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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4월 창작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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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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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 창작평
 
 
 

1 비판 정신에의 대망과 논쟁 과정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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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평필을 들려고 하면서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 즈음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좌석에서 흔히 화제 거리가 되는 비평의 기준과 권위에 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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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처소와 그 곳에 모인 이들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그것이 최근 시행되고 있는 창작 비평에 대한 극도의 불신뢰(不信賴)와 무권위에 대한 불만인 점에 있어서는 중견(衆見)이 거의 일치하는 모양이다. 이미 이것은 일석한담(一席閑談)의 역(域)을 넘어 이기영씨의 문예시감(전일 본란 소재)으로 문장화되기까지에 이르렀거니와 최근 주로 창작평에 종사한 박영희, 백철 등 제씨가 이러한 불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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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냐 하면 씨 등은 이미 비평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을 거부하고 비평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여 강렬한 인상 비평과 비평에 있어서의 주관적 성격을 성론화(成論化)하기에 노력한 장본인들이고 실로 비평에 대한 무권위와 불신뢰야말로 비평 기분의 포기와 과학적 비평의 배격으로부터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씨 등에게 있어 일개의 작품에 대하여 백개의 의견이 각이(各異)한 것 같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므로 일 비평가의 의견에 일 작가가 불만을 품고 불신을 표시하는 것쯤은 자가(自家)의 논지를 북돋워 주는 재료로는 될지언정 결코 우려할 만한 상태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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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관점과 견해가 백인 백색으로 혼란 상태를 이루고 있을 수록 씨 등에게 있어 비평은 ‘독창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만일 어떠한 작품에 대하여 ‘우연하게도’ 양개의 의견이 일치할 때엔 벌서 그것은 ‘비평의 유형화’ 혹은 ‘획일주의’라 하여 돌멩이와 같이 버림을 받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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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태는 그러나 결코 백화난만을 가져 오지는 아니하고 씨 등의 환상과는 반대로 비평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결과하여 비평가의 ‘고견’은 코끼리를 어루만지는 중지(衆旨)의 요설로 자신을 전락시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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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가 이 곳에 비평 기준의 설정을 고집하고 과학자 비평의 절대적 가능을 주장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코 필자의 창작평 자체가 확고한 기준에 의하여 된 것이며 그것 스스로가 비평의 권위를 확립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필자는 이 곳에 대중적 토의의 일 제의자임에 그칠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평자는 . 그가 달성한 최고의 예술적 인식에 의거하여 최초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일 따름이다. 최초의 비평에 대하여 결함과 오류와 불충분을 지적하고 일층 고양된 과학적 분석을 제기하는 작가, 혹은 제3자의 ‘항의’야말로 기준 설정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전개되는 격렬한 그러나 진실로 우애적인 창작 논쟁에 의하여서만 비로소 한 작품에 대한 정곡의 과학적 평가는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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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귀한 지점에까지 도달하는 논쟁의 과정을 회피하거나 그것을 감정의 충돌과 시기심의 상극으로 설명해 버리려는 그릇된 ‘결벽성’이 드디어 금일의 우려할 만한 상태를 초치(招致)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작가에게 악감(惡感)을 주지 않으려는 비평, 이기영 씨의 소위 냉수 같은 창작평을 쓰는 것이 도덕인양 유행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문학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후의 고귀한 진주 - 강렬한 비평적 정신은 지금 땅 위에 