이 폐하의 승은을 입사와 척촌지공(尺寸之功)이 없삽더니, 행여 형주를 진심(鎭心)하와 촌공(寸功)이라 하시나, 더욱이 작위(爵位)는 신에게 나이 유충(幼沖)하옵고 너무 외람하온지라 거두심을 바라나이다. 상이 소(笑) 왈, 금조(今朝)에 중히 여기는 바, 경이 일인(一人)이라. 짐이 이 작녹을 더 사(賜)하지 않고 누구를 주리요. 경은 고집치 말라. 상서(尙書) 할일없어 사은(謝恩) 왈, 사주(賜酒)하신 향은(享恩)이 만신(滿身)을 구하니 퇴조(退朝)하나이다.
 
65
윤허(允許)하시니 본부(本府)에 돌아올새 길에서 서평후를 만나, 흔연(欣然)이 손을 잡고 영부에 나아가 방상서, 악모(岳母)와 모든 제남(弟男)을 대하여 별희를 펴고 이윽키 돌아오니, 부인이 반겨 서로 이희를 설화(說話)할새, 상서 흔연이 다소(多少) 설화하며 낙성의 연유(緣由)를 이르니, 부인이 또한 기특이 여기며 유모를 데려 기르니, 낙성이 점점 자라 상서 부부를 능히 야야(爺爺)라 부르고 모친을 지극히 따르니 양인이 사랑하여 후사(後嗣)를 의탁(依託)코자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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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공자 사오 세(歲) 되니 가위(可謂) 비범(非凡)하고, 현하(懸河) 같은 풍용(風容)과 관오(管玉) 같은 용모(容貌), 반악이며 이두지풍(李杜之風)이 있고, 양목(兩目)은 효성(曉星) 같고 이마는 강산(江山)의 맑은 정기를 걷우었으며, 단순호치(丹脣皓齒)는 공산지옥을 기부로 다듬으며 풍채 헌헌(軒軒)하여 모춘세류(暮春細柳)요, 골격(骨格)이 늠름초초(凜凜超超)하니 짐짓 만고인재(萬古人材)요 기자봉초라. 상서 애지중지(愛之重之)하고 연지석지하기 장중보옥(掌中寶玉)이요, 잠시를 떠나지 않고 낙성이 또한 효성이 천선으로 좇혔으니 육적의 회굴과 자로의 부미를 효칙(效則)하여, 비록 연유소아(年幼小兒)나 미명(未明)에 소세(掃洗)하고 종일토록 부모를 모셔 응대노숙(應待老熟)한 현인군자(賢人君子)같아, 더욱 사랑하여 글자를 가르치니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는 총명(聰明)을 가졌는지라. 글이 날로 장진(長進)하고 시법이 기이하여 복중(腹中)에 만권서(萬卷書)를 장(藏)하고 입에 일만진주(一萬眞珠)를 드리워 일취월장(日就月將)하니, 이백(李白)의 청평사와 자근의 칠보시를 묘시하니, 하늘이 유의(留意)하여 특별히 방상서 추상열심을 마침내 후사(後嗣) 매몰치 않게 하심이라. 상서와 부인이 어루만져 기출(己出)로 얻음 같더라. 가히 고왕금래(古往今來)에 드문 일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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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추(秋) 팔월은 상서의 탄일(誕日)이라. 이에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만조공경(滿朝公卿)과 황친국척(皇親國戚)을 청하며 즐길새, 천자(天子) 어악(御樂)을 주시고 상방어찬(上房御饌)을 주시니 가히 이런 승연(勝宴)이 천고(千古)에 드물더라. 방상서 내외의 금수사창(錦繡紗窓)이 반천백운(半天白雲)하고, 낙성을 보고 아니 기특히 여길 이 없어 상서의 친자(親子) 유복(有福)함을 하례(賀禮)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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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추밀사(左議樞密使) 김희는 대대(代代) 명신(名臣)이라. 슬하에 삼자일녀(三子一女)를 두었으니 여아 바야흐로 구세라. 용안이 탁월하여 요지천화(瑤池天花) 같고 옥계(玉階) 난초(蘭草) 같아 낙안지색(落雁之色)과 폐월수화지태(蔽月羞花之態)라. 방적수선(紡績修繕)이며 문장재화(文章才華) 무쌍(無雙)이라. 부모 과애(過愛)하더니 금일 방공자를 보니 여아와 동년(同年)이요 진실로 당대 영웅군자(英雄君子)라. 크게 흠모하여 이에 상서를 대하여 왈, 만생(晩生)이 선생(先生)께 청할 말씀이 있으니 가히 들으시리잇가? 상서 소(笑) 왈, 현형(賢兄)이 무슨 청을 복(僕)에게 보내고자 하시나이까? 듣기를 기다리나이다. 추밀(樞密)이 칭사(稱謝) 왈, 다른 말이 아니라 금일 영낭(令郎)의 준수통달(俊秀通達)함을 보니 외람(猥濫)이 데리고 온 딸로써 우러러 진진(晉秦)의 호연(好緣 )을 맺고자 하나니 가히 허(許)하시릿가? 상서 금소저를 어려서 보았는지라 쾌히 허하여 왈, 형(兄)의 옥녀(玉女)로서 소제(小弟)의 유자(幼子)로 허코자 하시니 어찌 사양하릿고. 다만 양아(兩兒) 다 어리니 수년(數年)을 지류(遲留)하여 혼례를 이루사이다. 추밀이 대희(大喜)하여 재삼칭사(再三稱謝)하고 인하여 황하지맹(黃河之盟)과 태산지약(泰山之約)을 두어 공자의 손을 잡고 흔흔(欣欣)이 웃으며 왈, 네 이제는 나의 애서(愛婿)라. 옹서(翁婿)로 칭(稱)하라 하고 필묵(筆墨)을 내와 글지음을 청하니, 공자 피석사례(避席謝禮)하고 옥수(玉手)에 산호필(珊瑚筆)을 잡아 경각(頃刻)에 칠언율시를 지어 쌍수(雙手)로 받들어 부친께 드리니 모두 그 신속함을 칭찬하더니, 그 글을 봄에 만좌제생(滿座諸生) 갈채(喝采)하여 탄복(歎服)하고, 추밀(樞密)은 흔희(欣喜)함을 이기지 못하니 상서 흔연(欣然)이 옥안(玉顔) 성모에 웃음을 띄어 제객(諸客)의 과찬(過讚)을 손사(遜辭)할 뿐이더라. 낙극지환(樂極至歡)하고 석양(夕陽)에 이름에 파연곡(罷宴曲)이 어지러히 울리니 중객(衆客)이 흩어지다.
 
69
상서 내당(內堂)에 들어오니 부인이 맞아 말씀할새 김가(金家) 혼사(婚事)를 말씀하니 부인 또한 기꺼워 하더니, 문득 주유랑이 나와 일념삼탄(一念三歎)하고 이르대 사사이 부인과 낭군은 즐기시니, 정히 기둥에 불이 붙는데 연작(燕雀)이 오히려 즐긴다 하더니 흡사(恰似)하도다. 만물초목(萬物草木) 금수(禽獸) 다 이름이 다 음양(陰陽)에 드는 게 떳떳하거늘, 낭군과 부인은 인륜(人倫)을 사절(謝絶)하시고 여광이 이십이 지나 계시거늘 두 소저 홍옥초순이 아깝고 위로 양위(兩位) 노야(老爺) 목주를 근심하나 이 장차 나중에 어찌되릿고? 더욱 부인은 침묵하시고 가지록 고하사 지금껏 실상(實狀)을 존당(尊堂)에 고(告)치 않으사 일양(一樣) 주표(朱標)를 감추어 스스로 무자(無子)한 체 하시니 어찌 고이치 않으릿고. 원컨대 양위 주인은 계교(計巧)를 생각하사 진짓 군자(君子)를 얻으사 황영(黃英)의 자매 같으심이 옳을까 하니니 첩이 누설코자 하나 낭군이 워낙 강렬하시니 발설(發說)이 어려워 지금 항인하나 어찌 애닯지 않으릿고. 소공자 오래지 않아 부인을 얻으려니와 우리 상공(相公)과 부인은 어느 시절에 인륜(人倫)을 차릴꼬.
 
