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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9년 1월 26일∼2월 2일, ‘소형 월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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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자유 연애가 20년 내지 30년 전의 사회 문제가 아니라 현금의 지식 계급의 하나의 도덕적 문제라는 데 유진오 씨의 「이혼」(『문장』1월호 소재)은 하나의 문제성을 제출하고 있다. 봉건적인 제 체제가 혼란과 붕괴의 과정을 거칠 때에 자유 연애, 개인의 도덕상 윤리상의 요구, 부권에 대한 항거 등과 함께 이혼의 문제는 당해 세대의 중요한 과제였을 뿐 아니라 하나의 끽긴(喫緊)한 사회적 문제였다. 그러나 그 동안 사회적인 제 명제는 유씨나 혹은 이여(爾餘)의 누구나가 한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수많은 변천을 경과하였다. 지방적인 열정이다시 사회 대립의 이념으로 바뀌어졌다가 그것이 다시 수년래의 새로운 명제로서 우리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동안 결혼, 자유 연애, 이혼의 문제는 어떠한 조처(措處)를 따라서 여하한 해결을 받아 왔는가. 간판과 표어가 번거롭게 교체되던 2, 30년 동안 우리는 이 문제를 그대로 방기한 채 현재에 이르렀는가. 우리는 유씨의 소설을 앞에 놓고 이러한 상념을 붙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앞에 제출된 것이, 건전한 현세대의 당면 문제가 아니었다는 데, 결국 「이혼」이 제기한 것이 사회성을 띤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신상의 문제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한다. 역시 자유 연애가 사회 문제였을 시대는 20년 내지 30년 전이었다. 현금에 있어서는 그것은 「이혼」의 작중 인물과 같은 특정 인물들의 일신상의 문제일 따름이다. 이 곳에 「이혼」이 갖는 문제성이 있는 동시에 모랄의 한계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이 소설이 모델 소설이라는 것을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다. 모델이야 있건 없건, 그것이 평자에게 무슨 흥미거리가 되랴. 문제는 이 소설이 지나치게 모델에 지배당한 흔적이 눈에 띄고 또 모델이 없다면 작자가 이토록 뒤를 돌려다 보던 안 했을 것이고 또 유씨가 이 소설의 작자로서 응당히 제출하여야 할 모랄을 그대로 살리려면(평자는 지금 유씨의 경력을 중요시한다!) 작중 인물 두 남녀의 성격을 여자는 올드미스의 히스테리, 남자는 사십 가까운 우유부단의 실념(失念)의 인(人)으로 설정치는 않았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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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생불과 중생’이라고 붙여 보았으나 이광수 씨의 「무명」이란 소설을 『문장』지에서 읽고 난 뒤의 소감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중생’ 대신에 ‘악인’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생불과 악인’이라고 걸어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까 한다. 그렇듯이 병감(病監) 소설에는 많은 ‘악인’이 그려져 있다. ‘윤’, ‘장’ 등의 사기범, 마름을 떼우고 방화한 ‘민, 공갈취재로 들어온 신문 기자 ‘강’, 청년 병감부(病監夫)로 전중이 사리를 하는 두 사람의 방화범, 이들이 그 범죄의 어떠한 사회적 성질이라든가 또는 인간성의 전체적 묘사에서는 전연 분리되어(야) 하나 하나의 추하고 구할 길 없는 ‘악인’으로서 취급되어 묘사된 데 반하여 이들에게서 ‘진상’이라고 불리워지는 ‘나’는 하나의 거룩한 ‘생불’로서 불자(佛者)에게 지극히 높은 지위와 대우를 받고 있다. 다른 범인을 다루기에 그토록이나 가혹하고 매서운 작자는 ‘진상’이라고 불리워지는 ‘나’를 묘사하는 마당에서는 지극히 만만하고 편애적이어서 그 사람의 피부만을 애무하였을 뿐, 붓끝은 그대로 무딘 빗자루처럼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광수 씨는 이 소설을 하나의 완고한 관념으로부터 출발시키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악인이고, 적악자(積惡者)이고 구함을 받을 길이 없는 중생들임에 반하여, 작자 자신인 ‘나’는 생불과 같은 성인이라는 관념이 즉 이것이다. 이러한 지극히 편협하고 귀여운 관념으로부터 출발한 소설은, 그것이 어떠한 쇄말 묘사를 꾀하였다고 할지라도 리얼리즘이 될 수는 없다. 작자 자신의 자기 폭로나, 자기 박탈이나, 자기 고발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는 트리비얼리즘은 가능할는지 모르나 리얼리즘의 길은 열려 있지 아니하다. 