떨어져 흙 속에 묻혀 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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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전에 필자는 노상에서 문학 잡지를 편집하는 우인을 만나서 다음 호에 평론가론의 특집을 하려고 비평가 7, 8인을 지명하여 신진 작가 제씨에게 집필을 종용하였더니 모두가 난색을 보이면서 원고를 쓰지 않아 드디어 불성공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신진 작가는 비평가를 제가 생각하는 대로 ‘평론’하기를 후일을 위하여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평가에 대한 비평적 직언은 상대자의 감정을 악화할 것이요 그것은 자기 작품에 대한 뒷날의 부당한 욕설을 초치할 뿐으로 자기네들은 그의 적재(適材)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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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4월 7일)
 
 
 

2. 여류 작가의 난관과 「흉가」검토의 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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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인의 말대로 신진 작가 제씨의 기백이 이렇듯 저열한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 헛되이 단정할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사정이 여하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일고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한다. 이 작가와 비평가들이 만들고 있는 사태야말로 우려할 만한 ‘문학 정신의 포기’ 와 ‘비평 정신의 상실’이 그리는 가장 더러운 풍속화의 일폭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진정한 발전에서 상하게 하는 분위기는 일소되어야 한다. 문학인의 진지한 마음을 흐리게 해치는 더러운 풍속화는 찢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문학 정신과 비판적 정신은 하늘 드높이 선양되어야만 한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다시금 또 다시금 되씹으면서 필자는 지금 4월호의 잡지를 펼치고 ‘여류 작가’ 최정희 씨의 「흉가」(『조광』)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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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여류 작가’라는 것을 특히 최씨의 이름 위에 붙이는 것은 「흉가」를 보고 나서 그의 독후감을 적기 위하여는 먼저 ‘여류 작가’라는 것에 대하여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한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을 때만큼 ‘여류 작가’가 문학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하여는 한 개의 중요한 최초의 난관과 피투성이가 되어 결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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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관 - 필자가 이 곳에서 천당에의 행로에서 부자가 발견하는 ‘바늘구멍’의 난관을 가지고 생각하는 이 난관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장구한 시일 동안의 계급 사회와 그리고 재산의 사유가 남성의 예속물로서의 여성에게 가슴 깊이 선물하고 간 ‘미덕’을 온상으로 하고 자라난 고유의 허영심, 그것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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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를 미로 가장하고 빈을 부로 가식하고 악덕을 미덕으로 꾸미고자 하는 허영은 예술의 세계에서는 폐기되어야 하고 봉건적인 가족 제도 내에서 매일같이 봉착하는 가지 가지의 질곡과 그 속에서 부대껴 헤어 나가는 새로운 여성이 응당히 맛볼 고유의 고민, 그리고 자본의 굴욕 밑에서 허덕이는 직업 여성에게 던지는 수많은 유혹,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이것과 강하에 혹은 약하게 싸워 나가는 자기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로하기를 혐오하는 시민 사회의 처세술은 문학의 세계를 통행하는 안전한 여행권으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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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것이 자전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에 있어서 이 관문은 절대적인 것으로 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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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필자는 일찍이 이기영 씨의 「고향」을 평하면서 작가가 자기와 가장 근접한 육체적인 연관을 가진 성격을 구상화하기 위하여는 작자 자신에 대한 용감하고 준열한 가면 박탈과 자기 폭로가 감행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것의 감행에 의하여 주인공 김희준의 창조가 가능하였고 이 칼이 무디고 약하였을 때 드디어 안갑숙은 이상화되고 관념화해 버렸다는 것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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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자기 