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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속 시평(風俗時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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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7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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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 시평(風俗時評)
 
 
 

1. 풍속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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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개조론 이래 ‘풍속’이란 말을 많이 썼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보고 풍속 시평을 써 보라 한다. 그것도 가벼운 수필식으로 써 보라고 하는 것이니 나의 류(流)로 말하자면 ‘풍속’ 가운데도 ‘경풍속(輕風俗)’에 속하는 것을 써 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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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시 ‘풍속’을 ‘중풍속’과 ‘경풍속’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는 버릇이 있어서 얼마 전에도 『여성』지 7월호가, 요즘 여성의 풍소에서 아니꼬운 것이 눈에 띄면 공격을 해 보라는 청을 받고, 동일한 논조(論調)로 ‘나는 도학자도 수신 교사도 아니므로 매일같이 변하여 가는 여성의 풍속 습관을 헛되이 보수적으로 타기(唾棄)하는 등사(等事)’를 일삼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각양각색하고 나날이 변하여 가는 그 각운데서 이 시대의 특수한 형상을 관찰하려는 자’라고 쓴 적이 있거니와 지금도 나는 그러한 태도를 견지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라 ‘관찰’이라니까 그러나 그 곳에 ‘비판’이 없어야 된다는 것으로 알아서는 망발이다. ‘관찰’이란 본시 ‘선택’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아니고 저것을 취하는 ‘선택’의 가운데는 쓸데없는 완고한 개탄이나 도학자의 시대지(時代遲)는 없을지언정, 일정한 비판적인 태도는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관찰자는 언제나 아름답고도 엄격한 비판자였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풍속의 관찰자이고, 동시에 그의 비판자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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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을 아까 말한 것처럼 ‘중풍속’과 ‘경풍속’으로 갈라 보는 나의 버릇에 대하여는 『여성』지에서도 약간 기록하였으므로 일률적으로 될 것이 피하여 그것을 손 쉬웁게 ‘광의’와 ‘협의’갈라 보는 것이 수필식일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광의’로 ‘풍속’을 말해 보자면, 한 나라, 한 사회, 한 계층의 정치나 의식주, 그리고 이것과 부수(附隨)되는 ‘혼인’, ‘예술’, ‘예의(禮儀), ’‘직업’, ‘신앙’, ‘사상’, 그리고는 이것을 전파하는 ‘교통’이나 다시 뻗어서는 ‘풍토’와 ‘산업’까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니, 풍속 시평이 사회 시평의 성격을 갖추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고, 풍속사의 과제가 사회경제사나 예술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짐이 모두 이 탓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업은 나 같은 자의 가히할 바가 아니겠거니와 문제를 구분하여 현재의 순간으로 한정한다고 쳐서, 가령 소설가라고 명색이 문학자인 바에는 ‘교육 풍속’이나 ‘종교 풍속’이나 그런 것에는 제법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 의무가 아니겠느냐고 때때로 생각만은 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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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난, 수험(受險) 문제, 교육가의 행정(行狀), 학생 육년(育年)의 체위 문제, 초등 교원의 생활 문제, 개량 사숙 문제, 미션교 문제 등이 모두 ‘교육 풍속’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작가로 앉아 어찌 일가견이 없어 될 말이냐. 다시 ‘종교 풍속’이라면, 사교(邪敎) 문제나 유수(有數)한 종교의 변모상이나, 고명한 종교가들의 처세책이라든가,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이 눈을 감고 모른 척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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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론 소설가가 이러한 문제를 취급하는 장소는 각자의 작품 가운데서 할 것이므로 스스로 풍속 비평가의 입장을 걸머질 필요는 없을 것이나, 작가가 시정 세계 가운데서 고현학적인 기품 없는 취미에 몰두해 있거나 혹은 언제 어느 겨를에 그런 도학자가 되었는지 입을 열면 신여성의 파마넨트를 개탄하고 제꺽하면 젊은 계집의 샌들 구두를 업심하거나(업신여기거나? ─ 편자) 하는 세상에서는 풍속을 토구할 필요도 있고 또 풍속 비평가적 태도를 요구할 의의조차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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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의 완고한 취미나 협착(狹窄)한 심미안에 맞지 않는다고 헛되이 ‘꼴불견’이니 ‘세상이 말세야’니 하는 등의 말을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리다가는 그 자신이 어느 배에다 제 문학을 실고 흘러갈는지도 종잡을 길없는 그런 시대이다. 