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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팽이 역사(轢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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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7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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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역사(轢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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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기는 일찍 깨었다는 증거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또 생각하면 여관으로 돌아오기를 닭이 울기 시작한 후에 ─ 참 또 생각하면 그 밤중에 달도 없고 한 시골길을 닷 마장이나 되는 읍내에서 어떻게 걸어서 돌아왔는지 술을 먹어서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만, 둘이 걸어오면서 S가 코를 곤 것은 기억합니다.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아주 듣기 싫은 여자 목소리로 “김상! 오정이 지났는데 무슨 잠이오, 어서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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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까 잠은 한잠도 못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까 9시 반이니까 오정이란 말은 여관 주인아주머니 에누리가 틀림없습니다. 곁에서 자던 S는 벌써 담배로 꽁다리 네 개를 만들어 놓고 어디로 나갔는지 없고, 내가 늘 흉보는 S의 인생관을 꾸려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참 궁상스러운 가방이 쭈글쭈글하게 놓여 있고, 그 속에는 S의 저서가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양말을 신지 않은 채로 구두를 신었더니 좀 못 박힌 모서리가 아파서 안되었길래 다시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고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S가 어데로 갔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건너편 방에서 묵고 있는 참 뚱뚱한 사람이 나를 자꾸 보길래 좀 겸연쩍어서 문밖으로 나갔더니 문 앞에 늑대같이 생긴 시골뜨기 개가 두 마리가 나를 번갈아 홀낏홀낏 쳐다보길래 그것도 싫어서 도로 툇마루로 오니까 그 뚱뚱한 사람은 부처님처럼 아까 앉았던 고대로 앉은 채 또 나를 보길래 참 별 사람도 다 많군 왜 내 얼굴에 무에 묻었나 그런 생각에 또 대문간으로 나가니까 그때야 S가 어슬렁어슬렁 이리로 오면서 내 얼굴을 보더니 공연히 싱글벙글 웃길래 나는 또 나대로 공연히 한번 실글벙글 웃었습니다. 대체 어디를 갔다왔느냐고 그랬더니 참 새벽에 일어나서 수십 리 길을 걸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여태 잤느냐고 나더러 게으른 사람이라고 그러길래 대체 어디어디를 갔다왔는지 일러바쳐보라고 그랬더니 문무정에 가서 영감님하고 기생이 활 쏘는 것을 맨 처음에 보고 ─ 그래서 나는 무슨 기생이 새벽부터 활을 쏘느냐고 그랬더니 그 대답은 아니하고 또 문회서원에 가서 팔 선생의 사당을 보고 기운정에 가서 약물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그러길래 내가 가만히 쳐다보니까 참 수십리 길에 틀림은 없지만 그게 원 정말인지 곧이 들리지는 않는다고 그랬더니 에하가키를 내어놓으면서 저 건너 천일각 식당에 가서 커피를 한잔 먹고 왔으니까 탐승 비용은 10전이라고 그러길래 나는 내가 이렇게 싱겁게 S에게 속은 것은 잠이 덜 깨었거나 잠이 모자라는 까닭이라고 그랬더니 참 그렇다고 나도 잠이 모자라서 죽겠다고 S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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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이 들어왔습니다 . 