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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심한 병이 있다. 그것은 위병인데 벌써 그럭저럭 십여 년이 된다. 철모를 제는 그것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앓아 누으면 과자며 과일 사다 주는 재미에 앓고도 싶은 적이 있었으나 한 번 고단한 신세가 되고, 또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때에 와서는 병이란 과연 무서운 것이라는 느낌이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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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병에 붙잡히면 만사가 그만이다.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고 위가 찢어지게 아픈 때면 너무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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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쓰림을 모르면 건강의 행복도 모른다’고 어떤 벗이 나하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병 없기만 소원이다. 더구나 내 처지로서 병이 없어야 할 일이다. 할일은 많은데 병은 나고, 병은 났대도 고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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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위산을 먹는다. 이것도 먹기 시작한 지가 삼 년째다. 그전에는 그것도 못 먹었다. 친구들은 내가 위산을 먹는 것은 버릇된다고 나무란다. 의사에게 뵈이고 상당한 약을 쓰라고 권한다. 그러나 나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위산을 여전히 먹는다. 권하던 친구들은 혀를 차면서 인제 버릇됐다고 나무란다. 나는 구태여 거기 변명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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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에 태전위산이나 호시위산이 꼭 상당한 약이 아닌 것은 나는 잘 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쓰면 내 위장에 잘 맞을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이 먹는 것이다. 병은 심하고, 괴롭기는 하고, 그래도 살고는 싶고, 어쩔 수 없이 먹는다. 병원에 가자면 적어도 이삼 원은 가져야 이삼 일 먹을 약을 가져올 것이고 위산은 이삼십 전이며 삼사일 분을 살 수 있으니 그것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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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 세 번이나 네 번 먹을 것으로 병원에 가 보는 것이 더 나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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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떤 친구는 말한다. 내게도 그만한 예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오래 계속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이삼십 전은 쉽게 생겨도 이삼 원은 어렵다. 또 이삼 원이 생기면 집이 생각나고 쌀과 나무가 먼저 생각난다. 우리같이 궁한 데 떨어지고 생활에 얽매이고 보면 그럭저럭 하여 완전한 치료법을 못 하고 만다. 어떤 때는 핏대가 서고 이가 뿍뿍 갈리도록 괴로우면서도 그저 위산으로 다졌지 병원으로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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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가세가 밥이나 굶지 않고 또 어머니가 계셔서 모든 것을 살피실 제는 머리만 뜨뜻해도 의사를 부르고 약을 짓고 죽 쑨다, 미음을 달인다, 과자를 사온다 하였다. 더구나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요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서 금지옥엽같이 길리었다. 그렇게 호강스럽던 팔자가 하루아침 서리 바람에 궁줄로 틀게 되어 어머니와까지 천 리나 멀리 갈리게 된 뒤로는 넓으나넓은 천지에 한 몸도 용납하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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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병까지 심하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병이나 없어야 할 터인데 병은 돈과 다툰다. 돈주머니가 무거우면 병주머니가 가벼워지고 병주머니가 무거우면 돈주머니가 가벼운 때다. 병은 가난과 삼생연분을 맺었는지 떨어지기를 싫어한다. 이리하여 나중은 툭툭하는 이 심장의 고동⎯그것도 영양 부족으로 미비한 것⎯을 끊어서 북망산의 한 줌 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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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세상에는 돈주머니 큰 이만 남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이들도 때로는 병에 거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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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은 그만두자. 하던 이야기나 어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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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위산을 먹는데 그것도 처음에는 듣는 듯하더니 요새에 와서는 귀가 떠졌다. 가슴이 뻑적지근하고 배가 빽빽하며 명뼈 끝이(위부) 찢어지게 아픈 때에 태전위산을 두 숟가락이나 세 숟가락만 먹으면 배에서 우루루 꿀, 쫄쫄 하면서 고통이 없어지던 것인데 요새는 세 숟가락은커녕 열스물 숟가락을 먹어야 그 모양이다. 참말 인이 박혔나? 버릇이 됐나? 그렇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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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이 요새는 진지 안 잡수? 