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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수룩한 초가집의 모퉁이가 정면으로 보이고 높다란 들창에는 희미한 불이 비치어 있다. 앞문은 방 우편으로 났고 역시 짜그러진 죽창(竹窓)살로 희미한 불이 비치어 나온다. 앞문 옆 토방에는 무대 후면으로 오줌동이. 방안에서는 나중 사또가 등장하여 야단이 일어나기까지는 사람의 말소리에 섞이어 잘그랑거리는 돈 소리가 그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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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무대거든 까놓아…… 패 질를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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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이번만 싹싹 긁으면 물주가 아주 수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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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헤. 물주가 석 장 뽑는 것이 틀린 모양이다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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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자. 까놓아…… 응 이건 일곱…… 이건 진주…… 이게 여닯…… 이건 외빠귀(五八九)…… 이게 뒤뜨기지?…… 여섯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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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방바닥을 치며 갑자기 크게) 새칠팔정별장 당나구 타고 구름 속으로 왕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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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자네 같으면 이판에 아니 떨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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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괜히 가만 있잖고 뒤뜨기를 들어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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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하! 기가 막혀! 7자를 잡었단 말이야…… 질를까말까 하다가 그대로 잡고 뽑았더니 8자가 나오겠지…… 진주 아니야? 더 뽑기도 난하고 망설이다가 에라 하고 뽑았지…… 쓱 죄니까 새자 뽀족조롬하고 나온단 말이야. 하하하…… 패를 질렀으면 새빠귀(四八九) 따라지야 따라지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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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중재하듯) 아서 떠들지를 말어…… 그러다가 백가가 또 냄새나 맡고 쫓아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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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자, 어서 목(투전목)이나 걷어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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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못 놓는 게 무어야…… 그 녀석이 노름방을 뒤져 논을 어떻게 많이 모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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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또 삼태기에다 담어내지. (작자 주 ⎯ 지방에서 민요(民擾)가 일어나면 그 군 군수를 잡아 삼태기에 담아서 지경(地境) 밖으로 내어다 버리는 것이 전라도 모모 지방의 풍습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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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담어낼 때 담어내어도 위선 당장 우리가 당할 일을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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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만일 오늘 저녁에 여기를 오거든 (소곤소곤 하느라고 들리지 아니한다) 그리고 있다가 왕쇠놈이나 찾아가서 돈냥이나 집어주면 그만 아닌가 ? 그러면 왕쇠놈은 모른다고 뻗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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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하필 왕쇠만 데리고 다니나 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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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그렇지만 그 자식은 우리가 누군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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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그 자식도 내일 식전에 일쯕 동편으로 누구를 보내서 입이나 씃겨노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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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그렇지만 장난하려다가 섣불리 해서 잽혀만 가면 죽는다 죽어…… 차라리 멫냥 되지도 아니하는 판전 그까짓것 똥 누어 개 좋은 일 시키는 셈치고 주어바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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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나는 미리 달어나니까 겁날 것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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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역하게) 아 이건 곤달걀 지고 성 밑에는 못 가겠네…… 어서 패나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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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통인이 불켠 사초롱을 들고 앞에 서고 그 뒤에 동저고리바람에 당건만 쓴 사또가 따르고 그 뒤에 사령이 서서 우편으로부터 사푼사푼 들어온다. 그들은 조심조심하여 정면 들창 밑에 모여서서 엿을 듣는다. 방안에서는 인기척을 듣자 말소리와 돈소리가 뚝 그친다. 사또 일행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고 나서 약간 앞문 편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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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크게 기침을 하며) 이놈들이 또 여기서 노름을 하지…… 왕쇠야 ! (이 말을 하는 동안에 방안에서는 불이 확 꺼지고 바스락 소리도 들리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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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네 들어가서 한놈도 남기지 말고 다 잡어내라. (이 말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우당퉁탕 소리와 한가지로 앞문을 박차고 시커먼 그림자가 몇개 뛰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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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일행 (침묵 중에서 기세만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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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 빈놈의 집에 무슨 지게가 있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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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그러면 너는 얼른 이 근처에 가서 하나 얻어 가지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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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불 들고 이리 오너라. (앞문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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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 (무서운 듯이 사또 옆으로 서서 불로 앞을 비추어 주며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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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토방에 놓인 신발을 둘러보며 방백) 여섯 놈이 있었구나 (통인을 보고) 어서 불을 이리 대라 무서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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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웃으며) 병신스러운 놈…… 자 방으로 들어가자. (앞문 가까이 다가서며 방백) 대관절 얼마나 되나. (통인을 보고) 불을 이리 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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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갑자기 목침 하나가 방에서 날아와 사또의 가슴을 정통으로 맞힌다. 사또는 놀라 억 소리를 치고 뒤로 넘어지고 뒤미처 또 하나가 날아나와 통인의 옆구리를 맞히어 쓰러트린다. 그의 들었던 등불도 꺼진다. 그리고 뒤이어 시커먼 그림자가 방으로부터 튀어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두운 속에서 사또와 통인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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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 (빈 지게를 걸머지고 급히 등장. 독백) 웬일이야? 어데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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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 네⎯네. 지게 가져왔읍니다. 불이 왜 꺼졌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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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어서 이리 좀 오너라. (신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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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 말도 말아라. 난데없는 목침이 날어나와서 지금 사또하고 나하고. (신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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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잔말 말고 (어서 불이나 켜라. (사령은 성냥(옛날 것)을 꺼내어 사초롱에 불을 켜 통인이게 주고 사또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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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끙끙하고 겨우 일어나 앉으며) 어서 등불을 들고 들어가서 돈이나 내다 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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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사령과 통인이 불을 가지고 조심조심해서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웅성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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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얼마나 되느냐 한 4,5백 냥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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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머? 머? (일어서려다가 도로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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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 도통해서 여남은 냥밖에 아니 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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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머? 머? (비틀거리고 일어서려 하며) 그런 죽일 놈들! 고것을 가지고 노름을 했어! 어데 보자. (일어서지 못하고 쓰러지며) 아이고 가슴이야! 그나마라도 짊어지고 가자. (빨리 幕[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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