반찬이 열 가지나 되는데 풋고추로 만든 것이 다섯가지 ─ 내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오더니 찬은 없지만 많이 먹으라고 그러길래 구첩반상이 찬이 없으면 찬 있는 밥상은 그럼 찬을 몇 가지나 놓아야 되느냐고 그랬더니 가짓수는 많지만 입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래도 여전히 많이 먹으라고 그러길래 아주머니는 공연히 천만에 말씀이라고 그랬더니 그렇지만 쇠고기만은 서울서 얻어먹기 어려운 것이라고 그러길래 서울서도 쇠고기는 팔아도 경찰서에서 꾸지람하지 않는다고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라 송아지 고기가 어디 있겠느냐고 그럽니다. 나는 상에 놓인 송아지 고기를 다 먹은 뒤에 냉수를 청하였더니 아주머니가 손수 가져오는지라 죄송스럽다고 그러니까 이 냉수 한 지게에 5전 하는 줄은 김상이 서울 살아도 ─ 서울 사니까 모르리라고 그러길래 그것은 또 어째서 그렇게 냉수가 값이 비싸냐고 그랬더니 이 온천 일대가 어디를 파든지 펄펄 끓는 물밖에는 안 솟는 하느님한테 죄받은 땅이 되어서 냉수가 먹고 싶으면 보통 같으면 거저 주는 온천물을 듬뿍 길어다가 잘 식혀서 냉수를 만들어서 먹을 것이로되 유황 냄새가 몹시 나는 고로 서울서 수돗물만 홀짝홀짝 마시고 살아오던 손님들이 딱 질색들을 하는 고로 부득이 지게를 지고 한 마장이나 넘는 정거장까지 냉수를 한 지게에 5전씩을 주고 사서 길어다 먹는데 너무 거리가 멀어서 물통이 좀 새든지 하면 5전어치를 사도 2전어치 밖에 못 얻어먹으니 셈을 따지고 보면 이 냉수는 한 대접에 1전씩은 받아야 경우가 옳은 것이 아니냐고 아주머니는 그러는지라 그것 참 수고가 많으시다고 그럼 이 냉수는 특별히 조심조심하여서 마시겠다고 그랬더니 그렇지만 냉수는 얼마든지 거저 드릴 것이니 염려 말고 꿀떡꿀떡 먹으라고 그러는 말을 듣고서야 S와 둘이 비로소 마음놓고 벌덕벌덕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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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기 소리가 왼종일 밤새도록 탕탕탕탕 나는 것이 헐 일 없이 항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난다고 S가 그러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바로 한 지게에 5전씩 하는 질기고 튼튼한 냉수를 길어올리는 펌프 모터 소리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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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을 치르려고 얼마냐고 그러니까 엊저녁을 안 먹었으니까 70전씩 1원 40전만 내라고 그러는지라 1원짜리 두 장을 주니까 거스를 돈이 없는데 나가서 다른 집에 가서 바꾸어가지고 오겠다고 그러는 것을 말리면서 그만두라고 그만두고 나머지는 아주머니 왜떡을 사먹으라고 그러고 나서 생각을 하니까 아주머니더러 왜떡을 사먹으라는 것도 좀 우습기도 하고 하지만, 또 돈 60전을 가지고 파라솔을 사 가지라고 그럴 수도 없고, 말인즉 잘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생각나는 것이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슬하에 일점 혈육으로 귀여운 따님이 한 분 계신데 나이는 세 살입니다. 깜박 잊어버리고 따님 왜떡을 사주라고 그렇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은 퍽 유감입니다. 주인 영감을 못 보고 가는 것 같은데 섭섭하다고 그러면서 주인 영감은 어디를 이렇게 볼일을 보러 갔느냐고 그러니까 세루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읍내에 들어갔다고 아주머니는 그러길래 나는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곧 두 사람은 정거장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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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 황해선이라는 철도의 레일 폭은 너무 좁아서 똑 토롯코 레일 폭만 한 것이 참 앙증스럽습니다. 