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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독일문학개관(近代獨逸文學槪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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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2.1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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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獨逸文學槪觀[근대독일문학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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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문학 발흥 시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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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도 노서아 문학과 같이 북구의 색채가 농후하다 하나 남부 라틴 문학의 색채도 다소간 혼화되었다. 여기에서 즉 筫素[질소]하며 순박하며 사색적 인간적인 원류에 예술적 온화한 라틴 색채를 벗긴 데 독일 문학의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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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도 그 초기에 있어서는 외국 문학을 모방하였으니 이것은 어느 나라 문학사상에서든지 대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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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맨처음에는 영웅 시가가 퍽 발달되었다. 그것은 4,5세기 민족 대이전시에 東觸西接[동촉서접] 다다른 곳마다 전쟁의 끊일 새 없었던 것이 그 영웅시가의 발달한 원인이 되었다. 이래 8세기 카알 대제가 천하를 평정한 후 모든 異敎[이교]를 개종하여 인민은 기독교를 신봉하였다. 이에 종교 시가가 세상에 유행되었다. 또 라틴어는 문명의 수입어로 이때 독일에서 큰 세력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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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11,12세기에 와서 봉건 제도며 시가 조직 등으로 생활이 복잡하여지고 또 문장어도 점점 발달하여 시가의 형식과 내용도 복잡하여졌으며 시가뿐 아니라 11세기에 『루오드리프』라는 소설이 出[출]하였다. 이것은 독일어가 아니고 라틴말로 쓴 것이나 독일 문학사상에 소설로는 『루오드리프』가 효시이다. 12세기말부터는 시가가 더욱 융성하여 騎士[기사] 시인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며 할트만 폰 아우에 등 대서사시인도 있었다. 14,15세기 인문파와 종교 개혁파가 일어남을 따라 교권 만능주의에 반항하는 소위 고전주의(의고주의)가 차츰 눈을 떴다. 이때 평민적 교훈시가 전성의 운을 가졌었다. 따라 희곡도 무수히 성행하였다. 『謝肉祭劇[사육제극]』의 작자로 유명한 평민 시인 한스 짝스도 이때 작가였다. 이리하여 18세기 국민 문학의 발흥 시대가 되었다. 이와 같이 18세기 이전 독일 문학사상에 많은 동요와 변천이 있었으나 별로 세계적으로 소개할 만한 것은 없었다. 비록 세계적으로 소개할 만한 현저한 결실은 없었다 하더라도 자연의 압력에 대한 반항적 정신과 자유의 신세계를 동경하는 不絶[부절]의 生名[생명]은 부패한 분위기 중에서 힘있게 움직인 것은 주의할 만한 사실이니 이것을 가장 힘있계 증명한 것은 월란드, 크롭스톡크, 렛싱 등의 부르짖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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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민문학 발흥 시대(18세기 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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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성공의 과거에는 불안과 동요와 변천이 반드시 있으며 생명이 漂洋[표양]하는 불안과 동요와 변천의 끝에는 반드시 큰 성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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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이후로 윌란드, 크롭스톡크, 렛싱 등이 出[출]함을 인하여 면목이 一新[일신]한 독일 문단은 세계적 지위를 得[득]하였다. 