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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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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6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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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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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거간이 사법 주임에게 본 대로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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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서 술을 한잔 걸쳤는지 두리두리한 눈알이 벌갰습너니다. 소를 말뚝에다 매어놓군 무얼 생각하는지, 넋 잃은 녀석 모양으로 멍하니 앉었길래, 이 소 팔라우 하니께, 대답두 안 하고 고개만 주억주억 하겠습지요. 얼마 받겠느냐구 물었더니 마음 내키지 않는 놈처럼 그대로 시세에 알맞게 팔아달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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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로 말씀하면, 참 다부지게 생긴 세 살째 먹은 암컷이었습너니다. 곱지를 쥐고 옹두라지루다 궁뎅이를 딱 치니께 건성건성 네 굽을 놀리는데, 그 걸어가는 품하고, 또 아기작아기작 궁둥이뼈 놀리는 모양하고 참말 한창 밭갈이에 신이 날 짐승이었습너니다. 기새미[刻草[각초]]같은 털이 기름이 돌고 윤이 나도록 짝 깔린 것으로나, 허벅다리나 가리짝이나 또 심태에나, 골고루 붙은 살고기가 제법 콩말이나 솔찬히 먹은 것이 완연한 것으로나, 지금 금새 타작 바리를 부리고 나선 놈하곤 어데 등골이나 그러한데 등창 자죽 하나 없는 품으로나, 그 녀석 생긴 품하곤 짐승은 퍽 손 익히 다루었다는 생각을 먹었습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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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 소 살 사람 없나, 어느 녀석이 사려는지 어젯밤 마누라하구서 횡재할 꿈꾼 놈이다, 자아 밭갈이나 논갈이나 짐 싣기나 발구(물건을 실어 나르는 마소가 끄는 썰매) 끌기나, 코에 걸면 코걸이요, 입에 걸면 입걸이요, 등에 걸면 등걸이다 ⎯. 한 번 소리를 치며 어정어정 소 우전 마당으로 들어서니, 나릿님, 아니할 말루 저두 세상을 얻은 것처럼 신이 났습지요. 참 우리네 소루 인연해서 먹구 사는 놈은, 좋은 소만 보면 그저 신이 나고 엉덩춤이 절로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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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네, 참 죄송하올세다. 히 히 히, 그저 소가 하두 좋길래, 그만 흥이 나서 나릿님도 처소두 깜박 잊었습너니다. 그럼 그 중간 것은 쇠통(전혀) 빼어버리구서 요긴한 것만 여쭙겠습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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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냥(85원)이면 비지 값인데, 그 녀석 환장을 했던지 아무 말 없이 털석 팔었겠다요. 흥정이 되어 농회 파출소로 가서 도장을 찍고, 돈을 찾을 때 보니께, 그놈 이름이 서두성이었습너니다. 서서이 점잖이 걸어간다는 서 자 입고, 이름은 말 두 자, 별 성 자 올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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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돈을 받아 쥐고 가도록 무어 말 한마디 입 밖에 낸 일 없습지요. 참 흉한 놈두 보았겠다, 필시 그놈 무슨 곡절이 있는 게 분명하다구 생각은 했습너니다마는 전 또 딴 , 흥정에 바빠서 미처 돌아볼 새도 없었는데, 그러니 그게 원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가량이나 되었을는지요, 어쨌든 신작로 기슭 뽕밭 최뚝에서 그 서두성이란 자하고, 바로 축산 기수 종칠이 김상하구서 마주 선 채 무슨 이야긴가 주고받는 걸 먼발로 보았삽는데, 그거 또 저야 그저, 안면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수작질하는 줄만 알았지, 어데 이런 병집이 터지려구, 말다툼을 하구 있는 줄이야 알었겠습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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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제가 그걸 말다툼인 줄 진작 알았다면야 김상 낯을 봐서나, 또 서가 놈 역시 내손으로 소를 팔아준 놈이니, 어느 모로 봐서나, 옆에서 바라보구만 섰겠습너니까. 