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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두 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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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김남천
1
어린 두 딸에게
 
 
2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너희들을 향하여 이런 붓을 들게 된 아빠의 마음을 너희들이 알게 되려면 아마 적어도 십 년 내지 십 오 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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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십 오 년 후에야 너희들이 볼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을 이 글을 너의 아빠가 이렇게 이르게 쓰게 될 줄은 물론 나도 생각지 않았었고 내가 너의 엄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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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너무도 큰 괴변이었고 또 너무도 커다란 역참(逆慘)이었던 때문이다. 아무리 철이 없고 엄마 아빠를 분간조차 못하는 너희들이라도 이 괴변과 그리고 역참을 생각할 수 있다면 너희들의 단풍잎 같은 두 손은 스스로 맺히는 이슬방울을 따기 위하여 불편과 두 눈을 한없이 문대기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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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물 세 살이라는 짧은 세상을 살고 스물 네 살이 잡히자마자 나와 어린 너희들을 버리고 사색(思索)과 감각(感覺)하기를 영원히 끊어버리고만 이 사실을 너희들이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아마 이 붓을 잡고있는 너의 아빠의 슬픔과 모든 사정도 한가지로 이해하는 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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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십 년 후이랴! 십 오년 후이랴! 물론 이 글을 너희들이 볼 수나 있게 되려면은 십 년도 안 걸릴는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 글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려면은 십 년이 걸릴는지 이십 년이 걸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너희들은 비상한 정서(情緖)의 힘을 갖지 않으면 안될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혹시는 너희들은 비상히 날카로운 이해의 힘을 갖지 않으면 안될는지도 모른다. 또한 혹은 너희들이 커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풍속과 「비상시 풍경」의 모든 것을 한가지로 이해하기 위하여 학구적인 역사적 연구가 필요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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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혹은 그 때에는 이미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낡고 완고한 나의 사상을 이해하는 대신 조소와 경멸을 가지고 너희들이 이 글을 보게 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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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을 너희들의 마음보에 속하는 일이며 너희들이 나의 사상을 여하히 평가하고 이해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너희들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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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는 낡고 완고해진 아빠의 사상과 엄마의 교훈과 우리 두 사람의 너희들에게 대한 사랑을 정당하게 너희들이 소화하는 데 의하여 그것이 조금이라도 너희들을 생각과 완성에로 이끄는 정신적인 영양(營養)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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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아빠가 지금 이 붓을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장차 올 십 년 내지 이십 년의 미래에 너희들을 내 무릎 앞에 앉히고 십 년 내지 이십 년 전에 어떠한 슬픈 일이 있었으며 또한 너희들의 엄마가 너희들에게 주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간 많은 교훈과 사랑에 대하여 내가 너희들에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할 기회가 올 것이냐 못 올 것이냐 하는 의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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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이 글을 보게 될는지 물론 그것도 의문에 속하는 일이지마는 그러나 너희들이 어떤 기회에 너의 엄마와 아빠의 지나온 길을 알려고 하는 진지한 태도가 생길 때에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너희들에 대한 사랑을 너희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한 개의 중요한 토대로 하려는 그러한 따뜻하고 굳은 마음이 생길 때에 몇십 년 전에 쓴 이 글이 너희들의 눈에 발견될 것을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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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자라서 한 사람 앞을 당할만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때까지 너의 아빠가 살아있을는지 이것도 또한 의문에 속하는 일이다. 나의 훌륭치 못한 지금의 건강으로 미루어서 아마 너희들이 크도록 내가 살아있고 싶다는 나의 희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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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이러한 모든 불행을 생각지 말고 너희들을 내 무릎 앞에 앉히고 내가 너희 엄마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온다고 하여도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며 너의 엄마에 대한 지금의 너의 생각도 한없이 변하여지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나는 지금 너희들을 향하여 뜻하지 아니하였던 이 붓을 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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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단 하나의 너의 엄마를 영구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너희들 중의 큰 아해는 두 돌을 지나서 네 살 째 잡히었고 작은 아해는 이 세상에 나온지 불과 열흘이 못되어서 네가 양육되고 생장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젖과 품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마가 누군지 엄마가 살았는지도 분간치 못하는 너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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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해는 퍽 전부터 우리들의 구차한 생활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서 너희들의 외할머니 너희들의 엄마가 그이의 품에서 자라난 너희들의 엄마의 엄마 - 의 품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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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 4개월을 아빠와 엄마를 떠나서 자라나던 큰 아해는 엄마 든 사진첩을 펼치고 「엄마 어느 거냐?」하면 바로 짚을 때도 있고 혹은 딴 여인의 얼굴 위에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을 짚고 우리를 쳐다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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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아! 너의 엄마는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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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손가락을 엄마의 얼굴 위에다 짚으며 「똑똑히 봐! 이게야 이게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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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인가 아직 너의 엄마가 세상에 살았고 너희들 중에 작은 것이 우리들 속에 생겨나오기 퍽 전의 일이다. 시골서 큰 아해를 데리고 올라오신 외할머니는 방이 작아서 같이 주무시지 못하고 어린것만을 남기고 딴 곳으로 가셨다. 그리하여 나와 너의 엄마는 너를 가운데 눕히고 자려고 하였었다. 잘 때가 가까워오니 여태껏 재롱을 하며 방안의 이 모퉁이 저 모퉁이를 장난질하며 다니던 아해가 몹시 쓸쓸해 하는 낯으로 나와 너의 엄마를 번갈아 보더니 그대로 엄마의 품에 안기어 잠이 들었다. 너의 엄마의 두 젖을 꼭 쥐고 이따금 움찔움찔 놀래면서 우리들 짬에 끼어 자고 있었다. 그런데 밤중이 되어서 무엇에 노래기나 하는 듯이 얼핏 눈을 뜨더니 벌떡 일어나 앉으며 두리번두리번하고 누구를 찾는다. 잠깐동안 두 어깨가 들먹들먹하고 동그래진 두 눈에 눈물이 어리더니 드디어 「엄마 -」하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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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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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엄마는 아해를 품안에 끌면서 「내가 엄마다」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울기만 한다. 그리고는 방의 구석구석을 찾으며 「엄마 엄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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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이 있나 많지도 않은 딸 하나를 못 길러 이 변이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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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를 안아 자리 속으로 끌어오면서 잠옷자락으로 눈물을 뻑 -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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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일에 울거야 뭐인가 그 애가 그래 할머니를 따르는 게 큰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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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 속에서 물끄러미 너의 모녀의 하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홱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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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잘못이라나 누가! 