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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도(氣象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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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김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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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상도(氣象圖)
 
 
 

제1부 : 세계의 아침

 
3
비늘
4
돋힌
5
해협(海峽)은
6
배암의 잔등
7
처럼 살아났고
8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9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10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누었다.
 
11
헐덕이는 들 우에
12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13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14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15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16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17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18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19
차창마다
20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21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22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23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24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25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
26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27
자리로 돌아간다.
 
28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29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30
전서구(傳書鳩)들은
31
선실의 지붕에서
32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33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
34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제2부 : 시민 행렬

 
36
넥타이를 한 흰 식인종(食人種)은
37
니그로의 요리(料理)가 칠면조(七面鳥)보다도 좋답니다.
38
살갈을 희게 하는 점은 고기의 위력(偉力)
39
의사(醫師) ‘콜베-르’씨의 처방(處方)입니다.
40
‘헬메트’를 쓴 피서객(避暑客)들은
41
난잡(亂雜)한 전쟁경기(戰爭競技)에 열중(熱中)했습니다.
42
슬픈 독창가(獨唱家)인 심판(審判)의 호각(號角)소리
43
너무 흥분(興奮)하였으므로
44
내복(內服)민 입은 파씨스트
45
그러나 이태리(伊太利)에서는
46
설사제(泄瀉劑)는 일체 금물(禁物)이랍니다.
47
필경 양복(洋服) 입는 법을 배워낸 송미령여사(宋美齡女史)
48
아메리카에서는
49
여자(女子)들은 모두 해수욕(海水浴)을 갔으므로
50
빈 집에서는 망향가(望鄕歌)를 불으는 니그로와
51
생쥐가 둘도 없는 동무가 되었습니다.
52
파리(巴里)의 남편(男便)들은 차라리 오늘도 자살(自殺)의 위생(衛生)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하고
53
옆집의 수만이는 석달만에야
54
아침부터 지배인(支配人) 영감의 자동차(自動車)를 불으는
55
지리한 직업(職業)에 취직(就職)하였고,
56
독재자(獨裁者)는 책상(冊床)을 따리며 오직
57
‘단연(斷然)히 단연(斷然)히’ 한 개의 부사(副詞)만 발음(發音)하면 그만입니다.
58
동양(東洋)의 안해들은 사철을 불만(不滿)이니까
59
배추장사가 그들의 군소리를 담어 가져오기를
60
어떻게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61
공원(公園)은 수상(首相) ‘막도날드’씨(氏)가 세계(世界)에 자랑하는
62
여전(如前)히 실업자(失業者)를 위한 국가적(國家的) 시설(施設)이 되었습니다.
63
교도(敎徒)들은 언제든지 치일 수 있도록
64
가장 간편(簡便)한 곳에 성경(聖經)을 얹어 두었습니다.
 
65
기도(祈禱)는 죄(罪)를 지을 수 있는 구실(口實)이 되었습니다.
66
‘감사합니다.’
67
‘아-멘’
68
‘감사합니다 마님, 한 푼만 적선하세요.
69
내 얼굴이 요로케 이즈러진 것도
70
내 팔이 이렇게 부러진 것도
71
마님과의 말이지 내 어머니의 죄는 아니랍니다.‘
72
‘쉿! 무명전사(無名戰士)의 기념제행렬(記念祭行列)이다.’
73
뚜걱 뚜걱 뚜걱……
 
 
 

제3부 : 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

 
75
‘바기오’의 동(東) 쪽
76
북위(北緯) 15도(度)
 