여보 이게 무슨 일이웨까, 우리 저기 홍편네 집으루 가서 술이래두 한잔씩 합세다, 이러구서 쌈을 말릴 법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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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네, 죄송하올세다. 자꾸만 말씀이 객쩍은 데루만 흘러서 참, 죄송하올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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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허군 아마 10분두 안 되겠습너니다. 와아 하는 소리가 나고, 살인났다고 야단이길래, 저는 홍편네 부엌에서 녹두지짐 한 점을 얻어 들고 섰다가 그대로 쫓아 나와보니, 그때엔 벌써 장꾼이 백차일치듯 한가운데, 서가 놈은 뽕밭 고랑에, 그리고 종칠이 김상은 피묻은 칼을 들고 밭머리에 거꾸러져 있었습네다. 공의 선생이 오고, 또 나리께서랑 나오시기 전에, 먼발로 눈어림해서 보는 눈에도 서가란 놈이 죽어 있는 건 알 수 있었습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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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만든 해부 검사, 진단의 보고 기록 중 한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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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의 하나, ⎯서두성(徐斗星), 나이는 스물 일곱 가량. 체격도 좋고 영양도 가량한 편인데, 키는 다섯 자 세 치, 체중은 열 여덟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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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검사하건데, 한편 쪽만 칼날이 달린 넓이 한 치 미만, 길이 한 자의 끝 있는 예리한 기구로 찔린, 다음과 같은 네 군데의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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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外表(외표))에 나타난 놈을 보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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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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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편 모가지에 한 치 가량의 칼자국이 있는데, 깊게 가슴팍의 유두근을 아래 위 두 치 길이로 절단하여, 경동맥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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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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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가슴에 팔 부 길이 되는 칼자국이 있는데, 이 자국은 다시 더 나아가 일곱번째 늑골을 자르고, 간장을 상하 아홉 부 길이로 관통하여, 위(胃)의 소만부(小彎部)에 이르러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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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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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으로부터 왼팔을 끼고 길이 팔부 가량의 상처를 내고는, 다시 칼날은 가슴팍이에 이르러 이것을 끼고 또한 팔 부 길이의 자창을 내고, 폐 상엽에 이르러 같은 길이의 자국을 남기고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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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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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자국과 거의 같이 평행하여 팔따시(팔때기)에 한 치 닷 분 길이의 자창을 만들고, 가슴팍이로 나아가서 다시 심장을 뚫고, 우심(右心)의 한가운데 육 부 길이의 자국을 남긴 뒤, 반대쪽에 콩알만한 칼끝 자리를 내고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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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경(內景)을 살피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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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강(胸腔)내에는 다량의 출혈이 있고, 신체의 각 장기(臟器)에는 피의 양이 대단 감소되어 있었다. 