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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나 안 믿었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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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5
채만식
1
예수나 안 믿었더면 (전 1막)
 
 
2
〔인물〕
3
영감…… 전당국 주인, 50세 가량
4
아씨…… 본처, 45세 가량
5
철원(鐵原)집…… 소실, 30세 가량
6
안부인(安夫人)…… 전도부인, 40세 가량
7
식모…… 40세 가량
8
기타  동리 아이 2,3인
 
9
〔시, 장소〕
10
현대 초하(初夏), 경성
 
11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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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을 향해서 터진 ㄷ자집. 우익이 뜰아랫방, 대문, 부엌, 안방, 중앙이 마루와 건넌방. 좌익은 붉은벽돌로 2층이 높이 솟은 전당국의 뒷벽─벽에는 전면으로 다가서 전당국으로부터 안으로 출입하는 널빤지문이 달려 있다. 건넌방은 앞 쌍미닫이와 마루로 난 샛문이 열리어 방안의 의걸이 등속이 들여다보이고 1단 높은 앞 툇마루에는 돗자리를 펴고 퇴침이 놓였다. 마루의 앞 유리 영창은 전부 떼었고 뒷벽의 양편 문은 환히 열어젖혀 바싹 다붙은 뒷집 담이 보인다. 마루에는 찬장과 뒤주가 놓이고 뒤주 위에는 축음기. 안방도 위아랫문이 다 열리고 웃목으로 장롱이 들여다보인다. 마당에는 장독대와 전용수도전.
13
정오 바로 전에 막이 열리면 식모가 혼자 마루에서 노류장화로 걸레질을 치고 있다. 안방에서 시계 치는 소리가 들린다.
 

 
14
식모   (걸레질 치던 것을 멈추고 퍼근히 앉아 시계 치는 소리를 센다) 하나 둘 셋 너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이잉 열둘, 열두점을 쳐요! 벌써 열두점이 뭐야! 저 시계가 미쳤어 미쳐! 열한 점두 못됐을걸. 미쳤어 미쳐! 예수 믿는다구들 떠돌아다니는 우리 아씨만치나 미쳤어! 주인이 미치니깐 시계두 따러서 미치나부지?
15
(오정 싸이렌이 웅 하고 운다) 이잉 오정을 정말 불러요! 그럼 정말 오정이 됐군 그랴. 젠장맞일! 벌써 오정이람. 집안두 다 못 치운걸. 인젠 또 겸심을 치루어얘지. 겸심을 치루구 나서는 빨래를 풀을 해 널어얘지. 젠장맞일! 그 작은아씬지 뭔지 땜에 일이 갑절은 더허다니까 갑접은 더해. 웬놈의 빨래는 그렇게 사뭇 많은지. 일이 꼭 갑절은 더해. 젠장맞일! 일이 갑절 더했으면 월급두 갑절, 밥두 갑절, 잠두 갑절, 옷 얻어 입는 것두 갑절, 이렇게 난두 다 갑절을 쳐서 받어얘지! 그런데 멀 월급두 그냥 삼 원이지, 밥두 한 끼 한 사발씩밖에는 더 못먹지. 이런 때 양이나 컸으면 오죽 좋아! 잠두 고작 여덟점에 자서 일곱점이면 일어나는 걸! 젠장맞일. (걸레를 집어들고 일어서다가 뒤주 위에 있는 축음기를 들여다본다) 아 글쎄 요년의 것이 고렇게 소리가 아니 났으믄 이런 때나 혼자 있을 제 좀 틀어놓구 좀 들으면 오죽 좋아! 에이 고년의 것! 화가 나서 죽겠네! 작은아씬지 뭔지는 기왕 이런 걸 살 테믄 소리 아니 나는 거를 좀 사놓지. 