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텔리젠스의 유지 옹호와 보육과 신장을 위하여 모든 문학적 정력이 총동원하여도 결코 과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대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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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성 옹호의 모든 부르짖음이 그대로 정당한 것이 될 수 있겠느냐에 대하여는 적지 않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으며 제창되는 바 지성 유지의 제 방책에 그대로 신뢰하여 안심할 수 있겠는가도 또한 적지 않은 주저를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인텔리젠스의 옹호와 신장을 외치는 그 논책 전부가 인텔리젠스의 옹호와 신장에 자(資)할 수는 없으라는 것 오히려 그 반대로 이것을 어떤 의미에서든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도 도한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가 한다. 이러므로 해서 지성과 지식 계급론자의 실제상의 뉘앙스를 살펴보는 것이 또한 지성 유지의 한 방책으로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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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옹호와 보육을 논하는 이가 이를 지식 계급과의 연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태도에는 물론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될 때에 무엇보다도 먼저 요청되는 것은 지성과 지식 계급과 지식적 분자라는 개념에 일정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나는 이 곳에서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성은 지식 계급에 의하여 유지되고 보육되고 신장된다는 이론 이상, 위험한 것도 또한 이 시기에서는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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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회나 시대에서든지 지성이 지식적 분자에 의하여 유지 전개되어 왔다는 이론에는 물론 찬성할 수 있다. 봉건 사회에서는 피라미드의 상층을 대표하는 생기 발랄한 지식 분자에 의하여 문화는 창조되고 지성은 신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가령 노예 사회면 노예 사회, 봉건 사회면 봉건 사회, 또는 시민 사회라도 무방하나, 어쨌든 혹종의 사회의 황혼에 처하여(헤겔은 이러한 황혼을 묘사하여 모든 소가 온통 꺼멓게 보이는 황혼이라고 말하였다) 지성을 유지하는 자는 오히려 그 사회의 피라미드의 정점을 대표하는 지식적 분자가 아니었고 기하학상으로 이 정점과는 다른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지식적 분자였는 것을 가리키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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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항용 황혼에 처하여 비로소 그의 비상을 개시하였다고 한다. 한 역사적 사회가 세계역사적 임무를 다하였을 때 지혜의 여신은 황혼을 타서 새로운 활약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식적 분자라는 말을 운위할 때에 재삼 음미해 볼 만한 함축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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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식 계급이라면 그것은 엄연한 사회성을 띤 것으로 역사적으로 제약된 계급층을 말하는 사회 과학적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현순간에 처하여 지식 계급이라고 범연(泛然)하게 불러오는 대상이 언제부터 대상이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면모를 구유(具有)함에 이르렀는지는 다소의 사회 과학적 성찰을 필요로 하겠으나 그것이 시민 사회 초창기의 대표적 지식 분자의 상모로부터는 상당히 변형된 것임을 인정하기에는 별반 오랜 사색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시민 사회의 초창기에는 세계사적 의욕과 시민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의 이념이 어느 정도까지 일치하여 지성은 이들에 의하여 신장되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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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게마이네 크리제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것은 지성 신장의 질곡으로 변화되어 있을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과연 지성의 유지와 보육과 신장을 범연히 지식 계급이라고 불러지는 집단에게 안심하고 위탁해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지식 계급 자체에 대하여 실제적인 뉘앙스를 검토하는 사업이 긴급히 요청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전체를 아무러한 신체 검사도 없이 용납해 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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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느 골목으로 지성을 유도할는지 그것은 노상히 추측키 극난할 뿐 아니라 그가 현재 협착(狹窄)한 혈통(血統) 이론이나 상서롭지 못한 중세기 속으로 지성을 안내하고 있음도 또한 우리가 친히 목도하는 사실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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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8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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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쨌건 이 즈음 유행하는 지성이나 지식 계급론이 그것을 생의 철학과 관련시키고자 하는 것은 흥미 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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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철학, 그 자체에 대하여는 물론 나는 아무러한 깊은 지식도 없다. 