70
언미필(言未畢)에 부인이 수려(秀麗)한 성모(聲貌)에 묵묵히 즐겨 아니하여 봉미를 그리고 정색(正色)이요 상서는 진목(瞋目) 질(叱) 왈, 노고(老姑) 어찌 궤론(詭論) 설화(說話)로 심흥(心興)을 감동케 하고 외인의 의심을 더하게 하느뇨. 만일 고이한 소문(所聞)이 있을진대 비록 젖먹여 품 속에 은양(恩養)한 은혜 있으나 절연(切然)이 용서치 않으리라. 설파(說罷)에 유미(柳眉)를 거스리고 노기(怒氣) 발연(勃然)하니 주씨 할 새 없어 물러나다.
 
71
부인이 나오며 냉소(冷笑) 왈, 문백형은 어찌 우연한 일에 유모를 질타(叱咤)하시나뇨? 유모 불과위주충심(不過爲主衷心)이라 또한 아름답지 아니냐? 상서 봉안을 흘려 영씨를 숙시(熟視) 왈, 부인이 여도(女道)를 알 때라. 어찌 가장(家長)의 자(字)를 부르나뇨? 내 오히려 묘주라 알았나니 부인의 일이 가히 옳으냐? 영부인이 낭낭(朗朗)이 웃더라.
 
72
상서 년(年) 기(旣) 이십사에 이르도록 수염(鬚髥)이 뵈지 아니하니, 시인(時人)이 다 아름답고 개절(凱切)함을 칭찬하고 능히 의심할 자는 없더라.
 
 
73
현명선생 자원출전(自願出戰) 제삼회
 
74
각설(却說) 정덕천자(貞德天子) 간관(諫官)을 괴로이 여기시고 간신(奸臣)을 사랑하사, 환관(宦官)이 농락하니 국도(國都) 위태하고 사방이 요란하여, 직신(直臣)은 분분(紛紛)이 전야(田野)에 돌아가니, 방상서 탄식함을 마지 않고, 또한 자주 상소(上疏)하여 물리치심을 주(奏)한데, 상(上)이 상서를 사랑하시나 마침내 뜻을 두르지 못하시니, 상서 할일 없어 한갓 부인으로 더불어 울울불락(鬱鬱不樂)하고, 유신(遺臣) 등이 농권(弄權)하니 천하위태(天下危殆)함이 조석(朝夕) 같더니, 문득 북방 오랑캐 반(叛)하여 강병수만(强兵數萬)을 거느려 대국을 침범하니 그 세(勢) 가장 두려운지라. 천자 근심하사 문무(文武) 중신(重臣)을 모으사 의논하실새, 하나도 말하는 자 없이 서서 관광(觀光)하는지라 홀연 한 명사 소년이 자포(紫袍)를 끌고 옥패 당당하여 풍채 양양하고 기상이 추천상월(秋天上月) 같더라. 이에 출반 주(奏) 왈, 적신(賊臣)의 화(禍)가 국가에 미쳤으니 안으로 간신이 있고 밖으로 반적(叛賊)이 있으니 신자(臣子) 마땅히 침식(寢食)이 편치 않을지라. 어찌 안연(晏然) 하리잇고. 미신(微臣)이 재조 없으나 원컨대 대병(大兵)을 허(許)하시면 북호(北胡)를 평정(平定)하고 사직(社稷)을 보호(保護)하여 폐하(陛下)의 성은(聖恩)을 갚사오리이다.
 
75
상(上)이 보시니 병부상서(兵部尙書) 방관주라. 회동안색(回同顔色)하사 염슬칭사(斂膝稱謝) 왈, 경(卿)은 당시(唐時) 급암이라. 짐(朕)이 어찌 공경치 아니하리오. 경이 만일 한번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여 호지(胡地)를 삭평(削平)코자 하니 이는 국가의 만행(萬幸)이요 만민(萬民)의 복(福)이니 짐의 근심이 없으리로다. 상서 사은(謝恩) 주(奏) 왈, 변보(邊報) 급하온지라 명일(明日)이라도 발행(發行)코자 하나이다. 상(上)이 더욱 기워하사 병부상서 방관주로 대원수 정북장군(大元帥征北將軍)을 하여 친히 금인(金印)을 채이시고 십만대병(十萬大兵)과 정장(精將) 백원(百員)을 주시니 원수(元帥) 청령사은(聽令謝恩)하고 궐문(闕門)에 나오니 삼공육경(三公六卿)이 모두 치하(致賀)하고 왈, 선생이 출사(出師)하시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원수 옥대(玉帶)를 어루만지며 내려서 답(答) 왈, 제공(諸公)의 믿어하시는 말을 들어니 학생(學生)의 국은(國恩)을 갚고자 자원출전(自願出戰)하오나 본대 용병지재(用兵之才) 없사오니 국병(國兵)을 욕될까 두려하나이다. 만조(滿朝) 일시에 응성(應聲)하여 재덕(才德)을 추앙(推仰)하더라.
 
76
부중(府中)에 돌아오니 영부인(令夫人)이 쌍봉관(雙鳳冠)을 빗기고 월나삼(月羅衫)과 홍금상(紅錦裳)을 끌고 옥패(玉佩)를 울려 전도에 상서를 맞음에 금인(金印)이 허리에 빗겼음을 보고 경문(驚問) 왈, 상공이 무슨 일로 대도독인(大都督印)을 찼는가? 상서 옥수(玉手)로 금인을 끌러놓고 홍금조복(紅錦朝服)을 보인으로 벗기며 완연(宛然) 소(笑) 왈, 대장부 입신천하(立身天下)하여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도움에 어찌 대장(大將)이 되지 못하리오. 석(昔)에 소진(蘇秦)이 빈한(貧寒)함에 아자어미와 아내 베틀에 내려 요동(搖動)치 않더니 후일(後日)에 육국(六國)에 장상(將相)하여는 아자어미와 아내 다 부복(俯伏)하였나니 부인이 날로 하여 문인소임(問印所任)을 할지언정 백만장졸(百萬將卒)을 호령하여 대장지재(大將之才) 없을까 여겼다가 이에 장군을 보고 고이 여기심이 심하도다. 내 북방(北方)을 치러 향하나니 호지(胡地)라. 사생(死生)이 이에 달렸나니 부인은 떠남이 괴로울까 하노라.
 
77
부인이 대경(大驚) 왈, 첩이 상공으로 결발(結髮)한 지 칠년(七年)에 오늘날 만리타국에 가심에 어찌 슬프지 않으릿고. 알지 못한 것이다. 능히 용병지재(用兵之才) 계시냐? 상서 답 왈, 그대 학생으로 극(極)한 지기(知己)로대 오히려 나를 모르는구나. 내 비록 한 자 칼을 쓰지 못하고 활시위를 당기지 않았으나 족히 염려치 않으리니 오로지 그대는 안심보호(安心保護)하라. 온화(溫和)를 이윽히 하고 술을 내와 십여배(十餘杯)를 기우리고 죽침(竹枕)에 비겨 쇄옥낭음(碎玉朗音)으로 이별시(離別詩)를 읽으니 부인이 화답(和答)하여 한 가지로 쓰니 기(其) 시에 이르대,
 
 
78
명외부부유(名外夫婦有)요,  밖으로 나타나는 이름은 부부이지만,
79
흉중현지기(胸中見知己)라.  마음으로는 뵈는 것은 지기로다.
80
금조석연별(今朝惜然別)이요, 오늘 아침 애석하게 이별하나니,
81
의현난신귀(疑見難信歸)라.  돌아옴을 기약키 어려움이 아닐까.
 
 
82
영부인(令夫人) 시에 왈,
 
83
진안북천비(塵雁北天飛)요,  변방의 기러기 북녘에 날고,
84
쌍연보가정(雙燕報佳情)이라. 쌍제비가 좋은 소식 전하도다.
85
현후위국충(賢侯爲國忠)하니, 사랑하는 이의 나라 위한 충성이거니,
86
이별천리거(離別千里去)로다. 이별이 천리인들 마다하랴.
 