월란드(1733~1818)는 감정 문학파로 그의 섹스피어 譯[역]은 독일 문단에 섹스피어를 소개한 효시이었다. 그의 걸작으로 『黃金鍾[황금종]』『무자리온』 『이도리쓰』등이 있다. 크롭스톡크(1724~1806)의 시는 운율과 언어의 미로써 유명하다. 그는 일찍 사상의 웅대 節奏[절주]의 장중으로 유명한 밀턴의 『실락원』을 애독하여 그 암시를 많이 받았다. 그는 항상 "평민의 감정과 공상에 위대한 효과를 及[급]하는 유일한 재료는 종교 가운데 함유되었다" 고 思[사]하였다. 『求世主[구세주]』는 그의 작중 걸출한 것이다. 동시대에 렛싱(1729~1782)이 있다. 렛싱은 실로 독일 문학사상에 이채를 放[방]한 一人[일인]이다. 다른 시인보다 독특 탁월한 能見[능견]을 가진 그는 당시 독일의 동요가 극심한 정신계를 深切[심절]하게 관찰하여 창작 및 비평으로 독보였다. 절륜의 용자인 그는 일찍 沙翁[사옹]에 모범을 취하고 거기에 독일 국민성을 조화하여 외국극 모방의 기반을 脫[탈]하고 독일극의 기초를 공고케 하였다. 그가 국민 문학의 수립자로 후세에 앙모를 받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그 대표적 작으로 『文學書簡[문학서간]』『라오윤』『賢人[현인] 나아단』『함부륵극 비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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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점점 발달하는 독일 문학은 세계 문학계에 주목을 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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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颷興勃起時代[표흥발기시대](18세기 말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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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엽 소위 천재 시대가 즉 표흥 발기 시대(일명 광표 파괴 시대)이다. 15세기 이래로 일어난 종교 개혁, 문예 부흥 운동에 인하여 문학상에 신기운이 도래하였으나 그것은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문예 연구가 극단에 이르러서 문예상 일체 형식을 그리이스, 로마의 문예 형식에 取[취]한 의고주의였다. 의고주의는 형식의 완미와 내용의 견실 장엄을 목적하여 전체의 布置[포치], 결구의 균등과 齊一[제일]을 保[보]하였다. 그러므로 典雅的[전아적] 沈静的[심정적]이어서 破綻[파탄] 결함이 없음을 기하므로 이성적은 되지마는 감정의 용납은 許[허]치 않았다. 그러나 열렬 분방하여 滔滔不進[도도부진]하는 사상 감정은 그러한 속박에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의고주의가 인성의 자연과 상배됨을 깨달은 신사상은 인생을 예술적으로 형성하여 문예를 滿[만]함에 인생으로써 하려는 일종 낭만적의 열렬한 동경이 되었다. 이 정신상에 야기된 혁명 운동은 드디어 표흥 시대를 지었으니 구래의 모든 진부한 구속에서 脫[탈]하여 자유의 신문학을 건설하려는 것이 이 시대 운동이었다. 이 운동에 가장 유력하게 영향을 던진 것은 영문학과 루소의 '자연 복귀론'이었다. 청년 文士[문사]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여 후세에 불후의 걸작을 끼친 이가 많다. 괴테, 씰러 등은 그 중 특수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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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인 괴테(1749~1832)는 섹스피어, 호머, 단테와 같이 세계 4大詩聖[대시성]의 칭을 받는 이로 풍부한 감성과 심원한 사상은 전후에 匹儔[필주]가 絶[절]하였다. 누가 일찍 하이네를 보고 "괴테는 어떠한 사람이냐?" 