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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과 편집광의 문제 (발자크 연구 노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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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2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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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편집광의 문제(발자크 연구 노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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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제느·그랑데」에 대한 일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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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제느·그랑데」는 노트 제1회에서 분석해 본 「고리오 옹」이 나오기 1년 전, 1833년에 제작된 작품으로써, 같은 해의 소산으론 「시골 의사」 「고명하신 고오듸사르」「페라규스」등이 있다. 「고리오 옹」이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발자크는 전혀 「으제느·그랑데」의 작자로서 이름을 떨쳤다고 「19세기 문학주조사(文學主潮史)」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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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 소설의 노트를 성격과 편집광의 문제라는 주제 밑에 통일시켜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가재(假裁)는 물론 나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만 임화 씨의 『문장』소재(所載)의 「주인공론」, 혹은 최재서 씨의 『인문평론』창간호 소재(所載)의 「성격에의 의욕」등의 제 논책(諸論策)과 「로만개조론」이래 작금(昨今) 양년(兩年)간에 걸친 성격에 대한 나의 창작적 실험 등에 자료의 일단으로써 기여코자 하는 것도 이 노트에 대한 나의 버릴 수 없는 소망이다. 전기(前記) 두 분은 소설문학에 있어서의 성격창조의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제 요점을 천명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성격에 대하여 투철한 사상이나 수법이 확립되지 못한 채 심리주의적 경향까지를 치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소설문학의 상태를 비춰보다 이것은 좀 더 복잡성과 다양성과 다각성(多角性) 밑에 토구(討究)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생각에 의하면 이러한 주제를 천명하는 데 있어서 발자크는 세익스피어에 못지 않은 가장 풍부한 자료이면 또한 하나의 모범이었다. 「으제느·그랑데」가 이여(爾餘)의 수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임에 불구하고 내가 우선(지면관계를 고려하여) 성격과 편집광에 관한 문제만을 추려 볼려고 생각한 것도 전혀 이러한 나의 필요에 의하여서이다. 일방(一方), 나는 양년(兩年)간에 걸친 성격에 대한 나의 시험이 아직도 일정한 도달점에 이르러있지 못한 사유에 감(鑑)하여 그리고 이것이 장편소설의 최초의 거대한 건설자의 일(一) 작품에 대한 노트라는 사정까지도 참작하여, 이에 대한 나의 주관은 될수록 이를 보류하고 주로 고명한 제비평가, 사가(史家)의 해석과 의견을 몽타주하는 것으로써 만족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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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의 새로운 토구(討究)와 함께 우리 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는 어떤 저명한 사상가의 「전형적 환경에 있어서의 전형적 성격 운운」의 명제는 발자크를, (혹은 간접적으로 세익스피어까지도) 상정하고 쓰여진 글이었었다. 그가 무엇을 가지고 ‘전형적 성격’이라 지명하였는지는 당해사회(當該社會)를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다시 그가 그린 ‘전형적 환경’을 살펴보지 않고는 실증적으로 지적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그것이 발자크의 「인간희곡」중의 저명한 제 인물일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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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발자크의 「인간희곡」중에 출몰하는 수천의 인물 중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편집광과 악당이 언제나 주요한 역을 맡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편집광과 악당이 그러면 이른바 ‘전형적 성격’이라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편집광과 악당이 ‘전형적 성격’이라고 불리워질 인물의 특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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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 관련된 것으로 고리키가 말한 바는 시사적(示唆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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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작가가 20 - 50명, 아니 기(幾) 수백 명의 상인과 