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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량(善良)하고 싶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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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6
채만식
1
善良[선량]하고 싶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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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오늘은 신경질을 부리지 말리라. 부디 표독스럽게 굴지 말리라.’
 
3
아침 일찍 종업을 하러 나오면서 이렇게 어질고 싶은 명심을 한 것도 오정이 못되어 그만 다 허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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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러시아워가 지났는데도 손님은 너끔하지를 않고 도리어 더 붐비기에 웬일인고 했더니 오늘이 음력 사월 파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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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서 나가는 차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도록 심하지 않은데 들어올 때에는 광나루에서 벌써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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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九誼) ․ 모진(毛陳) ․ 화양(華陽) ․ 도교(稻橋) 이렇게 정거장마다 장속같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화양은 평소에도 승객이 많은 곳이라지만 도교는 가정거장으로 열 번에 일곱 번씩은 오르내리는 사람이 없어 정거도 않는 곳인데 오늘따라 변변히 여남은씩이나 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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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후원(上後原)에서부터는 뚝섬선(뚝島線)이 합치는 곳이라 수송력이 갑절로 느는 셈이나 종시 많이씩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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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城東) ․ 을지나 왕십리…… 왕십리는 시내 전차가 닿기 때문에 본시 들어오는 차에는 승객이 없으니 문제 밖이요…… 그 다음 마장(馬場) ․ 용두(龍頭)까지도 혼잡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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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러노라니 타지 못하고 처지는 사람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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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선(廣壯線)의 승객이란 언제나 빠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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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하급 샐러리맨…… 그렇지만 천하 쌍스럽고 누추한 이 교외선에서는 그들이 제일 상등 축에 드는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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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리 광우리 나물을 해서 머리에 이고 시내로 팔러 들어오는 광우리 장수 아낙네들은 과연 그들을 위하여 이 선이 생긴 것이나 아닌가 싶을 만큼 요긴히 이용 ․ 애용 ․ 전용의 삼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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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고장이 한번도 나지 않는 날은 있어도 어느 차고 그 광우리 장수 아낙네가 몇씩은 타지 않는 차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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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과 멀리 광주(廣州)에서 오는 장사꾼, 농사꾼, 어칠버칠꾼도 많다. 조석으로 통학생도 물론 적지 않다. 그러고 몽촌(夢村)이라더냐 하는 송파(松坡) 근처에 큰 금점판이 두 곳이나 있다더냐 해서 돈냥 벌어가지곤 시내 구령을 하러 오는 금점꾼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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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레! 자네두 서울 귀경 가넝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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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갑을 떠는 전라도 축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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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그, 지기미할 판띠기로 해묵다 사람 구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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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왁자 떠드는 영남 축, 이런 축들은 영락없이 풀대님에 지까다비나 고무장화에 수건으로 테머리 질끈 동인 금점꾼 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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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를테면 정한 승객만으로도 차는 늘 만원으로 복대기를 치는데, 오늘은 하마 갑절이나 객꾼이 불어놓으니 졸연할 이치가 없다. 어디 가 박혔다가 그렇게들 꾸역꾸역 들끓어 나오는지, 나오느니 맨 늙은 마나님네와 젊은 여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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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색들인들 좀 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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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는 그래도 덜하다. 젊은네들의 호사를 볼라치면 참 기가 막힌다. 사월 파일 관동 구경을 가는 참인데 분홍 하부다이 솜저고리에 풀벌레를 으끄린 듯 시퍼런 치마를 입은 이가 있는가 하면, 썰렁하니 생수깨끼적삼짜리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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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시집 올 때에 농지기로 해가지고 와서, 싸고 또 싸고 깊이깊이 아껴 두었던 옷들을, 시방 큰 나들이를 하노라고 알뜰히 꺼내 입고 나오는, 그리고 그런 농지기 옷보다도 더 깊이깊이 촌구석에 파묻혔다가 하루의 세상을 만나, 이렇게들 이곳저곳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아낙네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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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 그을고 땟국 낀 얼굴에다 분을 칠해 얼룩얼룩 얼룩진 그 얼굴들, 어릿거리는 표정, 북두갈고리 같은 손길, 대체가 건강하고 순박해서 좋달는지는 몰라도 노상 아름다울 수 있는 풍채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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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은, 고무신은 귀물이요 짚신이 대부분이다. 더러는 숫제 저 떨꺽이를 끌고 오지를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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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제 그 떨꺽이를 끌고 익지 않은 걸음을 걷노라고 곤란해하는 양은 우습다기보다 차라리 슬펐다. 그리고 그런 떨꺽이로 인하여 필경 조그마한 사건까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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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에서 촌스런 중에도 유난히 더 촌스런 젊은 아낙네와, 아마 그 시어머니라도 되는 듯 늙은 마나님이 여럿과의 경쟁을 용하게 이겨내고서 만원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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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떠나서 조금 가는데 그제서야 며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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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머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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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는 소리를 지른다. 신발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차에 올라타기에만 정신이 없다가 비로소 보니 그렇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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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지 않고 벨을 누르자 차는 급정거를 한다. 꽉 차서 닫히지도 못한 문으로는 나갈 수가 없고 창을 넘어서 뛰어내렸다. 저기만치 레일 옆에 굴러떨어진 떨꺽이를 집어가지고 도로 달려와서 창으로 넘어 들어와서 임자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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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는 얼굴로만 고마와하지 아무 말도 못하고 시어머니 되는 마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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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고마워라! 젊은 양반이 어질기두 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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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심심의 치하를 한다. 옆에서 보는 승객들도 자못 감심스러한다. 그렇게 하기를 역시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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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 같았으면 될 뻔도 않은 말이었다. 차를 정거시킬 게 어디 있으며, 더더구나 그 알량한 떨꺽이짝을 내 손으로 집어다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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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소리는커녕 짜장 울면서 몸부림을 쳐도 어림없었다. 와서 매달리고 사정을 한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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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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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쏘아 부딪쳤을 것이다. 그러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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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은 제길…… 그게 구경 가는 거야? 