問[문]함에 하이네가 "세계란 어떠한 것이냐, 군이 이것을 만약 답한다면 내가 괴테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을 보더라도 괴테의 廣深[광심]을 헤아릴 수가 있다. 그의 작으로 희곡 『이퓌게니에』『에끄몬드』며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며 소설 『親和力[친화력]』『에르텔의 비애』외 『시가와 진실』『이태리 기행』은 저명한 것이다. 씰러(1759~1805)는 괴테와 동시대이요 또 괴테의 친우이며 괴테의 감화를 많이 받은 시인이다. 그러나 색채는 괴테와 퍽 다르다. 씰러는 18세기 인문파의 활동을 가장 구체적으로 행한 자이며 시대 정신을 심각히 묘사하여 독일 국민성을 가장 강렬하게 읊조린 국민 시인이다. 그의 독특한 면목은 여기 있다. 그러므로 세계적 괴테, 독일적 씰러라는 말이 있다.『도적』『권모와 愛[애]』『오를레안의 소녀』『피에쓰코』등은 그의 걸작이니 모든 구속에서 뛰어나서 자유를 찾으려는 정신은 그의 작에 어디든지 흐른다. 희곡은 그의 장점으로 섹스피어와 동 지위를 점한다. 이 밖에 헤르데로도 당시 문단에 공헌이 컸다. 그는 루소와 和[화]하여 모든 不自然[부자연]을 배척하고 淸新生生[청신생생]한 기분을 詩界[시계]에 주입하였다. "교양없는 민심에서도 시적 요소를 볼 수 있다" 한 것이 그의 부르짖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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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낭만주의 시대(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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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씰러 등도 그 초기에는 열렬 분방한 감정을 도도히 토출하여 낭만주의에 기울어졌으나 만년에 至[지]하여는 尙古[상고] 사상에 잡히어 의고주의에 기울어졌다. 이에 독일 문단에는 낭만 운동이 다시 일어났으니 바로 괴테, 씰러가 문단의 종주권을 장악한 때에 전국민의 정신은 북부 독일에 위력을 呈[정]하는 계몽파에 대한 반동으로 낭만주의에 쏠려서 시단에 다시 일개 신국면을 개척하였다. 티이크, 우 ─ 란드, 슈우겔 형제, 크라이쓰, 하이네는 이때의 효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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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이크는 분방파의 효장으로 후세에 감화를 많이 주었다. 그는 절대한 공상을 품은 즉흥 시인으로 그의 작한 동화ㆍ物語[물어]ㆍ희곡에는 시적 색채가 퍽 흐른다. 우 ─ 란드(1787~1862)는 애국심 고취의 시인으로 특색이 있다. 그를 후세에서 이상적 국민 시인이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크라이쓰(1777~1811)는 희곡 천재의 칭을 받는 이로 비극을 잘 썼다. 그 작으로 『홈보르흐 親王[친왕]』등이 있다. 슈우겔 형제는 이때 낭만 운동에 가장 유명한 이로 "시인의 자유는 하등 법칙에든지 속박될 것이 아니다" 한 것이 그네의 이상이었다. 하이네는 서사시인으로 세계 문단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그는 초년에는 낭만주의 운동에 말년에는 소년 독일파에 큰 영향을 던졌다. 하이네의 시는 平明流暢[평명유창]하여 어떠한 계급에든지 애독되며 유연한 사상은 누구에게든지 이해키 쉬움으로 특색이 있으며 풍자에 비상히 當[당]하여 당시 사회를 기탄없이 매도하였다. 『小歌集[소가집]』『로만튜에로』『앗다토로르』등은 그의 저명한 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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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독일파 시대(1830~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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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독일의 자유 전쟁이 종식을 告[고]하고 나폴레옹 1세가 쎈트 헤레나에 유배됨에 독일 국민은 다시 황제를 대하여 영화스럽던 昔日[석일]의 제국을 건설코자 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대에 연합 회의가 되고 제국의 대에 연방 조직이 되매 제국을 重望[중망]하던 인민의 가슴에는 울분과 통탄이 응철하였다. 