77
푸른 바다의 침상(寢牀)에서
78
흰 물결의 이불을 차 던지고
79
내리쏘는 태양(太陽)의 금(金)빛 화살에 얼굴을 얻어맞으며,
80
남해(南海)의 늦잠재기 적도(赤道)의 심술쟁이
81
태풍(颱風)이 눈을 떴다.
82
악어(鰐魚)의 싸흠동무
83
돌아올 줄 모르는 장거리선수(長距離選手)
84
화란선장(和蘭船長)의 붉은 수염이 아무래도 싫다는
85
따곱쟁이
86
휘둘리는 검은 모락에
87
찢기어 흩어지는 구름빨
88
거츠른 숨소리에 소름치는
89
어족(魚族)들
90
해만(海灣)을 찾아 숨어드는 물결의 떼
91
황망히 바다의 장판을 구르며 달른
92
빗발의 굵은 다리
93
‘바시’의 어구에서 그는 문득
94
바위에 걸터앉아 머리수그린
95
헐벗고 늙은 한 사공(沙工)과 마주쳤다.
96
흥, ‘옛날에 옛날에 파선(破船)한 사공(沙工)’인가 봐.
97
결혼식(結婚式) 손님이 없어서 저런게지
98
‘오 파우스트’
99
‘어디를 덤비고 가나.’
100
‘응 북(北)으로.’
101
‘또 성이 났나?’
102
‘난 잠잫고 있을 수가 없어 자넨 또 무엇땜에 예까지 왔나?’
103
‘괴테를 찾어 다니네.’
104
‘괴테는 자네를 내버리지 않었나.’
105
‘하지만 그는 내게 생각하라고만 가르쳐 주었지.
106
어떻게 행동(行動)하라군 가르쳐 주지 않었다네.
107
나는 지금 그게 가지고 싶으네.‘
108
흠, 막난이 파우스트
109
흠, 막난이 파우스트.
110
중앙기상대(中央氣象臺)의 가사(技師)의 손은
111
세계(世界)의 1500여(餘) 구석의 지소(支所)에서 오는
112
전파(電波)를 번역하기에 분주하다.
113
(第一報)
114
저기압(低氣壓)의 중심(中心)은
115
‘발칸’의 동북(東北)
116
또는
117
남미(南美)의 고원(高原)에 있어
118
690밀리
119
때때로
120
적은 비 뒤에
121
큰 비
122
바람은
123
서북(西北)의 방향(方向)으로
124
35미터
125
(第二報) 폭풍경보(暴風警報)
126
맹렬(猛烈)한 태풍(颱風)이
127
남태평야(南太平洋) 상(上)에서
128
일어나
129
바야흐로
130
북진(北進) 중(中)이다.
131
풍우(風雨) 강(强)할 것이다.
132
아세아(亞細亞)의 연안(沿岸)을 경계(警戒)한다.
133
한 사명(使命)에로 편성(編成)된 단파(短波)ㆍ단파(短波)ㆍ장파(長波)ㆍ단파(短波)ㆍ장파(長波)ㆍ초단파(超短波)ㆍ모-든 전파(電波)의 동원(動員)ㆍ시(市)의 게시판(揭示板)
134
‘산사(紳士)들은 우비(雨備)와 현금(現金)을 휴대(携帶)함이 좋을 것이다.’
 
 
 

제4부 : 자최

 
136
‘대(大) 중화민국(中華民國)의 번영(繁榮)을 위하야-’
137
슬프게 떨리는 유리컵의 쇳소리
138
거룩한 환담(歡談)의 불구비 속에서
139
늙은 왕국(王國)의 운명(運命)은 흔들리운다.
140
‘솔로몬’의 사자(使者)처럼
141
빨간 술을 빠는 자못 점잖은 입술들
142
색깜한 옷깃에서
143
쌩그시 웃는 흰 장미(薔薇)
144
‘대(大) 중화민국(中華民國)의 분열(分裂)을 위하야-’
145
찢어지는 휘장 저편에서
146
갑자기 유리창(窓)이 투덜거린다…….
 
147
‘자려므나 자려므나.’
148
‘꽃 속에 누워서 별에게 안겨서-’
149
‘쁘람스’처럼 매우 슬픕니다.
150
꽃은커녕 별도 없는 벤취에서는
151
꿈들이 바람에 흔들려 소스라쳐 깨었습니다.
152
하이칼라한 쌘드윗취의 꿈
153
빈욕(貧慾)한 ‘삐-프스테잌’의 꿈
154
건방진 ‘햄살라드’의 꿈
155
비겁한 강낭족의 꿈
156
‘나리사 나게는 꿈꾼 죄밖에는 없습니다.
157
식당(食堂)의 문전(門前)에는
158
천만에, 천만에 간 일이라곤 없습니다.
159
‘…………’
160
‘나리 저건 묵시록(黙示錄)의 기사(騎士)ㅂ니까.’
 