응…… 몹시 아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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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에 세 공기 네 공기 먹던 내가 한 공기도 못 먹고 배를 만지는 때마다 아내는 걱정을 한다. 밥 못 먹지 고통이 심하지 살아갈 걱정이 있지……. 요새 내 꼴은 피골이 상접이 되고 얼굴이 푸르고 핼끔한 것이 한심하게 되었다. 밤에도 곤히 자던 아내가 두세 번 일어나서 내 배를 만지고 등을 누른다. 그뿐만 아니라 사지가 저리고 없던 기침이 나며 정신까지 아뜩아뜩하여졌다. 실없는 친구들은 날더러 아내와 너무 좋아해서 여윈다고 하나 나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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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왜 당신이 내 말은 안 듣소? 병원에 가 보시우……. 글쎄 병원에 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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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몹시 괴로와서 궁글 때마다 철없는 아내는 갑갑한 듯이 말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별 대답을 하지 않다가도 정 못 견디게 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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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글쎄 낼 아침 거리가 없어서 쩔쩔 하면서 병원에 어찌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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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병에 괴로운 나는 그것이 또한 괴로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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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침에 일찍 아내가 어디 갔다 들어와서 밤새껏 병으로 신고하다가 흐뭇이 누운 나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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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은 꼭 병원에 가 보시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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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가지고 가 보세요! 뉘게서 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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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아내는 그 돈 나온 곳을 묻지 말아 달라는 빛이 흘렸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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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없는 아내는 머리를 숙였다. 그 반지는 작년 가을 우리가 결혼할 때 부산 있는 어떤 친구가 기념으로 지워 준 결혼 반지다. 아내는 그것을 퍽 사랑하여서 일후서 늙어 죽어도 끼고 간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출입할 때 신는 구두와, 입는 의복과, 드는 파라솔까지 전당포에 넣어 놓고 문밖으로 못 나가면서도 그 반지만은 만지고 만지면서 그저 끼고 있었다. 그러던 반지까지 잡혀서 내 병을 고치려고 하는 아내를 생각할 때 나는 너무도 감격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릿한 살에 하얀 반지 자리가 뺑 돌려 난 아내의 왼손 무명지를 볼 때 내 가슴은 찢겼다. 오장은 끊겼다. 눈물이란 정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입술만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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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은 왜 시키잖는 짓을 하오? 응 누가 반지를 잡히랍디까? 어서 가서 찾아 와요!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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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드려야 마땅할 나는 도리어 아내를 나무랐다. 실낱 같은 내 목숨을 걱정하는 그에게 노염을 보이고 강박을 했다. 소리 없이 앉았던 아내는 눈물 방울을 치마에 똑 떨어치면서 일어나 나갔다. 내 가슴은 찢겼다. 나는 후회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마루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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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아내가 내 앞에 있었더면 나는 그를 얼싸안고 울었으리라. 아! 내가 왜 그를 나무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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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는 벌써 아내가 문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나는 마루에 쓰러져 혼자 울었다. 소리 없이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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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수가 텄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떤 잡지사에서 원고료 삼십 원이 나왔다. 삼십 원! 목 굵고 배부른 분들이 들었으면 하루 동안 소풍하는 자동차비도 못 될 것이라고 코웃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일 개월간 생활 보장이 되는 것이다. 