그래 딸이 엄마 품을 모르고 울며 지랄이니 그건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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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떠들지 마라! 아해 우는데 어른까지 떠들고 있나 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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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아마 큰 아해가 엄마의 품에 안겨본 마지막이며 울었든지 웃었든지 너의 엄마가 큰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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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해가 제 엄마의 젖을 쥐고도 저의 엄마의 품인 줄을 몰랐거늘 핏덩어리 같은 작은애는 말할 여지도 없다. 지금 그는 겨우 울 줄이나 알고 젖 빨 줄이나 안다. 그리고 알고서인지 모르고서인지 물끄러미 천장을 쳐다보다가는 버륵버륵 웃기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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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아해들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하여 참마음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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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해를 안고 눈물방울을 흘리는 너의 엄마를 꾸지람하며 젊은것이 창피하게 굴지 말라고 야단을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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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엄마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 어린 너희들의 생각을 하고 또한 엄마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린 너희들의 장래에 일종의 쓸슬함을 느끼게 되며 때때로는 너희들의 앞길을 밝혀 줄 단 하나의 큰 광명을 잃은 것 같이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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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세상 동무들이나 혹은 너희들까지도 나의 이런 완고하고 어리석은 감정을 비웃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 자신도 제3자로서 이런 경우를 보았을 때에는 역시 조소로써 그들을 대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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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에 어려서 자기의 엄마를 잃은 아해들은 수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처를 잃었다든가 또는 엄마를 잃었다는 일도 결코 드문 일이 아니고 매일같이 듣고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어린것들이여! 세상에 수없이 많은 일이라고 하여서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고 또한 세상에 허구한 일이라고 하여서 반드시 그것은 큰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돌이 지난 것과 나서 열흘도 안 되는 너희들이 단 하나의 엄마를 잃었다는 일 그리고 세상에 생겨서 건전한 감정과 이지를 채 가지기도 전에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천품과 개성을 싹조차 못 돋히고 그리고 또한 자기 몸을 가르듯이 이 세상에 내어놓은 어린 두 딸을 그대로 버리고 스물 세 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등지고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떠나서 땅속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이 일은 세상에 수없이 많은 일임에 불구하고 결코 작은 일도 또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생각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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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의 엄마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 것도 생각함이 없고 그리고 너의 엄마를 사랑하던 모든 사람이 너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 뒤에도 오직 너희들에게는 일찍이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서 비할 수 없을만한 큰 슬픔으로 비추어질 것을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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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너희들은 인생의 첫걸음에 인생의 수많은 적막의 저윽이 큰 부분을 맛보면서 ‘네부스키’의 탄탄대로 아닌 ‘형자의 소로’ 위에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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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사람스런 어린것들이여! 너희들에게 비할 수 없을만한 이 커다란 불행은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을만한 커다란 행복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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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행 탓에 그리고 이 슬픔 탓에 너희들은 인생에 대한 심오한 적막 앞에 부딪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너희들이 인생의 깊은 밑을 생각하고 또한 이것을 생활해가는 데 둘도 없는 탄력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너희들이 반드시 걸어나가야 할 이 인생의 행로 위에서 너희들이 부닥치고 그리고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할 수많은 장애물 앞에 세워질 때 너희들로 하여금 조금도 두려움 없는 「돌격」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가능성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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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불행으로만 돌려보내서는 아니 된다. 적막을 적막으로만 돌려보내서는 아니 된다. 불행한 탓에 또한 행복된 나의 어린것들이여! 너희들은 적막한 탓에 적막을 알고 적막을 안 때문에 인생을 생활할 줄 아는 그러기 때문에 또한 적막을 정복할 수 있는 너희들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40
너희들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생활을 영위하게 되기까지는 실로 수많은 형자의 길을 밟고 왔었다. 처음 서로 보게 된 지금으로부터 십 년전 엄마와 아빠가 다같이 열 다섯 살 되는 중등학교 2학년 때로부터 아빠가 잔잔하고 명랑한 너의 엄마의 가슴속에 비로소 젊은 피의 교란을 일으켰던 열 일곱살까지 싹트던 어린 사람의 시절에 대하여는 말치 않더라도 완전한 형태로 너의 엄마가 나를 그리고 너의 엄마를 내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때부터 기억을 들추어본다고 하드라도 우리들의 앞길에는 말할 수없이 많은 가시가 앞을 막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걸어나온 발자취를 보면 그것은 혹은 구렁에도 빠져보았고 또는 너무도 큰 바위를 뚫고 나갈 바이 없어 그것을 바라보면 한종일 한숨짓고 해가 질 무렵에야 드디어 그것을 피하여 딴 길로 헤매어 나온 적도 있었고 다리도 배도 없는 강물을 건너기 위하여는 종아리를 걷고 깊은 물 속에 들어서는 만용스러운 행로를 취한 적도 없지 않았었다. 또는 혹은 너무도 예상치 않았던 커다란 곤봉에 머리를 부딪치고 잠시 어떻게 우리들의 나아갈 방향을 잡을 길이 없어 깊은 밀림 속에서 서로서로 자취를 잃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고함치면서 헤매인 때도 없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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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동안에 너의 엄마와 아빠는 인생을 알기 시작하였다. 눈 녹는 언덕을 넘다가 가시덤불에 걸려서 넘어지고 무릎에 흐르는 피를 씻노라고 헌뜻 보는 눈에 죽은 가지에서 피어 터지는 새 움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봄인줄을 알았었다. 이백 도라고 녹일 듯이 내려쪼이는 폭양을 피하여 신작로 옆에선 백양목 그늘에서 땀을 그을 때 굴뚝 있고 양철로 지붕한 바라크 속에서 몰려오는 홍수물의 아우성을 들을 때에는 시절이 바야흐로 여름임을 알았었다. 혹은 때때론 비단결 같은 벽공에서 비행기의 우르르 소리를 들으며 홀로이 넓은 광야를 거닐다가 서리에 젖어 있는 들국화를 꺾어들고 때의 이미 가을이 지나갔음을 안 적도 없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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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것들이여! 이리하여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의 창공과 붉은 땅을 희게 줄그은 일직선의 라인 위에서 가을 하늘 속에 떠오르는 볼을 향하여 명쾌한 웃음을 던지던 너의 엄마는 어린 비둘기 같은 가슴속에 인생의 적막을 안게 되고 드디어 이것은 인생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하여 쏘아지는 힘있는 화살로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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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수다한 곤란과 수많은 탄압 속에서 너의 엄마로 하여금 나를 따르게 하고 또한 나로 하여금 너의 엄마를 따르게 한 단 하나의 힘있는 닻줄은 두 사람이 한가지 사람의 생활의 가장 진실한 곳에 탐구하려는 진집한 태도에서 생겨났었던 것이다. 그것이 얼마만한 족적(足蹟)을 사회에 남겼다는 것은 여기서 평가할 필요도 없거니와(왜냐하면 사실 우리들의 생활이 이 사회에 기여한 바는 그의 의도의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함이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우리들의 개인적인 생활을 공적인 생활에 종속시키려고 수많은 노력을 다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순을 없이하기 위하여 싸운 적도 운 적도 웃은 적도 많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너의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 생활의 위대한 고민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것은 너의 엄마에게 있어서나 나에게 있어서나 또는 나와 너의 엄마와 한가지 이 시대의 청년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나 어느 정도까지 숙명적인 것 같이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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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을 나의 어린것들이여! 이 「모순의 고민」은 결코 단순한 경멸과 조소로써 침뱉어 버릴 만큼 쓸데없는 물건은 아닌 것이다. 이 고민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의하여 너의 엄마와 아빠의 사상은 전진하였던 것이고 이 고민을 붉은 심장을 가지고 대하는 도수에 따라서 인간생활의 껍질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박힌 본질의 가운데에 너의 엄마와 아빠는 점점 가까이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이 세대의 고민하는 천년들이 이 고민을 전연 모르고 지나간다든가 또는 그의 표면만을 건드리고 지나가 버린다면 그것은 인생을 「생활」하였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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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나의 어린것들이여! 