관리와 노동자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운데서 가장 특질적인 계급적 특징, 습관, 취미, 동작, 신앙, 화술 등을 뽑아섣 그것을 한 사람의 상인과 관리와 노동자의 가운데 통일할 수가 있다면, 작가는 그러한 수법으로써 타입을 창조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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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고리키는 전형적 성격의 일면을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그는 이것만으로는 성격이 충분한 형상을 갖추지 못할 것을 지적하여 비로소 악당과 편집광과 유사한 인간의 성격적 특질성, 특이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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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급적 특징은 그것만으론 완전히 산 인간을 예술적으로 구상화된 인간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우리들은 인간이 각양각색인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자는 잔소리쟁이고, 어떤 자는 입이 지나치게 무겁다. 또한 어떤 자는 집요하여 자존심이 강하고, 어떤 자는 냅딜상이 적어서 자기를 믿지 못한다. 문학자는 인색한(吝嗇漢)과, 비열한(卑劣漢)과, 열광가(편집광)와, 야심가와, 공상가와, 쾌활한 사람과 음흉한 사람, 근면한 사람과 나태한 사람, 관대한 사람과, 악의 있는 사람과, 만사에 냉담한 사람 등등의 윤무(輪舞)의 중심에 생활하는 것 같다……작자는 이러한 것 가운데서 임의의 성질을 취급하여 그것을 심화하고 확대하고, 그것에 예도(銳度)와 명료성을 부여하고, 이것 저것의 인물의 성격을 주요한 것으로, 명확한 것으로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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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는 이곳에서 일종의 편집광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형적 성격’이라는 것과 편집광, 강렬성 등과는 하등의 모순도 가지지 않을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로만을 통하여 각각 성격의 전형성을 만고의 반석 위에 창건한 세익스피어나 발자크가 한가지로 악당과 편집광을 묘출(描出)하기에 바빴다면, 그것은 성격 창조에 있어서 불가피의 조건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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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가지로 각종의 악당과 모노매니아를 묘출하였다. 교제사회(交際社會)의 악당, 부랑자배(浮浪者輩) 중의 악당, 도형장(徒刑場)의 악당, 스파이 직업의 악당, 은행계와 정치계의 악당 등. (보트랭, 마르네프 부인, 드·마르세, 눗칭겡, 피리프, 뿌리도, 라·파르페리누, 막시므·드·트라이유 등의 발자크의 악당과 세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 이야고, 멕베드부인, 멕베드, 리강, 고네리아 등을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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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악당과 한가지로 그는 각종의 편집광을 즐겨서 그렸다. 방탕광(放蕩狂), 인색광(吝嗇狂), 야심광, 학문광, 미술광, 부성애광, 연애광이 그것이다. (크라아스, 유로, 그랑데, 고리오, 루이·랑베르, 마르카스, 프로엥 포페르, 사라지느, 파시노·카느 등 「강바라」와 「마시미라·드니」라고 하는 2부작으로 된 소형의 장편에는 7명의 모노매니아가 있다고 한다. 이를 세익스피어의 코리오테나스 햄릿, 리어, 오세로, 안토리어, 홋트과, 쭈리엣, 레온치이즈, 타이몬 등과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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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고리오 옹」에서 악당, 보트랭과 부성애의 편집광, 고리오를 제1회 노트로써 알아보았고, 장차 야심가가 되려는 라스티냐크라는 청년도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으제느·그랑데」에서 다시 페릭스·그란데라는 인색광(吝嗇狂), 황금편애광(黃金偏愛狂)을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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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편집광을 그려서 그것이 동시에 전형성을 구현할 수 있은 것은, 우선 그것의 밑받침으로 항시 화폐를 두었다는 것, 그리고 다음으론 그것을 언제나 인간다운 인물로써 묘출(描出)하였다는 데 유인(由因)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부란데스는 “그는 수전노를 벌써 편협한 부르주아지로는 만들지 않는다. 아니 극히 격렬한, 시적(詩的) 열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그러한 황금욕을 가진 인간으로 만든다. 이 수전노는 눈부신 휘황한 황금을 볼 때에, 가장 광폭하고 가장 신비적인 몽상에 사로잡힌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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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나는 전형적 성격 창조에 있어서의 리얼리스트의 최대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련다.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의 위력과 그의 법칙을 폭로하는 데 소설가는 청빈주의(淸貧主義)와 빈궁문학(貧窮文學)을 택하지는 않았다고! 