그랬으믄 난두 이런 때 척 틀어놓군 척 (목을 내어) 노들강변 비둘기 한쌍( 고개를 오믈트리면서) 히히 (또) 백연폭포 (소리가 너무 큰데 놀라) 아이구머니! 영감인지 땡감인지 들었으면 어떻게, 귀는 어디서 오뉴월 귀뜨래미처럼 밝어가지구는. 귀나 좀 먹잖나? 유성기 좀 틀어놓구 실컷 듣게시리. 아이구 젠장맞일! 보구 섰으믄 뭘 허나! 그림의 떡이지. (돌아선다) 거넌방을 걸레질 아니 쳤다구 인제 들어오믄 또 쫑알대겠지! 우리 아씨두 미쳤어 미쳐! 글쎄 시앗을 멋허러 데려다가 한집살림을 헌담! (건넌방을 들여다본다) 흥 팔자는 주아! 편허게 누어먹구 옷이나 곱게 입구 단장이나 허구 말이나 다니지 않으믄 유성기 틀어놓구 콧노래 부르기. 그두 싫으믄 낮잠이나 자구. 젠장맞일 난두 나이가 좀 젊구 인물이나 좀 이뿌구 진죽 과부가 됐으믄 남의 첩으루 가서 이런 호강을 허지! (間) 단장이나 좀 해보까? (대문께와 전당국으로 난 문을 내어다보다가 혀를 늘럼 하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경대 앞에 주저앉아 미안수며 분이며 크림 같은 것을 더금더금 얼굴에 바르고 루즈를 볼에다가 칠한다) 어디 나두 히히 나두 이뿔려구 허지만! 헤, 연지가 너무 진했나 부다? 그래두 이만이나 붉어얘지.
16
안부인  (흰운동화에 흰양말에 동강치마에 우단 주머니에 긴 저고리에 안경에 검정양산을 받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두리번거린다) 이 집은 이 집인데? 아무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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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   (인기척을 듣고 질겁하게 놀라 걸레로 얼굴을 쓱쓱 씻으면서 마루로 나온다) 무슨 장사요! ‘구림분’ 있거들랑 외상 놓구 가시유.
18
안부인  (얼굴을 보면 우습고 말을 들으면 노염이 나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치어다본다)
19
식모   없수? 있거들랑 외상으루 한 병만 두구 가시유. 내 이번 월급 받어서 꼭 갚으께.
20
안부인  (노해서) 장사 아니야. 나는 이댁 아씨 찾어온 손님이야.
21
식모   네네. 아씨유? 손님이유? 네네. 큰아씨유? 작은아씨유?
22
안부인  (두릿두릿) 큰아씨? 작은아씨?
23
식모   그러믄 큰아씨두 있구 작은아씨두 있는걸.
24
안부인  압다 저 예배당에 단기는 그이 말이야.
25
식모   내내. (방백) 어쩐지 예수쟁이 같드라. (다시) 내내. 큰아씨는 이 뒷댁에 갔으만 내 갔다 올 테니 그럼 기대리슈. (내려온다) 다리 아프거든 거기 좀 올라앉으슈. (대문으로 나가다가) 집 잘 봐주슈.
26
(나가버린다)
27
안부인  (독백) 미친 여편넨가? (집안을 휘휘 둘러본다)
28
식모   (뒤를 돌아다보면서 대문으로 들어온다. 방백) 망할년의 아이새끼들! 사람을 막 놀릴 영으루 들어. (안부인더러) 아씨 곧 오신대유. 올라앉어 기대리시라구 그래유.
29
동리 아이들  (대문 안으로 들여다본다) 저기 있다 하하하하. 저기 있다 저기 있다.
30
식모   (쫓아가며) 이 망할 놈의 새끼들!
31
동리 아이들  (달아나고 밖에서 소리만) 하하하하 저 꼴불견 봐라. 아주 고 꼴에 분을 밀가루루 발루구 연지 찍구 곤지 찍구 하하하하.
32
식모   이놈의 새끼들, 한놈의 새끼만 붙잡어 봐라. 가랭이를 잡어 찢어놀테니. (대문께로 대고) 얘 이 오랄질 놈의 새끼들! 그래 네미 네 애비는 얼굴에 분두 안 바르니? 이놈의 새끼들.