 
87
쓰기를 마치고 상서와 부인이 감상(感傷)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어울려 밤을 지내고, 명일 장졸(將卒)이 북을 울리며 기(旗)를 세워 시각(時刻)을 고(告)하니, 상서 낙성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 시서(詩書)에 부지런히 함을 당부하니, 공자 체읍(涕泣) 배사(拜謝)하고 수명(受命)하더라. 이에 부인과 이별할새 추연함루(惆然含淚)하다가 기여이 하직(下直)하고,
 
88
궐하(闕下)에 이르러 천자께 하직하고 발행(發行)함을 고하니, 상이 가라사대, 경이 국가의 종요로운 신하(臣下)러니 이제 만리에 흉적(凶賊)을 임(臨)하니, 짐이 좌우수족(左右手足)을 잃은 듯하거니와 경은 쉽게 오랑캐를 평정(平定)하고 짐이 바라는 뜻을 잊지 말라. 상서 부복(俯伏)하고 왈, 신이 재주 표박(漂迫)하오니 어찌 성은(聖恩)을 다 갚사오리까. 바라건대 전하(殿下)는 안강(安康)하심을 바라나이다. 하직함에 상이 연연하사 상방검(上房劍)을 주시며 가라사대, 위령자(違令者)는 선참후계(先斬後戒)하라 하시니, 원수(元帥) 받자와 절월(節鉞)을 북(北)으로 회동(回動)할새, 그 위세(威勢) 엄숙하고 검극(劍戟)이 서리 같고 말은 맹호 같고 정기는 일광을 가리우니, 지나는 바에 추호도 불범(不犯)하니, 백성이 단사호장(簞食壺漿)으로 왕사(王師)를 맞더라.
 
89
행하여 호지(胡地)에 이르러 결진(結陣)하고 먼저 호주(胡主)에게 격서(檄書)를 전하니, 호왕(胡王)이 제신(諸臣)으로 보게 하였으대 대명 대원수병 부상서 태학사 정북장군(大明大元帥兵部尙書太學士征北將軍)은 글로서 먼저 호주에게 문죄(問罪)하나니, 위로 하늘이 있고 가운데 임금이 계시며, 아래로 땅이 있으니, 천자는 곧 하늘이요 제후는 백성이라. 하물며 임금이 신하의 부모라. 이제 너희 무리 대국(大國) 신하라 하며, 감히 천명(天命)을 거역하며 하늘을 항거(抗拒)하니, 이는 스스로 패망(敗亡)을 취함이라. 내 황명(皇命)을 받자와 특별히 무도(無道)한 오랑캐를 쓸어 버리고자 하나니 만일 항복한 즉 멸족지화(滅族之禍)를 면하려니와 불연즉(不然則) 용서치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90
호왕(胡王)이 대노(大怒)하여 이에 병(兵)을 몰아 청천(請戰)하니 호장(胡將)이 비록 많으나 어찌 방원수(方元帥)의 용병(用兵)을 당하리요. 호통 일합(一合)에 호군(胡軍)이 대패하여 주검이 뫼 같고 피 흘려 시내 되니, 원수 승전(勝戰)하여 각각 제장군(諸將軍)을 상급(賞給)하고 다시 파(破)할 계교를 상량(商量)하더라.
 
91
호왕이 패하여 군사(軍士)를 수습하니 겨우 천여 명 남았더라. 분울(憤鬱)함을 마지않더니 문득 한 신하(臣下) 대언(對言) 왈, 신이 마땅히 방원수를 잡아 천하를 얻어 대왕께 받치고 소장(小將) 등의 공을 밝히리이다. 호왕이 놀라 보니 승상(丞相) 야율다리라. 호왕이 문(問) 왈, 경의 계교 어디 있는가? 율다리 주(奏) 왈, 신이 소시(少時)에 한 벗이 있사와 기이(奇異)한 술법(術法)이 있는 고로, 익히 배웠사오니 이는 몸을 감추어 풍운(風雲)이 되어 사람을 해(害)하는 술법이라. 신이 금야(今夜)에 당당히 명진(明陣)에 나아가, 방관주를 죽이고 진(陣)을 파하여 대왕의 근심을 줄이리이다. 호왕이 대희하여 보검(寶劍)을 주니 율다리 변신(變身)하여 한 줄 흑기(黑氣)되어 명진(明陣)으로 행하였다.
 
92
차시(此時) 방원수 차야(此夜) 진중(陣中)에 고요이 명촉(明燭)을 돋우고 앉았더니, 소매 안으로 한 점괘(占卦)를 보니 불길(不吉)함에 놀라 창 밖에 나와 천문(天文)을 보니, 자기(自己) 진중(陣中)에 승전(勝戰)하는 상운(祥運)이 있고, 호진(胡陣)에는 살기등등(殺氣騰騰)한 중, 다만 자기 진중에 살기(殺氣) 한 줄기 쏘이니 가장 놀라 헤아리니 반드시 자객(刺客)이 오거늘 바로 장중(帳中)에 들어와 등촉(燈燭)을 물리치고 보검(寶劍)을 잡고 은신(隱身)하였더니, 삼경(三更)이 됨에 창 틈으로 좇아 한 줄 흑기(黑氣) 살기(殺氣)를 띠며 들어오거늘, 원수 평생(平生) 힘을 다하여 칼을 들어 그 흑기 한 말양미를 쳐 끊어버리니, 홀연 한 소리 지르고 거꾸러지는지라. 본즉 한 오랑캐라. 몸이 두 조각이 되었는지라 홍혈(紅血)이 방중(房中)에 가득 하였으니, 봉미를 찡그리고 급히 장졸(將卒)을 불러 주검을 치우라 하니 제장(諸將) 등이 원수의 효용(效用)하심을 탄복하더라.
 
93
율달의 머리를 기(旗)에 달고 싸움을 돋우니, 호왕이 율달의 죽음을 알고 대경낙담(大驚落膽) 상혼(喪魂)하여 묘계궁진(妙計窮盡)하더니, 문득 전하(殿下)의 한 미인이 애원통곡(哀怨痛哭) 왈, 신첩(臣妾)은 야율 승상(丞相)의 총첩(寵妾)이옵더니, 금일 지아비 원수(怨讐)를 갚고자 하나이다. 호왕이 보니 달녀(妲女) 눈물을 머금고 갑주(甲冑)를 갖추어 나는 듯이 말에 오르니 호왕이 일진(一陣)을 베풀어 대진(對陣)하고 싸움을 돋우니, 방원수 제장(諸將)을 지휘하여 문기 아래 나서니, 호주(胡主) 바라봄에 한 소년대장(少年大將)이 머리에 봉미투구(鳳尾兜具)를 쓰고, 몸에 황금쇄자갑에 홍금수전포(紅錦繡戰袍)를 껴입고, 허리에 양지 백옥대(白玉帶)를 둘렀으며 섬섬옥수(纖纖玉手)에 장창(長槍)을 잡고 천리마를 탔으니, 옥면영걸(玉面英傑)이요 개세영웅(蓋世英雄)이라. 풍채 추천상월(秋天上月) 같고 그 위세 당당(堂堂)하여 웅장쇄락(雄壯灑落)하고 유화침중(柔和沈重)하여 천신(天神)이 강림(降臨)하나 밟히지 못할 듯하나, 짐짓 분발(扮髮)은 하랑(下郞)이요, 소복(素服) 입은 반(半) 아기라. 바라보니 낙담상혼(落膽喪魂)하여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니 싸움의 의사 침혼하여 가로대, 승부(勝負)는 사람이 마음먹기에 있으니, 원컨대 진법(陣法)을 걸어 못 이길진대 머리를 두려워하면 항복하라.
 