미루어 생각컨대 바른편 경동, 경정맥의 절단, 왼편 폐의 윗머리의 자상, 왼편 흉강 내의 출혈, 심장의 관통과 각 장기의 빈혈 등등으로 하여,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이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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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의 둘. ⎯김종칠(金鐘七), 직업은 축산 기수, 수의. 나이는 스물 다섯. 체격은 좋고 영양도 몹시 우량하다. 키는 다섯 자 다섯 치, 체중은 열아홉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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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외표를 살피건데, 바른편 어깨와 잔등에 걸쳐서, 별지 서두성이가 맞은 것과 똑 같은 칼로써 길이 두 치 가량의 상처를 받았으나, 상처의 깊이는 위쪽은 한 치 가량으로 어깻죽지에 이르렀으나, 밑으로 내려오면서 상처의 깊이는 옅어져서, 그대로 칼이 미끄러진 것을 인정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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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잔등에 두 군데 각짼 것 같은 자국이 보이나, 양복 위로 내려친 칼 끝이 그릇되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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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약 1개월의 안정, 외과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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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경(內景)에는 별반 이렇다할 것을 볼 수 없으나, 동계(動悸)가 항진된 관계와, 전기한 상처로 인연해서 신열이 높아 삼십팔 도 오부에 이르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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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성이와 같은 오래에 사는 송관순이의 참고 심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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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네다. 두성이와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오래에서 자랐으니께, 그 녀석의 속은 꼬치꼬치 알어 꿰고 있습네다. 네? 아니올세다. 결코 그러한 포학하거나 잔인스럽거나, 와락부락하거나, 그런 성미의 녀석이 아니었습네다. 글쎄올시다, 단 한마디로 여쭙자면 활발스럽고 부지런하고……네? 내외간 의도 퍽 좋았습지요. 그저 녀석 아이가 없어서 늘 쓸쓸해하는 것도 같았으나 때로는 그깟 놈 , 먹일 것두 변변치 않고, 공부시킬 건덕지두 없는 신세에, 천행 잘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웃어버리는 적도 있었습네다. 결코 금슬이 나쁘거나 그렇진 않었습네다. 친구의 마누라를 이러니저러니 하긴 좀 열쩍은 일이지만서두, 또 그 아주머니가 곱상하게 생겼으니께, 속으로 은근히 기쁘드름해서 지내는 걸 알고 있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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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 열흘 전부텀 작자의 하는 행동이 수상했습네다. 첫째가 제 뒷집 차돌이네 조를 베는데, 점심들을 먹다가 차돌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던 끝에, 자네야 아주머니가 이쁘니까 두 말 할 게 있능가, 그러한 말을 했삽넌데 그게 여느 때 같으면야 그대로 무슨 말을 주워섬기든가, 그렇지 않더래도 그냥 씩하니 웃고 말 것인데, 어인 영문인지, 발칵 성을 내 가지고, 남의 예편네 곱던 밉던 무슨 상관이냐구 노발대발하야 아주 좌중이 밍밍해졌던 적조차 있었습네다. 네? 그렇습네다. 전에는 그런 일이 조곰도 없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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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허군 그렇게 잘 웃던 웃음도, 그렇게 잘 하던 농말도, 또 소를 앞세워놓군 으레 한마디 뽑아넘기던 메나리도, 쇠통 입을 봉해버렸는지 말이 없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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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러니께 언제부텀입니까, 저어 거시끼, 네, 네, 잘 알겠습네다. 