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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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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2
채만식
1
산 적
 
 
2
종로 행랑 뒷골 어느 선술집이다.
 
3
바깥이 컴컴 어둡고 찬 바람끝이 귀때기를 꼬집어떼는 듯이 추운 대신 술청 안은 불이 환하게 밝고 아늑한 게 뜨스하다.
 
4
드나드는 문 앞에서 보면 바로 왼편에 남대문만한 솥을 둘이나 건 아궁이가 있고 그 다음으로 술아범이 재판소의 판사 영감처럼 목로 위에 높직이 앉아 연해 술을 치고 그 옆에 가 조금 사이를 두고 안주장이 벌어져 있다. 그러고 그리로 돌아서 마방간의 말죽 구유 같은(평평하니까 말죽 구유와는 좀 다를까?) 선반, 도마가 있고 그 위에 가 식칼, 간장, 초장, 고추장, 소금 무엇무엇 담긴 주발이 죽 놓여 있다. 안주 굽는 화로는 목로에서 마주보이게 놓여 있다.
 
5
어디 가보나 다 마치 한가지인 선술집의 시커먼 땟국이 그래도 밤이라 그러한지 그다지 완연하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는다.
 
6
술꾼은 밤이 아직 이르기 때문에 그다지 많지 않고 두어 패가 들어서서 제각기 경성 시민 공동용의 붉은—입이 닿는 곳은 하얗게 벗어진 저깔 한 쌍씩을 들고 안주를 구워가며 흑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술국을 훌훌 마셔가며 술들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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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주 석 잔 놓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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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렇잖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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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긴생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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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주 석 잔 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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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한 그릇 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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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잔만 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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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과헌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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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나드는 문 옆에다 새로 백탄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 하나를 가져다 놓고 선술집 모양과 똑같이 땟국이 흐르는 더부살이가 산적을 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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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지글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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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연기가 물씬 솟아나며 맛난 냄새가 코를 콕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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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술집—(평민적 기분+구수한 냄새+땟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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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냄새가 침이 넘어가게 하는데다가 새로 일어나는 고기 익는 냄새는 회가 동하게 한다.
 
 
19
나는 안해를 시켜 전당을 잡히러 보내놓고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여 보았다.
 
20
가기에 십 분 누더기니까 뇌작거리느라고 오 분, 아차 단번 들어가는 데서는 안될 것이고 몇 군데 다니느라면 그것이 한 십오 분, 쌀을 팔아가지고 오느라면 십오 분, 그래서 삼십오 분.
 
21
삼십오 분! 삼십오 분이 나에게는 서른닷새나 되는 것같이 아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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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돌아와서 밥을 짓느라면 사십 분은 걸릴 텐데. 그러면 칠십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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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오 분을 지나야 입에 밥이 들어가겠거니 생각을 하니 한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허연 더운밥을 먹을 일이 기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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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는 소리가 허천이 난 놈 같기도 하겠지만 밤낮 하루를 꼬박 굶어보면 누구나 함직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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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육신이 멀쩡한 놈이 굶어?”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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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잃었기 따문에.”
 
27
“왜 직업을 잃어?”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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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놈더러 욕지거리로 반박을 써서 발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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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취직을 못해?” 하면
 
30
“게(蟹)꼬리만한 보통 상식밖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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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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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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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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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잖을 도리를 차려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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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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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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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같은 놈은 그대로 죽어나 버리면 고소하게 여길 놈도 있겠지만, 그러나 굶어죽지 않고 이렇게 버젓하게 살아가며 이렇게 얄미운 소리만 하고 있는 것만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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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앞으로도……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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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모두 군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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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삼십오 분과 사십 분을 기다리기가 정말 괴로왔다. 잊어버리고 누워서 책이나 볼까 하였으나 책이 밥그릇으로 보이고 국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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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을 뱃속에서는 무엇인지 청승맞게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고 그럴 때마다 창자가 끊기는 것같이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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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어떻게 해서 한 삼사십 분 보낸 듯한데 여편네는 오지를 아니하였다.
 
43
한 시간 가량이나 지나도 오지를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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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하여 보았다. 그만 나에게 싫증이 나서 달아나 버렸나? 전차에나 치었나? 못 잡히고 여기저기 창피를 보며 덜덜 떨고 다니나? 흑 어느 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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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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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하는 안해의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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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핏 일어나 방문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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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소?”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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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대문을 닫고 들어섰다. 남의 집 행랑방이라 출입은 아주 간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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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컴컴 어둔 데 선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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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화롯불이나 좀 피워두지.” 하고 바가지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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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롯불은 해 무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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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구어먹지 무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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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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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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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손에 신문지에다 조그맣게 꾸린 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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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쌀은 팔아가지고 온 것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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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뭐요 대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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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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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웬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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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구어 먹으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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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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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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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 어이구머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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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삼 년이나 같이 살았어야 그때처럼 놀라고 그때처럼 무렴해하고그때처럼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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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라움과 무렴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얼굴로 확 치켜올라 멍하니 끄먹끄먹하고 앉았다가 두 눈에서 줄기 같은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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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웬 셈이요? 무엇 땜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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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떡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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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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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팔 것을 못 생각허구 고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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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가 막혀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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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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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더 하지 못하였다.
 
74
“대관절 웬 셈인지 이야기나 좀 허구려, 잽히기는 얼마에 잽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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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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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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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나를 치어다보고 고개를 숙이며 쌕 웃었다. 계집의 눈물이란 과연 값이 헐타. 그래도 삼 년이나 같이 산 남편이라고 허물이 없대서고 꼴에 또 여자의 본능으로 애교 쳇것을 부리는지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쌕쌕 웃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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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기가 먹고 싶어 그랬나 보다고 짐작만 하였다.
 
79
“그래, 고기가 먹고 싶어서 오십 전어치를 다 샀단 말이지? 바보! 쌀을 두 되만 팔구 이십 전어치만 사두 졸 텐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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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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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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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따 저…… 저……”
 
83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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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을 잽혀가지구 선술집 앞을 지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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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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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를 굽고 더운 국을 훌훌 마셔가면서 술들을 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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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당신두 한잔 생각이 나드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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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89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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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또 마침 산적을——불이 이글이글헌 화로에다 석수를 놓구 산적을 다뿍 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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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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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응’ 하고 대답한 것은 나도 솔깃하여 한 소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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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데 아주……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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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허…… 그래서?”
 
95
“그래서 얼핏 푸주간에 가서 고기를……”
 
96
여편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만 질근질근 깨물었다.
 
97
나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98
“괜찮소, 자 그럼 우리 이거로 산적 구어 먹읍시다.” 하고 나는 팔을 걷고 일어섰다.
 
99
여편네는 그래도 민망한 듯이 머뭇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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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물러가지구 올 테야.” 하고 고기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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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따 뭘 그래. 지금 가지구 가야 물러주지두 않구 또 그렇게 먹고 싶든거니까 해먹지 뭘.”
 
102
“내일은?”
 
103
“내일은 또 어떻게 헐 셈치구…… 허허허허.”
 
104
나는 뱃속껏 유쾌하게 웃었다. 사실 유쾌하였다.
 
105
여편네도 같이 웃었다.
 
106
양념도 변변치 못하건만 산적 맛이 퍽도 맛이 있었다.
【원문】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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