94
원수(元帥) 소(笑) 왈, 오랑캐로 더불어 재주를 겨룸이 불가(不可)하나, 네 하고자 하니 시험하리라. 호왕이 납함(啦喊) 경북하며 군사를 지휘하여 일시에 진을 치니, 원수 냉소 왈, 이는 팔괘진(八卦陣)이니 치기 위우리라. 내 진(陣)을 치리니 보라 하고, 일시에 방포(放砲)하고 진을 칠새, 진법(陣法)이 기이하여 어디로 들 줄 날 줄 모르더라. 원수 왈, 이 진 이름을 아는가?
 
95
호왕이 이윽히 보다가 이르대 이는 천문주작진(天文朱雀陣)이니 어찌 모르릿고. 원수 소 왈, 네 이 진을 다 알소냐?
 
96
언필(言畢)에 호주의 뒤으로서 한 여장(女將)이 내달아 가로대, 오늘 방원수를 죽여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일시에 호왕으로 합세(合勢)하여 양진(兩陣)이 싸워 불분승부(不分勝負)러라. 원수 한 살로 달녀의 가슴을 마치니 한 소리 지르고 떨어져 죽으니, 호왕이 달녀 죽음을 보고 급히 말을 돌려 달아나려 할새, 모든 병졸(兵卒)이 납함(啦喊)하고 진을 둘러 호왕을 가두니 마침내 벗어나지 못하여 사로잡히니,
 
97
방원수 진을 파하고 장중(帳中)에 돌어와 호왕의 맨 것을 끌르고 가로대 승패(勝敗)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라. 왕이 오히려 마음으로 항복할 뜻이 없거든 다시 돌아가 승부를 다투고자 한다. 호주 고두사죄(叩頭謝罪) 왈, 원수! 한 목숨을 살리시면 마땅이 항표(降表)를 갖추어 항지(降志)를 이르리이다. 어찌 감히 뉘우치는 뜻이 없으릿고. 원수 흔연(欣然) 칭사(稱謝) 왈, 여차(如此)한 즉 어찌 아름답지 않으릿고. 성인(聖人)이 가라사대, 깨달음이 지극히 귀하다 하니 왕이 회과(悔過)한 즉 현자(賢者)로다 하고 놓여 보내니, 호왕이 감격하여 돌아가 항표를 올리니 말이 공순(恭順)하고 죄를 가득히 일컬었는지라. 원수 대희(大喜)하여 호왕을 관대(寬待)하고 병마(兵馬)를 두루할새, 호왕이 잔치하여 원수를 대접하고 백리(白里)에 나와 배송(陪送)하더라.
 
98
원수 기병(起兵) 팔삭(八朔)에 해 바뀌었는지라 경도(京都)에 돌아올 마음이 살 같아 하루 천리(千里)식 행하더라. 천자 이때 방원수 승첩(勝捷)하여 호국(胡國)을 평정하고 회군(回軍)하는 첩서(捷書)를 보시고 대희하사, 즉시 원수로 우승상강능후(右丞相江陵侯)를 하시고 겸 구석을 제(除)하시고, 사신(使臣)을 맞아 보내시니 어시(於是)에 군마(軍馬) 유하촌에 이르러 사신을 맞아 향안(香案)을 배설(排設)하고 조서(詔書)를 읽으니, 짐(朕)이 경(卿)이 승전(勝戰)하여 호지(胡地)를 평정하고 돌아오니 노공(勞功)이 호대(浩大)한지라. 특별히 적은 작록(爵祿)으로 정(情)을 표하나니, 오로지 과사(過謝)치 말고 빨리 와 짐을 반기게 하라.
 
99
원수 불승황공(不勝惶恐)하여 북향사은(北向謝恩)하고 이에 행자(行資)를 흩어 전일 고구친척(姑舅親戚)에게 나눠 주고 행하여 경사에 이르러 바로 천자께 조회(朝會)할새, 상(上)이 반기사 승상(丞相)의 손을 잡으시고 못내 반기시고 전지(戰地)의 근로(勤勞)한 공로를 재삼 칭찬하며 사주(賜酒)하시니, 승상이 외람(猥濫)하여 부복(俯伏) 주(奏) 왈, 호란(胡亂)을 평정하옴은 폐하의 홍복(洪福)과 사직(社稷)의 승덕(勝德)이오니, 제장(諸將)의 힘이나 신(臣)에게 무슨 공(功)이 있사오릿가. 더욱이 작위는 외람하온지라 신이 손복(損福)할까 황공송구(惶恐悚懼)하오니 성명(聖命)을 걷우심을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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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이 붙들어 평신(平身)하라 하시고 영씨로 진국부인(晉國婦人)을 봉하시고 부모를 강능후(江陵侯)로 추존하여 봉하시고, 그 부(父)는 좌승상평양후(左丞相平陽侯)를 봉하시고 그 모(母) 보씨로 한국부인(漢國婦人)을 봉하시니, 승상이 감루(感淚)를 드리워 체읍사은(涕泣謝恩)하고 감히 사양치 못하고 또한 부모를 추존(追尊)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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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퇴조(退朝)하여 부중(府中)에 들어오니, 상하(上下)의 환성(歡聲)이 춘풍(春風) 같고 낙성공자 맞아 나와 재배(再拜)함에 승상이 연망이 손을 잡고 기꺼하며, 인하여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모 가묘(家廟)에 배현(拜見)하니, 속절없이 영령(英靈)이나 반기고 슬프거늘 이렇듯한 형화(熒華)를 고할 곳이 없고, 부모를 일찍 영별(永別)함에 성인(成人)함에 친효(親孝)를 이르지 못하고 영영한 증직(贈職) 뿐이니, 촉처(觸處)의 슬픔이 고집하여 누수(漏水)가 광수(廣袖)를 적시더라.
 
102
부인으로 더불어 반김이 측량(測量)없더니, 문득 서평후 이르러 승전(勝戰)한 치하(致賀)와 공렬(功烈)이 호대(浩大)함을 흔흔치하(欣欣致賀)함이 비할 곳이 없고, 여아(女兒)와 서랑(壻郞)을 보니 대인체격(大人體格)이라. 여아는 몸에 홍금적의(紅錦赤衣)를 입고 다섯 줄 명패와 일곱 줄 면줄을 드리워 왕후의 복색이요, 승상은 구룡통천관(九龍通天冠)과 아홉 줄 면줄로 풍채 더욱 신이하니, 쾌(快)함을 이기지 못하여 흔흔(欣欣) 소(笑) 왈, 너희 부부 만사여의(萬事如意)하나 홀로 자녀(子女) 선선치 못하니, 어찌 흠사(欠事) 아니리오. 부인이 나직이 고(告) 왈, 오복(五福)이 구존(具存)하기 쉽지 못하오니, 또한 계승(繼承)할 아이 있사오니 어찌 흠사 있사오리까? 승상은 함소(含笑)하고 영후는 두굳길 뿐일러라.
 
103
각설(却說) 김추밀(金樞密)이 여아 십이세 됨에 혼사(婚事)를 이루고자 하여, 택일하여 보내니 중추(仲秋) 염후(念後)라. 이때 낙성의 아니 연(年)이 십이세라. 신장이 늠름하고 풍채 준수하여 수중비룡(水中飛龍)이라. 부모의 귀중함이 비길 곳이 없고 재명(才名)이 자자(藉藉)하더라. 승상과 부인이 자부(子婦)를 수이 보고자 하여 고대(苦待)하더니, 길일(吉日)이 임(臨)함에 좌우빈객(左右賓客)이 구름같이 모이고 주반(酒盤)이 낭자(狼藉)하더라.
 
104
방공자 길복(吉服)을 정히 하고 백마금안(白馬金鞍)에 추종위의(騶從威儀) 백리(白里)에 뻗쳤고, 색소고악이 흔천하여 김부(金府)에 이르러 주안(酒案)을 맞고 신부 상교를 재촉하니 추밀(樞密)이 흔희(欣喜)하여 손을 잡고 왈, 너는 나의 애서(愛婿)라. 노부모 무슨 복으로 이런 영웅을 얻어 슬하에 재미를 삼는가? 최장시는 떳떳한 시흥(詩興)이라. 현서(賢壻)는 사양치 말고 지으라. 방생이 희미(稀微)이 웃고 붓을 들어 화전(華箋)에 휘필(揮筆)하니 빠르기 풍운(風雲) 같아 필하(筆下)에 철사(鐵絲)를 드린 듯 일각(一刻)에 지어 추밀께 보내니 김공이 보건대 이두(李杜)의 재주에 조자건(曺子健)의 신속함이 있는지라. 좌중에 자랑하니 제객(諸客)이 치하분분(致賀紛紛)하더라.
 