더욱 梟雄[효웅] 메테르니히의 억압 정책은 모든 자유 행동을 구속하였다. 이에 정치에 세력을 못 이룬 불평당의 절절한 사상 감정은 문예 방면에 현로하여 파괴와 회의를 일삼는 '소년 독일파'가 일어났다. 이 파의 운동은 19세기초에 재흥한 낭만주의에서 19세기 말엽 자연주의에 至[지]하는 사이 소위 과도기 운동이었다. 당시 伯林[백림] 대학에서 철학을 講究[강구]하여 "사유에 의하여 자각에 오는 神[신]"을 신립하고 재래성자의 天啓說[천계설]을 批認[비인]한 헤겔의 사상 혁명은 소년 독일파 운동에 전제가 되었다. 이리하여 소년 독일파는 구속스러운 재래 사회 분위기에서 일체 기존 문예를 弊履[폐리]와 같이 차 버리고 이상이니 신앙이니 전연히 소탕하였다. 그리고 관능적 성의 해방을 주장하며 연애 자유를 고조하였다. 참으로 抗舊[항구]의 맹렬한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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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바와 같이 하이네도 만년에 소년 독일파에 기울어져서 不少[불소]한 공헌이 있었으나 이 파에 유력한 것은 페루네, 레나우, 크리스찬 그라페 등이다. 페루네(1786~1837)는 철학·연극·문학·비평 등 다방면에 亘[긍]한 평민 문학자로 일반에 알렸다. 레나우(1802~1850)는 오스트리아인으로 독일 문단에 적지 않은 드림이 있다. 그는 심오한 감정을 가진 사상가로 우울과 염세적의 특색을 가졌다. 극시 『파우스트』 서사시 『사보나로라』『아르비겐세르』등은 그의 걸작이다. 동시대 크리스찬 그라페(1801~1836)는 낭만주의 시대 크라이쓰 이후에는 첫머리로 치는 희곡가이다. 희곡 『百日[백일]』은 그의 걸작이다. 이 외 소년 독일파에 에카알루, 구튜코(1811~1876) 등도 저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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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이르러 전세계 인류에게 많은 동경과 앙모를 주는 향토 예술의 전신인 촌락 소설이 이 때에 나타났다. 이전에도 전원 생활이며 촌락 기분을 그린 소설이 있었으나 이때에야 아우에르 파튜하, 요젭 랑 등이 출함에 촌락소설이 한껏 발달하였다. 아우에르 파튜햐(1812~1882)의 『黑林地方[흑림지방]의 촌락 이야기』며 요젭 랑의 『보헤미야 지방 이야기』 등은 촌락 소설 중 대표적 작들이다. 푸리튜 로텔(1810~1874) 같은 작가는 方語[방어]를 그대로 창작에 사용하여 드디어 방어가 표준어와 동지위를 얻게 되었다. 촌락 소설 발달에 伴[반]하여 사실주의가 점점 흐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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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실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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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독일파 시대에 번득거리던 사실 정신은 19세기 하반기에 至[지]하여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후라이탁, 헤펠 등은 사실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후라이탁(1816~1895)은 소설가로 그의 특색은 평민 사회의 실업적 정신이 주류가 된 것이다. 그 작으로 『신문 기자』『貸借[대차]』『잃어진 필적』『부렌틴』등이 가장 저명하다. 헤펠(1813~1863)은 희곡계에 양양 활보한 비극 천재의 칭을 受[수]하는 이요 독일에서 심리적 희곡, 성격적 극을 개창한 것은 헤펠이다. 그 작으로 『코오데이트』『이베룽겐』등은 저명한 것이다. 외에도 후온타네 등 사실파가 있었다. 동시에 사실파를 대항하려고 일어난 보수파 포올 하이제 등이 있었으나 有耶無耶中[유야무야중]에 쓰러지고 사실주의가 일보를 더 나아가서 문단의 주류는 자연주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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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연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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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단에 자연주의가 入[입]한 것은 불란서 반동기 1880년경이었다. 