33
동리 아이들  (소리만) 하하하하 약올라 죽겠지? 하하하하 늙은이가 연지 찍구 곤지 찍구 시집갈려구 아주 뻐게요. 하하하하 꼴불견이 꼴꼴꼴분견이.
34
식모   에! 망할 놈에 새끼들!
35
안부인  (물끄러미 보다가) 멋허러 아여 나이깨나 먹어가지구는 얼골에다 분을 발르구 저 꼴을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놀리지!
36
식모   걱정 말어요. 암만 그래두 당신 얼굴버담은 이뻐요. (부엌으로 들어간다)
37
아씨   (급히 들어오며) 아이 안부인 오섰에요. 난 누구시라구! 아이 이렇게 찾어오신걸. (왼손으로 바른손과 악수를 한다) 올라가세요. 그 새 안녕허세요?
38
안부인  네, 그새 다 안녕허십니까?
39
아씨   (앞서서 마루로 올라가면서) 어서 올라오세요. (부엌으로 대고) 어멈!
40
식모   (대답만) 내?
41
아씨   영감 겸심 안 자셨지? 안 자섰거들랑 어서 진지상 좀 채리게. 그러구 자네는 그게 얼굴이 무어란 말인가? 망칙스럽게! 지금 뒷댁에서는 허리를 잡구 웃느라구 야단이 났네. (안부인더러) 무엇 겸심 좀 같이 잡수서야지? 같이 좀 잡수십시다. (같이 마루로 올라와서 앉는다)
42
안부인  나요? 나는 지금 방금 집에서 먹구 나왔어요.
43
아씨   그래두. 그럼 머 냉면이라두?
44
안부인  아니 아니, 이담에 와서 먹지요.
45
아씨   아이 그래서 어떡허나! 모처럼 이렇게 찾어오섰는데. 그럼 저, 아이 무얼 좀 대접허나.
46
안부인  염려 마세요, 먹으나 진배없으니.
47
아씨   아이 그래두 그럼 유성기나 좀 틀어 디려예지. (축음기에다가 레코드를 걸어놓는다) (술이란 눈물인가가 들린다)
48
안부인  (이맛살을 찌푸린다)
49
아씨   좋지요? 나는 저 소리가 참 좋아요. 들으면 눈물이 날려구 허구 좋지요?
50
안부인  글쎄요 나는 원.
51
아씨   그럼 안 좋아허시는가 부군요. 그럼 딴걸 틀지. (레코드를 바꾸어 건다) 이건 ‘이양요’라구 들으면 몸이 으쓱으쓱허는 거얘요. 참 좋아요. (‘잊어버리기는 싫다’가 들려 나온다) 어떠세요? 참 좋지요? (조금 따라서 흉내를 내다가) 하두 좋아서 좀 배웠지요 해해.
52
안부인  (얼굴만 찌푸린다)
53
아씨   아이 이것두 안 좋아허시나 바! 그럼 무얼 틀어 드리나? (생각한다)
54
식모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씨아씨. 그렇거들랑 ‘노들강변 비둘기 한쌍’ 그걸 틀어 디리세유. 그게 좋아유.
55
아씨   자네는 참견 말구 가만 있어. 저 얼굴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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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   (고개를 끌어들인다)
57
아씨   옳지. 좋은 게 있는 걸 그랬군! (한참 레코드를 찾으면서 방백) 내가 그놈두 손톱으루 표를 해두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겨우 찾아서 바꾸어 건다) 이건 정말 좋답니다. 자 들어보세요.
58
(노랫가락으로 정포은(鄭圃隱)의 시조 ‘이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고처 죽어’가 나온다) 어떠세요.
59
안부인  응, 그것은 그래두 좋군요. 다 지 죽엄을 두려워허잖는. 그러니깐 우리 예수교에서두 그런 그 순교의 정신은 퍽 예찬허니깐요. 응 좋아요.
60
아씨   (기뻐서) 좋아요? 참 좋아요.
61
안부인  (듣고 있다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가 들리자 도로 얼굴을 찌푸리고) 앵! 존 줄 알었더니 그것두 그런 것이군! 앵! 앵! 것두 음탕헌 소리루군.
