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선 눈을 많이 맞으십시오. 겨울에 제일 반갑고 좋은 것은 눈 오시는 것이니, 눈이 오시거든 책을 덮어 놓고 뛰어 나아가서 눈을 맞으십시오. 비 오시는 것은 구슬프지만 눈 오시는 것은 정답고 재미있습니다. 눈 오시는 것을 보면 아무라도 마음이 고와지고 생각이 부드러워집니다. 일 년내 그리웁던 눈이 당신의 집 마당에 찾아오면 어떻게 당신이 유리창으로 내다보고만 앉았습니까? 뛰어나가서 그 깨끗하고 반가운 눈을 맞으면서 돌아다니십시오. 동네집 동무의 집을 찾아다니고 그리고, 동네 바깥 벌판에도 나가 보고, 또 뒷동산에 올라가서 눈 속에 파묻히는 동네를 내려다보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눈과 하늘과 동네와 벌판과 겨울이 모두 한뭉치가 되어 당신의 가슴 속에 삼켜집니다. 그리하는 것이 당신의 자연을 집어삼키는 것이 됩니다. 눈이 웬만큼 쌓이거든 두 편을 갈라서 눈싸움을 꼭 규칙을 정해 가지고 규모 있게 하고, 눈이 대강 그치거든 눈을 뭉쳐서 사람을 만들되, 사람만 만들지 말고 송아지, 코끼리, 앉은 토끼, 오리, 닭, 쥐, 우체통, 3층탑, 자동차 무엇이든지 만드십시오. 집집이 잘 만들기 내기를 하거나 동네와 동네가 편 갈라 가지고 내기를 하여도 좋습니다.
5
눈과 함께 사십시오. 눈 속에서 뒹굴면서 지내십시오. 눈을 싫어하거나 눈을 피하는 사람은 죽을 날 가까운 노인들 뿐입니다.
7
전에도 말씀하였지만 이번 겨울에는 방 속 책상 위에 반드시 화초분이나 꽃이 없으면 풀이나 나무라도 반드시 하나 놓고 키우십시다. 그것도 없으면 배추 뿌리를 심거나 무를 사발에 심어서라도 그 싹을 키우십시다. 원목은 물론이요, 사람들까지 짐승들까지 이 세상 온갖 것이 추위에 눌려 엎드려서 하나도 생기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되는 때, 배추잎이라도 무 싹이라도 책상 위에서 파랗게 커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파란 생기를 내 몸에 옮겨 가지게 되므로, 늙은이에게도 좋지만 자라나는 어린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이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10
원족이라면 반드시 봄철이나 가을철, 경치 좋은 때 하는 것인 줄 알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겨울 방학 때 40리나 50리 바깥에 전부터 소문만 들으면서 가 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이름만 듣고 가 보지 못하던 절, 아침저녁으로 멀리 바라보기만 하고 가 보지 못한 높은 산, 30리나 40리나 바깥에 있는 동네에서 재미있게 하여 나간다는 소년회, 그런 데를 뜻 맞는 동무 5,6명이나 7,8명이 점심 차려 가지고 갔다 오는 것이 어떻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입니까? 잠을 안 자고 새벽 세 시나 네 시에 떠나는 것도 재미요, 밤이 들어 열 시, 열한 시에 돌아와 보는 것도 재미입니다. 더욱 눈이 쏟아지는 때 눈을 맞으면서 창가(노래)를 높이 부르면서 먼 길을 걸어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은 씩씩하고도 기쁜 일입니다.
12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방을 얻을 수 있으면, 그 곳에 장소를 정하고 저녁 먹고 그리로 모이되, 공책 하나와 연필 하나를 가지고 모입니다. 모여서 가령 7시에 모인다면 7시부터 30분까지 창가 합창, 8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역시 이야기(어른더러 하여 달랠 것), 9시까지 독창 독주, 또는 재담 소리, 9시부터 10시 반까지 토론, 10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반 시간 동안 밖에 나아가서 동네 순찰을 돌고, 11시 반부터 12시까지 자유로 팔씨름, 다리 씨름, 몸 재주, 수수께끼, 각각 자기 맘대로 하고, 자정을 치면 일제히 누워서 잡니다. 새벽 5시에 일제히 일어나서 합창 3회를 하고, 뛰어나가서 샘물로 세수하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동천을 향하고 체조, 합창을 30분 동안 하고, 내려와서 6시에 한 시간 동안 역사 이야기를 듣고, 7시 반까지 소견껏 장래 일을 약속하고, 7시 반에 흩어져 내려와서, 8시에 아침을 먹습니다.
13
이것도 크게 유익한 일이요, 겨울 방학에 하기 좋으니 꼭 한 번 실행해 보십시오. 자꾸 하게 됩니다.
15
12월 31일 밤 각각 자기 집에서 과세하지 말고 한 방을 치우고 이 날은 특별히 석유 등잔을 치우고 촛불을 밝게 켜고 벽 정면에는 ‘송구 영신(送舊迎新)’이라 크게 써 붙이고, 모여 앉아서 창가도 하고 신년부터 실행하고 싶은 일을 각각 적어 가지고 와서 차례차례 일어서서 그것을 크게 읽고 음악회처럼 담화회처럼 재미있게 놀다가, 새벽에 흩어져 돌아가면 혼자 자기 집에서 과세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의미 있습니다.
16
〈《어린이》6권 7호, 1928년 12월 송년호,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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