김동인 씨가 춘원의 근작 독후감에서 “구구절절이 ‘이러한 성격과 교양의 사람이 어찌 이런 언행을 하였으랴’‘이런 언행을 하는 사람이 어찌 이런 성격의 주인이랴’는 점을 투철히 느낀다”고 말한 것은 이 점을 말함이니, ‘나’라는 작중 주인공은 지극히 사소한 옥내(獄內)의 범칙 같은 것도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간수의 꾸중이나 벌칙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행동하기를 진심으로 꺼린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읽을 때에 우리는 ‘이토록 반칙을 죄악시하는 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죄인들만이 득실거리는 이 곳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작중 인물 중에서 누가 악인이냐를 결정한다고 하면 ‘나’라는 주인공이 가장 위선적이라는 의미에서 첫손가락에 꼽히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루한 관념의 행사는 왕왕히 그의 반대물로 전환된다는 말은 역시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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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에 대가라고 칠 분이 몇 분 있기는 하겠으나 씨 등의 작가적 활동을 갖고 과연 우리들이 그들에게 대가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을는지는 외람된 수작인진 모르나 주저를 거듭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두 분은 붓을 던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통속 소설로 가 버렸고 또 나머지 몇 분은 그대로 역사의 가운데로 들어가서 야담과 오십 보의 거리를 다투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역시 우리 문단의 수준을 아는 데나, 또는 우리 문학의 조류를 살펴 보려면 중견의 작품을 들어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6, 7개의 월간 잡지를 뒤적여 보았으나 어찌된 판국인지 거개가 미완물이다. 장편이나 연재 소설은 할 수 없다 치고 분명히 단편인 것들이 무수하게 미완으로 되어 있다. 잡지 ○○의 사정으로 돌린다고 쳐도 마치 월평을 일부러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대단히 불쾌하였다. 잡지는 통속 소설도 아닌 단편들을 ○○물로 하는 데서 어떠한 이득을 보는 것인지 이해할 길 없는 일이며 작가들 역시 요만 것을 미완 채로 내놓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시간이나 성의가 부족한지 중견의 태도로서 근심할 만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태준 씨의 「영월영감」같은 것은 1년만에 대하는 작품이길래 신이 나서 일것드 (몇자 불명), 그리 길게 ○○ 싶지도 않은 것이 미완이어서 무척 실망하였다. 이 밖에 장혁주 씨의 「가등청정」, 채만식 씨의 「정자나무 있는 삽화」, 이무영 씨의 「추수기」, 엄흥섭 씨의 「노청년」등등 모두가 미완 채로 넘겨 버린 것들뿐이다. 유진오 씨의 「이혼」외에는 이효석 씨의 「산정」(『문장』), 송영 씨의 「문서」(『조선문학』속간호)가 있는데 이씨의 것은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곤란한 것인 데다가 혹시 이씨가 「부록」이나 「해바라기」나 「소라」같은 작년도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경향에서 어느 새에 떠나 버리고 다시금 들이나 산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근심을 품게 하는 것이 섭섭하였고 송영 씨의 것은 실로 오래간만에 대하는 작품이면서도 역시 작품 세계가 그래도 사립 학원을 떠나지 못한 것이 기대와는 어그러지는 데가 있었다. 더구나 소설 전체에 적지 않은 재기의 긴장미를 보일 듯하던 것이 씨의 훌훌 갈겨쓰는 습관 때문에 그대로 흘러가 버려, 우리에게 맥풀린 태엽 같은 독후감을 품게 하는 것은 유감이었다. 중견 제씨여! 야심이나 패기까지 버린다면 어느 곳에 (문)단의 지주(支柱)됨이 있으리오!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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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처럼 신인, 신진, 중견, 대가 등으로 계단을 만들어 보는 것의 허망됨은, 필자의 누누이 이야기해 온 바이나, 편의상 신인과 중견과 간에 신진이라는 층을 설치해서, 역량 있고 활동적인 신인을 통괄해 본다면, 아마 정비석 씨나 최명익 씨 같은 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정비석 씨 같은 분은 1월호 대소 잡지에 단편 소설을 네 편이나 발표하였다. 많이 발표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닐지 모르나 안 써도 별 수 없는 바엔 써서 능숙해짐만 같지 못하다. 네 편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세 편뿐이고 아직도 「청춘행」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읽은 것 세 편은 모두가 정씨의 소위 ‘애욕’을 그린 것들이다. 범연(泛然)한대로 말하여 내가 보기엔 정씨의 작품 세계 소위 ‘애욕’을 취급한 것과 소시민 지식인의 자기 분열을 취재한 것의 두 방향을 들 수가 있다고 보는데 「요마(妖魔)」라는 『삼천리』지에 실린 작품은 ‘애욕’이라기보다는 ‘성욕’을 그리되 청소년다운 악취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고 『청색지』에 실린 「치정도(痴情圖)」는 악취미와 성욕을 걸러낸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 소기의 효과를 얻은 작품이라 볼 수 있고 『조광』지의 「분위기」는 애욕과 자기 분열을 얽어서 보다 높은 효과를 노렸으나 구성의 불충분으로 두 개가 완전히 융합이 되지 않아 다소 밍밍한 맛을 면치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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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역량이 늘어 나갈 계기는 많이 보이지만 성욕을 걸러서 악취미를 완전히 거세해 버릴 것, 언어를 정찬(精撰)할 것, 테마를 향하여 구성을 단촐하게 꾸밀 것 등을 유의함이 좋을까 한다. 