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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0.13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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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없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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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떡장사로 득리(得利)하였다 하면 온 동네에 떡방아 소리가 나고, 동편집이 술 팔다가 실리(失利)하면 서편 집의 노구도 용수를 떼어들이며 나아갈(進[진]) 때에 같이 와! 하다가 물러날(退[퇴])할 때에 같이 우르르 하는 사회가 어느 나라의 사회냐? 제 흉을 제가 봄이 좀 얼 없는 일이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국 중엽부터 고려 말세까지 염불과 목탁이 세(勢)가 나매, 제왕이나 평민을 물문(勿問)하고 남은 여에게 권하며, 할아비는 손자에게 전하여 나무아미타불의 한 소리로 천년의 긴 세월을 보내었으며, 이조 이래로 유교를 존상(尊尙)하여 500년 동안이나 서적은 사서오경이나 사서오경의 되풀이요, 학술은 심(心)·성(性)·이(理)·기(氣)의 강론뿐이었나니, 이같이 단조로 진행되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예수교를 믿어야 한다 하면 삼두락(三斗落)밖에 못 되는 토지를 톡톡 팔아 교당에 바치며, 정치운동을 한다 할 때에는 수간(數間) 상점을 뜯어 엎고 덤비나니, 이같이 맹종 부화(附和)하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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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이전까지 서양 각국인이 유태인을 조소코자 하면 지전 한 장을 내어들고 ‘유태국의 국기를 보시오, 이것이 유태국의 국기올시다’하였다 한다. 그러더니 그 국기 밑에서 유태국이 마침내 부활하였다. 그러나 나의 우견(愚見)에는 조선인이 유태인이 되기는 그리 지난한 일이 아니라 한다. 어째 그러냐 하면, 대개 세상의 장단을 맞추어 나아가는 데 조선인도 썩 재주 있는 민족이라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염불 시대에는 전 사회가 석가가 되고 유교 시대에는 전 사회가 공자가 되던 조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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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효(孝)하라 하면 아픈 줄을 모르고 고육(股肉)을 베며, 충성하라 하면 아까운 줄 모르고 신가(身家)를 희생하였나니, 종금 이후로 이 시대는 금전이 제일이라는 호성이 높아질수록 전 사회가 금전만 알게 되리니, 유태인 되기야 어찌 어려우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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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유태인같이 부활도 되겠느냐? 아! 이는 실로 지난한 일이라 하노라. 유태 부활의 원인은 그 금전의 국기(國旗)뿐이 아니라, 곧 언어 종교·문화·단결력 등의 무기로써 그 국기를 보호하며, 세계 도처에 행국(行國)을 삼아 가지고 다니던 민족이라, 원래 정신이 멸망치 않았으니 금일의 부활도 그리 희귀할 것이 없거니와 조선인은 자래(自來) 단조(單調)로 나아가는 사람이라, 공자를 외운다 하면 문전 옥답(沃畓)이 물에 떠나가든지 조전(祖傳) 보물이 불에 타든지 다 불고(不顧)하고 공자만 외웠었나니, 조선인이 만일 금전주의로 나아간다면 인류의 상애(相愛)니 호조(互助)니 하는 것은 명사까지도 잊어버리기 쉬울지며, 사회적 민족적 운동 같은 것은 몽중에 재현하기도 어려울지며, 조선어·조선문이 만일 금전 벌이에 불편할진대 헌신짝 벗어버리듯 하리니, 유태같이 부활할 조건이 어디 있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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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인이 유태인되기 쉽다 함은 금전을 생명으로 보게 될 1건을 가리킴이요, 다른 방면을 병제(並提)함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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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남녀학생의 결혼에 금전이 제1장 제1조가 아니냐. 동지의 홀리홀합이 모두 금전의 관계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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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천 원의 금전이면 해상(海上) 소무의 고절(苦節)이라도 빼앗을 수 있는 줄로 생각하는 이때가 아니냐. 미구에 부자·친척·붕우 등의 실오라기만한 정의가 금전이란 그것의 관계하에서 존재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만일 유태적 조선을 부활시키려다가는 조선은 아주 지옥에 들어가는 날이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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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조선을 구하자면 금전을 배척하여야 될 것인가. 아아, 전세계가 일대 공산사회 되기 전에는 개인이나 한 나라를 물론하고 안연의 청빈주의를 가지고는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매양 단조로 진행하여 금일에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공자를 존봉한다 하면, 내 일에는 사람을 죽이어 공자에게 공헌하는 사회다. 아직까지도 금전 모으는 자에게 왜 금전을 모으느냐 하면, 사회의 구제를 위하여 모으느니 조선의 부활을 위하여 모으느니 하는 교활한 회답도 있을 것이요, 자손을 위하여 모으느니 일신의 안락을 위하여 모으느니 하는 진솔한 회답도 있으려니와, 만일 이로부터 10년을 지나 금전주의가 팽창하게 되는 날에는 그 회답이 보통으로 금전을 위하여 금전을 모으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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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조선도 모두 금일같이 빈한하였더냐 하면 역사로 추구하면 꼭 그랬던 것은 아니다. 