황금을 기피하고 그것을 경멸하는 샌님을 그려서 시민사회가, 그리고 그 사회에서의 화폐의 죄악이 묘파(描破)된 것이 아니라, 실로 그란데 씨와 같은 황금익애자(黃金溺愛者)와 눗칭겡 씨와 같은 은행적 악당을 그려서 그것이 비로소 가능하였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강조하려고 생각한다. (이것은 속물세계의 속물성을 묘파(描破)한다고, 속물을 비웃고 경멸하는 신경질적인 고고한 결벽성만을 따라다니는 우리 문단의 작금의 소설가와, 그것을 시대사상의 반영이라고 극구 찬양하고 있는 비평의 유행에 대하여도 커다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자크의 수법에 의하면 작가는 속물성을 비웃는 인간이 아니라, 속물 그 자체를 강렬성에서 구현하고 있는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 리얼리즘의 정칙(定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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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은 편집광과 악당이 성격창조에 있어서 전형성을 체현(體顯)하는 데 아무러한 모순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가장 중요한 요소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문제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고(何故)냐 하면 그것만으로는 발자크가 편집광과 악당과 여(如)한 강렬성 있는 성격을 열광적으로 형상화하려던 태반의 원인이 불분명한 채 그대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대체 그가 성격이란 것을 여하(如何)히 생각하며 인간이란 것을 어떻게 간주하고 있는가가 천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에 대하여 제가(諸家)의 분석에 경청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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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코·라브린 씨가 「발자크론」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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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상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혼합하든가, 관찰에 의하여 얻은 사실을 최대의 한계에까지, 공상의 한계에까지 확대하든가 하였으므로,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그가 숭배한 도스트예프스키와 흡사하다. 그러나 발자크는 도스크예프스키처럼 주관적은 아니었다. 도스크예프스키가 즐겨서 주인공으로 삼은 내면적으로 복잡한 성격은 발자크의 기피한 바이다. 발자크의 작품에는, 복잡한 것은 인간적 관계이었고, 묘사된 성격은 단순한 것이었다. 적어도 단화(單化)되어 있었다. 발자크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은, 동일 개인의 내면계(內面界)에 있어서의 수종(數種)의 감정의 상호작용도 아니고, 그 개인의 변화무쌍한 제상모(諸相貌)의 문제도 아니었다. 발자크가 목표로 한 바는, 어떤 성격이, 그 성격의 중심세력으로 되어 있는 일속성(一屬性)이 가지는 여러 가지의 상이한 상모(相貌)를 통하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 그리고, 많은 속성으로부터 중심적인 속성을 꼭 하나만 선택하여, 그것을 과장하고, 이여(爾餘)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것을 그 성격의 토대로 하고, 요소적(要素的)인 노력으로 하고, 하나의 숙명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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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으제느·그랑데」에서 일례를 들면 으제니의 아버지 페릭스·그랑데는 우연히 인색한(吝嗇漢)이었던 것이 아니고, 인색 그 자체로써 여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하나의 권화(權化)이었다. 그러면 발자크는 어찌하여 이러한 방법을 취하게 되었던 것일까. 나폴레옹의 세계정복의 욕망과 발자크의 그것을, 당시의 정치정세의 분석으로부터 상호 비교하면서 그의 「발자크론」을 기고한 스테판·쯔바이크는, 이러한 발자크의 방법을 ‘정수(精髓, 에센스)’ 혹은 ‘응축’이라고 표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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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응집하고 이것을 체에다 걸러서, 불순한 것을 제거하고 순수한 가치의 고도의 형식만을 정선하기 위하여 그의 전력(全力)은 집중되었다. 다음으로, 정선된 개개의 형식은, 그의 장중(掌中)의 작열(灼熱) 속에서 응축되고, 놀랄만한 다양성에 일목요연한 통제를 부여하였다. 그것은 마치 린네가 기십억(幾十億)의 식물에 개괄적인 예견을 주고, 화학자가 무수(無數)의 화합물을 한줌의 원소로 분해해 버리는 것과 동양(同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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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말하여 그의 방법을 식물학자나 화학자의 그것에 비하여 보았다. 