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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한녹수(紅恨綠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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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2.5
이익상
1
홍한녹수紅恨綠愁(4회)
2
―운명의 작란
 
 
3
운경의 몸에는 근일에 와서 이상한 증세가 생기었다. 그전에는 그가 밥값을 잘 내지 않는다 하여 노파 주인이 짜증을 내며 갖다주는 밥이라도 입맛이 없어서 못 먹는 일은 없었다. 그런 요사이에는 밥값도 비교적 밀리지 않고 따복따복 내어 좋은 낯빛으로 가져다주는 노파의 밥이지마는, 어찌함인지 밥숟가락이 입에 들어오기도 전에 냄새만 맡아도 구역이 났었다. 그리하여 그는 밥숟가락을 들었다가 그대로 놓고, 손으로 입을 막고 방 바깥으로 달음질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4
처음에는 위장이 좋지 못한가 하여 위산胃散이나 영신환靈神丸 같은 것을 먹어보아도 그런 것도 어떤 때에 일시의 구급은 되었으나, 그의 병은 그러한 위산 따위로 나을 증세는 아니었다. 그리고 먹어서 무사히 목구멍을 지내어 가는 것은 능금이나 배, 귤 같은 과실살이었다. 이것도 역시 먹은 뒤에는 흔히 구역을 하였다. 이상한 것은 목구멍에 넘어간 먹은 물건은 나오지 않고, 가래침 같은 것만이 넘어왔다. 그리고 머리가 휘휘 잡어 흔드는 것같이 아팠다. 잘 먹지도 못하고 게우기만 하는 까닭인지, 그의 곱고 포동포동하던 얼굴에 두 광대뼈가 솟고, 눈이 움푹 들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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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주인집 할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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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상도 해라! 꼭 아이 서는 사람 같네!”
 
7
하고, 혼자 중얼대며 걱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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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운경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9
자기가 생각하여도 필연 그러한 의심이 반드시 있었다. 모든 것을 생리적으로 보아 꼭 그러함 즉하였다. 학교에서 또는 다른 경험자에게 주워들은 조금마한 생리학상 지식으로도 넉넉히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근일에 와서는 자기의 작란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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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운경은 그 전날에 C병원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한 결과, 확실히 임신 중인 것을 알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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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을 때에 그의 눈앞이 캄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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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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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부르짖었을는지도 알 수 없었으나, 그러나 운경은 아직까지 그가 다른 사람의 아내인 것처럼 꾸미고 진찰을 받은 결과, 또는 의사가 바로 앞에 있는 그것까지 잊어버릴 만큼 그의 의식은 몽롱치는 않았던 것이다. 운경은 다른 아내 되는 사람들이 첫 잉태한 것을 알게 될 때에, 부끄러워하는 가운데에도 기쁨이 넘치는 빛을 감추지 못하는 것같이 그는 기쁨을 가질 수 없었다. 도리어 큰 의구疑懼하는 구석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거울을 놓고 스스로 자기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의사의 잉태가 분명하다는 선언을 들을 때에 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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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3행 판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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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원에서 바로 자기의 숙소로 돌아와서 한손에게 편지를 썼었다. 편지 내용은 자기의 몸이 불편한 것은 그 전날이나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과,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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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운경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방 안의 소제와 정돈을 마친 뒤에 자리를 다시 펴고 드러누웠다. 두 손으로 배를 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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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함인지 배에 닿은 손의 촉감이 전날과는 조금 다른 것과 같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등에 착 달라붙은 보드라운 뱃가죽의 맨 밑에서 생명의 싹이 옴돋아 오른다는 것을 의심할 때에, 자기의 지금까지 꿈꾸어 오든 모든 희망이 비 개인 하늘의 구름처럼 흩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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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매음―타락―비로소 얻은 사랑의 대상. 모든 것이 헛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생각이 떠돌 때에 그는 한숨을 한 번 길게 쉬었다. 그리고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가 비로소 갱생의 길을 찾아 마음의 평화를 잊고 적이 장래에 어떠한 길을 밟아야 할 것을 스스로 깨치고, 좋은 길동무가 생긴 오늘에 이러한 운명이 또한 장난을 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19
그는 어둔 밤에 모처럼 얻은 등불이 탐방 꺼져버린 것같이, 앞이 더욱 막막해져버렸다. 이것은 정말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가 오랫동안을 짓밟혀오던 생활을 겨우 벗어나려고 한손이란 청년을 한 달 전에 단단히 붙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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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은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자기를 희롱하여본다고 한 것을 운경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었다. 운경 역시 많은 남자의 자기에 대한 태도가 지금까지 그러하였던 것을 곱다랗게 잊어버린 듯, 한손에게는 마음껏 하노라 하였다. 한손도 역시 어느 한편 구석에 감추어두었다가 오롯이 바친 운경의 모처럼의 순정에 감동이 됨이었든지, 한손 역시 운경에 대한 태도는 처음과는 딴판으로 순실한 맛이 있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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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요전 전 일요일의 취운 산보 같은 것은 그들 두 사이에게 새로운 생애에 들어갈 듯까지를 생각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손을 만난 때는 한 달 전밖에 아니 되고, 자기 뱃속에 아기가 든 지는 석 달이나 되었다. 한손이 자기가 전날에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까지는 양해까지 한 가운데에서 자기와 오늘날 같은 관계를 맺은 이상 용서해줄지도 알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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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얼굴이 뻔뻔한 생각이란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자기 뱃속 깊이 심은 씨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터이다. 그는 가슴이 터지는 듯하였다. 그 싹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어떠한 사람의 씨라고 지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23
그는 덮었던 이불을 확 헤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머리가 휘휘 내둘리었다. 그는 다시 자리에 몸을 던졌다. 그는 한손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편에는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24
‘그러나 모든 일은 벌써 다 틀렸다. 이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랴! 다 설파해버리자! 상대자가 아이가 뱃속에 들었으니, 서로 지금까지의 관계를 끊어버리자 하거든 슬픈 일이다마는, 그대로 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좌우간 말이나 해버리고 하회를 기다리어 나의 갈 길을 작정하자!’
 
25
운경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손 오기만을 기다리었다.
 
26
그의 기다리는 마음이 조급할수록 한손의 오는 것은 더딘 듯하였다. 그는 대문 소리가 나도, 말소리가 들리어도 몇 번이나 뛰는 가슴을 부딪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용이히 한손의 발자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7
시간은 벌써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이때에 대문 소리가 삐드득 하고 들리었다.
 
 
28
≪매일신보≫, 1926년 12월 5일
【원문】홍한녹수(紅恨綠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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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상(李益相)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26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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