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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天才)와 범재(凡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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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1.10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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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천재]와 凡才[범재]
 
2
─ 사랑하는 아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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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목요에 군의 글은 받았다. 그 뒤로 별로 하는 일 없이 어찌어찌하여 이제야 붓을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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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의 글을 얼마나 기다렸니?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두 형제가 서로 의지하였더니 거기도 조물의 시기가 있었던지 군은 북으로 나는 남으로 갈리게 되었구나! 別恨離愁[별한이수]가 언제나 우리의 가슴에서 스러지랴? 창에 드는 달빛과 재넘는 구름을 볼 때마다 군을 생각하는 정이 심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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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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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새벽달에 기러기 소리가 어찌 처량한지 잠을 못 이루었다. 더구나 그 기러기가 군이 있는 북방으로 오는 것을 생각하니 형의 가슴은 공연히 뿌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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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창에도 그 달과 그 소리가 응당 있었으리니 형을 얼마나 그렸느냐? 둘이 함께 있을 제는 어머니 아버지가 그립더니 오늘날 와서는 군이 몹시 그립구나! 그리운 생각을 끊으려 하나 끊을수록 더 치밀어서 더 괴롭다. 그대로 버려 두어 그릴 대로 그려 보려 한다. 형이 돼서 아우를 그리고 아우가 되어 형을 그리는 것은 자연한 일이니 막아서 무엇하랴?
 
 
8
군도 형이 그립거든 실컷 그리어라. 눈물이 흐르거든 실컷 흘려라. 사람은 정의 결정이라 눈물이 없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그 정으로 이성을 흐리지 말며 그 눈물에 見負[견부]치 말아야 할 것이다. 한때의 끓는 정과 흐르는 눈물로 말미암아 萬里前程[만리전정]을 그르친다는 것은 뜻있는 이의 할일이 아니다.
 
9
만난이 닥칠수록 우리의 기상과 의지는 천지를 삼킬 듯이 굳세고 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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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몸을 사랑하고 군이 군의 몸을 사랑함은 나는 나, 군은 군의 한 개인을 위하여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를 낳아 주고 우리를 길러준 사회를 위하여 그리해야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이 사회의 것이다. 사회는 우리를 먹이고 입혀서 길렀으니 우리는 마땅히 거기 갚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11
그런 까닭에 우리의 짐은 크다. 밤중에 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어깨에 놓인 짐은 우리의 힘에 너무도 지나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많은 의무를 짊어진 우리는 하루 한시라도 게으를 수 없는 일이며 조금이라도 이 한 몸을 허수롭게 가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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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에게 늘 말하는 ‘誠勤[성근]’ 이 별다른 것 아니라 위에 말한 짐을 잘 지고 나아갈 비결이라. 게으르고 거짓된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것이다. 도리어 자기 일신을 망치고 전 사회에 큰 해독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늘 참되고 부지런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늘 부러워할 것은 부지런하고 참된 사람이다. 천하가 모두 욕을 하고 배척하더라도 부지런하고 참되면 적까지 감복하는 때가 있을 것이요, 천하가 모두 추앙하고 옹호하더라도 거짓되고 게으르면 기필코 동지에게까지 물릴 때가 있을 것이다.
 
 
13
일전 군의 글 가운데 물은바 천재와 범재의 구별도 誠勤[성근] 여부로써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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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문학에 취미를 두고 오로지 거기에 힘을 쓰려고 하는데 천재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럽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것부터 우스운 소리로 생각한다. 어떤 학술에 취미가 붙어서 그로써 일생의 업을 삼으려거든 전 생명을 거기에 걸고 힘써야 할 것이다. 천재라도 忍[인]치 못하면 인하는 범재에 見負[견부]한다는 것은 군도 ‘努力論[노력론]’ 에서 읽었지만 꼭 그런 것이다. 하여서 못될 일이 어디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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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천재라 하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다. 나를 노력한 사람이라 하면 나를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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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은 泰西[태서] 어떤 문호의 말이다. 천재라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재조를 닦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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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成文章[일필휘지성문장]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다 된 뒤에 즉 성근을 쌓아서 성공된 뒤의 말이지 천생으로 그런 법은 고금동서에 그 예가 없는 것이다. 소동파의 적벽부는 문장으로 유명한 것이다. 그것을 읽는 이는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즉석 吟[음]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또 소동파도 즉석 음이라고 자랑하였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나 뒤에 그 짧은 赤壁賦[적벽부] 한편을 草[초]하는데 添删[첨산]에 添删[첨산]을 더하여 버린 종이가 두 상자인가 세 상자나 되었다 하니 그것은 참일 것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일곱번이나 개작하였고 李白[이백] 같은 천재로도 老婦[노부]의 磨斧爲針[마부위침]에 감하여 노력을 쌓았다 하니 천재의 노력도 작은 것이 아니다. 아니 도리어 범재의 노력보다 컸다. 그런지라 功[공]이 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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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을 주고 물을 뽑아서 되지 않을 곡식이 있을 리 없다. 오직 부지런이다. 그러나 거짓 부지런은 일시 남의 눈을 미혹케 하더라도 속이 없는 것이니 참된 부지런이라야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도 있는 바 천재를 붙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붙들던 천재라도 천재를 위한 천재가 되어서는 낭패다. 그것은 도리어 범인만 못할 뿐이다. 때로는 범인 이상의 해독을 사회에 준다. 우리의 바라는 천재는 사회를 위한 천재, 인생을 위한 천재라야 하겠다.
 
 
19
말이 너무 길었다. 이만 그치련다. 추풍은 나날이 높아서 벌써 삼각산으로 내려오는 바람은 차다. 아침 저녁으로 겹옷 생각이 간절하다. 여기가 그러니 북국에는 서리가 내렸을 것이다. 요사이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입고 지내는지 종이를 대하여 붓을 드니 뒤숭숭한 정을 금할 수 없다.
【원문】천재(天才)와 범재(凡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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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문예 시대(文藝時代) [출처]
 
  192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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