폭로를 주저하고 가면 박탈을 기피하여 자기 자신 위에 아름다운 미덕의 베일을 씌우려는 여학생 기질은 조선의 여류 작가 제씨에게 있어 씨등을 해치는 치명적인 결함은 아닐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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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최정희 씨의 「흉가」의 검토는 씨가 예술의 고귀한 황금을 따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얼마나 용감하게 벌거숭이를 만들고 있는가를 살펴 보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이것으로 인하여 씨의 오래간만의 작품이 어느 정도까지 심경 소설에서 자신을 구출하고 있는가를 찾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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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비판의 초점을 이렇게 세워 놓고 한번 다시 생각해 본다면 최정희씨는 빈궁한 생활을 토로하는 정도의 자기 격파를 감행할 수 있는 작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씨는 자기 자신의 가난에 허덕이는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의 대담성을 가진 이다. 이것을 얼핏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나 현재의 조선이 가지는 여류 문인의 거개가 아직 이 정도의 자기 폭로까지를 기피하고 있다는 현상에 비추어 결코 과소하게 평가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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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흉가」에는 보는 바에 의하면 씨는 그 이상 자신을 나체로 할 수 없는 작가는 아닐런가. 씨는 확실히 빈궁을 이야기하면서 응당히 따르고 또한 그것 없이는 육체적 절박을 가지고 독자에게 육박할 수 없는 가지 가지의 사건에 대하여 그의 예술적 설정을 기피하고 구상적으로 유효할 모든 계기를 헛되이 포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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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4월 8일)
 
 
 

3. 단편 소설의 성패와 구상·묘사의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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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정동 셋집을 축출당하고 아는 이의 집 윗방에서 한 달 경을 지내다가 비를 맞으며 얻어 놓은 흉가라는 평판 있는 집으로 이사하여 약간의 안식을 가지려고 할 때에 뒤몰아쳐 오는 병마에 엄습(掩襲) 당하기까지의 가난과 싸워 나가는 일 여성의 이야기가 실감을 강요하면서 기록되어 있음에 불구하고 이러한 빈궁을 가져 오게 한 구체적 사실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아니라 ‘나’라는 여인 기자가 이 험준한 인생의 행로를 네 사람의 가족의 부담을 섬약한 등어리에 지고 걸어 나가는 눈물겨운 기록에 당연히 참여하여야 할 ‘나’라는 여주인공의 남편, 그리고 벌이 못하는 남동생에 대한 숨길 수 없는 감정, 일층 더 나아가서는 성적 고민과 모성애의 갈등, 시민 도덕에 대한 반항 등등에 대하여도 작자는 기탄 없이 묘파하기를 꺼리고 있다. 이러한 모든 점이 예술적으로 충분히 고려되었다면 폐병의 선언을 받고 흉가에서 무서운 하루밤을 새우는 주인공의 마음은 꿈과 닭의 소리가 아닌 그 이상의 수많은 고민과 착잡한 환상 속에 떨고 또한 암연히 울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흉가’에서 사는 가족을 넓은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적으로 관계시키어 이 가정을 넓은 현실의 ‘대’해 속에 참여시키는 데 있어서도 남편의 등장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는 한없이 저하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최정희 씨의 작가로서의 뒷날의 승리는 가면 박탈과 자기 격파의 나폴레옹의 칼을 소지함에 있어서만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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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잡지에는 최씨 외에 또 한 분의 여류 작가가 창작에 붓을 들고 있다. 그것은 「창백한 안개」(『조광』)를 쓴 장덕조 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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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금월 중의 작품으로 필자가 읽은 것 중에서 가장 힘들여 쓴 작(作)인 듯싶다. 물론 역작은 반드시 걸작이 아닐지 모르나 읽고 난 뒤에 오랫동안 마음을 붙들고 예술적 향훈 속에 머리를 묻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곳에 특히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것은 세밀하게 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짐작하였겠지마는 이 예술적 감흥이 이 소설의 전반에서 강하고 그것이 후반 특히 제3절에 이르러서는 점차로 저하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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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술적 감흥이 혹은 높고 혹은 낮아짐이 어디에서 원인한 것일까? 