그리로 굴러다니는 기차 그 기차를 끌고 달리는 기관차야말로 가엾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이 치이면 사람이 다칠는지 기관차가 다칠는지 참 알 수 없을 만치 귀엽고도 갸륵한 데다가 그래도 크로싱에 오면 말뚝에다가 간판을 써서 가로되 ‘기차에 조심’ 그것을 읽은 다음에 나는 S더러 농담으로 그 간판을 사람에게 보이는 쪽에는 ‘기차에 조심’ 그렇게 쓰고 기차에서 보이는 쪽에는 ‘사람에 조심’ 그렇게 따로따로 썼으면 여러 가지 의미로 보아 좋겠다고 그래보았더니 뜻밖에 S도 찬성하였습니다. S의 그 인생관을 집어 넣어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캡을 쓴 여관 심부름꾼 녀석이 들고 벌써 플랫폼에 들어서서 저쪽 기차가 올 쪽을 열심히 바라보고 섰는지라 시간은 좀 남았는데 혹 그 갸쿠비키 녀석이 그 가방 속에 든 인생관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얼른 그 가방을 이리 빼앗으려고 얼른 우리도 개찰을 통과하여서 플랫폼으로 가는데 여관 보이가 갸쿠비키나 호텔 자동차 운전수들은 1년간 입장권을 한꺼번에 샀는지는 모르지만 함부로 드나드는데 다른 사람은 전송을 하려 플랫폼에 들어가자면 입장권을 사야 된다고 역부가 강경하게 막은지라 그럼 입장권은 값이 얼마냐고 그랬더니 10전이라고 그것 참 비싸다고 그랬더니 역부가 힐끗 10전이 무엇이 호되어서 그러느냐는 눈으로 그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은 그만 10전이 아까워서 그 사람의 친한 사람의 전송을 플랫폼에서 하는 것만은 중지하는 모양입니다. 장난감 같은 시그널이 떨어지더니 갸륵한 기관차가 연기를 제법 펄석펄석 뿜으면서 기적도 쓱 한번 울려보면서 들어옵니다. 금테를 둘이나 두른 월급을 많이 타는 높은 역장과 금테를 하나밖에 안 두른 월급을 좀 적게 타는 조역이 나와 섰다가 그 으레 주고받고 하는 굴렁쇠를 이 얌전하게 생긴 기차도 역시 주고받는지라 하도 어줍지 않아서 S와 나와는 그래도 이 기차를 타기는 타야 하겠지만도 원체 겁도 나고 가엾기도 하여서 몸뚱이가 조그마해지는 것 같아서 간질이는 것처럼 남 보기에는 좀 쳐다보일 만치 웃었습니다. 종이 울리고 호루라기가 불리고 하는 체는 다 하느라고 기적이 쓱 한번 울리고 기관차에서 픽 소리가 났습니다. 기차가 떠납니다. 10전이 아까워서 플랫폼에 들어오지 않은 맥고자를 쓴 사람이 누구를 향하여 그러는지 쭈글쭈글한 정하지도 못한 손수건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칙칙푹팍 칙칙푹팍 그러면서 징검다리로도 넉넉한 개천에 놓인 철교를 건너갈 때 같은 데는 제법 흡사하게 기차는 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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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쌍한 기차가 객차를 세 채나 끌고 왔습니다. S와의 우리 두 사람이 탄 객차는 맨 꼴찌 객차인데 그 객차의 안에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정말 기차처럼 박스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 똑 전차처럼 가로 기이다랗게 나란히 앉는 것입니다. 우선 내외가 두 쌍인데 썩 젊은 사람이 썩 젊은 부인을 거느리고 부인은 새빨간 핸드백을 들었는데 바깥양반은 구두가 좀 해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꽤 늙수구레한 사람이 썩 젊은 부인을 데리고 부인은 뿔로 만든 값이 많아 보이는 부채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바깥어른은 뚱뚱한 트렁크를 하나 낑낑 매어가면서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바깥어른은 실례지만 좀 미련하게 생겼는 데다가 무테안경을 넓적한 코에 걸쳐놓고 신문을 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 곁에 부인은 깨끗하고 살갈은 희고 또 눈썹은 검고 많고 머리 밑으로 솜털이 퍽 많고 까만 솜털이 나시르르하고 입술은 얇고 푸르고 눈에는 쌍꺼풀이 지고 머리에서는 전나무 냄새가 나고 옷에서는 우유 냄새가 나는 미인입니다. 