161
산빨이 소름 친다.
162
바다가 몸부림 친다.
163
휘청거리는ㄴ 전주(電柱)의 미끈한 다리
164
여객기(旅客機)는 태풍(颱風)ㅡ이 깃을 피하야
165
성층권(成層圈)으로 소스라쳐 올라갔다.
166
경련(痙攣)하는 아세아(亞細亞)의 머리 우에 흐터지는 전파(電波)의 분수(噴水) 분수(噴水)
167
고국(故國)으로 몰려가는 충실(充實)한 에-텔의 아들들
168
국무경(國務卿) ‘양키’씨는 수화기(受話器)를 내던지고
169
창고(倉庫)의 층층계를 굴러 떨어진다.
170
실로 한모금의 소-다수(水)
171
혹은 아모러치도 아니한 ‘이놈’ 소리와 바꾼 증권(證券)들 우에서
172
붉은 수염이 쓰게 웃었다.
173
‘워싱톤은 가르치기를 정직(正直)하여라.’
 
174
십자가(十字架)를 높이 들고
175
동란(動亂)에 향하야 귀를 틀어막던
176
교회당(敎會堂)에서는
177
‘하느님이여 카나안으로 이르는 길은
178
어느 불ㅅ길 속으로 뚤렸습니까.‘
179
기도(祈禱)의 중품에서 예배(禮拜)는 멈춰섰다.
180
아모도 ‘아-멘’을 채 말하기 전에
181
문(門)으로 문(門)을 쏟아진다……
182
도서관(圖書館)에서는
183
사람들은 거꾸로 서는 ‘소크라테쓰’를 박수(拍手)합니다.
184
생도(生徒)들은 ‘헤-겔’의 서투른 산술(算術)에 아주 탄복(歎服)하빈다.
185
어저께의 동지(同志)를 강변(江邊)으로 보내기 이하야
186
자못 변화자재(變化自在)한 형법상(刑法上)의 조건(條件)이 조사(調査)됩니다.
187
교수(敎授)는 지전(紙錢) 우에 인쇄(印刷)된 박사논문(博士論文)을 낭독(朗讀)합니다.
188
‘녹크도 없는 손님은 누구냐.’
189
‘…………’
190
‘대답이 없는 놈은 누구냐.’
191
‘………’
192
‘예의(禮儀)는 지켜야 할 것이다.’
193
떨리는 조계선(租界線)에서
194
하도 심심한 보초(步哨)는 한 불란서(佛蘭西) 부인(婦人)을 멈춰 세웠으나,
195
어느새 그는 그 여자(女子)의 스카-트 밑에 있었습니다.
196
‘베레’ 그늘에서 취한 입술이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의 웃음을 웃었습니다.
197
붕산(硼酸) 냄새에 얼빠진 화류가(花柳街)에는
198
매약회사(賣藥會社)의 광고지(廣告紙)들
199
이즈러진 알미늄 대야
200
담뱃집 창고(倉庫)에서
201
썩은 고무 냄새가 분향(焚香)을 피운다.
202
지붕을 베끼운 골목 우에서
203
쫓겨난 공자(孔子)님이 잉잉 울고 섰다.
204
자동차(自動車)가 돌을 차고 넘어진다.
205
전차(電車)가 개울에 쓰러진다.
206
‘삘딩’의 숲 속
207
네거리의 골짝에 몰켜든 검은 대가리들의 하수도(下水道)
208
멱처럼 허우적이는 가-느다란 팔들
209
구원(救援) 대신에 허공(虛空)을 부짭은 지치인 노력(努力)
210
흔들리우는 어깨의 물결
 
211
불자동차(自動車)의
212
날랜 ‘사이렌’의 날이
213
선뜻 무딘 동란(動亂)을 잘르고 지나갔다.
214
입마다 불길을 뿜는
215
마천루(摩天樓)의 턱을 어루만지는 분수(噴水)의 바알
216
어깨가 떨어진 ‘마르코 폴로’의 동상(銅像)이 혼자
217
네거리의 복판에 가로 서서
218
군중(群衆)을 호령(號令)하고 싶으나,
219
모가지가 없습니다.
220
‘라디오 비-큰’에 걸린
221
비행기(飛行機)의 부러진 죽지
222
골작을 거꾸로 자빠져 흐르는 비석9碑石)의 폭포(瀑布)
223
‘소집령(召集令)도 끝나기 전에 호적부(戶籍簿)를 어쩐담.’
224
‘그보다는 필요(必要)한 납세부(納稅簿)’
225
‘그보다도 봉급표(俸給表)를’
226
‘그렇지만 출근부(出勤簿)는 없어지는 게 좋아.’
 
