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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문학의 재건(再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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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4.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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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의 재건(再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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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학의 표어(標語)에 관한 성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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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 9일 이틀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의 결정서는 조선문학의 기본 임무가 민족문학의 수립에 있는 것을 명확히 인정하고 그것을 위한 투쟁의 당면과제가 일본 제국주의 지배의 잔재와 봉건적 유물의 청산에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조선의 민족문학 수립 과정에서 새로이 봉착할 국수주의적 경향과의 투쟁을 승리적으로 수행하지 아니하면 조선문학의 민주주의적 건설과 발전이 중대한 위험에 빠질 것을 경고함으로써 문족문학 수립의 기본적인 표어(標語)가 민주주의 민족문학이라는 것을 명확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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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 반봉건, 반국수적인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건립이 조선문학의 기본적 임무요 당면한 과제라고 규정한 이 결정서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를 명확히 한 의미에서 우리 문학 진로에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8월 15일 이후 일부 극좌적 편향(極左的偏向)을 범한 분네들이 주창하여 오던 계급문학, 다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건립이 당면한 조선문학의 기본적 임무라고 생각해 오던 분들에게 솔직한 과오의 청산을 요구한 점에서, 또 하나는 반동적 진영에 의한 봉건적이요 따라서 제국주의적인 반민주주의적 민족문학 수립의 표어에 대하여 가차없는 투쟁을 선언한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모든 급진적인 편향과 반동적인 준동(蠢動)의 비판과 투쟁 가운데서 진정한 조선 문학 재건의 진로를 규정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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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정서’의 명확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이미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극좌적 공식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반민주주의적 반동적 진영의 준동에 대한 투쟁이 또한 요긴(要緊)하게 요청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어떠한 곳에 나타나 있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비판과 투쟁의 필요를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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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8·15 직후 정치와 문하과의 관계, 혹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수립의 이론을 수만 어를 남비(濫費)하여 되풀이하던 분들의 성실성 있는 엄격한 자기비판이 아직도 나타나 있지 아니하고 논리적인 이론적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 표어의 전환과 간판의 교대만이 불성실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 가운데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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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이러한 성실성 없는 현상이 자기비판의 열성의 부족도 부족이려니와 충분한 이론적인 이해의 부족, 다시 말하면 일제 시대 높이 들었던 계급문학의 기치가 해방된 오늘에 있어 내려져야 할 이론적 근거의 해득(解得)에 있어 석연치 못한 점과 1925년 결성 이래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약칭 카프)의 일제하의 투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나의 과오와 편향만의 역사냐 아니냐에 대한 역사적 과학적 평가가 명확치 않은 점에 유래된 바 크다고 생각되는 의미에서 극좌적 편향의 비판은 크게 요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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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반민주주의적인 반동 진영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는 일찍이 우리들이 예상하였던 대로 최근 유상무상(有象無象)의 ‘문필가’ 제공(諸公)들이 국수주의와 봉건성 옹호에 의한 민족문학의 구호를 공공연하게 지껄이면서 나타난 반민주주의 민족문학 이론의 대두의 현상이 곧 이것이니 이것과의 투쟁이 또한 필요한 일로서 이해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 단문(短文)이 시급한 문제의 하나로서 민족문학의 표어에 관한 성찰을 취급하게 된 것은 주로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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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직후부터 전기(前記) 전국문학자대회 전까지 보여진 문학(문화)이론에 나타나 있던 극좌적 공식주의적 편향의 주요한 것을 대충 갈라서 적어보면 아래와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론을 대별하면 조선 문학의 기본 임무가 민주주의적 민족문학의 수립에 있다는 것을 반대하는 점에서 일치하는 것이나, 하나는 새로운 우리 문학의 임무가 프롤레타리아(계급)문학의 수립이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것이 사회주의적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시 이러한 이론들이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수립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모(相貌)를 띠고 구상화(具象化)되었던 것이니 그 중의 속자는 이렇게 서슴지 않고 말함에 이르렀다. “민족문학의 수립의 이론은 민족 재벌(財閥)의 문학적 대변자의 이론이다. 