사실 발자크는 그의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의 모두(冒頭)에서 과학상의 단일구성설에 대하여 언급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과 생물과를 비교하여 인간사회상의 ‘종’ 개념과 동물학상의 ‘종’ 개념까지를 서로 대조해가며 자기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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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발자크의 태도는 기실(其實), 다분히 이포리트·테느의 저 유명한 ‘미류’설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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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발자크를 향하여 우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에, 그의 대답은 지극히 명백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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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악당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누구이며 이러한 편집광을 배양한 자는 대체 누구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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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음에 발자크는 주저없이 대답한다. “그것은 파리다!”라고. 다시 말하면 그것은 사회적 환경, 즉 테느의 소위 ‘미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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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옹」에 나타나서 하숙옥(下宿屋) 〈메종·보케트〉에 모여드는 청년, 학생들은, 확실히 미숙하고 순수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기(前記) 작품의 종말이나 혹은 「인간희곡」중의 다른 작품에서는 모두가 격렬하고 야심에 가득 찬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인간이 뭉켜도는 가운데 포탄처럼 돌입하든가, 페스트의 균처럼 침윤하든가’하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양이 사자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을 형성시켜 준 자는 우선 다른 누구보다도 파리였다는 것이 발자크의 작품이 말하는 명료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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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커다란 생활의 감과(坩堝 속에 투입되어, 격정의 각화(却火) 중에서 익고 달았다가 환멸을 만나서는 다시 냉각되고 응고되면서, 사회의 본성의 다양적인 동태, 기계적 마찰, 자석적(磁石的) 인력, 화학적 분해, 분자적 분해 등에게 압도되고 변형되어, 정진정명(正眞正銘)의 본성을 상실함에 이른다. 파리라고 하는 가공할만한 산(酸)이 어떤 혹자(或者)를 융해(融解)하고, 분리하고 그것을 소멸시켜서 전혀 딴 것으로 응고시키고 승화시키는 것이다. 변형, 착색, 결합의 작용이 행하여지고, 결합된 원소로부터 새로운 화합체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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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쯔바이크는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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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성이 다양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다양성도 불소(不少)하게 단일성에 작용한다”는 의견은 발자크가 라마르크의 자연과학설에서 가져온 것인지 몰라도 후구(後口) 이포리트·테느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응축되어 저 유명한 ‘종족환경·시대’의 공식을 낳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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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성은, 그것이 운명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일체의 것, 풍토, 환경, 습관, 우연의 산물로써, 개성은 그의 본성을 그의 분위기의 가운데서 흡수하고, 다음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스스로 광채 속에서 출생시킨다는’ 설은 그대로 테느의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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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동시대인(同時代人)으로써 그와 가장 사이가 좋지 못하던 상트·뵈브는 「나의 독(毒)」가운데서 득의의 독설로써 다음과 같이 야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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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페르는 발자크를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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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도 하지. 그런걸(더럽고 품위가 없고 진부한 묘사의 類[류]) 읽고나면 언제든지 손을 씻고 싶고 옷에는 솔질을 하고 싶단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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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그의 걸작 가운데도 어딘가 하등품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한창 시절의 방탕미(放蕩味)가 가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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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은 말하자면, 발자크에는 품위나 예절이 없고 그의 작품 속에는 비열한 사회와 기품 없는 인물만이 득실거린다는 뜻으로도 된다. 