두성이 녀석이 그렇게 갑자기 수상해진 건 바로 아랫마을 최장의네 소가 탈이 났다고 저 군 농회에서 축산 기순가, 소 의술인가 한 양반이 왔다 간 이튿날부터인가봅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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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쎄올시다. 전 그 관계나 내용은 잘 모르겠습네다. 본시부터 소 의술 김상과 무슨 원한 품었던 일이 있는가 말씀입니까? 전 자세히 모르겠습네다. 글쎄 뭐 그런 일이야 없었겠습지요. 김상 말씀이십네까? 글쎄올시다. 동네 전체루선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저 보기에는 얌전하고 상냥한 이같이 보였습네다. 네? 뚱뚱해 보이고 와락부락해 보여두, 속은 상냥하실 것처럼 제겐 보이는뎁쇼. 아니 올세다. 관청의 하는 일에 반감이나 그런 건 하나도 없습네다. 그리고 그런 기색이 우리 동네엔 보이지도 않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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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거나 두성이 행동이 너무 수상하더라니, 하루는 수숫대를 져나르다가 은근히 물어보았습네다. 자네, 두성이, 요즘 뭐 속 걱정 있는가, 그랬더니 아무 대답두 않고 그냥 소 가는 뒤를 꾸벅꾸벅 걸어오다가, 세상 귀찮어 만주나 갈려네, 그러더군요. 만주루 간다, 건 또 갑자기 갈(추수)하다 말구 무슨 청인가, 이렇게 제가 말했었더니, 아무 데 가나 한 평생 지낼 곳 없겠나, 그런단 말씀이지요. 그러니 그 이상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지 말게, 무슨 속인진 몰라두, 딴 곳이라구 별켔는가 마음 잡구 저 자라난 고장에서 살아보세, 이렇게 말 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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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구는 오늘 아침 장보러 같이 집을 나섰습네다. 아직 갈이 바쁘지만 김장에 쓸 소금을 사다두려구 저는 나섰던 것인데, 동구 앞을 나서려니 두성이가 소를 몰고 국수당 옆에 내려오겠지요. 그래 어데 가느냐 물으니께, 장에 간다고요, 뭐 사러 가느냐니께, 그저 볼일이 있다구요. 그래 고을까지 오도록은 별로 아무 이야기두 없이 왔는데, 우전에 들어서더니, 여보게 관순이 우리 술 한잔 먹구 가세, 그런단 말씀입지요. 술은 장보구 갈 때 하세 그려, 그러니께, 가만 내 좀 할 이야기두 있으니, 저 지짐집으로 들어가세. 그러고는 곱지를 황철나무 긁에 매어놓고 성큼성큼 술집으로 앞서서 들어가겠지요. 그래 저두 소를 매고 따라 들어가서 마주 대작을 하였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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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비루병으로 한 병이나 한 뒤에, 느닷없이 하는 말이, 여보게 관순이, 난 인제 소나 팔어 돈냥간 해갖구 어데루든가 떠나려네. 아니, 그게 무슨 되잖은 수작인가, 아예 그런 객쩍은 수작은 집어치고 이러지 말고 우리 나가세, 윗거리에 가서 냉면이나 먹으면서 한잔 더하세. 그러나 막무가내라고 듣지 않습네다. 무슨 까닭으로 그러느냐 물어도 별 뽀족한 대답 없이 그대로, 남아가 한번 방랑을 하구 살어야지 어데 두메 속에서 산만 쳐다보구 살겠나, 그러기만 하겠지요. 그래서 아주머님 어덕허겠나, 그랬더니, 아주머니? 그깟 년 제 갈데로 가라지, 내 무슨 상관인가, 자, 어서 술이나 들게, 이게 혹시 영이별이 될는지도 모르네, 자, 술을, 들게, 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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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칼 말씀입니까? 보지 않던 것입네다. 이게야 어디 우리 농가에서 쓰던 칼입네까, 요릿집에서 고기 써는 칼이 아닙네까? 네 그렇습네다. 서두성이는 그런 칼 갖고 다니지 않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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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누운 채 김종칠이가 사법 주임에게 하는 고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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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게 웬말이요. 나는 아무 것두 모르겠어요. 모두가 꿈 같어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어깨가 쓰리고 뼈가 저리고 신열이 높고, 내 옆에는 공의 선생이 계시고, 나의 머리에는 얼음주머니가 놓여 있었습네다. 어데 정신이 좀 듭니까? 