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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어린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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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3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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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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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습작 시대에 있는 나로서는 어느 것이 처녀작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에는 좀 어그러지지마는 나의 작을 발표하여 제일 느낌이 많았던 것으로 몇 가지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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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이다. 이광수 선생의 소개로 산문시 3편을 『學之光[학지광]』에 실은 것이 나의 작을 활자에 올린 처음이다, 시골 소년의 가슴은 끓었다. 그때의 기쁨을 무어라고 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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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의 없는 돈을 긁어내어서 『학지광』(내 글이 실린 것)을 샀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부름을 가다가도 『학지광』을 펴서 내 글을 읽고는 좋아하였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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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만은 만족치 못하였다. 『학지광』을 찾아오는 벗들이 보기 쉬운 책상 머리에 놓아 두고 보아달라는 표를 은근히 보였다. 벗들은 보았다. 한손 두손 거쳐서 여러 벗들이 보았다. 잘 지었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 왔다. 나는 더욱 기뻤다. 어머니도 기뻐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사귄 벗들보다는 한층 높아나 진 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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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로 나는 이역풍상에 방랑하는 몸이 되어 붓을 못 잡았다. 계해년 봄에 다시 고국을 밟게 되었으나 노동자의 무리에서 비지땀을 짜게 됨에 역시 붓과 인연이 멀었다. 그러다가 한석룡군의 뜨거운 사랑에 용기를 얻어 「自信[자신]」이라는 시 한 편을 北鮮日日[북선일일]신문에 曙海[서해]라는 익명으로 투고하였다. 즉시 발표는 되었으나 그리 큰 느낌을 못 받았다가 그 해 여름 羅南[라남]에 음악 대회(?)가 열렸을 때, 이정숙이라던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나의 작「自信[자신]」에 보표를 붙여서 음악 대회에서 연주한 것이 대환영을 받았다고 역시 일일보에 굉장한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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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나의 가슴은 끓었으며 무엇을 은근히 사모하였다. 그것은 나의 시가 걸작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읊었다는 주인공인 그 여자의 미모를 눈앞에 상상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내 글도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일종의 만족과 같이 거기에 대한 고마운 느낌도 났다. 속임없이 표백하면 나는 그때에 한동안은 낯도 모르는 그 이성을 은근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게 무슨 용기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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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꿈이다. 옛날의 꿈이다. 세월이 갈수록 지나간 자취는 봄동산의 아지랭이와 같다. 나는 그것이 애처롭다. 아아 그리운 어린 때!
【원문】그리운 어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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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운 어린 때 [제목]
 
  최서해(崔曙海) [저자]
 
  조선 문단(朝鮮文壇) [출처]
 
  192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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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