227
날마다 갈리는 공사(公使)의 행렬(行列)
228
승마구락부(乘馬俱樂部)의 말발굽 소리
229
‘홀’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자동차(自動車)의 고무바퀴들
230
묵서가행(墨西哥行)의 ‘쿠리’들의 ‘투레기’
231
자못 가벼운 두 쌍의 ‘키드’와 ‘하이힐’
232
몇 개의 세대(世代)가 뒤섞이어 밟고 간 해안(海岸)의 가도(街道)는
233
깨어진 벽돌조각과
234
부서진 유리조각에 얻어맞아서
235
꼬부라져 자빠져 있다.
 
236
날마다 홍혼(黃昏)이 쳐여주는
237
전등(電燈)의 훈장(勳章)을 번쩍이며
238
세기(世紀)의 밤중에 버티고 일어섰던
239
오만(傲慢)한 도시(都市)를 함부로 뒤져놓고
240
태풍(颱風)은 휘파람을 높이 불며
241
황하강변(黃河江邊)으로 비꼬며 간다.………
 
 
 

제5부 : 병(病) 든 풍경

 
243
보랏빛 구름으로 선을 들른
244
회색(灰色)의 칸바쓰를 등지고
245
꾸겨진 빨래처럼
246
바다는
247
산맥(山脈)의 돌단(突端)에 걸려 퍼덕인다.
 
248
삐뚤어진 성벽(城壁) 우에
249
부러진 소나무 하나……
250
지치인 바람은 지금
251
표백(漂白)인 풍경(風景) 속을
252
썩은 탄식(歎息)처럼
253
부두(埠頭)를 넘어서
254
찢어진 바다의 치맛자락을 걷우면서
255
화석(化石)된 벼래의 뺨을 어루만지며
256
주린 강아지처럼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257
바위 틈에 엎디어
258
죽지를 드리운 물새 한 마리
259
물결을 베고 자는
260
꺼질 줄 모르는 향수(鄕愁)
261
짓밟혀 느러진 백사장(白沙場) 우에
262
매맞어 검푸른 빠나나 껍질 하나
263
부프러올은 구두 한 짝을
264
물결이 차 던지고 돌아갔다.
265
해만(海灣)은 또 하나
266
슬픈 전설(傳說)을 삼켰나 보다.
267
황혼(黃昏)이 입혀주는
268
회색(灰色)의 수의(囚衣)를 감고
269
물결은 바다가 타는 장송곡(葬送曲)에 맞추어
270
병(病) 든 하루의 임종(臨終)을 춘다.……
271
섬을 부둥켜안는
272
안타까운 팔
273
바위를 차는 날랜 발길
274
모래를 스치는 조심스런 발꾸락
275
부두(埠頭)에 엎드려서
276
축대(築臺)를 어루만지는
277
간엷힌 손길
 
278
붉은 향기(香氣)를 떨어버린
279
해당화(海棠花)의 섬에서는
280
참새들의 이야기도 꺼져 버렸고
281
먼 등대(燈臺) 부근에는
282
등불도 별들도 피지 않았다.……
 
 
 

제6부 : 올빼미의 주문(呪文)

 
284
태풍(颱風)은 네거리와 공원(公園)과 시장(市場)에서
285
몬지와 휴지(休紙)와 캐베지와 연지(臙脂)와
286
연애(戀愛)의 유향(流行)을 쫓아버렸다.
 