너희들의 엄마는 이 고민을 회피하고 달아날만치 비겁한 인간이 아니었고 그 고민이 온몸덩어리를 적실 때에도 언제나 이것과 싸우며 이것이 담긴 술잔을 힘껏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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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너의 엄마가 나와 완전히 서로서로의 가슴을 헤치고 그 속에 든 심장이 무엇을 말하고 있음을 이야기한지 얼마도 안되어서의 일이었다. 사실 열 다섯에 서로 얼굴을 대하고 열 일곱에 편지를 썼던 너희들의 두 어버이는 그 후 몇 해를 지낸 뒤 너희들의 엄마가 평양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년을 지냈었고, 그리고 너희들의 아빠는 일년을 뒤서서 평양서 동경을 향하여 건너가던 열 아홉살 되는 해 봄에야 비로소 얼굴을 대하고 마주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한없이 건방졌던 중학교의 졸업생과, 불길같은 자존심에 타고 있던 이 시대의 젊은 여학생은 그러나 불과 한 시간의 짧은 회담에서 단 한 가지 그들이 진실한 인간생활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하여는 그들의 열정을 불과 같이 일으킬 수도, 또한 그것을 억제할 수도 있다는 공통된 정신에 의하여 훌륭한 결합점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애매(曖昧)와 회의(懷疑) 속에서 그리고 자존심과 자존심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우리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심장을 서로 논하게 한 것은 오직 이 고귀한 공통점에 의하여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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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우리들 사이에 완전한 사상의 교환이 날을 다라 더욱 깊어가서 몇 날이 지난 뒤 - 그러나 그것은 실로 우리들의 오랫동안의 모색의 시대에 비하면 얼마도 안 되는 짧은 시일이 흘러간 뒤였다. 우리들의 사랑의 앞길에는 그 당시의 우리들의 힘으로써는 비상한 수단 아닌 평범한 교섭을 가지고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만한 커다란 바윗돌이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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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리 나의 두 딸이여! 너희들이 이 글을 보고 있을 그 시대의 변하여진 사회적 환경을 자지고는 이때 너희들의 엄마와 아빠가 당하고 있던 이 장애물과 이것을 격퇴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하였는가 하는 모든 사정은 지극히 몽롱하게 밖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이때 이 시대에 살고있던 너의 아빠와 엄마의 마음에도 지극히 불합리하게 생각되었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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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애물 커다란 바윗돌이란 너의 아빠와 엄마가 성과 본이 다 - 같다는 이유에 의하여 너의 엄마의 머리와 온 - 몸을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을 완전히 부숴 없애겠다는 가정의 탄압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50
방학 때에 고향에 돌아간 너의 엄마는 감금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너의 엄마는 칼날 같은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나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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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것들이여! 아빠에게 절교를 선언하던 너의 엄마의 가슴도 물론 그 사람아닌 우리들에게는 상상할 여지조차 안 주겠지만은 그 선언을 받아 쥔 너의 아빠의 마음도 결코 심상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너희들이 용이하게 생각할 수 있음과 같이 너의 아빠는 한없이 격분하였다. 그때에 내가 보낸 편지는 지금 여기에 남아있지 아니하지만(생각컨댄 내가 너의 엄마에게 보낸 모든 편지가 너의 엄마에 의하여 간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시기의 것만은 찾을 수 없음은 아마도 그 편지를 부모의 보는 눈앞에서 찢어버렸던가 혹은 그 후에 그 편지가 주는 너무나 심한 고통의 탓에 드디어 그것을 소각하여 버린 것이라고 보아진다.) 그 내용은 지극히 격렬하였다. 사실 나로서는 가장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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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바퀴를 후퇴에로 이끌려는 가장 반동적인 봉건적 잔재의 최후의 발악 밑에 머리를 수그리고 굴복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 편지에 썼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에 너의 엄마를 「여태껏 가지고 있는 소부르주아적 근성을 그대로 발로한 일화견주의(日和見主義- 너희들이 살고있을 새로운 세대에도 내가 가장 큰 영예를 느끼면서 사용한 이 문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에 사로잡힌 가장 악한 동물」이라고 아마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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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붓으로 쓸 수 있는 갖은 욕설을 나열하여 보내고 나는 가슴이 좀 시원하여지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론 마음의 공허와 걷잡을 수 없는 적막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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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의 고향의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내가 그가 절교하여야 할 이론적인 근거를 긁어모아 솜같이 피어오르는 적막한 정서를 압박하기에 한 나절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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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학상으로 보아 혈통결혼이 좋지 않다는 증명은 넉넉히 얻을 수 있겠지마는 대체 성이 같고 본이 같다는 것이(수효가 적은 성과도 달라서 우링의 성은 이 세상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도덕상에 어그러진 담은 무엇일 것이냐! 더구나 사촌끼리의 결혼을 인정하는 법률이 조선에서는 동성동본간의 결혼까지를 금지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당연히 타파하여야 할 봉건적인 잔재까지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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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이해의 힘을 가져야 할 나의 어린것들이여 여기서 우리는 원망을 개인적이 곳에로 돌려보내서는 아니 된다. 너희들의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에게 그리고 너희들의 친조부모에게 이 원한을 돌려보내서는 아니 된다. 너희들이 이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하여는 단순한 법률적 해석이라든가 내지는 풍속과 관습에 대한 연구로만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오직 과학적인 정치적 시각에 섬에 따라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서만 너희들은 이 사건의 책임을 정당하게 돌려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57
어쨌든 이 사건이 가져다 준 결과대로 너의 엄마와 내가 완전히 절교를 하고 말았다면 모든 것은 보다 간단하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너희들도 아마 나의 딸로서 이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너희들의 엄마의 죽음도 이렇게 이르게 쇄도 (殺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들에게 이 글을 쓰고있는 이 마당에서 이런 공허한 소리를 하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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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교는 일개 년 밖에는 더 계속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일년간은 우리들에게 ‘정서의 힘을 이지로나 자존심으로나 혹은 이성의 힘으로’ 억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전 몸뚱이를 가지고 느끼게 하였음에 불과하였다. 이 1년 동안 너의 엄마는 운 적도 많았을 것이다. 쓸쓸해한 적도 많았을 것이다. 수많은 유혹과는 억센 반항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의 대부분을 냉정하게 생각으로 보내기도 하였으리라! 너의 아빠를 의심도 하고 미워도 하고 욕도 하고 원망한 때도 없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너의 엄마의 심장에는 결코 피가 식어 있은 것도 아니었고 너의 엄마의 머리는 정당한 것과 정당치 못한 것을 분간할 수 없을 만치 흐려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59
…(이하 13행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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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안에 너희들의 큰 것이 이 세상에 생겨날 것이 우리들에게 약속되었다. 이 새로운 생명의 불행은 이때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그때에 불과 스물 한 살씩이었다. 열 달이 지난 후에는 우리들은 싫든지 좋든지 아빠와 엄마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 엄마와 나는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 대체 우리들의 생활력조차 갖지 못하는 것들이 아해까지 낳으면 어떻게 살아나간단 말인가! 그리고 아해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얼마나 지장이 생길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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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듯이 몹쓸 아빠를 한없이 원망할 나의 어린것들이여! 생겨나는 생명을 저주할 권리는 한가지 인간인 우리에게는 아무에게도 부여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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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엄마와 아빠를 무책임한 철부지들이었다고 원망할는지 모른다. 나는 그 원망을 달게받을 것이다. 너희들은 우리들 속에 태어난 탓에 뱃속에서부터 적지않은 고통을 받았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안될 때엔 뱃속에 든 아해를 꾸짖은 적도 없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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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희들의 엄마의 용기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가정과의 최후의 격렬을 「반역의 여행」(너의 엄마가 가정과 충돌하고 고향으로부터 서울을 향하여 올라가던 여행을 이렇게 불렀었고 이것은 드디어 너의 엄마와 아빠가 같이 여행한 최초이고 또한 최후의 것이 되고 말았다.)으로 수행한 너의 엄마는 서울에 머물기로 결정된 너의 아빠와 그해 오월 달이 오기 전에 동대문 밖에 방을 얻고 돌구방살이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다. 너희들 중에 큰 아해는 이러는 동안 엄마 뱃속에서 점점 커갔다.
 
