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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0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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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2
달이 천심(天心)에 왔으니 이만하면 족하다. 물[潮]은 아직 좀 덜 들어온 것 같다. 축인 모래와 마른 모래의 경계선이 월광 아래 멀리 아득하다. 찰락찰락…… 한 여남은 미터는 되나 보다. 단애 바위 위에 우리 둘은 걸터앉아 그 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3
“자, 인제 일어나요.”
 
4
마흔아홉 개 꽁초가 내 앞에 무슨 푸성귀 싹처럼 해져 있다. 나머지 담배가 한 대 탄다. 요것이 다 타는 동안에 내가 최후의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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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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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도 일어났고 인제는 정말 기다리던 그 순간이라는 것이 닥쳐왔나 보다. 나는 선이 머리를 걷어 치켜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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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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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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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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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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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뜨겁다. 쉰 개째 담배가 다 탄 까닭이다. 인제는 아무리 하여도 피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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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꼭 붙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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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붙드세요.”
 
 
14
행복의 절정을 그냥 육안으로 넘긴다는 것이 내게는 공포였다. 이 순간 이후 내 몸을 이 지상에 살려둘 수 없다. 그렇다고 선이를 두고 가는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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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뜻밖에도 파도가 높았다. 이런 파도 속에서도 우리 둘은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고 어느 만큼이나 우리는 떠돌아다녔던지 드디어 피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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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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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죽나 보다. 우선, 선이 팔이 내 목에서부터, 풀려 나갔다. 동시에 내 팔은 선이 허리를 놓쳤다. 그 순간 물 먹은 내 귀가 들은 선이 단말마의 부르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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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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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연 내 이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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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그 파도 속에서도 정신이 번쩍 났다. 오냐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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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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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힘을 내어 뒷발을 한번 탕 굴러 보았다.몸이 소스라친다. 목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아까 둘이 앉았던 바위가 눈 앞에 보였다. 파도는 밀물이라 해안을 향해 친다. 그래 얼마 안 가서 나는 바위 위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 버리려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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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를 살려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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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악마의 묵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월광에 오르내리는 검은 한 점, 내가 척 늘어진 선이를 안아 올렸을 때 선이 몸은 아직 따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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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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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평생을 두고 내 형상 없는 형벌 속에서 불행하리라. 해서 우리 둘은 결혼하였던 것이다.
 
27
규방에서 나는 신부에게, 행형(行刑)하였다. 어떻게?
 
28
가지가지 행복의 길을 가지가지 교재를 가지고 가르쳤다. 물론 내 포옹의 다정한 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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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이가 한 번 미엽(媚靨) 을 보이려 드는 순간 나는 영상(嶺上)의 고목처럼 냉담하곤 하곤 하는 것이다. 규방에는 늘 추풍이 소조히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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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과로 때문에 무척 야위었다. 그러면서도 내 눈이 충혈한 채 무엇인가를 찾는다. 나는 가끔 내게 물어 본다.
 
31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복수? 천천히 천천히 하여라. 네 운명하는 날에야 끝날 일이니까.’
 
32
‘아니야! 나는 지금 나만을 사랑할 동정(童貞)을 찾고 있지, 한 남자 혹 두 남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여자를 나는 사랑할 수 없어. 왜? 그럼 나더러 먹다 남은 형해(形骸)에 만족하란 말이람?’
 
33
‘허, 너는 잊었구나? 네 복수가 필(畢)하는 것이 네 낙명(落命)의 날이라는 것을. 네 일생은 이미 네가 부활하던 순간부터 제단 위에 올려 놓여 있는 것을 어쩌누?’
 
34
그만해도 석 달이 지났다. 형리(刑吏)의 심경에도 권태가 왔다.
 
35
‘싫다. 귀찮아졌다. 나는 한 번만 평민으로 살아 보고 싶구나. 내게 정말 애인을 다오.’
 
36
마호메트의 것은 마호메트에게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일생을 희생하겠다던 장도(壯圖)를 나는 석 달 동안에 이렇게 탕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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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처럼 사랑한 일은 없습니다”라든가,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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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든가 하는 그 여자의 말은 첫사랑 이외의 어떤 남자에게 있어서도 ‘인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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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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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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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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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래 결혼했대요?”
 
43
그것이 이렇게까지 선이에게는 몹시 걱정이 된다. 될 것이다. 나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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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혼자던데, 여관에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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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혼 아직 안 했군그래. 왜 안 했을까?”
 
46
슬픈 선이의 독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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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물이야, 살이 띵띵 찐 게.”
 
48
“네? 거 그렇게꺼지 조소하려 들진 마세요. 그래두 당신네들(……? 이 ‘들’자야말로 선이 천려(千慮)의 일실이다)버덤은 얼마나 인간미가 있는데 그래요. 그저 좀 인간이 부족허다 뿐이지.”
 
49
나는 거기서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 후회도, 났다.
 
 
50
물론 선이는 내 선이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 ○○를 사랑하고 그 다음 ○를 사랑하고 그 다음…….
 
51
그 다음에 지금 나를 사랑한다……는 체하여 보고 있는 모양 같다. 그런데 나는 선이만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52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까지 발전한 환술(幻術)이 뚝 천장을 새어 떨어지는 물방울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내 나태를 이러니저러니 하고 시비하는 것 같은 벌써 새벽이다.
【원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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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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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