62
식모   (부엌에서 내어다보고 어깨를 우쭐거린다)
63
아씨   아니 이것두 싫으세요?
64
안부인  싫구좋구간에 그런 건 다 음탕헌 사람들이 듣는 거지 신성헌 우리 예수교인은 듣지 않는 것이예요.
65
아씨   (놀라) 아이구머니 어쩌나! 나는 몰랐지요. (레코드를 얼핏 멈춘다) 그랬으믄 나는 하나님께 죄를 받었게요! 믿은 지 한 주일두 못 돼서 벌을 받으믄 어떡헙니까!
66
안부인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67
아씨   네! 아이 고마워라. 나는 그럼 다시는 그런 소리는 안 들을 테얘요. (間) 그렇지만.
68
안부인  두구 안 듣는 수야 있나요! 아주 깨트려 버리시지.
69
아씨   참 그래야겠군요. 그런데 저것이 실상 내것이 아니랍니다. 우리 영감 작은사람 거얘요.
70
안부인  작은사람! 첩!
71
아씨   네. 글쎄 우리 영감이 내가 아일 못 나니깐 자식이나 볼려구 첩을 하나 얻었지요. 돈은 좀 모아서 인제는 부자 행세를 허자믄 헐 수는 있어요. 그래서 우리 내외는 돈으루는 남 부러워 아니해두 괜찮겠어요.
72
안부인  그건 아즉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즉 믿으신 지가 며칠 아니 되시니깐 성경 말씀두 통히 모르시겠지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부자가 천당을 가기는 낙타가 바눌구멍으루 나가기보다두 어렵다구.
73
아씨   낙타요? 저 동물원에 있는 낙타가 바눌구멍으루. 그 큰 즘생이 어떻게 바눌구멍으루 나갑니까?
74
안부인  글쎄 그러니깐 부자가 천당은 못간단 말씀이지요.
75
아씨   저를 어쩌나! 그럼 큰일났게!
76
안부인  그러니깐 영감님더러두 권면허서서 우리 예수를 믿으시두룩 허십시요. 그래서 모은 재산을 다 하나님 사업에 쓰시면 죄는 속할 수가 있읍니다. 그러구 더구나 영감이 첩을 얻으섰다지요.
77
아씨   네.
78
안부인  건 더 못 쓰지요. 그건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큰죄가 되지요.
79
아씨   큰죄! 저를 어쩌나! 그래두 자식이 없어서 자식이나 볼려구 하나 얻었대요.
80
안부인  자식이 없는 것두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81
아씨   어쩌믄! 나는 자식은 삼신님이 점지해 주시는 줄 알었더니.
82
안부인  그건 미신입니다. 십계명을 인제 보십시요마는 너는 나 이외에 너의 마음에 우상을 두지 말라 허섰읍니다.
83
아씨   네? 네?
84
안부인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두 섬기지 말라구 그리섰어요.
85
아씨   네네 아므렴! 나는 꼭 하나님만 생긴답니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그 첩 얻은 것을 그럼 어떡허나! 글쎄 첩을 얻어서는 딴살림을 헌다시는군요! 그래서 내가 머 그렇게 돈 더 들게 그럴 것 무엇 있느냐구 한집에서 살자구 그래서 지금 저 거넌방에서 같이 지낸답니다.
86
안부인  네, 그건 잘 허섰읍니다마는.
87
아씨   그래두 좋게 허느라구 형님 동생 외두 좋구 그랬지만 어느때는 화가 나구 미워 죽겠어요! 인제 자식이나 낳구 허면 영감 맘이 다 그리 쏠리구 재산두 다 그리루 갈 것 같어서 곰곰 생각허문 원수 같애요!
88
안부인  성경 말씀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 허섰읍니다.
89
아씨   네! 원수를 사랑허라구요? 네! 그럼 첩은 원수라두 사랑허믄 원수가 아니 되구 그래서 좋긴 허겠군요.
90
안부인  그렇지요 그렇구말구요.
91
아씨   네, 그럼 꼭 그렇게 해야겠군요. 그런데 참 아까 이야기허다가 잊었지만 글쎄 이 유성기두 그 사람이 판서껀 사온 거얘요.
