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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醫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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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2
최서해
1
醫 師[의 사]
 
 
2
인력거에서 내린 김 의사는 어둑한 문간을 지나서 마당에 들어섰다. 고양이 이마빡만도 못한 마당은 밤 사이 궂은 비에 수렁창이 되었다.
 
3
“이리로 들어오세요.”
 
4
인도하는 청년은 마루 축대 옆에 서서 허리를 굽실하였다. 김 의사는 좀이 들고 때가 배여서 검데데한 마루를 지나 안방에 들어섰다. 어둑충충한 방에 흐르는 께저분한 냄새는 향기로운 약 냄새에 절은 김 의사의 코를 시게 하였다.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이불에 싸여서 아랫목에 누운 병인의 낯은 북창으로 흐르는 훤한 빛에 파랗게 뵈인다.
 
5
“에이 방이 너무 추해서.”
 
6
청년은 병인의 곁에 지저분히 놓인 사발이며 의복을 이리저리 치워 놓으면서 어서 앉으라는 듯이 의사를 쳐다보았다. 김 의사는 꺼머눅눅한 장판 위에 송구리고 앉아서 병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맥박도 듣고, 가슴도 두드려 보고 배도 만져 보았다.
 
7
진찰은 끝났다. 그러나 김 의사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말이 없다.
 
8
어둑한 방에는 침울한 기운이 한껏 무르녹았다. 간간이 파리의 앵앵거리는 소리와 병인의 가늘고 짧은 기침은 먼 나라에서 울려 오는 것 같았다.
 
9
“어떻습니까? 위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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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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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사는 머리를 숙인 채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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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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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말하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청년의 낯에는 초조와 의심의 빛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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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은 술을 많이 먹거나 몸을 방탕하게 가진 일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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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두 팔을 휘여 팔짱을 끼면서 청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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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런 일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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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첨 듣는 말같이 엄연하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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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는 영양 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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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부족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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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자면 잘 먹지 못하고 과도한 노력에 지쳐서 피가 마르고 기운이 쇠퇴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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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청년은 말이 끝나자 마자,
 
22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생선짐을 지셔도 늘 굶다시피 지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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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맺지 못하고 입술을 악문다. 푸르고 흰 그 낯에는 알 수 없는 비애가 흐르는 것을 의사는 보았다. 한참 만에 청년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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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병드신 지는 석 달이 넘어요!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 곧 병이 드셨는데 그런 것도 억지를 쓰시고……. 으흠! 악을 쓰시고 그놈의 입 때문에 생선짐을 지시다가 기진맥진하셔서 이렇게 누운 지가 오늘까지 닷새째 됩니다.”
 
25
김 의사는 천정을 쳐다보는 채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그의 가슴은 뭉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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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병을 고칠 수는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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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의사의 대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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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고칠 수 있구 말구요!”
 
29
“어떻게 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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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사는 말하기 어려운 듯이 퍽 어릿어릿하다가,
 
31
“물론 공기가 좋은 데 가서 잘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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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죽은 듯이 누웠던 병인의 “흥!”하는 괴로운 웃음 소리에 김 의사는 무서운 죄나 지은 듯이 입을 꼭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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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도 미음 한술 못 대접하는 형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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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이렇게 혼잣말처럼 뇌이면서 병인을 본다. 김 의사에게는 이 모든 소리와 태도가 자기를 비웃고 저주하는 듯이 들렸다. 그는 이것을 미리 얼프름하게 짐작하였다. 그는 낯이 확 붉어졌다. 그의 머리에는 어젯밤 일이 벌써부터 떠올랐다.
 
35
김 의사가 남대문통에 새로 ‘구제의원’을 개업한 뒤로 왕진(往診)이라고는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은 어제 저녁편에 김씨의 ‘작은집’으로 갔었다. 푸근한 비단 이불로 몸을 덮은 김씨의 작은집은 낯에 기름이 번지르 흘렀다. 그의 곁에는 온갖 과일과 과자가 벌여 놓이고 몸집이 뚱뚱한 김씨며 다른 친구들까지 앉아 있었다. 김 의사는 진찰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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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너무 먹고 운동이 부족해서 난 것입니다. 기름진 것을 덜 잡수시고 운동을 적당히 하세요. 그리구 약을 지어 보내드릴께 하루 세 번씩 잡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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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약값과 진찰비를 받았다. 그때에 그는 기뻤다. 자기도 그만한 노력을 들였으니 그만한 보수 받는 것이 당당한 일이라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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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눈앞에 어제 저녁과 정반대되는 현상을 볼 때, 김 의사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의혹과 당혹이 떠올라서 괴로왔다. 그는 무엇이 두 어깨를 꽉 누르고 머리를 띵──울리는 것 같았다. 병인의 힘없이 거불거리는 눈, 청년의 한숨은 자기의 하는 것이 쓸데 없는 장난이라는 암시나 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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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약 가지러 오시우.”
 
40
김 의사는 한마디 뒤두고 나서서 인력거에 몸을 실었다. 상기된 낯을 스치는 추근추근한 바람은 좀 시원하였다.
 
41
하늘은 의연히 찌부퉁하다.
 
 
42
그 청년의 집에서 나와 인력거에 앉은 김 의사의 인생관(人生觀)은 급전직하로 변하였다. 그가 눈앞에 그리던 그 모든 아름다운 이상(理想)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육칠 년이나 쌓아 온 공로까지 물거품에 돌아가는 듯 싶었다.
 