한편 최명익 씨의 『조광』지 소재 「봄과 신작로」는 나의 알기엔 여태껏의 최씨의 작품 계열에서는 다소 벗어나는 새 방향의 개척이라고 보는데 그런 탓인지는 모르나 대단히 거칠고 두 번 손질이 필요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그런 까닭에 언뜻 보기에는 최씨의 그 전 작품에 비하면 남작(濫作)까지는 아니라도 세련이 덜 된 필치같이 보이나 필자의 성미대로 말하면 씨의 소위 심리주의적인 경향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던 나로서 이번 작품 같은 것으로 새 세계를 개척하려는 기미가 엿보여 오히려 반가운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거짓 없는 고백이다. 기성의 세계에서 새 세계를 개척할 때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파탄과 거친 터치를 동반하는 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오히려 계용묵 씨 같은 분이 「병풍에 그린 닭이」(『여성』소재)에서 보인 것과 같이 낭만미를 노리든가 민속 취미에 매몰되어 버리려는 안온(安穩)한 소설 정신을 과소하게 평가하려는 자이다.(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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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을 통일하기 위하여 신문에 연재되는 단편 소설은 모았다가 단숨에 읽어 버리는 습관이 있다 . 그래서 신춘 당선 소설도 그런 분수로 이 글을 쓰기 임박해서 통독하였는데 김영수 씨의 「소복」(본보 당선)은 아직도 연재중이어서 내가 본 것은 14회까지고 이렇게 덤벼대는 통에 『매일신보』의 것과 또 『조선문학』지에도 3, 4편의 당선 작품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미처 얻어 읽지 못한 채 『동아일보』의 「만세환」과 두 편을 읽은 대로 하는 수 없이 이 글을 초하게 되었다. 읽어보고 실인즉 기대한 바와 다소 어그러지는 바가 없지 않았다. 당선작 특유의 특색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 예년에 비하여 희박한 까닭이다. 특색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겠으나 왕년의 정비석 씨나 현덕 씨나를 겪어 온 우리들로서는 역시 모르는 동안에 엉뚱한 새 세계를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는 「만세환」같은 것은 비교적 생소한 바다의 생활을 취급했다고 보겠으나, 그려진 생활이 상식을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문학적 감각도 세련이 부족하고 구상력도 단순하여 구성에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구미를 이끌어 당기기에 미흡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민다운 강인한 생활력도 어딘가 무리가 심한 것 같고 인정애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기 전에 그만 맥이 빠져 버리는 갑이 없지 아니하나 소박한 것이 좋기는 하나 제 세계를 충분히 요리하지 못할 만큼 소재를 등에 지고 다니기만 하는 것도 생각할 문제다. 한편 김영수씨의 것은 흡사히 어떤 중견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안온한 맛을 주었다. 왁 몰아치는 기세라든가 신경을 콕콕? 찌르는 자극이라든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흥분이라든가 혹은 신인다운 위태위태한 불안이라든가 그런 것이 통히 없고 구성이 째일 데는 째이고 맺고 끊을 데는 끊고 필요한 군데는 서술을 붙이고 심리를 분석하고― 그래서 그대로 신인을 하나 얻었다기보다는 실수 없는 중견 작가가 한 사람 늘었다는 느낌이 강하였다. 작품 전체의 사상이나 경향에 대하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작품이고 또 이 작품의 모랄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 ‘양서방’이 죽은 데서부터 성숙하는 기미가 엿보여 졸연히 속단키가 거북스러우나 문장에는 어딘가 박태원 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가 많았고 작가의 태도가 무던히 리얼한 것은 좋으나 구석구석 이 단우문웅(丹羽文雄)의 영향 같은 것을 눈치채서 하는 것 등이 나로 하여금 일말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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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9년 1월 26일∼2월 2일, ‘소형 월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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