그 발생에 다대한 영향을 投[투]한 것은 당시 세계 문단을 진동한 佛[불]의 졸라, 露[로]의 톨스토이, 도스토엡스키, 노르웨이의 입센 등의 자연주의 사상이었으며 또 일면으로는 니이체의 초인주의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자연주의 운동에 가장 유력한 것은 왁네르, 주데르만, 하웁트만, 베데킨도 등이다. 왁네르(1813~1883)는 악극으로써 往古[왕고] 이래의 대활동을 試[시]하였다. 주데르만(1857~ )은 소설로든지 각본으로든지 세계적 지위를 得[득]한 이다. 그는 처음 소설 『우수 부인』『猫橋[묘교]』를 발표하여 사실주의 작가로 문단에 출래하였으며 1870년에는 사회극 『명예』를 발표하고 일약 龍門[용문]하였다. 『고향』『소돔의 최후』등은 그의 저명한 작이다. 주데르만은 "자기를 희생하여서라도 인습적 사회 도덕에 순종할까? 또는 어디까지든지 아욕을 주장할까? 인습적 사회 도덕에는 불합리한 것이 많아라. 그런 고로 어떤 사람의 행동이 그 시대에 배치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하여 단 사회의 事像[사상]만 묘사치 않고 거기에 해결을 與[여]하려고 하였다. 그의 작의 천고불멸의 면목이 여기 있는 것이다. 하웁트만(1862~ )은 입센의 감화를 多愛[다애]한 작가이다. 그도 주데르만과 같이 세계적 천재의 칭이 있다. 독일 재래 희곡상의 형식을 파엽하고 신면목을 건설한 것은 하웁트만이다. 『日出前[일출전]』은 그의 명작으로 독일에서 철저 자연주의를 문단에 응용한 첫 시험이었다. 묘사 상으로 자연주의에 본래 자연주의, 인상 자연주의의 2大[대] 분별이 있다. 전자는 절대 객관의 사상 그것을 중히 하여 조금도 주관을 삽입치 않으려는 주의이다. 즉 밝은 거울에 조물하듯이 物[물] 그대로 그리려는 것이다. 졸라의 "생리학자가 생물의 실험을 하듯이 소설도 사실을 실험 해부하여 보고 하듯 하라" 한 것은 본래 자연주의로 거기는 무인격 무인정이다. 그러나 인상 자연주의는 그와 반대로 주관을 용납한다. 회화상의 인상주의가 자연에 충실하려고 인상을 중히 하여 세밀한 묘사를 피하려 함과 같이 인상 자연주의는 외물의 印銘[인명]과 그를 말미암아 生[생]하는 내부의 인명을 아울러 묘사하여 내외가 철저케 하고자 함이니 독일에서 이를 철저 자연주의라고 불렀다. 하웁트만의 철저 자연주의는 프르트 등의 철저 자연주의의 암시를 받았다. 또 『일출전』은 씨레시아 지방의 織匠[직장]의 궁상을 뜨거운 눈물과 절절한 동정으로 예리하게 묘출한 것으로 사회 개혁가인 그의 면목을 잘 발휘하였다. 하웁트만같이 동서 문학에 廣涉[광섭]한 이는 드물다. 그는 입센, 졸라, 톨스토이의 암시를 많이 받았다. 『일출전』외에 『織匠[직장]』『적막한 사람들』『한네레의 승천』『沈鍾[침종]』등이 저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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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鍾[침종]』은 구도의에 대한 신도의의 반항을 상징한 것으로 그가 자연주의로 상징주의에 入[입]한 대표적인 작이다. 베데킨드(1864~ )도 독일 극단에 유공한 일인이다. 대담하게 육욕을 찬미한 데 베데킨드의 특색이 있다. 그 때문에 일방에서는 그를 독일 극단을 퇴보케 한 희곡가라는 통매가 不絕[부절]하였다. 그의 작으로는 『地靈[지령]』『춘기 발동』외에 소설ㆍ시 등이 不少[불소]하다. 그는 실로 병적 인이었다. 이 외에도 자연주의 작가를 擧[거]하던 『소년』『푸른 산』『奔流[분류]』의 작자 하르베(1805~)며, 『間狂言[간광언]』『교태』작자 쓔니츨러며, 하르트레벤 등 외에도 저명한 작가가 많다. 이와 같이 독일에는 자연주의가 희곡계에서 중심 세력을 얻었다. 이에 반하여 시는 신비적, 상징적, 인상적의 색채를 띠고 소설에는 향토 색채가 많이 흘렀다. 이것은 외국에 비하여 독일 문단의 특색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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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단의 인상, 상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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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바와 같이 희곡 방면에서 자연주의가 중심 세력을 잡음에 반하여 시단에는 인상적, 상징적, 신비적, 세기말적 색채가 농후하다. 저 초에는 철저 자연주의로 후에는 상징주의로 振名[진명]한 하웁트만에 감화를 준 홀츠등은 시단에도 많은 감화를 주었다. 