이렇게 묻는 말에 나는 비로소 내 자신을 발견했으나 아무두 나를 보고 살인한 놈이란 말은 안 했는데, 주임께서 이게 무슨 말씀이오, 내가 살인을 하다니……. ⎯실신한 태도를 보이면서 멍청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쭈르르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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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경부 나리, 그래 정당 방위도 살인죄가 되우? 그럼은요, 정당방위지요, 그게 정당 방위가 아니고 뭐야요? 그래 경부께선 내게 살인죄를 씌우시려우? 그놈이 나를 찌르니까 나는 그의 칼을 빼았었을 뿐입니다. 그 다음은 나는 모릅니다. 그 다음부터는 나 자신이 아니였습니다. 내가 아닌 딴 정신이 무엇을 하였거나 나는 지금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나를 살해하려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하였건, 그게 어째 내 책임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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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진정하겠습네다. 진정하여 말씀 올리겠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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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동안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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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군청에서 우시장으로 장판을 내려가다, 속이 출출하길래 문화면옥에 들러 냉면을 한 그릇 사먹고 갔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연해 종을 울리며 우시장 농회 사무소에 들러서 모자를 벗어놓고, 책상을 마주하고 잠시 앉아서 농회 서기에게 소시세를 묻고, 추수도 대충 끝났는데 웬 시세금이 그렇게 센가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다가, 오줌이 마렵길래 밖으로 나왔습니다. 변소가 없으니까, 어느 음식점으로 가든가, 부인네들 내왕이 없는 밭 머리로 가려고 신작로를 건넌 것입니다. 경부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쇠줄로 울타리를 두르고, 그 밖으로 황철나무가 3개가 서 있고, 그리고는 신작로가 아닙니까. 그 신작로를 건너면 뽕밭이 있습지요. 그래 제가 바로 울타리를 돌아 나와, 둘째 번 황철나무께를 지나, 바른손으로 바지 단추를 끄르면서 가는데 어떤 농군 한 사람이 장꾼들 틈으로 불쑥 나서더니, 여보 소의술, 하고 무뚝뚝하게 부른단 말이지요. 휘끈 머리를 돌리고 주춤해 섰으려니, 여보 소 의술, 하고 또 한마디를 불러놓곤, 다짜고짜로 내 팔목을 끌겠지요. 어떤 놈인지 생판 알지두 못하는 녀석이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아닌게아니라 그런 심사가 생겼습니다. 그래, 이 사람 술잔이나 했거들랑 집으로 가든가, 어데 가서 술을 깨우는 게 아니라, 왜 공연히 알지두 못하는 사람을 갖고 이러느냐고, 공손한 말루다 타이르며 잡은 손을 가만히 밀어놓았지, 저두 술잔이나 해 본 사람이, 술 취한 사람에게 실례를 따지구 시비를 가려 소용 있습니까. 그래서 공손한 말루 타이르는데, 촌놈이 또 그런 눈치는 알 턱두 없어, 이번엔 파닥지에 핏줄을 세우고 하는 말이, 이놈 너 내가 누군지 모르겠니 이놈, 이러겠지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잡힌 팔을 홱 뿌리치고, 미친놈 다 보겠군, 참 재수가 없으려니,……이러면서 돌아서려는데, 다시 이번엔 더 힘차게 제 팔을 끌고 쭈르르 뽕밭 머리로 가겠지요. 나 역시 힘에 끌려 털석 쫓아가는데, 밭 최뚝까지 오더니, 이놈 너 일전에 아랫마을 최장의네 소탈 고치러 나왔다가 한 행동을 잊어버릴 턱이야 없지, 내가 바로 그 계집의 사나이다, 이러겠지요. 이놈이 이게 정신이 나갔거나 환장을 한 놈이다, 내가 네 계집을 어떻게했다는 말이냐, 대체 네가 웬 놈인데, 내가 너희 같은 놈의 계집에게 치사스러워 손끝 하나 댈 턱이 있느냐, 소줏잔이나 마셨거던 이러지 말구 고이 삭혀라, 촌놈들이란 술 먹으면 술값을 하려구 이러지, 저는 저으기 속알지가 꼰두루 서는 걸 더러운 놈들과 입씸하는 게 치사스러워, 그대로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습니다. 네? 없습니다. 절대루 없습니다. 그건 경부께서 내 인격을 모르는 말입니다. 제가 무엇하러 그까짓 농꾼의 계집에게 손을 댄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조사해보십시오. 나는 아직 계집년의 파닥지조차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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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나는 그놈이 한다는 수작을 터무니 이해할 수 없었고, 또 그놈의 얼굴도 본 적이 없으므로, 그 녀석이 사람을 잘못 보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연한 생트집이라고 생각했었고 장판에서 사무에 바쁜 몸이 객쩍게 수작질을 건네고 있을 바 아니라고, 드디어 분함을 누르고 그냥 홱 몸을 떨쳐 돌아서버렸던 것입니다. 