105
김소저 정(庭)에 들새 추밀이 경계(警戒) 왈, 군자(君子)를 경대(敬待)하고 구고(舅姑)를 지효(至孝)로 섬기고 숙흥야매(夙興夜寐)하여 석일숙녀(昔日淑女)를 효칙(效則)하라 하고, 모친이 띠를 띠며 수건을 매여 경계 왈, 여아는 숙야(夙夜)에 부지런하여 온순비약하여 군자를 예(禮)로 섬기며 부모형제를 잊지 말라 당부하니, 소저 수명(受命)하고 교자(轎子)에 오리니, 방공자 순금쇄악으로 정문(庭門)을 잡그고 호송하여 돌아오니 등화추종(燈火騶從)이 햇빛을 가리더라.
 
106
부중(府中)에 돌아와 해월각(海月閣) 대청(大廳)에서 포진(布陣)하고 양신인(兩新人)이 용문화석(龍紋花席)에 올라 교배(交拜)할 새, 구고(舅姑)와 좌우(左右) 보건대, 안석(案席)은 부용(芙蓉) 같고 옥빈홍안(玉鬢紅顔)이 기기묘묘(奇奇妙妙)하여 유한정정(幽閑靜貞)한 태도, 이루 응적지 못할 것이요, 낙성의 관옥(冠玉) 같은 용화(容華)와 늠름호상(凜凜豪爽)한 풍채, 짐짓 삼생가연(三生佳緣)이요 일대 호구(好逑)라.
 
107
부부 쌍쌍으로 교배(交拜)를 맞고 구고(舅姑)께 폐백(幣帛)을 진헌(進獻)할새 걸음은 향운(香雲)이 일어나는 듯하니, 구고 대희(大喜) 과상(過賞)하여 매우(眉宇)에 희색(喜色)이 만만(滿滿)하고 좌우 친척 책책(嘖嘖) 치하(致賀)하더라.
 
108
신부 숙소를 부용각(芙蓉閣)에 정하니 신부 단장을 벗고 화병(花屛)에 의지하였더니, 방생이 부명(父命)으로 신방(新房)에 나아가니, 신부 천연(天然)이 몸을 일어 좌하고 수습(收拾)하는 태도 어욱 어리롭고 쇄락(灑落)하니 성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원앙(鴛鴦)이 녹수(綠水)를 만남 같더라.
 
109
김(金)이 인하여 구고(舅姑)를 지효(至孝)로 섬기고 가부(家夫)를 예(禮)로 대접하니 승상과 부인이 과애(過愛)하고 생이 중대하더라. 차후 승상이 조당(朝堂)에 일 곧 없으면, 해월각에서 자부(子婦)를 앞에 앉히고 지극 사랑하며 자(子)가 부인으로 더불어 시사(詩詞)를 창화(唱和)하며 흑백(黑白)을 다투어 미진(未盡)한 심사(心思) 없더라.
 
110
이 해 진(盡)하고 명춘(明春)에 천자(天子) 과장(科場)을 설치하실새, 방생이 과장에 나가 응천규목하여 갑과(甲科)에 뽑히니, 즉일 창방(唱榜)에 어화청삼(御花靑衫)으로 부붕에 들어와 부모께 뵈오니, 모부인이 옥수를 잡고 흔연(欣然) 왈, 너의 부친이 십이세에 장원을 하시더니 너 또한 십삼 해자(孩子)로 계화(桂花)를 꺾으니 선조적덕(先祖積德)인가 하노라.
 
111
승상이 기쁨과 두굳겨 인(因)하여 대연(大宴)을 진설(陳設)하여 경하(慶賀)하니라. 천자 방장원을 돋우어 도어사(都御使)를 삼으시고 김소저를 봉관화리를 주시니 일가의 영광이 혁혁(爀爀)하더라.
 
112
방어사 직사(職事)를 다스림에 청렴정직(淸廉正直)함이 그 부(父)로 상하(上下)치 않으니, 상(上)이 사랑하사 칭찬 왈, 방낙성은 옥당(玉堂) 제일 명사 되어 충절(忠節)과 재명(才名)이 아비께 나리지 않으니, 그 훈자(薰炙)함을 더욱 기특이 여기더라. 매양 승상을 부르사 사주(賜酒)하시더라. 광음(光陰)이 신속하여 두어 해 지나니 김소저 생자(生子)하니 일개 옥동(玉童)이라. 승상과 부인이 사랑함이 장중보옥(掌中寶玉)이며, 어사 더욱 김씨를 중대(重大)하고 유자(幼子)를 총애하여 명(名)을 현이라 하고 자(字)를 방백이라 하다.
 
113
일일(一日)은 승상이 조회(朝會)를 파(罷)하고 고요히 상(上)을 모셨더니 제(帝) 가라사대, 짐(朕)이 경(卿)의 문필(文筆)을 사랑하나니 매양 받아 병풍(屛風)을 만들어 침전(寢殿)에 치고자 하되, 번요(煩擾)하기로 못하였나니 금일은 조용하니 글을 지어 금자로써 들이라 하시니, 승상이 주(奏) 왈, 마땅히 아름다운 필획(筆劃)과 기특한 재주를 얻어 폐하의 침전에 두고 보실지라. 어찌 신(臣)의 추필(醜筆)을 작시(作示)하릿가. 수연(雖然)이나 하교여차(下敎如此)하니 한 번 추(醜)한 재조로 천안(天眼)의 웃음을 돕사오리이다.
 
114
상(上)이 대희하사 좌우(左右)로 백송필묵(白松筆墨)과 용미연(龍尾硯)에 봉미필(鳳尾筆)을 주시니, 승상이 깁을 펴고 입각에 내리쓸 새, 상이 그 재주를 신이(神異)하사 전혀 생각지 않고 글제의 어려움을 염려 않고 신속함을 탄복하시더니 최후의 글자로 신필(伸筆)하여 받들어 어탑(御榻)에 올리니, 상이 더욱 기특이 여기사 받아 보시니, 필획이 정공(精工)하고 자체(字體) 쇄락(灑落)하여 광채조요(光彩照耀)하며 말씀이 지극한 정론(正論)이라. 어람(御覽)을 마치신 후, 탄지칭선(嘆之稱善) 왈, 경의 문장필법(文章筆法)을 알았거니와 이토록 기이(奇異)함과 아름다운 문장을 얻어 금자(金字)로 쓰이고자 함이 오래이나, 득(得)치 못하였더니 금일이야 소원을 이루도다. 무엇으로 공을 표(表)하리오?
 
115
승상이 정색(正色) 주(奏) 왈, 신의 용렬한 재주와 폐하 과장(誇張)하오시니 불승참괴(不勝慙愧) 송률(悚慄)하온지라. 어찌 공이라 하시릿고. 신의 원(願)이 아니로소이다. 상(上)이 웃으시고 오건어필(御筆)로 쓰신 책 두권과 황성직 일쌍(一雙)과 통천칠보관(通天七寶冠)을 사급(賜給)하시니 승상이 고두사은(叩頭謝恩)하고 물러나왔다.
 
116
즉시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금자병풍(金字屛風)을 만들어 침전(寢殿)에 치시고 그 재화(才華)를 시시(時時)로 칭찬하시더라.
 