위선 필자는 제1에 구성이 결함, 그리고 둘째로는 리얼리즘이 전반과 후반에 얼룩이 졌다는 두 점에서 찾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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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씨의 「흉가」에 대하여 주로 여류 작가의 최초의 난관과 「흉가」 평가의 초점만을 설정함에 그쳤던 필자는 장씨의 이 작품에 대하여는 상기한 두 점에 관해서만 이야기함에 그칠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나 제한된 지면 내에서는 비평이 일면적으로 흐를 것은 불가피할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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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것도 그럴 것이지마는 단편 형식을 취하게 되는 문학에 있어서는 구성의 문제가 다른 어떠한 장르에서보다도 중요성을 띠게 된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의 광막한 대해 중에서 한 개의 테마를 싸고 가장 선택된 예술적 진실만이 압축된 형식으로 독자의 앞에 전개되게 되는 때문이 아닐까. 그르므로 소설 구성의 중점을 처음에 두고 풀어 나가듯이 묘사를 진행시켰는가 혹은 그것을 중간 또는 종말에 설정하고 모든 사건과 복선을 준비하였는가의 문제는 결코 조홀(粗忽)히 취급할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더욱이 이러한 구성상 문제가 또한 묘사의 대부분을 좌우하게 됨에 이를 때에 그것은 한 개의 중요한 제목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들의 장씨의 소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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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안개」의 중점은 두 곳에 설정되었다고 본다. 제2절의 하반 ‘순이’가 ‘아씨’에게 비로소 임신한 것을 발각 당하는 곳과 마지막 종말에서 주인공 ‘순이’가 뱃속에 태아를 가진 채 발광하여 기차에 치어 죽어버리는 곳과의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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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개로 중점이라고도 할 만한 곳이 갈려져 있는 관계상 독자의 감흥이 분열되게 되며 소설의 테마와 기타 이야기가 보여 주는 우매한 여성의 비극적인 일생이 가장 압축된 형식으로 독자에게 전개되어야 할 성질상 제2의 중점이 제1의 중점보다 강하여야 하고 모든 복선과 준비가 이 곳을 향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임에 불구하고 우리들이 한가지로 보는 바와 같이 이야기는 ‘제2’가 ‘제1’에게 압박을 당하여 ‘순이’가 마치고 다시 선로에서 불칙스런 변사를 당하고 마는 감동적인 장면은 스스로 그림자가 희박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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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4월 9일)
 
 
 

4. 작중 인물에겐 말보다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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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중점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렇게 세심하고 진지하였던 작자는 비극이 가장 초점에 도달할 장면에 이르러서는 고의의 사보타쥬를 하고 있다. ‘순이’가 귤을 먹고 싶어 하고 신 것을 먹고 싶어서 물에다 초를 타서 마실 뿐 아니라 밥 지을 때 밥김을 맡아도 속이 메스껍고 구역이 나는 것 등으로 복선이 장설(裝設)되고 다시 ‘아씨’의 방 안에서 ‘순이’로 하여금 거울과 화장품과 반지를 만지게 하여 치밀하게 성적 고민과 흥분을 추궁하여 그칠 줄 모르던 작자의 붓이 ‘아씨’의 입으로부터 ‘이 년 애 뱃구나’를 토하게 할 때까지 독자를 끌고 오던 예술적 훈기(薰氣)는 이 소설의 가장 높은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할 ‘순이’의 발광 역사(轢死)에 이르러서는 헛되이 분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성상의 부주의는 묘사에까지 영향하여 제2절까지 비교적 진지하게 추급되던 리얼리즘의 진행이 제3절에서부터는 허둥지둥 줄거리만을 따르고 ‘순이’가 미치게 되는 직접 동기 혹은 고향에 돌아와서 받는 여러 가지 학대가 전혀 표면만의 묘사에 시종한 까닭에 사람이 미치고 불행한 최후를 당하게 되어도 독자의 감흥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순이’가 집에 돌아와서 받는 가지가지의 수마적(獸馬的) 대우에 대하여 장씨의 붓은 끝까지 따라가기를 중지하고 ‘순이’가 발광하는 날의 묘사도 흐려져 있기 때문에 대체 이 우매하고 정신에 결함이 있는 듯한 불쌍한 여자는 언제부터 미친 것인지까지 의심케 된다. 혹은 처음부터 ‘순이’는 일종의 미치광이는 아니었던가. 이에 비하여 제2절 상반에 ‘마나님’과 ‘아씨’와의 싸움은 지나치게 많이 취급되지는 않았을까. 이 싸움이 ‘순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과대한 취급을 사족인 것같이 보이는 반면이 ‘순이’의성적 성대자들은 너무 그림자뿐으로 되어 버린것 같다. 그러므로 개괄하여 말한다면 장덕조 씨가 여인 단편 작가로서 군계의 일학이 되려면은 보는 눈은 똑바로 세워 그것을 한 개의 초점에다 모아 놓고 사건과 묘사를 처리하는 술법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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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씨의 「성찬(聖餐)」은 잡지 『여성』에 실린 단편 소설이다. 이것을 읽고 필자는 이씨가 여성 잡지를 위하여 특히 집필한 작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이 가운데에 이효석 씨의 작가적 면모의 일부분이 나타나 있지 않음은 아니지마는 이 작품은 결코 이씨의 창작 태도를 윤(潤)나게 구현시켜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키이는 때문이다. 