어디 세상이 독재천하가 아닌 바에야 작가의 취미에 맞도록 일률적으로 제복을 입을 수야 없는 일이며 시민들도 모형이나 유형이 아닌 바에야 각자의 생활 환경과 교양 취미에 따라 옷이나 차림차림이 다색다채 할 것이 정한 이치이며, 또 그래야 바라보는 눈도 단조로워 피곤 하지 않고 다색다채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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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이상에서 말한 바 ‘중풍속’ 내지는 ‘광의의 풍속’과는 떠나서, 의상이나 결발(結髮)이나 신발 같은 가장 통속적인 의미의 풍소에 대한 시감을 이러한 태도로 이 곳에 적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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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2.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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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서도 말해 두었거니와 풍속 시평의 영역을 ‘경풍속’ 내지는 협의의 ‘상식적 풍속’으로 국한하고 우선 생각케 되는 것은 의상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상의 변천을 생각하며 유행 현상에 대하여 주의 깊은 관찰을 하면 그 곳에 그칠 줄 모르는 흥미가 솟아날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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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혹종의 의상이 유행하고 안 하는 데는 어떠한 까닭이 있는 것일까? 옷감이나 스타일 같은 것은 상인들의 선전이나 간계가 퍽 유력하게 영향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좀더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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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마나 내가 항상 머리에 그려보는 것은 하나는 자기 자신의 심미적인 만족감과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의 풍속상 안전감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새로운 양식의 의상을 몸에 붙일 때에 우선 고려하게 되는 것은 이상과 같은 것은 아닐런가. 최근 서울의 가두에서 가끔 눈부시는 색채와 파격적인 의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남이야 어떻게 보든 우선 저의 심미안에 대하여 풍속상으로 불안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런 것을 몸에 붙이게 되는 것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복장을 아무리 장렬하여도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 것이 또한 이 곳에서 원인이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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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론, 의상 그 자체가 가령 제복이나 유니폼 모양으로 일종의 정치적 내지는 신분적, 직업적 의의를 띠게 된다든가, 노동 양식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원인된 것 같은 것을 고찰하는 경우에는 이상과 같은 두 개의 조건만으론 정확한 관찰을 수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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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예로서 우리는 밀리터리 시스템에 의한 각종의 제복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사내의 양복이 일상적으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양장이 그다지 보급화되지 않은 것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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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이란 인간의 계층이나 사회 질서를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군대나 학생이나 경관, 사법관 혹은 어떤 산업의 노동자나 간호부, 인력거부 등에 현저하였는데, 최근의 국민복은 어떤 의미에서나 의상 풍속사상 특필대서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심미적인 만족감이나 그런 것은 물론 고려할 여지조차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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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하튼 유니폼이란 일종의 하이아르키에도 불구하고 타방에는 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상관, 하관의 차별이 뚜렷한 동시에 우등생이거나 열등생이거나 동일한 제복에 의하여 평등화되어 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는 최근에 절실히 느낀바이지만 소시민 이하의 범용한 사람이 유니폼을 입을 때 그 곳에 어떤 특수한 자긍이나 매력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이 된다. 