43
──나는 왜 의학을 배웠누? 배부른 사람보고 덜 먹으라! 배고픈 사람보고 많이 먹으라! 하는 것이 내 일인가? 있는 사람은 있어서 병, 없는 사람은 없어서 병! 으응 아니다. 아니다. 나는 그 사람(그 청년의 아버지)을 건지리라! 구세제민(救世濟民)을 목적하고 구제원을 세운 내가 돈을 생각하고 병을 그저 버려 두다니! 내가 고치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발을 굴렀다. 발구르는 바람에 인력거가 휘웃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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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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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멈칫하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의사는 비로소 정신든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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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어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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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고는 또 생각에 들었다. 생각이 한걸음씩 더 들어가는 때에 그는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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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아니다! 그를 약 먹여, 밥 주어, 의복 입혀, 그 모든 것이 나는 어디서 나누? 아무리 무슨 병인 것을 알았은들 그에게 약을 안 주면 무슨 소용인구?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약을 줄 수 없다. 내가 거저 준다면 나는 어디서 나서 먹으며 약을 사누? 그러면 내가 배운 의술은 결국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로구나! 나는 그러면 수천만의 진정한 병인을 못 건지고 조그마한 있는 이의 종놈이로구나! 나는 결국 있는 사람을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약을 벌여 놓았나? ──생각이 이에 미치니 김 의사의 사지는 아무 풀기없이 늘어지는 듯하였다. 온몸이 핀잔받은 때같이 땅속으로 자지러져드는 듯하였다. 의기양양히 빛나던 그의 낯에는 푸르고 거뭇한 빛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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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어물거리는 사람! 우뚝우뚝한 집! 뿡뿡하는 자동차! 우투투하는 전차! 더구나 대도 활보의 학생떼! 모두 왜 저러누? 무엇 때문일꾸? 그네들 부르짖는 이상, 배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하는구? ──이렇게 천만 사념에 무르녹았을 제 인력거는 어느덧 구제원 문 앞에 다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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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선생님! 어디가 편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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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를 짤짤 끌고 나온 간호부는 상긋 웃으면서 이마를 이쁘게 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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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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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사는 간호부가 방긋이 여는 문으로 진찰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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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생님 낯빛이 좋지 못하세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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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순결한 소녀로 보이던 이 간호부까지 지금 김 의사의 눈에는 요부(妖婦)같이 보였다. 너도 이 모든 것(약 · 병원 · 기계)과 같이 있는 사람의 종이로구나! 나도 그렇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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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이런가? 무슨 까닭인가? 뉘 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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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착과 모순으로 일어나는 의혹은 날이 갈수록 김 의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가 밟은 경험과 서적에서 얻은 지식을 종합하여 가장 합리적으로 연구하고 비판하려고 하였다. 그는 어떤 날은 병원에 나오지 않고 진종일 드러누워만 있었다. 한 달이 못 되어서 그의 낯빛은 파리하고 두 눈은 쑥 들어갔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김 의사가 실연한 게다? 아니 간호부하고 연애를 하는 거다? 하고 평판도 하고 또 근래에 의사 사이에도 흔히 있는 주색에 침범하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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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어떤 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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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일 차도 변변히 먹지 않고 그냥 자리에 누워서 번민을 쌓던 김 의사는 벌꺽 일어 앉았다. 스위치를 틀지 않아서 방안은 컴컴하다. 그는 훤한 창문을 바라보고 한참 앉았더니 “흥” 미친 놈 모양으로 싱긋 웃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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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를 떼어 입고 나선 김 의사는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는 전등이 그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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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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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간호부는 잠갔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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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 좀 할 테니 떠들지 말고 환자실에 가 있수! 응 그리고 문들도 단단히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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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부는 굽실하고 짤짤 슬리퍼 소리를 내고 갔다. 김 의사는 무엇이든지 연구할 것이 있으면 이렇게 밤에 진찰실에 나와서 책을 뒤지거나 제약실과 기계과에 가서 더그럭거린 일이 두어 번 있다. 이것은 온 병원 안이 다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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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부의 슬리퍼 소리가 환자실 저편에 스러졌을 때, 김 의사는 이전처럼 진찰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제약실로 들어갔다. 그는 전등 스위치를 틀었다. 번쩍하자 보기 좋게 진열한 약병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뚜벅뚜벅 저편으로 가더니 알코올통을 들어서 방안에 부었다. 다음에 그는 성냥을 그어서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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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소리와 같이 속이 붉은 푸른 불길이 넘울넘울 오르더니 점점 그 형세가 커진다. 널장판은 탄다. 약병을 얹은 시렁에 옮은 불은 천장에 옮았다. 훨훨 오르는 불길을 물끄러미 보던 김 의사는,
 
67
“허허”
 
68
유쾌하게 웃더니 천천히 병원 문을 나서서 지나가는 인력거를 불러 탔다. 밤 열시 봉천행(奉天行)에 몸을 실은 김 의사는 연방 차창으로 서울 거리를 내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는 알 수 없는 기꺼운 충동에 온몸이 들먹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모스크──가 보이고 장래의 조선이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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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옥을 벗었다. 자유의 몸!”
 
70
그는 또 한 번 팔을 죽 펴 보았다. 무엇이든지 할 것 같다.
【원문】의사(醫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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