287
헝크러진 거리를 이 구석 저 구석
288
혓바닥으로 뒤지며 다니는 밤바람
289
어둠에게 벌거벗은 등을 씻기우면서
290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전선주(電線柱)
291
엎드린 모래벌의 허리에서는 물결이 가끔 흰 머리채를 추어든다.
292
요란스럽게 마시고 지껄이고 떠들고 돌아간 뒤에
293
테블 우에는 깨어진 진(盞)들과
294
함부로 지꾸어진 방명록(芳名錄)과……
295
아마도 서명(署名)만 하기 위하여 온 것처럼
296
총총히 펜을 던지고 객(客)들은 돌아갔다.
297
이윽고 기억(記憶)들도 그 이름들을
298
마치 때와 같이 총총히 빨아버릴 게다.
 
299
나는 갑자기 신발을 찾아 신고
300
도망할 자세를 가춘다, 길이 없다
301
돌아서 등불을 비틀어 죽인다.
302
그는 비둘기처럼 거짓말쟁이였다.
303
황홀한 불빛의 영화(榮華)의 그늘에는
 
304
몸을 조려없애는 기름의 십자가(十字架)가 있음을
305
등불도 비둘기도 말한 일이 없다.
 
306
나는 신자(信者)의 숭내를 내서 무릎을 꿀어본다.
307
믿을 수 있는 신(神)이나 모신 것처럼
308
다음에는 기(旗)빨처럼 호화롭게 웃어버린다.
309
대체 이 피곤(疲困)을 피할 하룻밤 주막(酒幕)은
310
‘아라비아’의 ‘아라스카’의 어느 가시밭에도 없느냐.
311
연애(戀愛)와 같이 싱겁게 나를 떠난 희망(希望)은
312
지금 또 어디서 복수(復讐)를 준비하고 있느냐.
313
나의 머리에 별의 꽃다발을 두었다가
314
거두어간 것은 누구의 변덕이냐.
315
밤이 간 뒤에 새벽이 온다는 우주9宇宙)의 법칙(法則)은
316
누구의 실없는 장난이냐.
317
동방(東方)의 전설(傳說)처럼 믿을 수 없는
318
아마도 실패(失敗)한 실험(實驗)이냐.
319
너는 애급(埃及)에서 돌아온 ‘씨-자’냐.
320
너의 주둥아리는 진정 독수리냐.
321
너는 날개 돋친 흰 구름의 종족(種族)이냐.
322
너는 도야지처럼 기름지냐.
323
너의 숨소리는 바다와 같이 너그러우냐.
324
너는 과연(果然) 천사(天使)의 가족(家族)이냐.
 
325
귀 먹은 어둠의 철문(鐵門) 저 편에서
326
바람이 터덜터덜 웃나보다.
327
어느 헝크러진 수풀에서
328
부엉이가 목쉰 소리로 껄껄 웃나보다.
 
329
내일(來日)이 없는 칼렌다를 쳐다보는
330
너의 눈동자는 어쩐지 별보다 이쁘지 못하고나.
331
도시 십구세기(十九世紀)처럼 흥분(興奮)할 수 없는 너
332
어둠이 잠긴 지평선(地平線) 너머는
333
다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334
음악(音樂)은 바다 밑에 파묻힌 오래인 옛말처럼 춤추지 않고
335
수풀 속에서는 전설(傳說)이 도무지 슬프지 않다.
336
페이지를 번지건만 너멋장에는 결론(結論)이 없다.
337
모퉁이에 혼자 남은 가로등(街路燈)은
338
마음은 슬퍼서 느껴서 우나.
339
부릅뜬 눈에 눈물이 없다.
 
340
거츠른 발자취들이 구르고 지나갈 때에
341
담벼락에 달러붙는 나의 숨소리는
342
생쥐보다도 커본 일이 없다.
343
강아지처럼 거리를 기웃거리다가도
344
강아지처럼 얻어맞고 발길에 채어 돌아왔다.
 
345
나는 참말이지 산량(善良)하려는 악마(惡魔)다.
346
될 수만 있으면 신(神)이고 싶은 짐승이다.
347
그렇건만 밤아 너의 썩은 바줄은
348
왜 이다지도 내 몸에 깊이 친절(親切)하냐.
349
무너진 축대(築臺)의 근방에서는
350
바다가 또 아름다운 알음소리를 치나보다.
351
그믐밤 물결의 노래에 취할 수 있는
352
‘타골’의 귀는 응당 소라처럼 행복(幸福)스러울 게다.
 