그럭허면 아무리 술에 취한 놈이라도, 그대로 고함이나 몇 번 질러보다가 제풀에 맥이 나서 어데로 가버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내가 돌아서서 한 발자국을 옮겨놓기 전에 잔등께가 선뜩하면서, 나보다도 멀찌감치 서서 이 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먼저 악! 소리를 지르고, 그대로 나는 내 피를 본 것입니다. 몸을 돌이켜 칼을 마주 받고, 놈의 손에서 칼을 빼앗은 것만은 기억하고 있으나, 그 다음 두 몸이 함께 어우러져 밭 최뚝을 굴고 뽕밭 고랑을 엉켜 돈 것은 지금 겨우 상상이나 할 수 있을 뿐이올시다. 그런데 내가 살인죄를 짊어지게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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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성이의 안해 보비의 에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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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련히 정신 차려 처신 했을라구. 미련한 것이 어째 내겐 한 마디 말두 안 하구, 그런 빛은 천성 보이려구두 안 했더란 말이냐. 자행거를 탄 누런 양복 입은 읍내 나리를 보기는 했다마는, 내가 그 놈과 무슨 짓을 했으리란 말가. 이 미련한 놈아, 네가 만일 그때부터 나를 잘못 생각하구 있거들랑, 어째서 열흘이 넘는 동안 내게 일언반구가 없었단 말가. 소가 우물을 들여다보듯이, 허구헌 날을 멍청하니 지내다가 무슨 왕신이 동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이냐. 또 기왕 칼을 들었다면, 그 칼루 놈을 넘어뜨리지는 못해, 되려 그 놈에게 넘어지구 만단 말이냐. 미련한 것, 바보,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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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나를 그렇게두 믿지 못하는 놈, 니 같은 놈에게 일신을 의탁해 살아왔단 말이냐. 내 부모가 나를 네게다 살릴 제, 진정 나는 가난에 물려서 진저리가 났던 차라, 제발 가난한 놈에게는 살려주지 맙소사고 꿇어 엎드려 빌어 섬겼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조용히 불러서 하는 말이, 밭날갈이나 갖고 소짝이나 있어 제 계량(그 해에 농사지은 곡식으로 그 한 해 동안의 양식을 이어 감) 대기는 염려 없구, 사람이 준해서 한 평생 밥 굶지는 않으리라구, 내겐 그것이면 훌륭했다. 내가 고을로 시집 가서 무슨 짝에 쓴단 말가. 자행거 타고 당꼬즈봉인가 뭔가 입은 놈, 나는 그런 읍사람들의 계집이 될 생각은 아예 먹지부터 않았었다. 세루 두루마기 전반 같은 동정 달어 입고 인조견 파는 읍 사람의 안해가 돼서, 내가 그래, 가게에 나가 자질을 하란 말가, 자봉침을 하란 말가. 장꾼에게 고무신을 팔란 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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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게 그런 걸 해내칠 만한 솜씨가 없는 건 아니다. 월급쟁이 예편네 그깟것들이 대체 뭐냐. 나두 분 바르구 머리 지지면 그깟년들은 당해낸다. 전방에 서방하구 갈라 앉어서, 제법 이것 끊고 저것 재고 하는 장사치의 계집? 그깟 것들이 대체 뭐냐. 상판때기 하나 된 것 있다더냐. 내 발고락만두 못환 년들! 그렇다. 나는 그깟 년들 열 개를 당하구두 남을 자신이 있다.
 
52
그러나 그런 것 다 바라지 않고 너한테 시집 왔던 내가 아니냐. 몸은 튼튼하고, 일은 사나이 몫의친 해내치고, 그래, 내가 어데 내놓으니 꿀린단 말가. 나는 부지런히 일해왔다. 너를 극진히 섬기고 모셔왔다. 나는 너를 믿고 일신을 의탁해 오눌까지 살아왔다.
 
53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너는 내게는 말 한마디 않고, 미련하게 제 칼에 넘어져 뻐드러져버렸구나. 인제 너는 가버려서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나는 누구를 믿구 살아가란 말이냐.
 
54
진정 네 혼넋이 있거들랑, 내 말을 들어봐라. 그날, 나는 해가 산허리에서 너웃할 무렵, 저녁을 지어야겠다구, 너보다 앞서서 밭을 나오지 않았느냐. 산모퉁이를 돌아 국수당을 넘어서, 바로 저, 선앙제터에 이르렀을때, 땅거미는 이미 풀숲을 덮었는데, 나는 저녁이 늦는다고 고된 몸두 돌보지 않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머리를 수굿하고 손을 횅횅 내저으며, 수수밭과 조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짜르릉 하는 자행거 종소리가 나고, 이어서 내가 머리를 들을 때엔, 내 앞에 고을 양복쟁이 하나가, 덥뻑 안장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그는 내가 길을 비끼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우뚝 세우고 멍청하니 서 있었다. 어인 영문을 몰라 머리를 들었을 때에 나는 비로소 그의 표정을 보았다. 이때에 밖에서 송관순이와 그의 안해가 들어서는 바람에 보비는 곡성을 높이고 지저귄다.