헤르만파아르, 홀츠 등의 간행한 잡지는 신사상 고취에 노력하여 당시 배출하는 시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저 유명한 호 ─ 만스탈이며 데에멜은 이때 배출한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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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만스탈(1874~)은 불란서 상징주의의 암시를 받은 희곡가이다. 그는 시로도 당당한 지위를 얻었다. 그의 예술은 '예술을 위하는 예술'로 정조를 퍽 중시하는 시인이다. 『티티안의 死[사]』『창의 소녀』는 모두 그의 명작이다. 데에멜(1863~ )은 호 ─ 만스탈의 고급적 예술 지상주의에 반하여 평민적이다. 데에멜은 만유의 신성에 觸[촉]하여 질서 정연한 우주를 창조함에 예술의 임무를 찾으려고 하였다. 『해탈』은 데에멜의 걸작 시집으로 국민적 색채가 농후히 흐른다. 리리엔크로은도 인상파 풍에 長[장]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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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향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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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독일파 시대부터 아우에르파튜, 토이텔 등의 힘으로 문단에 이채를 呈[정]하던 촌락 소설은 1895년 이래로 그 색채가 더욱 농후하여 드디어 향토 예술을 산출하였다. 향토 예술은 교훈적의 저급 취미를 중심으로 하던 촌락 예술에서 탈진하여 고상하고도 보편적을 위주한다. 대도회의 참담한 생활을 주로 묘사하는 자연주의나 여성적 신경적 묘사를 위주하는 떼카단 상징주의와 같이 기계적 일시적 병적의 무미건조한 것은 일체 배척하고 전원의 취미, 농민의 생활을 묘사하되 일부적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하여 도회적 문명에 피폐한 인류에게 청신 자유스러운 향토열을 고최하여 상식적 수양과 국민적이면서도 세계적 신사상을 有[유]한 완전한 인격을 지으려는 자유ㆍ열렬ㆍ순결, 진지한 문학이다. 이 예술의 주창자 리엔하르트는 말하되 "향토 예술은 국부적 예술이 아니요 전독일 국민에 향하여 심미적 요구를 만족케 하려는 것으로 이 신예술은 향토에 무한한 애착을 有[유]하여 여기서 그 특색 있는 인생과 자연과를 발견코자 한다" 하였다. 이 예술의 대표자는 푸렌센(1863~ )이니 그가 1902년에 공표한 『이에른울』은 향토 예술의 대표적 작이다. 『이에른울』이 세상에 간행되어 불과 수년간에 백수 십 판을 거듭하였다. 이것을 보더라도 신시대의 요구와 향토 예술의 정신을 추측할 수 있다. 『리히겐타이』도 푸렌센의 명작이다. 『실행의 선전』『다수자』 등 작자 칼프라이트프트로이(1849~ ), 『에네티아의 死[사]』『트리스탄』의 작자 토마스 만(1875~ ) 등도 향토 예술의 작가로 유명하며 외에 슌핀, 퓨튜흐 등 여류 작가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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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서아에서 제창되는 농민 예술도 즉 이 향토 예술이다. 표현주의와 같이 20세기 독일 문단에 이채를 내는 예술이다. 흑연히 몽몽한 도회에서 병든 인류로 어찌 그러한 동경이 없으랴? 향토 예술의 발달은 실로 문학계에 신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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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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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는 대전 후에 일어난 주의로 형식을 중시치 아니하고 내부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데 이 예술의 생명이 있다. 인생은 苦[고]다. 생이 있는 한에는 苦[고]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닥치는 苦[고]를 두려워하여 운명을 저주하거나 생을 厭避[염피]하려는 것은 비겁한 행위이며 또 그럴수록 苦[고]는 더욱 닥치는 것이다. 人[인]은 마땅히 어떤 이상을 목표삼아 내부 생명의 활동력으로 그 苦[고]를 勝[승]할 것이다. 그 내부의 생명은 진, 선, 고귀하며 정의, 자유, 愛[애]스러워야 하겠다. 이러한 생명으로써 스스로 창조하는 이상을 가장 힘있게 표현하여 외래의 고뇌와 대항하려 한다. 