물론 작품으로서의 파탄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씨에게 파탄 없는 작품보다도 설사 파탄이 있을지라도 문학적 정신과 고양된 비판적 정신을 작품 속에서 발견하고 싶은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이씨에 대한 과분한 욕망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씨는 소성에 만족하여 자신을 웅장한 산악의 창조자 대신에 작은 정원의 일 원정으로 떨어뜨리는 데 반대한 작가인 것을 알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곳에 작가에게 허용된 것은 작가로서의 이효석론이 아니라 씨의 일편의 소설 「성찬」에 대한 독후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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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먼저 생각키이는 것은 이 작가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중 인물로 하여금 철학적 언사와 경구를 토하게 하는 데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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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거울같이 괴이하고 야릇한 것은 없다. 태고 적에 거울이라는 것이” 운운 에서 소설을 시작한 것은 소설 중간에서 ‘보배’가 거울에 나타난 제 모양을 취안에 잘못 보고 질시를 느끼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이 소설의 ‘지문’의 대부분이 이러한 철학적 냄새 나는 설교로 꽉 차 있다고 할 만큼 이씨는 혹은 작자의 의견으로 혹은 ‘보배’를 통하여 이러한 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새것’에 대한 진리를 설교시키면서 ‘보배’와 ‘준보’와 ‘민자’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드디어 ‘새것’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혁명설에까지 발전하여 이 거리의 ‘지혜자’는 첩첩(喋喋히 장광설을 즐기면서 그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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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확실히 이 소설을 한 개의 비속한 치정담으로부터 구출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을 뿐 아니라 특이한 기분까지를 양성하는 데 사용되고 있음에 불구하고 필자는 결코 칭찬할 만한 창작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배’의 한 가닥의 언행이 있고는 반드시 이러한 장광설이 설명적으로 뒤따른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이런 것이 나올 때마다 심히 불쾌하였다. 필자는 작중 인물에게 될수록 많이 행동을 시킬 것인지 결코 과대하게 잔소리를 시키지 말라는 것은 고리끼의 말이거니와 나는 이씨에게 이 말을 유용하게 생각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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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교가 많음에 반하여 이 소설의 성질상 반드시 필요한 작중 인물세 사람의 용모의 묘사는 교묘하게 회피되어 예컨대 로버트 테일러 같다느니 안보 오닥 비슷하다거니 ‘흡사히 시몬느 시몬 같은 둥글고 납작스름한 민자의 애숭이 얼굴’이라니 하여 전부가 서양 배우의 이름으로 대치되어 버렸다. 시몬느 시몬의 아름다움이 ‘둥글고 납작스름’한 데 있는지도 의문이려니와 이들을 본 적이 없는 시골 독자들은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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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4월 10일)
 
 
 

5. 프로 작가의 과제와 자조(自嘲) 문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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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풍림』에는 이동규 씨의 「신경 쇠약」이라는 소설이 실리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의 조선에 프롤레타리아 작가라는 명칭에 해당할 작가가 있는지 필자 역시 의아하여 마지 않는 바이나 ‘구 카프 작가’ 혹은 ‘전 프로 작가’라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면 그리 잘못된 호칭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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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 작가는 그의 진정한 문학이 일반 대중에게 열렬히 요망되고 있음에 반하여 심히 부진하고 또한 이 분들이 과연 과거에 프로 문학을 치른 사람들인가 하는 의심까지도 일반에게 품게 하고 있다. 필자 역시 그 중의 일인으로서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문하고 회의하고 또한 어떻게 하면 지나온 길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있을까 하여 여러 가지 시험을 기도하고 있는 중이지마는 물론 과거에 우리들이 빠졌던 정치주의적 편향을 깨끗하게 청산할 필요는 인정하나 우리가 지나온 길을 새로운 세계의 개간(開墾)에 유용하게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헛되이 예술지상주의로 귀환해 버리는 데는 끝까지 반대하는 주장을 고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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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한때에 정신을 잃고 덤벼 들어 몸을 다친 정치주의적 편향 기(其) 자체에 대하여 예술적으로 깊이 파 보려고 하고 자신을 그 