그러나 이 즈음 철학계나 혹은 널리 학문의 위를 횡행하는 생의 철학이란 하이데거나 야스퍼스를 대표로 하여 좀 오랜 것으로는 니체라든가 키에르케고르 또는 좀 버드러져서는 셰스토프 등과도 관련을 갖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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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의 천착은 물론 사학(斯學)의 전문가를 기다려 능히 할 일이나 어떻든 절대적인 생명을 설정하고 이 절대적인 생명이 지적 능력을 넘어서 우리들과 및 일체의 것을 그 곳에 있게 하는 궁극의 것이라는 것이 소론에서 얻는 바 일반적인 인상이 아닐런가. 그리고 철학이란 이러한 절대자와 어떠한 방도로 접촉하든가, 또는 이 가운데서 자기를 살리는 자각을 갖든가 하는 것의 해설이라는 논지는 아닐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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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생의 철학은 철학의 본질을 일종의 종교화의 경로를 거쳐서 그것을 비합리 정신의 세계에 격류(擊留)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합리나 철학의 종교화의 이론이 과연 지성을 옹호하고 신장시킬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런가는 적지 아니 의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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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인텔리젠스가 자기를 관철하고 자기를 주장하여 자기 신장을 책(策)하는 길은 비합리나 신비 세계나 종교의 속에 몰입하여 자기를 연화(軟化)한다든가 해소하는 곳에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 과학으로서 수미일관하게 자기를 살리는 길 위에만 열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텔리젠스란 합리적 정신과 과학적 정신으로서 자기를 파악하고 자기를 살리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논자의 실제에 즉하여 살펴보면 일층 흥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한다(그러나 구체적인 논지를 조상〔俎上〕에 올릴 수 없는 것은 현재 나는 논책이 게재된 신문지를 손밭우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신문 구경도 바로 할 수 없는 산간에 있는 탓에 이야기가 바로 맞아 떨어지려는지는도 저윽이 의문이다. 차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특히 논자나 논제도 여기에 명기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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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자에 의하건대 자연 현상과는 달리 인간에 관련된 예컨대 정신 과학 같은 것의 대상은 지나 정이나 의의 정신적인 활동을 갖는 것이므로 이의 인식은 지적인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데 지성을 생의 철학과 관련시키는 근거가 있는 상싶다. 위대한 정서라든가 정열이라든가, 정조에 의한 공감이라든가에 의하여 인식이 성립됨이 사실이므로 ‘로고스’의 속에 ‘파토스’를 넣어서 균형을 잡자는 데 본의가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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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개념에 의하여는 한정할 수 없는 사회적 생명의 구체적 방향이 있어서 여기에 어떤 일의적(一義的)인 한정을 가하고 보면 그것 자신이 필연적으로 그의 본질적인 동성(動性)을 상실하는 풍윤(豊潤)한 생명의 통일을 철학의 근저에 구하여 관념론과 유물론의 상호 부정적 지양 위에 그 성립을 볼 수 있다는 생의 철리가, 이 곳에 이지성(로고스)인 것의 위에 감정성(파토스)인 것을 덧씌우는 데 의하여 지성의 유지와 신장을 꾀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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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지라든가, 감정이라든가 또는 소위 열성이라든가 하는 것은 지적 작용을 재래(齎來)하는 인식의 동기나 결과는 될 수 있다고 하여도 인식 그 자체는 언제나 지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감정에 의한 공명이라든가를 가지고는 도저히 대상을 인식했노라고 호언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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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과학적 정신이나 합리적 정신이 실험과 실증과 실천을 가지고 대상에 임한다고 하여도 결코 의지나 감정을 말살해 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주관적인 자의나 사의(肆意)를 거부하고 객관적 사태에 즉한다는 것 가운데만 그 특징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인 것이 과학성을 관철하고 합리적 정신에 의하여 그의 인식을 추진시키는 데 장해물이 되는 생의 철학이나 또는 이의 혼용물에 의하여는 인텔리젠스의 옹호나 보육, 신장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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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8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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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을 부흥하자는 것의 시비와 연구의 이론과 실제에 대하여 논책이 있어 온 것은 결코 작금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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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근 년 전에 고전에 대한 유산 상속의 문제와 관련시켜 그의 과학적 섭취의 방법 같은 것이 토의된 것을 우리는 친히 경험하여 왔고 그 뒤 전 문화 분야가 통일된 방향을 잃어 버리고 사상적 지향을 상실하였을 때에 이것의 재건책으로 고전에 대한 성찰이 운위된 것도 한가지로 보아 