64
생활은 구차하였다. 여러 가지 관계로 너의 아빠와 엄마는 함께 산보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가장 아리따운 윤택 있는 색채로써 길지 않은 너의 엄마의 역사를 물들였던 것임에 틀림은 없다.
 
65
나의 어린것들이여! 그러나 우리에겐 이러한 가정 내의 단란을 맛보는 것은 지극히 적당치 않았었던지 드디어 우리들의 생활은 시작된 지 몇 달이 못되어서 8월 12일이란 가장 증오할 날에 의하여 단절되고 말았다.
 
66
그리하여 그해 시월(十月)엔 장차 몇 달 몇 해라고 한정할 수 없는 장구한 시일동안 너의 아빠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바세계의 일절과 몰교섭한 생활을 서대문 밖에서 지내야 한다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아빠는 피의자로부터 피고가 되어 예심에 회부된 것이다.
 
67
이 새에 일어났을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을 나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를 빼앗기고 혼자 남은 너희들의 엄마에 대하여서도 여기서는 오직 너희들의 비상한 상상력에 맡기기로 한다. 생활비의 들어올 곳은 막연하였다는 것 그리고 너의 엄마는 연령관계(너의 엄마는 약제사였는데 나이가 어려서 면허증이 아직 나오지를 않았었다.)로 아직 취직하여 있지 못하였다는 것 아해는 세상에 나올 날을 두 달로 세면서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너희들의 엄마는 친정에도 시가에도 가서 있을 형편이 못되었다는 것 - 이것만을 간단 간단히 추려서 생각하여 본다고 하여도 그때에 너의 엄마의 가슴이 어떠하였는가를 손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68
오랜 시일동안 그 속에서 살면서도 내가 눈물을 흘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란 나의 귀여운 어린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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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그때의 딱한 너의 엄마의 형편을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한숨과 눈물을 억제하면서 나를 격려하고 있던 너의 엄마의 신경을 편지 위에서 읽으면서 두 눈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 오! 귀여운 나의 어린것들이여! 너희들은 나의 사나이답지 않음을 비웃었을 것이다!
 
70
너희들의 엄마는 드디어 혼자서 아해를 낳았다. 12월 21일! 이날 너희들 중의 큰 것이 비로소 첫울음을 친 것이다.
 
71
그 후에 나에게 온 편지와 그리고 그 때에 쓴 엄마 자신의 수기를 보면은 그날 오후에 너희 외할머니가 시골서 올라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2
그러나 내가 첫 아해의 탄생을 안 것은 그 해를 넘어서 정월달이 다 - 가서였다. 한달 후에야 나는 비로소 너희들 중의 큰 것이 우리들과 함께 거친 인생의 길을 생활하려고 우리들 속에 생겨나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편지를 받아들고 우선 안심하였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대체 어찌나 되었는지를 앞길이 망연하여 궁금하기가 짝이 없었던 것이다.
 
73
“나와 어린 아해(딸)는 모두 건강하오 아해는 꼭 당신 닮았소.”
 
74
나는 잠깐 새로 난 어린 아해의 얼굴을 상상하여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꼭 닮았다는 너의 엄마의 글이 하도 우스워서 혼자 빙그레 웃었던 것이다. 이 웃음이 아마 새 생명을 향하여 웃어진 첫 웃음일 것이다.
 
75
나의 어린것들이여! 그 다음부터의 너의 엄마의 생활에는 새로운 장애물이면서 또한 너의 엄마와 함께 싸워나갈 생활의 적은 병사가 하나 더 참가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76
사실 어린 아해를 잔등에 업은 그 후부터의 너의 엄마는 살아가야 한다는 불길 같은 열정과 옥중에 있는 남편을 위하는 가장 진실한 열정의 화신(化身)이었다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7
나는 너희들의 엄마가 이 동안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잔등에 업힌 어린것과 울 속에 있는 남편을 위하여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랑을 가지고 행동하였는지 통틀어 너의 엄마가 얼마나 굴할 줄을 모르는 위대한 생활의 용사였는지 그것에 대하여 조금치도 과장한 서술을 가지고 싶지는 아니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있는 그대로의 너의 엄마의 생활을 묘사한다고 하여도 너희들은 나를 가리켜 ‘그것은 죽은 사람이니’ 혹은 ‘그는 자기가 편애하였던 까닭에’ 객관적인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불순한 생각으로부터 지금은 없는 너희들의 엄마 그리고 나의 단 하나의 처의 위대하였던 생활의 기록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그것에 관한 일체의 서술을 여기서 오직 강경한 이지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나의 어린 두 딸, 너희들의 조금도 편벽 없을 상상력에 맡기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내가 너희들 중에 큰 것을 처음 보던 때의 잊을 수 없는 광경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라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78
그것은 가을이 짙어가던 어떤 날의 정오였다. 미결감의 감방은 점심 먹은 그릇을 치우노라고 엄중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벌 둥지를 쑤신 듯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79
나도 아홉 구(九)자 박힌 주먹만한 밥덩어리에 부추김치를 놓아서 뱃속에 쓸어넣고 나서 한잔씩 돌아가는 더운물로 목을 축이고 마루판장을 쓰는 동무의 꽁무니에 손수건을 찌르노라고 날카로운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간수의 눈과 마루 쓰는 동무의 두 눈초리를 피하면서 깨닫지 못하게 손수건을 찌르노라고 갖은 야릇한 자태를 다 - 부리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중앙에서 우리의 감방번호와 나의 호수를 부르는 간수의 소리에 마치 나의 장난이 발각되기나 한 때같이 전신을 소스라쳤다.
 
80
“엑키! 고햑구주 - 상고 꾸러안저!”
 
81
나를 멍 - 하니 보면서 벙긋벙긋 웃고있던 간도 친구 하나가 나를 찌르며 웃었다. 나는 그가 찌르는 바람에 방 쓸던 동무 잔등에 엎어질 듯 하면서 겨우 꼬부라졌던 몸을 일으켰다.
 