92
안부인  네. 그래두 지금 곧 깨트리든지 그래 버리십시요. 우리 신성헌 예수교인은 그런 음탕헌 노래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93
아씨   네! 그럼 그러까요. (걸던 레코드판을 집어다가 마루 뒷문 밖으로 내던져 깨트린다.)
94
안부인  잘허섰읍니다. (일어선다) 그럼 나는 가겠읍니다.
95
아씨   왜요! 좀더 노시다 가시지?
96
안부인  지금 또 가볼 데가 있어요. 그럼 영감께 잘 전도두 허시구 그래서 회개를 허시게 허십시요. 그러구 내일 잊지 말구 오서서 예배두 보시구 성경공부두 허십시요.
97
아씨   네네. (대문 밖으로 따라나간다)
98
영감   (전당국 뒷문으로 나온다)
99
식모   (내다본다. 얼굴은 말끔해졌다) 영감 겸심 진지 잡수세요.
100
영감   응. 저 가게에두 어서 겸심상 내가게. (마루로 올라오며) 작은 아씨는 어디 가섰나.
101
아씨   (대문으로 들어오다가) 눈에 안 뵈믄 그 사람만 찾을 줄 아슈!
102
영감   마누라는 집에 있는 줄 아니까 그리는 거지.
103
아씨   나두 나갔다가 들어왔다우. (올라와 앉는다.)
104
식모   (밥상을 갖다 놓는다)
105
영감   그래 어디 갔어!
106
아씨   아까 저 툇마루에다가 저렇게 채려놓구 낮잠을 자더니 모르지요. 코는 웬년의 코를 그렇게 동리가 떠나가게 드르렁드르렁 고는지!
107
영감   나는 바루 가게에 앉었어두 못 들은걸?
108
아씨   누가 코 안 골은 걸 골았다구 무함 잡을까바 그러슈?
109
영감   아냐. 저 코고는 소리두 잘만 골으면 들엄즉헌 법이어든.
110
아씨   나는 그버담 더 잘 곤다우.
111
영감   너무 몹시 골아두 숭업지!
112
아씨   옳지, 꼭 그렇게 작은여편네가 허는 짓은 다 이뿌지? 나 허는 짓은 다 보기 싫구?
113
영감   그럴 리가 있나!
114
아씨   대체 그 사람이 어디가 그렇게 이쁩디까? 코 오뚝헌 코가?
115
영감   응, 코가 오뚝헌 게 이뿌긴 이뻐.
116
아씨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내 코는?
117
영감   응, 마누라 코는 벌씸헌 게 사람이 무척 좋아 보이구.
118
아씨   (좋아한다) 그럼 그 사람 눈은?
119
영감   그렇지. 눈두 가느소롬헌 게 이뿌긴 이뿌지.
120
아씨   (가리키면서) 그럼 내 눈은?
121
영감   응, 마누라 눈은 재주가 있어 보여. 사람이 미련허지가 않거든.
122
아씨   해해. 그럼 그 사람 입은 ?
123
영감   입? 그렇지 조고만헌 게 귀인성이 있어.
124
아씨   그럼 내 입은? (가리킨다)
125
영감   마누라 입? 응 그렇지. 마누라 입은 큼직헌 게 복이 들어서 다 내가 이렇게 밥술이나 먹는 것두 다 그게 마누라 덕이어든.
126
아씨   해해. 그런데 참 아까 안부인이라구 전도부인이 왔는데.
127
영감   응, 참 마누라 그새 예수 믿은 걸루 천당이나 가게 됐수?
128
아씨   글쎄 그게 말이예요.
129
영감   마누라가 천당 가면 나두 좀 따러가얘지. 내가 따러간다구시는 아니허겠다?
130
아씨   글쎄 내 말을 들어보세요.
131
영감   왜 못 가게 됐나.
132
아씨   못 가게 될까봐요.
133
영감   허! 큰일났게? 그럼 천당 갈려구 애쓸 것 무엇 있소? 아무데서나 전당국이나 해먹구 되여가는 대루 살지.