내 구경 남 시키러 나섰지! 그 돈으루다 빨랫비누래두 한 개 사서 얼굴허구 모가지 때나 벳길 일이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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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맞대놓고 혼잣말하듯 뱉어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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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촌 아낙네한테뿐이 아니라 아침의 그 어질고자 하던 명심을 잘 지켜 이제까지는 어기지를 않았었다. 차가 비좁다고 광우리 장사들을 타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또 짐삯으로 따로 표 한 장씩을 더 찍게 하지도 않았다. 탈 수 있는껏 태워 주고 자진하여 내려는 짐삯도 그만두라고 받지 않았다. 그럴 때에들 고마와하고 다행스러하는 얼굴들이란 보기에 퍽도 유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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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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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편의 선량함에 맞추어 자기네도 선량하려고는 하지를 않았다. 이편이 선량한 눈치를 보고는 무름한 줄 알고, 만만한 줄 알고, 도리어 좋지 못한 행티를 하려고 들었다. 번연히 광나루에서 탔으면서도 표를 사지 않고 시침코 있다간 성동쯤 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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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미 한 장 주시우. 도교서 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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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십전 한푼을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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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로 몇번 일러도 종시 응치 않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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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래요,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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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딱딱거려야 겨우 듣는다. 한번 쥐어박질러 주고 싶게 밉살스러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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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 따위 인간들을 데리고 친절히 굴며 상냥히 해선 무얼 하느냐고, 버럭버럭 반감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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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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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 차가 막 닿았을 뿐 승객만 다 내려서 나오고, 아직 표도 팔기 전인데 웬 허술히 차린 양복장이 하나가 개찰구를 제 맘대로 열어젖히고 차에로 향해 간다. 미리 나가서 자리도 잡고 편안히 앉았잘 욕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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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대합실엘 나왔다가 그 거동을 보았다. 이윽고 심정이 상해 가기 시작한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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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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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공손한 말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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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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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장이는 돌려다보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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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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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타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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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타십시요! 아직 시간이 안됐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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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회수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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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같이 뽐내는 바람에 이편도 어성을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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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담 먼첨 찰 타구 앉았으란 회수권이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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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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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면 어쩔 테예요? 남은 저렇게 열꺼정 짓구 서서 기두루는데, 무슨 탁으루 혼자만 편할 영으루 들어요? 뻔뻔스럽게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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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손님더러 그 따위 버릇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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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대접을 받구 싶거들랑 그만침 경우 빠진 것을 말아야 하는 법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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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어쩌구 어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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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멱살잡이라도 날 뻔한 것을 동료들이 말려서 그쯤하고 무사는 했으나 속은 영 뒤집혀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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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속이 상한다 치면 차에 탄 손님이란 명색들이 모두가 반반스런 얼굴을 지닌 자라곤 없어 보이는 것이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이 광장선을 타는 승객들이란 모두가 삐뚤어진 얼굴, 일그러진 얼굴, 애꾸, 곰보, 입삐뚤이, 말하자면 천하 어디서 무지막지하고 경우나 인정도 모르고 점잔이나 예절 같은 것하고는 이웃도 해보지 못한 불쌍놈들인 것만 같아 보이는 것이다.
 
69
돌아오는 길의, 성동 정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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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여전히 만원 가까이 벅찼는데 예의 광우리 장수 아낙네 한떼가 기다리고 있다가 소담한 그 광우리를 부득부득 들여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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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서 그렇게 떼밀고 들어오던 아낙네가 마침 이편과 시선이 마주치자 별안간 히히히 선웃음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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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탑시다유우? 짐표 사께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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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살을 떤다.
 
74
그냥 아무 말도 않았다면 도리어 좋았을 텐데 그 비굴한 웃음과 간살떨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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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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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광우리를 떼밀어 버리고는 탁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신호의 벨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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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움직이고 광우리는 주인을 깔고 넘어가면서 땅바닥에 가 엎으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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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끌리듯 고개가 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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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차 꽁무니를 바라다보고 섰는 그 아낙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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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그다지도 슬프고 절망적인 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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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찌르르 저리면서 그대로 올라달아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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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것을 겨우 지탱한 채 차가 왕십리에 다 올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원문】선량(善良)하고 싶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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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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