눈알은 사금파리로 만든 것처럼 번쩍하고 차디찬 것 같고 아무 말도 없이 부채도 곁에 놓고 이 거러지 같은 기차 들창 바깥 경치 어디를 그렇게 보는지 눈이 깜작이는 일이 없습니다. 또 다른 한 쌍의 비둘기로 말하면 바깥양반은 앉았는데 부인은 섰습니다. 부인 저고리는 얄따란 항라 홑껍데기가 되어서 대패질한 소나무에 니스 칠한 것 같은 조발적인 살갈이 환하게 들여다보이고 내어다보이는데 구두는 여러 조각을 누덕누덕 찍어맨 크림 빛깔 나는 복스 새 구두에 마점산(馬占山) 씨 수염같은 구두끈이 늘어져 있고 바깥양반은 별안간 양복 웃옷을 활활 벗길래 더워서 그러나 보다 그랬더니 꾸깃꾸깃 뭉쳐서 조그맣게 만들더니 다리를 쭉 뻗고 저고리를 베개 삼아 기다랗게 드러누우니까 부인이 한참 바깥양반을 내려다보더니 드러누웠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한 다음에 부인은 그 머리맡으로 앉아서 손수건을 먼지 터는 것처럼 흔들흔들하면서 바깥양반 얼굴에다 대고 부채질을 하여주니까 바깥양반은 바람은 안 나고 코로 먼지가 들어간다는 의미의 표정을 부인에게 한번 하여 보이니까 부인은 그만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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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는 조끼에 금 시곗줄을 늘어뜨린 특색밖에는 아무런 특색도 없는 젊은 신사 한 사람 또 진흙투성이가 된 흰 구두를 신은 신사 한 사람, 단것 장사 같은 늙수구레한 마나님이 하나 가방을 잔뜩 끼고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 구르몽의 시몬 같은 S. 부인의 프로필만 구경하고 앉아 있는 말라빠진 나, 이상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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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창 한복판 꽤 큰 구멍이 하나 뚫려서 기차가 달아나는 대로 철로 바탕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이상스러워서 S더러 이것이 무슨 구멍이겠느냐고 의논하여보았더니 S는 그게 무슨 구멍일까 그러기만 하길래 나는 이것이 아마 이렇게 철로 바탕을 내려다보라고 만든 구멍인 것 같기는 같은데 그런 장난 구멍을 만들어놓을 리는 없으니까 내 생각 같아서는 기차 바퀴에 기름 넣는 구멍일 것에 틀림없다 그랬더니 S는 아아 이것을 참 깜빡 잊어버렸었구나 이것은 침을 뱉으라는 구멍이라고 그러면서 침을 한번 뱉아보이더니 나더러도 정말인가 거짓말인가 어디 침을 한번 뱉아보라고 그러길래 나는 그 ‘모나리자’ 앞에서 침을 뱉기는 좀 마음에 꺼림칙하여서 나는 그만두겠다고 그리면서 참 아가리가 여실히 타구같이 생겼구나 그랬습니다. 상자깨비로 만든 것 같은 정거장에서 고무장화를 신은 역장이 굴렁쇠를 들고 나오더니 기차가 정거를 하고 기관수와 역장이 무엇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서너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기적이 울리고 동리 어린 아이들이 대여섯 기차 떠나는 것을 보고 박수갈채를 하는 소리가 성대하게 들리고 나면 또 위험한 전진입니다. 어느 틈에 내 곁에는 갓 쓴 해태처럼 생긴 영감님 하나가 내 즐거운 백통색 시야를 가려놓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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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모나리자만을 바라다보니까 맞은편에 앉았는 항라적삼을 입은 비둘기가 참 못난 사람도 다 많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고 나는 그까짓 일에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니까 막 모나리자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모나리자는 내 얼굴을 보는 비둘기 부인을 또 좀 조소하는 듯이 바라보고 드러누워 있는 바깥 비둘기가 가만히 보니까 건너편에 앉아 