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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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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1
 
 
3
대엿새 잡고서 간 사람이 달포나 되어서야 돌아왔다는 것이니, 응당 그렇게나 늦게 된 까닭부터 물었어야 할 것인데 진숙은 불쑥,
 
4
"오빠 혼자?"
 
5
하고 묻고 나서야 아뿔싸 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단다.
 
6
"그럼 혼자지, 제 오라비가 동부인하고 서울 갔더냐?"
 
7
오라비의 신상에보다도 종호 소식에 더 마음이 팔린 딸을 편잔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으리라.
 
8
그러나 진숙이는 어머니가 그러한 딸의 심정을 얄밉게까지는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의 핀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 하는 딸이 대견히 여기는 사위를 두둔한다고 핀잔을 주는 친정어머니의 모 지지 않은 핀잔처럼 부드럽게 들리는 것이었다.
 
9
"미안!"
 
10
진숙이는 군인처럼 경례를 하고서, 냉큼 화제를 돌리었다.
 
11
"난 오늘두 안 오신 줄 알았어. 삼일상회서두 모른다잖아? 그래두 또 미심다워서 버스 회사에두 들러봤었지. 그랬더니 거기서두 못 봤다구 그러는군. 그래 꼭 안 오실 줄만 알구 어찌두 맥이 풀리는지. 오늘은 꼭 오시려니 했다가 안 오셨다니까 몇 개 안 되는 과일 봉지가 갑자기 천 근이나 되는것 같겠지!"
 
12
"옳지, 그러니까 들이닥치는 대루 오빤 혼자 왔수냐?"
 
13
"아이, 어머니두! 사과했는데 뭘 그러슈."
 
14
하고 진숙은 면구스러우니까 제라서 까르르 웃어 붙이고서,
 
15
"오빤?"
 
16
"연못가에 간 게지."
 
17
"연못가엔 혼자 뭣하러?"
 
18
"그럼 연못가엔 꼭 둘이 가야 맛이라던? 혼자 조용하니 앉았어야 연 꽃잎 피는 소리두 들리구."
 
19
하면서 억지로 웃음을 참는데 옆에서 달 순이가,
 
20
"아니 라우, 언니. 서울 아저씨하구 같이 나갔다우!"
 
21
하고 뚱겨준다.
 
22
그 말에 진숙은 덧없이 한숨을 후유 돌렸다. 말도 못하고 그런 내색도 할 수는 없었으나, 정말 오빠 재덕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보다도 몇 곱절 더 반가운 소식이었다.
 
23
'그이가 오빠의 생명보다도 내게 더 귀중했던가?…’
 
24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런 질문에 진숙은 터진 물 막듯,
 
25
'오빤 늦더래두 올 사람, 종호 씬 영원히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 ─’
 
26
이렇게 휘갑을 치고서 자기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27
그러나 막상 들어와 보니 할 일은 없었다. 그대로 연못으로 뛰어가고 싶은것을 언니와 어머니한테 낯이 간지러워서 방으로 들어왔다 뿐이다.
 
28
사랑 앞에서는 처녀는 언제나 수줍기만 한 법이다.
 
29
진숙이는 아침에 꺼내놓은 진솔 깨끼저고리에 역시 흰 조세트 긴 치마를 갈아입으면서도, 몇 번이나 종호가 돌아와 준 것을 고맙게 여기었다. 자기 본위만이 아니었다. 오빠 재덕이도 친구요 동지였던 종호를 잃은 뒤로는,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만큼 풀이 죽었었다.
 
30
'고마우셔라! 종호 씨!’
 
31
진숙은 지금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종호가 옆에만 있다면 안아 주기라도 하고 싶은 아니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게 흥겨웠다.
 
32
땀 찬 발에다 손(좁은) 버선을 신느라고 애가 쓰이는데,
 
33
"얘, 너 뭣하냐? 어서 나가서 오라비 저녁 먹으라구 일러라."
 
34
하고 어머니가 되레 재촉이다.
 
35
"네, 지금 나가요."
 
36
하고 진숙은 사뿐 몸을 일으키었다.
 