고르지 못한 세상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내는 돈을 보자 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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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번에는 당신이 꼭 병원으로 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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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러 날 신음으로 쑥 들어간 내 눈을 보면서 웃었다. 싸전과 반찬 가게에서도 인제는 외상을 주지 않아서 이틀이나 좁쌀죽을 먹었고 그것도 없어서 아침을 굶었던 판이라 병원보다 급한 것은 쌀과 나무이다. 그러나 싸전과 반찬 가게에 빚을 갚고 쌀과 나무를 좀 사더라도 담배값이 오히려 부족한데 어떻게 병원에 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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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빚을 다 못 갚는 판인데 얼마쯤 갚을 셈 대고 꼭 병원에 가 보세요……. 응…… 여보, 제일 몸이 튼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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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내가 하도 권하는 바람에 나는 총독부 병원으로 갔다. 안국동서 총독부 병원까지 가려면 꽤 멀건마는 왕환 전차비를 생각하고 나는 술냇골로 걸어갔다. 십 전이면 두부 한 모, 솔가지 한 묶음 값이다. 한 끼는 넉넉하다. 총독부 병원 문 앞에 이르렀을 제 내 발은 무거워졌다. 바른손은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오 원지폐를 만적만적했다. 오 원이면 두 입이 열흘은 살 수 있다. 약을 먹어서는 일주일도 못 먹을 것이다. 일주일에 효가 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못 되는 것이다. 그 대신 일 원짜리 위산을 사면 보름은 먹을 것이고 남는 사 원은 나무…… 쌀…….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그만 우뚝 섰다. 도로 돌아 나왔다. 나오다가 또 들어갔다. 또 나왔다 이렇게 몇 차례를 하다가 무료과로 들어갔다. 길가에 있는 나무와 돌까지도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얼른 뛰어들어갔다. 안에는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내가 아는 의학생들이 저편에서 왔다갔다 한다. 그네들 눈에 띄면 나의 자존이 꺽일 듯이 나는 불쾌하였다. 또 돈으로 인정을 사는 이 사회 속에서 무료로 병 보아 준다는 것. 어쩐지 미덥지 않게 생각난다. 나는 그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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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 때에는 들어갈 때보다 더 바삐 뛰었다. 병원 문밖에 나서서 솔냇골에 들어서는 때까지도 조롱과 모욕을 담은 눈깔이 뒤를 따르는 것 같아서 머리를 못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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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흐리머리 대답하였다. 아내는 곁에 와서 내 호주머니를 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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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디……약 봅시다……. 뭐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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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이 구구하였다. 더구나 약까지 검사를 하려는 판에야 어떻게 자백을 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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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게 웃었다. 어째 그렇게 웃었는지 나로도 모른다. 무슨 일이 틀어지고 되지 않을 때면 나는 그렇게 웃는다. 웃자고 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웃음이 한숨과 같이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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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집어낸다고 내 호주머니에 넣었던 아내의 손에는 오 원의 지폐가 집혀 나왔다.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아내의 낯빛은 변하였다. 그는 지폐를 방바닥에 던지면서 쓰러졌다. 낯을 가리고 쓰러진 그의 등은 고요히 자주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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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는가! 내 목숨 중한 줄 내 어찌 모를까? 아내의 걱정이 없어도 걱정되거든 하물며 아내의 걱정이 있음에랴? 좀 웬만하면 나 편하고 그가 기쁜 일을 왜 못 하랴? 나도 눈에 눈물이 돌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모두 부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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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간이 있으니 가 보시오. 글쎄! 나는 아프다면 당신 두루막을 잡혀서도 병원에 보내면서 당신 몸은 왜 생각지 않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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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던 아내는 문 앞에 시름없이 던져지었던 지폐를 집어준다. 이번에는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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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가까와 오는 여름 볕은 뜨거웁다. 고루거각이 늘어선 장안에는 여전히 사람의 떼가 오락가락한다. 무슨 일들이 있는가? 무엇이 그리 바쁜가? 내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산[生]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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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란 참말 한번 가 볼 곳이다. 