82
그러나 나를 부르는 간수의 목소리가 면회담당이고 너희들의 엄마가 열흘에 한번씩 면회할 조건을 얻었던 후였으므로 누구나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지극히 반가워할 호출이었다는 것을 생각게 하였다.
 
83
“이번 나가면 말큰한 손목이래두 한번 쥐어보구 오우”
 
84
이런 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쇠 열던 방을 뛰어 복도로 나가서 그 앞에 놓인 삿갓을 썼다. 가슴은 잠깐동안 두근두근하였다. 그러나 나는 늘 맑은 태양을 쪼이며 복도를 걸어나갈 때와 같이 그때에도 마음속으로 중학 시대 외었던 시라 - 의 시의 한 구를 웅얼거리는 것이었다. - 이 땅이 아직도 아름답구나 사람된 것도 또한 둘 없는 기쁨이로세 -
 
85
나는 뜰을 건너 면회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비둘기장 같은 네모난 방에서 혼자 눈앞에 내려온 창문이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더니 대합실에서 너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너의 엄마의 대답하는 소리가 나고 그 다음 한참동안 간수와의 대화가 들려왔다. 너의 엄마의 말소리는 똑똑히 들리지 않았으나 간수의 목소리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86
“글쎄 예심판사는 인정상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감옥법에 의해서 행동하는 우리는 14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면회를 허가할 수가 없습니다.”
 
87
너의 엄마는 한참 잠잠하고 있더니 좀 목소리를 높여서 다시 요구를 주장하여 본다.
 
88
“글쎄 요게 같이 들어간다면 무슨 이야길 할 겁니까 그러니 별로 면회랄 것도 없지 않아요? 잠깐만 비공식으로……애가 이렇게 크도록 제 아빠를 보지도 못했기에 말입니다.”
 
89
그러나 간수는 강경하였다.
 
90
“한 사람을 허하면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줍니까 그러니까 결국 규칙은 무시되고 말지요.”
 
91
너의 엄마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았던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4, 5인의 사람들에 끼어서 면회하는 방으로 들어 온다. 방안에 들어온 너의 엄마는 “대체 나의 남편의 얼굴은 어느 방에서 쑥 나타날 것인가” 하는 듯이 우리들이 들어있는 곳을 두리번두리번 하였다. 나는 그 모양을 문틈으로 내다보며 목구멍에 침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면회는 간단하게 끝났다. 자주 면회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으나 간수는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사람을 먼저 다 - 끝마치고 맨 - 마지막에야 우리들의 문을 닫았다.
 
92
“만일 그렇게 아해를 보여주고 싶거든 나가서 면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 가도록 기다리슈.”
 
93
간수는 비공식으로 어린 아해와의 대면을 허락한 것이다.
 
94
너의 엄마의 기뻐하는 얼굴이 그의 ‘고맙습니다’하는 말소리로 상상할 수 있었다.
 
95
나의 가슴도 뛰었다. 벌써 열 달이 되었으니 아해가 얼마나 컸을까? 튼튼하게 생겼는가? 나같이 생겼다더니 그것은 사실인가? 혹 ‘아빠!’하고 나에게 안기려고 하다가 간수에게 제지나 받지 아니할까? - 길지 않은 시간동안 나의 머리는 착잡한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그리고 머리 속은 벙벙하니 뒤섞였다.
 
96
창문이 다시 올라갔다. 나의 앞에 엄마 품에 안긴 아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97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울타리에 다리를 걸치고 꼽풀꼽풀 뛰어오르는 어린 것의 재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98
“너의 아버지다. 안녕하슈 - 하고 악수해라!”
 
99
엄마는 아해의 손을 잡아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언뜻 그 손을 잡으려고 하였다가 감옥의 규칙을 생각하고 그대로 묵묵히 서 있었다. 한참동안 물끄러미 어린것의 재롱을 보고 섰다가 나는 아버지다운 위엄을 자지고서
 
100
“됐다! 이젠 가라! 엄마에게 너무 성화시키면 안돼!”하고 같이 말귀를 알아듣는 것과 말하듯이 훈계를 한 것이다. 그때엔 나는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하는 것을 참마음으로 느끼면서 어쩐지 갑자기 늙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처음 한 말이 하도 부자연스러워서 혼자 돌아오면서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101
“어서 커라! 어서 커라!”
 
 
102
나의 어린것들이여! 지금은 너희들 중의 작은 것이 이 세상에 생겨나올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될 순서에 도달하였다.
 
103
작은 것이 우리들 속에 생겨난 것은 너의 아빠가 보석이 되어서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훨씬 넘어서 금년 1월 초 여드렛날 오전이었다.(내가 보석이 되어서 나온 것은 큰 아해의 첫돌을 이틀 앞둔 날, 첫 겨울밤이 부슬비로 깊어가던 12월 19일 날이었다. 그때 너의 엄마는 어떤 약국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남편과 아해와 생활을 위한 불같은 열성에 너의 엄마와 반목하였던 모든 사람이 다시 그의 주의에 돌아오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큰 아해의 첫 돌 잡는 것을 보는 겸 사위의 보석 출옥을 맞으려고 상경하셨던 너의 외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너의 엄마와 그의 많은 친구들과 함께 감옥문을 나서는 나를 맞아주었다. 그후 너희들 중의 작은 것이 다시 우리들 속에 생겨날 것이 약속되었을 때 우리 세 가족은 서울에서 평양으로 왔었다.
 
104
너희들의 엄마의 앓는 소리를 바람에 나불녀오듯이 먼 - 곳에서 듣는 듯하였다. 그것은 끊어졌다간 다시 들려오곤 한다. 그것이 갑자기 귀밑에서 ‘아이고 배야 -’하고 외치는 소리로 들렸을 때 비로소 나는 곤하게 들었던 잠을 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는 배를 쥐고 진통을 참느라고 전 몸뚱이를 떨고 있는 너의 엄마를 보고 전신에 소름이 끼치듯이 정신이 퍼쩍 들었다.
 
105
“몇 시간이나 됐어?”
 
106
“네시부텀 -”
 
107
간신히 대답하고 그는 다시 전신에 몰려오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다물었던 입술을 열면서
 
108
“아이고 -”
 
109
한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다.
 
110
두 시간 동안 내 옆에서 앓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자고 있던 것이다. 나는 될수록 침착하여지려고 하였다. 같이 있던 중년세의 여인이 부엌에서 불을 때고 분주히 왔다갔다한다.
 
111
「인제 갈까! 산파한테」
 
112
나는 허리끈을 매고 외투를 입으면서 물었다. 나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었다.
 
113
「아직도 몇 시간이나 있을 텐데 -」
 
114
겨우 요것까지를 말하고 다시 「아이고 -」한다.
 
115
너의 엄마는 첫아해를 8, 9시간 진통 후에 낳았다는 소리를 가끔 하였으므로 나의 보기에는 진통이 잦은 데도 불구하고 너의 엄마는 너무 이르게 산파를 불러다놓고 괴로움을 끼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해를 내어주겠다고 한 산파는 너의 엄마의 여학교적 동창으로 그후 늘 가까이 지내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보수도 변변히 안 받으려고 할 산파를 더구나 다른 곳에 취직하여 있는 몸을 그렇게 미리부터 불러다 놓기가 미안하다는 생각을 너의 엄마는 가졌던 것이다.
 