 
55
여보 아주바니, 그래 이게 웬일이란 말이요. 왜 아침엔 함께 고을로 나가더니 혼자만 돌아오다니, 그런 변이 어데 있단 말요.
 
56
그놈한테 칼루 맞어 넘어가는 걸 옆에서 멍청하니 보고만 섰드란 말이요.
 
57
아니 뭐요? 날 경찰서에서 부르다니,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58
네 시체는 그깟 것 이제 찾아와 무엇하겠수. 그 참혹한 걸, 시형이 어련히 찾아갈라구.
 
59
아니 뭐요? 나두 조사할 게 있다구? 내가 무슨 죄루, 그러나 오라면 가지요. 인제 오늘밤으루래두 가겠어요. 가구말구요. 가는 길에, 내 그놈두 마저 해보구 올테예요, 아이고 ⎯.
 
60
⎯ 다시 느껴운다.
 
 
61
무당의 입을 빌려 서두성이가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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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의술 김종칠이한테 만신창이 되어 거꾸러진 것은 물론 틀림없는 나이지만, 그가 살인죄를 쓴다면 그건 억울한 일일 게다. 지금 나는 명백히 단언해두려니와 그가 나를 죽인 것은 정당 방위였다. 법률이 그를 어떻게 판단할는지는 알 바 아니나, 죽이고저 하는 살의를 가졌던 것은 김종칠이가 아니고 틀림 없는 나였다. 혹시 두 사람의 육체를 찌르고 째고 가르고 한 식도가,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하여, 말썽이 있을지 모르나, 그 칼은 김종칠이가 자행거를 타고 우전으로 향하여 내려오는 것을 내가 장터에서 보고, 이어 화장수한테서 1원 50전을 주고 산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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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지금도, 그가 나를 죽인 데 대하여는 아무런 원한도 품고 있지 아니하다. 죽이려던 것도 나요, 또 나에게 김종칠이를 이길 만한 힘이 있었는가 그랬다면 으레히 나는 살고 그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나의 몸을 한 군데도 아니요 세 군데 네 군데씩 무찌르고 파헤치고 했다 쳐도, 나는 그를 원망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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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혼이 이렇게 싱싱하게 떠돌아다닐 수 있는 한, 역시 나는 잊을 수 없고, 그러므로 그대로 풀어버릴 수 없는 두 가지의 울분이 남아 있다. 그 울분은 때로는 원통함이 되었고, 때로는 쓸쓸함이 되었고, 때로는 한없는 미움이 되었다. 하나는 김종칠이에 대한 것이요, 또 하나는 그것과 밀접한 관계에 얽혀 있는 것이지만, 내 안해 보비에 대한 것이다. 말을 뚝 끊고 잠시 고요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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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도 않는 그날, 우리집 조는 아직 덜 익어서, 양지 바른 데 심은 콩부터 대강 추수를 해치우느라고, 우리 부처는 아침부터 국수당 너머 콩밭에서 콩가지를 베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아랫마을 최장의네 소가 탈이 났다고 법썩을 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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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일토록 밭에서 일을 보느라고, 적지 않이 몸이 고되었으나, 묶던 콩단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저녁을 지어야겠다고 밭을 나서는 안해를 따라 나서지 않고 그럼 , 먼저 가서 밥을 짓게, 그리구 오늘 저녁엔 뒷울타리에 열린 호박을 따서 호박장이나 지지게, ⎯이렇게 당부하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묶던 콩단을 전부 말끔하니 묶어 치우고서, 밭에서 허리를 편 때엔 벌써 해는 산밑으로 뚝 떨어졌었고, 밭에서 나와 집을 향하여 길 위에 올라섰을 때는, 안해가 먼즘 간지 한 반시간도 더 지냈을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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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곤하였으나, 집에 가면 안해가 밥을 지어놓고 있을 것과, 팥 든 조밥에 호박을 고추장에 지진 것이 얼마나 맛이 날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아침에도 아직 날배추 냄새와 소금냄새가 덜 가시었던 풋김치가, 지금쯤엔 알맞게 새큼하니 입맛을 돋울 것을 생각하고, 코로 흥얼흥얼 수심가까지 부를 수 있었다. 나는 국수당 있는 고개턱에 올라서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에 푸우 숨을 내쉬었다. 