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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단의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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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2.20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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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카단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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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걸’과 ‘모던 보이’에 대해서 감상도 좋고 풍자도 좋고 비평도 좋으니 무엇이나 하나 써달라는 것이 『別乾坤[별건곤]』의 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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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곤』은 그 이름이 기발한 것만큼 문제도 기발한 것을 취하거니와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 기발한 문제의 해답이 능할는지 의문이라 하면 또한 의문이 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어느 때엔가 어떤 분이 어떤 신문에 단발 미인의 평인지 감상인지를 쓴 것이 동티가 나가 그 글을 쓴 분과 그 글을 실은 신문사가 단발 미인 연대의 포위 공격에 수세를 잃고 受降壇[수강단] 아래 엎드려 항복을 했다 하니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에게는 그것도 한 전감이 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천행으로 내 붓이 잘 나가면 모르거니와 원래 서투른 솜씨이라, 서투른 무당의 굿과 같아서 도로 화나 불러놓으면 나는 나의 잘못이니 화를 받아도 문제가 아니지만 성문에 붙은 불이 연못의 고기에게까지 미치는 격으로 『별건곤』에 까지 미친다면 그처럼 미안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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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남을 칭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하지만 그것도 너무 도에 지나치면 도로 멀미가 날 지경이거든 하물며 남의 흠담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렇다고 흠을 흠이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미운 애기에게 젖주는 반대로 고운 애기에게 매를 주나니 진실하고 엄숙한 흠담은 분에 넘치는 찬사보다는 나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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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말하면 나는 ‘모던 걸’이나 ‘모던 보이’를 미워하는 파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 좋아하는 파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그네들을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같이 쌀쌀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네들도 나를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별로 섭섭할 것은 피차 천만에 말이지만 피차간 이렇게 생긴 것만은 사실의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로담이나 석가와 같다는 변명 같으나 그렇게 無明[무명]을 벗은 사람도 아니다. 다행히 금년 겨울은 더우니 괜찮지만 북악산의 찬바람이 거리를 싸르르 스치는 때라도 혈색 좋은 설부가 드러날 만큼 반짝거리는 엷은 양말에 금방에 발목이나 삐지 않을까? 보기에도 아심아심한 구두 귀로 몸을 고이고 스커트 자락이 비칠 듯 말 듯한 정갱이를 지나는 외투에 단발, 혹은 ‘미미가꾸시’에다가 모자를 푹 눌러 쓴 모양은 멀리 보아도 밉지 않고 가까이 보아도 흉치 않다. 어쩌다 길이나 좁은 데서 만나 엇갈리게 되면 나는 본능적으로 분에 절은 그 뺨과 나불거리는 귀밑을 곁눈질하게 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분길 같은 손에 경복궁 기둥 같은 단장을 휘두르면서 두툼한 각테 안경, 펑퍼짐한 모자 ─⎯ 어떤 시대 화가들이 쓰던 것 같은 ⎯─ 코 높은 구두를 신고 장안 대로는 왼통 제길이라는 듯이 활개치는 젊은 서방님네들이다. 나같은 겁장이는 만원된 전차 속이나 길 좁은 골목에서 그런 서방님들을 뵈오면 공연한 트집이나 잡지 않을까? 해서 질겁을 해서 뺑소니도 치지만 하여튼 그들은 즉 ‘모던 걸’과 ‘모던 보이’는 새의 두 나래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이쪽만 들면 저쪽이 섭섭해하고 저쪽만 만지면 이쪽이 섭섭해할 만큼 서로 기울지 않는 짝이라. 이런 것을 생각하면 두 쪽을 다 건드리는 우리 『별건곤』의 태도도 지극히 공명정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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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잔소리는 집어치우고 이렇게 나는 그네들과 아무 상관도 없건만 눈에 뜨이는 때면 느끼는 바가 없지도 않고 또 친구들과 서로 만나서 놀다가 화제가 그리로 돌아가면 나도 한몫 끼는 축이요, 빠지는 축은 아니다. 하나 그렇다고 거기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진 것도 아니요, 또 철저치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통일된 의견을 가지지도 못하고, 허허 웃어 버릴 만큼 질서 없는 말들인데 ‘모던 걸’이 나오면 피아노나 활동사진관이 따라 나오고 ‘모던 보이’를 말하면 기생집이나 극장이나 따라 나오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자신도 ‘모던 걸’ 하면 현숙한 맛은 쑥 들어가고 화사하고 요염한 계집 ⎯─ 댄스장에 나가는 여배우 비슷한 계집에게서 받은 듯한 느낌을 어렴풋이나마 받게 된다. 그와 같이 ‘모던 보이’에게서는 일없이 ‘히야까시’나 하고 빤질빤질 계집의 궁둥이나 쫓아다니는 어떤 그림자 같아서 건실하고 강직한 느낌은 못 받는다. 딴은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말을 일본이나 조선서는 ‘불량 소녀’ ‘불량 소년’ 비슷한 의미로써 쓰는 까닭에 그렇게도 느껴지겠지만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도 현숙하고 건실하다는 느낌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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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英文[영문]을 모르니 그 참뜻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영문 아는 이의 해석을 들으면 ‘모던’이라는 것은 근대, 또는 현대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면 ‘모던 걸’ ‘모던 보이’는 근대 소녀, 근대 소년이니 속어로 말하자면 ‘시체 계집애’ ‘시체 사내’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 시체 것을 그렇게 좋지 못한 의미로 쓰는지, 심한 이는 ‘못된 걸’(모던 걸) ‘못된 보이’(모던 보이)라고까지 부르며 어떤 이는 그네들 정조에까지 불순한 말을 하니 이것은 심한 말로 되려니와 나와 같이 그네들 속은 모르고 겉만 보고는 할 말이 아니다. 하나, 시체라는 것을 어째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지는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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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은 모르지만 근래에 이르러 시체라 하면 그 요소의 90퍼센트는 양풍일 것이다. 요새는 좀 덜하지마는 한때는 서양 것이라 하면 덮어놓고 좋다 하여 의복, 음식, 심지어 베드까지라도 놓지 못해 하던 분들이 있었다. 일본에도 이런 때가 있어서 눈알까지 푸르게 못하는 것을 한탄한 이가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격에도 어울리지 않는 몸치장과 행동이 보는 이의 악감을 샀을 것이요, 또는 되지도 않은 연애 자유론을 부르짖으면서 하루도 두셋씩 만났다 갈리는 분들이 그 속에 있어서 이러한 미움까지 받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나는 새로운 행동을 취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요, 연애 자유를 구속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행동을 취하되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요, 연애의 자유를 부르짖되 그자유를 실현할 만한 사회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요새의 ‘모던 걸’이나 ‘모던 보이’ 모양으로 덮어 놓고 화사에 들뜨고, 바이올린, 피아노나 치고 앉아서 연애 자유나 부르고 걸핏하면 정사 ─⎯ 그렇지 않으면 실연병에 술이나 마시고 다니는 것은 세기말적의 퇴폐 기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나는 여기서도 스러져 가는 이 세상의 잔해를 역력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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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앞길도 아침 햇볕 아래 빛나는 풀 끝에 이슬이나 되지 않을는지?
【원문】데카단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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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별건곤(別乾坤) [출처]
 
  192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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