이것은 착용자가 하층 출신일수록 더욱 심할 것이다. 한편 의상의 유행이나 보급에 있어서 결정적인 원인을 짓고 있는 것은 노동의 양식일 것이다. 양복이 우리에게 이처럼 보급화된 것은 서양적인 것에 대한 동양적 자기 폄하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은 그것이 사무보고 노동하기에 간편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 있어서 양복은 소비적 복장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무적 복장이다. 이것은 양복이 우리 여자에게는 그다지 유행되니 않은 까닭도 한가지로 설명한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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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버스나 전차를 타고 의자에 앉아 사무를 본다는 건 생각만 하여도 어색하고 거북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남자의 조선 의상은 외출인 경우에는 언제나 그것은 소비면을 대표하는 풍속으로 될 것이다. 옥색 대님을 차고 빳빳한 모시 두루마기를 가볍게 입고 점잖이 걸어가는 노인의 심중에는 몰락 귀족의 고고한 심리가 엿보여 되려 그의 봉건적인 심정의 잔재가 서글프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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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자의 양장은 오히려 이의 반대는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가두서 흔히 보는 바 ‘모던 걸’이나 직업 부인의 극소한 특수 부분이 착용하는 것인데 조선 사람인 한 그것은 사무복이 아니고 거개가 소비면을 나타내는 의상이 되어 있다. 하기는 사내가 가두로 나올 때는 그는 노동자로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여자의 가두 출현은 그의 태반 이상이 언제나 소비를 위한 경우인 것도 원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타방에 있어선 신여성의 조선옷이 다른 어떠한 의상보다도 활동이나 사무에나 노동에 적합한 것도 커다란 원인이 되어 있을 줄 생각한다. 앞으로도 조선에 한해 여성의 양장은 소비 계급에 한하여 보급될 것이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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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체 문화’의 주창자들에게 대하여 일언하면 그들은 일종의 원시 환원주의라 전적으로 좌단(左袒)할 수는 없으나 신체의 정상한 발달을 방해하는 예장(禮裝)이나 허장(虛裝)을 폐지하자는 정도로 찬의(讚意)를 표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비등(比等)하고 그다지 차이가 없는 육체에 각종의 신분적인 의복을 입히거나 영국 신사풍의 ‘위선’을 의장(衣裝) 위에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의 폐해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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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3. 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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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있어서 작년 이맘때 나는 나의 고향(관서의 일읍)에서 약 삼십여년 전에 성행한 청소년들의 연삭발(年削髮) 풍속의 실상을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상투를 짰든가 혹은 삼단 같은 긴머리를 등허리에 늘어뜨리고 다니던 것을 ‘기계’(바리캉)로 금시에 승려철머 깎아 버리던 그 전날의 삭발은 요즘 우리들이 ‘상고머리’로 깎았다가 ‘올빽’으로 넘겼다가 또는 혹은 까까중으로 깎았다가 하는 등등의 변덕과는 대등하게 취급해 버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실로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많은 장애와 싸워야 하였고, 그만큼 머리를 깎아 버리는 데는 용단력과 과단성이 있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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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과 관절(關節)된 가지가지의 삽화가 모두 신구 교대의 질풍 같은 개화기적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어 듣고 앉았던 나는 흥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적은 것같이 보이던 풍속의 쇄말사가 시대 그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데 나는 악연(愕然)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하한 시대에나 동일한 풍속의 쇄말사가 동일한 역할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때로부터 10년만 뒤지면 완고파의 삭발 풍경까지도 하나의 구세대의 불쌍한 애수 묘사는 될지언정 결코 사회나 시대의 추진력의 상징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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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는 