117
승상이 본부(本府)로 돌아와 부인을 대하여 연중설화(筵中說話)를 이르고, 서징(書徵)과 책은 어사를 불러 주고 왈, 내 임금께 얻은 바를 네게 전하노라. 어사 대희하여 쌍수(雙手)로 받아 공경하여 물러났다. 통천관(通天冠)은 자기가 쓰거늘 부인이 냉소(冷笑) 왈, 군자 상급(賞給) 받는 것을 아자(我子)와 그대는 가지되, 첩에게는 미치지 아니하니 어찌하리오? 승상이 소(笑) 왈, 이것은 다 부인에게 당치 아니한 바라. 가이 부인을 주지 않거니와 시방 부인 몸 위에 가진 것이 다 내게서 비롯한 바라. 흡족하거날 투정하시니 욕심이 지중(至重)하도다. 부인이 잠소(潛笑) 왈, 나의 당치 아닌 바 그대께 홀로 당할 바 있으리오. 마침내 저리 쾌한 체 하시나요? 승상이 웃던 미우(眉宇) 찡그리고 흥미사연(興味事緣)하여 왈, 부인은 들먹이지 말라. 시인(時人)이 날로써 환자(宦者)라 할지언정 궁곡히 의심치 않더이다. 부인이 잠소하더라.
 
118
이 때 방어사 물망(物望)이 올라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조야(朝野)를 경동(驚動)하고 상총(上寵)이 날로 더하시니 뉘 아니 추앙(推仰)하리오. 승상이 병부를 경계(警戒) 왈, 네 불과 십칠 소아로 벼슬이 일품(一品)에 올라 육경(六卿)에 이르니 조물이 두려운지라. 고언(古言)에 왈, 그릇이 차면 넘치고 달이 뚜렷하면 줄어진다 하니 이 떳떳한지라. 무릇 사람이 당한 후는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나니 내 아희는 오로지 수심경공(守心敬恭)하여 겁박하기를 힘쓰고 충성을 가다듬어, 우리 선조의 명풍(名風)을 욕되게 하지 말라. 병부 수명(受命)하여 명(命)을 받자온 후 더욱 조심하여 충효 날로 더하더라.
 
119
승상이 일일(一日)은 외헌(外軒)에서 조용히 앉았더니, 홀연 앞에서 일인(一人)의 갈건학창의(葛巾鶴氅衣)로 죽장(竹杖)을 짚고 섰으니 기골이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승상이 경양(敬讓)하여 아무 곳으로 날 줄 몰라 망급(忙急)히 의관을 정히 하고 맞아 왈, 대객(大客)이 누처(陋處)에 임(臨)하신대 복(僕)이 망연(茫然)이 앉아, 예를 폐(廢)하여 오래 서 계시게 하여 불민침괴(不敏沈愧)로소이다. 당(堂)에 오르심을 청하나이다. 그 사람이 흠신(欠伸) 답(答) 왈, 비인(鄙人)은 현상도사로서 잠깐 적은 술법(術法)이 있어 상(相) 보기를 하더니 잠깐 이르렀시나 어찌 귀인(貴人)이 맞기를 뜻하릿고.
 
120
승상이 흔연(欣然) 소(笑) 왈, 도인(道人)이 신이(神異)한 재주 있는가 하니 내 얼굴을 보소서. 도사 침음(沈吟) 답(答) 왈, 군(君)의 이미 달 같아 넓고 눈썹이 팔자(八字)로 높고 맑으니 비록 재주로우나, 조상부모(早喪父母)할 것이오, 코가 살찌고 두 귀뺨이 희미한 도화(桃花) 같으니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만인기상(萬人氣像)이오, 양목이 가늘고 길며 흐르는 듯 비췸을 결 같으시니 재주롭고 지극 귀하시나, 입술이 단사(丹砂)를 찍은 듯하여 얇으니 구변(口辯)은 소진(蘇秦) 같으며 호치백옥(皓齒白玉) 같으니, 짐짓 경국(傾國)할 상(相)이로되, 진미(眞美)하기로 도리여 금슬(琴瑟)의 낙이 그치고, 이마에 한 점 사마귀 있고 그 모습이 청수(淸秀)하여 자녀 없을 상이오, 골격(骨格)이 소아하여 진속태(塵俗態) 없으니 수(壽)는 사십을 못할 것이오니, 반드시 오래지 아니하여서 천궁(天宮)에 조회(朝會)하리이다. 이미 소견대로 고하였는지라 당돌함을 용서하소서. 말을 마치며 일진청풍(一陣淸風)이 되어 간 곳 없고 다만 화선(畵扇) 하나 내려졌더라.
 
121
집어 본 즉 도사의 글이라. 그 글에 왈, 음양(陰陽)을 변하여 임군과 사해(四海)를 속임에 그 벌이 없지 않으리로다. 천궁(天宮)에서 호색(好色)하기를 방자(放恣)이 하니 차생(此生)에 금슬지락(琴瑟之樂)을 그쳤으니 스스로 죄를 아는가? 그릇이 차면 넘치고 영화(榮華) 극(極)하면 슬픔이 오나니, 옥제(玉帝) 옛 신하(臣下)를 보시고자 하시는도다. 원컨대 공은 명년 삼월 초 사일 만나게 하라 하였더라.
 
122
승상이 보고 앙천탄식(仰天歎息) 왈, 내 일개 아녀자(兒女子)로 행세 이미 오랜지라 어찌 천벌이 없으리로! 태극비희라. 한 번 돌아가 상제(上帝)께 조회(朝會)하고 부모를 만남이 원아니, 다만 부인이 나로 하여금 인륜(人倫)을 알지 못하고 공연(空然)히 춘광(春光)을 헛되이 마치니, 가련하나 저의 천절하여 부부의 도를 괴로워 하는 사람이라. 서로 기대하여 유관장에 한날 죽지 않음을 낫게 여기더니, 이제 내 죽으면 그 누를 의지하리오. 가련차석(可憐嗟惜)이라. 안석(案席)에 의지하여 천애(天涯)를 바라보며 상량(商量)함에 남아(男兒) 못됨을 느끼더라.
 
123
초추(初秋) 팔월에 김소저 또 생자(生子)하니 아름답기 옥 같아서, 현으로 다름이 없으니 승상과 부인이 대희하여 하더라.
 
124
석희(惜噫)라. 이 해 진(盡)하고 명춘(明春)이라. 방승상이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삼일(三日)을 만조붕관(滿朝朋官)과 고구친척(姑舅親戚)을 모아 즐길새, 승상이 다시 이같은 경연(慶宴)을 보지 못할 줄 서러이 여겨, 옥배(玉杯)를 잡아 추연(惆然)히 비가(悲歌)를 음영(吟詠)함에, 옥성(玉聲)이 청아신속(淸雅迅速)하고 낭낭쇄연(朗朗灑然)하여, 가는 구름을 멈추고 봉황(鳳凰)이 대무(對舞)하는 듯, 관광자(觀光者) 자연(自然) 강개초창(慷慨怊悵)하여 수탄(愁嘆)하더라.
 
125
승상이 안색을 고치고 함루불이(含淚不已)하니 제인(諸人)이 놀라 왈, 명공(名公)은 바야흐로 청춘이시라 어찌 불길한 시를 음영하사 창화(唱和)하시나이까? 승상이 추연 답 왈, 학생이 본대 기질이 약하고 질병(疾病)이 있어 인간(人間)이 오래지 않을지라. 비록 청춘이나 생각건대 다시 이같이 즐기지 못할지라. 자연 비회(悲懷)로 가사(歌詞)를 지어 제공(諸公)에 염려를 이룸이라.
 
126
인하여 주반(酒盤)을 물리치고 안석(案席)에 의지하여 개연초창(慨然怊悵)하여 봉안에 누수(漏水) 소매를 적시니 제인(諸人)이 가장 불길(不吉)이 여겨 다만 위로하고 병부는 안색을 화이하여 관희(款喜)하심을 지극 간(諫)하니 승상이 탄식하고 병부의 손을 잡고 비회(悲懷)를 이기지 못하는지라 만당빈객(滿堂賓客)이 다 차석(嗟惜)하여 흩어졌다. 차야(此夜)에 병부를 데리고 내당에 들어와 부인과 말씀할새 혹탄(或嘆) 희어(戱語)하여 즐기지 아니하니, 자부(子婦) 더욱 송연우고(悚然又苦)하고, 영부인이 그 세상이 오래지 않을 줄 알고 길이 탄식 왈, 우리 두 사람이 사십년을 영화로 지내었으니 태극비회는 떳떳한지라. 오직 결단하나니, 우리 양인이 생사(生死)에 서로 따르리라. 승상이 희허(戱噓) 왈, 비록 지기(知己)의 정이 두꺼우나 부인이 어찌 생사에 따르릿가? 병부 나아가 고(告) 왈, 어찌 야야(爺爺)와 태태는 밖으로 상강(湘江)의 이름이 있고, 안으로 관포(管鮑)의 지음(知音)이 계시니, 한 가지로 백년을 기약하실지라. 어찌 불길하신 말씀을 하시니까? 양인(兩人)이 그 근심함을 보고 도리어 관심(寬心)하여 위로하더라.
 