으제느·그랑데는 발자크가 그린 여인 중에서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다. 그는 일생을 처녀로서 보낸다. 그러나 이렇게 순진하고도 깨끗한 처녀도 끝에 가서는 인색과 금전 속에 얽히고 만다. 그의 종형(從兄) 샤를르에게 배반을 당하기 전, 페릭스·그랑데의 생전에 벌써 그는 아버지와 같이 인색하며 수전(守錢)하면서 생활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말하였다. 물론 그를 이렇게 배양한 것은 생활환경이다. 그러나 발자크는 인도로 떠날 때엔 그대로 연약한, 모양만 내던 쓰잘곳 없는 샤를르가, 일단 돈을 잡기 시작하자 탐욕적이고 잔인스럽고 비인도적이고 야심적으로 된 것을 설명할 때와 함께, 생활환경 외에 다른 것을 퍽 근원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것은 즉 그랑데 가(家)에 특유한 피(혈통)가 눈을 뜨기 비롯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성격을 형성시키고 개성을 부여하는 자는 사회적 환경이며 다시 올라가서는 혈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품 있는 귀족주의의 독설가에게서 추잡하고 비열하고 하등품이라고 야유를 받는 정황과 성격은 발자크에 있어서는 하나의 기본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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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그의 강렬성과 정력성을 이해할 다른 하나의 관건이 놓여있다. 즉 발자크는 인간을 박물학자와 같이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전게(前揭)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에서 자기는 인간의 박물학을 쓰겠다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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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란 자기의 노력만으로 진리와 미덕에 도달하는, 저 혼자서 건전한, 우수한, 독자의 존재를 가진, 일개의 지능이 아니고, 환경으로부터 그의 존재의 계단과 방향을 결정당하는, 다른 정력과 동양(同樣)인 일개의 단순한 정력일 따름이다. ……그 정력이 활동하는 양상만 바라보면 그는 만족한다. 코끼리를 해부하는 기쁨을 가지고 그는 민중을 해부한다. 대신(大臣)을 분석함과 동양(同樣)으로 기쁨을 가지고 그는 문지기를 분석할 것이다. 그에게는 오예(汚穢)라는 건 존재치 않는다. 그는 오직 각양각색의 정력을 이해하고 취급할 따름이다. 그것이 그의 유일의 유락(愉樂)이고 이여(爾餘)의 열락(悅樂)이란 그에겐 존재치 않는다. 그는 “훌륭한 구경(觀物)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훌륭한 재료다!”라고 말한다. 훌륭한 재료라는 것은, 과학상으로 중요하고 진기한 생물, 즉 몇 개의 새로운 광대한 법칙을 계시하는 데 적당한 어떤 현저한 모형이던가, 기이한 변형이던가를 명시할 수 있는 것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순결이라던가 전아(典雅)하다든가 그런 것은 태반 그의 안중에는 있지 아니하다. 그의 눈에는 개구리도 나비에 못지 않는다. 박쥐가 꾀꼬리 이상으로 흥미를 끌기도 한다. 제군이 만약 기품 있는 취미인이라면 박물학자의 서적을 펼쳐보지 말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 즉, 대단히 추악한 모양대로, 하등의 손 때도 칠하지 않고, 미화하지도 않고, 조금도 사양함이 없이 묘사해 보일 것이다. ……기형과 질병과 장대한 변이성을 관람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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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테느의 명문(名文)이다. 귀족적 낭만주의가 더 많이 우리에게 유산을 상속하였는지, 그에게서 기품이 없다고 조롱을 받은 발자크의 리얼리즘이 더 위대한 자산을 물려주었는지는 여기서 다룰 자리가 아니지마는 소설 문학의 건설자가 된 자는 확실히 후자이었다. 시민사회의 야수성과 금전의 위력을, 그리고 몰락하는 귀족사회의 적나라한 이면생활을 전해준 자는 틀림없는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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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느는 발자크의 여러 가지 결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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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야원(野原)의 한중복판에 서 있다면 나는 사자를 만나는 것 보다 양을 만나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철책의 가운데서라면 양보다도 사자를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 예술이란 정히 이런 종류의 철책이다. 그것은 공포를 제거하고 흥미를 유지시킨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고통도 위험도 없이, 기다(幾多)의 웅대한 정열, 그의 폭위(暴威), 그의 대규모의 쟁투를 비롯하여, 잔혹한 투쟁과 방랄(放埒한 욕망과에 파묻혀서 미칠 듯이 흥분되어 있는 인간성의 모둔 혹란(惑亂)과 노력을 유유히 관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흠사히 저 미켈란제로의 화필(畵筆)로써 이루어진 역사(力士)의 앞에 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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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는 페릭스·그랑데가 황금을 편애하고 있는 장면을 「으제느·그랑데」에서 한두 곳 찾아보고 이 노트를 끝막으려 한다.
