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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본지에 연재중인 이효석(李孝石) 씨의 「창공(蒼空)」의 어느날 분을 요전 읽다가, 그 어떤 안해가 남편더러 “……괜히 베토벤이나 쇼팡을 모를 사람이 현대인 치구야 당신을 내놓구 누가 있겠수 ⎯” 운운하면서 핀잔을 주는 대문에 이르러서는 혼자서 적지 않게 적면(赤面)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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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그 방면에 관한 학문적인 수양이 없고 귀도 또한 세련이 되지를 못한 때문이기야 하겠지만, 이른바 그 고상한 음악이라는 것에 대하여 도무지 흥을 느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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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연주는 제아무리 명곡이라는 것을 들어도 졸립고‘바이올린’은 차라리 덜한 편이되 교향악에 이르러서는 겨우 시끄러운 줄이나 알지‘베토벤’인지‘재즈’인지 그 분간조차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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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데없는‘세기의 쌍놈’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걸 좀 면하려고 평소에 귀동냥한 곡명을 고이 외웠다가는 음악 좋다는 다방 같은 데 들어가서 일부러 청하기도 하고 라디오의 프로를 눈익혀 두었다가는 별러가면서 들을 기회를 만들기도 하고 하는 것이나 벌써 수년의 노력이건만 영영 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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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기는 하면서도 마치 입이 텁텁하면 저절로 담배 생각이 나듯이 일상에 있어서 무시로 음악이 그리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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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득불 허름하고 흔한 유행가라도 즐기고 앉았어야 할 주제인가 본데, 그러나 음악에 주리어 원귀(怨鬼)가 될지언정 요샛날의 그 유행가란 것에는 도저히 정을 붙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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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유행가 가운데도 가끔 일물(逸物)이 없는 바가 아니며, 최근에 내가 들은 것 중에도 몇몇은 미상불 좋고 무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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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자의 그 활량이며 낭자들이 악질의‘요힌빙’같은 음성과 곡조로써 부르는 대부분의 유행가란 참으로 귓결에 듣기조차 내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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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만 해도 신문이나 잡지사의 휴지통을 뒤진다 치면 시방 요샛날의 유행가 가사감으로 썩 절호한 재료가 얼마든지 풍부히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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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깊고 복잡한 양악은 들을 줄을 몰라서 못 듣고 유행가는 거진 관포주의 태도를 취하고 그리고는 겨우 조선 고전으로 풍류에 한갓 흥을 불행중 다행히 탁(託)하기는 하느라고 하는 것이나 그는 또 얻어 듣기가 대단히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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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레코드 회사에서 친절하게 풍류(風流) 48장(章)을 죄다 만들어낸 게 있다는 소식은 여태 들은 법이 없고 고작 JODK에서 가끔가다가 그 중 한 토막씩을 들려주곤 하나 그 토막풍류에 제대로 흥이 날 이치가 없고 더구나 현(絃)보다는 나는 덜 좋아하는 관(管) 중심이어서 와락 그다지 고마운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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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아핀하고는 꽤 친하다. 흉잡힐 소린지는 몰라도 그중 특히「카르멘」은 내가 좋아하는 것 가운데 담배 다음가게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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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李東伯)은 그보다 더 정다와한다. 또 어려서‘협률사’에서 보던 걸로 광대와 사당(妓女[기녀])이 한패 섞여 장구와 소고를 둘러메고 어울려 부르는 보렴(報念) 그것들은 참으로 멋이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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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 풍류고 샬리아핀이고 이동백의 창극조(唱劇調)이고 보렴이고 그저 귀에 즐거우니 좋아한다는 말이지 장단이 어떻게 가며 목이 어떻게 먹으며 하는 것 즉 악리(樂理)를 제법 터득하고서 그 오묘한 맛을 이해하여 즐긴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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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아무리 해도 음악이란 내게는 난물(難物)중에 유수한 난물에 속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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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썩 손쉽게 그놈 음악을 알아듣는 묘방이 있거들랑 좀 전수를 시켜주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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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0.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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