134
아씨   그래두 가얘지요.
135
영감   못 가게 됐다면?
136
아씨   글쎄 아까 그 전도부인이 그래요. 부자가 천당을 가기는 낙타가 바눌구멍으루 나가기버담 어렵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구.
137
영감   무엇? 어떻게?
138
아씨   부자가.
139
영감   응 부자가.
140
아씨   천당을 가기는
141
영감   응 천당을 가기는 어렵다구? 괜찮어 일등차 타구 가지?
142
아씨   아니얘요 낙타가.
143
영감   낙타가, 그래서?
144
아씨   바눌구멍으루 나가기버담 어렵대요.
145
영감   낙타가 바눌구멍으루 나간다? 저 동물원에 있는 낙타?
146
아씨   내.
147
영감   워너니 못 나가지! 바눌이 낙타구멍으루 나간단 말을 잘못 듣잖었수?
148
아씨   아니래두 그리시네.
149
영감   그러면. 부자가 천당 가기는 낙타가 바눌구멍? 응 바눌구멍으루 나가기보담두 어렵다, 응 그럴 테지. 바눌이야 낙타구멍으루 나간대지만 낙타야 어디 그 좁은 구멍으루 나가는 수가 있나! 그런데 저 어째서 부자가 천당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구 ?
150
아씨   그건 나두 몰라요. 성경 말씀에 그런 말씀이 있대요.
151
영감   응 그러면 응 존 수가 있군. 그래믄 존 수가 있어.
152
아씨   어떻게.
153
영감   돈이 좀 들더래두 말이야, 바눌을 어쨌든지 큼직허게 하나 철공장에다가 마추거든. 자세 들우. 얼마나 크냐허면 둘레가 낙타 몸뚱이보담 크게 해요. 그래 가지구는 떡 천당을 갈 때에 그놈을 화물자동차에다가 실쿠 간단 말야. 그럭허며는 천당 문지기가 느이는 부자니까 낙타가 바눌구멍으루 못 나가듯이 천당에 들어오지 못헌다구 그럴 게 아니요? 막으면서 그러거들랑 그놈 바눌을 척 내려서 문지기가 보는데 천당 문에다가 구멍을 하나 쾅 뚫거든. 뚫어질 게 아니야? 그래 놓구 자, 낙타가 이 구멍으루 나가나 못 나가나 한번 시험을 해보라구 떡 뻐티거든. 어때. 그랬으면 될 거 아니야?
154
아씨   글쎄! 참 영감 의견이 그럴 듯허군요. 딴은 참 그래요.
155
영감   그런 묘방이 있으니깐 염려는 말구. 그러구 아무헌테두 알으켜주지 말구 혼자만 알구 있어요.
156
아씨   그럼요! 내가 알으켜 주긴 누구를 알으켜 주어요.
157
철원집  (파라솔을 닫으면서 행똥행똥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아이구 더워라.
158
아씨   (흔연히) 어서 일루 올라오게.
159
영감   어딜 갔다 오나?
160
철원집  삼청동 갔었지요.
161
영감   또 애기 빌러?
162
철원집  내. (마루로 올라앉아 손수건에 꾸린 담배곽을 꺼내놓고 피워 문다)
163
아씨   기왕 갔던 해이니 내 애기두 같이 좀 빌어주지 그랬나.
164
철원집  형님해 먼점 빌구 나는 점지해 줄려거든 해주구 싫거들랑 그만두라구 그랬수.
165
아씨   아이! 그래서야 쓰나! 자네두 낳구 나두 낳구 그래얘지.
166
철원집  다 삼신님이 맘대루 헐 테지요.
167
영감   그럼 어서들 겸심 먹지. (전당국 뒷문으로 나간다)
168
아씨   밥 먹세.
169
철원집  먼점 잡수슈. 나는 땀 좀 딜여가지구. (마루 뒷문께로 가서 섰다가) 아이구머니 누가 소리판을 저렇게 깨트렸어! (나가서 깨어진 레코드를 집어 가지고 들어온다) 식모!
