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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지상에 「적도(赤道)」를 연재하던 때에 당한 일이었다. 하로는 신문사에서 나와서 집으로 갈려고 종로 네거리를 지날 때에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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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살펴보니 내 앞으로 오던 여인이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자세히 살펴보니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여자였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우두머니 섰을 뿐이었다. 나는 이 여자가 혹시 불량녀가 아닌가도 생각하고 그의 모양을 살펴 보았다. 노랑 구두에 붉은 치마! 검정 명주 두루막! 여우 목도리! 수수한 양머리! 분도 바르지 않은 얼굴!을 살펴보니 어떤 부잣집 귀부인같이 보이지 불량녀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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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궁금해 하였다. 혹시 나는 이 여자가 나의 소설의 애독자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도 나의 소설 애독자라는 여자가 나의 집으로 나의 신문사로 많이 찾아왔으니 이 여자도 그런 여자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더욱이 요사이에 「적도(赤道)」가 발표되자 나의 소설의 여자팬들이 많이 찾아 왔으며 편지도 많이 왔으니 이 여자는 나의 ‘팬’일 것이리라고 직각(直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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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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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부지중(不知中) 이렇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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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거리에서 말씀드리기도 안되었으니 저리로 들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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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는 ‘대연관(大連舘)’ 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사양했으나 자꾸 들어 가자고 조르기에 할 수 없이 들어갔다. 그 여자는 방안에 들어가 앉자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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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여기서 선생님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이 세상에서는 다시선생님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그 때 제가 그 약을 조금만 더 ⎯ 많이 먹었다면 원산(元山)서 만난 것이 최후였을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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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나는 눈이 둥그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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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나는 당신을 잘 기억하지 못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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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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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선생님이 백(白)×× 선생님이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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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나는 현진건(玄鎭健)이란 사람이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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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원산(元山) 계신 백(白)×× 선생님이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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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나는 원산 가 본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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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도망치듯 신을 신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아마 백모(白某)라는 사람이 나와 꼭 같이 생겼던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살면은 별일이 다 ⎯ 생긴다고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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