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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1.1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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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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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체구좌저금 (振替口座貯金)을 난생전 처음으로 찾아본 이야기다. 물론 진출인(振出人)은 내가 아니다. 부끄러운 말이나 ×× 잡지사에서 원고료 중으로 돈 십 원을 주는데 그것이나마 현금이 없다고 그 어음 조각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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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쇠천 샐 닢도 없어서 쩔쩔매던 판이니 그것이나마 어떻게 고마웠던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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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살 일이나 생긴 듯이 지정한 광화문국으로 내달았다. 상식이 넉넉지 못한 나는 이것도 보통위체금(普通爲替金) 찾던 표만 들어뜨리면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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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수취인의 이름을 써야 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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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잡잡한 얼골에 어울리지 않게 팔자 수염을 거슬린 사무원이 나의 들이민 그 표를 한 번 뒤집어 보더니 꾸짖는 듯이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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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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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내 이름 아닌 ×××이란 이름을 뒷장 ‘우금정확수취후야(右金正確收取後也)’라고 박힌 밑에 써 가지고 또 디밀었다. 마침 돈 찾으러 온 사람이 두엇 있기 때문에 나는 한 십분 가량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더러 ×××이냐고 물으면 내가 틀림없는 본인이라고 대답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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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국명(局名)을 쓰고 여기 진출인(振出人)의 성명을 써야 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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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사무원은 또다시 그 표를 내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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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위가 좀 틀렸지만 하는 수 없이 또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제야 사무원은 그 말썽 많은 어음 조각을 받고 그 대신 십삼 번이란 목패(木牌)를 내어주었다. 인제야 돈을 찾았고나 하고 속으로 기뻐할 겨를도 없이 그 사무원은 명령적 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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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시간쯤 기다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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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지 않게 실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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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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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은 기다려야 됩니다. 통지가 와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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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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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성에서 통지가 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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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성에 관리(官吏) 된 것을 자랑하는 듯이 체신성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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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동경에서 통지가 와야 된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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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한 마디를 지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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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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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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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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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한 십분 동안 걸어앉았다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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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속히 될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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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은 있어야 됩니다. 어데 다녀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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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은 귀찮은 듯이 말을 던졌다. 나는 그 말대로 하였다. 지리한 두 시간을 보낸 뒤에 나의 모양은 또다시 우편국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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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지가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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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초조하여 견딜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벌써 새로 석 점을 반이나 지냈으니 오래지 않아 넉 점이 되고 보면 시간이 지냈다고 안 줄 것이 염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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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로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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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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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속히 해 줄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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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통지가 오지를 않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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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도 매우 딱해 하는 모양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괴여 오르는 것을 꿀꺽꿀꺽 참으며 기다리는 동안에 감발한 체전부(遞傳夫)가 네모 난 궤짝을 들고 들어오더니, 그 사무원에게 그것을 내어밀었다. 나는 직각적으로 그 함 속에 소위 통지가 들어있음을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함이 짤깍 하고 사무원의 손에서 열리자 아까 내가 준 그 말썽꾸러기 진체구좌표가 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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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원스러움과 기쁨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그 사무원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다지 여러 번 말을 주고받았으니 나의 얼굴만 보면 묻지 않고 돈을 내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무원은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도 나에게는 아모 상관이 없는 것처럼 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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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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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누구인가 하였다. 남의 일에 동정하는 것처럼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부르는 사람을 찾을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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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이 ×××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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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쥐여 질린 듯이 가슴이 꿈틀하였다. 나는 ○○○이거늘 ×××이란 말이 웬 겐가? ‘아니오’란 성난 소리가 불쑥 목구멍까지 치밀다가 문득 ‘네, 그렇소!’하여야 될 것을 번개같이 깨달았다. 하건만 웬일인지 시원스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멀뚱거리며 얼 없이 사무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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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이 ××× 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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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은 괴이하다는 듯이 다시금 채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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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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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을 당초에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이 나도 채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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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이 본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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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당황이였다. 나는 물론 본인이 아니다. 이런 데 쓰는 공인적 사기(公認的詐欺)를 모르는 바 아니로되 내 속에 들어앉은 자아는 무의식한 가운데 완명(頑冥)하게 저(자기)를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중대한 죄나 범하려는 때처럼 왼몸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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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뒤에 나의 고개가 밑으로 끄덕임과 같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간신히 ‘네!’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허위가 발각되어 돈을 주지 않을까하는 공겁(恐怯)이 없지 않았으되 그 사무원이 내가 본인 아닌 줄 간파하고 돈을 치뤄 주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가 내 속 어데인지 움즉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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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무원은 의심 없이 돈을 내어 주었다. 나는 돈을 받기는 받았으되 소태나 먹은 듯이 마음이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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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23. 1. 1.)
【원문】우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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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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