민족 재발이 진보성을 상실한 지금 민족 재벌의 대변자의 문학론은 반동이다. 그러므로 민족 민족의 수립의 이론은 반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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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중의 혹자는 이렇게도 말하였다. “조선 혁명은 사회주의 건설을 지향하고 나아가면서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반영하는 문학은 역시 사회주의 문학이어야 한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민족적인 것으로 남으면서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적인 문학이 아니면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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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중의 어떤 분에 있어서는 조선 혁명의 현계단(現階段)이 민주의 혁명의 계단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을 영도하는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니 조선문학의 기본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의 수립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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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러한 제 이론가의 결론이 한결같이 민족문학 수립의 표어를 반대하는 곳으로 도달하는 것은 씨 등의 행로의 종결점이 한 가지로 ‘라마(羅馬)’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나, 문면(文面) 위에는 나타나 있건 혹은 가려져 있건 지배(紙背)에서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이론적 태반(胎盤)이요 뇌리(腦裏)를 떠나지 않는 입론(立論)의 근거가 되는 것은 역시 지금으로부터 이십년을 역급(逆及)하여 탄생하였고 활동하였던 일본 제국주의 치하 조선 프롤레타리예술동맹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제하에도 우리는 ‘카프’의 역사를 가졌고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표어를 가졌었다는 과거에의 회상인 것이다. 이 점을 나는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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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러한 모든 혼란과 의견의 착오가 발생한 원인은 어디 있는 것일까. 그것을 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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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그것은 조선 혁명의 현계단에 대한 기본적 규정의 잘못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지금에 와서는 감히 조선 혁명의 성질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니, 사회주의 혁명이니 하는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 듯싶지 않으나 8·15 직후에는 이런 혼란이 각처(各處)에 횡행하였고 문화, 문학이론에 있어서도 혁명 계단의 그릇된 규정의 혼란은 광범하게 영향(影響)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에서 이런 과오가 청산된 뒤에도 문화이론에는 정치인 혹은 문학당사자들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 혁명의 성질이 민주주의 혁명 계단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싸운 것 이상으로 조선문학의 기본 임무가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수립에 있다는 것을 천명(闡明)하는 사업은 일층 곤란한 투쟁에 속하여 있었다. 민족문학의 수립을 가리켜 민족 재벌의 이론적 대변(代辯)이라 지탄(指彈)한 것 등은 민주주의 혁명 계단에 대한 전혀 착오된 극좌적 편향의 영향이 그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은 혁명의 성질과 문학의 임무를 기계적으로 분리 또는 공식적으로 연결시키는 데서 온 것이니 모든 것을 문학의 임무를 위요(圍繞)하고 있는 제 관계의 구체적인 과학적 평가에서 살피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성질을 규정한 정치 사회 경제상의 이론을 공식적으로 통용(通用)하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분리하거나 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8·15 이전과 이후의 문학적 사정의 변천과 구체적인 동태를 역사적으로 성찰함이 없이 혁명의 영도성(領導性)이 노동자 계급에 있다 하여 곧 문학의 기본적 표어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고 주창하거나 혹은 조선혁명이 지향하는 바가 장차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건설이니 우리 문학은 당연히 사회주의문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즉 그것으로, 전자는 민주주의 혁명의 성질의 규정과 문학을 기계적으로 분리한 데서 생겨났고 후자는 그릇된 사회 이론과 문화이론의 막연한 비과학적인 공식적 연결에서 생겨난 잘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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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형식에 있어서는 민족적인 것으로 남으면서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적인 문학이 아니면 아니 된다는 이론은 사회주의 건설의 광범한 토대가 이미 전토(全土)의 구석구석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16회 대회의 스탈린의 연설에서 이루어진 것이요 1932년 4월 23일부 전동맹당중앙위원회(全同盟黨中央委員會)의 문학, 예술단체(우오아프, 라프, 랍픔 기타)의 청산과 단일적인 소작가동맹(蘇作家同盟)의 통일을 위한 결단 이후, 구체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개에서 