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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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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6
최서해
1
금 붕 어
 
 
2
오늘 아침에는 여느 때보다 한 시간쯤이나 늦게 붕어물을 갈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여느 때보다 늦게 일어나 세수한 까닭이었다.
 
3
“아따, 그놈 잘은 뛴다.”
 
4
서방님은 책상 앞에 앉으면서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5
“호호, 참 잘 노요!”
 
6
서방님 곁에 앉은 아씨도 서방님과 같이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았다.
 
7
“저놈은 물만 갈아 주면 저 모양이지?”
 
8
서방님은 아씨를 은근히 돌아다보았다.
 
9
“흥, 히.”
 
10
아씨도 마주 보고 상글 웃었다. 잠깐 침묵, 붕어는 굼실굼실 어항 속에서 놀았다.
 
11
그 붕어는 서방님과 아씨가 결혼하기 바로 이틀 앞서, 즉 지금부터 한 달 전에 어떤 실없는 친구가 서방님께 사 보낸 것이었다.
 
12
‘여보게! 붕어 세 마리 사 보내네. 맏놈, 가운뎃놈, 작은놈, 이렇게 세 마릴세. 맏놈은 누른 바탕에 검은 점 박힌 놈이고 그 다음 두 놈은 새빨간 금붕어일세.’
 
13
‘여보게! 자네 자식은 셋을 낳되 맏이로는 아들─맏붕어같이 억세인(검붉은) 놈을 낳고 그 다음에는 딸들을 낳되 이쁜 년을 낳게 응…… 이게 자네 혼인을 축복하는 표일세.’
 
14
이런 글과 같이 붕어 받은 서방님은 결혼 후 그 말을 아씨에게 하고 둘이 웃었다.
 
15
처음에는 붕어 물을 서방님이 갈았다. 서방님은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번 생각나면 물을 갈아 주었다. 열흘이 못 되어서 검붉은 맏붕어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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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쩔 거나? 큰 붕어 죽었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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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둥둥 힘없이 떠 늘어진 붕어를 본 아씨는 눈이 둥그레서 전라도 사투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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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느 놈이 죽었소?”
 
19
마루에서 세수하던 서방님은 양치질물을 쭈르륵 뱉고 머리를 돌렸다. 그때는 벌써 아씨의 옴팍한 작은 손에 죽은 붕어가 놓여져 서방님 눈앞에 나타났다.
 
20
“응, 큰일났구료 응? 우리 맏아들 죽었구료? 허허.”
 
21
“이잉 또 구성없네! 누가 아들이 호호.”
 
22
아씨는 낯이 발개서 마루 안에서 숯불 피우는 할멈을 보고 다시 서방님을 힐끗 보더니 그만 상글상글 웃었다. 할멈도 웃었다.
 
23
그뒤부터는 아씨가 붕어에게 물을 갈아 주었다. 서방님이 게을리 갈아 주어서 붕어가 죽었다고 아씨는 매일 갈아 주었다. 오늘도 아씨가 물을 갈았다.
 
24
“여보! 저놈은 뭣을 먹고 사는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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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락팔락하는 붕어 입을 보던 아씨는 상글 웃고 서방님 어깨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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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뭘 먹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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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웃는 서방님은 도리어 아씨에게 묻는 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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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을 줘 볼까? 잉…… 여보……잉.”
 
29
아씨는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서방님 어깨를 흔들면서 어리광 비슷하게 말했다.
 
30
“밥!”
 
31
“잉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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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밥 먹으니 그놈도 밥 먹는 줄 아우? 붕어는 양반이 돼서 밥 안 먹는다오!”
 
33
서방님은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역덕스럽게 말했다.
 
34
“이잉 구성없네! 잉 ……. 어디 어디 당신은 밥 안 잡수? 히힝 잉.”
 
35
아씨는 웃음 절반 트집 절반으로 서방님 넓적다리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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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익 이크 하하.”
 
37
“호호호…….”
 
38
서방님은 아씨 손을 쥐면서 꽁무니를 뺐다. 아씨는 더 다가앉았다.
 
39
“여보 여보 여보 여보! 저것 보! 저것 봐요!”
 
40
서방님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아씨는 꼬집던 손을 멈췼다. 그러나 놀라는 빛은 없었다. 그런 소리에는 속지 않는다는 수작이었다.
 
41
“이잉, 무엇을 보라고 또 구성없네.”
 
42
“응, 저것 봐, 저거저거 저것 봐요!”
 
43
서방님은 책상 위 어항을 입으로 가리키면서 아씨 허리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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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뭣이라요?”
 
45
“아씨도 머리를 돌렸다.
 
46
“참 잘 논다. 무어 기뻐서 저렇게 잘 노누?”
 
47
큰일이나 난 듯이 바쁜 소리를 치던 서방님은 신기한 것─붕어 놀이─에 정신을 뽑힌 듯이 감탄하는 소리였다. 두 손으로 서방님의 무릎을 짚고 서방님께 소곳이 안겨서 붕어를 보는 아씨의 눈에서는 소리 없는 웃음이 솔솔 흘렀다. 반 남아 열어 놓은 창으로 아침볕이 흘러들었다. 봄 아침 좀 서늘한 바람과 같이 흘러드는 맑은 볕은 다정스럽고 따분스럽게 어항을 비추고 두 남녀의 몸을 비추었다. 만개된 장미같은 붉은 선에 주름잡은 아가리 아래 동그스름한 어항에는 맑은 물이 느긋이 찼다. 하나는 치 남짓하고 하나는 그만 못한 금붕어 두 마리가 그 속에 잠겼다. 큰놈은 연한 꼬리를 휘저었고 흰 배를 희뜩희뜩 보이면서 빙빙 돈다. 급히 돈다. 작은놈은 가운데서 아주 태연하게 지느러미를 너불너불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두 놈이 몸을 번지고 흔들 때마다 물속에 스며 흐르는 볕에 금빛이 유난스럽게 번득거렸다. 두 놈이 셋 넷도 돼 보이고 큰 잉어같이 뵈는 때도 있다. 밑에 가라앉았다가 위에 스스로 솟아올라 구슬 같은 물방울을 꼬록꼬록 토하면서 물과 공기를 아울러 마시는 소리는 시계가 치는 듯도 하고 고요한 밤 고요히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도 같다. 안고 안긴 두 부부는 고요히 그것을 보고 들었다. 두 부부의 낯에는 같이 소리 없는 웃음이 흘렀다. 이 찰나 그네는 지난 엿새 동안 모든 괴로움을 다 잊었다. 앞으로 헤저어 나갈 길도 생각지 못하였다. 두 몸이라는 것까지 잊었다. 주위에 흐르는 햇빛까지 기쁨의 찬미를 드리는 듯하였다.
【원문】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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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192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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