자연주의는 외래의 인상을 그대로 받는 즉 수동적 소극 행동을 취하지마는 표현주의는 어디까지든지 자아를 긍정하여 외래의 인상을 능동적으로 대하려 한다. 비유하면 인간의 자아는 풀무〔治[치]〕다. 형형색색의 많은 철은 그 풀무에 들면 다 용해되어서 나종은 일인의 의사, 감정에 의하여 새로운 이상적 형태를 어떻게든지 작하기에 자유스럽게 된다. 이와 같이 표현주의는 외래의 인상을 일인간의 가슴에서 푹 무르녹여서 거기에 이상을 조화 표현하여 인간에 이상적 천지를 실현하려는 것을 임무로 한다. 이러므로 거의 현실과 상반된다. 그러나 이것은 未成品[미성품]과 기성품 사이에 있는 차이와 같이 당연한 것으로 본다. 마치 산에 있는 산림과 방에 놓인 책상과의 차이와 같이 본다. 표현 예술은 불란서의 미래파(의의는 다르다)와 같이 최근에 산출된 신주의로 세계 문단에 큰 주목 거리다. 동시에 一世[일세]를 능히 풍미할 충실한 내용을 具有[구유]하였다. 표현파 작가와 작품을 대략 들면 와르테르 하젠크레벨(『息子[식자]』『한티고네』 등 작이 있다), 한스요 ─ 스트(『적적한 사람』등 작이 있다), 라인하루트 요한네쓰 조르게(『乞食[걸식]』이란 작이 있다), 프리츠폰 운루(『한 시대』란 작이 있다),『가련한 從兄[종형]』의 작자 에른스트 팔라하,『빈곤』『愛[애]』『노여운 날』『카인』의 작자 단톤, 월도가니쓰, 『유혹』『산호』『카레 ─ 시민』『아침부터 재밤중까지』『瓦斯[와사]』『구라파』의 작자에 께올그, 카이젤 등은 저명하다. 그 중 카이젤은 대표적 작가로 그 著[저]『카레 ─ 시민』은 표현 예술의 가치를 세계에 소개한 명작이다. 다음에 『카레 ─ 시민』의 개요를 적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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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 시민』─ 영ㆍ불 양군의 戰[전]은 佛國[불국]의 패배로 인하여 카레항은 영군의 포위에 들었다. 시민 대표자가 여러 번 영국과 교섭한 결과 英王[영왕]은 시민 중에서 6인의 시민을 희생자로 영왕에게 보내면 全市[전시]는 구조될지나 불연하면 全市[전시]를 매몰한다는 명령을 한다. 대표자들은 종을 울려서 시민을 공회당에 모으고 토론하였다. 군국주의의 대표자인 한 사관은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조건에 복종할 수 없으니 차라리 깨끗하게 전사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도주의의 대표인 참사회원 에쓰다 ─ 수산피엘은 고상한 입지에서 영왕의 조건을 용납하려고 주장한다. 카레의 자랑거리요 세계 인류를 위하여 필요한 카레항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희생이든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에쓰다 ─ 수는 자기 스스로 6人의 희생자 중에 들기를 말하였다. 에쓰다 ─ 수의 충의에 감동이 되어 희생자 되려고 나선 참사회원이 6인, 에쓰다 ─ 수까지 합 7인, 적의 요구는 6인인데 合[합] 7人[인]이 됨에 1人[인]이 남는다. 그러므로 翌朝[익조] 정한 장소에 최후에 오는 자를 희생의 명예를 질 만한 자격이 없는 자로 인정하기로 결하였다. 翌朝[익조] 정각까지 약속한 희생자들은 정한 장소에 집합하였다. 그러나 선두에서 주장하던 에쓰다 ─ 수는 오지 않았다. 일동은 그의 심사를 의심하였다. 그러는 때에 여러 사람들이 6인의 앞에 시체를 가져왔다. 그것은 에쓰다 ─ 수의 시체였다. 에쓰다 ─ 수는 최후의 자로서 온 것이 아니라, 최초의 희생자로서 6인 먼저 갔었다. 그 死[사]에 격려된 6인은 종용히 적의 진중으로 나아갔다. 이때 영군 진중에는 황태자가 탄생하여 영왕은 그 축하로 6인의 시민에게 특사를 내렸다. 이에 참사회원들은 영왕이 카레의 거리 사원에 왕자 탄생의 감사한 기도를 드릴 때에 에쓰다 ─ 수의 관을 사원 제단 위에 안치하여 승리자인 영왕을 보다 큰 정복자인 에쓰다 ─ 수의 앞에 꿇어앉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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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917년의 작으로 백년 전쟁 때 불란서의 항구 카레의 시민의 사적에서 재료를 취한 것이라고 전한다. 아! 에쓰다 ─ 수의 고귀한 희생은 하등 기존의 신앙이며 도덕이 命[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내적 생명의 충동력이다. 이와 같이 표현 예술에 나타나는 이상주의적 인도주의적 경향은 내적 생명의 열렬한 영원의 승리의 표현이다.
【원문】근대독일문학개관(近代獨逸文學槪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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