127
이달부터 식음(食飮)에 맛이 없고 용모(容貌) 수척(瘦瘠)하여 장차 상석(床席)에 일어나지 못하니 영부인과 자부 망극(罔極)하여 천명만 기다리더니, 일야 비몽간(非夢間)에 그 선친을 만나니 가로대, 네 일개 소녀로 이같이 영귀(榮貴)하니 또한 천명이여니와, 좋은 일이 오래 아니하니 네 수골(壽骨)이 아니라. 이 병에 일어나지 못하리니 어찌 하릿고! 승상이 묻고자 하더니, 우(又) 왈, 오래지 않아 만날지니, 내 바삐 가노라 하고 조조(躁躁)히 나아가니, 승상이 깨어 몽사분명(夢事分明)하고 부모를 만나 일언(一言)을 펴지 못하고 훌훌이 떠나니 탄식하고, 부인에게 이르고 슬퍼하니 부인이 간담(肝膽)이 다 녹는 듯 감익(感匿)하여 위로하더라.
 
128
차후 병세 극중(極重)하니 병부 내외 망극하여 천지(天地)께 빌어 생도(生道)를 바라고, 천자(天子) 어의(御醫)로 간병(看病)하시고 약탕(藥湯)을 친히 달여 보내고 우려(憂慮)하시나, 일호(一毫)도 차도(差度) 없으니 상(上)이 아끼고 슬퍼하사, 다시 보지 못할까 애연(哀然)하사 친히 승상부(丞相府)에 이르시니, 승상 명신(命身)을 움직여 조복(朝服)을 몸 위에 덮고 어가(御駕)를 맞으니, 상이 용모를 보시니 수척하고 엄엄(奄奄)하여 수일(數日)을 지탱치 못할 듯하니, 용안(龍顔)이 참연(慘然) 경동(警動)하사, 감루(感淚)를 내리시고 손을 잡고 슬퍼하사 어음(御音)을 통(通)치 못하더라.
 
129
승상이 병부를 붙들고 일어나 사은(謝恩)하고, 또한 자기(自己) 본사(本事)를 사후(死後) 누설한 즉 군상(君上)을 속임이 예(禮) 아니라 주의를 정하고 병신강작(病身强作)하고 주(奏) 왈, 신이 오늘 용안(龍顔)을 마지막으로 뵈오니 소회(所懷)를 진달(盡達)하리니 승상은 사죄를 용서하소서. 상이 가라사대 경이 무슨 소회 있는가?
 
130
승상이 귀 밑에 옥루(玉淚) 망망(茫茫)하여 오열진달(嗚咽盡達) 왈, 신(臣)은 본디 여자라. 부모 일찍 죽삽고 어린 소견(所見)에 부모 사후(死後) 매몰함을 서러워 십이세에 전하(殿下) 인재를 뽑음을 듣고 구경코자 나갔다가 폐하의 승은(承恩)을 입사와 오늘까지 이르나, 본적(本籍)을 차마 주알(奏謁)치 못하옵고, 또 영공의 핍박함을 입사와 부득한 연고 있삽고, 영녀 또한 처음에 신을 알아봄이 있으되, 성품이 고이하와 발언(發言)치 않고, 한낱 지기(知己)되어 외인의 시비를 속인 지 오랜지라. 오늘날 앙화(殃禍)를 입어 황천에 가오니 소회를 진달(盡達)하옵나니, 낙성은 신의 생자(生子) 아니라 천(天)의 정하신 배요, 신이 양휵하온 바니, 죽기에 이르러 마침내 폐하를 기만(欺瞞)치 못하와 실상을 고하옵고, 또한 신이 규중 여자로 몸을 현현(顯現)이 가져 예법을 흩었는지라 감히 비상주표(臂上朱標)로써 뵈옵고 기망한 죄를 청하나이다.
 
131
언파(言罷)에 광수(廣袖)를 밀고 옥비(玉臂)의 주표를 내어 어람(御覽)하시기를 바랄새, 상(上)이 차일 천만 의외의 거짓 정을 들으시고 대경대의(大驚大疑)하시되, 크게 칭찬 왈, 금일 경의 본사를 들으니 놀랍고 기특하도다. 현자(賢者)며 기자(奇者)라 규중 여자의 지혜 이같으리오? 규리약신(閨裏弱身)이 지용(智勇)이 강장하여 적진을 대함에 신출귀몰하여 전필승공(戰必勝功)할 줄 알리오? 짐이 경의 체용(體容)이 미진한 데 없으되 오직 신장이 제신(諸臣) 중 적고 수염이 없음을 고히 여기나, 망연이 깨닫지 못하여 경의 인륜(人倫)을 온전이 못하니, 이는 짐의 혼암불명(昏闇不明)이라. 백 번 뉘우치고 천 번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경의 절행(節行)은 주표 아니 보나 어찌 모르리오 하시고, 기어코 이상 기특하심을 마지 않으사 재삼 위로하시더라. 승상이 근시(近是) 십 칠년 종근입조하여 남장으로 다니고 태학사 문현각 입번하여 실적 동관자(同官者) 허다 하나 그 주표를 보이지 아니하였음을 희한이 여기시며, 영씨의 고절청덕(高節淸德)과 지인지감(知人之鑑)을 열협(烈俠)이라 항복하시고, 시위 제신이 아니 놀라고 아끼며 희귀이 아니 여길 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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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이 머리를 두드려 청죄(請罪) 왈, 소신이 폐하를 기망한 죄 수사난측(雖死難測)이라. 다스리심을 바라나이다. 상(上)이 위로 왈, 경은 만고 영웅이요 열녀정부(烈女貞婦)라. 세상에 짝이 없으리니, 어찌 죄라 하리오. 재삼 관위(寬慰)하시니 승상이 이에 대승상 광록후 인(印)을 받들어 올리니, 상(上) 왈, 가치 않다. 경의 공덕이 호대(浩大)하고 또 몸은 적인치 않아 비록 여자나 처신은 일양 남자로 하였으니 어찌 벼슬을 거두리오! 경이 회춘(回春)한 후 처치하리니 경은 실섭(失攝)할까 두려워하나니 침소에 들라. 재삼 당부하시고 그 재화와 충절을 차마 잊미 못하사 감탄하시고 용루(龍淚)를 내리시니, 승상이 길이 하직 왈, 소신이 회춘치 못하리니 군상(君上)을 금일 영결(永訣)이라. 용안을 다시 뵈옵지 못하고 지하로 갈지라. 복원(伏願) 성상(聖上)은 천추안락(千秋安樂)하소서. 돌아가는 신으로 상회(傷懷)치 말으소서. 언종(言終)에 안수여류(眼水如流)하여 금포(錦袍)에 젖더라. 상(上)이 척연감읍(惕然感泣)하사 재삼 관위하시고 환궁하였다.
 
133
승상이 필묵(筆墨)을 구하여 명정(銘旌)을 친히 쓰고, 향탕(香湯)을 재촉하여 목욕하며 새 의복을 정히 하고, 영부인과 아자 부부를 대하여 영결할새, 영씨 눈물이 하수(河水)를 보탤러라. 승상이 길이 탄식하고 오언일수(五言一首)를 지어 주어 왈, 희희(噫噫)라. 부인이 받아 보고 화답하여 슬퍼하더라.
 
