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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행장록(怪物行狀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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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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怪物行狀錄[괴물행장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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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기에 이 이야기를 한 개의 우스운 소리라고 붓에까지 올리지만 이 일을 당한 그 때는 너무도 창피스러워 남에게 이야기도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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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八), 구(九)년 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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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평양]의 여름을 지내는 방법으로는 누구든 大同江[대동강]을 택한다. 大同江[대동강]에서 한바탕 멱을 감고 버드나무 수풀에서 낮잠이라도 한잠 실컷 자고 나면 몸이 마치 날아갈 듯이 깨끗하고 그 괴로운 더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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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나는 매생이를 저어가지고 능라도에 가서 멱을 감고 섬에 올라가서 낮잠을 한잠 잤다. 낮잠을 한잠 실컷 자고 나서 인젠 집으로 돌아가려고 매생이에 돌아와 보니 벗어 두었던 옷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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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구두, 내복, 속옷, 양말, 모자 할 것 없이 흠빡 없어졌다. 혹은 매생이에 벗어 두지 않고, 섬에 벗어 두었나 하고 섬으로 다시 올라가서 찾아보았지만 섬에도 없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분명히 매생이에 벗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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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분명히 도적을 맞은 것이다. 도적이라 하면 지독한 도적놈이었다. 다 훔쳐간다 할지라도 하다 못해 속옷 하나라도 남겨 놓지 않고 이렇게도 흠빡 훔쳐간담. 좌우간 큰일났다. 속옷이라도 있으면 어디 촌가(村家)에 들어가서 옷을 빌리기라도 하련만 이 발가숭이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가까워 오면서부터는 차차 기생 실은 놀이배들이 이 능라도로 몰려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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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일을 어쩌나 大同江[대동강]에서 멱감는 사람이니 속옷만 있어도 버젓할 것이지만 벌거숭이로, 참으로 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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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배가 내 매생이 가까이 오기 전에 나는 다시 섬으로 도망해 올라갔다. 그리고 발가벗은 몸을 수풀 속에 웅크리고 앉았다. 웅크리고 앉기는 하였지만 참 한심하였다. 웅크리고 앉았다고 하늘에서 옷이 떨어질 바가 아니매 언제까지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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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옷이 생길 때까지 여기 이렇듯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 된다 하면 나는 장래 영구히 여기 웅크리고 앉아서 말라 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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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하늘에서 떨어질 바가 아니거니 발가벗은 채로 능라도 수풀에서 말라버려야 하나, 이런 極端[극단]의 생각까지 들어가서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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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건너서 들리는 기생들의 노래며 술군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가 마치 딴 世界[세계]가 눈앞에 잇고도 나는 거기 참석치 못하는 듯 이상야릇한 悲感[비감]까지 들어서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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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따라 한 웬 놀이배가 그렇게도 많은지 연달아서 능라도로 몰려 올라온다. 나는 점심도 굶고 저녁도 굶고 밤이 되기까지 그 수풀에 그냥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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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이면 혹은 발가벗고라도 갈 수 있을까? 이런 망상도 하여 보았지만 아무리 밤중이기로서니 平壤[평양] 大路[대로]를 발가숭이가 다녔다는 것은 아직 듣지도 못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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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만 하여 사실 방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에 누가 속옷 한 벌만 외상을 준다 하면 百[백]원 千[천]원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사 입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 나는 드디어 한 妙策[묘책]을 案出[안출]하였다. 즉 도적질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내 옷을 도적맞았으니 남의 옷을 훔친다는 도리는 정당방위라는 괴상한 이론을 세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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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에 이 발가숭이는 수풀에서 기어나와 살살 강변으로 기어 내렸다. 그리고 제일 어두운 곳을 택하여 교묘하게 기어서 어떤 놀이배에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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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배에는 바람이라도 부는 때를 막기 위하여 휘장을 준비해 두는 것인데 날씨 좋은 날은 그것을 걷어 접어서 뱃전에 놓아 두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목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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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적놈이 어떻게 도적질을 하는지 이 見習[견습] 도적은 치가 떨려서 손을 자유로이 쓰기조차 힘들었다. 거기서 發見[발견]된달싸 좀 창피할 뿐이지 기생이며 사공이며 심지어 요리집 주인까지라도 나를 절도로는 보지 않을 것이지만 마치 朝鮮銀行[조선은행] 金庫[금고]나 깨뜨리려 가는 것같이 가슴과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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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히 훔쳐내기는 하였다. 교묘히 훔쳐내어 가지고 내 매생이로 돌아와서 몸을 매생이에게 실으매 잠시는 숨이 너무 차서 금시 넘어질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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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를 몰래 능라도에서 띄어 가지고 강 중심에 와서 그 휘장을 몸에 천천히 감았다. 그런 뒤에는 市街[시가]쪽 언덕, 그 가운데도 T館[관]이라는 요리집 앞에 갖다 대었다.T館[관]에 들어가서 옷을 빌어 입고 집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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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館[관] 뒷문으로 들어가서 사무실로 쑥 들어섰다. 목에서부터 발까지를 휘장으로 찬찬히 감은 기괴한 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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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있던 그 집 書記[서기]며 보이는 이 怪物[괴물]의 침입에 모두 비명을 발하며, 보이 하나는 문을 박차고 도망까지 하고 書記[서기]는 의자에서 털석 방바닥에 떨어져서 몸만 와들와들 떨고 있다. 아마 무슨 幽靈[유령]이라도 출현한 줄 안 모양이었다. 영문 모르고 기생 하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악하니 뒤로 나가 넘어졌다. 때아닌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안경을 늘 쓰는 얼굴이 안경까지 없고 그 위에 머리가 모두 앞으로 늘어지고 흰 헝겊을 목에서 발까지 찬찬히 감은 뒤에 말도 없이(사실 무엇이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알지 못하여 나는 한참을 말도 안하고 있었다) 웅크리고 섰으니까 그렇게 보기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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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옷을 얻어 입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창피하여 書記[서기]며 보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려서 이 망측스러운 소문을 엄비에 붙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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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四年 一月[일구삼사년 일월] 《月刊每申[월간매신]》 所載[소재])
【원문】괴물행장록(怪物行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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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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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