37
─ 그렇다고 진숙이가 경대 앞에 앉지 않은 것은 아니다. 머리에도 손질을 했고 상기된 얼굴에는 분기도 가벼이 뿌리었다. 무섭게 잽싼, 그리고 무섭게 세련된 동작이었다.
 
38
밖은 마침 촉촉히 젖은 젖빚 황혼이 내리고 있다. 열나흘 달이 벌써 떴는지 동쪽 하늘에는 자줏빛이 돈다. 진숙은 늙은 수양버들 가지가 터널처럼 추 욱추욱 늘어진 정원을 지나서 연못 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연못가에 갔다면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연못 아랫둑 한복판에 할아버지가 십년 공을 들였다는 반송이 있고, 그 밑에 생자작나무를 찍어다만 들어놓은 걸상 한 틀이 있었다. 오빠와 종호라면 반드시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인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 그림자도 없다.
 
39
"동산에들 올라갔나?"
 
40
동산에 오르면 한강 상류가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봉이 있다. 그들 뿐 만이 아니라, 근방 사람들이 다 비로봉이라고 부르는 봉이다.
 
41
그러나 비로봉까지는 한참 초간한 길이다. 연못둑을 한바퀴 돌아서 약물터 골짜기로 돌아오려니까, 또닥또닥 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조심조심 가까이 가보니 약물을 등지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어둡는 줄도 모르고 무슨 깊은 생각에들 잠겨 있다.
 
42
돌을 뚜드리는 것은 오빠 재덕이었다. 오빠의 손에서는 가끔 신경이 짜릿거리는 파아란 불똥이 튀고 있었다.
 
43
아끼는 오빠와 사랑하는 사람을 시야에다 넣은 처녀의 마음은 푸근한 안도와 흐뭇한 만족에 장난치고 싶은 생각까지 들어서 '오빠!’ 하고 목 고개를 거의 다 넘어온 소리를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조심조심 그들의 등뒤에까지 가서야 비로소,
 
44
"오빠!"
 
45
하고 뱉으면서 재덕이의 어깨를 탁 쳤던 것이다.
 
46
"아따, 깜짝야!"
 
47
사랑하는 누이한테는 속는 것도 즐거운 법이다. 오라비뿐이 아니다. 누이도 역시 즐거웠다.
 
48
그러나 진숙은 피가 싹 걷히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49
"오빠한테보다두 이 손님께 사괄 해."
 
50
하고 가리킨 사람은 뜻밖에도 종호가 아니다. 어둡기도 했지만, 그렇게 보아 그랬던지 뒷모습도 종호 같던 그 청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이였다.
 
51
"미안합니다. 놀라시게 해서 ─"
 
52
진숙은 얼결에 이렇게 사과를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53
"미안은커녕 감사합니다."
 
54
진숙은 눈물이 핑 솟았다. 무안했을 때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진숙은 처음 알았다.
 
55
"이 사람, 숙녀가 사과를 하건 다소곳이 받아줄 것이지 왜 이리 빗나가나?"
 
56
"아니야, 정말. 자네두 아까 보잖았던가. 나 약 먹던 걸?"
 
57
"옳아, 놀라서 체증이 떨어졌단 말이로군. 그두 그래. 건 치할 할 만두 하구 받을 만두 하네나그려. 하하하하!"
 
58
재덕이는 일부러처럼 버레기 깨는 소리로 웃어 붙이고서,
 
59
"얘 진숙아, 받을 만하다. 받아둬라."
 
60
하고 또 한바탕 웃어댄다.
 
61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62
진숙이는 눈물을 닦고서 정식으로 사과를 다시 했다.
 
63
"원 천만에요. 정말 내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아침에 한술 떠먹은 것 이 진종일 징커니 내리지 않아서, 재덕 군두 봤지만 아까두 활명술 사먹구 온 길이 랍니 다. 덕택에 후련하니 내려갔나 봅니다."
 
64
시치미 뚝 떼고 하는 이야기에 진숙이도 그만 웃고야 말았다.
【원문】젊은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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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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