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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차, 동물이 똑 기예(敎練) 배우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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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건물들이 보신각을 저 위에서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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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점잖은 간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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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도 몹시 바람은 거리를 씻어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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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리운 내 고향의 거리여! 여기는 종로 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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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왔다, 멀리 駱山[낙산] 밑 오막살이를 나와 오직 네가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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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하늘 그 밑을 오고가는 허구한 내 행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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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는 이 가슴 그득 찬 반가움을 어찌 다 내토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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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들어 몇 번을 인사했고 모든 것에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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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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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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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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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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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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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에도 예전같이 네 섬돌 위엔 인생의 비극이 잠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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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들은 네 바닥 위에 티끌을 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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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갈 곳도 일할 곳도 모르는 무거운 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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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타박타박 네 위를 걷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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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피로와 슬픔과 검은 절망만을 그들에게 안겨보내지는 설마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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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잠잠하고 희미하나마 내일에의 커다란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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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만히 듣고 멀리 문밖으로 돌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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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한 용감한 이 나라 청년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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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고 즐기고 위하고 싸울 줄 알며 네 우를 덮은 검은 ××을 ×수처럼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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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대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의 발길을 대체 오늘날까지 몇 사람이나 맞고 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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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에서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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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이 죽 매어달렸던 낯익은 저 二階[이계] 지금은 신문사의 흰 旗[기]가 죽지를 늘인 너른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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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꾼같이 웅성대며, 확 불처럼 흩어지던 네 옛 친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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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은 멀리 가버렸을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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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순이의 어린 딸이 죽어간 것처럼 쓰러져갔을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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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일찍이 우리가 안 몇 사람의 위대한 청년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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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용감한 영웅의 단(熱한) 발자국이 네 위에 끊인 적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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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 모든 새 세대의 얼굴을 하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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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건재하라! 그대들의 쓰린 앞길에 광영이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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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컨대 거리여! 그들 모두에게 전하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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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가 내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 채 죽어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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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도시! 종로 네거리여! 사랑하는 내 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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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뉘우침도 부탁도 아무것도 유언장 위에 적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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