있는 모나리자가 자기 아내를 그렇게 업신여겨 보는 것이 마음에 좀 흡족하지 못하여서 화를 내는 기미로 벌떡 일어나 앉는 바람에 드러눕느라고 벗어놓은 구두에 발이 잘 들어 맞지 않아서 그만 양말로 담배꽁다리를 밟은 것을 S가 보고 싱그레 웃으니까 나도 그 눈치를 채고 S를 향하여 마주 싱그레 웃었더니 그것이 대단히 실례 행동 같고 또 한편으로 무슨 음모나 아닌가 퍽 수상스러워서 저편에 앉아 있는 금시곗줄과 진흙 묻은 흰 구두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이쪽을 노려보니까 단것 장수 할머니는 또 이쪽에 무슨 괴변이나 나지 않았나 해서 역시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아무 일도 없으니까 싱거워서 눈을 도로 그 맞은편의 금시곗줄로 옮겨놓을 적에 S는 보던 신문을 척척 접어 인생관 가방 속에다가 집어넣더니 정식으로 모나리자와 비둘기는 어느 편이 더 어여쁜가를 판단할 작정인 모양으로 안경을 바로잡더니 참 세계에 이런 기차는 다시 없으리라고 한마디 하니까 비둘기와 모나리자가 S쪽을 일시에 보는지라 나는 또 창 바깥 논 속에 허수아비 같은 황새가 한 마리 나려앉았으니 저것 좀 보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두 미인은 또 일시에 시선을 나 있는 창 바깥으로 옮겨보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싱그레 웃으면서 내 얼굴을 한 번씩 보더니 모나리자는 생각난 듯이 곁에 비프스테이크 같은 바깥어른의 기름기 흐르는 콧잔등이 근처를 한번 들여다보는 것을 본 나는 속 마음으로 참 아깝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S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개 발에 편자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나에게 해태 한 개를 주는지라 성냥을 그어서 불을 붙이려니까 내 곁에 앉았는 갓 쓴 해태가 성냥을 좀 달라고 그러길래 주었더니 서울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간 카페 성냥이 되어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두어 번 뒤집어 보더니 짚고 들어온 길고도 굵은 얼른 보면 몽둥이 같은 지팡이를 방해 안 되도록 한쪽으로 치워놓으려고 놓자마자 꽤 크게 와지끈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기다란 지팡이가 간데온데가 없습니다. 영감님은 그것도 모르고 담뱃불을 붙이고 성냥을 나에게 돌려보내더니 건너편 부인도 웃고 곁에 앉아 있는 부인도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S도 깔깔 웃고, 젊은 사람도 웃고, 나만이 웃지 않고 앉았는지라 좀 이상스러워서 영감은 내 어깨를 꾹 찌르더니 요다음 정거장은 어디냐고 은근히 묻는지라, 요다음 정거장은 요다음 정거장이고 영감님 무어 잃어버린거 없느냐고 그랬더니 또 여러 사람이 웃고 영감님은 우선 쌈지 괴불주머니 등속을 만져보고 보따리 한 귀퉁이를 어루만져보고 또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참 내 지팡이를 못 보았느냐고 그럽니다. 또 여러 사람은 웃는데 나만이 웃지 않고 그 지팡이는 이 구멍으로 빠져 달아났으니 요다음 정거장에서는 꼭 내려서 그 지팡이를 찾으러 가라고 이 철둑으로 쭉 따라가면 될 것이니까 길은 아주 찾기 쉽지 않으냐고 그러니까 그 지팡이는 돈 주고 산 것은 아니니까 잃어버려도 좋다고 그러면서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뻑뻑 빨고 앉았다가 담배를 다 먹은 다음 담뱃대를 그 지팡이 집어먹은 구멍에다 대고 딱딱 떠는 바람에 나는 그만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이때만은 웃을 수도 없는, 업신여길 수도 없는 참 아기자기한 마음에서 역시 소름이 끼쳤으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원문】지팽이 역사(轢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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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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