널리 알려진 테제이니 만약 이 테제의 수입에 있어 기계성과 공식성을 이탈하고 진정한 조선문학의 테제로서 하려며는 적어도 소련의 사정과 조선의 사정에 대한 구체적인 차이만큼은 평가하여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스탈린의 테제는 우리 조선에 있어서는 응당 다음과 같은 것으로 되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즉 형식에 있어서는 민족적이오 내용에 있어서는 민주주의(반제, 반봉건, 반국수)적인 민족문학이 건설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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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그것은 문학 및 문학 운동의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 비과학성 비구체성 비역사성의 과오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카프’의 탄생과 그 역사의 평가와 8·15 이후의 조선문학의 사정의 변천에 대한 검토에 있어 그대로 회고적이요 더 많이 회상적일 뿐, 구체성과 역사성과 과학성 위에서 검토되고 파악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8월 15일 계기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이 없어진 사실로부터 유래하는 제 문학적 사정의 변화에 대해서 전연 착오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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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더 몇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나 이 단문의 전개상 필요한 것만을 추려 보아 이상의 제 점이 문학의 기본 임무와 표어를 경정하는데 하나의 커다란 혼란의 원인이 될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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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전의 조선문학의 기본 임무는 물론 반봉건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민족문학의 건립에 있었다. 말기(末期) 이조 사회에서 싹트기 시작한 신문학의 제창과 그에 의한 계몽운동의 전개에서 우리는 이것의 단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후 후진(後進)한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이 이 땅의 봉건유제(封建遺制)를 이용하고 그것과 결탁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반봉건성(半封建性)을 내포한 반 일본 제국주의 문학이 아닐 수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민족문학의 내용은 봉건유제의 타파 청산까지가 그것에 달려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와 지배를 타도하는 반 일본 제국주의 문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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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민족문학의 담당자는 말할 것도 없이 민족 부르주아지와 그의 문학적 선수(選手)여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의 담당자가 자본가 계급인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문학의 수립은 응당 그들이 수행하여야 할 과제요 임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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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일운동 이후 그들은 반일 반봉건 혁명에 있어 이미 역사적인 담당자로서 실격(失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삼일운동의 후반 6.10만세사건, 광주 학생 사건 등이 벌써 그들의 손에서 떠났을 뿐 아니라 이것을 영도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 착취 정책을 타도하기 위한 홍워, 단천, 간도 등, 각지의 농민봉기와 원산총파업, 부산방적, 평양고무 등 노동자의 투쟁을 조직 지도한 프롤레타리아트였던 것이다. 유약(幼弱)한 민족자본은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하여 그의 품안에 들어가서 자라나는 것을 이익으로 하였고 봉건유제의 식민지적 이용에서 민족 지주(地主)들 역시 일제와 결탁하는 것이 그들의 안일(安逸)이 보장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 민중과 학생에 대하여 협력하는 대신 도리어 그것에 협위(脅威)를 느끼게 되었으니 노동자의 파업과 농민의 봉기와 학생들의 투쟁이 민족자본가와 지주와 교육가의 반동에 봉착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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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 수릷의 과제를 하기 위한 반봉건, 반제국주의 민족문학의 담당자는 이것과 상응하여 삼일운동 이후 복잡한 면모(面貌)를 띠게 되었다. 일찍 민족문학의 담담자로 등장하였던 민족 부르주아지의 문학적 대변자들은 민족문학의 기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반 일본 제국주의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봉건적 유물의 애완(愛玩)과 외래(外來) 말기(末期) 시민문화의 단편적인 수입으로써 민족문학의 수립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환상을 가짐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하기 위하여 그들의 주동자와 후계자들은 정치와 문학과의 분리를 주창하고 문학의 순수성이니 자율성이니 하는 것을 그릇되게 고창(高唱)하여 일본 제국주의 반봉건적(半封建的) 식민지적 착취와 투쟁하고 군 적인 정치적 압제와 싸우고 야만적인 문화사회 정책의 침해로부터 민족생활의 발전과 건강성을 방어하는 것이 민족문학의 기본 내용이어야 할 것임에 불구하고 이들은 도리어 이러한 싸움과 분리되는 지위에 문학을 안치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려는 문학을 가리켜 문학의 사도(邪道)라 반대함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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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 수립을 위한 기본적인 임무는 왜곡되었고 민족문학의 내용은 민중의 기본적인 욕구와 생활에서 벗어나 버렸다. 