가운데서‘냉혹’ 하게 주시하고자 하는 것도 부진하는 프로 작가가 새로운 과제로 할 만한 것의 하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진리라고 믿던 이상적 지주를 생활 속에서 잃어버리고 캄캄한 암야행로에서 우왕좌왕하는 지식인의 정신적 육체적 고민을 뿌리째 파 보려는 작가적 태도는 확실히 새로운 문학을 일보 전진시키는 가장 좋은 것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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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다시 말하면 지척을 가눌 수 없는 거치른 물결 속에서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면서 비참히 헤어 나가는 암담한 지식인의 생활을 예술적으로 종합, 창조해 보려는 이 길 위에서 그러나 우리는 흔히 두 개의 위험한 암초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심각하게 추궁되는 길에서 헌듯하면 부딪치기 쉬운 변명(辯明) 문학에의 위험이 기일(其一)이요 이 방향을 안이하게 취급하여 표면만을 건드리고 지나 갈 때에 당연히 뒤따를 자조적 문학에 대한 통로가 기이(其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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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문학의 암초는 행동과 실천과 사상을 상실한 지식인 혹은 사상적 전과자의 뼈에 사무치는 생활 기록에까지도 설치되어 있기 쉬운 일탈일 것이니 문학이 지식인의 변명에 그쳐서 실천과 유리된 이론을 대변하고 ‘불안’과 ‘고민’을 변호함에 분망한다면 그 문학이 보여 주는 열정과 기백은 결코 새로운 문학적 세계에로 통하는 행로 위에 영원히 빛날 등대불은 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겨우 문학의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조를 되풀이함에서 어떤 종류의 자위를 찾는다면 이러한 문학이 파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묘혈에 불과하지는 않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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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프로 작가가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 속으로 열정을 부어 넣으려면 항상 그것 자체와 피투성이가 되어 끝가지 싱갱이를 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연소해 버리려는 위대한 정신과 담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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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씨의 「신경 쇠약」은 씨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전기한 암초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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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이 곳에서 보여 준 ‘나’라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자신에 대한 변명에까지도 이르지 못하고, 말하자면 힘없는 자조에 그쳐 있을 뿐이다. 아니 작자는 자조하는 작중 인물까지도 심각하게 추궁하기를 피하고 있다. 작자의 붓은 ‘나’와 함께 집을 나와 매일같이 버둥거리며 잡지사와 다방을 순회하여 혹은 문학담을 혹을 시국담을 하나 그리 깊게 고민도 또는 자조도 하지 않는다. 무난한 묘사, 거치는 데 없는 평탄한 문장도 작자의 현실에 대한 정열과 예술적 구상이 빈약하면 아무 윤기도 못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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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당연하나 이를 그리는 붓이 무기력하여져서는 안 되며 무기력한 인물이 뚜렷이 나오게 하기 위하여는 이를 무기력하게 보일 만한 특정한 구성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무기력’이 ‘문’학적 정신에 씻기워 한 개의 창조물이 되려면 붓은 수많은 험준한 고개를 끊임없이 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곤란하고 성공하기 힘든 행로일지는 모르나 프로 작가가 가질 수 있고 그리고 그의 열정을 부어 넣을 만한 가치 있는 방향이 아니면 안 된다. 예술의 진주는 노방초나 혹은 작애돌과 같이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고 산 건너 물 건너 만리길을 헤어서야 도달하는 무인 ‘보도(寶島)’에만 있는 때문이다(끝으로 평론에 불만한 이는 논쟁을 제기하라! 논쟁은 문학을 전진시킬 것이다). (정축〔丁丑〕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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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4월 11일)
【원문】1937년 4월 창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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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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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년 4월 창작평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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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4월 창작평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