116
나는 잠깐 물끄러미 보고 섰다가 진통이 몰려오는 시간이 점점 잦아지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의 눈에도 시기가 급박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117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은 훤 - 하니 밝아서 거리의 전등이 히슴스러히 빛을 잃고 있었다. 매운 새벽바람이 거리를 스치며 눈을 뜨지 못하게 나의 얼굴에 부딪혔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내어 입에다 막고 서문거리를 종로로 달음질쳐갔다. 먼지 섞인 바람이 다리에 외투에 얼굴에 할 것없이 몇 번인가 나의 뛰는 걸음을 느리게 하였다. 네거리에서 왼편으로 꺾어 돌아 상 앞을 향하여 나는 아직도 달아나고 있었다. 살이 후끈후끈한 게 몸에는 땀이 쭉 - 나와서 셔츠는 물에 축인 듯하였다. 마스크 속에 넣은 가 - 제가 물에 적신 듯하고 두 눈에는 서리가 맺히었다.
 
118
나는 산파의 집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태우려고 뛰는 다리를 좀 느리었다. 그러나 뛰는데 일심하느라고 잊어버렸던 산모의 진통하는 모양이 번개같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느려졌던 두 다리의 근육은 다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다시 줄달음질을 친다.
 
119
내가 장댓재 밑에 있는 산파의 집 대문을 두드렸을 때엔 전몸이 땀에 젖었었고 고함을 칠 수가 없을 만치 숨은 하늘에 닿을 듯하였다.
 
120
“누구요!”
 
121
“서문거리에서 왔는데 해산하게 됐어요!”
 
122
나는 동리를 뒤집을 듯한 큰 소리를 자아내어 몽둥이 같은 말을 대문 틈으로 던졌다. 한참 있다 대문이 열리고 잠옷 위에 망토를 걸친 산파가 나왔다.
 
123
“아픈지 몇 시간이나 됐어요?”
 
124
“글쎄 네 시부텀이라니 한 두 시간 잘 넘었겠지요.”
 
125
“그럼 아직 좀 시간이 있을 듯싶구려.”
 
126
“그래두 제가 보건댄 급한 것 같은데요.”
 
127
산파는 잠깐 생각하더니
 
128
“그럼 내 지금 옷 입고 곧 가지요.”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뛰어온 길을 도로 왔다 뛰지는 않았으나 발은 빨리 옮겨놓았다. 산모의 괴로워하던 모양이 몇 번씩이나 눈앞에 나타났다. 순산이나 하려나? 오늘 종일 앓기나 하면 어찌하나? 이번에도 또 딸을 낳으려나? 혹은 번갈아 아들을 낳으려나? 나는 두 아해의 아빠가 되는구나 새 생명이 생기기에는 온몸을 뒤집을 듯한 진통이었다. 그것이 생의 고민(生의 苦悶)이다. - 나는 순서 없는 생각에 잠겨서 아침을 맞는 평양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머리 속은 공상의 줄을 타고 각 곳으로 헤어졌다. 그러나 나의 다리는 처음의 속도로 조금도 느리지 않고 집으로 집으로 걸어갔다. 눈앞에 나의 집을 보고야 비로소 나의 정신이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괴로워하던 산모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뛰어들어가
 
129
“어떻게 되었소?”
 
130
하였다.
 
131
“산파 옵네까? 벌써 낳았시요.”
 
132
나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133
“뭐 벌써 낳았어요?”
 
134
“태를 못 낳았시요? 어서 가 산파 오래라구요.”
 
135
나의 머리는 아무런 생각을 가질 여지가 없었다. 산파는 아직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니 한 시각이라도 속히 그곳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온몸둥이에 퍼진 신경을 긴장시켰을 따름이다.
 
136
산파를 앞세우고 와서 그를 방안에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간은 공포가 온몸을 싸고돌았다.
 
137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138
산파의 이 말이 떨어진 다음에야 굳어졌던 몸이 다소 안심 속에 풀어지는 듯하였다.
 
139
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과 눈에 어린 서리를 씻고 외투를 벗어서 의자 위에다 놓았다. 긴 - 숨이 후 - 하고 목구멍으로 나왔다. 옷고름을 풀면서 가만히 방안의 동자를 살피노라니 새로 생긴 아해가 아들인가 딸인가 하는 것을 알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가슴 속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산모에게 대하여 이런 것을 먼저 묻는 것은 미안한 듯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주저하였다가 드디어 웃는 말 비슷하게
 
140
“뭘 낳았소?” 하고 물은 뒤엔 웃음으로 흐리었다.
 
141
“기집애얘요 -.”
 
142
대답한 건 다른 사람 아닌 너희들의 엄마였다.
 
 
143
나의 어린것들이여! 이것으로써 아빠는 빈약하고 치열한 표현을 가지고 너희들이 이 세상에 생겨나 오던 때의 이야기를 너의 엄마를 대신하여 여기에 기록하였다. 만일 너희들의 엄마가 너희들의 작은 것을 낳고 아흐레만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이 이야기를 나의 불충분하고 살커리 없는 기록에서가 아니고 재미나게 말할 줄을 아는 너희들의 엄마의 입에서 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어린것들이여! 만일 너의 아빠가 이것을 이 기록 속에 남겨두지 않으면 너희들은 누구의 입에서든지 이것을 들을 수가 없을 만치 쓸쓸한 고독 속에 있는 것을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반드시 기록하여야 할 나머지 한 구절에 대하여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느끼고 있다. 사실 여기서 불과 아흐레를 지난 뒤의 일이고 또 너희들은 나를 한없이 원망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44
그러나 비상히 풍부한 정서의 힘을 가져야 할 나의 두 어린것들이여! 첫째로 내가 그것을 기록하기 위하여는 그 일을 두 번 당하는 이상의 막심한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을 너희들은 이해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나는 그것을 냉정한 머리를 가지고 기록하기에는 너무도 그 일을 겪은지 시일이 엷다는 것을 생각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45
두 번 다시 고통을 맛보는 것 - 나는 이것을 헛되이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생각지 아니하고 그 가장 미워할 날의 새벽의 정경이 눈앞에 떠오를 때엔 나는 모든 정신을 잃을 만큼 머리의 혼란과 심장의 욱심한 교란을 맛보곤 하였다. 나는 벌써 몇십 번이나 그것을 맛보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그가 주는 고통 때문에 붓을 놓고 정신이 가라앉아서 완전한 기력을 가질 때까지 몇 번인가 글을 중단하였던 것이다. 이제 내가 너의 엄마가 감각하기를 영원히 정지하던 날 아침에 대한 기록을 가지려고 그날에 일어난 모든 것을 다시금 회상한다면 내가 그것을 붓으로 옮기기는커녕 당분간 이 글을 중단하여야 할 운명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원망을 나의 눈앞에 보면서도 이 자리에서 그것을 기록하기를 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머리가 다시 건전하여졌을 때 그리고 나의 기억력도 다시금 전과 같이 회복되었을 때 나는 어떤 기회를 이용하여서든 너희들에게 그 때의 소식을 남겨둘 것이다.
 
