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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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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5
최서해
1
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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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쓰려고 종이를 펴놓고 붓을 들 때까지 ‘담요’ 란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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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야기를 써 볼까, 요새 이내 살림살이 꼴을 적어 볼까. 이렇게 뒤숭숭한 생각을 거두지 못하다가 일전에 누가 보내 준 어떤 여자의 일기에서 몇 절 뽑아 적으려고 하였다. 그래 그 일기를 찾아서 뒤적거려 보고 책상을 마주 앉아서 펜을 들었다. ‘××과 ××’ 라는 제목을 붙이어 놓고 몇 줄 내려쓰노라니 딴딴한 장판에 복사뼈가 어떻게 배기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놈이 따끔따끔해서 견딜 수 없고 또 겨우 빨아 입은 흰옷이 꺼먼 장판에 뭉개져 걸레가 되는 것이 마음에 켕겼다.
 
4
따스한 봄볕이 비추고 사지는 나른하여 졸음이 오는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신경이 들먹거리고 게다가 복사뼈까지 따끔거리니 쓰려던 글도 씌어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기일이 급한 글을 맡아 놓고 그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한 계책을 생각하였다. 그것은 별계책이 아니라 담요를 깔고 앉아서 쓰려고 한 것이다. 담요래야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요, 깨끗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나마 깔고 앉으면 복사뼈도 따끔거리지 않을 것이요, 또 의복도 장판에서 덜 검을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이불 위에 접어서 깔고 보니 너무 넓고 엷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펴서 길이로 세 번 접고 옆으로 세 번 접었다. 이렇게 죽 펴서 여섯 번 접을 때 내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생각과 같이 내 눈앞을 슬쩍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나는 담요 접던 손으로 찌르르한 가슴을 부둥켜안았다. 이렇게 멍하니 앉은 내 마음은 때라는 층계를 밟아 멀리멀리 옛적으로 달아났다. 나는 끝없이 달아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살라 버리기는 너무도 아쉬워서 그대로 여기에 쓴다. 이것이 지금‘담요’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동기다.
 
5
삼 년 전, 내가 집 떠나던 해 겨울에 나는 어떤 깊숙한 큰 절에 있었다. 홑고의적삼을 입고 이 절 큰방 구석에서 우두커니 쭈그리고 지낼 때에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니가 보내 주신 것이 지금 이 글 제목으로 붙인 담요였다. 그 담요가 오늘까지 나를 싸 주고 덮어 주고 받혀 주고 하여 한시도 내 몸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때때로 이 담요를 만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즉 이 글에 나타나는 감정이다. 집 떠나던 안해였다.
 
6
나는 국경 어떤 정거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 일이 괴로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사람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고 어린 딸년까지 있어서 허나 성하나 철찾아 깨끗이 빨아 주는 옷을 입었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자리에서 껄덕거리다가는 내 집에서 지은 밥에 배를 불리고 편안히 쉬던 그때가 바람에 불리는 갈꽃 같은 오늘에 비기면 얼마나 행복일까 하고 생각해 보는 때도 많다. 더구나 어린 딸년이 아침저녁 일자리에 따라와서 방긋방긋 웃어 주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7
그러나 그때에는 풍족한 생활은 못 되었다. 그날 먹는 생활이었고 그리되고 보니 하루만 병으로 쉬게 되면 그 하루 양식값은 빚이 되었다. 따라서 잘 입지도 못하였다. 아내는 어디 나가려면 딸년 싸 업을 포대기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8
그때 우리와 같이 이웃에 셋집을 얻어 가지고 있는 K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나같이 정거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우리 집에 늘 놀러왔다.
 