170
아씨   식모 부를 것 없네 내가 그랬네.
171
철원집  왜 그래요 왜?
172
아씨   그런 소리 듣구 있으믄 천당을 못 가구 하나님께 죄를 받는다구 그리데.
173
철원집  별 옘병헐 소리두 다 듣겠네. (레코드쪽을 아씨 앞에다 내던지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면서) 왜 깨트려? 왜? 건방지게 왜 내걸 맘대루 깨트려.
174
아씨   (참아가면서 방백) 원수를 사랑허래겠다. (좋은 말로) 이 사람 아우님?
175
철원집  오라지는 건 어떻구?
176
아씨   아께 너무 그리지 말게. 그래두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177
철원집  다 듣기 싫여! 꼴같잖은 게.
178
아씨   아니야. 그래두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생각하다가 방백) 가만있자. 이렇게 내가 저년을 사랑허믄 인제는 원수가 아니었다. 원수가 아니야. 그렇다면 저년을 가만둘 수야 있나. (갑자기 일어서면서) 네 요년. 요년. 뉘게다가 대구 놀리는 조둥아리냐 요년. (건넌방으로 쫓아간다)
179
철원집  (마주 덤빈다)
180
아씨   (머리끄덩이를 움켜잡고) 요년. 요년.
181
철원집  (머리끄덩이를 마주 움킨다) 그래 어째 이년아.
182
아씨 · 철원집  (어우러져서 한참 싸운다)
183
식모   (부엌에서 나와 웃고 섰다) 잘헌다 잘헌다 우리 아씨 잘헌다.
184
아씨   (한참 싸우다가 머리끄덩이를 놓고) 가만 있게 가만 있어! 이거 좀 놓구 가만 있어 이럴 일이 아니네. 다시 생각허니까.
185
철원집  (놓고 물러선다)
186
아씨   (방백) 이렇게 싸우면 도루 원수지? 원수지 원수야. 그러믄 싸우지 말구 사랑을 해얘지. (울듯이 철원집을 보고) 여보게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자네를 사랑해요. 내가 잘못했네.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187
철원집  이 여편네가 상성이 됐어.
188
아씨   아니야 아니야. (큰방으로 오면서)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자네를 사랑해. (도로 돌아서서 방백) 그래 원수는 사랑해야지. 그런데 가만 있자, 사랑을 허니까 인제는 또 원수가 아니었다. 옳지 옳지. 그러니까 미워허구 때려주구 그래두 괜찮지? 참 그래. (다시 철원집한테 사납게 덤빈다) 요년 요년 찢어죽일 년. 내가 너를 뜯어죽일 테다 요년.
189
철원집  (눈이 휘둥그래서) 이게 정말 미쳤어요! 덤빌 테거든 덤벼 이년아.
190
아씨   (덤비다가 우뚝 서서 방백) 아니 아니야. 이러믄 도루 원수야! 그래 그래 원수야. 그러니깐 이래서는 못쓰지? 못써 못써. 원수니까 사랑을 해얘지. (철원집더러) 여보게 아우님. 나는 자네를 사랑허네 사랑해 사랑.(돌아서서 안방께로 간다)
191
철원집  징그러워! 이 여편네야.
192
아씨   (방백) 그래 사랑을 해야지. 원수를 사랑해야지. 응 인제 지금 사랑헌다. (생각) 아니 사랑을 허믄 원수가 아닌데? 그러니까 때려주구 분풀이를 해두 괜찮지? 사랑을 허니까 원수가 아니니까.
193
(돌아서서) 네 요년 죽일 년. (방백) 아니야 이러믄 원수야 이래서는 못써. (왔다갔다 하면서) 이게 어떻게 된 셈이야? 응? 이게 어떻게 된 셈이야? 응? (가슴을 찢는다) 아이구 답답해 죽겠네! 답답해서 나 죽어요 나 죽어요. 차라리 예수나 안 믿었드면 좋았지! 아이구 답답해서 나 죽네. (급히 막이 내린다)
【원문】예수나 안 믿었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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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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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발표]
 
  희곡(戱曲)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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