민족문학 수립의 기본적인 과제인 반봉건 투쟁은 그릇된 토속취미(土俗趣味)로 대치(代置)되고 일본 제국주의 타도의 기치는 순수문학으로 바꾸어져서 반 일본 제국주의의 기본 성격은 폐기(廢棄)의 운명에 봉착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반봉건적(半封建的) 착취 제도와 싸우는 민중의 구체적인 생활투쟁의 내용이 점차로 노동자와 농민의 반항과 그 조직의 성격을 갖춤에 이른 것을 이해치 못하여 그들의 이른바 민족문학의 내용은 봉건성 옹호와 계급투쟁 거부를 싸고 드디어 민중의 기본적 생활의 욕구와는 등을 짐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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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학적 정세에 있어 반봉건 반 일본 제국주의의 기본 임무를 지닌 민족문학의 영도권을 민족 부르주아지의 손에서 빼앗아 그 진정한 계승과 수립을 목표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표어를 걸고 1925년 창립을 보게 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표어는 반 본 제국주의와 반봉건성을 기본 임무로 하는 민족문학의 표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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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의 재건(再建) ‘카프’의 공죄(功罪)에 대한 검토는 이곳이 적당한 자리가 아니므로 다른 기회를 빌기로 하자. 예술성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공식주의적 제종(諸種)의 편향 등 여러 모로 그 과오를 지적할 수 있으나 당시의 민족문학 수립의 기본과제를 싸고도는 문학적 정치적 환경 가운데서 반제 반봉건의 민족문학의 구체적인 표어로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기치를 든 것은 원칙적으로 정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학운동이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는 광범한 투쟁의 일익(一翼)임을 자인(自認)하여 노동대중의 반항과 그들의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친일세력과 민족개량주의자들의 일제와의 정치적 타협과 반일본문학 전선(戰線) 결성의 포기와 반대로서 구체화된 순수예술의 기만성과 날카롭게 싸운 것 또한 원칙적으로 정당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카프의 결성과 그 운동을 8월 15일 이후의 민족문학의 기본 임무와 그 표어가 민주주의 민족문학 수립에 있다 하여 일률(一律)로 극좌적 과오의 역사라고 단안(斷案)하는 자를 가리켜 역사적 평가에 있어 구체성을 망각한 기계주의자라고 반대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8월 15일이라고 하는 중대한 혁명적 계기가 정당히 평가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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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일에 있어서도 민족문학의 수립을 위한 과제는 완수되어 있지 않아서 의연(依然)히 그것은 반봉건을 그의 중요 과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남겨 놓은 잔재의 청소가 과제의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36년 동안 우리를 압제하고 착취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羈絆)이 타력(他力)에 의하여서나마 끊어져 없어진 것이다. 반일문학(反日文學)이라는 면(面)이 그 비중에 있어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미발달과 외래 금융자본을 토대로 한 국수주의의 대두가 민족문학 수립의 협위(脅威)로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1925년 반일(반제) 반봉건을 기본 과제로 하는 민족문학의 구체적 내용으로 되었던 문학적 환경과 정치적 조건은 8.15 이후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반일문학인 민족문학의 표어가 프롤레타리아문학이었던 때와는 역사적 조건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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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일에 있어도 민족문학 수립의 영도권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있다. 그것이 곧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듯이 민족문학의 수립의 영도자가 프롤레타리아트로되 그것이 곧 프롤레타리아문학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민족문학의 수립에 있으되 민족주의적인 혹은 민족주의자의 문학은 아닌 것이요, 더구나 일부 민족 재벌의 문학은 더욱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완전독립과 토지문제의 평민적 해결의 기초 위에서 통일된 민주주의적 민족문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민족 문학은 봉건성 옹호와 국수주의 예찬과 순수예술성의 그릇된 제창으로 결과되는 일본 제국주의 문화 잔재와 결탁한 비민주주의 내지는 반민주주의적인 문필가 제공(諸公)의 민족문학과는 그것이 진정한 민족문학 수립의 임무와 배치되는 점에서 역시 날카롭게 구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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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러한 반민주주의적인 문학의 대두는 진정한 민족문학의 건설에 있어 뿐 아니라 민주주의 조선을 건설하는 데 있어 커다란 반역사적인 방해물이 될 것이다. 이들 문필가 제공이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반일본, 반봉건 투쟁을 과제로 하는 민족문학 수립을 위한 투쟁에 반대하여 민족 독립과 민족 해방 운동을 방해하듯 금일 그들은 반제, 반봉건, 반국수에 의한 민주주의 민족문학 수립에 반기(反旗)를 들어 의연(依然)히 변함없는 그들의 반역사성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문학의 재건은 극좌적 공식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러한 반민주주의자의 준동과 싸움이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가운데서 민주주의 민족 문학은 그의 과제를 훌륭하게 해결하여 장차 올 보다 높은 새로운 계단의 문학을 위하여 준비를 온전히 할 것이다.(19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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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民聲)』6호, 1946. 4. 23)
【원문】조선문학의 재건(再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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