것이 도덕상의 큰 범죄로 되어지던 그 시대에 개화의 반대자로 앉아 있던 분들이 요즘 종로의 가두에서 신여성의 새둥지 같은 파마넨트나 메추리 꼬리 같은 여학생의 중발(中髮)을 구경하고 섰는 풍속화는 상상만 하여도 요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과 3, 4십년의 역사의 급격한 행진이 이 요절할 그림 속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시민적인 진보의 가장 특수적인 현상은 오히려 이러한 풍경 속에 상투를 짠 영감님이나 방립(方笠)을 쓰신 독실한 효자가 틈틈이 끼어 있다는 데 더욱더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한 폭의 그림이 사회경제사의 결론과 전혀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풍속의 관찰자’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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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사변 이후 삭발은 총후(銃後) 생활의 긴장을 위하여 일반에게 널리 장려되어서 학생의 삭발은 규칙으로 되어졌고 관공리(官公吏)들에게도 퍽 많이 여행(勵行)이 되어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자유 의사에 맏겨졌으나 자숙(自肅) 자계(自戒)를 뜻하는 분들로부터 서서히 이것은 실행되어지고 있다. 혹 얼마 뒤에는 국민의 전부가 까까중이 될는지도 알 수 없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심미안도 변하여 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모두 두 개씩일 때 그것을 하나만 가진 이는 확실히 아름답지 않았다. 누구의 머리든지 모두 새파랗게 청결스러울 때 머리를 기르는 건 원시적이 되고 비문명적으로 되어 순전한 심미의 대상으로서도 존재성을 잃을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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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하튼 요즘 유행하는 ‘세대설’을 좇아 두발 풍속을 바라보면 이십전의 청년은 인제 영구히 한 가지의 두발 형식만을 경험하게 되지는 아니할까. 지금 삼십 사, 개화 후 소학 중학에서 중머리, 대학에서부터 하이칼라, 그리고 지금 다시 중머리의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새로운 세대는 나서 유치원에 가는 동안 덥수룩하게 길러 보았다가, 아니 이것조차 종차론 없어질 풍속이니까 그대로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중머리로 지내게 된 셈이다.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청소년다운 자긍과 허용을 두발을 통하여 발휘하던 시대는 인제 다시 오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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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이칼라 머리를 두고 보아도 그 변화의 상모와 유행의 변천은 각양각색하여, 한때 사회운동 초기의 장발 같은 것이나, 또는 미술가의 머리 같은 것 등은 시대나 직업을 나타내면서 각각 특이한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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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은 비단 남성의 두발에 한한 것이 아니고 여성의 두발 풍속, 그 중에서도 결발 형태의 변천과 종종의 상모는 사회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이나 지면이 없어 딴 기회에 미루지만 지금도 결발 양식이나 형태가 세대의 차이와 직업 내지는 신분의 구별과 교양 취미의 본색을 표현하고 있는 것임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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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4.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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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현상이 생산 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요즘처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적은 드물 것이다. 유행 현상이나 습관, 습속, 풍속이 결국에 가서는 경제 기구에 의존한다는 것은 나의 누차 말해 온 바로서 풍속이 ‘제도’를 말할 뿐 아니라 그 ‘제도’내에서 배양된 의식이나 ‘습득감’까지를 의미하게 된다는 말 가운데도 이러한 생각이 기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일반 시민 대중에게 몸을 가지고 친히 보고 느끼게 한 것은 아마도 전시하 통제에 의하여 완전히 제약된 요즘의 유행 현상이 처음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순견물(純絹物)의 유행을 보려면 그것을 만들게 하는 원료 물자가 필요하였고 혹종의 색채와 문채(紋彩)가 유행하기 전에는 언제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일정한 기술과 생산력이 전제되었었다. 