 
 
43
• 가족이 모두 잠들었을 때에 금화와 장부가 감축되어 있는 밀실로 들어가서 쇠를 잠그고 각종의 금화, 나폴레옹 금화, 오란다 금화, 폴가르 금화, 모골 금화, 제네바 금화 등을 펼쳐놓고 구경하고 안아보고 만져보고 볼편에 부벼보고 하는 광경.
 
44
• 그가 누구와 취인(取引)을 할 때엔 그는 반벙어리나 혹은 말더듬이처럼 안타깝게 말을 더듬고 되씹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건의 사정을 먼저 토로케 한다.
 
45
• 그의 조카가 내부(乃父)의 자살의 보(報)를 듣고 울고 있을 때. 그가 금전보다도 죽은 아버지를 더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저 젊은 녀석은 아무꼬에도 쓸모가 없는 놈!”이라고 중얼거린다.
 
46
• 딸 으제니에게 맡겼던 금화가 없어졌다고 할 때에 그 놀라는 모양과 드디어 딸을 ○○하고 그의 아내를 빈사(瀕死)에 이르게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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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임종은 79세의 고령이었는데 그는 언제나 바퀴가 달린 굉괘의자(肱掛倚子)를 타고 금화를 구경하려 다녔었다.
 
48
그의 완장(頑丈)한 골격이 죽음과 싸우던 고민의 날.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도, “감축해라! 도적을 맞지 않게 감축해라!”고 외치며 “그건 있느냐? 저기 그대로 있느냐?”하고 공포에 떨면서 부르짖었다. “금화를 잘 지켜야 한다. 그걸 전부 나의 앞으로 가져오너라!” 금화를 구경하고서 임종을 맞이한 이 노인은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몸이 후끈후끈해진다!” 하고 얼굴에 기쁨의 웃음을 나타낸다. 다음은 그가 숨을 끊어버리던 때의 장면의 묘사다.
 
 
49
교구의 목사가 종유(終油)를 주려고 왔을 때에, 몇 시간 전부터 죽은 듯이 감겨있는 그의 눈은, 십자가와 촉대(燭臺)와 은제의 성수반(聖水盤)을 생기있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코 위에 있는 그의 사마귀는 마지막으로 또 한번 움직였다. 목사가 기독의 상(像)에게 입을 맞추도록 할려고. 그의 입술 가까이 도금한 십자가를 가져갔을 때, 그는 무서운 힘으로 몸을 움직여서 십자가를 잡으려고 하였다. 이 최후의 노력은 그의 생명을 끊어버렸다. 그는 으제느를 불렀다. 딸은 옆에 꿇어엎대어 이미 싸늘해진 손을 눈물로 적시었으나 그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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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를 축복해 주셔요!”하고 딸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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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틀림없이 처리해야 한다. 하늘나라에 가서 문세쪼를 들을 테니까.”
 
 
52
이 최후의 말은 기독교가 인색한(吝嗇漢)의 종교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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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제3호, 1939년 12월)
【원문】성격과 편집광의 문제 (발자크 연구 노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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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