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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利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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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신채호
1
利[이] 害[해]
 
 
2
천하의 일이‘이해(利害)’만 있고 ‘시비(是非)’는 없나니 시비를 논란하는 자는 오유(迕儒) 속사(俗士)의 업(業)이니라.
 
3
어찌해 그렇다 하느냐.
 
4
대개 인류는 생존하는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것이라, 생존에 부합하는 것은 이(利)라 하며, 생존에 반대되는 것은 해(害)라 하여, 이해의 권형(權衡)으로 온갖 논설이 생길새, 인류에 이되는 것은 선(善)이라 하며, 해되는 것은 악(惡)이라 하며, 이되는 것은 정(正)라 하며, 해되는 것은 사(邪)라 하며, 복혜안영(福慧安榮)으로 우리에게 이를 주신 이는 우리가 이를 성인(聖人)이라 높이며, 화패흉얼(禍敗凶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친 이는 우리가 이를 소인(小人)이라 이름하며, 밭을 갈며 짐을 실어 우리를 이케 하는 우마는 우리가 이를 양축(良畜)이라 하여 사랑하며, 사람을 먹으며 가축을 해하여 우리를 불안케 하는 호랑(虎狼)은 이를 독수(毒獸)라 하여 싫어하나니, 차호라, 윤리·도덕·종교·정치·풍속·습관 모든 것이 모두 ‘이해’ 2자 밑에서 비평을 하는 것이다.
 
5
시비가 어디 있느냐! 시비가 어디 있느냐! 시비가 어디 있느냐!
 
6
만일 ‘시비’가 있다 하면 이는 ‘이해’의 별명뿐이니라.
 
7
이해가 매양 모순이 있는 고로 시비도 매양 모순이 있나니, 마치 고구려 사람에게는 개소문(蓋蘇文)이 호국의 거물이요, 설인귀(薛仁貴)가 반국(叛國)의 역신(逆臣)으로 보지만, 『당서』에서는 설인귀를 높이고 개소문을 쳤나니, 이는 고구려의 해가 당의 이되는 까닭이며, 백제 사람의 입에서 부여복신(夫餘福信)을 경천(擎天)의 위인이라 하며 흑치상지(黑齒常之)를 패전의 항장(降將)이라 부르지만, 중국사에는 흑치상지를 기리고 부여복신을 헐었나니, 이는 백제의 해가 중국의 이되는 까닭이다.
 
8
오늘 구주전쟁을 우리 동방 사람으로 하여금 평판을 내리라 하면, 갑도 야심을 가지고 을도 야심을 가져서 된 전쟁인데, 협상파는 정의의 신을 불러 자기를 구하라 하며, 연합파는 인도의 붓을 들어 적국을 나무라니, 시비 시비여, 시비가 어디 있는가. 오직 이해의 별명뿐이로다.
 
9
이해가 매양 변천이 있는 고로 시비도 매양 변천하나니, 그러므로 월성(月城)·송악(松嶽)에 법석(法席)을 열고 10만 반승(飯僧)이 아미타불을 부를 때는 원효(元曉)·의상(義湘)이 대성이 되나니, 불법시대라, 불법에 이로운 인물이 자리를 차지함이며, 한양 5백년에 8도 장보(章甫)가 『중용(中庸)』 『대학(大學)』을 외울 때는 정암(靜菴)·퇴계(退溪)가 고현(高賢) 되난, 유술(儒術)시대라 유술에 이로운 인물이 머리에 앉음이로다.
 
10
희라, 천시는 순환하는지라, 고로 동하구갈(冬夏裘葛)이 시의에 맞아야 선(善)타 함이며, 인사는 변환하는지라 고로 고례금문(古禮今文)이 경우를 잃으면 악(惡)이라 하나니, 만일 혈처(穴處)시대에 상의(床椅)를 가지면 췌물(贅物)이 될 뿐이며, 신권(神權)시대에 과학을 말하면 요인(妖人)이 될 뿐이다. 시비 시비여, 시비가 어디 있느냐. 오직 이해의 별명뿐이로다.
 
11
그러므로 한 국민이 되어 세계에 생존을 구하려 할진대, 없는 시비를 가리지 말고 오직 이해를 위하여 활동할 뿐이다.
 
12
칼을 가지고 살육을 부름이 우리에게 이롭거든 이대로 하며, 눈을 감고 평화를 찾음이 우리에게 이롭거든 이대로 하며, 윤리·도덕으로 터를 잡아 전도를 개척함이 우리에게 이롭거든 윤리·도덕을 힘쓰며, 폭동·암살로 선봉을 삼아 적의 치안을 흔듦이 우리에게 이롭거든 폭동·암살로 일하며, 불(佛)을 좇음이 이롭다 하면 좇으려니와 도도(屠刀)를 잡고 불(佛)의 목을 베임이 이롭다 하거든 불의 목을 베이며, 예수를 믿음이 이롭다 하면 믿으려니와 유태 사람을 따라 예수의 머리에 못박음이 이롭다 하거든 예수의 머리에 못박아, 이 세계 안에 무릇 우리에게 이되는 것이라 하거든 환영하며 수입하고 해되는 것이거든 배척하여 말살할지라. 무엇에 주저하며 무엇에 공파(恐怕하리요.
 