용품(用品) 시대의 출현은 결국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임에 불외(不外)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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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론 가장 지엽적인 의장이나 신변 도구에 나타난 현상뿐만이 아닌 것으로 식물(食物)과 주택이 이에 제약되었고 다시 한층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생활 양식의 개변에 따라 인간의 의식이나 심리나 습득감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교육 풍속’이나 ‘종교 풍속’의 개변은 물론, 결혼관, 연애관 같은 가장 신비하고 또 심오한 인간의 감정이라고 보아지던 같은 것도 눈에 나타나게 변하여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왕년의 물산 장려 운동이나 생활 개선 운동의 실패는 그것인 민간 운동이었다는데 지대한 원인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같은 관청에서 장려하던 민풍(民風) 개선 운동의 효과도 사변 이후의 것에 비하면 문제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범 풍속 습관의 개선 운동이 지난한 까닭이 까놓고 말해 보면 그것이 하부 구조에 제약되어 있는 상부 현상인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경제 기구가 달라져도 사람의 의식이나 습속은 그 뒤 서서히 개변되어졌다는 것이 인류의 과거 역사가 한가지로 보여 주는 바로서 양자의 모순이나 충돌이 많은 비극을 낳은 것은 문학 작품이 본시 성격과 환경의 모순을 가운데 놓고 구성되어 나간다는 한 가지 일만을 생가해 보아도 넉넉히 만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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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딴 데로 탈선하였으니 각설하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신발 풍속의 유행 현상도 이 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우피나 양피나 캥거루 가죽이 없어지면 개 가죽이나 도야지 가죽이 등장하였으나 만약 극단의 예로서 그것마저 구할 길이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부득이 우리는 양화 유행의 풍속이 없어질 것을 상정해 볼 밖에 별도(別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약 삼십 년 전부터의 신발의 변천에서 살펴 본다면 대단히 흥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물론 나의 출생지와 도회지와의 교통 관계나 나의 고향의 특산물 같은 것이 지대하게 영향되었겠지만 ‘갓신(피화〔皮靴〕’, ‘경제화’, 비오는 때의 ‘목화(木靴)’,를 거쳐서 ‘고무신’에 이르렀고 같은 시대에 성인층들은 ‘갓신’이나 ‘참나무’ 껍질로 만든 ‘참신’이나 볏짚으로 만든 ‘짚신’ 혹은 ‘삼신’을 거쳐서 ‘편리화’라는 한 유행기를 이루고는 그대로 ‘양화’와 ‘고무신’으로, 장마철 에는 목화 ‘꺽뚜기’ 대신 ‘오바슈스’로 현대에 이르렀고, 부인층들은 ‘꽃갓신’, ‘참신’, ‘회나무’ 껍질로 지은 ‘회청배기’, ‘진갓신’ 등의 계단을 넘어서 ‘고무신’과 양화에 이르러 있는 것 같다. 양화의 계단에 올라서서도 그 빛깔과 모양의 유행 현상을 혹은 순환식으로 혹은 직선식으로 얼마나 많이 경험하였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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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변천에서 특기해야 할 것은 ‘편리화’의 출현과 그것의 ‘고무신’에의 교체이었다. 그 중에서도 ‘고무신’의 출현은 우리 ‘신발’ 풍속사상 일대 사건이었으니 나의 친지 중에 ‘편리화’로 돈 십만 원이나 모았다가 ‘고무신’때문에 영업을 미처 돌려 잡지 못하고 고스란히 고대로 백수가 된 이가 있는 한편, 내가 아는 사람으로 ‘고무신’때문에 대자본가가 된 분이 또한 결코 한둘이 아닌 것이다. ‘고무신’은 단시일에 도회와 농촌을 불문하고 우리의 가정에서 각종의 신발을 구축(驅逐)해 버렸고 더구나 부인네들의 애용은 우리가 지금도 친히 보는 바와 같다. 나는 이 ‘고무신’ 대신에 어떤 대용품이 나타날까를 가장 흥미있게 바라보고 있지만 원체가 내 자신의 가정과도 지대한 관계가 있으므로 가장 편리하고도 값싸고 모양있는 대용품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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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 여자들의 양화의 유행 변천은 다른 각도로서 나에게 흥미를 주는데 여자 구두의 형태의 창시(創始)에는 성적 매력의 요소가 결정적인 원인을 지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늘 달걀 껍질 같은 경쾌하고 귀여운 신여성의 구두를 보면서 성적 매력이란 선 위에 서서 상향선을 그르며 그 모양이 예민하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확실히 신여성의 구두는 나날이 육감의 자극과 성적 매력을 더하여 가면서 있는 것 같다. 현세에서의 여성의 존재 가치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것 같아 재미도 있지마는 신여성의 지적 풍모를 생각하여 일말의 우수가 없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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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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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9년 7월 6 ~ 11일)
【원문】풍속 시평(風俗時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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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속 시평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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