146
어쨌든 산후에도 별다른 병상을 나타내지 않았고 평시에는 누구보다도 건전하던 너의 엄마의 위에 질풍과 같은 속력을 가지고 죽음이 쇄도할 때 너의 아빠는 그것을 걷잡기에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나는 그때 이상 나의 무력함을 맛보았을 때는 없었다. 나는 너의 엄마의 몸에서 더운피가 식기 전한 시간까지도 너의 엄마가 죽음과 싸울 힘이 그렇게 약하였고 또한 나에게나 너희들에게 이런 불행이 오리라고는 사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었다. 나는 그후 내가 얼마나 노둔한 놈인가를 스스로 비웃었다. 나는 이것이 너희들에게서 단 하나의 엄마를 떼어버린 모든 원인같이 생각되어 너희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너희들의 엄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 속에 고민하곤 하였다.
 
147
너의 엄마의 몸으로부터 따스한 온기의 마지막 한 도까지를 가져가고 뜨겁던 피는 완전히 식어버려 드디어 죽음이 우리들 속으로부터 너의 엄마를 영원히 가져가고 말았을 때 생겨나서 며칠 동안도 엄마 품에 안겨보지 못한 어린 아해는 우리들의 방으로부터 친척집으로 옮겨갔다. 이리하여 작은 아해는 영구히 자기 엄마의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148
그 이튿날 시골서 부고를 받고 너희들 중의 큰 것을 사람에게 업히고 우리들 곁으로 나오신 너희들의 외할머니가 엄마의 죽은 얼굴이나마 아해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강경히 반대하였다. 물론 아해가 엄마의 얼굴을 본대야 그것이 누구인지 또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를 것이 사실이지마는 아빠의 마음으로선 오래간만의 모녀의 대면을 이렇게 참혹한 얼굴로써 시킬 수가 없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해에게 인생의 죽음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때의 일이라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광경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리고 죽는 날까지 뚜렷하게 회상할 수 잇는 일이 있는 것을 나는 생각하였다. 평시와는 완전히 달라진 참혹한 너의 엄마의 주검의 얼굴이 강렬하게 인상 박혀 생장하는 너희들을 괴롭힐 것을 나는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잔약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너희들의 눈앞에서 엄마를 영원히 가리워버리고 만 것이다.
 
149
너희들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사흘만에 엄마의 몸은 보통벌 한중복판서 장대 묘지에 묻혔다. 수많은 유신론자들의 무덤행렬 속에 철저하였던 유물론자의 무덤은 참렬한 것이다. 이리하여 너의 엄마는 지금 서로 남으로다 보통벌을 줄긋고 다라가고 다라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멀리 용악산 밑에서 불어오는 보통벌 위의 찬바람이 솔잎 속을 지나가는 와 - 와 - 소리에 안기어 언 땅속에 홀로 누워있을 것이다. 감각과 사색의 모든 것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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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너희들 중의 큰 것을 업고 그날로 돌아가셨다. 작은 것은 아빠의 고향으로 보내기로 결정되어 엄마의 장례가 있은 이튿날 아침 솜옷에 파묻혀서 자동차를 탔다. 그날은 평양서도 드물게 보는 찬바람이 하늘을 울리는 날이었다. 불과 두 세시간의 여행이지만 핏덩어리 같은 어린것이 젖한모금 먹고 추운 차 속에서 시달릴 생각을 하니까 아빠의 마음은 한없이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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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머지 모든 것을 정리하느라고 한 주일동안을 평양서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아해는 십 년 동안이나 병중에 신음하시는 너희들의 친할머니의 품속에 안기어서 자고 있었다. 입에는 너의 엄마의 젖 아닌 고무젖꼭지를 물고 젖, 엄마의 품, - 그렇다! 어린 너에게서 이 이상 더 귀중한 것이 또 무엇이겠느냐? 그러나 불행한 어린것이여! 너는 이 둘 중의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를 못하는구나!
 
152
내가 웃방에서 혼자서 글을 읽든가 혹은 무엇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어린것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아랫방으로 내려가려고 한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 그러나 미닫이를 열려고 내밀었던 손이 힘을 잃고 나의 두 발이 장판 위에서 못으로 박기나 한 듯이 움쩍도 안 할 때에 이 아빠의 가슴은 예리한 칼로 에워내는 듯이 아픈 듯하였다. 무엇이 이 어린 것의 울음을 짜아내는가! 무엇이 이 어린것에게서 젖을 빼앗고 품을 빼앗는가!
 
153
마음이 가라앉은 어떤 때에는 나는 어린것이 누워있는 아랫목에 가서 물끄러미 너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그때에 너는 무엇을 찾는 듯이 동그란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없는 무엇을 구하는 듯이 혀끝을 내어서 두르곤 한다. 나는 고무젖꼭지를 물에다 씻어서 너의 입으로 가져간다. 젖꼭지가 너의 볼편에나 닿으면 너의 작은 입은 곧 그것을 따르고 빨간 혀끝이 그것을 끌어들이려고 갖은 힘으로 애쓰고 있다. 나는 참혹한 잘못이나 한 것처럼 부리나케 젖꼭지를 너의 입에다 넣어준다. 너는 그것을 마치 젖이 나오는 젖꼭지같이 혹은 따듯한 엄마의 젖꼭지인 듯이 쪽쪽 소리를 내며 빨고 있다. 나는 가슴에 눈물이 어리어서 너의 모양을 그 이상 더 보고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쓰린 가슴을 안고 웃방으로 올라와서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머금고 넋없이 창문만을 멀거니 바라보고 섰었다. 나는 어리석은 줄을 알면서도
 
154
“인생은 너무도 적막하구나.”하고 새삼스러운 느낌을 느끼는 것이었다.
 
155
나는 고향에서 일주일을 지내서 너희들 중의 큰 것을 볼 겸 또 너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로도 할 겸 너희들의 외가를 찾아갔다. 내가 대문 앞까지 갔을 때 아해는 외할머니 등에 업히어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156
“아부지 온다 인사해라 응?”
 
157
외할머니는 모든 슬픔을 억제하시면서 너의 얼굴을 나에게 돌려대었다. 낯은 익은 사람인데 누군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시키는 대로 고개를 끄덕한다. 나는 무슨 말을 줄 수가 없어 너의 옆을 지나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158
날씨나 따뜻한 날은 너는 마루에 나가 뱅글뱅글 돌면서 뭐라고 혼자서 노래를 잘 불렀다. 겨우 쉬운 말이나 할 줄 아는 너는 물론 가사도 곡조도 제 마음 대로다. 다리 부러진 인형을 잔등에 업고는 제법 착착 두들기면서 자장자장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누가 방해를 하든지 하면 너는 눈살을 찌푸리고 달려들었다. 내가 유리창 밖으로 너의 노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너의 외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재는 아마 음악가가 되려는 게야.”
 
159
하셨다. 사실 라디오 같은데서 은근한 음악소리가 나면 이상하리 만치 열심히 그 밑에 가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경쾌한 재즈곡 같은 것을 할 때엔 두 어깨를 달삭달삭하며 춤을 추다간 우리들이 보면 웃으면서 뛰어와선 무릎 위에 안기었다.
 
160
나는 너의 머리르 안고서
 
161
“넌 음악을 좋아하냐?”
 
