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늘 저녁 나는 당신에게 또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3
나는 오늘처럼 우울했던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대구에 두고 나만이 부산의 거리(당신도 이 거리를 나와 함께 걸은 일이 있겠으나)를 헤매고 있는 것이 슬펐습니다. 나는 행운의 사람인데도 어째서 이다지도 쓸쓸한 것일까 나는 나 혼자 여기 와서 우울한 것이 어디 있는가? 자문자답하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 떨어져 있는 것이 한없이 서럽습니다.
4
당신이 있는 곳에서 나는 살고, 나는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내 옆에 없으니 울고 싶고, 웬일인지 죽을 것 같습니다.
6
나는 당신이 있는 곳이 한없이 그리워질 뿐입니다.
8
당신이 말할 수 있는 모든 말로써 나를 꾸짖어주시오. 나는 반가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 옆에서 떠난 것 같습니다. 허나 나는 당신의 품안에서 지금 울고 있는 것 같은 심정입니다. 사는 것이 무엇이기에…….
10
아! 용서하시오. 나는 너무도 무기력한 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용기는 옛날에 팔아버렸지요? 울고 웃으며 나는 이렇게 허무한 세상을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좋으니, 웃음의 친구도 울음의 친구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우울합니다.
11
절망입니다. 처자를 시골에 내던지고 죄진 자처럼 썩은 바다의 도시를 헤매고 있습니다. 아, 불행한 것이 나는 아니겠지요.
13
나는 지금이 곧 당신의 무릎을 껴안고 힘 있는 대로 당신의 목을 끌고 싶습니다. 당신 없이는 세상에서 죽을 수도 없습니다.
14
술 한잔 먹지도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지금 미친놈처럼 나의, 나 혼자만의 독백을 붓이 움직이는 대로 솔직하게 쓰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원히 지내도록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도록 나는 나의 모든 정열에 바라고 있습니다.
16
돈이 없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무한한 유일의 재산이며 , 영원한 당신의 것이올시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14일 아침에 대구에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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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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