9
K의 부인이 오면 우리 집은 어린애 싸움과 울음이 진동했다. 그것은 내 딸년과 K의 아들과 싸우고 우는 것이었다. 그 싸움과 울음의 실마리는 K의 아들을 싸 업고 온 ‘붉은 담요’ 로부터 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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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부인이 와서 그 담요를 끄르고 어린 것을 내려놓으면, 내 딸년은 어미 무릎에서 젖을 먹다가 텀벅텀벅 달려가서 그 붉은 담요를 끄집어 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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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곱다!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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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방긋방긋 웃었다. 그 웃음은 그 담요가 부럽다, 가지고 싶다, 나도 하나 사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러면 K의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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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남의 것을 왜 가져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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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듯이 내게 찡그리고 달려들어서 그 담요를 빼앗았다. 그러나 내 딸년은 순순히 빼앗기지 않고 이를 꼭 악물고 힘써서 잡아당긴다. 이렇게 서로 잡아당기고 밀치다가는 나중에 서로 때리고 싸우게 되다. 처음 어린것들이 담요를 밀고 당기게 되면 어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 아내, 나 ──이 세 사람의 웃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어색한 빛이 흘러서 극히 부자연스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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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아내만이 상글상글 재미있게 웃었다. 담요를 서로 잡아당길 때에 내 딸년이 끌리게 되면 얼굴이 발개서 어른들을 보면서 비죽비죽 울려고하는 것은 후원을 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K의 아들도 끌리게 되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서로 어우러져 싸우게 되면 어른들 낯에 웃음이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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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집애 남의 애를 왜 때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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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아내는 낯빛이 파래서 아들과 담요를 끄집어다가 싸 업는다. 그러면 내 아내도 낯빛이 푸르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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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 마라, 우지 마라. 이 담에 아버지가 담요를 사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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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 딸년을 끄집어다가 젖을 물린다. 딸년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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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응,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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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발버둥을 치면서 K의 아내가 어린것을 싸 업은 담요를 가리키면서 설게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되면 나는 차마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같은 처지에 있건만 K의 아내나 아들의 낯에는 우월감이 흐르는 것 같고 우리는 그 가운데 접질리는 것 같은 것도 불쾌하지만 어린것이 서너 살 나도록 포대기 하나 변변히 못 지어 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못생긴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린 것이 말은 할 줄도 모르고 그 담요를 손가락질하면서 우는 양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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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며칠 뒤에 나는 일삯전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가니 아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싼 딸년을 안고 앉아서 쪽쪽 울고 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아무말 없이 담배만 피우시고……. 나는 웬일이냐고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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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년 이름)가 머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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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겨우 목구멍으로 우러나오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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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가 터지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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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아들애가 담요를 만졌다고 인두로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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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아내가 울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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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인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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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문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쫓아나오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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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철없는 어린것들 싸움인데 그것을 타 가지고 어른 싸움이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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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만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분한지 슬픈지 그 멍멍한 것이 얼빠진 사람 같았다. 모든 감정이 점점 가라앉고 비로소 내 의식에 돌아왔을 제 내 눈물에 흐리고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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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길로 거리에 달려가서, 붉은 줄, 누런 줄, 푸른 줄 간 담요를 사 원 오십 전이나 주고 사 왔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달려가 샀던지 사가지고 돌아설 때 양식 살 돈 없어진 것을 생각하고 이마를 찡그리는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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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하고 냉소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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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깔고 앉아서 이 글을 쓰는 이 담요는 그래서 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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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를 사 들고 집에 들어서니 어미 무릎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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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파! 여기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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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리를 가리키면서 울던 딸년이 허둥허둥 와서 담요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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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헤헤, 엄마,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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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뚝뚝 뛸 듯이 좋아라고 웃는다. 그것을 보고 웃는 우리 셋──어머니, 아내, 나 ──은 눈물을 씻으면서 서로 쳐다보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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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때 찢기던 그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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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게 찢겼다.
 
 
42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몹쓸 비바람은 우리 집을 치었다. 우리는 동에서 서로 갈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 딸년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시고, 아내는 평안도로 가고, 나는 양주 어떤 절로 들어갔다. 내가 종적을 감추고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편지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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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을 어찌 지내느냐. 담요를 덮고 자거라. ××(딸년)가 담요를 밤낮 이쁘다고 남은 만지게도 못 하더니 “아버지께 보낸다” 고 하니, “한 머리, 이거 아버지 덮니?”하면서 소리 없이 내어놓는다. 어서 뜻을 이루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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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편지와 같이 담요를 보내 주셨다. 그것이 벌써 삼 년 전 일이다. 그새에 담요의 주인공인 내 딸년은 땅속에 묻힌 혼이 되고 늙은 어머니는 의지 가지없이 뒤쪽나라 눈 속에서 헤매시고 이 몸이 또한 푸른 생각을 안고 끝없이 흐르니 언제나 어머니 슬하에 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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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뜻이 깊은 이때에 유래가 깊은 담요를 손수 집어 덮고 앉으니 무량한 감개가 가슴에 복받쳐서 풀 길이 망연하다.
【원문】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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