13
×실루사(×室淚史) ─ 5천년 국사를 가지고 그 쇠망한 원인을 연구하다가 매양 부여민족의 “이해에 어둡고 시비에 겁 많음”을 위하여 일곡함을 금치 못하였노라.
 
14
나라 된 이상에는 사방 팔면이 모두 구적(仇敵)이다. 구적이 옳다 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지며, 구적이 그르다 하는 것이 반드시 그르다는 것이 아닐지어늘, 우리 부여민족은 자기의 이해를 잊고 타인의 시비를 두려워하며, 중국 유자가 “공자가 성인이니 공자를 받듦이 옳다” 하매, 문득 그 수천년 상전(相傳)한 국수(國粹)와 교의(敎義)를 버리고 이를 쫓을며,
 
15
“중국은 천하의 중(中)이니 사방 열국이 중국을 존모함이 옳다” 하매, 문득 그 역대 조종의 독립 자강하던 정신을 잃고 이를 믿어, 이에 공자나 중국에 반대되는 것이면 천신의 명을 받아 나라의 호부(護符) 되던 신라의 화랑(花郞)도 부수며, 충의의 칼을 갈아 역사의 보장(寶藏) 되던 고구려의 승군(僧軍)도 가시며, 강토를 개척하여 만세의 대업을 세우려던 호두장군(虎頭將軍)도 베며, 속론(俗論)을 배척하여 중생의 혜안을 주려던 죽도성인(竹島聖人)도 죽이며, 자국의 이해를 잊고 오직 인방 학자의 ‘옳다’는 비평 듣기만 급급하였나니, 또한 가련가민(可憐可悶)한 일이 아닌가.
 
16
중국 역대 24사를 펴고, 그 가운데 소위 조선열전(朝鮮列傳)·삼한열전(三韓列傳) 등을 보면, 낱낱이 우리 민족에 대하여 칭찬한 구절이 있어 가로되, “朝鮮人[조선인] 天性仁厚[천성인역] 易以道御[역이도어]”라 하였나니, 역이도어(易以道御)라 함은, 해되는 일이라도 이것이 선도(善導)라 속이면 이에 빠지고, 이되는 일이라도 이것이 악도(惡道)라 속이면 이를 버리고, 도검창포(刀劍槍砲)의 무기를 아니 가지고도 다만 인의(仁義) 도덕(道德)이란 글씨로 굴레를 만들어 끌면 끌려온다 함이니, 이는 모욕이요 칭찬이 아니거늘, 슬프다, 5백년간의 학사·대부 들이 이 뼈있는 칭찬에 정신을 잃고 흔연히 서로 자랑하여 가로되 “중국인이 가장 우리 조선을 예미(譽美)한다”하였나니, 이러하고야 어찌 조전(組傳)의 자립을 지킬 수 있으리요
 
17
왕씨 고려의 쇠와 이씨조선의 망이 그 원인을 캐면, 모두 이해를 모르고 시비를 찾음에서 남이러라.
 
18
×실루사(×室淚史) 가로되, 이 어찌 우리 대한의 총명성지(聰明聖智)한 국민으로서 시비부터 이해를 가릴 줄만 알고, 이해부터 시비를 가릴 줄을 모름이 그다지 심하더냐, 곧 나의 낙지(落地)한 뒤 듣고 보던 바로 말하여도 또한 애달픈 눈물을 내릴 만한 일이 한둘뿐 아니로다. 소위 신당(新黨)이란 이름이 최근 수십년래에 한 자리를 차지하여 정치의 개혁을 말하며, 민지의 계발을 부르짖어 망국 전후의 몇해 사이에는 거의 시대의 조류가 되었다 하겠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전국의 이해를 타산하여 입각지를 정한이가 그 누구던가. 일인이 황백화복(黃白禍福)를 부르매 내 입도 그 소리에 화답하며, 일인이 동양평화를 그리매 내 붓도 그 그림을 모방하여 자칭 배일자(排日者)로서 일인의 우리 국민을 마취시키려는 독제(毒劑)를 먹고 일인의 보추(步趨)를 닮던 자 몇몇이던가.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은 5천년 역사가 빛을 잃고 2천만 민족이 불에 드는 첫걸음이다. 이 때를 당하여 우리는 화복뿐이며, 우리의 존망뿐이라 무슨 옳고 그름이 있을 때이리요마는, 이 때에 모공이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을 보고 위급한 정상을 말하고,
 
19
“어전회의에 열국 공사를 청요(請邀)하여 담판을 열어 일인의 간맹(奸萌)을 꺾자” 한대, 한씨 가로되 “나는 천자의 대신으로 망국할 조약에 맹세코 응낙은 아니할지나, 서양을 끌어 동양의 일에 참석케 함은 일인의 공론에 부정으로 배척하나니, 어전의 열사회의(열사회의)는 할 일이 아니다”
 
20
하였나니, 희라.
 