사람의 목숨을 판단하는 곳이니까.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목숨의 줄이 얼마나 길고 짧은 것을 궁금히 여기거든 점이나 사주를 보지 말고 병원에 가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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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치잖고 그냥 버려 두셨어요? 대단 중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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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병인지요? 고칠 가망은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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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위뿐 아닙니다. 폐도 좋잖고 신장도 나쁜데 공기가 깨끗하고 고요한데서 자양분 있는 것을 잡수시면서 한 일 년 치료하면 효를 볼 것 같습니다마는 그냥 이 모양으로 버려두면 팔 개월 넘기기 어려울 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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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병원에서 의사와 문답한 말이다. 나는 너무도 어이없어서 픽 웃었다. 고쳐 보아서 못 고치는 것은 허는 수 없지만 고쳐질 병을 버려두게 되는 때 그 맘이 슬픈 것이 아니라, 어떤 데 대한 악으로 변한다. 촌촌히 먹어 들어서 실낱같이 남은 나의 목숨의 줄이 뵈이는 것도 같고 또 일변으로는 으례 그러하려니 미리 기다리던 소리를 들은 듯이 우습기도 하였다. 나는 약병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의사의 말을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건강하였더면 그는 ‘밥을 잡수시면 살 수 있으나 굶으면 죽을 것이요’ 하였을는지도 모르겠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자양분을 먹으면서 적당한 운동을 하고 치료를 하면 회복하리라는 것은 의사가 아닌 나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두부 한 모와 솔가지 한 묶음을 생각하고 전차를 못 타는 형세에 요양지를 찾아 멀리는 고사하고 파고다 공원에서 가서 앉었재도 첫째 배가 고파서 못할 것이다. 그는(의사) 으례 할 일이요, 으례 할 소리로 알고 사람의 목숨의 신축(伸縮)이 제 손에 있는 듯이 거침없게 말하지만 내게는 사형 선고로 들렸다. 그러나 더 도리가 없는 나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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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모퉁이로 나오니 헌 갓에 대를 문 늙은이가 당화주역(唐畵周易)을 앞에 펴놓고 꼬박꼬박 존다. 저짓 말고 침통이나 들고 어디 가서 목숨의 신축이 한 손 안에 자재(自在)한 의사 노릇이나 하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 픽 웃었다. 그리로서 종로 네거리 전차 선로를 건너는데 전차가 땅땅 종을 울리면서 바로 곁으로 달려온다. 나는 눈이 둥글해서 뛰어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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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개월 전에 죽을 녀석이 무에 그리 무서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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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고 또 픽 하고 하늘을 보면서 웃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어두운 무엇이 흘렀다. 의사의 사형 선고가 우습고, 믿어지지 않고, 또 우리 처지에는 가당한 말이 아니라 하고 또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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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픽 웃기는 하면서도 내 맘속에는 빼랴 뺄 수 없고 속이랴 속일 수 없는 슬픔과 원망과 걱정과 어떤 희망이 흘렀다. 종로, 집, 사람, 하늘, 땅- 이 모든 것을 팔개월밖에 못 볼까? 일 개년 치료비가 없어서 죽나? 생각할 때 내 주먹은 쥐어졌다. 내게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팔다리가 있다. 나도 영감(靈感)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어째 나는 남과 같이 피지 못하고 마르는가? 같은 사람이 언마는 같은 사람에게 쪼들리고 쪼들려서 피가 마르고, 고기가 마르고, 뼈가 말라서 화석(化石) 같은 내 그림자가 눈앞에 보일 때 부르쥔 내 주먹은 더 단단히 쥐어졌다. 사람이 자기 운명의 길고 짧은 것과 좋고 언짢은 것을 모르니 말이지 안다면 확실히 안다면 그 속에서 무슨 변이 일어날는지 누가 보증을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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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혼자 분개하면서 집으로 가다가 나는 미친 놈처럼 허허 웃었다. 모든 것이 우스웠다. 세상이 우스웠다. 그것은 어린애 장난 같았다. 내가 쓰는 시(詩)도 의사가 가진 청진기도-모두 장난감 같다. 그것은 미구에 아침빛이 오르면 스러질 지새는 안개같이 생각나서 나는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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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커닿게 웃으면서 마루에 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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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소? 응 또 무슨 일 났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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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약병을 받으면서 묻는다. 그때 내 머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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