353
어머니 어머니의 무덤에 마이크를 가져갈까요.
354
사랑스러운 해골(骸骨) 옛날의 자장가를 기억해내서
355
병신 된 나의 귀에 불러주려우.
356
자장가도 부를 줄 모르는 바보인 바다.
 
357
바다는 다만
358
어둠에 반란(反亂)하는
359
영원(永遠)한 불평가(不平家)다.
 
360
바다는 자꾸만
361
헌 이빨로 밤을 깨문다.
 
 
 

제7부 : 쇠바퀴의 노래

 
363
하나
364
이윽고
365
태풍(颱風)이 짓밟고 간 깨어진 ‘메트로폴리스’에
366
어린 태양(太陽)이 병아리처럼
367
홰를 치며 일어날게다.
368
하룻밤 그 꿈을 건너다니던
369
수없는 놀램과 소름을 떨어버리고
370
이슬에 젖은 날개를 하늘로 펼게다.
371
탄탄한 대로(大路)가 희망(希望)처럼
372
저 머언 지평선(地平線)에 뻗히면
373
우리도 사륜마차(四輪馬車)에 내일(來日)을 싣고
374
유량한 말발굽 소리를 울리면서
375
처음 맞는 새 길을 떠나갈게다.
376
밤인 까닭에 더욱 마음달리는
377
저 머언 태양(太陽)의 고향(故鄕)
378
끝없는 들 언덕 위에서
379
나는 ‘데모스테네스’보다도 수다스러울 게다.
380
나는 거기서 채찍을 꺾어버리고
381
망아지처럼 사랑하고 망아지처럼 뛰놀게다.
382
마음에 타는 일이 없을 나의 눈동자는
383
진주(眞珠)보다도 더 맑은 샛별
384
나는 내 속에 엎드린 산양(山羊)을 몰아내고
385
여우와 같이 깨끗하게
386
누이들과 친(親)할게다.
 
387
나의 생활(生活)은 나의 장미(薔薇)
388
어디서 시작한 줄도
389
언제 끝날 줄도 모르는 나는
390
꺼질 줄이 없이 불타는 태양(太陽)
391
대지(大地)의 뿌리에서 지열(地熱)을 마시고
392
떨치고 일어날 나는 불사조(不死鳥)
393
예지(叡智)의 날개를 등에 붙인 나의 날음은
394
태양(太陽)처럼 우주9宇宙)를 덮을게다.
395
아름다운 행동(行動)에서 빛처럼 스스로
396
피어나는 법칙(法則)에 인도(引導)되어
397
나의 날음은 즐거운 궤도(軌道) 우에
398
끝없이 달리는 쇠바퀴다.
 
399
벗아
400
태양(太陽)처럼 우리는 사나웁고
401
태양(太陽)처럼 제 빛 속에 그늘을 감추고
402
태양(太陽)처럼 슬픔을 삼켜버리자.
403
태양(太陽)처럼 어둠을 살워버리자.
 
404
다음날
405
기상대(氣象臺)의 마스트엔
406
구름조각 같은 흰 기(旗)폭이 휘날릴게다.
 
407
(폭풍경보해제(暴風警報解除))
408
쾌청(快晴)
409
저기압(低氣壓)은 저 머언
410
시베리아의 근방에 사라졌고
411
태평양(太平洋)의 연안(沿岸)서도
412
고기압(高氣壓)은 흩어졌다.
413
흐림도 소낙비도
414
폭풍(暴風)도 장마도 지나갔고
415
내일(來日)도 모레도
416
날씨는 좋을 게다.
 
417
(시(市)의 게시판(揭示板))
418
시민(市民)은
419
우울과 질투와 분노와
420
끝없는 탄식과
421
원한의 장마에 곰팡이 낀
422
추근한 우비(雨備)를랑 벗어버리고
423
날개와 같이 가벼운
424
태양(太陽)의 옷을 갈아 입어도 좋을 게다.
 
 
425
- <기상도(氣象圖)>(창문사.1936) -
【원문】기상도(氣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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