황금을 쫓아 가다가 멸망한 사실도 적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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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기록이 왕왕 에누리가 많으니 1원에 19전은 버리고 본다 할지라도 《삼국사기》《삼국유사》 기타 각서에 의거하여 신라 헌강왕 시대의 전국 부력(富力)을 모득(模得)할 수 있으며, 《송막기문(松漠奇聞)》에 의하여 발해 말년 곧 그 망국 이후까지의 재산 요족(饒足)함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는 궁예·견훤 등의 내란에 전토(全土)가 유린되고, 하나는 거란·여진 등의 외환에 종족이 진멸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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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로 말하여도 파사(波斯)·대식(大食) 등 제국의 상가(商賈)가 빈번함을 보면 상공업도 그리 소조(蕭條)하지 않았던 듯하며, 송도의 왕공 귀족들은 민영휘 이상의 토지 소유자도 많았던 듯하도다마는, 급기야 무엇에 멸망하였느냐 하면 군함이나 대포나 비행기 같은 것이 아니요, 불과 백보 밖에서 솔방울을 쏘아 떨어뜨리는 이태조 대왕의 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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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활을 들고 위화도에서 회군함에 북정(北征) 장사 5만 명이 굴수(屈首)하며, 송도에 치입(馳入)하매 2경 5부 방백·수령들이 습복(習服)하며 마침내 왕위까지 점거하나, 전국이 적연(寂然)하여 이강년(李康年)·최익현 같은 대항자가 1인도 없었도다. 고로 송도의 멸망이 어찌 일개 태조의 활의 위(威)이랴. 당시 황금에 목을 맨 송도 신민들이 그에 대항할 기력이 전핍한 까닭이니라. 누가 두문동의 72현을 충의의 선비라 하느뇨? 다만 태조 초년에 출사하다가는 궁궐의 건축이나 군대의 확장 같은 데 원납(願納)이나 시킬까 두려워 금을 옹(擁)하고 문을 닫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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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초년에 송도의 유금주의(唯金主義)를 통징(痛懲)하여, 밥 굶는 선생 원운곡을 찬탄하며 밥 굶는 제상의 황희를 등용하여 거의 부를 버리고 빈을 취하려 할만큼 풍기를 바꾸어 놓았도다. 이를 금일의 안공(眼孔)으로 보면 민족의 해된 곳도 적지 않으나, 그러나 누구든지 20만 원에 몸을 판 박영효의 얼굴에 침뱉으며, 4백만 원의 나라를 판 이완용의 죄를 다스려 인심이송도 말년같이 되지 않음은 그 효력이 아주 없지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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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늘날에 앉아 정권을 잃은 빈민이 경제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다함은 망론(妄論)이려니와, 금전이 여대(麗代)의 석가나 이조(李朝)의 공자보다도 더 신성하여 가는 것은 목하(目下)의 사실이다. 이 사실이 굳어 갈수록 진실이었던지 가짜이었던지 4천 년 역사, 2천 만 민족의 무엇을 위하여 다니노라던 인물들은 모두 서리맞은 고엽(枯葉)이 될 뿐이며, 몇 개의 청섬유지(淸譫維持)로 자처하던 유민들은 송병준이나 민영휘의 문전의 걸노(乞奴)가 되고 말 것이며, 금전을 목적하지 않은 해내외의 모모(某某) 단체들은 토붕와해(土崩瓦解)에 돌아갈 것이며, 일반의 을사(乙巳)(1905년) 이래 유혈(流血)한 선민(先民)에 대한 감정을 《중국통감》에서 고인의 성명을 대함과 같으리니, 차후에도 그대로 존재한 조선 종자가 있다 하면, 이는 일본인·중국인 혹 러시아인이 되어서 존재한 조선 종자요, 조선인으로서의 존재한 조선 종자는 아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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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참화(慘禍)를 무엇으로 구하겠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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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금전 출입하는 곳마다 일대 흑면(黑面) 적혈(赤血)의 신(神)이 따라다니면서 외워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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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이외에 조선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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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이외에 동지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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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이외에 동족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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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이외에 치욕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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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금전 가진 자의 이공(耳孔)에 항상 부절(不絶)하는 벽력이 되어, 금전으로 수단을 삼고 그 이외의 목적을 찾도록 하면 조선 만구(挽救)의 책(策)이 되리라 하노라. 그러나 그 신은 무엇이냐. 염불이냐, 나팔이냐, 문사의 붓이냐, 노동자의 노력이냐, 정포은(鄭圃隱)의 〈단심가(丹心歌)〉냐, 창해역사의 철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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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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