134
서평후 이 날에야 여서(女婿)의 진가를 알고 대경상혼하여, 여아 팔을 빼어 보니 옥비(玉臂) 위에 앵도 일매 완연하여 의의이 붉은 빛이 감(減)치 않았시니 탄식 왈, 승상을 몰라봄이 다 노부의 소활(疎闊)함이니 여부(女父)의 탓이려니와 네 행사 인정 밖이라. 지금까지 부모를 속이니 가(可)치 않은가. 부인이 추연 고 왈, 해아(孩兒) 한갓 승상을 위할 뿐 아니라 부질없이 부모 놀라실까 함이러니 야야(爺爺)의 말씀을 듣자오니 욕사무지(欲死無地 )로소이다. 서평후 애탄불이(哀歎不已)하더라.
 
135
승상이 병부와 김소저를 가 오라 하여 경계하고 영결하니, 병부와 김소저 망극함을 진정치 못하더라. 날이 기우도록 영부인과 영결하는 언사 자약간절하더라.
 
136
차희(嗟噫)라. 이윽고 기운이 거슬러 명이 진(盡)하니 향년(享年)이 삼십구세라. 상하에 곡성이 창천하고 영부인이 자(自)로 기절하니, 영공이 붙들어 구하나 기운이 진(盡)하고 호흡이 천촉(喘促)하여 명이 진(盡)하니, 석희(惜噫)라. 또한 천명으로 돌아가 천상에 가 양인이 쾌히 즐기도다.
 
137
서평후 부부 간장이 다 스러지고 오뇌 촌촌한지라. 영공이 그 신체를 어루만져 백수에 눈물이 젖어 왈, 너의 재용화태(才容華態) 성덕이 가히 아깝도다.
 
138
차희라. 영씨 또한 명이 진하니 어찌 불상치 아니하리오. 천자(天子) 상국(相國)의 별세함을 들으시고 애통차탄(哀痛嗟歎)하시며, 사일(四日)을 육즙(肉汁)을 물리치시고 관곽집물(棺槨什物)을 다 국례(國禮)로 하시고 초종범구(初終凡具)를 다 남장(男裝)으로 하라 하시니, 그 일월 같은 충절과 관옥 같은 용화를 생각하심에, 보배를 잃으며 수족을 버힌 듯하사 침좌(寢坐)간에 잊을 새 없어, 금자병풍(金字屛風)을 보신즉 용루(龍淚) 어의(御衣)를 적시니 그 관인지풍(寬仁之風)과 무쌍한 상총(上寵)을 알러라.
 
139
차시 병부와 김씨 비록 천생 부모 아니나 은양(恩養)함이 깊어 두꺼운 정이 흡흡한지라. 육가지통을 연하여 맞나니, 피발(被髮) 곡용하며 애훼골입(哀毁骨入)하여 집례(執禮)가 예(禮)에 넘더라.
 
140
일월이 여류(如流)하여 장일(葬日)이 임박하니 신중을 이룰새, 위의 수백여리에 뻗쳤고 붉은 명정과 흰 만사(輓詞)는 노중(路中)에 흔들이거늘, 상하의 곡성이 천지를 움직이니, 수운(愁雲)이 참담하여 백일(白日)을 희미하더라. 농소를 맞고 속절없이 반혼하여 돌아오니, 영부인과 사생지기로 동혈띠끌이 미열가화(未悅佳話)요 천고기사(千古奇事)라. 병부 내외 서러워 부모의 자취 깊음을 조석읍혈(朝夕泣血) 삼년 집상(執喪)에 한번도 가벼이 욺이 없고, 과도이 애통하여 기운이 쇠척(衰瘠)하여 촉노 되었으니, 시인(時人)이 그 효의를 탄복치 아니 리 없더라.
 
141
천자 표문(表文)하시고 소대상(小大喪)에 예관(禮官)을 보내사 치제(致祭)하시니 상총(上寵)이 호대하시니, 구천(九泉)으로 혼이 돌아가도 감은(感恩)할러라.
 
142
상서 부모의 삼상(三喪)을 맞고 더욱 슬퍼하더라. 방상서 탈상한 후 천자 부르사 위로하시고 벼슬을 돋우어 참자정사태중태부를 하사하시니, 상서 마지 못하여 조정에 나아가며 충성을 가다듬어 기관의 청렴강직함이 그 선친에 못지 아니하니 인인(人人)이 칭찬 아니 리 없더라.
 
143
김부인과 화락하여 자녀를 갖춰 두고, 그 후에 재취하니 이씨 자색이 출어범유(出於凡類)하여 김부인이 지극 사랑하여 양인이 동기(同氣) 같이 황영(皇英)의 풍도(風道) 있어 부순의 화가 있더라. 원근에 예성(譽聲)이 들리더라.
 
144
참정이 한결같이 중대하여 제가(齊家)를 법도로 하나 오히려 김부인께 더욱 극진이 하니 이는 소시결발(少時結髮)로 부모 초토를 한 가지로 지낸 고로 자연 중정(中情)이 일칭 더하나 외모는 일반일러라. 참정이 자녀 선선하여 김부인께 칠자 삼녀요 이씨는 일자 이녀라. 자녀 개개 옥수정지요 여수경금이라. 남아 즉 풍유문장(風流文章)이요 여아 즉 월용화태(月容華態)요 백희의 고절과 규모의 틀이 있고 부세 다 초월하여 서주 장귀 영걸이요 부인 즉 요조숙녀라.
 
145
참정이 벼슬이 점점 높아가 정조에 우승상 진양후를 하였더니 후에 위국공이 되어 부귀 혁혁하고 십자(十子) 다 벼슬이 높고 장자 현은 또 태정에 거하여 진향후 부부 삼인이 다 칠십 여세에 척세하니, 남손(男孫)이 오십 여원이요 여손(女孫)이 이십 여원이라. 성만함이 비길 데 없고 십자가 다 승상 위에 승습(承襲)하여 벼슬이 일품에 거하니 혁혁 부성함이 명조에 으뜸이러라.
 
146
위국공의 복록과 방승상의 기지사와 영부인의 협의기를 탄복하여, 승상의 재종 민한림 부인 방씨는, 그 집 사적을 아는 고로 기이한 마디와 대문만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나니, 비록 일가지친이나 또한 현명공의 몸이 여자인 줄 알지 못하였더니, 임종시에 천자께 고하는 바로 깨닫아 전후 이 기이한 말이 많으나 규중 여자의 문견(聞見)이 고루하고 언담(言談)이 모호하여 세세한 말씀은 빠지고 대강만 기록하여 위국공 행적이 가장 신이하고 기이하여 유전(遺傳)하얌즉 호대, 전수 너무 호번(浩繁)할 것이요 암매한 정신에 걷우지 못하여 시작치 못하니 가석가탄이라. 민한림 부인이 혼암암매함을 가히 탄하함즉 하더라.
 
147
초에 현명공 소기(小朞) 시(時)에 위국공 부부 실성읍혈(失性泣血)하다가 기몽(奇夢)을 얻으니, 승상과 부인이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와 아자의 손을 잡고 가로대, 우리는 본대 문곡성과 상하성이러니 금슬이 너무 진중한 고로 수유불이(須臾不離)하니, 임사(姙姒)를 폐함에 상제(上帝) 미여이 여기사 태을(太乙)이 속이고자 하여 상제께 주(奏)하고, 문곡성은 방가에 내치고 상하성은 영가에 내치니, 문곡성은 본래 남자매 남자의 사업을 하고 태을이 희롱하여 여자되게 함은, 허명으로 부부되어 천상에서 너무 방자함을 벌함이라. 지난 바를 생각하면 가지록 우습고 한심한지라. 이에 모두 예와 같이 화락하나니, 너희는 설워말고 부디 가성(家聲)을 빛내고 만수무강하라 하고, 표연(飄然)이 하늘로 올라가니 위국공이 기이히 여기나 발설(發說)치 않다가 사후에 부인께 이름이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것처럼 되어 이에 기록한다.
 
148
(끝)
【원문】방한림전(方翰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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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