얼마 높지 않은 고개턱이지만, 이곳서는 밑으로 외줄기 길이 선앙제터 옆을 거쳐 수수밭과 조밥 가운데를 일직선으로 달리다가, 얼마 가서 고을로 들어가는 큰 길과 잇닿는 어귀까지, 손 안에 든 것처럼 빤히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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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넘어가버려, 맞은 산 위에는 주홍빛으로 노을이 한떼 비껴 있을 뿐이었으나, 아직 길과 밭 위엔 또렷이 내려다 보일 만한 투명한 공기가 검은 땅거미와 다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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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단 5분, 아니 눈 하나 깜빡할 동안만 늦게 이 고개턱을 넘었더라면 나는 아무 일 없이 그대로 무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매정하였다. 나는 고갯마루턱에 올라서서 눈앞에 벌어지는 들과 길을 바라다보았고 그리고 내 두 눈은 아직도 그리 어둡지 않은 길 위에서 쉽사리 내 안해를 발견하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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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맨 처음은 내 시야에 들지 않았다. 처음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달린 길뿐이었다. 그러나 길 옆 수수밭 속에서 안해는 길 위에 나섰다. 나는 처음 무슨 영문을 몰랐다. 무엇하러 남의 수수밭엘 들어갔었던가, 오줌이 마려워서, ⎯어째서 또 여적 집에도 안 가고, 그러나 그건 모두 객쩍은 근심이었다. 안해는 길 위에서 잠깐 누구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그때에 나는 그가 왼팔을 올려놓은 것이 길 위에 세운 자행거 안장인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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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머리칼이 곤두 섰는지, 잔등께에 소름이 돋쳤는지, 눈앞이 아찔했는지, 가슴이 뚱 물러앉었는지 ⎯아무 것두 느끼지 못하였다. 아니 이러한 모든 것을 아마 같은 순간에 겪어버렸을 것이다. 밭 가운데서 사나이가 따라 나오는 것을 본 뒤에도, 나는 자리에서 발을 옮겨놓지는 못하였다. 서로 인사를 하고, 그리고 년은 그대로 곧은 길을, 놈은 획하니 자행거에 올라타고 두어 번 저어서 이쪽으로 오다가 고을 가는 신작로로 없어진 뒤에야 나는 미친놈 , 모양으로 고개턱을 줄달음쳐 내려오고 있었다. ⎯ 또다시 잠시 동안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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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천연하였다. 아무 것도 겪지 않은 것처럼, 물을 한 잔 들이켠 것보다두 더 단순하게. 나는 그걸 보고 그만 맥을 잃어버렸다. 저녁이 왜 늦었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고, 그 이상 무슨 말을 비쳐볼 아무 기운도 나에겐 없었다. 그 표정, 그 행동, 그것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부엌에서 돌아가는 계집을 여우는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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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들어서 끄덩이를 낚아채고, 실컨 매질이라도 하려든 처음 생각은, 안해의 이러한 행동과 표정 앞에 부딪쳐서, 그때엔 내 몸에서 약기운처럼 사라져버리고, 나는 그만 외양간에 가서 멍청하니 소만 바라보고 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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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눈을 의심해도 보았다. 동네 사람들의 소문에도 귀를 기울여보려 애썼다. 이렇게 맹물을 한 잔 마시는 것보다도 단순하게, 안해는 여태껏 여러 사람과 대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입을 열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아 사랑하던 계집, 소중히 다루던 내 계집에게, 어떻게 그걸 물어볼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아무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멀리 내 안해의 옆을 떠나버리려 하였다. 안해의 꿈결 같은 얼굴을 가슴에 안은 채.……
【원문】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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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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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