온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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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복고주의의 대두와 아울러 ‘조선적인 것’의 탐구를 통하여 문화의 전통 문제와 어울려서 한 때 시끄러 우리 만치 이것이 논위된 것도 우리는 아직 새롭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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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 다시 이 문제에 대한 논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렇게 한 가지 문제가 오랫도안의 시일을 두고 되풀이되는 곳에는 저널리즘 자신의 화제의 빈곤이나 또는 문제 그 자체가 낡은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롭다는 것에도 유래하는 것이 없지 않겠지만, 고전 연구나 부흥 그 자체가 문화의 위기나 문학의 침체나를 구출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없거나 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전의 가치라는 것이 그러한 활력소를 갖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것인데 유인(由因)되는 것도 없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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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나어린 소설가나 비평가나는 - 아니 통틀어 문단 사람들은 우리의 고전에 대해서 너무 무식하고 또 제 고장 문화재의 고전적 가치에 대하여 지나치리 만치 맹안자라는 비난을 가끔 들어 왔고 특히 어학자 제씨한데서는 조선의 소설가와 시인은 조선말을 모르고 조선말의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꾸중을 듣는 중에 때로는 ‘조선의 문인이여! 용비어천가를 보라! 춘향전을 읽으라!’는 간곡한 충고까지도 받아 왔다. 그것을 읽어서 문장의 리듬을 배우고 어휘를 줏어 얻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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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말석을 더럽히고 있는 자로써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며 또 이러한 비난을 그대로 받아도 결코 불복할 것이 없을 만큼 우리네의 지식이나 열성이 미약할 것도 사실이 아니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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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번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홍길동전과 구운몽과 남정기와 흥부전과 춘향전에서 과연 얼마만한 활력소와 자양물을 섭취해 낼 수 있는가는 이 또한 경홀(輕忽)히 단언할 수 없는 바가 아닐 수 없다. 세심한 눈을 가지고 이를 재삼 읽어 본 이라면 이러한 제 소설에서 현대 작가가 배울 곳은 극히 적은 분량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음에 이를 것이다. 내 자식이니까 업어 주고 귀엽다든가 또는 협착한 혈통 이론에 포로 됨이 없이 세계대(世界大)의 규모 위에 서서 이를 냉정히 관찰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재의 빈약함에 거의 통분에 가까운 격정을 품을 것이다. 아세아적으로 정체된 극히 뒤떨어진 봉건 이조는 동년대의 서구의 로만에 대비하여 실로 엄청나게 왜곡된 소설밖에는 우리에게 전하여 주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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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머리를 박고 한 나절을 헤매어도 침체한 우리 현대 문학에 고귀한 정신을 넣어 준다든가 훌륭한 성격적 전형을 제시한다든가 위대한 구상력을 계시한다든가 하는 활력소는 용이히 체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고전 자신이 갖고 있는 약체적인 조건이 우리 청년들을 그 곳으로 이끌고 가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지 않는가고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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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형용사의 무용한 무계통적인 첩구(疊句), 풍월식 묘사, 판에 찍은 듯한 공허한 성격, 무수히 출몰하는 ‘비몽사몽간’, 시조적인 영탄이나 감상을 가지고는 현대와 같이 모순과 혼란에 뒤섞인 복잡한 인간 생활을 그리기에는 거의 무용의 장물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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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가운데서 우리 문화나 문학의 전통을 찾아 그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세계에의 귀환 속에서 오히려 고전적 유산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도 또한 필연의 세(勢)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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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고전 연구론자들이 이 점에 특히 유의하여 고전의 역사성을 고조하고 복고주의를 경계하고 세계대의 규모 위에 서서 고전을 탐색하려는 태도는 과학적으로 일보 전진의 감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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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좀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은 해석학적인 태도의 유행이었다. - 라고 하는 것은 해석학은 왕왕 산 진리를 고갈시킴으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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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8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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