21
당시의 모공의 헌책이 행하였더라도 넘어지는 대하(大廈)를 붙든다 할 수 없으나, 그러나 자국의 이해를 잊고 적국의 시비를 돌아보는 이야 무슨 사람인가. 그러나 이 때에 이런 벽견(僻見)을 가진 이가 한씨 하나뿐 아니었더니라.
 
22
신문기자 통곡의 붓은 이등통감(伊藤統監)에게 애유(哀類)하며, 조야지사(朝野志士) 청원의 글을 일본 천황에게 난투(亂投)하여, 오직 동양평화의 맹주 되는 일본의 실책을 풍간(諷諫)하는 이는 있었으나, 조국 수천년의 악적(惡敵) 되는 일본의 흉패를 도전하는 이는 없었도다. 무룻 국구(國仇) 된 이상에는 비록 공자·예수라도 이를 성인으로 보지 않고 흉구(凶寇)로 보며, 천신으로 알지 말고 악마로 알며, 피아(彼我)가 병립치 않으리라는 혈분(血憤)을 가져야 갚을 날이 있을지어늘, 이제 망국 말일에 대한 인사(人士)는 이런 언설(言說)이 없을 뿐 아니라 곧 이런 심리까지 없었도다. 만일 있다 하면 안응칠(安應七:安重根[안중근] ― 原註[원주]) 하나뿐이니라. 이제는 나라도 없어졌도다. 이제는 민족도 죽었도다. 다시 살자면 특별히 정신을 차려야 될지로다. 그런데도 오히려 남의 속임에 귀를 기울여 치안을 방해하지 말라 하면 이를 옳게 알며, 권리에 복종하라 한 이를 높이 보아, 수국(讐國)의 명령이 곧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는도다.
 
23
연전 내지(朝鮮內[조선내])에서 일인이 우리의 집회·결사를 그리 금지하지 않을 때에 본즉, 매양 회단을 조직하는 이들이 반드시 그 규칙 제1장에 “본회가 법률 범위 이내에서 행동한다” 선언하나니, 구적 압박의 밑에서 이런 선언이야 안할 수 있으리요마는, 나의 딱하게 아는 것은 곧 이 선언 나온 익일에 일반 회원들이 발을 경계하며 손을 조심하여 털끝만치라도 법률 범위 이외에 나아갈까 하며, 더욱 가소할 일은 혹자들은 비밀회를 한다 하면서, 그 회규에도 법률 이내를 지킨다 하니, 법률 범위 이내의 회의면 무슨 비밀이냐.
 
24
또는 소위 법률은 나라 없는 놈이 나라를 찾으려고 제정한 것이 아니라, 나라 있는 놈이 나라 없는 놈을 속박하려고 제정한 것이며, 권리 없는 놈이 권리를 찾으려고 제정한 것이 아니라, 권리 있는 놈이 권리 없는 놈을 압박하려고 제정한 것이니, 나라도 권리도 없는 우리가 울며 당상(堂上)하듯이 법률에 복종함은 옳거니와 성심으로 법률에 복종하면 이는 영혼까지의 자살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애국자를 못보거든 부랑자라도 보았으면 하며, 열협자(烈俠者)를 못 보거든 절도자(窃盜자)라도 보았으면 하노니, 인심을 선와(煽訛)하며 금전을 도취함이 또한 치안의 방애(放礙요, 구적의 염오(厭惡)하는 자다. 오늘 우리의 처지로는 부랑과 절도도 파괴의 도선(導線)이 되나니, 이도 오히려 속신자애(束身自愛)하며 안분수정(安分守靜)하는 구유(拘儒)보다는 나으리라.
 
25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비는 묻지 않고 이해만 볼진대, 매국자도 일신의 생존의 위함이며, 정탐노(偵探奴)도 일신의 생존을 위함이니, 이도 죄가 없다 할까.
 
26
아니라, 아니라. 나의 이른바 생존은 개신(個身)의 생존이 아니라 전체의 생존이며, 구각(軀殼)의 생존이 아니라 정신의 생존이니, 구각과 개신의 생존만 알면 이는 금수요, 정신과 전체의 생존을 알아야 이를 사람의 생존이라 하나니, 나는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이해를 가리라 함이요, 금수의 생존을 위하여 이해를 가리라 함이 아니로다.
 
27
개신(個身)의 생존만 구하다가 전체의 사멸을 이루면 개신도 따라 사멸하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개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전체를 살리려 하며, 구각(軀殼)의 생존만 구하다가 정신이 사멸되면 쓸데없는 일부의 취피낭(臭皮囊)만 남아 무엇이 귀하리요.
 
28
그러므로 열사(烈士)는 적국과 싸우다가 전국민이 백골을 태백산만치 높이 쌓아놓고 명예의 멸망을 할지언정 노예 되어 구생(苟生)함은 하지 않나니, 구생은 생존이 아니니라.
【원문】이해(利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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