162
하고 물었다. 그러나 좋다는 건 좋지만 ‘음악’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응?’‘응?’하곤 두 번 세 번 묻는 바람에 나는 쩔쩔맨 때가 있었다.
 
163
“너의 엄만 수학 못할까봐 늘 걱정했단다.”
 
164
나는 너를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말하였다.
 
165
“쟤가 수학을 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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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나의 말을 반대나 하시듯이 꺾는다.
 
167
“엄마 아빠가 다 - 수학을 안 했답니다.”
 
168
“응! 그럼 애비 애미 닮을까봐! 그래서 아마 따님도 예술에 취미를 가지시는 모양이군”
 
169
하곤 일동을 웃기셨다.
 
170
아침 같은 때에 너는 일찍 일어나서 외할머니 품을 떠나 내가 자는 방문을 가만히 열곤 나의 자리를 살며시 올려다 볼 때가 있었다. 나는 이리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면 그대로 다시 살며시 문을 닫고 가버릴 때도 있고 달랑달랑 걸어와서 나의 머리맡에 앉을 때도 있다. 이불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오라며 너는 머리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171
“시여 -”」
 
172
하고 가만히 말했다. 그리곤 머리맡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간 알기나 하는 듯이 병아리 소리 같은 목소리를 내어서 읽을 때도 있고 책 틈에 끼이니 너의 엄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있다. 엄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볼 때엔 아빠의 마음은 한없이 적막하여졌다. 아무 말도 안하고 주둥이를 쏙 내밀고 눈떡을 좀 짓는 듯 하면서 사진을 보고 앉았는 모양을 누가 눈물 없이 볼 수가 있을 것이냐! 나의 손은 마치 못 볼 것이나 보인 것같이 너의 두 손에서 엄마의 사진을 빼앗아 버린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너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그대로 그 표정을 깨트리지 않고 무엇을 생각하듯 이 한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지 않느냐 오! 적막한 어린것이여! 오히려 그 적막한 표정을 그만두고 너의 두 눈에 눈물을 보여다오!
 
173
불행한 어린것들아! 적막한 어린것들아! 너희들이 기뻐서 웃을 때에도 기분이 좋아서 재롱을 할 때에도 또한 울 때에도 쓸쓸해 할 때에도 이 아빠의 마음은 한가지로 쓰라린 것이다. 칼로 가슴을 베어내듯이 나의 마음은 아픈 것이다. 누구가 너희들에게 잃어버린 너의 엄마를 돌려보내 줄 수가 있을 것이냐! 누구가 너희들로부터 이 불행과 적막을 장사해줄 수가 있을 것이냐! 너희들의 외할머니일 것이냐! 혹은 친할아버지일 것이냐! 혹은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너희들의 단 하나의 아빠일 것이냐!
 
174
그러나 내가 너희들을 향하여 이 적막으로부터 너희들을 구하고 이 불행으로부터 너희들을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너희들 자신이라고 말할 때에 너희들은 놀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 인생의 적막은 반드시 죽음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죽음은 또한 무엇보다도 커다란 적막임에 틀림은 없지만은 인생의 막대한 적막의 덩어리에 비하면 극히 적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에 그리고 이 커다란 적막의 덩어리를 너희들이 없이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이 작은 적막과 불행으로부터 너희들이 구하여져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나의 이 말은 경이(驚異)도 아무 것도 아님을 알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 앞에 닥쳐오는 모든 적막을 회피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 술잔이 반드시 마셔야 할 술잔이라면 너희들은 조금도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마셔버려야 한다. 만일 너희들이 적막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버릴 때 그리고 적막의 껍질이 아니라 그 진실한 속을 맛보았을 때 너희들은 이러한 적막 속에서만 헤매고 있어서는 안될 것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시되는 길이 너희들 앞에 무엇으로 나타날는지는 물론 미래에 속하는 일이지마는 그러나 너희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가 참말로 진집한 것이었을 때 너희들 앞에 열릴 길은 명확한 것이다. 이 길을 정당하게 찾는 데서 잃어버린 너희 엄마도 다시금 너희들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죽어 있을는지 폐물이 되어있을는지 혹은 무용지물이 되어있을는지도 알 수 없는 너희들의 아빠도 너희들 속에서는 훌륭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175
어린것들이여! 지금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나의 어린것들이여!
 
176
나는 너희들을 지극히 사랑한다. 너희들의 엄마도 너희들을 한없이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은 너희들을 연약하게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을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위대하고 막대한 ‘것’에 대한 사랑으로 환원되어야 하고 이 속에서만 그것은 ‘생활’을 아는 사랑으로 될 것이다.
 
177
우리들의 사랑은 너희들을 결코 우리 가정 안에다 잡아두려는 편벽된 사랑이 아님을 말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너희들의 보수는 그러므로 너희들이 커서 있을 그 세대의 모든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어찌 엄마 아빠에 대한 진실한 효도인지는 그 때에 너희들에게 명백하여질 것이다.
 
178
너희들은 우리들이 사랑에 희생되어서는 아니 된다.
 
179
너희들의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을 나는 나를 위한 너의 엄마의 희생으로 돌리고 말았다.
 
180
남녀의 동권을 이론적으로 주장하던 내가 있음에 완강하게 사로잡힌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너의 엄마에게 흉폭한 언행을 취하고 난 뒤엔 나는 한없이 적막하였다. 그가 단지 여자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의하여 내가 그의 앞에 ‘타이랜트’로 임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유가 어디 있을 것이냐 이만한 고민을 극복하지 못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181
사실 너희들의 아빠는 수많은 희생을 가지면서도 그가 바치는 사랑과 힘을 훌륭하게 이용치 못한 어리석을 만치 무능력한 인간이었다. 물론 아빠는 젊다! 나이도 젊고 생각과 이지도 젊다!
 
182
너희 엄마의 죽음에 의하여 나는 다시금 막막한 인생의 광활한 무대 위에 너희들의 손을 이끌고 나서게 되었다.
 
183
너희들은 나와 함께 걸어나가야 한다. 용감하게 전진하여야 한다. 너의 눈이 앞을 보지 못할 때엔 아빠가 단 하나의 길을 찾으려고 애쓰기도 하자 너희들이 눈앞에 구렁치를 모를 때엔 너희들의 팔을 잡아끌기도 하자 그리하여 조금도 지각됨이 없이 용감하게 걸어나가자!
 
184
그러나 나의 어린것들이여! 만일 너희들이 이 길을 걸어갈 때에 이 무능력한 아빠가 너희들의 전진에 둘 없는 장애가 될 때엔 나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기도 하여라! 내가 다시 너희들을 쫓아 올 때엔 나를 다시 너희들의 대오 속에 넣어주기도 하여라! 그러나 뒤떨어지는 아빠를 마음에 생각하고 뛰던 다리를 멈추고 뒤를 돌려다 보아서는 아니 된다. 장애물이 되어버린 백 개 천 개의 「나」를 떨구고 넘어서 너희들은 전진하여야 한다.
 
185
……(이하 4행 략)……
 
 
186
성천(成川)서
 
 
187
(『우리들』, 1934)
【원문】어린 두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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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두 딸에게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성천군
 
  #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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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