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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한녹수(紅恨綠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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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1.14
최서해
매일신보가 실험적으로 시도한 연작소설로 여러 명의 작가가 번갈아 가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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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恨綠愁[홍한녹수]
2
──남은 꿈
 
 
3
“아씨 진지 잡수서요!”
 
4
하는 할멈의 소리를 어슴프레 들으면서 이불에 씌워서 힘없이 누었던 운경이는 열시가 지나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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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는 밝은 가을 볕이 반이나 비치었다. 그것을 보고 시계를 쳐다본 운경이는 다시 눈을 감으면서 하품하였다. 사지가 늘신하고 정신이 흐릿하여 아침이거니 생각하면서도 그 기분은 아침 같지 않았다. 머리는 울린 뒤의 종같이 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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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받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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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귓결에 들리더니 미닫이 열리는 소리가 드르륵 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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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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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할멈의 소리였다. 그러나 윤경이는 못 들은 듯이 눈을 뜨지 않았다. 할멈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 권태증이 나서 아무 대꾸도 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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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 오늘이 공일인가? 왜 저렇게 주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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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아씨의 대답을 기다리던 할멈은 화가 났는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미닫이를 닫고 나갔다. 할멈 간 뒤에도 한참 있다가 운경이는 또 눈을 떠서 시계를 쳐다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던 그는 다시 눈을 스르르 뜨더니 옴팍한 손 가느다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서 머리 맡에 놓인 편지를 집었다. 그것은 연옥색 양봉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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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를 잡은 그는 그리 대절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빙그레하면서 쪽 찢더니 연분홍 종이에 잘디잘게 쓴 편지를 끄집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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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술기운은 아직도 남았으나 밝은 달 아래서 속삭이던 그 님은 어이 오지 않나니까? 오늘 오후에 찾으려 하오니 부디 기다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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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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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러한 의미였다. 그는 편지를 귀찮은 듯이 땅바닥에 던지면서 다시 이불을 휘휘 몸에 감고 눈을 감았다. 작각작각하는 시계 소리가 퍽 푸근하게 마치 자기의 피곤하고 기운 없는 마음을 끄는 줄 모르게 끌고 한 소리에 한 층계씩 멀고 멀고 깊고 깊은 속을 들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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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리에는 어젯밤 기억이 떠올랐다. 동시에 눈앞에는 그 장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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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밝은 달 얼마나 밝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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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산산한 바람에 누런 잎이 살랑살랑하는 청량리 길 버드나무 그늘로 나오면서 정답게 말하는 사내의 소리에 계집도 달을 쳐다보았다. 얼크러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초가을 달은 청초한 것이 얼음 같으면서도 무슨 애련한 정회를 머금듯이 계집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애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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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한잔 얼근한 계집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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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달이 밝으면 잠을 못 자요! 어쩐지 마음이 뒤숭숭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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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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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요! 달이 퍽 좋아요! 전번에도 금강산 갔는데 어떻게 달이 밝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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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내는 계집을 힐끗 보면서 계집의 곁으로 다가섰다.
 
24
이때였다. 전차가 으르릉 바퀴를 갈면서 청량리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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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한잔 먹으면 더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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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소리에 끊쳤던 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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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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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은 그저 웃었다. 이렇게 청량사에서 반주에 얼근한 계집과 사내는 동대문까지 걸어와서 전차를 타려다가 전차에 사람 많은 것이 안 되어서 종로로 걸었다. 우미관 앞에 와서 계집은 그냥 종로로, 사내는 관철동으로 갈리게 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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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경씨 시장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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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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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서로 보면서 상긋 웃었다. 그러나 계집의 웃음에는 무슨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내는 그것을 몰랐다. 계집은 말하리라고 주저주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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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우동이나 먹고 갑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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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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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억지로 계집을 끌었다. 못 이기는 듯이 끌렸다. 이리하여 어떤 중국 요리집 컴컴한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운경의 머리에 떠오를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경련적으로 몸을 틀었다. ‘아아 이리하여 나의 귀여운 몸은 회복할 수 없는 구렁에.’ 그는 생각할 때 알 수 없이 슬펐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 그 뒤로 공부라고 목적하고 서울 와서 책을 팔아……. 오오 책 팔이는 드디어 웃음 팔이로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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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 안국동 어떤 여관에 책팔러 나갔다가 씨근덕거리는 사내의 불덩어리를 받고 오 환짜리 지폐를 받아가지고 나온 뒤로는 그의 태도가 한껏 변하였다. 처음에는 분하였고 겪고 난 뒤에는 후회하였으나 빨닥거리는 종이조각을 생각하는 때마다 그의 추파는 자연히 사내에게로 갔다. 스러져 가는 먼 꿈을 좇는 듯이 퍽 침착한 가운데 그윽한 매력을 가진 그의 눈은 그의 소원을 이루기에 조금의 유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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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날 이때까지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고요한 때마다 그는 자기의 몸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머리를 쳤다. 지금도 어젯밤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고 맨끝── 지나 요리집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 중국 사람의 눈에 행여나 보일까 급한 숨을 죽여가면서 연출한── 장면이 떠오를 때 그는 몸을 틀면서 그만 벌떡 일어났다. 공연히 가슴이 쓰렸다. 또 이불을 쓰고 드러누웠다. 자기의 몸을 진흙 구덩이에 들들 볶이어서 조그마한 깨끗도 찾을 수 없이 생각되었다. 공부? 공부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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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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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지금 밥값에 쩔쩔매다가 어젯밤 변통된 것만 생각하면 기운이 났다. 더구나 그 주인 여편네의 찡그린 낯을 안 보게 된 것이 무엇보담도 행복스러웠다. 이렇게 그의 도덕 관념은 물질 관념의 지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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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시가 지나서 일어난 그는 몸이 아파서 밥도 먹을 수 없고 학교도 갈 수 없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원문】홍한녹수(紅恨綠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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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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